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5
봄향은 대계도계선에서 진행하고있는 도갱건설장에 나가있었다. 장송간석지건설사업소가 주관하고있는 20만산대발파를 위한 도갱건설은 가차도의 도갱건설에 비하여 자기의 일정을 퍽 미달하고있었다.
봄향의 마음을 무겁게 한것은 가차도의 도갱건설은 비교적 자기 궤도에 들어섰지만 대계도의 도갱은 그렇지 못한것이였다. 더구나 대계도의 도갱은 기사장인 용길이가 맡고있던 곳인데 굴진에서나 운반에서 표준조작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있었다. 거기에다 이동식압축기마저 고장이 나서 전투원들이 수굴로 발파를 보장하고있는 형편이였다.
허리를 굽히고 도갱막장에 이른 봄향은 도면을 놓고 발파구멍의 각도를 재여보다말고 손길을 멈추었다. 발파구멍수가 많은데다가 각도도 맞지 않았다. 이상했다. 왜 이렇게 했을가? 그는 착암수에게 소리쳤다.
《착암수동무, 기사장동물 불러주세요.》
발파를 위해 도화선이며 뢰관을 준비하고있던 장송기사장이 막장에 나타났다.
봄향은 얼굴이 넙적하고 안전모를 삐글서하게 쓴 그 기사장에게 이렇게 추궁했다.
《발파구멍을 왜 도면대로 뚫지 않았어요? 발파를 중지해야겠어요.》
그러자 장송기사장은 억울하다는듯 첫마디부터 생고집을 썼다.
《그건 발파효률을 높이기 위해 우정 그렇게 한거요. 새로운 천공방법인데 발파를 중지하다니요?》
두눈을 부릅뜨고 떡떡 맞서는 품이 리유가 당당하다는 자세였다.
그러자 봄향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일축했다.
《작업을 중지하고 원인을 규명해야겠어요.》
장송기사장은 난처한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어린 굴진공에게 한눈을 겁석했다. 어서 가서 용길기사장을 데려오라는 신호였다. 깔끔하기짝이 없는 이 장미가시를 꺾자면 주견이 창대같은 용길이를 내세우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었던것이다.
잠시후 용길이가 도갱어구에 나타났다. 그는 대계도하선장에서 강만조선장과 마주앉아 자동부림배침강방법을 토론하다가 기별을 받고 도갱건설장으로 넘어오는 참이였다. 갱밖으로 나와서도 봄향이와 장송기사장의 론쟁은 계속되고있었다. 봄향에게 몰리우고있던 장송기사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용길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용길은 장송기사장에게 따지고들었다.
《무슨 일이요?》
《저, 우리 동무들이 굴진속도를 높이느라고 발파구멍을…》
용길은 그의 설명이 잘 납득되지 않는 모양인지 도갱안으로 들어가려고 서둘렀다.
한 굴진공이 그에게 안전모와 축전기통을 넘겨주었다. 봄향이도 남정들을 따라 도갱막장으로 들어갔다. 쌀쌀한 바깥에 있다가 도갱안에 들어서니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방금 뚫어놓은 발파구멍앞에 이른 용길은 안전등으로 구멍위치를 비치며 그것을 하나하나 확인해나갔다. 규정대로 뚫지 않은것은 사실이였다. 발파효률을 높인다면서도 뚫어놓은 발파구멍각도는 서로가 제가끔이였다.
용길은 이 일이 장미가시에게 걸린 이상 무난히 끝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기술혁신이라면서 왜 기사장인 나에게 알리지 않았을가. 용길은 머리가 아픈듯 관자노리에 한손을 걸며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는 장송기사장에게 소리쳤다.
《도면이 어디 있소?》
《아직은 착상중입니다, 굴진공들이 시험적으로.》
《무슨 가을뻐꾸기같은 소리요? 그것도 갱을 책임진 기사장의 말인가?》
저지른 잘못이 있는지라 장송기사장의 목은 움츠러들었다.
《나갑시다.》
용길은 제먼저 허리를 굽히고 도갱을 빠져나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장송기사장의 얼굴에는 불안한 빛이 떠돌았다.
봄향이의 생각도 착잡했다. 분개한 용길이 아래일군들을 무섭게 다불러대는것은 전적으로 자기가 들으라는 소리같았다. 이런 식으로 나의 양보를 바라는게 아닐가. 천만에… 봄향은 경계의 감정을 품고 마지못해 용길의 뒤를 따랐다.
이윽하여 도갱밖으로 나온 용길은 갱앞에서 솜옷을 털고있는 봄향에게로 다가왔다. 무엇인가 주저하는 낯빛이였다.
《책임부원동무, 이 일을 어쨌으면 좋겠습니까?》
봄향은 쌀쌀하게 반문했다.
《기사장동문 어쨌으면 좋겠어요?》
차겁기는 했지만 봄향의 이 말은 용길에게 한가닥의 희망을 안겨준듯싶었다.
《방금 발파구멍들을 보니 허용한계에는 들어가는것 같은데.》
《그래서 용서하자는건가요?》
봄향의 이 물음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용길의 가슴을 찔렀다. 용길은 그지없이 매정스럽게 굳어진 처녀의 얼굴표정을 통하여 그가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리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거칠어지는 숨결을 가까스로 억제하였다.
그러나 봄향은 이 모든것을 느끼지 못한듯 지탄의 도수를 높였다.
《이 건설장의 참모장이 대체 누구예요? 그 참모장이 모르는 기술혁신안도 있는가요? 도대체 이런 무법천지가 어디 있어요?》
옳다, 이 비난은 백번 지당한것이다. 현실에 더 깊이 발을 붙이지 못한 자책감이 용길을 괴롭혔다.
이때였다. 장송간석지건설사업소 기사장이 손에 도면같은것을 들고 달려왔다. 그는 봄향의 눈치를 살피며 손에 들었던 도면을 용길에게 내밀었다.
《새 천공에 대한 스케치도면입니다.》
용길은 그것을 받아 펼쳐보았다. 그것은 도면이라기보다 락서장 비슷했다. 미간을 찌프린 용길이 장송기사장을 바라보았다.
《이 기술혁신안의 주인은 누구요?》
이때를 기다리고있던 젊은 굴진공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옛, 장송간석지건설사업소 1직장 굴진공 박태성입니다.》
중키의 다부진 청년이였다. 명민하고 진취성이 강하다는 인상이 그의 눈길에서 발산되고있었다.
용길은 아직껏 새파래있는 봄향에게 량해를 구했다.
《절차가 뒤바뀐것 같은데 설명을 좀 들어보지 않겠습니까?》
《안요, 새 기술혁신같은데 거기서나 들어보세요.》
장송기사장이 그 청년에게 눈짓을 했다. 어서 설명하라는 투였다. 굴진공청년은 땅바닥에 도면을 펴놓고 자기의 착상을 설명했다.
《이건 원래 발파구멍이구 이건 새롭게 천공한 덧발파구멍입니다. 이제 발파해보면 알겠지만 1.5배의 버럭량은 문제없습니다. 말하자면 이 구간의…》
그 청년의 설명에 주의를 집중하고있던 용길은 알만 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착상이 그럴듯해. 정말 대단하오, 대단해!》
그 청년이 물러가자 용길은 장송기사장을 추궁했다.
《말해보오, 누구에게 책임이 있소? 더 많은 락광을 위해 아글타글하는 저 동무의 창안을 왜 제때에 보고하지 않았는가 말이요?》
《잘못했습니다. 실은 시험발파를 한 후에 보고하자던노릇이.》
《한심하오. 동무때문에》
《됐어요!》
여직껏 이들의 대화에 귀를 강구고있던 봄향이 한걸음 나섰다.
《시비를 가르는건 후에 하구 작업을 계속하도록 하세요.》
장송기사장이 봄향의 손을 덥석 잡고 사의를 표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봄향은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섰다.
《책임부원동무!》
그를 바라보던 용길이 봄향을 불러세웠다. 웬일인가 하여 뒤를 돌아보는 봄향의 인상은 여전히 쌀쌀하기는 했으나 어지간히 풀린 상태였다.
그들은 도래굽이의 바위터까지 나란히 걸었다.
봄향은 팽팽해진 기분상태에서 그의 말을 기다리고있었다.
《동무도 목격했지만 내 사업에 빈틈이 많습니다. 큰 건설장을 총괄하는 참모장인 내가… 서툴다보니 오늘과 같은 일이… 정말 미안합니다.》
용길의 허심하고 겸허한 반성은 처녀의 마음속에 그지없는 충격의 파문을 불러왔다. 처녀는 바다를 길들이는 사나이의 도량을 보았다.
내가 잘못 봤구나,얼마나 진실하고 솔직한 사람인가.…
흉중의 웨침이 처녀의 가슴을 괴롭게 허비고있었다. 봄향은 걸음을 멈추고 물기어린 시선을 들며 나직이 말했다.
《됐어요, 아마 제가 지나쳤던가봐요.》
처녀는 용길을 뒤에 남긴채 총총히 그곳을 떠나가버렸다. 그의 심중을 눈치채지 못한 용길은 리해할수 없다는듯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날 대계도도갱전투장에서는 장송기사장의 무책임한 행동을 추궁하는 일군들의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협의회에서는 보고도 없이 시험발파를 조직하여 혼란을 조성시킨 장송기사장에게 처벌이 가해졌다.
협의회가 끝난 뒤 운섭은 용길을 따로 만났다. 용길은 자기의 불찰로 하여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진데 대하여 자기비판을 했다. 운섭은 용길에게 의문스러웠던것을 물었다.
《기사장동무, 이전에 봄향동무와 무슨 일이 있었소?》
한순간 용길은 멋적은 표정을 짓고 그와 있었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3호개고에 막돌을 처넣는 문제를 놓고 얼굴 붉히는 일도 말하고 도갱건설장에서 있은 일들도 죄다 말했다. 그의 자초지종을 다 듣고난 운섭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하… 그래서 기사장동무하고 엇섰댔구만. 이거 야단은 야단이다. 어떻게 한다?》
운섭은 용길의 눈치를 능청스럽게 살피며 딴전을 부렸다. 용길은 따분한듯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다 말겁니다. 처녀의 변덕이 아닙니까?》
《처녀의 변덕?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데.》
《됐습니다, 비서동지.》
운섭은 용길의 손을 잡아쥐며 다정하게 말했다.
《도갱건설장에나 가기요. 우리 집사람이 뭘 좀 해가지고 오겠다고 했소.》
용길은 운섭을 따라나섰다.
장송기사장의 처벌로 하여 전투장의 분위기는 좀 떨어진듯 했다. 그러나 이동식압축기가 살아나 착암작업이 진행되고있었다.
안해인 영녀가 음식함지를 도갱앞에 내려놓자 운섭이 소리쳤다.
《자, 동무들, 우리 집에서 뭘 좀 해내왔는데 한숨 돌리고 합시다.》
당비서네 부부가 나타나는 바람에 도갱건설장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영녀가 함지에 씌운 보자기를 제끼니 먹음직한 찰떡과 김치도 나졌다.
《자, 변변치들 않지만 한개씩 들라구. 기사장동무도 이리 오오.》
갱안에서 나온 굴진공들이며 운반공들이 운섭의 주변에 빙 둘러앉았다. 용길이도 그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들었다. 운섭은 권고에 못이겨 자기도 들며 구수하게 이야기를 폈다.
《내 해방전얘기를 하나 하겠소. 저 건너편 철산 장송땅에 악착스럽기로 소문난 왜나라 선주놈이 있었소. 우리 조선사람들의 목숨을 파리목숨만큼도 안 여긴 놈이였지. 그놈은 사나운 날씨이건 추운 날씨이건 어부들을 물고기잡이에 내몰아 숱한 생명을 앗아갔소. 어찌나 고약했던지 형의 덕을 볼 생각은 말라면서 일본에서 건너온 제 동생에게도 린색하게 굴었소.
동생놈은 자기도 돈벌이를 하려고 기회만 노렸지. 그러던차에 그는 대계도에 금맥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였소. 동생이란 놈은 남몰래 쪽배를 타고 도적고양이처럼 이 섬으로 드나들었소. 그러나 아무리 뚜지고 쑤셔보았지만 허사였소. 대계도에 금이 없다고 단정한 그놈은 기생들을 끼고 이 섬으로 넘어와 천렵놀이를 벌렸지. 술에 만취되여있던 그놈이 잠에서 깨여난것은 황혼이 짙어갈무렵이였소.
그런데 이게 웬일이였겠소? 대계도의 벼랑중턱에 누런빛을 뿌리는 금맥이 있는것이 아니였겠소. 그놈은 이게 꿈이 아닌가 하여 눈을 비비고 보았지만 틀림없는 금맥이였소. 이렇게 되여 그놈은 제 형도 눈아래로 굽어보는 갑부가 되려고 섬을 마구 파헤치다가 우리 나라가 해방되고 제놈들이 망하게 되자 자기 소굴로 도망쳤다고 하오. 이놈이 진짜 금맥을 찾아보고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모르나 어쨌든 이게 대계도에 깃든 피맺힌 사연이요. 생각들을 해보오, 왜놈들은 우리 나라에서 많은 재부를 략탈해가기 위해 조국산천을 마구 파괴하였지만 우리는 조국땅을 넓혀 후대들에게 재부를 넘겨주기 위해 만년대계의 제방을 쌓고있소. 그런데 질서도 없이 망탕 행동해서야 되겠소? 기술혁신을 하겠다는것은 좋은데 우에 반영도 하고 전문일군들의 조언도 들어야 더 빛이 날게 아닌가 말이요. 안 그렇소?》
기술혁신을 한 굴진공청년이 뒤더수기를 긁으며 운섭에게 잘못을 빌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비서동지.》
《알았으면 됐소. 자, 어서들 들고 밑진 봉창을 합시다. 그러단 가차도친구들에게 뒤지겠소.》
《알았습니다!》
대계도전투원들의 한결같은 대답이였다. 용길은 감심된 눈길로 전투원들을 고무하는 운섭을 바라보았다.
×
다음날 저녁 관리국에 올라온 용길은 도갱건설에 필요한 자재들을 맞물려놓은 다음 사무실에 들렸다. 그동안 침식을 잊고 뛰여다녀서 그런지 피곤이 엄습해왔다. 생각같아서는 따뜻한 아래목을 찾아가 한잠 푹 자고싶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마음속 탕개가 팽팽해지며 정신은 더욱 말짱해졌다.
느닷없이 봄향의 얼굴이 떠올랐다.
《됐어요, 아마 제가 지나쳤던가봐요.》
지나친건 내가 아니였던가.
도사린 가시속에 부드러운것을 감추고있는 처녀!
내가 너무 옹졸했어. 그렇게밖에 처녀를 대할수 없었단 말인가. 이래놓으니 나이 서른이 넘도록 처녀 하나 달고다니지 못한다는 비난을 듣지.
용길은 허구프게 웃었다. 제길, 오늘 내가 왜 이래.…
그는 대계도도갱건설장의 평범한 제대군인청년이 창안한 새 천공방법을 도면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 소리없이 문이 열리며 국장이 방으로 들어섰다.
《방에 있었구만, 오래간만에 관리국에 들어왔겠는데 집에 들리지 않구.》
《그럴새가 없습니다. 곧장 대계도로 넘어가겠습니다.》
《어머니가 기다릴텐데.》
《후에 시간을 내겠습니다.》
《그럼 우리 집에 가기요, 집도 가까운데.…》
명도는 용길의 한팔을 잡아끌었다. 명도네 집은 회관옆에 자리잡고있는 단층살림집이였다.
집에 다달으자 대문을 밀어보던 명도는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 사람이 어딜 갔나?》
《전 가겠습니다.》
《이러지 마오. 내 보긴 이래두 비단섬건설땐 솜씨있는 취사원이였소.》
명도는 무작정 용길이를 이끌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용길을 방에 들여앉힌 명도는 그에게 사진첩을 내여주고나서 부지런히 함박의 쌀을 일었다.
사진첩을 번져나가던 용길의 시선은 은별의 사진에 못박혔다.
《혹시 막내딸이 로하건설사업소에 있지 않습니까? 요전날…》
명도는 시치미를 뗐다.
《무슨 소릴, 우리 그 앤 아직 군사복무중인데…》
이상하다는듯 머리를 기웃거리던 용길은 사진첩을 계속 번져나갔다.
아버지가 순직한 후 용길은 명도를 친삼촌처럼 따랐다. 명도가 용길의 집으로 자주 오가며 관심할무렵에는 귀여운 자식들이 있을 때였다. 용길이 중학교와 대학에 다닐 때 명도네 자식들은 그를 친형, 친오빠처럼 따랐다. 말하자면 혈육의 정같은 인간관계가 이루어진셈이였다. 그중에서 용길이 제일 사랑한것은 은별이였다. 그는 지금도 은별이가 머리를 달싹이며 어리광을 부리고 투정질하던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요전날 정알때문에 현장지휘부에 찾아온 은별에게서 어딘가 낯익은듯 한 인상을 받은것은 그때문이였다.
쌀을 안치고난 명도는 망둥어와 맥주를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이 동무 귀빠진 날이더구만.》
《예?!》
용길은 너무나도 뜻밖의 일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했고 다음에는 놀라와했다. 매해 그러했지만 올해는 더욱 바쁘게 지내고 더구나 일에 다몰리다보니 생일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그런데 명도국장이 자기의 그 덜퉁한 무관심성을 깨우쳐준셈이다. 정말 집에서 어머니가 기다릴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친부모와도 같은 정을 기울여준 명도에 대한 고마움으로 코마루가 찡해왔다.
《3호개고바람에 기사장동무 생일날도 다 날려보낼번 했군.》
《고맙습니다, 국장동지. 한데 우리 둘이 있을 땐 그저 용길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용길이가 자리를 잡고 앉자 명도는 말린 망둥어들을 그앞에 놓아주고나서 자기도 입에 넣고 어석어석 씹었다.
《인제는 관리국기사장인데 그러면 안되지. 참, 봄향동무가 기사장에게 된꼴을 먹인다면서…》
《꼴까지야 뭐…》
용길은 공연히 당황해져서 얼굴을 붉혔다.
이때 부엌문이 열리며 안해 금선이가 들어섰다. 조개짐을 이고지고 했는지 온몸이 그대로 감탕투성이였다. 명도가 부엌에 나가 짐을 받아주며 인상을 찌프린채 안해를 질책했다.
《여보, 기사장동무가 왔소. 아침에 내 일렀는데 이건 도대체 뭐요?》
《좀 늦었수다, 빨리 온다는게 그만… 잠간 기다리세요.》
금선은 자기를 바라보는 용길에게 눈인사를 보내더니 팔소매부터 걷어올렸다.
명도가 집안에 들어오자 용길은 시치미를 떼고 궁금한 어조로 물었다.
《제대군인처녀가 제기하던 정알과 정대는 해결해주셨습니까?》
《몇개 보내주었지. 내 방에 정알이랑 정대랑 더 가져다놓기는 했는데…》
《현장으로 가던 길에 제가 전하겠습니다.》
《좀 그래주.》
명도는 생각깊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아마 한지에 나가 고생을 하는 막내딸의 일이 가슴을 알짝지근하게 하는 모양이였다.
잠시후 금선이가 음식을 차려가지고 들어왔다.
간석지구역에서 잡은 조개며 맛회, 지짐, 김치 등 음식들은 소박했다.
《오늘이 기사장의 생일이라는 말을 듣고서도…》
금선은 미안해하며 용길에게 음식을 권했다.
《그래 언제 국수를 먹일테요?》
《대상이 없습니다. 좀 소개해주십시오.》
《에구, 많은게 처녀들인데 눈이 지내 높구만.》
명도는 사말사같은 그들의 대화를 듣다말고 말머리를 돌려 강조했다.
《기사장동무, 일전에 비서동지도 말했지만 마음과 마음을 합치는 일이 헐치 않소. 제방을 막자면 그게 필요하단 말이요.》
낮으나 의미깊은 말이였다. 옳다, 날바다를 막자면, 달의 인력을 이기자면 지배인, 당비서, 기사장이 합심이 되고 온 관리국이 한덩어리가 되여야 한다. 이것이 자연의 광란을 이겨낼수 있는 힘이 아니겠는가.
잠시후 용길은 국장의 사무실에 가서 그가 주는 정알과 정대를 받았다. 명도가 걱정스러워했다.
《안됐소, 생일날 집에도 못 들린 사람한테… 헌데 가차도에 들리면 늦지 않을가?》
《괜찮습니다, 생일은 국장동지가 다 쇠준거고 가차도에야 가는 길에 들리는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니 고맙소.》
용길은 그길로 도갱건설장을 찾아갔다. 도갱안에 들어가보니 마침 은별은 거기에 있었다.
얼마나 기특한 처녀인가. 제대배낭을 로하간석지건설사업소에서 풀고 3호개고전투의 앞장에 서다니… 용길의 눈앞에는 문득 《오빠, 나 크면 선생님이 될테야!》 하며 애무를 바라던 철부지때의 은별의 모습이 떠올랐다.
용길의 눈굽은 저도 모르게 쩌릿이 젖어왔다. 지칠줄 모르는 정력을 안고 간석지건설을 주관하고있는 국장, 그를 도와 조개잡이를 하는 금선, 3호개고전투에 몸적시는 은별… 정녕 그들은 간석지건설을 위해 단란한 가정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는것이 아닌가.
용길은 직장장에게 눈짓을 하여 은별을 갱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소중한 감회에 잠긴채 은별이를 기다렸다.
은별은 도갱밖으로 나오면서 《기사장동지!》 하고 불렀다.
《은별아, 용길오빠가 여기 있다. 그렇게두 몰라보겠니?》
그 말에 은별은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마!》 하고 비명을 질렀다.
《용길오빠!》
《은별이!》
용길은 은별의 팔을 잡아흔들며 정찬 어조로 말했다.
《용쿠나! 정말 이렇게 만나니 반갑구나.》
《오빠, 숨박곡질을 하자니 인사가 늦었어요. 또 처음엔 알아보지도 못했구요. 맘속으로는 늘 오빠를 잊지 않았어요.》
《다 안다, 다 알아.》
은별은 눈물이 번쩍이는 눈길을 들었다.
《난 결심했어요, 저 3호개고를 막을 때까지 전투장을 떠나지 않고 누구의 딸이라는것을 밝히지 말자구요. 그러니 나의 비밀을 지켜주세요.》
《그런 담보는 받지 않아도 된다.》
용길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러다 생각난듯 정알이며 정대를 내주었다.
《받거라, 아버지가 보낸거다.》
은별은 기쁨에 몸을 떨며 소리쳤다.
《야, 아버지가 최고야. 아버지에겐 별일 없겠지요?》
용길은 미소를 지은채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러다 문득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미안스러워하며 이야기했다.
《난 일이 있어 대계도로 넘어가야겠다. 후에 실컷 말하자꾸나.》
《오빠, 몸 조심하세요. 그리고 장가를 드세요. 내 하나 소개할가요?》
《네 걱정이나 해라.》
용길은 은별이의 귀여운 볼을 손가락으로 꼭 질러주고나서 돌아섰다.
《오빠, 잘 가요!》
이 말을 남기고 은별은 도갱안으로 사라져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