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1

 

밤사이에 터진 사납고 거친 바람은 먹장같은 비구름을 몰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는 폭풍으로 하여 바다는 미친듯이 노호하고있었다. 갈기를 날리며 달려든 파도는 해안방조제들이며 너럭바위투성이인 바다기슭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다음 파도는 하늘을 찌를듯이 길길이 솟구쳐올라 사방으로 흩어지며 물보라를 일구었다. 중압이 드리운 하늘과 집채같은 검푸른 파도우에는 흐릿한 안개발이 서리였다. 하늘에서도 변덕스러운 자연의 광란이 시작되였다. 층층겹겹으로 내리드리웠던 먹장구름속에서 하늘을 찌를듯 한 칼날같은 불줄기가 번쩍 하더니 뒤따라 지동치듯 우뢰소리가 울리며 창살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푸른 섬광은 이따금 감때사나운 광란앞에 몸부림을 치고있는 모든것을 간단없이 조명하고있었다.

이날은 한해치고도 자연의 횡포가 극단에 달하군 하는 백중사리날이였다. 어찌나 그 사리가 사나왔으면 바다사람들도 백중사리가 아니라 백정사리라 하였겠는가.

개고쪽에 불길한 조짐이 생겼다. 사납게 올리밀고 내리미는 밀물과 썰물에 의해 생겨난 대와류현상이 휑하니 입을 벌리고있는 개고바깥쪽에서 제방밑뿌리를 훑으며 또다시 요동하기 시작했다.

밤새껏 잠들지 못하고 3호개고를 지키고있던 간석지건설자들의 눈앞에서는 가슴저리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지고있었다. 수십메터에 달하는 제방뚝이 또다시 대와류에 휘말리며 더운물에 얼음덩이가 녹듯 서서히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고있었던것이다. 간석지건설자들의 땀과 넋과 열이 그대로 슴배인 제방뚝이 자연의 광란앞에 무기력하게도 수장되고있는것이다.

《아! 제방이 무너지는구나.》

꺼져들어가는 제방뚝을 붙잡기라도 하듯 두팔을 벌리고섰던 나이든 한사람이 넋을 잃고 바다물속으로 첨벙첨벙 걸어들어갔다.

뒤미처 그를 따라온 보통키에 몸이 다부진 한 사나이가 그의 팔소매를 왁살스럽게 틀어잡고 소리쳤다.

《비서동지, 진정하십시오.》

당비서인 박운섭의 두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올라 고랑진 두볼을 적시며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는 좀처럼 자기를 진정하지 못하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래 국장동문 이게 분하지도 않소?》

국장으로 불리운 사나이―채명도는 입술을 사려물며 자제하려고 애쓰며 맞받아 소리쳤다.

《분합니다, 하지만 온 관리국이 우리를 지켜보고있습니다.》

그 말에 운섭은 정신을 차린듯 얼핏 마주보더니 입안소리로 웅얼거렸다.

《안됐소, 나갑시다.》

명도는 나이든 당비서가 안심치 않았던지 그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서로 의지하며 제방뚝까지 걸어나온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맥없이 주저앉았다.

광란하던 자연의 횡포가 멎자 바다는 얌전한 새색시처럼 조용해졌다. 하늘에 떠오른 해가 보내는 빛이 잔파도에 실려 더없이 아름답게 안겨왔고 비릿하고 습한 바다바람이 귀전을 어루만지며 가볍게 불어오고있었다. 구름 한점없이 맑게 개인 푸른 하늘에서는 흰 갈매기들과 따오기들이 즐겁게 울어대며 날아옜다.

공기와 물과 대지의 청신한 숨결이 훈풍에 실려와 페부로 흘러들며 상쾌한 기분을 자아냈다. 명도에게는 노죽을 부리는 자연의 이 조화가 마치 딴세상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기의 온몸이 사정없이 얻어맞고 허울만 남은것 같이 생각되였다.

7년전인 1997년 8월 21일에 당하였던 대자연재해가 그의 눈앞에 주마등같이 펼쳐졌다.

그때 명도는 대계도간석지제방보강공사에 필요한 자재문제때문에 평양에 가있었다.

뜻밖에도 태풍3호와 해일이 서해안일대를 휩쓴다는 일기예보가 전해졌다. 그는 그날중으로 차를 돌려세워 간석지건설장으로 내려왔다.

사나운 비바람의 피해를 입고 넘어진 도로의 전주대들이며 가로수들을 보면서 명도는 불안한 마음을 눅잦힐수가 없었다. 그는 기승을 부리는 자연의 그 광란과 횡포가 간석지건설장에 예측할수 없는 타격을 가하리라는 예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럴수록 대계도간석지제방보강공사일정을 바싹 당기지 못한 자신이 후회되였다. 물론 대계도간석지제방이 완성된 후 국가적인 대상건설때문에 보강공사에 손을 댈수 없는 조건도 있었지만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데다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많은 시간을 놓쳤던것이다. 명도에게는 보강공사를 진행하지 못한 제방이 마치 우물가에 아이를 내다세운것처럼 늘 불안하게 생각되군 하였다.

두서없는 이런 생각들을 거듭하며 명도가 간석지건설장에 도착한것은 하루가 저물어갈 어슬녘이였다. 그가 예감한대로 간석지건설장은 참혹한 파괴상을 펼쳐보이고있었다. 애써 막아놓았던 대계도간석지제방의 1호방조제에서는 두개 지점에서 각각 150메터와 162메터 그리고 2호방조제에서는 104메터, 3호방조제에서는 350메터나 뭉텅 끊어져나가고 이미 내부망공사를 끝내고 농사를 짓던 수천정보의 간석지땅이 온통 바다물에 잠겨있었던것이다.

명도는 그때 너무나도 억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하여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사나이울음을 터뜨렸었다. 온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겪다보니 생활이 어려워지고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이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고 덤벼들고있던 때였다. 간석지제방의 복구를 위해 어디 가서 손을 내밀데도 없었고 국가적인 방조에 대해서 생각해서도 안되였다.

명도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가 닥쳐왔다는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하루빨리 부강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날과 달과 해를 이어가시며 선군혁명령도의 초강도강행군을 계속하고계시였다. 명도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강인담대한 배짱과 담력에 의하여 조국이 어떻게 변모되고 인민들이 그이의 령도따라 어떻게 일떠서는가를 절감하였다.

(우리 장군님의 초강도강행군길을 따라 우리도 더욱 분발하여 한시바삐 간석지제방을 복구하자!)

그리하여 간석지건설자들은 그처럼 어려웠던 그 시기 1호, 2호 간석지제방을 힘들게 복구하고 3호제방마감막이 피해복구에 총돌입했던것이다. 이제 남은 구간은 98메터였었다. 그런데 이번 백중사리때 90메터구간이 다시 밀려나가는 바람에 또다시 돌파해야 할 구간은 188메터로 넓어진것이다.

지금 명도의 머리속에서는 담력과 의지에 대한 개념이 쉬임없이 맴돌고있었다.

(결국 우리에게는 담력이 부족했다. 의지가 약했다.)

명도의 짙은 눈섭밑에서는 동요하고 주저했던 자신을 타매하는 반발과 결심이 강하게 굳어지고있었다. 흩어진 그의 반곱슬머리칼은 해풍에 흩날리고있었고 볼로부터 턱에 이르는 하관에는 고집스러운 기상이 비껴있었다. 두툼하면서도 좀 클사한 그의 입술과 뭉툭한 코, 해볕에 그슬은 고동색의 얼굴빛은 강의한 그의 의지를 강조해주었다.

(아니, 간석지의 주인인 내가 생각이나 굴리고있어서 되겠는가?)

이런 생각이 체념과 번민을 초월하여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저며내는듯 하였다.

무거운 상념의 안개속을 헤매고있는 명도의 귀전에 운섭의 말이 들려왔다.

《담배있소?》

《예.》

자기의 생각을 딴데 두고있던 명도는 작업복웃주머니를 더듬었다. 그러나 그가 찾아낸 담배갑은 바다물에 젖고 형체를 알아볼수없이 짓이겨진것이였다.

《?》

당황해하는 명도를 바라보던 운섭은 랑패라는듯 이마살을 찌프리더니 부시럭거리며 자기 호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것은 비닐쪼박에 정히 싼 강냉이떡과 염장무우였다.

《한개씩 들기요.》

명도는 생각이 없었던지 한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운섭은 그의 손에 강냉이떡 두개를 쥐여주더니 《정말 자기를 이겨낸다는게 헐치 않소.》 하고는 강냉이떡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명도의 곁에 염장무우토막을 놓아주었다.

명도는 권에 못이겨 떡도 들고 반찬에도 손을 가져갔다. 보매 운섭의 안해가 강냉이가루를 반죽하여 가마에 붙인것 같은 꼬장떡인데 굳어서 씹기가 여간 말째지 않았다. 염장무우도 짜기보다는 차라리 쓴맛이 더했다. 하지만 명도는 그것을 참을성있게 씹어넘겼다. 이제 혼란된 건설장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면 끼니를 건늘수도 있었기때문이였다.

운섭은 무표정한 눈빛으로 명도를 바라보며 한마디 던졌다.

《이거 우리가 저 3호개고를 꽤 막긴 막을가?》

명도는 벌써부터 류다른 그 물음의 진의도를 잘 알고있었다.

당비서는 지금 거듭되는 자연의 광란속에서 국장의 배짱과 의지가 무디지 않았는가 하는데 신경을 쓰고있는것이다. 명도는 그 대답에 준비되여있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말이 나가지 않았다.

운섭은 멋적은듯 한참 갑자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맥살이 나는구만.》

철문같이 굳게 닫겨있던 명도의 입에서 퉁명스러운 말이 터져나왔다.

《저도 분합니다. 하지만 저 바다에 대구 분풀이를 할수야 없지요.》

《그래두 국장동문 행복자요. 피해를 입었지만 물러서겠다는 부하들이야 없지 않소.》

명도는 어설핀 웃음을 지으며 당비서가 이 국장이 사람들에게 보따리를 싸줄 궁리를 하는것이 아닌가 하고 넘겨짚어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려운 간석지제방건설과제를 놓고 운섭이 적용하는 정신력발동의 방법이기도 했다. 명도는 시간의 촉박감을 느끼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사고현장에 가보아야 하겠습니다.》

《수고해주, 난 눈을 좀 붙이겠소.》

그러나 명도는 운섭이가 결코 쉴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누구보다도 잠을 자지 않고 맥을 놓은 건설자들의 심장에 불을 달 궁리를 하며 몸살을 앓는 사람이 다름아닌 그였기때문이였다.

명도가 사고현장에 이르니 개고바닥은 초당 7~8메터의 류속을 가진 2억 5천립방메터의 바다물이 통과하다보니 밑으로 35메터나 패워져있었다.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는 아직도 바다물이 세차게 흐르고있었다. 허물어져나간 방조제에서 나온 부재들이며 돌들은 어디로 밀려나갔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가차도쪽에서는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와 로하간석지건설사업소, 주택보수사업소사람들이 작업공구들과 림시천막들을 뒤계선으로 이동하느라고 법석하고있었다.

맞은켠 대계도계선을 차지한 사업소들의 경우도 같았다.

명도는 대뜸 화를 내며 누구에게라없이 소리쳤다.

《이건 뭐요? 누가 이동하라고 지시했소?》

왁짝 떠들며 이동준비를 서둘던 전투원들의 일손이 일시에 멎었다. 가차도계선을 림시로 맡고있는 기술부기사장 리성민이 명도앞에 나타났다.

《그건 제가…》

《동문 이 후퇴가 뭘 의미하는지 아오?》

명도의 이 질문은 날카로우면서도 단호하게 들렸다.

《우리에게는 한치도 물러설 자리가 없소. 만일 오늘 한걸음 후퇴하면 래일은 열걸음, 그다음은 백걸음 물러서게 될거요. 그럼 이 제방은 누가 막겠는가? 누가!》

《누가!》라는 명도의 피타는 절규가 건설자들의 심장을 후두둑 뛰게 만들었다.

성민은 자기의 잘못을 느낀듯 죄송스럽게 사죄했다.

《현계선을 그대로 고수하겠습니다!》

《고수할뿐아니라 잃어버린 계선까지 아니, 개고를 점령할 때까지 계속 내밀어야 하오. 여기 성욱동무 있소?》

《예.》

다사기계화사업소사람들속에 섞여있던 키가 크고 얼굴이 넙적한 철색의 장년사나이가 그앞에 나섰다.

《굴착기들과 화물자동차들에 발동을 거시오. 그 소리가 우리 건설장의 숨소리란 말이요.》

《알겠습니다.》

또다시 전투가 시작되였다. 대계도 270만산대발파구역에서는 막돌을 중량화물자동차들과 자동부림배에 싣기 시작했으며 쇠그물엮기작업도 동시에 진행되였다.

장송간석지건설사업소, 선박사업소, 보산, 석화, 곽산 간석지건설사업소와 청강기계화사업소는 서로 손발을 맞추며 류실된 제방을 다시 막기 위한 전투를 벌렸다. 이와 함께 가차도계선에서는 다사, 로하간석지건설사업소와 주택보수사업소, 다사기계화사업소전투원들이 한덩어리가 되여 류실된 3호개고를 점령하기 위해 막돌운반전투를 벌렸다. 신의주부재공장에서는 부재생산과 골재운반전투를 벌렸다.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치렬한 전투가 벌어지는데 맞게 건설자들은 교대로 밥을 날라다 먹으면서 한시도 전투장을 떠나지 않았다. 이처럼 3호개고전투장에서는 붉은기가 계속 휘날리고 막돌투석작업이 진행되였다.

이때 대계도계선을 맡고있는 시공부기사장 신용길이 기관선을 타고 가차도계선으로 넘어왔다.

명도는 남달리 총명하고 책임성이 높은 그의 출현이 류다른 의미를 띠고있다는것을 눈치챘다.

국장에게 인사를 건늬고난 용길은 이렇게 사유를 설명했다.

《국장동지, 국제재해보험기구대표단이 도착한답니다. 평양에서부터 간석지건설지도국 류도흥시공처장이 동행한다는것 같습니다.》

명도는 뜻밖의 정황앞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가장 바쁠 때이지만 소홀히 대할수도 없는 손님들이였다.

명도의 심중을 눈치챈듯 용길이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다.

《까짓 돌려보내겠습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명도는 심중하게 말했다.

《덤비지 마오. 국제기구의 대표단을 례절없이 돌려보내면 안되오. 이런 땐 화를 복으로 전환시켜야지. 우리가 한두해도 아니고 몇십년째 제국주의자들의 고립과 압살, 봉쇄속에서 어떻게 싸우고있는가를 보여주잔 말이요.》

그의 말뜻을 리해한 용길의 낯에 대뜸 결연한 빛이 어렸다.

《알겠습니다.》

용길은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국제재해보험기구대표단이 건설장에 나타난것은 정오무렵이였다. 모두 다섯명으로서 유럽인이 세명, 아시아인이 두명이였는데 그중 키가 자그마한 아시아녀성은 통역원이였다.

류도흥처장이 그들과 동행하고있었다.

이들에 대한 안내를 용길에게 맡기고난 명도는 이번 대사리때 파손된 해상굴착기와 화물자동차들의 수리정형을 알아보러 다사기계화사업소에 나갔다. 다사기계화사업소에서는 해상굴착기와 화물자동차수리전투로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명도는 신용길이 국제재해보험기구대표단쯤은 능히 처리하리라고 믿고있었다. 그것은 용길이 함흥수리동력대학시절에 영어는 두말할것도 없고 자습으로 로어와 중어, 일어를 뗀 수재형청년인데다 능력이 있고 주견이 센 현장일군이였기때문이였다.

이때 휴대용손전화기에서 신호가 왔다. 명도가 손전화기를 동작시켜보니 그것은 용길의 호출이였다.

《무슨 일이요?》

《국장동지, 대표단성원이 국장동지를 꼭 만나야겠답니다.》

《리유는 뭐요?》

《그건 만난 다음 말하겠답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소.》

이때 류도흥의 목소리가 손전화기에서 울려나왔다.

《국장동무, 이 사람들이 쉽게 물러설것 같지 않은데 시간을 좀 내오.》

한동안 착잡한 생각을 굴리던 명도가 결심을 내렸다.

《그럼 제 가겠습니다.》

다사기계화사업소를 떠난 《갱생》승용차는 이도포를 거쳐 3호개고와 잇닿은 제방길로 달리고있었다. 명도는 자기를 만나자는 국제재해보험기구대표단성원의 제기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용길의 안내를 받으며 피해현장도 보았을것이고 충분한 기술적인 인식도 가졌을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꼭 자기를 만나자고 하는지 그것이 의문스러웠다.

3호개고에 도착한 명도가 차에서 내리는데 키가 성큼하고 고수머리인 한 사나이가 그앞에 나섰다. 격자직샤쯔에 통이 좁은 바지를 걸친 그 사람의 한쪽어깨에는 신식수자식사진기가 걸려있었다. 야릇한 웃음을 머금는 그의 입술사이로 해빛에 반짝이는 금이발이 들여다보였다. 그 사나이의 앞가슴에는 《수리력학연구소 박사 진맹달》이라는 표쪽이 매달려있었다.

맹달은 인사말을 건네기 바쁘게 명도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난 네데를란드와 미국에서 수리력학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을 나왔습니다. 방금 피해현장을 돌아보았는데 참 고생들이 많습니다.》

명도는 그 사나이의 동정어린 말투가 기분에 거슬렸으나 례의를 지켜 공손히 응수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전에 우리는 뜻하지 않은 태풍해일피해로 대략 770메터의 제방을 류실당했습니다. 그사이 우리는 류례없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호방조제와 2호방조제를 복구하고 지금은 3호방조제 마감피해막이대책을 세우고있습니다.》

진맹달의 입가에는 야릇한 미소가 어리였다.

《그게 가능할가요? 그런 전례는 없었는데요.》

명도는 개의치 않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우린 해냅니다!》

그러자 맹달은 유럽인들처럼 두손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고집이 결코 현실로 되는건 아니지요. 내 추산에 의하면 지금까지 대략 90만립방메터의 토량과 150만립방메터의 석재가 소비됐을것 같은데 무모한 모험같지 않습니까?》

명도는 맹달의 이 추산이 예상외로 정확성을 띠는데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곁에 섰던 도흥도 경탄하는 인상이였다. 그러니 그는 무시할수 없는 수리력학전문가가 분명했다.

놀라는 명도를 회심의 미소를 짓고 바라보던 맹달은 같지않게 이렇게 시까슬렀다.

《당신들은 지금 환경과 관련한 세계적추이를 알고있습니까?》

명도는 그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이들의 곁에서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도흥이 한마디했다.

《그건 제가 좀 압니다. 일부 나라들에서는 이미 진행하던 간석지개간이나 대륙붕개발을 걷어치우고있지요. 있는 그대로의 환경을 다음세대에 물려준다면서 말입니다.》

진맹달은 론리정연한 도흥의 이 주장에 긍정을 표시하더니 명도에게 물었다.

《막대한 자재와 설비, 로력을 요구하는 이 간석지건설이 대체 무엇을 위해 필요합니까?》

명도는 긴 말을 하고싶지 않았다.

《비록 우리는 고생을 하지만 후대들에게 더 넓고 풍만한 조국땅을 넘겨주자는것이요. 이것이 다름아닌 우리의 위대한 장군님의 뜻이요!》

맹달은 확고한 신념에 넘친 명도의 대답을 듣고 자기의 주장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것을 느낀 모양 잠시 얼떨떨해있었다. 그렇지만 자기의 주견을 세우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겠던지 《보다싶이 근 7년동안 당신들이 공들인노릇이 하루아침에 허사로 되지 않았습니까? 달의 인력을 차단하기 전에는 이 공사가 불가능합니다. 이건 엄연하고 자명한 리치인 동시에 과학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기사장선생?》 하고 용길을 건드렸다.

《…》

신용길은 뜻하지 않은 질문을 받자 할말이 궁했던지 얼굴만 붉혔다. 도흥이 독촉했다.

《어서 대답하오, 부기사장동무.》

이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고섰던 명도가 참지 못하고 한걸음 나섰다.

《천만에, 만일 그 달의 인력을 이기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진맹달의 입가에는 얄궂은 비웃음이 비끼였다.

《당신네 나라에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는 속담이 있는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하겠소. 이 제방을 막는다면 말이요.》

명도는 배심을 가지고 그에게 당당하게 대답했다.

《두고봅시다, 누가 이기나.》

맹달도 지지 않으려는듯 이렇게 맞대꾸질을 했다.

《그건 나 역시 같습니다.》

대표단이 떠나간 뒤 명도는 용길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부기사장동무, 동문 오늘 그게 뭐요? 그래 이것이 단순한 문제같소? 사상과 사상의 대결이요. 우린 죽으나사나 장군님의 배짱으로 맞서고 살아나가야 해!》

명도는 지식과 능력은 있으나 배짱이 부족한 용길의 결점을 새롭게 알게 된것이 불만스러웠다.

용길은 머리를 수그리고 아무 말도 못했다.

용길이 돌아간뒤 명도는 오래동안 그를 두고 생각을 거듭했다. 남다른 지적능력과 대바른 성격, 풍부한 현장경험과 문제포착의 정확성, 조직적수완과 통솔력… 이런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찬탄을 받고있는 용길이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달의 인력을 이기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당당하게 소리치지 못하는가? 명도는 용길이에게 실무적인 능력만 우선시하려는 약점이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용길에게서 나타난 사상적 빈 공백은 명도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그들사이에는 상하라는 종속관계보다 간석지건설장에서 맺어진 남다른 정이 있었다.

(건설실무에만 빠지다보니 그의 마음속에 신념의 대를 확고히 세워주지 못했구나.)

명도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3호개고를 향해 승용차를 달리게 했다. 전투장은 낮에 이어 밤에도 부글부글 끓어번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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