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3

(2)

 

《나한테 이런 안이 제기되였소. 지금 3호개고바닥이 12층아빠트를 통채로 들여놓을 정도로 패인 조건에서 대계도앞의 등곶을 따라 제방을 에둘러 막자는거요. 이렇게 되면 로력과 자재는 좀더 들어도 쉽고 안전하게 제방을 막을수 있소.》

관리국일군들은 도흥의 제의에 어리둥절해있다가 제가끔 론난을 폈다.

수긍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도 비슷한 안인데…》

《묘안이 아닐가요? 지금의 실정에서는.》

그러나 명도는 생각을 달리했다.

제방을 등곶을 따라 막자는 의견은 이미전에도 한두번 제기되였었다. 쉽고 안전한 길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로력과 자재, 설비가 턱없이 많이 들고 공사기일도 예측할수 없는 안이였다.

그보다도 이 안을 받아들일수 없는 가장 중요하고 심중한 문제가 있었다.

명도는 이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다시한번 똑똑히 인식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좌중을 한번 둘러보고 일어났다.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지금의 방조제는 우리 수령님께서 손수 연필로 그어주신 법선입니다. 그 누구도 여기에 손댈 권리가 없습니다.》

법선! 좌중은 이 말 한마디에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도흥은 심각해진 회의장의 분위기를 호전시키려는듯 우선우선한 표정으로 말머리를 돌리였다.

《그래서 현실적인 방도를 찾자는게 아니요. 내가 그 주장을 고집하는거야 아니잖소. 법선대로 밀고나가려면 그에 맞는 합리적인 안도 빨리 나와야 합니다.》

흥분했던 명도는 도흥이 그렇게 나오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다년간 건설장마다에서 전개력있고 건설실무에 밝은 일군으로 인정받아온 도흥이였다.

운섭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력있게 말했다.

《동무들, 얼마전 우리 공사장을 돌아본 외국의 한 간석지전문가가 뭐랬는지 압니까? 달의 인력을 차단하기 전에는 절대로 3호개고를 막지 못한다는것입니다. 그때 국장동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달의 인력을 이기는 힘이 있다. 그것은 장군님의 두리에 일심단결된 혼연일체다. 두고보라, 3호개고는 꼭 막는다!〉

국장동무는 그 외국의 전문가와 약속했습니다. 우리가 이기는가, 자연이 이기는가.…

그래, 우리가 여기서 물러서야 하겠는가.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3호제방을 복구하여 선군조선의 위력이 어떤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누군지 모르나 운섭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쳤다. 그러자 회의참가자들은 모두 열렬한 박수갈채로 이에 호응하였다.

이번에는 기사장으로 임명된 신용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3호개고를 성과적으로 점령하자면 많은 량의 막돌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계도와 가차도에서 동시에 20만산대발파를 진행하자는것과 그를 위한 도갱굴진을 시작하자는것을 제기합니다.》

용길은 그동안 착상하고 계획해온 도갱굴진방안을 제기했다. 그에 의하면 대계도의 도갱굴진은 장송간석지건설사업소가 맡고 가차도의 도갱은 로하간석지건설사업소가 맡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가차도계선에서는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와 주택보수사업소가 제방건설을 맡아 내밀고 대계도계선에서는 보산간석지건설사업소와 석화간석지건설사업소, 곽산간석지건설사업소가 제방건설을 감당하기로 하였다.

봄향은 용길의 사리정연하고 빈틈없는 조직적수완, 완강한 주견력에 경탄을 금할수가 없었다.

(저 사람은 인간적인 매력은 없지만 조직적수완은 있었구나.)

이것은 봄향이가 그에 대하여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장점이였다.

회의는 밤이 이슥해서야 끝났다.

봄향은 오래간만에 아버지와 함께 다사로동자구의 밤길을 걸었다. 그는 아버지가 오늘 회의에서 강한 충격을 받았다는것을 눈치챘다.

한동안 말없이 걷던 도흥은 제 생각에서 깨여난듯 이렇게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

밑도끝도 없는 이 말에 봄향이는 어리둥절해졌다.

자기의 말을 가려듣지 못했다는것을 깨달은 도흥은 봄향에게 다시 물었다.

《간석지일 말이다.》

그제서야 봄향은 아버지가 간석지건설전망에 대한 신심이 부족하다는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절충안까지 들고나왔을것이다. 이것은 간석지건설을 총괄하는 지도국일군이 취할 립장이 아니였다.

봄향은 소년단시절에 건설장을 즐겨찾아가 영예게시판에 크게 난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또 보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그 면모가 일신되는 수도 평양의 모습속에 혁신자인 아버지의 모습도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일시적인 난관앞에 동요하고있지 않는가.

봄향은 이것이 알찌근하고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 아버지야 지도국을 대표하는 일군이 아니예요. 사람들이 아버지를 지켜보고있어요.》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모두들 욕망만 앞세우고있다. 뾰족한 타개책이 서야 할게 아니냐.》

봄향은 아버지의 고충이 리해되면서도 불만스러웠다.

《아버지, 여기 건설자들은 맨주먹으로라도 사나운 날바다를 막겠다는거예요.》

《맨주먹? 허허― 그 열의야 누가 탓하겠니. 그러나 제방을 막는 일은 맨주먹으로 될 일이 아니야. 어쨌든 결판이야 나겠지. 나하구 어디 좀 가자.》

《?!…》

봄향은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가 이끄는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자재부국장인 문섬길네 집이였다. 그 집은 다사로동자구에서 협동농장쪽으로 치우쳐 새로 지은 독채였다.

도흥과 봄향이가 그 집앞에 이르자 기다리고있던 섬길의 부부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마가 벗어진데다가 멋적게 꺽두룩한 섬길에 비하면 그의 안해 분옥은 적당하게 몸이 난데다가 흰 살결에 윤이 흐르는 멋쟁이녀자였다.

《여보, 인살하오. 내 늘 신세를 지군 하는 지도국 처장동지요.》

분옥이 수태를 머금은채 한걸음 나서며 인사를 했다.

도흥은 내성적이고 살뜰하기로 소문났다는 분옥의 미모에 놀란듯 한 인상이였다.

《아주머니가 미인이라더니 소문이 그른데 없군요.》

《에구머니나.》

그 말에 분옥은 부끄러워 어쩔바를 몰라하며 남편뒤에 몸을 숨겼다.

도흥은 대문밖에서 어물거리는 봄향을 소리쳐찾았다.

《아니 얘야, 게서 뭘 하느냐?》

섬길이 내외의 시선을 받자 봄향은 수집게 인사를 하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섬길은 자못 놀랍다는듯 봄향이와 도흥을 번갈아보더니 제잡담 한마디했다.

《아니, 그럼?… 내 어쩐지 부국장동지네 집 사진첩에서 본 처녀같다 했지요.》

분옥이가 아릿답고 의젓한 봄향이를 껴안으며 격찬했다.

《에구나, 정말 보름달같네.》

도흥은 은근히 자부심을 느끼며 섬길에게 딴소리를 했다.

《여보, 거 제발 소문내지는 마오. 내 소개군단련이 시끄러워 여기로 빼돌린 처진데…》

《예?! 자, 어서.》

섬길이 독촉했으나 도흥은 선듯 방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섬길이네 집 꾸림새에 넋을 팔고있었다.

섬길이네 집은 주민지구에서도 큰 부지를 잡고 덩실하게 일떠섰다. 집도 집이려니와 키를 넘게 빙 둘러친 세멘트담장이며 현관앞에 조성한 아직 움도 트지 않은 포도넝쿨은 미관상 호감을 자아냈다. 그런가하면 터밭에서는 겨울잠을 잔 시금치며 풋마늘들이 겨끔내기로 새싹을 내밀고있었다.

도흥이와 봄향은 집안으로 안내되였다.

정갈하면서도 안온하게 꾸려진 방안에 들어선 도흥은 음식상에 마주앉았다.

봄향은 멋스러운 집안의 분위기며 정도이상의 환대로 손님들을 현혹시키려드는 섬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식탁에서는 다사도특산인 숭어탕이며 맛볶음, 굴회, 꽃게찜 등이 잔뜩 구미를 돋구고있었다. 우리 나라의 이름난 《봉학맥주》까지 나왔다. 섬길은 자기는 별로 들지 않고 손님접대에만 왼심을 썼다.

분옥이도 방안으로 들어와 음식들을 권했다.

맥주기운이 돌자 섬길은 도흥을 믿고 속에 있던 험담을 늘어놓았다.

《처장동지, 우리 관리국장은 건설자들의 그 밭은 궁냥을 믿고 3호개고를 막는다는건데 그 속심이야 뻔하지요. 그거야 7년씩이나 제방을 복구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나자는거지 딴겁니까?》

봄향은 그처럼 성실한 국장을 헐뜯는 섬길의 뒤소리가 듣기 역했다.

도흥이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무슨 쓸데없는 험담인가? 의견이 있으면 회의에선 왜 가만있었나?》

날이 선 도흥의 추궁에 잠시 눈을 허둥거리던 섬길은 혀아래소리를 했다.

《모난 돌이 얻어맞는다구 그 만장판에서 허물을 들추다니요?》

섬길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들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도흥은 모처럼 자기를 초청한 섬길에게 지나치게 자극을 준것 같아 화제의 각도를 다른데로 돌렸다.

《나무를 찍으면 도끼밥이 나기마련이야. 동문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불평을 부리니 공든 탑이 순간에 무너지지 않나?》

《쓴맛 모르면 단맛 모른다구 제가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습니까?》

《됐소, 됐소.》

도흥은 한손을 내저으며 섬길을 진정시켰다.

봄향은 시세편승의 능수인 섬길의 장광설을 들으며 반지빠른 그의 속내가 들여다보이는것만 같아 불쾌해지는 마음을 어쩔수가 없었다.

도흥과 봄향은 섬길이네 집을 나섰다.

별이 뜨지 않은것으로 보아 밤하늘은 흐린것 같았다. 누적지근하고 쌀쌀한 해풍이 불어와 심란한 그들부녀의 마음을 식혀주었다.

봄향은 섬길과 같은 인간들과 가까이 하고있는 아버지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딸의 마음을 헤아린듯 도흥은 마음속의 험터구를 풀어헤쳐보였다.

《네 기분이 좋지 않구나. 하지만 넓게 생각해라. 그 사람의 부담이 커. 승산없는 무모한 전투에 시달리다보니 투정질을 한거다.》

봄향은 원칙밖에 모르는 아버지의 입에서 입심쟁이인 섬길을 비호하는 말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에게도 이런 때가 있구나. 섬길에 대한 특별관용은 무엇을 뜻하는가? 봄향은 그 의혹의 지겨움을 털어놓고싶었다.

《난 그가 아버지앞에서 성실한 자기 상급을 헐뜯는게 분해서 그러는거예요.》

《넌 다 몰라. 그렇게 속단할 일이 아니래두. 인간적으로 봐두 그 사람은 네가 대학에 다닐 때 어머니를 구해준 은인이다.》

바로 그때문이였다. 그 신세때문에 원칙의 날이 무디고있는것이다.

봄향은 새삼스럽게 인제는 아버지도 나이가 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섬길의 저조한 행동에는 자기가 지워놓은 신세를 빗대고 지도국 처장앞에서도 험구를 늘어놓을수 있다는 속대사가 진하게 깔려있었다. 봄향에게는 섬길의 이런 태도가 점잖지 못하게 생각되였다.

도흥은 딸에게 자기의 약점이 드러나는것이 마음에 없었던지 말머리를 돌렸다.

《봄향아, 거 농업성에 배치된 대학동창생 있지? 너와 친했던…》

《옥선이 말이예요?》

《그래그래, 스위스주재대사관 참사와 결혼을 했는데 인차 남편따라 그 나라로 간다구 집에 인사하러 왔더구나.》

《…》

봄향은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그 말이 남다른 의미를 띠고있었기때문이였다. 미모에 있어서나 인격에 있어서 늘 옥선이의 부러움을 자아내던 봄향이였다. 구혼자들로 쳐도 멋진 대상들을 적지 않게 만나 본 자기였다. 그러나 대학졸업증이 시집을 잘 가기 위한 지참품으로 될수야 없지 않는가. 일부 동창생들이 안식을 찾아 뒤선으로 물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봄향은 속물적인 그런 근성, 자기 리속을 위해서는 리상과 포부도 헌신짝처럼 집어던지는 그런 인생을 타매하고 경멸해왔다.

그에게는 남다른 긍지와 자부가 있었다. 그것은 날바다를 가로막아 조국땅을 넓혀나가는 보람찬 투쟁에 생의 흔적을 뚜렷이 남겨간다는 바로 그것이였다. 그에게는 남다른 욕망도 있었다. 그것은 책상물림인 자기에게 현실에 발을 붙이라고 충고하던 용길에게 지성적인 평양처녀의 본때를 보여주려는 바로 그것이였다.

봄향이가 용길을 알게 된것은 대학졸업을 몇달 앞둔 때였다. 그는 대학졸업론문외에 간석지제방건설의 현대화문제를 준비하고있었다. 대학교수들의 방조밑에 비단섬과 다사도, 대계도 현지를 밟아보고 집필한 론문은 현실적시점에서 큰 기대감을 자아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로교수가 봄향을 불렀다. 봄향이가 집필한 두툼한 론문이 그 로교수의 책상우에 놓여있었다. 론문을 쓴 경위에 대하여 묻고난 로교수는 간석지건설장에서 일하고있는 한 제자를 찾아가 만나볼것을 권고하는것이였다. 그가 바로 간석지건설장에서 시공과장으로 일하고있던 신용길이였다. 그리하여 봄향은 대계도간석지건설장에 오게 되였다. 용길은 그때 가차도의 도갱건설장에서 일하고있었다. 기별을 받고 도갱에서 나온 용길은 아릿다운 처녀의 인사를 받자 친절하게 미소를 머금어보였다.

《먼길에 수고했겠습니다.》

봄향은 선망에 젖은 눈길로 해볕에 탄 용길의 선이 굵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큼한 키에 어깨가 널직하고 의젓한 자세, 짙은 눈섭과 명민하게 빛나는 눈길, 날이 선 코와 고집이 엿보이는 입술… 총적으로 자기과신감과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인상이였다.

만만치 않겠구나, 봄향은 호기심과 두려움에 젖은 눈길로 용길을 바라보았다.

용길은 애티를 벗지 못한 처녀를 세부적으로 뜯어보는상싶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실무적이고 딱딱한 이 물음에 봄향은 숫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전 동지의 대학후배예요. 지금도 대학에선 용길동지의 학구열이 후배들의 본보기로 되고있어요.》

맞대놓고 하는 이 과찬에 용길은 거북한듯 한손을 내저었다.

《아, 그런 말은 그만합시다.》

봄향은 맵시있는 들가방에서 자기가 쓴 론문초고를 꺼냈다. 용길이가 론문을 어떻게 평가할는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론문을 받아든 용길은 심중한 얼굴로 한장한장 번져보는것이였다.

《좋은 소재를 잡았군요. 처녀동무, 차라리 심의원들에게 보이는게 어떻습니까?》

《선배로서 그리고 체험자로서 조언을 주세요. 그다음…》

용길은 리해를 표시하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봄향이가 조급하게 물었다.

《며칠이면?…》

《닷새면 충분합니다.》

《그럼 그때 오겠어요.》

봄향은 간석지건설장을 떠나 집이 있는 평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의 약속은 다시 10일로 연장되였다. 용길이가 론문을 채 보지 못했기때문이였다. 봄향은 다시금 날자를 맞추어 간석지건설장을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막상 용길을 만나보니 다시 5일만 연장해달라고 하는것이였다. 처녀는 아연해졌다. 기대감이 순간에 허물어졌다. 어쩜, 무슨 사람이… 정말 채 보지 못했을가? 아니면 시끄러워서? 어느쪽일가. 봄향은 불안했다. 봄향은 미적지근한 용길의 약속개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름째되는 날이였다.

가차도의 도갱건설장에서 그들은 다시 마주서게 되였다. 용길은 불만과 경원의 빛이 력연한 처녀의 얼굴을 바라보고나서 보풀이 일다싶이한 론문을 내놓았다.

《미안합니다. 여덟번이나 론문을 보다나니 약속을 어겼군요.》

《?…》

봄향은 용길이가 론문을 세부적으로 파고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런것도 모르고 용길을 원망한 자신이 불만스러웠다. 그런데 결과는?…

《괜찮아요. 어때요? 가망이 보입니까?》

봄향은 애끓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았다.

대단한 관심을 기울인듯 한 용길이였지만 오히려 도리머리를 하는것이 아닌가.

《?…》

불길한 예감으로 하여 처녀의 가슴은 싸늘하게 얼어들었다.

따분한듯 검푸른 파도 설레이는 먼 수평선을 바라보던 용길은 처녀의 집요한 시선을 느낀듯 머리를 들었다.

《이 론문은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권고합니다, 이렇게 집필할바에는 차라리 손을 대지 마십시오.》

청천벽력같은 선고였다. 봄향은 모든것이 정지된것 같이 느껴졌다. 그처럼 마음을 즐겁게 해주던 파도의 설레임이며 정다운 갈매기들의 울음소리, 비릿한 해풍조차 감각되지 않았다. 경멸당한 오욕감이 그의 뼈를 아프게 에일뿐이였다. 격렬한 소외감과 수치, 그로부터 오는 모욕감으로 하여 그는 자기를 지탱하기 힘들었다. 참을수 없는 반발심과 타매의 감정이 그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부채질했다. 어쩌면 이렇게 랭혹할가, 애써 집필한 론문이 론의할 여지조차 없다니…

용길의 차겁고도 무자비한 태도는 봄향의 가슴속에 경멸의 메아리를 불러왔다. 봄향은 그의 면박이 인간적배신처럼 느껴졌다.

《전 그래도 방조를 기대했는데…》

《나도 어떡하든 살리자던건데… 억지로는 안되겠습니다.》

억지라구? 도대체 무엇이 억지라는건가? 처녀는 오연히 머리를 쳐들었다.

《그러니 더 론의할 여지도 없겠군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바쁜 시간을 내주셔서 고마워요.》

론문초고를 받아든 봄향은 용길에게 눈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환기된 쓰라린 오욕과 아픔으로 하여 처녀의 눈가에서는 억울한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그래그래, 나도 현실에 발붙일테야. 그리고 그가 준 충고가 잘못된것이라는것을 실천으로 증명할테야. 이것이 봄향이가 간석지건설장으로 오게 된 동기이기도 하였다.

 

×

 

운섭은 자기 방에서 용길이가 들고온 특대형철방틀공법설계도를 유심히 들여다보다 말고 시선을 들었다.

《이것도 대형공법이구만. 국장동무가 창안했다지?》

《예, 공법방안이 여럿이지만 제일 현실적입니다.》

머리를 끄덕이던 운섭은 눈섭을 쫑긋거리더니 미타한듯 한마디 했다.

《중요한건 7~8메터나 되는 류속을 이겨내는거요. 수압단면힘이 간단치 않겠는데…》

《그 문제도 충분히 타산했습니다.》

《내친김에 국장방에 가기요.》

운섭은 용길이와 함께 당위원회와 거리를 두고있는 행정청사로 걸음을 옮겼다. 국장방에 들어서니 명도는 다사기계화사업소 지배인 성욱이와 함께 륜전기재의 실동정형을 따져보고있었다.

당비서와 기사장에게 자리를 권하고난 명도는 속이 타는지 담배연기를 깊이 들이빨았다가 내뱉으며 하던 말을 계속했다.

《아니, 실지 뛰는것 말이요.》

한동안 갑자르던 성욱은 《자동차는 15대이고 굴착기는 유압식까지 해서 5대입니다.》라고 솔직히 대꾸했다.

명도는 원주필로 펴놓은 사업수첩을 두드리면서 용길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관리국적으로 실지 뛰는 화물자동차는 27대, 굴착기는 10대로구만.》

용길이가 자기의 심중을 터놓았다.

《륜전기재가 문젭니다. 이제 대량투석법을 도입하자구 해두 그것부터 풀려야 합니다. 그리고 폭약과 정알, 정대도 없습니다.》

눈치빠른 성욱이 명도에게 량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사려깊고 공정하며 책임적인 명도는 두눈을 쪼프린채 말이 없었다. 사무실안에는 납덩이같은 무거운 침묵이 지속되고있었다. 딱한듯 안타까와하는 용길을 바라보던 명도가 약간 태를 머금은 나직한 목소리로 실태를 설명했다.

《폭약은 지도국에서 최선을 다하고있소. 그리고 정대와 정알은… 우리 힘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소. 문젠 륜전기재요, 륜전기재…》

힘겹게 되뇌이며 눈길을 들던 명도는 용길의 시선이 운섭에게 가있는것을 발견했다. 운섭은 그때 종이장우에 《△》형표식을 무수히 그려놓고있었다. 저건 도대체 뭔가? 보다못해 명도가 물었다.

《당비서동지, 그건 대체 뭡니까?》

빙그레 웃음을 지어보인 운섭은 자기의 생각까지 가미시켜 조리있게 해석했다.

《우리한테서 근본적으로 걸린것은 설비나 자재가 아니라고 보오. 달의 인력을 이기는 힘은 우리의 단합에 있소. 거기서두 우리 셋이 어떻게 마음을 합쳐 내미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단 말이요.》

명도의 두눈은 번쩍 트이였다. 지금이야말로 당비서와 지배인, 기사장의 3위1체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국장의 독단으로 걸린 목을 풀려는것은 무지한 완력행사에 불과하다. 명도는 침맥을 바로 짚는 명의처럼 급소를 면바로 찌를줄 아는 당비서를 깊은 존경심을 담고 바라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당비서와 기사장의 손을 덥석 잡아쥐였다.

《비서동지, 본질을 바로보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용길도 물기가 번쩍이는 시선을 드는것이였다.

그로부터 2시간이 경과해서였다.

운섭이 탄 승용차는 다사기계화사업소를 향해 달리고있었다. 지금 거기에서는 명도가 성욱이와 함께 이 사업소에서 새로 창안도입한 연료뽐프시험기와 곡축연마기, 메달재생기, 피스톤재생기들을 돌아보고있을것이다. 륜전기재가 걸린 조건에서 자체의 힘으로 부속품들을 되살려쓰는 수밖에 없었다. 아닌게아니라 운섭이가 그곳에 당도하니 명도는 기관수리작업장에서 현장일군들과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토론하고있었다. 뜻밖에 당비서가 작업장에 나타나자 명도는 이렇게 자기의 말을 결속했다.

《정밀도보장이 기본이라는것을 잊지 마오.》

《알았습니다.》

이것은 성욱이의 대답이였다.

운섭은 《국장동무, 나 좀…》 하고 명도를 자기에게로 불렀다. 《함께 좀 가야겠소.》

명도는 영문도 모르고 운섭이를 따라 승용차에 올랐다. 승용차는 오리공장을 지나 신정리쪽으로 뻗어간 넓은 도로를 따라 내달렸다. 명도는 차가 신의주쪽으로 간다는것을 깨달았다.

《어디로 갑니까?》

《도당위원회에서 급히 찾소.》

순간 명도는 당황하여 물날은 자기의 작업복을 살펴보았다.

《이런 차림으로요?》

《일하는 사람이 그렇지 뭘…》

운섭은 근심이 가득 실린 명도의 얼굴을 바라보다말고 물었다.

《성욱지배인에게 무슨 방도가 없습디까?》

《그 사람들의 창안이 기발하긴 한데 결정적인 고리로는…》

《야단은 야단이야. 자동차들까지 지쳐 쓰러지는 판이니…》

운섭이도 실망의 심연속에서 방도를 모색하며 안타까움에 모대기였다. 3호개고를 막아야겠는데 이래저래 걸린 매듭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대계도와 가차도에서 진행하는 대발파와 대량투석법도입만 해도 허리를 못 펴겠는데 수송수단까지 뒤다리를 잡아당기고있는것이다.

《자동차문제는 그렇게 비벼친다고 치고 굴착기문젠 어떻게 하겠소?》

운섭의 이 물음에 명도는 방도가 서지 않는지 대꾸를 못했다. 굴착기들도 이제는 많이 낡아 페기해야 할 형편이였다. 조갈이 든 입술을 깨물고있는 명도를 바라보는 운섭이의 가슴은 저렸다. 건설장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걸머지고 아글타글하고있는 명도였다. 그 짐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울만치 과중했다. 그러나 어디 가서 손을 내밀데도 없었고 그렇다고 하여 우는소리를 하기는 더욱 난처했다.

그들이 탄 승용차가 도당위원회에 도착한것은 하루해가 저물어갈무렵이였다. 정문에 나와 기다리고있던 일군이 그들을 도당책임비서의 방으로 안내했다. 천성이 무던하고 너그러운 도당책임비서는 간석지일군들이 나타나자 무등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작업장에서 직접 오는 모양이구만.》

《그렇습니다.》

명도가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책임비서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도당책임비서는 정색해지며 저력있는 어조로 말했다.

《간석지건설장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맨손으로 간석지제방건설을 다그치고있는 동무들의 수고를 깊이 헤아리시여 자동차들과 굴착기들을 보내주시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에 접하는 순간 명도는 목이 꽉 메여오고 눈앞이 흐려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륜전기재가 걸려 얼마나 속을 썩이고 애를 말리웠던가.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간석지건설장에서 제일 걸린 고리를 풀어주신것이다. 아직은 나라사정이 어려운 때이다.

그것을 생각할수록 명도는 솟구치는 격정을 억제할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 정말 고맙습니다!》

뙤약볕에 쩌들은 억대우같은 명도의 몸은 격정으로 떨렸다. 그것이 책임비서와 운섭에게도 감득되였다. 책임비서는 오열하는 명도를 격려해주었다.

《국장동무, 우리 장군님의 이 사랑으로 로동자들과 일군들의 정신력을 총발동시켜 3호제방을 기어이 완성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이틀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중량화물자동차 15대, 유압식굴착기 2대를 전달하는 모임이 현지에서 성대하게 진행되였다.

간석지로동계급은 사랑의 륜전기재를 만져보고 쓸어보며 장군님께서 자기들의 걸음걸음을 늘 지켜보고계신다는 남다른 긍지와 행복감으로 눈물을 흘리였으며 하루빨리 그이께 승리의 보고를 올리겠다는 불타는 결의에 충만되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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