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2 장
6
사고심의회의에서 깊은 충격을 받은 봄향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줄곧 명도와 은별에 대한 생각을 했다.
은별이네 가정과 자기네 가정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제대된 딸이 간석지건설장으로 오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인 명도의 가슴은 알찌근했을것이다. 그러나 명도는 단순히 한 아버지이기 전에 간석지건설을 책임진 국장으로서 사랑하는 딸을 험지에 내세우는 용단을 내렸다. 여기에 선군시대의 일군인 명도의 사상적높이가 있었고 인격적높이가 있었다.
그러나 자기는 과연 어떠한가.
자기가 간석지건설장을 자원한것은 은별이처럼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치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물론 직책상임무가 있지만 대학기간에 초고를 썼다가 기각된 간석지건설론문을 완성하여 실패를 만회하려는데도 그 목적이 있었다.
들끓는 전투현장의 복판으로 들어설수록 봄향은 자기의 그 생각이 부질없는것이였으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서푼짜리 욕망에 지나지 않았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간석지에 대한 론문, 여기에는 건설자들의 순결한 마음과 지향과는 거리가 먼 개인의 명예와 저락된 인격을 회복하려는 갈망만이 깔려있을뿐이였다.
현실적감각에 눈을 뜬 봄향이의 심리적동기는 어쨌든 아버지는 간석지건설장을 자원한 자기를 어떻게 대했던가. 물론 아버지가 동의한것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공민적자각에 기초한 그 어떤 책임도 없었으며 모든것을 무관하게 대하는데 습관된 타성이 있을뿐이였다.
사실 도흥은 간석지건설에 대한 신심이 부족한것처럼 생활을 대하는데서도 책임적인 감각이 부족하였다. 도흥은 간석지건설장으로 달려나온 봄향의 지향이나 리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딸이 고집을 부리니 마지못해 동의는 했으나 때가 되면 이미전에 말을 떼놓은 무역성에 있는 총각과 짝이나 무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면서도 안온한 생활이 아니라 간석지건설장에 뛰여든 딸을 대견하게 여기고있는터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다른 일군들의 자식들과는 달리 봄향은 대자연개조의 제1선에 나서지 않았는가. 이것이 도흥에게는 은근한 자부였으며 자기의 발언권을 높여주는 위안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봄향이가 가끔 지청구를 해도 오히려 그것을 기특하게 여기고있는터였다.
자기의 생활을 새로운 눈으로 투시해보게 된 봄향에게 있어서 이 모든 일치는 자격지심을 낳는 요인이기도 했다.
봄향은 조국보위의 임무를 수행하고서도 간석지건설장의 준마처녀로 자랑떨치고있는 은별이가 더없이 돋보였다. 같은 일군의 딸이면서도 인생의 리정표가 다른 여기에 봄향이가 품게 되는 자기불만이 있었다.
대학추천을 마다하고 조국보위초소로 떠난 은별이와 대학으로의 진학을 응당한것으로 여긴 자기 사이에는 얼마나 아득한 사상적차이가 있는것인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것은 너무나도 철없는 응석받이의 인생길이였다고 볼수 있었다.…
20만산대발파가 진행된 대계도의 270만산하선장구역은 말그대로 불도가니마냥 끓어번지고있었다. 방금전에 채석장의 버럭량과 막돌총량을 면적상으로 계산해보고난 봄향은 가차도채석장으로 건너가기 위해 제방길에 올라섰다.
이른봄이라고 하지만 바다날씨는 여간 맵고 쌀쌀하지 않았다. 먼 수평선쪽에서 불어오는 차거운 바람이 봄향의 솜옷안으로 스며들었다. 처음 솜옷을 입고나섰을 때 얼마나 창피하고 어색했던가. 모양도 없고 둔하게만 느껴지는 솜옷을 입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짓던 일이 부끄럽게 생각되였다. 처음 간석지건설장에 왔을 때는 자연도 사람들도 어울리기 힘들게만 느껴졌고 낯설게만 생각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먼 옛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인제는 자기도 간석지가 낯설지 않았고 사람들도 생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겹게만 생각되였다.
봄향의 눈길은 흐릿한 하늘가에 가 멎었다. 구름발이 무겁게 드리운 하늘과 잇닿은 수평선이 입을 다물고있는것으로 보아 래일의 날씨가 변덕을 부릴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얼음버캐가 녹아버린 방파제를 검푸른 파도가 사정없이 후려갈기고있었다.
3호개고에 이른 봄향은 날렵하게 기관선에 올랐다. 가차도로 건너가자면 그 기관선을 리용해야 했기때문이였다. 이제 가차도채석장의 막돌량을 실측하자면 아마 하루해가 꼴깍 넘어갈수도 있었다. 가차도쪽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속에 섞인 봄향은 갑판에 선채 파도사나운 바다를 바라보고있었다.
이때였다.
봄향이를 찾는 남자의 웅글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계도에서 넘어오시오?》
그는 가차도계선을 맡고있는 기술부기사장 성민이였다. 체격이 굵직굵직하고 해볕에 얼굴이 탄 그는 봄향이에게 정겨운 시선을 보내고있었다.
《예, 그런데 여긴 어떻게?》
《형편을 좀 보러 왔댔소. 이쪽친구들과 손발을 맞추어야 할게 아니요.》
공사가 진척되지 않아 어지간히 속이 상한 모양이였다.
성민은 궁금한듯 이렇게 물었다.
《대계도에선 막돌을 얼마나 떨구었습디까?》
아마 성에서 락광량을 실측하고있다는 소문을 어디에서 들은 모양이였다.
《락광량이 19만톤은 될것 같아요.》
머리를 끄덕이던 성민은 제잡담 《괜찮구만.》라고 하더니 《아마 우리쪽은 대계도보다 더 많을거요.》 하고 장담해나섰다. 가차도계선지휘관이니 은근히 승벽심이 작용한것 같았다.
《그래요?!》
봄향은 성민이의 말을 긍정해주고나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관선에서 내려 가차도로 뻗어간 제방길에 올라선 봄향은 성민이와 헤여졌다.
성민은 마침 막돌을 부리고 돌아서는 화물자동차를 잡아주었다. 그 화물자동차를 타고가 내리면 가차도채석장이였다. 화물자동차는 채석장을 향해 달리고있었다.
문득 배낭을 지고 걷고있는 한 처녀가 봄향이의 눈에 띄웠다. 뒤모습을 보니 은별이가 분명했다. 어디로 가는 길일가? 배낭을 진걸보니 먼길을 가는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그를 한번 만나려고 결심하고있던 봄향이였다. 그는 운전사에게 부탁했다.
《차를 세워주세요.》
《채석장엔 안 갑니까?》
《안됐어요.》
화물자동차가 멎자 운전칸에서 뛰여내린 봄향은 운전사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화물자동차가 떠나가자 봄향은 앞서걷고있는 은별을 소리쳐불렀다.
《저, 이봐요.》
그러나 은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리를 수굿하고 걷기만 했다. 안달이 난 봄향은 은별을 소리쳐불렀다.
《은별동무!》
그제서야 걸음을 멈춘 은별은 웃음을 짓고 다가오는 봄향을 의아해서 바라보는것이였다.
은별은 초롱초롱한 눈길로 봄향을 알아보자 의문을 풀며 더욱 생기를 띠였다.
《책임부원동지군요. 류봄향, 옳지요? 호호…》
은별은 오히려 제켠에서 반색을 하며 봄향을 반갑게 맞았다.
봄향은 어리둥절해서 은별을 치떠보았다.
《아니, 내 이름은 어떻게?》
은별은 눈부터 새물 웃더니 장난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사람들치구 책임부원동지를 모를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도 가차도도갱건설때 장미가시한테 찔렸는데요 뭐.》
개방적인 은별의 성격이 그대로 스며있는 말이였다. 그 바람에 봄향은 목을 사리며 소리내여 웃었다.
《은별인 뭐야, 초면에 장미가시라구…》
《지나쳤으면 용서해요. 하지만 숨길거나 있어요? 난 장미가시가 나쁘지 않다고 봐요. 덜퉁한 사내들에겐 그 맛이 제격이지요 뭐, 호호…》
은별의 이 말에 봄향은 또다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하지만 장미가시가 들어가지 않는 사내도 있어.》
은별은 봄향의 말의미를 따지며 잠시 말이 없더니 직방 찔렀다.
《기사장오빠 말이지요?》
봄향은 은별이 대뜸 자기의 속마음을 넘겨짚는 바람에 얼굴부터 붉혔다.
상대방의 마음을 스스럼없이 끌어당기는 견인력과 인간적인 그 매력, 봄향은 은별이로 하여 마음이 순간에 밝아지는것 같았다.
그들은 가차도쪽으로 뻗어간 제방길을 따라걸으면서 녀성들의 세계에서 속살거렸다.
봄향은 은별의 입에서 기사장 말이 나온것이 미심쩍었다.
《내 말의 대상자가 기사장인줄 어떻게 알았어?》
은별의 입가에는 장난기어린 웃음이 남실거렸다. 그는 군사술어까지 써가며 말했다.
《말을 들었지요 뭐. 1대1공방전이라나…》
봄향은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꼈다.
(1대1공방전이라구?)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고 생글거리는 은별이의 눈길이 불로 지지는것처럼 따갑기도 했다. 봄향은 은별이 따지듯 묻는 바람에 제정신을 차렸다.
《책임부원동지, 내 생각을 말해보라요?》
《뭔데.》
《책임부원동진 기사장오빨 사모하고있지요?》
《얜, 너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은별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봄향을 놀려댔다.
《난 못 속여요. 그 눈에 다 씌여져있는데요 뭐.》
봄향은 은별이가 정통을 찌르는 바람에 점직한감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그 말이 옳은것 같기도 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다투고 헤여지면 줄곧 그에 대한 생각만 하고… 과연 그런게 사랑일가?
은별은 빨갛게 물든 봄향의 얼굴을 재미있게 바라보다가 제잡담 이렇게 말꼭지를 뗐다.
《아마 책임부원동지와 같은 고급하고 세련된 처녀들에겐 열정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기사장오빠가 제격일거예요. 하지만 열매를 맺기는 조련치 않을거예요.》
봄향은 은별의 이 말이 지나치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르다고 반박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머리를 저었다.
《은별인 억측하고있어. 난 그런 감정에 빠질새가 없단 말이야. 나에게 제일 급한건 여기 간석지사람들과 호흡을 같이하는거야. 난 이 간석지를 너무도 모르고있었어. 그래서 기사장동무와도 다툰거구.》
봄향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 말에 은별은 갑자기 심각해졌다.
《나도 그 말엔 공감해요. 간석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이는 우리 청춘들의 사랑도 가치가 없지 않을가요?》
봄향은 은별의 소박한 말을 들으며 자기와 기사장사이의 문제가 사람들에게 애정관계로 인식되고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쩐지 그것을 부정하고싶지는 않았다.
봄향은 모처럼 은별이를 만났던 기회에 자기가 알고싶었던 문제들을 말해보고싶었다.
《은별이, 은별인 교원대학추천도 마다하고 군복을 입었다지?》
《그게 뭐 신비한거라구, 조국보위야 우리 청춘들의 응당한 의무가 아닌가요. 난 어려서부터 간석지일에 몸을 적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세상에는 꿈이나 리상보다 더 귀중한것이 있다는것을 깨달았어요.》
봄향은 은별이 돋보였다. 자기와는 사고의 기초가 근본적으로 달랐던것이다.
그래서 제대되자마자 간석지에 뿌리를 내렸구나. 그런데 난… 아버지가 훌륭하니 그 딸도 갈데 없는거야.
봄향은 감동에 목이 메여 이렇게 말했다.
《사고심의에서 은별이에게 처벌을 준것도 그래. 그건 국장동지가 자신에게 내린 처벌이였어. 마음속 탕개가 풀릴것 같아 자신에게 말이야. 은별이, 위급한 그 순간 도갱으로 뛰여들 때 뭘 생각했니?》
은별은 쑥스럽게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대꾸했다.
《난 그때 누구든 육탄이 되여야 해, 그게 나자신이다. 이렇게 생각했을뿐이예요.》
그 말을 듣고 봄향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눈물을 머금고 《훌륭해, 정말 훌륭해.》 하고 격찬하며 은별을 와락 부둥켜안았다.
그는 은별이에게 이렇게 속삭이였다.
《나이상으로는 내가 언니벌되는지 몰라. 하지만 투쟁과 생활에선 네가 선생이야. 앞으로 많이 배워줘.》
은별은 감동이 어린 시선을 들어 눈물을 흘리고있는 봄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마세요. 책임부원동지는 여기에 온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있어요.》
봄향은 손수건으로 은별의 눈굽을 닦아주고나서 자기도 눈물을 닦았다.
그들은 어느새 가차도채석장어구에 이르렀다.
봄향은 은별이와 헤여지는것이 아쉬웠다.
《우리 저리 좀 갈가?》
봄향이 가리킨 곳은 도래굽이의 바위터였다.
음산하던 하늘에는 구름이 걷히고 해빛이 파도에 곱게 실리였다. 이글거리는 해는 금시 수평선과 맞닿으려 하고있었다. 물과 공기와 대지의 청신한 숨결이 한껏 느껴지는 시각이기도 했다. 두 처녀는 도래굽이의 바위터에 나란히 앉았다.
봄향은 정겨운 시선으로 은별을 바라보았다.
《지금 어디로 가고있는지 묻지도 못했구나.》
방시레 웃음을 짓고난 은별은 서글픈 인상을 지으며 시름겹게 대꾸했다.
《처벌을 받고 뒤선으로 쫓겨가고있어요. 이제부텀 돼지사양공이라나, 호호…》
그들은 즐겁게 웃었다.
봄향은 명쾌하면서도 락천적인 은별을 시샘이 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제대군인 간석지처녀, 얼마나 감성적이고 솔직하며 주저를 모르는 배짱을 지닌 아름다운 은별이인가. 들끓는 간석지건설장이 아니고서는 만나볼수도, 상상할수도 없는 처녀가 아닌가. 그에게는 강단이 있고 소탈한 그의 성격이 질투가 나리만큼 부러웠다.
봄향은 이런 처녀를 어떤 총각이 사랑할가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은별인 애인이 있지?》
은별은 머리를 저었다.
이상한 생각이 든 봄향이가 독촉했다.
《왜 그래? 있니, 없니?》
《지금 선택중이예요.》
《거짓말, 은별이에게 반한 총각이 그렇게도 없을가?》
《난 심장의 박동을 같이할수 있는 사람, 한생 걸음새를 같이할수 있는 반려를 찾고있어요.》
《별로 새롭지 않아.》
《왜요? 그래야 영원히 이 간석지에 뿌리를 내릴게 아니예요.》
이 말은 봄향이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그러니 은별은 간석지총각을 물색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이것이 봄향의 주의를 끌었다.
《누구니?》
얼굴을 살짝 붉히고난 은별은 혀아래소리로 종알거렸다.
《아직은 결심중인데 인격이랑, 지향이랑은 괜찮아요. 굴착기운전공인데 당원이 아니예요.》
봄향이는 실망감을 금치 못하며 은별에게 물었다.
《좀 짝지지 않니?》
《아버진 소문난 혁신자선장.》
《그게 무슨 상관이냐? 본인이 기본이지.》
《하지만 그 역시 강쇠처럼 단련될거예요. 이제 두고보세요.》
봄향은 은별의 그 말을 믿었다. 아무렴, 은별이가 누구라구. 생각에 잠겨있던 봄향은 봄꿩이 제김에 놀란듯 소스라쳤다.
《얘기바람에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구나.》
은별이도 봄향이와 헤여지기가 아쉬운 모양이였다.
《자리잡히면 자주 놀러 갈게요. 승인하지요?》
《승인하다뿐이겠니?》
《그러자요. 그럼 난…》
《얘, 차를 잡아줄게.》
《싫어요. 처벌을 받고 가는 처지에, 난 차라리 걷겠어요.》
고집을 부리며 배낭을 찾아 지는 은별이를 봄향이가 거들어주었다.
은별이와 봄향은 채석장어구에서 헤여졌다.
가차도채석장의 락광량을 실측한 봄향은 성민의 말이 옳았다는것을 깨달았다. 락광량이 정말 20만톤에 가까왔던것이다.
짧은 해가 지고보니 사위는 벌써 어둑시근하고 써늘해졌다.
종일 대계도와 가차도계선을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다보니 봄향의 온몸은 뻐근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보고를 목마르게 기다리고있을 명도를 생각하며 현장지휘부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최근 가차도에서는 장기전이 예견되는 전투장의 실정에 맞게 현장지휘부며 식당, 목욕탕을 새로 꾸리고 야외구호판들도 세웠다.
현장지휘부에 들어서니 명도와 도흥이 봄향이를 기다리고있었다. 봄향에게서 실측자료들을 받아보고난 명도는 흠썩해하며 그것을 도흥에게 밀어놓았다. 그것을 본 도흥도 머리를 끄덕이는것이였다.
명도는 자기를 유심히 바라보는 봄향의 눈길에서 색다른 눈치를 챈듯 시선을 들었다.
《다른 일이 있소?》
봄향은 사실 은별의 문제를 놓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다보니 선뜻 말이 나가지 않았다.
명도는 봄향에게 독촉했다.
《말하오, 뭔지?》
《저, 방금 은별이를 만났습니다.》
《우리 은별일? 어디서?》
《3호개고를 떠나 관리국목장으로 간다던지…》
명도는 할말이 없었다.
그를 지켜보고있던 도흥이 말했다.
《딸을 처벌한 국장동무의 속이 편할리 있겠소만 하여튼 국장동문 나한테 없는것이 있소.》
명도가 도흥이의 말을 잘랐다.
《그 말은 그만합시다.》
명도는 담배를 꺼내여 도흥에게 권하고는 자기도 한대 붙여물었다.
봄향은 담배대를 쥔 명도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것을 감촉했다. 아마도 막냉이딸문제가 그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는것 같았다.
몇모금 담배를 빨던 명도가 봄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우리 은별이가 뭐라고 했소?》
봄향은 뜻밖의 질문에 할말을 못 찾고 얼굴만 붉히다가 이렇게 얼버무렸다.
《돼지사양공일을 잘하겠답니다.》
도흥이 곁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쉽지 않은 딸을 두었소.》
《처장동지의 딸에 비하겠습니까?》
그 말에 봄향은 얼굴을 붉히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이 애야 은별이에 비하면 온실의 화초지요.》
명도는 화제거리를 바꾸며 자기의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특대형철방틀공법이 차판에 걸렸습니다. 아무래두 내가 철도국에 가봐야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몇번씩이나 독촉했는데 왜 그 모양인지 원.》
《자, 밤도 깊었는데 이만 들어갑시다.》
말은 그렇지만 명도는 분명 3호개고로 나갈것이다.
봄향이가 명도를 따라 밖으로 나가려는데 도흥이 딸을 불렀다.
《얘야.》
그들은 채석장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걸었다.
도흥은 마음에 짚이는것이 있는지 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은별이가 섭섭해하진 않더냐?》
《아니요.》
도흥은 어쩐지 기분나빠하는것 같은 딸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였다.
《네 기분이 좋지 않구나. 무슨 일이 있었니?》
봄향은 왜서인지 자기의 속궁리를 아버지앞에 말하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종일 생각한것이여서 그대로 말꼭지를 뗐다.
《전 이번사고심의회의를 두고 생각이 많았어요. 국장동지와 그의 딸 은별이에 대해서 정말…》
그 말에 공감되는것이 있었던지 도흥은 맞장구를 쳤다.
《내 생각도 그 생각이다. 난 네가 여기로 온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동문서답격인 아버지의 이 말은 오히려 봄향의 마음속에 반감만 불러일으켰다. 사실 자기는 은별이와 같은 포부와 리상을 품고 간석지건설장으로 온것이 아니지 않는가. 생각할수록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오히려 그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있는것이 아닌가?
봄향은 갈마드는 수치감과 번열로 하여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앞에서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토설했다.
《저야 일시적인 임무수행을 위해서 또 론문이나 완성하자고 오지 않았나요. 이게 육탄이 된 은별이와 근본이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봄향의 그 괴롭고 통절한 번뇌의 감정이 아버지에게 그대로 전달되는것 같지 않았다.
도흥은 공연히 헛기침을 했다.
《전 정말 여기 와서 새롭게 눈을 뜬 심정이예요.》
《됐다 됐다, 남이 모르는 속심을 가지고 자기를 괴롭힐거야 있니?》
《아니, 그게 아니예요. 아버지나 저나 너무나도 이 간석지를 모르고있는것이 부끄러워서 그러는거예요.》
도흥은 안타까와하는 딸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려주었다.
《그만해라. 아무렴 수도에서 고이 자란 네가 어떻게 여기 사람들 같겠니?》
봄향은 아버지의 생각이 전혀 다른데 가있다는것을 알았다.
《네 생각엔 지금 국장동무가 주장하는 특대형철방틀공법이 꽤 성공할것 같냐?》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리예요?》
《일전에도 내 말했지만 지금이라도 등곶을 따라 마감막이를 에둘러 하는것이 상책일것 같아 그런다. 국장동무가 부득부득 우기길래 내 양보는 했다만 아무래도 힘들것 같아 그런단 말이다.》
《그거야 이미…》
《나도 안다. 하지만 문제를 현실적으로 보아야 할게 아니냐. 에돌든 어쨌든 3호개고만 점령하면 그만이 아니겠니?》
《?…》
봄향은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뜻밖이였다. 그것이 탈선된 생각이라는것이 여지없이 드러났는데 아버진 그 주장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있단 말인가.
건설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우에서 내려온 일군이라는 체면만 붙잡고있는데 원인이 있다. 들끓는 전투현장에서 생활하면서도 그 숨결을 느끼지 못하고 간석지건설에 대한 신심이 부족한데 있다.
아버지는 이 약점을 느낄 대신 건설에 필요한 자재나 보장하는것으로 체면을 유지하려 하는것이 아닌가.
봄향의 가슴속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덧쌓이고있었다. 한편 그것을 아버지앞에서 실토정하지 못하는 자신이 불만스럽기도 하였다.
어느때든 꼭 말해야 해.… 봄향은 이렇게 생각하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