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3. 망국의 징조

 

한주라면 력사에 후기신라라고 불리워지는 나라의 9주가운데서 제일 큰 주의 하나이다. 본래 백제의 중심지였지만 고구려 장수왕63년(475년)에 고구려의 땅으로 되였다가 그후 신라의 땅으로 되였다. 무릇 28군을 통할한다.

이 한주의 영풍군(평산) 면악산(멸악산)의 남쪽기슭에 샘골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 북쪽끄트머리에 있는 집이 바로 《산삼집》이라 불리우는 고마의 집이다.

삭주(강원도)쪽으로 삼캐러 나갔던 고마는 열흘만에 돌아왔다.

집은 비여있었다.

고마는 저녁 끓일 생각도 잊고 노전을 깐 방에 벌렁 드러누운채로 그동안 거미줄 지나간 천정을 올려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신라 9주 5소경 117군 293현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지경은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지 못하다. 이지러질대로 이지러져 사방에서 찌그덕소리가 난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마치 주검앞에서 타오르는 향불처럼 불길이 솟고있다.

그 불길을 세여본다.

이미 선왕 정강왕 초년(886년)에 한주(지금의 광주)의 이찬 김요의 반란은 셈에 넣지 않고라도 현왕(진성녀왕)에 이르러서도 사벌주(상주)의 원종, 애노, 죽주의 기훤, 북원의 량길 그리고 시골출신의 무인으로 서남해변 어느 고을 비장으로 있는 견훤 등 모두 심상치 않다. 그런데도 조정은 이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서울인 경주에 몰려 권력싸움만 일삼고있다. 가관은 저희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면서도 백성들에 대한 조세독촉과 수탈은 여느때보다 더 악착스러운것이다. 하긴 자고로 통치배들의 정치라는것이 백성들을 괴롭히는것이지 리득을 주는것이란 없다. 무리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 호상관계를 공평하게 조정하고 외부로부터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으며 또 보다 능률적으로 삶의 터를 마련하기 위해 생겨난것이 정치, 권력이라는것이지만 이런것이란 묘하게도 불로소득의 꿀통이요, 그 꿀통에 일단 빠지면 정치와 권력의 근본출발점은 없어지고 오로지 립신출세, 부귀영화만 추구하게 되는것이 어쩔수 없는 사실이다. 무슨 왕이요, 충신이요 하는것이 겉으로는 곧잘 백성을 위한다고 들먹거리지만 그건 말짱 거짓말이고 실지는 다 자기의 입을 달콤하게 하고 자기의 배를 불리우자는것이다.

요컨대 벼슬아치들에게 있어서 남을 위한 정치란 없으며 오직 자기를 위한 정치밖에 없다는 말이다. 백성은 땅과 자연을 수단으로 하여 살아가지만 왕이나 벼슬아치들은 백성을 수단으로 하여 살아간다. 물론 어진 임금, 충신렬사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왕권의 력사에서는 새발의 피요, 희귀한 사적이 되여버리고만다. 흉년에 뱀이 조이삭에 달라붙는다고 한다. 조세수탈이 악착스러워지는것은 란세의 시작을 알리는 뿔나팔소리다. 물론 그렇게 짜낸 백성의 피와 기름은 서울까지 올라가기 만무하고 이래저래 주, 군, 현에서 쥐 소금녹이듯 사라진다. 그것이 누구의 배를 불리우는가 하는것은 뻔하다. 배군들은 배에 숨어살던 쥐를 보고 저희들의 배가 어떻게 되는지 안다고 한다. 쥐들은 출항한 배가 깨지는걸 어떻게 아는지 배에서 뭍으로 달아난다고 한다. 란세에 이르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지방 벼슬아치들이 다 쥐새끼들로 제일먼저 변해버린다. 그 쥐들은 사람에게 달려들어 온갖 병을 퍼뜨린다.

고마는 낮에 만났던 현령 집사의 잡아먹을듯 한 행패를 보면서 물큰 풍기는 이 나라의 썩은 냄새를 역하게 느꼈다. 이건 늙은이냄새인가, 아니면 시체에서 나는 냄새인가?

현령 집사는 고마가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호장을 앞세우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한다는 소리가 납세독촉이다.

고마는 려장을 풀기도 전에 발뒤축에 묻어들어오는것도 그래 또 그 흔해빠진 안부인사쯤도 건늬지 않는 그들의 행실도 그래 은근히 속이 끓었다.

아무리 하치않은 사람이래도 《잘 다녀왔느냐?》 하는 말 한마디 먼저 하면 입이 부르튼다더냐.

고마는 자기의 안부인사는 하늬바람에 날리는 집사며 호장의 꼴이 비위에 몹시 거슬렸다.

너희들은 사람알기를 어떻게 아느냐, 양순하다 못해 어리석기까지 한 백성들, 농군들을 너희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내 모르는바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인사불성일줄이야… 상전앞에서는 고양이앞의 쥐처럼 오금을 발바르르 떨면서도 조금이라도 눈아래 보이는 사람이면 갖은 행악을 다 떨며 몸살나 하는 이런 무리들, 내 비록 근근히 땅부쳐먹으며 삼캐서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너희들 같은 소인배들을 어찌 섬겨바칠것이냐.

하지만 고마에게 괴로운것은 이런 속물들을 시원히 짓밟아버리지 못하는것이다. 짓밟아버리기는커녕 그들을 가긍하게 보아줄수도 없는 처지를 생각할 때면 한숨이 나왔다. 무거운 짐을 졌을 때처럼 옷섶에 기여다니는 이를 자끈자끈 잡아죽일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기도 괴로운 심정을 자주 느끼는 고마였다. 호걸도 못되고 그렇다고 무지렁이도 아닌 바로 그런 처지가 그를 괴롭히는것이다. 집사와 호장을 대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평상시의 그 답답함에 더해 뚱딴지같은 납세소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이 사람아, 4월에 낸 삼가지고 한해 조세를 탕감할셈인가? 생각이 짧네그려!》

집사가 제법 고마를 나무란다.

《무슨 놈의 세가 그렇게 마파람에 돼지불알 놀듯 변덕이 많소이까? 이건 붙이는게 조세요, 시키는게 용(부역)이요?》

고마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기가 또 공연히 이런 속물들을 상대해서 투덜거린다고 자책했다.

이런 사람들 즉 호장이나 집사처럼 상전이 하라면 찍빽소리 한번 못하고 그대로 백성들에게 닥달시키는 족속들은 그저 가련하게 웃어주어야 하는건데… 그런데 고마에게는 그런 대범한 웃음이 좀처럼 피여나지 않는다. 안 그런다 하면서도 이런 속물들이 하는 소리에 건건이 뾰죽이를 세우는것, 이 또한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나도 같고같다. 무슨 손해나 피해가 있지 않을가 늘 안절부절 못하는 그런 성미를 가지고 이 세상 어이 살랴.

《털어놓고 말해서 이 호장이나 내가 자네를 얼마나 돌봐주었나? 남들처럼 부역을 꼬박꼬박 내보내는가, 조목조목 조세를 받길했나? 그게 다 자네가 동네는 물론하고 우리 현의 얼굴을 내는데 긴요한 삼을 제때에 바쳐주는 보답이 아니겠나. 헌데 여태 잘하다가 이따금 이렇게 뒤틀어진 소리를 할 때면 들었던 정마저 싹 사라지네그려, 참…》

집사가 제편에서 서운해한다. 혀바닥에 뼈가 없어서인가?

《하여튼 이번엔 빈손이니 낼수 없소이다.》

고마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려고 애쓰며 말했다.

집사와 호장도 고마의 차림새나 행장을 보아서 그런줄 알았다. 그래도 오금을 박았다.

《이달 마지막까지는 어떻게든 해야겠네.》

《삼캐는 일이 마음먹은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이까.》

고마의 대답에 집사는 화가 동해 따졌다.

《그러니 안하겠다는건가?》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지요.》

《그것도 말이라고 하나?! 하겠다고 생각만 있으면야 삼캐는 동료들의것이라도 빌릴수 있지 않겠나. 원, 사람이…》

《당치않은 소리웨다. 난 이미 할 도리를 다했는데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남의것까지 빌려가며 삼을 바치겠소이까.》

그 삼이 누구를 위해 쓰일 삼인가 하는것까지 따지고싶었지만 뻔한 일을 꼬집으면 또 이것들이 악을 박박 쓰며 소란을 피울것 같아 고마는 꿀꺽 삼켜버렸다.

조세를 턱대고 받아들이려는 삼, 그것은 분명 군이나 주, 어느 벼슬아치가 착복하든지 아니면 더 우에로 게바라올라가기 위해 바칠 진상품으로 쓰일것이 뻔한데 그걸 알면서도 꿍꿍 바칠 내가 아니다. 그렇게 어리석게 살바에는 차라리…

《듣나 먹나? 이달말까지야. 만약시 그때까지 안되면 현령나으리가 자네를 곱게 놔두지 않는다는것만 알아두게, 괜히…》

집사와 호장은 으름장을 놓고 가버렸다.

그들의 으름장이 결코 빈말이 아닐것이다. 권세란 말짱하니 아래사람들에게서 무엇이든 빼앗기 위해 있는것으로 돼버린 세상이다. 한마디로 란세다. 이런 란세에 그 무슨 옳고그름을 따지는것이야말로 어리석은자다. 이런 란세에는 죽어버리든지 아니면 달아나 숨어버리든지 하는 길밖에 없다. 시원하게 싸우는 길도 있지만 그것은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두고봐야 한다.

고마는 입술을 깨물며 한쪽으로 돌아누웠다.

밖에서 인기척이 또 났다.

《고마 있나?》

고마는 몸을 일으켰다.

《누구요?》

《나요, 거마리요.》

《아, 들어오시오이다.》

턱이 뾰족한 중년이 들어왔다.

고마는 광솔에 불을 달았다.

《있었구만. 자네가 왔다는 소리는 낮에 들었지. 한데 두루…》

《거마리》라는 좋지 않은 별명이 붙은 사람이 중언부언했다. 그는 고마의 삼을 거간하여 리득을 보는 사람이였다.

《이번 행보에 수고가 많았겠네.》 하며 《거마리》가 입에 웃음을 담았다.

《고맙소이다.》

《고맙긴, 나야 자네에게 명줄을 걸고 사는걸. 헌데 저녁은 했나?》

《먹고싶은 생각이 없어서…》

《허, 그러면 쓰나. 그런줄 알았으면 뭘 좀 차려가지고 오는걸…》

《생각만도 고맙소이다.》

《갔던 일은 어찌되였나?》

《뭘 말인가요?》

《아따, 늘 하는 일 가지고 뭘 그러우? 그래, 어떻게 됐소? 물론 잘됐겠지?》

《삼 말인가요?》

《그거 내놓구야 뭘 더…》

《이번엔 빈손이오이다.》

《거마리》가 비죽이 웃는다.

《헤, 무슨 말같지 않은 소리. 고마가 언제 빈탕한적 있나? 동네 개구쟁이들에게 물어보소구려. 자, 그러지 말고 시원하게 내놓소.》

《참, 못 잡았다고 하지 않소.》

《그게 사실이요?!》

《사실 아니면 내가 언제 거짓말합디까?》

《그럼 난 어찌라우?》

《글쎄…》

《차, 이래놓으니… 내 고마를 철석같이 믿고 이미 사람들과 다 계약을 해놓았는데 이제 와서 발칵 뒤집어놓으면 어찌라는거요?》

고마는 어처구니없어 피식 웃었다.

《거마리》가 고마를 쏘아보았다.

《정말 못 잡았소?》

고마는 외면하고말았다.

《거마리》의 낯빛이 새파래졌다.

《그럼 좋소. 대신 아무거나 내놓소!》

고마는 생억지쓰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별소릴 다 듣소. 내가 언제 빚졌소, 물건을 가져갔소? 설사 삼을 잡았다 하더라도 그 임자야 나지 당신이요?》

고마는 입을 다물고 동창을 바라보았다.

《거마리》는 입을 실룩거리다가 버럭 화를 냈다.

《빚을 지지 않았다는데, 나로 하여금 응? 계약을 하게 해놓고는 이제 와서 딱 자빠지니 그게 빚이 아니고 뭐요?》

《무슨 얼토당토않은 억지요? 난 삼을 팔아달라고 한적도 없고 무슨 계약을 하라 말라 한적도 없소.》

《그러니 안 내놓겠다는거요?》

《별일 다 봅니다. 말은 바른대로 안 내놓는게 아니라 못 내놓지요. 어디 있어야…》

《거마리》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서발막대기 휘둘러도 거칠것 없는 방안, 있다면 웃방에 놓인 책상과 그 옆시렁에 무둑무둑 쌓여있는 책들뿐이다.

《거마리》는 오드득 이를 갈았다.

《할수 없지…》

돌아서서 손을 털던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길이 책에 닿았다. 《거마리》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어쩌자는거요?》

《고마가 책을 아끼는줄 내 안다. 일단 고마가 날 난처하게 했으니 나도 가만있을수 없소.》

《거마리》는 시렁우의 책에 손을 뻗쳤다.

《여보시오, 무슨짓이요?! 책을 가져서는 뭘 하자는거요? 그건…》

고마는 책을 빼앗았다.

《이것봐라, 손찌검을 한다?》

《거마리》는 비칠거리다가 씹어뱉았다.

《내 이때껏 그런줄 몰랐더니 당신 너무하구려! 삼을 잡을수도 있고 못 잡을수도 있는데 이렇게 야료를 부려야 옳소?》 하며 고마는 《거마리》앞에 우뚝 섰다.

《개수작말아!》

《거마리》의 손에서 비수가 번쩍이였다.

고마는 몸을 피했다. 비수는 뒤벽에 쿡 박혔다.

이번에는 머리가 날아들었다. 고마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몸을 뒤채며 발꿈치로 《거마리》의 턱을 내리쳤다. 우직소리가 둔하게 나더니 《거마리》는 옆으로 나떨어졌다. 곧장 거품을 물고 사지를 떨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여전히 광솔불이 타고있었다.

고마는 죽은자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벼슬아치나 구실아치들이 포악한건 그런대로 보아넘길수 있다. 그런데 순진하고 선량하던 백성들까지 포악해졌다. 그러니 신라는 이제 망한다. 그렇다면? …

밖에서 또 소리가 났다.

《거마리!》

고마는 긴장해졌다.

《여, 거마리! 뭘 하는거야? 그래 삼을 얻었나? 혼자서 꿀꺽하자는게 아니야? 좋지 않아…》

고마는 재빨리 깨달았다.

(거마리가 오늘따라 짝패를 모아왔구나.)

토방에서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거마리, 뭘 해? 심마니를 죽였나?》 하며 웬 놈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고마는 그자의 눈을 후려쳤다. 억크- 소리를 내며 벌렁 나가떨어졌다.

고마는 달려나갔다.

《서라! 저놈 잡아라! 살인이다!》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뒤따랐다.

고마는 그냥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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