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 회)
2. 산삼캐는 사나이 풀빛은 늘 좋다. 거기에는 고요한 생명이 깃들어있다. 그래, 떠들썩하지 않아도 고요한 그리고 부드러운 생명이…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심호흡을 크게 세번 했다. 느슨히 잔등을 땅에 댔다. 밋밋하게 자란 엄나무줄기를 따라오르면 푸르른 하늘이 보인다. 귀기울인다. 조용하다. 꺼리는 물소리, 맹수소리는 없었다. 아주 멀리서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릴뿐이다. 냄새를 맡는다. 싱그러운 숲의 냄새, 거기에는 해묵은 락엽과 쑥, 창출 그리고 버섯, 이끼의 냄새가 어울려있었다. 후두둑 가슴이 뛰였다. 《잡힌다!》 온몸으로 짜릿한것이 퍼져간다. 가만, 가만. 이런 때일수록… 머리를 돌려 가늘고 연하지만 껑충해보이는 풀대, 그 잎사귀들을 살펴보았다. 풀잎엔 아직 마르지 않은 이슬이 반짝거렸다. 그건 아니다. 산삼의 잎사귀는 이슬이 반짝이지 않는다. 하나, 둘… 꼼꼼히 풀잎들을 살핀다. 없다. 그러면… 다시 머리를 조심히 돌렸다. 열발자국쯤 되는 곳에 눈길이 머물자 다시금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잡았다! 뚫어지게 그쪽을 살피며 웃몸을 일으켰다. 눈길을 헤뜨려서는 안된다. 그래, 그래… 오, 삼. 산삼! 신령스러운 삼이여! 무릎걸음으로 기여간다. 마침내 보았다. 산삼이다. 그것도 여느 토삼따위가 아닌 바위틈에 사는 석삼이다. 신령이시여, 고맙소이다. 두손을 마주하고 고개를 숙인채 마음속으로 절했다. 돌부처마냥 한사발 물을 다 마실만큼 정배하였다. 이윽고 삼바 감은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쑥우린 물을 뿌린 주머니를 끌러 거기서 참대가치 몇개를 꺼냈다. 참대가치를 가늠해보는데 아뿔싸! 그뒤로 문득 떠오르는 얼굴, 해볕에 타고 며칠 세수를 못한듯싶은 그 얼굴, 입귀에 붙은 허연 보리밥알을
손바닥으로 쓸어 입에 넣으며 하는 말.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구 이제 이 나라 신라도 다됐지 뭐야. 글쎄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치마입은 나인이 왕이 되냐 말야, 쯧쯧…》 신라 51대왕 만을 두고 하는 소리. 이 왕의 행실이 자못 해괴하다. 행실이 좋지 못하여 각간 위홍과 내통하여 궁중에 미모의 소년을 두고 음행을 일삼고 뢰물을 받는 등 기강이
해이되기 시작했다. 지방의 조세는 걷히지 않고 그렇게도 거미줄치듯 몇겹으로 쳐놓아 철통같다던 6정, 10정, 9서당, 5주서, 3변수당이니 하는 군사조직망이 흐물흐물해졌다.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남무망국 찰니나제 판니판니 소판니 우우 삼아간 부이 사바하》 하는 다라니은어(불교의 은유)가 시중에 떠돌았다. 워낙 상문(불교)에서 하는 념불이니, 진언이니 하는것이 무슨 뜻인지 딱히 알지 못하는터라 이 다라니은어도 역시 그러하겠지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걸 들으면 남무망국이 어쩌고저쩌고하는것은 녀왕과 그 측근들이 나라를 망친다는것이다. 즉 찰니나제란 녀왕을 가리키는것이요, 판니판니 소판니란 소판이 세번째 벼슬등급이니 판니판니면 두 대신을 가리키는 말이요, 우우 삼아간이면 아간이 6급벼슬이니 그 세명을 가리키는것이요, 부이란 부효부인인 녀왕의 유모 즉 위홍의 안해를 가리키는 말로서 이들이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것이다. 녀왕이 가만있을리 없어 다라니은어를 퍼뜨린 주모자를 잡았는데 그게 대야주(합천)에 있던 왕거인이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실지로 왕거인이 은어를 지은것은 아니였다. 그리하여 왕거인은 자기의 억울한 심정을 글에 담아 옥의 벽에 썼는데 그 글이 자못 절절하고 심상치 않아 왕은 거인을 내놓았다. 또 다른 은어도 떠도니 《도파 도파 지리다도파》이다. 그 내용인즉 《세상리치에 밝은 사람들 죄다 땅을 떠나 떠도네 나라가 장차 망하리 나라가 장차 망하리》라는것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 살았으면 죽기마련이라는 흔한 리치가 마침내 이 나라 신라에 닿았단 말인가. 아니면 《죄는 지은데로 간다.》는 어딘가 부처님말 비슷한 필연의 리치인가. 신라가 바다건너 당나라와
야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그 죄를 비로소 받는단 말인가. 그건 어딘가 억지가 있다. 그때로부터 2백여년이 흘렀는데 한 나라 력사가 2백년이면 결코 적은 세월이 아니다. 그렇다고 영 무관하지는 않을것이다. 죄는 분명 죄로되 그 갚음은 하늘이 하는것이니 어찌 속세의 인간이 알겠는가. 하여튼 이 51대왕으로써 신라가 멸망한다는 장담은 하지 못한다. 아직 두고보아야 한다. 멸망할것 같던 그 숱한 내외란들이 어디 한두번이였다고. 하지만 분명 란세가 닥친것만은 사실이다. 여느때와는 다르다. 이 란세에 나는 어찌할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참대가치를 들고 엉뚱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퍼그나 시간이 흘렀다. 벌써 해는 바로 머리우에 떠있었다. 캐야지, 삼을. 참대로 조심히! 산삼을 캐는데는 쇠붙이를 쓰지 않는다. 가만! 쇠붙이를 쓰지 않는다고? 쇠붙이라, 그럼 분명 금? … 신라가 금덕을 입는다? 그렇다면 삼을 캐는데 나무를 쓰는건? 나무라… 그러면 동쪽을 의미하지 않나. 내가 지금 석삼을 잡는것은 무슨 계시일가? 석삼, 뿌리가 희다. 희다면… 산삼의 주위를 헛돌던 손이 멎어섰다. 내가 딴 생각을 하는구나. 삼을 캐면서 딴 생각을 했어. 불길한 징조다. 안되겠다. 삼을 캐다가 부러뜨릴수 있다. 그러면 갖가지 짐승들이 향내를 맡고 달려들게다. 안되겠다. 석삼, 흰뿌리석삼은 보았건만 끝내 캐지는 못하겠구나. 이런 변이라구야… 맥이 빠졌다.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주머니에서 오갈피나무를 태운 재를 꺼내 뿌렸다. 서글펐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가? 목욕재계 안했던가, 아니면 육붙이를 먹었던가. 아니, 쑥우린 물로 온몸을 씻었고 옷도 빨았다. 비린것은 안 먹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잘못했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