(제 6 회) 

6. 왕 륭

 

집사가 손가락을 펴보이고 다시 엄지손가락을 비틀며 《탈났소이다.》 할 때 왕륭은 한절반 딴 생각을 하고있었다.

왕륭은 서해 건너간 배가 돌아오지 않아 근심하고있었다. 예정대로라면 벌써 어제쯤 소식이 왔어야 했다. 왕륭이 서해로 건너간 배가 돌아오기를 바라는것은 그 배에 아들이 타고있기때문이였다. 그의 아들 건은 아버지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데도 부득부득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 당나라로 갔던것이다.

《삼촌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겠소이까. 저를 보내주시오이다!》 하고 아들은 간청했었다. 삼촌이란 다름아닌 왕륭의 심복 도불이였다. 그는 왕륭의 동생은 아니였으나 친형제나 다름없었다. 도불은 배부리는데서 귀신같은 사람이였다. 아들 건이 이런 도불을 턱대고 서해를 건너가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녀석이 그 못지 않게 언제부터 배를 타는데 큰 호기심을 가지고있다는걸 왕륭이 모르지 않는다. 왕륭은 그닥 싸게 보지 않았다. 배타는게 워낙 칠성판을 지고 다니는 위험한노릇이기때문만이 아니였다. 위험이라면 왕륭도 누구 못지 않게 좋아하였다. 바로 그 위험과 모험이 없었더라면 왕륭이 성골도 진골도 아닌 처지에 신라의 사찬벼슬까지 오르지 못했을것이다. 옛 고구려때의 부소갑, 지금의 송악군에서 왕륭은 권력과 재부를 한손아귀에 거머쥔 사람으로, 당대의 호걸로 뜨르르하다. 그렇게 된데는 바로 그가 배부리는 일, 더 정확히는 서해를 넘나들며 당나라와 벌리는 장사일로 막대한 재부를 얻었기때문이다. 당나라와의 밀무역을 통하여 재부가 쌓이자 권력은 스스로 굴러들어왔다. 사찬벼슬이라는게 신라 17등급골품조직에서 여덟번째에 속하는 무시하지 못하는 벼슬인데 그것도 사실은 돈을 주고 산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왕륭이 아들이 배타는걸 좋아하지 않는것은 또한 장차 녀석이 그런데나 휩쓸리여 다닐 필부가 될것 같아서였다. 그건 그렇고…

왕륭은 집사가 무슨 소리하는지 알지 못할 시늉을 하며 죄지은듯 두손을 앞으로 모아쥐고있는것을 보며 무슨 뜻인지 헤아리느라 잠시 시선을 바로세우고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민감한 취리(取利)의 예민한 감각이 왕륭을 찌르르하니 사로잡았다.

《뭐?!》

왕륭은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어쨌다고?!》

집사는 다시금 자기 왼손으로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비틀며 말했다.

《이것이 탈났소이다.》

《어느쪽이냐?!》

《영풍쪽이오이다.》

영풍이면 고구려때는 대곡군 또는 다지실이라고 부르던 곳 즉 송악의 북동쪽 오늘날의 평산이다.

《요전번 자네가 특별히 달라고 해서 선불까지 주었는데?》

《바로 그 줄이오이다.》

《선불이 작다는겐가 아니면 거래가 불거졌나?》

《아니오이다. 저…》

《말해보게.》

《네…》

집사는 늘 그러하였지만 오늘따라 두눈섭사이에 깊은 곬을 지으며 얄팍한 입술을 놀렸다.

사찬이 특별히 일러서 이때껏 다섯(산삼)을 구해들이는데는 될수록 직접 거래를 피하고 사찬을 끝으로 하여 집사가 나서서 주관했다. 집사는 또 집사대로 앞에 두어곳의 끄나불을 놓았는데 바로 영풍앞에 있는 산성패거리들과 《거마리》 그리고 심마니로 이어졌다. 거간이 많으면 손해를 본다는걸 모르지 않지만 삼을 구해들이는 일만은 특별히 그러했다. 왕륭이 걷는 산삼은 제가 쓰거나 서울로 가져갈것이 아니고 서해너머 당나라로 가져가기때문이다. 왕륭이 바다건너 밀무역을 한다는것이 별로 비밀은 아니지만 특별히 산삼건에 대해서만은 장사일의 리속도 그렇고 또 나라의 법에도 소문낼것이 못된다. 왕륭은 산삼을 《룡의 여의주》로 하여 오늘의 이만큼의 재부와 권력을 얻었던것이다. 물론 산삼을 가지고 밀무역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피차 좋지 못하다는걸 왕륭은 알고있다. 왕륭은 그런데 그 여의주를 누가 직접 캐는지 아직 모르고있었고 또 알 필요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정작 일이 터지니까 왕륭자기와 심마니사이가 그렇게 소 닭보듯 할 처지가 아니였다. 이랬든저랬든 실지 삼을 잡아들이는것은 집사도 아니요, 거간도 아닌 바로 심마니였던것이다. 심마니가 튀면 결국 집사도 거간도 다 쓸모없는것이다.

집사의 설명인즉 여태 심마니의 신의를 얻어 이번에도 틀림없이 오방초로, 그것도 석삼으로 한다기에 특별히 선불했는데 그것이 말썽이다. 산성패거리들과 《거마리》가 이번에도 일이 잘되겠거니 하고 심상해있었는데 선불까지 받은지라 조금 더 실수없이 하느라고 심마니를 따졌던 모양이다. 물론 그것은 산성패거리들에게서 들은 소리이긴 하지만… 그런데 너무 당기면 끊어진다고 심마니가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삼을 잡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심마니와 《거마리》사이에 티각태각이 벌어지고 결국 《거마리》가 죽은것이다. 심마니는 어디로 달아났는지 모른다.

《허, 일이 안됐네그려.》 하고 왕륭이 입을 다셨다.

《그러게 말이오이다. 다 제탓이오이다.》

《이제 어쩔셈인가?》

《죽은 거마리일은 적당히 버무려놓았소이다. 불찌가 사찬어른에게 튀지 않도록 제가…》

《이 사람아, 그게 문제인가? 심마니가 문제네. 이건 꿩잡던 매를 놓쳤으니…》

집사는 어두운 눈길을 바닥에 깔며 가볍게 한숨을 쉬였다.

《도대체 그 심마니는 어떤 놈인가?》 하고 왕륭이 물었다.

《홀어미를 모시고 농사지으며…》

《아니, 본래 심마니노릇 했던가, 애비때부터?》

《아니오이다.》

《그럼?》

《심마니노릇 시작한건 몇해전부터인데 그 사람이 대를 두고 하는 심마니 찜쪄먹게 삼을 잘 잡았소이다.》

《무슨 뚝 부러진 수라도 있던 모양이지?》

《듣자니 그 사람이 미륵사에 있는 운각스님인지 뭔지 하는 사람에게서…》

《미륵사? 어디 미륵사?》

《다지실 미륵사말씀이오이다.》

《뭐?!》

왕륭은 놀랐다.

《왜 그러시오이까?》

《아, 아닐세…》

왕륭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천석들이배가 잃어졌다고 해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던 왕륭의 이런 변화는 집사에게 뜻밖의 일이였다.

《영안성에 가겠다.》 하고 왕륭은 집사에게 말했다.

《심마니일은 어찌하시렵니까?》

《두고보자.》

집사가 머리를 기웃하고 나가고 왕륭은 혼자생각에 잠겼다.

패강(례성강)을 중심으로 사방 100여리안에 드는 개성, 정주, 연안, 평산, 강화, 림진강, 한강 중하류일대에서 왕륭 하면 한주 제일의 해상세력이요, 유력한 호족이였다.

왕륭이 이렇게 된데는 그자신의 뛰여난 처세술과 취리감각도 있었지만 조상들의 덕도 컸다. 실상 왕륭의 득세는 그의 조상이라할수 있는 호경(虎景)때부터 왕륭의 조부인 작제건(作帝建)에 이미 착착 마련된것이라고 할수 있다. 조상들은 바다건너 당나라 산동반도일대와 이렇게저렇게 관계가 깊은데 왕륭은 그 조상들의 덕을 입어 무역을 해왔다. 왕륭자신은 그것을 남다른 긍지로 여기고있었다. 하루아침에 뚝딱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을 가리켜 운명의 장난으로 생겨난 졸부로 비웃는 왕륭이고보면 그는 인간의 노력과 재능과 출세에 대해서 진중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고 볼수 있을것 같다. 왕륭은 벼락부자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벼락같이 부자가 된자들은 또한 벼락같이 망해버린다고 보는것이 왕륭의 견해였다.

왕륭은 모든 일에는 때와 순서가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기때문에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하는 일이 있어도 기뻐하기보다 오히려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성격이였다.

그에게는 두곳의 안식처가 있었으니 그곳은 부소압(송악산)남쪽에 자리잡은 집과 패강입구에 있는 영안성이다. 그 거리가 40여리쯤 되여서 보통 길손에게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지만 왕륭에게는 뜨락의 거리만큼 하다. 부소압의 집이 안방이라면 영안성은 전각과 같은 곳이다. 이 두곳은 왕륭자신이 마련한것이 물론 아니고 이미 조상들이 이루어놓은것이다.

썩 후날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영안성은 다음과 같이 마련된것이라 한다.

어느날 왕륭의 아버지인 작제건이 서해바다 룡왕의 딸 룡녀와 함께 룡왕이 주는 칠보와 돼지를 옻칠한 배에 싣고 패강입구에 닿았는데 그때 백주(배천)의 관리 류상희 등이 이 소식을 듣고 기뻐 《큰 경사로다.》라고 말하면서 개주(개성), 정주(풍덕), 염주(연안), 백주의 4개 주와 강화, 교동, 하음의 3개 현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영안성을 쌓고 궁실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작제건과 룡녀가 영안성에서 살게 되였는데 1년이 지나 하루는 기르던 돼지가 우리안으로 들어가지 않아 이상해서 돼지에게 묻기를 《만일 이곳이 살 곳이 못되면 나는 네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겠다.》 하여 이튿날 아침 돼지가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더니 마침내 부소압 남쪽기슭에 누웠다. 이곳은 옛날 작제건의 조상인 강충이 살던 옛터라 한다. 이 집에서 영안성으로 왕래하며 30년동안 살았는데 룡녀는 새 집 창밖에 우물을 파고 그속을 통하여 서해룡궁으로 다녔다.

룡녀가 늘 작제건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룡궁으로 돌아갈 때는 절대로 보지 마세요.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작제건은 약속을 어기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안해가 어린 딸과 함께 우물로 가서 황룡이 되여 5색구름을 일으키는것을 본 작제건은 이상하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하여 아무 말도 못하였다.

룡녀는 돌아와서 성내며 말하기를 《부부간의 도리는 신의를 지키는것이 중요한데 벌써 당신이 약속을 어겼으니 나는 더 여기서 살수 없어요.》 하고 어린 딸과 함께 룡으로 변하여 우물로 들어간 후 다시 오지 않았다 한다.

이 작제건과 룡녀사이에 아들 넷을 보았는데 맏이가 룡건인바 후에 이름을 륭으로 고치였다.

누구 입에서 나와 어떻게 퍼진 말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러한 말이 먼 후날까지 떠돌았다. 만일 후날 왕륭의 아들 왕건이 나라를 세운 사람이 되지 못하였더라면 모름지기 그런 황당한 전설도 생겨나지 않았으리라. 사람들의 어리석음의 하나가 어쨌든 성공하면 보태주고 실패하면 깎아내리는것이니까.

《이제 당장 떠나시겠소이까?》 하고 집사가 물었을 때 왕륭은 《그래, 곧.》 하며 마루를 내렸다.

집사는 오늘따라 사찬어른의 거동이 별나다고 기웃했다. 왕륭에게 부소압의 집이나 영안성이나 마찬가지여서 영안성으로 갈 차비를 하라는것이 새삼스러운것은 아니였다. 다만 하필 점심때가 가까워왔는데 떠나겠다고 서두르는것은 조금 놀라운 일이였다.

급한 때일수록 아닌보살 곧잘 부리는것이 왕륭이다. 당장 칼이 들어와도 덤비지 않고 딴전 피우지만 실은 마음속으로 남들처럼 급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남들 눈에 여유작작하게 보이는것은 오랜 장사일과 처세술이 가르쳐준 경험일뿐이다.

왕륭은 말에 올라 길을 재촉했다.

집사에게서 들은 소식 즉 여의주를 물어다주던 심마니가 별안간 사라진 사건은 왕륭에게 막연한 조바심을 주었다.

그까짓 심마니따위는 하나뿐이 아니고 어디서든지 얻을수 있다. 그저 달라는것도 아니고 재물을 주고 사는데야 어디선들 나서지 않으랴. 하지만 영풍의 심마니는 다르다. 미륵사의 운각스님과 그 제자에 대한 이야기는 왕륭이 이미 도선스님에게서 들은적이 있었다.

《권세와 재물로 살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사람중의 사람이다. 보배중의 보배다.》

도선스님의 말이였다.

그때 왕륭은 도선이 자기의 몸값을 올리려고 그러는줄 알았다.

《사람이 곧 재물이요, 권세다.》 하는 말을 왕륭은 별로 신통하게 여기지 않았다. 재물과 권세로 사지 못할 사람이 없고 부리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보는것이 이때까지 왕륭이 터득한 세상살이의 믿음이였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뭇사람들이 재물과 권세를 탐내며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는가? 세상의 희로애락은 재물과 권세에서 그네뛰기를 하는것이다.

그런 왕륭으로서는 도선스님의 말이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빈도가 스님을 잘 모시지 못한것이 많은줄 아오이다.》 하고 몸을 숙였다.

그런데 도선은 오히려 이마살을 찌프렸다.

날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하였을 때 왕륭은 놀라서 도선을 보았다.

《다른 사람을 두고 하는 소리웨다.》

《원 스님도, 무슨 말씀을…》 하고 왕륭은 입을 다셨다.

그가 보건대 세상에 도선스님만큼 리치에 밝은 사람은 다시 없었다. 오죽했으면 헌강왕이 그의 명성을 듣고 사람을 보내여 궁중으로 모셔갔겠는가. 그분이 다른 사람을 말한다는것은 어딘가 우스운데가 있었다.

도선은 한숨 쉬였다.

《사찬이 그러루한 필부들만 보아온것이 아니시오? 옥석구분이란 말도 있지만 사람가려보기가 그만큼 어려운 일이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 재산을 털어 사람들을 식객으로 모아놓는것도 마다하지 않는것이겠지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을 모른다니까… 당장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사람을 귀하게 여기기때문에 재물을 아끼지 않고 곁에 두는 그런 사람은 큰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큰일을 하자면 사람들을 모아야 하고 사람을 뫃자면 사람을 타발하지 말아야지요. 달아나는 사람까지 쫓아가서 끌어올만 한 마음이 없어가지고는 큰일 못합니다.》

왕륭은 도선의 말의 뜻을 다 깨닫지는 못했다. 참고는 해야겠다고 생각할뿐이다. 도선스님도 더이상 바라지는 않는 모양이였다. 그래서 처음 말로 돌아갔다.

《있소이다. 다지실의 면악산에 미륵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거기 운각스님과 그 제자가 남다른 사람들이지요.》

왕륭은 도선스님의 겸손이라고 여겼다.

《설마…》 하고 저도 모르게 말이 새였다.

도선은 허거프게 웃었다.

《내가 사찬을 남다르게 보는것은 앞날에 큰일을 이루고저 한다는데 있소. 부디 한번 그들을 만나보도록 하시오. 이 늙은이보다 더 요긴한데가 있을것이웨다. 사찬은 재물을 아끼지 않고 앞날을 꾸린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그때 도선스님이 하는 말을 왕륭은 깊이 새겨듣지 않았다. 인연이 있으면 만나게 되겠지 하는것이 왕륭의 심사였다. 이렇게 뛰여들줄은 몰랐다.

정말 인연이란 말인가 하고 왕륭은 생각했다. 그러나 심마니는 달아나지 않았는가.

왕륭의 생각은 아들에게 쏠렸다. 어쩐지 그 심마니와 아들의 일이 무거운 짐으로 되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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