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3
(1)
《아버지!》
명도는 등뒤에서 울리는 챙챙한 처녀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군복을 입은, 어쩐지 낯설어 보이는 처녀가 그를 바라보며 웃고있었다.
《아니, 너 은별이가 아니냐?!》
명도는 잠시후에야 그 처녀가 군대에 나갔던 딸임을 알아보았다. 팔을 벌린 그는 자기의 품에 뛰여드는 딸을 와락 그러안았다.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한참만에 그는 딸을 떼여놓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청순한 건강미가 넘치는 은별이의 군복입은 모습은 볼수록 돋보였다.
아버지를 닮아 이마가 훤칠했고 크고 쌍까풀진 눈이며, 오똑한 코, 군복상의가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가슴, 부드러운 선을 그린 세련된 몸매…
애리애리하고 귀염성스럽던 은별은 보람찬 군사복무의 나날에 어엿한 녀장부가 되여 아버지앞에 나타난것이다.
명도는 은별이를 방조제앞의 너럭바위터로 이끌었다.
《자, 여기 좀 앉자.》
명도는 감회에 젖은 눈길로 갈매기떼 날아예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검푸른 파도가 인상깊게 안겨왔다.
《이틀전에 온다더니…》
《동림역에서 내려서 철산장송까지 걸었어요. 배두 타구요. 아버지랑 간석지사람들이 밤낮으로 고생을 하시는데 차를 타고 들어서고싶지 않더군요.》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딸을 대하는 명도의 눈앞에는 그가 입대하던 때의 일이 어제런듯 떠올랐다.
다사중학교졸업당시 은별은 최우등생으로서 신의주교원대학추천을 받았었다. 머리가 총명하고 예능과목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있는 은별이의 성격과 재능을 고려하여 취해진 조치였다. 자식이 셋이라지만 부모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온 은별이의 교원대학추천은 명도나 안해인 금선이를 더없이 기쁘게 만들었다.
명도는 그때 고난의 행군을 겪는 어려운 조건에서 대계도제방보강공사준비를 하느라고 발편잠을 잘 처지가 못되였다. 그동안 국가적인 대상건설때문에 나가있던 련합기업소의 기본건설력량이 다시 돌아온 조건에서 보강공사에 손을 댈 때가 온것이였다.
그날도 늦게야 집에 들어선 명도는 울상을 하고있던 안해의 지청구를 듣게 되였다.
《어디 가계시다 인제야 오세요? 제가 당신을 얼마나 찾은지 아세요?》
명도는 어이없이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소?》
《은별이가 글쎄 군대에 나가겠다는거예요.》
《?!…》
명도는 교원대학을 간다며 기뻐하던 은별이가 군대에 나간다는 말이 선뜻 리해되지 않았지만 스스럼없이 대꾸하였다.
《군대에 나가겠다는거야 좋은 일이지. 당신은 뭐가 못마땅해서 그러오?》
《아니, 당신까지?… 당신이 막냉이라고 어자어자하니까 인젠 제 맘대로야요. 에미의 말같은건 말같이 여기는줄 알아요?》
그날 밤 은별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명도는 은근히 은별이의 일이 걱정되였다. 인민군대에 입대한다고 제 에미에게 한마디 해놓고는 도대체 어디로 간것일가? 그러나 명도는 여물어진 은별이를 믿고있었다. 은별이는 여직껏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던것이다.
3일째 되는 날이였다. 그날도 뒤늦게야 집으로 들어선 명도는 군복을 입고 마중나온 은별이와 맞다들게 되였다.
《국장동지, 전사 채은별 만날수 있습니까?》
명도는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 의문에 찬 눈길로 딸을 바라보았다.
《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은별은 어리광을 부리듯 명도의 팔에 와 매달렸다.
《아버지, 이렇게 군복부터 먼저 입었어요. 그러니 내 편에 좀 서주세요.》
《내 편이구 네 편이구 있니? 입대를 축하한다!》
《그렇지요, 아버지야 늘 내 편이였으니까요.》
《너 대학에 못 가는걸 후회하지 않겠니?》
《누구나 입버릇처럼 외우지 않나요. 국사중에 국사는 조국보위라고. 아버지, 나 통일의 선물을 안고 돌아온 다음 대학에 가겠어요.》
명도는 방그레 웃는 은별의 그 마음이 더없이 기특하고 돋보였다.
그날 세 식구는 늦게야 식사를 했다.
은별이가 부모들에게 말했다.
《난 래일 새벽에 염주로 떠나겠어요. 기차시간이 그때 맞물렸대요. 조용히 떠날테니 바래우지 마세요.》
그 말을 듣던 금선이가 은별이에게 지청구를 했다.
《캄캄한 새벽길을 너 혼자 간단 말이냐?》
《왜요? 못 갈것 같애요? 엄만 아직 이 은별일 응석꾸러기로 보시는것 같은데 인젠 당당한 총쥔 병사란 말이예요.》
그 바람에 명도는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의 거동을 달갑지 않게 바라보던 금선이가 역정비슷이 말했다.
《당신은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어요? 은별이 말이라면 오금을 못쓰고―》
명도가 웃음을 그치고 자기의 견해를 내비치였다.
《당신은 기쁘지 않소? 난 우리 은별이의 결심을 지지하오. 뭐니뭐니해도 조국보위이상 더 큰일이 어디 있겠소. 은별아, 군대에 나가거들랑 간석지건설자의 딸답게 군사복무를 잘하거라.》
《알겠습니다, 국장동지!》…
이렇게 집을 떠났던 딸이 녀장부가 되여 아버지앞에 나타난것이다.
《아버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온게 반갑지 않은가요?》
《무슨 소릴! 너무 꿈같아서 그런다. 그래 입당은 했겠지?》
《예, 작년에.》
《그게 어디냐. 넌 헛살지 않았다. 우리가 이 대계도를 붙잡고 씨름을 하는새에 넌 나라를 지키고 당원이 되지 않았니. 당당하게 다사땅에 들어설 자격이 있다!》
그는 은별이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이렇게 격려했다.
《인젠 군사복무도 끝마쳤는데 어머니의향을 따를 생각이냐? 대학에 가는것 말이다.》
《…》
은별은 머리를 숙인채 말이 없었다.
명도는 딸의 생각이 딴곳에 가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네 생각을 말해라!》
《전 여기 간석지건설장에서 일하고싶어요.》
《음.…》
《다 막아놓았던 제방이 터졌는데 대학이 다 뭐예요. 전 작업장에 나가도 아버지의 이름은 팔고싶지 않아요. 석화나 로하간석지건설사업소에 가서 착암이나 발파나 다 하고싶어요.》
명도는 감동에 젖은 눈길로 사랑하는 딸을 바라보았다.
은별은 계속 자기의 속생각을 털어놓았다.
《전 군복은 벗었어도 최고사령관동지의 병사로 살겠어요!》
명도는 딸의 이 결심이 하루이틀에 이루어진것이 아니라는것을 직감했다. 볼수록 놀랍게 성장한 은별이가 돋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로서의 걱정도 없지 않았다.
《네 나이가 적지 않아. 이제 공부도 하고 가정도 이루자면 여유가 없을거다. 그런 타산은 해봤냐?》
《아버지두, 타산을 앞세우면 큰일을 못한다고 하시구선.》
명도는 답답하던 가슴이 은별이로 하여 시원하게 열리는감을 느꼈다.
《철없던 널 우리 장군님께서 이렇게 키워주시였구나. 고맙다. 오늘 난 너에게서 큰 힘을 얻었다. 너를 나의 딸만이 아닌 간석지의 딸로 생각한다.》
자기를 격찬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던 은별이가 불쑥 장난궂은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나 아버지 업고싶어요.》
뜻하지 않은 그 말에 어벙벙해진 명도는 은별이가 잔등을 들이대자 《얘, 그만둬라.》 하고 만류했다.
그러나 은별은 고집을 부렸다.
《이제부턴 아버지와 딸이란것도 비밀로 될텐데 어서요.》
《원, 고집두.》
명도는 하는수없이 은별이에게 업혔다.
은별은 아버지를 업고 모래불을 걷는것이 꿈만같은지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버지, 피흘려 조국을 지키는것도 애국이지만 조국땅을 넓히는것도 애국이겠지요?》
《옳다, 네 말이 옳아. 거기에 우리의 긍지와 자부가 있는거다.》
명도는 은별이의 그 결심을 안해가 어떻게 리해했는지 그게 걱정스러웠다.
《네 결심을 어머니가 알고있냐?》
《어머니도 찬성했어요.》
명도는 딸에게서 내려서며 이렇게 당부했다.
《은별아, 간석지일은 좋은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다. 난 너의 결심이 열매를 맺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국장동지!》
은별은 명도에게 깍듯이 거수경례까지 하였다.
×
그날 오후 봄향은 3호개고전투와 관련한 협의회에 참가하기 위해 국장방으로 갔다. 관리국일군들은 물론 아버지까지 참가하는 협의회에 자기를 부른것을 보면 중요한 문제들이 토의될것 같았다. 봄향은 맨구석에 자리를 잡고앉아 긴장한 시선으로 눈앞을 바라보았다.
협의회에 앞서 도당위원회에서 내려온 일군이 방으로 들어섰다.
시공부기사장인 신용길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더니 자리에 앉았다.
도당일군이 간석지건설관리국일군들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관리국시공부기사장으로 일하던 신용길동무가 오늘부터 관리국기사장으로 사업하게 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회의참가자들이 박수를 치며 기대어린 시선으로 일시에 용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누구나 용길이 기사장의 중임을 맡아 자기의 일을 본때있게 수행하리라고 믿고있었다.
그러나 봄향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내리떨구었다. 신용길과 자기사이에 있은 불쾌한 일이 그의 감정을 상하게 했던것이다.
일은 며칠전 3호개고에서 벌어졌다.
간석지건설장에 새로 파견되여온 봄향은 많은 량의 막돌이 승산도 없이 3호개고에 들어가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국가에 손해를 주는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이럴수 있는가? 책임을 무마하자는것일가? 아니면 주먹치기로 일을 내미는것일가? 사태의 엄중성을 따져볼수록 봄향에게는 리해되지 않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거기에 소모되고있는 귀중한 연유와 폭약, 로력은 또 얼마인가.
봄향은 이 문제를 단단히 빠개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270만산대발파구역에 자리잡고있는 채석장은 물론 청강기계화사업소 운수직장 그리고 3호개고현장에 나가 실태를 하나하나 료해하기 시작했다. 그 수자를 종합해본 봄향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3호개고에 들어간 막돌량은 수만립방에 달하였고 그것을 운반하기 위해 쓴 연유와 채석장에서 소비한 폭약, 전기, 정대, 정알수는 실로 엄청났던것이다. 여기에 가차도계선에서 쓴것까지 합치면 그 수량은 배로 증가될것이다.
봄향은 대계도계선을 맡은 시공부기사장 용길을 만나 회계를 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용길은 270만산대발파구역에 새로 전개하기 시작한 채석장에 나가있었다. 얼마전에 진행한 5만산발파이후 채석장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다보니 막돌운반이 지연되고있었던것이다.
용길은 그때 손에 기발을 들고 유압식굴착기가 커다란 돌들을 채석장구석에 모아놓도록 지휘하고있었다. 채석장의 모든 사람들과 설비들 그리고 공기의 흐름은 젊은 부기사장과 호흡을 같이 하고있었다. 장송, 보산간석지건설사업소의 전투원들은 굴착기가 큰 돌을 치워주면 한사람같이 달라붙어 잔 버럭들을 치우면서 채석장을 정리하고있었다. 채석장정리에 여념이 없는 용길의 온몸은 말그대로 땀투성이였다. 그의 작업복은 물바께쯔로 쏟아부은것 같이 땀에 푹 젖어있었다.
봄향은 용길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을 끌수록 피해는 더 커질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봄향은 용단을 내리고 용길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그러나 용길은 굴착기의 동음때문에 봄향의 인사말을 듣지 못한것 같았다. 봄향은 청을 높여 다시금 용길을 불렀다.
《부기사장동무지요?》
그제서야 용길은 뒤를 돌아보았다.
봄향의 청수하고도 아름다운 자태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2년전에 비하여 퍼그나 세련되여보였다.
용길의 입가에는 반가운 미소가 느슨하게 피여올랐다.
《동무가 어떻게?》
《전 국가검열성에서 파견되여왔어요. 현실에 발을 붙인셈이지요.》
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감정적색채가 섞인 말투였다. 용길의 입가에 비꼈던 반가움의 미소가 서서히 사그라졌다. 결국 그는 론문에 대한 면박의 대가를 치르러온 처녀의 마음을 눈치챈것이다. 자기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라는 용길을 바라보는 처녀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통쾌해졌다. 흥, 거만한 코대, 한번 겪어보라지…
하지만 군청색작업복을 맵시있게 차려입은 봄향을 본 용길은 심중해졌다. 봄향은 그의 인상을 통해 그때일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너무 모질어, 랭돌같이 차디찬 사람.… 용길의 표정은 한결 침착해졌다.
봄향은 그의 침묵을 달리 해석한듯 자신만만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따로 할말이 있는데 방해되지 않겠어요?》
심각한 처녀의 얼굴을 지켜보던 용길은 기발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나서 봄향이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요?》
봄향은 그동안 자기가 장악한 물자소비정형에 대한 통계자료를 용길에게 내주었다.
《이 자료를 좀 보아주세요.》
거기에는 백중사리가 있은 이후 3호개고에 들어간 막돌량과 그 운반에 쓰인 연유량 그리고 채석장을 만드는데 소모된 폭약, 정대, 정알, 전기량과 로력일공수가 적혀있었다. 자료는 정확했다.
체질화된 면밀성이 한눈에 알리는지 통계자료를 한장한장 번져나가는 용길의 볼편살이 푸드득 뛰였다. 어째서 건설장적으로 가장 예민한 급소를 찌르는가 하는 인상이였다. 봄향은 긴장해졌다.
또다시 개인적인 반감을 품는것일가, 아니면 나의 신랄한 분석을 무시하자는것일가.
처녀는 호기심을 품고 투영된 용길이의 난감한 기색을 예리하게 주시하다말고 입을 열었다.
《혹시 자료가 과장된건 아니예요?》
《아니, 정확하오.》
용길의 대답은 명백했다.
그에게서 그 어떤 하소연이나 변명의 말을 들으리라고 타산했던 처녀는 오히려 제켠에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용길은 그 자료를 봄향이에게 돌려주며 서글픈 어조로 되뇌이는것이였다.
《결국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이란 말이지요.》
《지금 여기선 귀중한 국가자재들이 랑비되는 정도가 아니라 탕진되고있어요. 난 그게 가슴이 아파서 그러는거예요.》
용길은 말이 없었다. 봄향의 주장은 백번 옳은것이였다. 그러나 실태는… 마음을 짓누르는 책임감의 중압을 애써 누르며 용길은 완강하게 주장했다.
《안타까운 심정은 우리가 더 하오.》
봄향의 반발심은 더욱 커졌다.
《그러면 공사를 중지해야지요.》
용길이의 구리빛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그는 불을 토하듯 절절하게 말했다.
《중지? 봄향동무, 난 동무가 손님이 아니라 주인의 립장에서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했으면 하오. 주인의 립장에서 말이요.》
놀라고 당황한 봄향은 깔끔한 눈길로 용길을 바라보았다.
《그럼 제가 손님?…》
《그렇소,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되오.》
봄향은 자기가 용길에게서 두번째로 면박을 받고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에 대한 몰리해, 자존심위주의 고집… 이것이 자기에 대한 용길의 평정인듯싶었다. 봄향은 온몸에서 기력이 싹 빠지는감을 느꼈다.
용길은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묵살하고있는셈이다. 봄향은 이것이 분했다. 그리고 억울했다.
(그러니 결국 이 사람은 나를 실태도 모르고 덤비는 철부지로 보고있구나.)
잠재웠던 수치감이 처녀의 가슴을 사정없이 긁었다. 봄향은 환기된 쓰라린 모멸감을 털어버린듯 오연하게 되뇌이였다.
《좋아요. 동무의 립장이 정 그렇다면 더 할말이 없군요.》
처녀는 반박이 튀여나오는것을 혀를 깨물어삼키며 그곳을 떠났다.…
봄향은 지금도 자기가 체험했던 그 모욕을 삭일 길이 없었다. 그는 중학시절이나 대학시절 그리고 성에 배치된 이후에도 뭇사람들의 호의와 따뜻한 눈길에 습관되여온 처녀였다. 그런데 용길에게서 랭대를 받은것이다.
봄향은 새로 기사장이 된 용길이가 앞으로 계속 자기의 인격을 무시할것이며 타성으로 굳어진 자기과신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도당일군이 떠나가고 용길이가 자기 자리에 앉았을 때에야 봄향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박운섭이 자리에서 일어나 리성민을 다시금 가차도계선의 작업책임자로 발표하였다.
간부발표가 끝나자 관리국직맹위원장이 연탁에 나섰다.
《동무들, 이번에 관리국에서는 군중의 지혜를 발동하여 188메터의 류실구간을 점령하기로 했습니다.》
이어 그는 대중적기술혁신안을 위한 현상모집요강을 발표하였다. 요강이 발표되자 회의참가자들은 서로가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분분한 론의들을 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명도가 그루를 박으며 강조했다.
《방금 요강을 발표했지만 여기서는 누구도 례외로 될수 없습니다. 자재부국장동무!》
맨 구석에 앉아 팔짱을 지른채 두눈을 감고있던 문섬길이 제김에 놀란 봄꿩처럼 자리에서 화닥닥 일어났다.
그는 얼굴이 갱핏하고 키가 성큼한데다가 메밀눈을 한 중년사나이였는데 어딘가 모르게 매끄러운 인상을 주었다.
《동무도 한가지 내놓소.》
자라목이 된 섬길은 발뺌을 하며 구실을 댔다.
《저야 자재나 보장하면 되지 뭘 그런데까지 삐치겠습니까?》
그러자 회의참가자들속에서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박운섭이 얼빤한 엉너리로 눙치려드는 섬길을 엄하게 질책했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일군답지 않게.》
《예, 알았습니다.》
여직껏 말없이 앉아있던 간석지건설지도국 류도흥처장이 한마디했다.
《국장동무, 대중적기술혁신안에서 뭐가 좀 나올것 같구만. 그런데 그걸 기술적으로 안받침하는게 문제요.》
용길이 자리에서 일어나 확신성있게 대답했다.
《그 문젠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이던 도흥은 미타한듯 지꿎게 말을 계속했다.
《기술보장사업이 따라서지 않으면 대중적기술혁신안이 마구잡이가 될수 있소. 이걸 경계해야 하오.》
《알겠습니다.》
명도와 운섭을 비롯한 관리국일군들도 모두 도흥의 의견에 동감인듯 머리들을 끄덕이였다.
봄향은 진취적이면서도 정열적인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품고 회의흐름에 귀를 강구고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수도건설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건설지휘관이였다. 수도건설장에 떨어지는 그 어떤 어려운 과제도 류도흥에게만 맡겨지면 멋지게 수행되군 하였다. 그 시절 류도흥은 주저나 답보를 모르는 창조력의 남다른 선구자였다. 그 위훈으로 하여 그는 일군으로 성장하였고 오늘은 간석지건설지도국의 시공처장으로 사업하고있는것이다.
이번에 봄향이가 간석지건설장에 오겠다고 했을 때에도 아버지는 두말없이 지지하였다.
《거긴 로동조건이 생각과는 딴판이란다, 말그대로 날바다에서 자연의 광란을 맞받아나가야 하니까. 각오를 단단히 가져야 한다.》
《난 봄바람에 취하자는게 아니예요, 불도가니같은 간석지건설장에 발을 붙이고 대학시절부터 무르익혀온 간석지에 대한 론문도 완성하자는거예요.》
딸의 이 실토정을 듣고있던 어머니가 한축 끼여들며 야단을 쳤다.
《에그, 무슨 꿈같은 소리냐. 이미 대학기간 학위까지 받은 네가 나이가 작니? 얼싸한 총각이나 만나 시집을 잘 가면 그만이지 사서 고생을 해?》
안해의 말을 듣고있던 도흥이 딸의 편역을 들었다.
《지금이 어느때게 시집타령이요? 아무렴, 우리 봄향이가 시집을 잘못 가겠소? 얘야, 네 생각이 대견하다. 암, 그래야지. 아버지와 함께 가자. 들끓는 현실속에 뛰여들어야 알찬 열매를 맺는 법이다.》
그리하여 봄향은 아버지와 함께 간석지건설장으로 오게 된것이다. 봄향은 아버지가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는 바람에 생각에서 깨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