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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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집에 들어온 명도는 안해와 함께 아침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미역국에 숟가락을 가져가려던 명도는 딸을 만나본 소감을 말했다.
《어제 가차도에 갔다가 은별이를 만났댔소. 퍽 상했더구만.》
금선은 가슴이 알알한지 수저를 놓으며 남편을 나무랐다.
《집에 한번 오라지요, 왜?》
명도는 자기의 불찰을 인정하는듯 국물만 떠마시였다. 이상한 낌새를 챈 금선이가 의문을 품고 물었다.
《그 애한테 혹시 무슨 일이?…》
도리머리를 하던 명도는 지나가는 소리로 한마디 했다.
《그 애의 부탁은… 당신이 조개잡이를 그만두었으면 하는거요. 사람들의 뒤말이 있다오.》
그 말에 금선이의 낯빛은 달라졌다.
《그런 말이 돈단 말이지요. 그 애 귀에까지 들어가고…》
이때 전화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명도는 수저를 놓고나서 전화를 받았다.
《그렇소. 나 국장이요. 뭐요? 가차도도갱에서 물이 터졌다구? 내 곧 가겠소.》
송수화기를 놓고난 명도는 다급히 작업복부터 찾아입었다.
금선이는 걱정에 찬 시선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여보, 아침식사는요?》
《먹은것으로 쳐야지 별수 있소?》
명도는 안해에게 너그러운 미소를 남기고나서 토방을 내려섰다.
가차도에 도착한 명도는 성민이와 함께 도갱안에 들어가 마구리들을 훑어보았다.
도갱마구리의 갱벽에서 흘러내린 물이 벌써 웅뎅이처럼 고인 상태였다. 이것은 20만산대발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수 있었다. 전지불로 굴안을 훑어보던 명도가 성민에게 물었다.
《이런 상태에서 폭약을 밀어넣으면 어떻게 될가?》
《이전에도 물이 찬 도갱에서 발파한적이 있지 않습니까?》
명도는 미타한듯 머리를 흔들며 미간을 찌프렸다.
이때 용길이 도갱안에 들어왔다. 아마 기별을 받고 달려온상싶었다.
《어떻습니까? 국장동지.》
《물줄기가 터졌습니다. 이건 갈수록 험산이라더니…》
명도를 대신하여 성민이 하는 푸념이였다. 생각에 잠겨있던 명도가 결심한듯 고개를 들었다.
《뽐프를 설치하고 물부터 뽑소. 기사장동문 대계도로 넘어가오, 인차 발파도 해야겠는데.》
《그런데 폭약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것도 해야지. 이렇게 하기요, 도갱수정을 예견하여 발파를 하루 늦춥시다.》
《알겠습니다.》
명도의 의도를 눈치챈 용길은 도갱밖으로 나갔다. 이어 가차도도갱에는 소형뽐프가 설치되고 갱안에 고였던 물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이때 운섭이 가차도도갱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갱안에서 물을 뽑고있는 명도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이렇게 하면 발파에 지장이 없겠소?》
《충분히 토론했습니다만 두고봐야겠습니다. 참, 대계도도갱상태는 어떻습니까?》
《봄향동무와 함께 돌아보았는데 그만하면 괜찮은것 같소.》
명도는 만족한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한쪽은 먹은셈입니다.》
운섭은 정열에 넘쳐있는 국장에게 나무람조로 한마디 했다.
《그런데 국장동무, 이 당비서도 모르게 막내딸을 로하간석지건설사업소에서 일 시킨다면서…》
뜻하지 않은 충고에 어리둥절해있던 명도는 악의없이 반박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시치밀 떼지 마오, 방금 기사장동무에게서 들었소.》
그러니 결국 기사장에 의하여 사달이 난셈이다. 명도는 하는수 없었던지 실토했다.
《그건 사실입니다. 제대되는 길로 그리로 갔지요. 그러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팔지 않겠다며 3호개고를 막기 전에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구요. 그래서 가정비밀이 생긴겁니다. 용서하십시오.》
운섭은 혀를 차며 감탄했다.
《정말 쉽지 않소, 국장동무. 우린 그런 마음과 마음들을 합쳐 제방을 막고있소. 이것이 일심단결된 우리의 힘이 아니겠소.》
《예.》
명도는 사랑스러운 딸에 대한 자부로 하여 자신을 진정할수 없었다.
(은별아, 넌 이 아버지에게 큰 힘을 주고있다!)
그날 명도는 점심참에 집에 들렸다. 딸의 얼굴을 보아서도 안해가 하고있는 조개잡이를 중단시키기 위해서였다. 집은 비여있었다.
(이 사람이 또 조개잡이를 나간 모양인가?)
명도는 쓴 입을 다시며 안해를 두고 뒤말이 있다던 은별의 하소연을 생각했다. 그것이 구체적인 자기네 집사정을 모르고 한 말이라고 해도 고려하지 않을수가 없다고 여겼다. 명도가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려는데 마침 그의 안해가 배낭을 지고 뒤따라 들어섰다. 금선은 장화가 달린 고무비옷을 입었는데 추위로 하여 입술이며 얼굴이 퍼렇게 얼어있었다. 강추위에 바다가에서 고생했을 안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알찌근했다.
《뭘 그렇게 보세요, 배낭이나 좀 내려줘요.》
명도는 안해에게서 배낭을 받아내리며 떠보듯 말했다.
《여보, 국장녀편네가 돈벌이한다고 뒤말이 돌고있다질 않소.》
《남들이 뭐라든 난 조개를 잡아야겠어요. 내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조개잡이를 하지 않는다는거야 당신도 알지 않나요.》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요. 국장의 낯이 깎이여서 그러지.》
안해의 낯에 일순 어두운 그늘이 비끼였다. 다음순간 그 누구에겐가 울분을 쏟듯 말한다.
《전번날에도 합숙식당에 조개랑 어물들을 보내준것을 당신도 알지요. 일부는 필요할 때 쓰기 위해 말리우구요. 롱담일수도 있는 그런 소리를 곧이듣는 당신도 참…》
《그렇단 말이지.》
명도는 더 있기가 멋적어서 집을 나서고말았다. 그는 주저앉았던 화물자동차들을 되살리기 위한 전투가 치렬하게 벌어지고있는 다사기계화사업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방금전에 야속한듯 울분을 토하던 안해를 생각하니 그의 마음도 개운치 않았다. 한생 남편의 뒤바라지를 하며 아글타글해온 안해를 섭섭하게 해준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안해는 이모저모로 간석지일도 많이 도와주었다. 그 모든것을 긍정해주지는 못할망정 노엽히는 말만 했으니 자기도 꽤 덜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앞에는 문득 안해와 첫 인연을 맺던 일이 떠올랐다.
다사도간석지건설이 마감고비에서 진행되던 어느날 해상굴착기선장이였던 명도는 뜻밖에도 기업소에 들어가 식량을 운반해올데 대한 과업을 받았다. 해상굴착기선장에게 식량운반과 같은 후방물자수송과제가 떨어지기는 처음이였다. 이것은 사실 장불통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는 후방부기관선 선장을 대신하는 일이기도 했다.
명도는 군말없이 기관선에 부선까지 달고 전투현장을 떠나 기업소부두에 와닿았다.
때는 전어철인지라 부두는 물고기를 받으러 나온 간석지마을녀인들로 법석했다. 녀인들은 물이 좋은 전어들을 받아다 말리워 날바다를 막고있는 남편들의 밥상에 올려놓군 하였다.
부두에 배를 댄 명도는 아낙네들의 짬을 빠져 황황히 기업소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술혁신명수인 해상굴착기선장총각이구만.》
《에구, 몸이 다부진게 일깨나 치겠수다.》
《뉘집 처녀를 색시로 맞겠는지 그 집에선 호박이 넝쿨채로 떨어지겠수다.》
녀인들의 말장단에 어이가 없어진 명도는 선웃음을 치면서 기업소후방부로 향했다. 후방부회계실출구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태반이 기업소부업선들이 부리운 전어를 받으러온 사람들이였다. 명도는 전표를 떼느라고 법석하는 사람들 한켠에 서서 자기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회계실유리창안에서는 회계원처녀가 전표를 떼느라고 땀을 빼고있었다.
문득 사람들속에 끼여있던 한 중년사나이가 명도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아니, 명도선장이 아닌가.》
명도는 그가 비단섬영문강개고마감전투때 시공을 보던 사람이라는것을 대뜸 알아보았다.
《오늘 식량운반때문에 뭍으로 나왔네.》
그러자 그 사람은 누구에게라없이 소리치는것이였다.
《자, 전투장에서 식량운반을 나온 선장동무에게 차례를 양보합시다.》
그 말에 출구앞에 모여섰던 사람들이 일시에 량옆으로 물러났다. 명도는 사람들의 이목이 자기에게로 쏠리는 바람에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우물거릴것도 없었다. 그는 출구앞으로 다가가 회계원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작업장에서 식량때문에 왔습니다.》
전표떼기에 여념이 없던 금선이가 생긋 웃으며 명쾌하게 대답했다.
《련락을 받았어요, 잠간 기다리세요.》
격랑과 싸우며 담을 키우고 자연의 광란속에서 강쇠같이 단련된 명도라지만 아름다운 처녀의 밝은 미소를 대하는 순간 후드득 가슴이 뛰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 미소의 따스함과 꾸밈없는 진실감은 억대우같은 바다사나이의 가슴을 순간에 녹여내는 힘이 있었다.
처녀는 그리 크지 않은편이였다. 그러나 살결은 맑았으며 눈에서는 정겹고도 부드러운 빛이 반짝이고있었다. 복스러운 얼굴에는 볼우물이 살짝 패인데다가 약간 벌려진 입술안으로 박속같이 하얀 이발이 가쯘하게 들여다보였다. 아름다운 선을 그린 어깨며 보동보동하게 부풀어오른 손등 그리고 민첩하면서도 잽싼 동작 등은 명도에게 현혹의 감정을 불러왔다.
(정말 괜찮은 처년데…)
문득 시선을 들던 처녀의 눈길과 명도의 눈길이 허공중에서 번개빛처럼 서로 마주쳤다. 명도는 처녀의 눈길에서 호감과 존경의 뜻을 읽을수가 있었다. 이윽하여 출고전표를 떼고난 처녀는 귀엽게 웃으며 그것을 명도에게 률동적으로 내밀었다.
《후방창고에 가세요.》
《고맙습니다.》
아쉬운 감정으로 회계실을 나선 명도는 생각없이 후방부의 계단을 내렸다. 후방창고까지는 얼마 멀지 않았다. 걸음을 옮기던 명도는 10톤의 식량을 인수해오라던 지배인의 말이 생각나서 출고전표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출고수자에는 10.5톤이라고 씌여있었던것이다. 이상한 생각이 든 그는 발길을 돌려 다시 회계실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을 비집고들어선 명도는 단도직입적으로 소리쳤다.
《회계원동무, 난 10톤을 접수해오라는 지령을 받았는데 출고전표엔…》
처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제가 미처 알려드리지 못했군요. 현장에서 0.5톤을 더 보내라는 련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안됐습니다.》
명도는 그처럼 똑똑하고 명민한 처녀가 전표를 잘못 뗄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회계실을 나섰다.
이날 명도는 식량을 성과적으로 접수해가지고 전투장에 도착하였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아름다운 회계실처녀의 인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 처녀의 이름이 김금선이며 나이는 25살, 부모가 다 간석지건설자들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러나 날바다를 길들이고있는 명도에게 있어서 그 처녀는 공중루각처럼 아득하고 멀게만 바라보였다. 그는 처녀와 사랑을 속삭이는 말은커녕 생활적인 이야기도 나누어본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지만 거창한 투쟁과 생활의 흐름은 결코 야속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후 명도는 기업소에서 열린 혁신자축하모임에 참가하여 토론을 하게 되였다. 명도는 어버이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진행되는 다사도간석지건설에서 청춘의 땀과 지혜를 다 바친 자기의 사업경험을 토론하였다.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기 자리로 들어오던 명도는 초불같이 빛나는 한 처녀의 눈길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회계실처녀인 금선의 불같은 시선이였다.
이날 회의가 끝났을 때였다.
명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은 금선에게 자기의 마음을 터놓으리라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맨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회관에서 좀 떨어진 느티나무아래에서 금선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처녀는 나타나질 않았다. 사람들이 다 헤여져 돌아간 다음에야 명도는 누구인가를 기다리고있는 금선이를 발견하게 되였다. 흰 샤쯔에 곤청색주름치마를 받쳐입은 처녀의 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왔다.
《금선동무 아닙니까?》
명도의 이 부름소리에 처녀는 깜짝 놀라며 《어마나!》 하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얼굴을 활짝 붉혔다.
《누굴 기다립니까?》
《저, 전 동물…》
《나를 말입니까?》
명도는 너무나도 놀라 자기의 가슴에 손을 대보기까지 했다, 처녀가 나를 만나려 하다니.
처녀는 얼굴을 붉힌채 만나려는 사연을 설명했다.
《다사도건설에서 발휘된 영웅적사실을 가지고 웅변모임에 참가하라는 사로청(당시)의 분공을 받았어요.》
《난 글을 쓸줄 모르는데, 대신 설명은 해드릴수 있습니다.》
그러자 처녀는 새별같이 빛나는 눈길을 들며 환성을 질렀다.
《야, 그거면 돼요. 그거면 더 바랄게 없어요.》
명도는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진것이 꿈만 같았다. 물론 금선이는 명도의 방조로 사로청조직에서 준 분공대로 종업원들앞에서 웅변토론을 하게 되였다. 이렇게 움터난 그들의 사랑은 그 다음해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여났다.…
그들은 이미 세 자식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였고 인제는 인생의 둔덕에 올랐다고도 말할수 있었다. 금선은 남편과 세 아이를 위하여 언제한번 허리를 펴본적이 없었으며 궂은일, 마른일을 가려본적이 없었다. 명도가 가정일을 잊고 오직 간석지건설에 모든것을 다 바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금선이의 피타는 방조의 덕이였다. 그는 안해와 함께 영화구경을 간적도 없었고 가족들과 함께 편안히 휴식한 날도 별반 없었다. 명도는 오늘날까지도 가정의 무거운 부담을 안해에게 지운것이 죄스러웠다. 그런데 싫은소리를 하다니… 이것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고 괴로움을 더해주었다.
×
용길이가 탄 《갱생》승용차는 대계도를 향해 쏜살같이 달리고있었다. 혹한의 계절이다보니 바깥에서 스며드는 차거운 바람이 뼈속까지 얼구는것 같았다.
아직도 3호개고구간은 여전히 188메터계선에서 자연과의 공방전을 계속하고있었다. 대계도까지 가자면 3호개고구간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다. 현단계에서 대계도와 가차도에서 진행되는 20만산대발파는 공사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요고리라고도 말할수 있었다. 그동안 물망에 올랐던 폭약은 지도국에서 내각에 제기하여 겨우 해결되였다. 용길은 대계도현지에 도착하면 우선 폭약준비사업과 함께 톱밥을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다기슭엔 온통 얼음버캐가 앉았고 수평선너머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은 사람들의 살을 저미는것처럼 맵고도 사나왔다. 여름철에는 쏟아져내리는 장마비와 때없이 덤벼드는 풍랑을 맞받아 제방을 쌓아야 하는 간석지건설자들이였고 혹한의 계절에는 손이 떡떡 마주붙는 기계, 설비들을 다루며 전투를 벌려야 하는 간석지개간자들이였다. 그러나 간석지건설자들은 그 어떤 보수나 명예도 바라지 않고 불사신마냥 자연의 광란을 맞받아나가고있었다.
용길은 대계도도갱일이 궁금했다. 대계도도갱은 가차도도갱보다 뒤늦게 완성되기는 했지만 굴안이 침수되는것과 같은 악조건은 없었다.
대계도 270만산구역에 다달으니 방금 도갱에서 나온듯 한 봄향이가 장송간석지건설사업소 일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차에서 내린 용길은 곧장 봄향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며칠전 발파구멍의 각도를 놓고 다툼질을 하던 기색은 꼬물만치도 없이 봄향에게 흔연히 물었다.
《도갱상태가 어떻습니까?》
봄향은 용길에게 실무적인 어조로 대꾸했다.
《비교적 원만하더군요.》
용길은 봄향의 이 말이 전혀 뜻밖이라는듯 그를 놀랍게 치떠보았다. 장미가시에게서 그런 평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였던것이다. 봄향은 용길이가 의문을 품든말든 자기의 견해를 내비쳤다.
《큰남포승인신청서나 주세요. 수표하겠어요.》
긴장한 시선으로 봄향이를 바라보던 장송건설자들이 서로들 마주보며 기뻐했다.
큰남포승인신청서를 꺼내여 봄향에게 주려던 용길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자기의 립장을 바꾸었다.
《그래도 한번 도갱안에 들어가보겠습니다.》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용길은 자기의 제기가 어색하게 들릴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권고했다.
《함께 들어가보지 않겠습니까?》
봄향은 랭소를 머금고 반발하듯 물었다.
《또요?》
《예, 난 그 비교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겠습니다.》
《좋아요.》
그리하여 용길이와 봄향은 다시금 도갱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갔다. 용길은 이곳 도갱이 습기가 내배는 가차도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한걸음한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봄향이가 조심히 따르고있었다.
이윽하여 막장에 이른 용길은 첫 곁굴에 전지를 비치며 들어갔다. 그다음 그는 다른 곁굴에 들어가보았다.
봄향은 이상하다는듯 머리를 기웃거리는 용길을 긴장하게 바라보고있었다. 용길은 육안으로도 두 곁굴의 차이점을 발견한것 같았다.
《권척이 없습니까?》
《없어요.》
용길은 그에게 권척이 있는것 같은데도 딱 자른다고 생각했다. 호주머니를 더듬던 용길은 《아, 내게 있었군.》 하더니 작업복 웃주머니에서 권척을 꺼냈다. 그것은 10메터짜리 권척이였다. 용길은 그것을 가지고 곁굴들의 길이를 재기 시작했다. 봄향은 못할짓을 하다 들킨 소녀처럼 얼굴만 빨갛게 단채 그의 거동을 유심히 지켜보고있었다.
두번, 세번 거듭 재고난 용길은 아쉬운듯 이렇게 말했다.
《곁굴길이가 차이나는군요. 미안합니다. 책임부원동무에게 단번에 합격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얼마나 차이납니까?》
《70센치메터입니다.》
《만일 그대로 발파한다면요?》
《?…》
용길은 놀라운 시선으로 봄향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봄향이가 곁굴이 짧아진것을 알고있었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한치의 에누리도 모르는 장미가시의 이 호의는 용길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고맙기는 했지만 절대로 그렇게 할수는 없었다. 이게 어떤 도갱인가.
《고맙습니다, 하지만 70센치메터는 고사하고 1센치메터도 허용할수 없습니다. 도갱을 수정하겠습니다.》
봄향은 낯이 확 달아올랐다. 이번에는 양보를 하려고 했는데 용길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것이다. 야속했다. 명백한것은 용길이 옳다는것이였다.
하지만 속은 좋지 않았다. 애매하게 창피를 당한 기분이였다.
용길은 그런 봄향의 심리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것 같았다.
용길은 봄향을 따라 도갱에서 나오자 장송건설기사장을 불렀다. 지금 장송간석지건설사업소의 전투원들은 도갱에 전개했던 설비들을 철수하느라고 법석 끓고있었다.
용길은 자기에게로 다가온 기사장에게 따지고들었다.
《기사장동문 한 곁굴의 길이가 70센치메터씩이나 짧아진걸 알고있었소?》
《…》
《알고있었는가 말이요.》
《마감실측할 때 알고있었습니다. 지난 시기의 경험은…》
《지난 시기 경험이 어쨌다는거요? 동문 눈에 보이지도 않는 땅속이라고 해서 또 발파만 끝나면 그만이라고 해서 얼렁뚱땅하려고 하는데 단 1센치메터도 허용할수 없소. 무조건 도면대로 하시오.》
《알겠습니다.》
기사장은 용길의 날이 선 추궁앞에 선선히 잘못을 시인했다.
언제 왔는지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도흥이 용길을 불렀다.
《기사장동무!》
그제서야 도흥을 알아본 용길이 반색을 하며 인사를 했다.
《언제 오셨습니까?》
《지금 오는 길이요. 도갱상태가 어떻소?》
《저… 우리 동무들이 한 곁굴을 짧게 뚫었습니다.》
《대체 얼마게?》
《70센치메터입니다.》
《70센치메터면 허용범위가 아니던가?》
《아니, 허용할수 없습니다.》
《음, 난 발파날자때문에 그러는거요.》
《날자는 어김없이 보장하겠습니다.》
도흥은 알만 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더니 용길에게 당부했다.
《실수가 없어야지, 하지만 불을 끄는데 깨끗한 물만 필요한건 아니요.》
아리숭한 말을 남기고난 도흥은 차에 올라 가차도쪽으로 달리였다.
용길은 언제인가 도흥처장이 열성은 있는데 3호개고에 대한 신심이 부족한것 같다고 하던 명도의 말이 생각났다.
장송간석지건설사업소 전투원들은 다시금 설비들을 전개하였다.
용길은 이동식압축기며 착암기들을 설치하는 동안 도갱도면을 놓고 발파각도를 연구하고있었다. 이때 그의 등뒤에서 그 누군가의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눈길을 들던 용길은 자기앞에 서있는 봄향이를 띠여보고는 허리를 폈다. 파리한 얼굴에 깔끔한 눈매로 자기를 바라보는것으로 보아 봄향의 감정이 좋지 않다는것이 한눈에 알렸다. 용길은 그에게 더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책임부원동무, 오늘 정말 미안하게 됐소.》
《동무와는 정말 호흡을 맞추기가 힘들군요, 어떤 때는 례외를 바라고 어떤 때는 원칙을 주장하고…》
용길은 처녀의 얼굴에 비낀 반발심을 통하여 봄향이가 자존심의 손상을 느끼고있다는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자존심으로 해결할 문제이겠는가, 하지만 처녀는 자기를 곡해하고있다. 무엇때문에? 원칙을 주장하며 대상의 감정을 무시한다는것인가? 그렇다, 바로 그것때문에 처녀는 자기를 오해하고있는것이다.
용길은 두서없이 자기가 겪은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언제인가 난 추운 겨울날이라고 하여 채 뚫지 않은 도갱에 장진을 하고 발파하게 한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처지와 비슷했지요. 그런데 글쎄 락광량은 절반도 안되였습니다. 난 그때 가슴을 쳤지요. 인정에 눈이 멀어 나라앞에 막대한 손실을 주었으니 그것을 무엇으로 보상한단 말입니까. 후회란 항상 뒤늦게 오는 법입니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이라고 해서 자신을 속이면 이렇게 나라앞에 죄를 짓는다는걸 깨달았단 말입니다.》
봄향은 말이 없었다. 지난날의 쓰라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모지름을 쓰고있는 용길의 진심이 리해되였기때문이였다.
용길은 도면을 거두고나서 자기의 진실한 심정을 그대로 토로했다.
《동무는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동문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그건 바로 탈선을 막는 원칙의 자막대기역할을 하기때문입니다.》
원칙의 자막대기역할? 어쩐지 봄향에게는 이 말이 생소하게 들렸다.
용길은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설혹 오늘 내가 원칙을 흥정하려고 했어도 동문 막아야 했습니다. 그만큼 동무의 존재는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하고 귀중하단 말입니다.》
봄향은 놀라운 눈매로 열렬하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고있는 용길을 바라보았다. 더없이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 얼마나 값높은 말인가. 그에게는 이 말이 친근하면서도 뜨겁게 감수되고있었다. 봄향은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용길이를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저같은걸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셔서…》
눈인사를 하고난 처녀는 하얀 눈우에 발자취를 남기며 그곳을 떠났다. 암반때리는 착암기소리가 련발총소리처럼 도갱쪽에서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