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8 회)
종 장
세월이 흐른 뒤
1
일생 일세대는 폭풍우와 같다는 말이 있다. 더구나 영광과 보람으로 가득찬 세월은 더 빠른 법. 리승기는 제 나이 87살에 이르렀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두 마음은 아직 청춘이지.)
흔히 늙은이들이 자신을 두고 하는 생각이다.
옛사람들이 세월의 흐름을 흐르는 물에 비유한것은 옳은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세월의 류수를 막을수는 없다. 허나 그보다 인간의 상상과 행동, 창조적탐구와 열정은 더 막을수 없으며 그것은 세월의 흐름을 앞질러 걷잡을수없이 미래에로 달린다.
리승기는 느닷없이 이런 상념에 잠겨 가락맞게 은은히 들려오는 밤렬차의 차바퀴소리에 귀기울이고있었다. 그는 상급침대 하단의 푹신한 자리에 몸을 반쯤 뉘이고 무릎관절의 로쇠로 하여 말을 듣지 않는 제 다리를 원망스레 내려다본다. 벌써 1년째 자신이 민망스러울 정도로 병원과 가족과 친지들이 치료를 힘써주는데도 그 기름기가 말라버린 관절(그자신의 비유이다.)이 본시대로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누워서라도, 남의 시중에 얹혀서라도 우리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조선지식인대회라는 큰 회의에 참가한다고 생각하니 어린애마냥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런 성대한 회의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처럼 왜 이토록 흥분하는것인가?
1년전만 해도 최고인민회의는 물론 나라의 정사를 론하는 큰 회의들에 가면서 엄숙한 심정에 휩싸이기가 일쑤이더니 지금은 자기의 간절한 소망이 실현되였다는 그 한가지 사실로 하여 마음이 그저 들떠지기만 하는것이다.
은근한 만류, 로골적인 걱정, 진심으로 되는 동정… 곁의 사람들이 표시하는 그 모든 형형색색의 감정을 다 물리치고 어쨌든 초지를 굽히지 않고 대회장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그는 자못 흐뭇하기까지 하였다. 말석에라도 참가해서 더없이 영광스러운 이 자리를 양보할 마음은 없었던것이다. 흔히 늙은이들이 제 고집이 꺾이지 않았을 때 느끼는 그런 일종의 쾌감에 잠겨 약간 몸을 돌려 어둠에 싸인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캄캄한 바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창유리는 침대칸의 불빛을 반사할뿐이다. 방금까지 발치에 앉아있던 서기도 상단으로 올라가 잠이 들었다. 여러 사람이 불편하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그한테 왔다가 갔다. 모두 지식인대회에 같이 참가하는 대표들이다.
그를 걱정하여 왔다간 사람들중에는 지방당책임일군들은 물론 과학원안의 박사들과 소장들이 있었으며 맨나중에는 국제과학토론회에 갔다온지 열흘밖에 안되는 한 젊은 연구사도 찾아왔었다.
한 연구소의 소장으로 이제는 일흔살을 훨씬 넘긴 리재업이도 그리고 석유화학과 합성수지분야에서 권위자로 된 방하민교수도 같이 와서 불빛에 희슥한 머리칼을 은빛으로 번쩍이며 앉아있다가 갔다.
늙고 젊은 많은 원사, 교수, 박사, 연구사들이 이 통행렬차에 함께 타고 평양으로 가고있다. 그들은 떠나서 오래동안 흥분을 누르지 못해 매 침대칸마다에서 담소들을 하더니 지금은 잠이 들었는지 침대칸의 복도조차 조용해지였다.
렬차는 분수령으로 치달아오르면서도 별로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불빛이 환한 어느 한 역구내가 지나간다. 역명판이 피끗 보이다 사라졌다, 마치 이 로정의 한 구획을 표시하는 리정표와도 같이.…
문득 지나온 인생에서 큰 전환점으로 된 리정표들이 얼핏얼핏 머리속에 떠오른다.
리정표… 리정표…
그중에서 1968년 6월에 있은 일… 함흥지구를 현지지도하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함남도당회의실앞에서 리승기박사한테 청진에 며칠 먼저 들어가 화학섬유공장의 실태를 료해할 과업을 주시였다.
과학서기와 함께 청진에 들어간 리승기는 실태료해과정에 공장의 기술개건사업보다 기술자들과의 사업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과학원 함흥분원의 실태까지 겹치여 마음속의 번민에서 벗어날수 없었던 리승기는 무엇인가 수령님께 말씀드리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심정으로 바재이고있었다. 그 마음을 알아주신듯 수령님께서는 검열총화가 있은 날 저녁에(모임은 휴양소문화회관에서 있었다.) 리승기한테 말씀하시였다.
《리선생은 오늘 저녁 여기서 나하구 같이 쉬면서 얘기나 좀 나눕시다.》
휴계실의 천정에서는 무리등이 고요히 빛을 뿌리고 방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
문득 수령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나두 리선생한테 하고싶은 얘기가 있구 리선생두 나한테 할말이 있을거라구 생각해서 이렇게 저녁을 함께 지내자구 했습니다.》
《수령님.…》
결심이 확고했던 그만큼 리승기는 수령님을 우러르는 믿음과 격정에 목이 메여왔다. 평상시엔 온화하면서도 때로 놀랄만큼 곧은 성미인 리승기도 이 순간에는 약간 좀자르지 않을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한손으로 리승기의 팔소매를 감싸듯 잡아주시면서 그의 말을 재촉해주시였다.
《난 지금 리선생의 조언을 받구싶은 심정입니다.… 우린 손잡구 주체공업을 창설했는데 무슨 간격이 있을수 있겠습니까. 오늘 총화모임에 참가하고 리선생두 생각되는바가 있었으리라구 봅니다.》
《수령님, 고맙습니다. 제 그럼…》
《말씀하시오, 말씀하시오.》
《제 보기엔 지금 당의 의도에 맞지 않게 인테리혁명화가 일부 잘못 집행되는것 같습니다.》
리승기는 자제력을 발휘하면서도 숨김없이 터놓기 시작했다. 과학원안에서도 사상문제를 곧 사람문제로 보는 편향들을 이실직고하면서 하나하나 터놓기 시작했다.
리승기의 말을 주의깊이 들으시던 수령님께서는 심뇌의 표정으로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여기에서 느낀것두 그 문제입니다.… 과학원실태두 제때에 말씀해주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리선생이니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주지 누가 해주겠습니까.…
인테리의 혁명화문제에서 편향이 있다는걸 평양에서부터 내려오면서 생각했구 이번에 올라가면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구 했더랬습니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주체를 세우자고 인테리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는데 일부 일군들은 마치 혁명화가 목적인것처럼 생각하면서… 말하자면 목적과 방도가 뒤바뀌였단 말입니다. 과학자들의 혁명화란 과학실천과 연구사업을 통하여 하는것인데… 리선생의 얘기까지 듣고보니 하루라도 빨리 바로잡아야 할것 같습니다.》
리승기는 그 순간이 길었던지 짧았던지 후일에도 기억하고 가늠할수가 없었으니 다만 경애하는 수령님의 곁에서 매번 그러하지만 이 시각에도 자신이 또다시 새로이 태여난다는 그 숭고하고도 명백한 느낌을 가슴깊이 체험할뿐이였다.
흥분과 격동에 못이겨 리승기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수령님, 감사합니다.》
《이런 일을 도와줘서 내가 도리여 리선생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바로 그 이튿날이 6월 14일이였었다. 하루면 다녀올수 있는 북부탄광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도 뒤로 미루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함경북도안의 지식인들이 모인 휴양소문화회관의 소박한 회의장소에서 후일 그이의 저작집에 수록된 《우리 당의 인테리정책을 정확히 관철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불후의 고전적로작으로서 그 의의와 생활력이 날이 갈수록 더욱 뚜렷해진 연설, 인테리들의 운명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된 연설은 이렇게 한 과학자와의 담화가 있은 그 다음날 아침에 세상에 발표되였던것이다.
…렬차는 평양으로 계속 달리고있었다.
차창밖에 비낀 어둠속에 언뜻 불빛을 받으며 나타나는 역명판… 역이름을 분간해서 읽을수도 없이 순간에 지나간다. 허나 그것 역시 지나간 나날에 있었던 수많은 리정표들의 하나처럼 생각된다.
불시에 떠오르는 1983년의 봄날…
금수산의사당(당시)에서 과학자들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들만 참가한 협의회때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앞줄에 과학자들을 불러내여 앉혀주시고는 그들을 대견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과 함께 변함없이 걸어온 과학자동무들과 이렇게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로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대규모화학기지들을 건설할 토론을 하게 되니 정말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란 말입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우고계시였다.
리승기는 자기의 옆자리에 앉은 리재업을 보시고 수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함께 미소를 띠우지 않을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리재업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재업동무도 그새 많은 일을 했지. 남흥화학을 하면서 로력영웅칭호두 받았구… 사대주의주장과 서양사람들의 거만한 코대를 꺾구 공장조립을 우리 주장대로 해서 기일을 훨씬 앞당겼거던… 그러니 재업동문 주체가 섰지. 감자알콜로 고무를 만들겠다고 하던 때가 옛날이란 말이야.》
김일성동지께서는 크게 웃으시였다. 그러시던 수령님께서는 좌중을 둘러보시며 못내 서운하신듯 말씀하시였다.
《오늘 이 자리에 강영창동무랑 없는게 참 섭섭한 일입니다. 그는 과학원원장으로서도 많은 일을 했는데… 이런 자리에 그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수령님께서 언제나 잊지 않으시는 강영창이다. 강영창은 김두삼, 리재업과 같이 맨처음 수령님의 품으로 찾아왔을뿐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오직 수령님만 믿고 따르는데서 참으로 귀감이 될만 한 학자이며 일군이였다. 리승기도 그를 잊을수가 없었다. 나이는 자기보다 아래지만 수령님의 뜻을 받드는데서만은 항상 자기를 이끌어주다싶이 했었다. 수령님으로부터 무슨 과업만 받으면 밤중이라도 전화를 걸어주면서 의논을 했었다. 때문에 그를 과학원원장으로뿐아니라 인간으로 존경하고싶은것이 어쩔수 없는 심정이였었다.
얼마후에 수령님께서는 리승기한테 말씀하시였다.
《리선생이 나와 약속한대루 매일 만보걷기운동을 하고있다니 좋은 일입니다. 정신로동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육체적으로 너무 몸을 놀리지 않으면 인차 로쇠가 옵니다. 그러니 하루 만보걷기운동을 꼭꼭 하십시오. 우리 더 늙지 맙시다, 할일이 많은데.…》
리승기는 팔십이 다 돼오는 자기를 두고 오늘까지도 만나실 때마다 세심히 건강을 념려해주시면서 인생의 말년에도 삶의 보람을 잃지 않게 해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하해같은 사랑앞에 그때마다 목이 메이군 하였다. 운명의 로정에 서있는 리정표들처럼 역명판들이 어둠속에 나타났다 뒤로 사라져버렸어도 추억에 뚜렷이 남은 이런 순간들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렬차는 어느 한 역에 멎었다.
대표들을 인솔하기 위해 함흥에서부터 동행하는 당중앙위원회일군이 침대칸으로 조용히 들어와 새벽 3시라고 상기시키면서 리승기가 여전히 자지 않는것이 걱정스러워 《선생님, 조금이라두 눈 좀 붙여야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의무적으로 그래야만 한다는 어조가 오히려 고맙게 들렸다.
《알겠습니다. 그러지요.》
《불을 끌가요?》
《네.》
일군은 나가면서 불을 껐다. 그러자 차창밖으로 가까이 또는 멀리로 불빛이 보이였다. 산간마을의 탈곡장외등같기도 하고 어느 광산의 자그마한 갱구앞 불빛같기도 하였다.
리승기는 렬차의 가벼운 진동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았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어느덧 날이 희붐히 밝아오고있었다.
렬차는 평성을 지나고있었다. 새벽어둠을 밀어제치며 과학원청사와 리과대학건물이 보였다.
《저 리과대학을 졸업한 창직의 딸 성희도 이젠 우리 분원 연구소에서 당당한 연구사로 자라났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일찌기 리승기는 림창직의 자식들을 데려다 양딸로 자기 공민증에 올리고 공부를 시키였다.
그는 창직의 딸 성희가 제 아버지가 받은 위대한 수령님의 표창장을 귀중히 보관하는것을 보고는 목이 메여서 《성희야, 아버지, 어머니가 너희들한테 물려주는 이보다 더 훌륭한 가보가 어디에 있겠니.》 하고는 눈물이 헤픈 촌늙은이처럼 눈시울을 슴뻑이였었다.
성희는 리과대학에 갔고 리승기는 그의 학부형이 되였다. 성희의 결혼식도 리승기네 집에서 하였다. 림성희는 리과대학을 졸업한 뒤 지금은 바로 아버지의 제자였던 조상국의 밑에서 연구사로 일하고있다.…
렬차가 평성을 지나자 리승기는 흥분에 못이겨 아예 일어나앉았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서 그렇지 일어나 침대칸복도에 나서서 거기를 지나다니는 어느 대표든지 만나서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허나 막상 렬차가 평양역에 미끄러져들어가자 웬일인지 그의 마음은 갑자기 안정을 잃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2
고려호텔의 불밝은 방안에 앉아있는 리승기는 더더욱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대표들은 다 봉화산려관이나 모란봉려관에 들었는데 자기만이 유독 여기에 와있다는 그것때문이 아니였다. 사륜차에 앉아 호텔의 승강기로 오를 때부터 아니, 그 이전 밤렬차로 함흥을 떠나 평양으로 달리기 시작했을 그때부터 실은 자기가 정말 로망이나 어리광에 가깝게 억지를 부리였다는걸 깨닫기 시작한것이다.
일년째 관절로쇠가 와서(나이가 90에 가까운지라)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있는 리승기였다.
그는 좀 나았다는것이 남들의 부축을 받아 승용차에 오르고 내려서는 량켠에서 사람들이 곁들어서야 층계를 올라 2층의 제 사무실에 들어가 앉군 하였다.(그것도 한개 치료체육으로서 말이다.) 그런 처지에서 무슨 면목으로 성대한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우기였던지 아무리 해도 제정신이 아닌것 같았다. 다른 대표들의 동정과 보살핌을 받으며 평양까지 올라온것만도 미안하기 그지없다.
허나 자기의 인생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흔히 늙은이들을 괴롭히는 인생총화의 그 쓸쓸한 마음때문에) 그것으로 하여 비록 멀리에서라도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만나뵙고싶은 마음을 걷잡을수 없어 지방당일군들의 걱정스런 눈길과 차마 거절하지 못하여 딱해하는 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아랑곳없이 평양으로 올라온것이다.
비로소 자기가 대회준비성원들의 사업조직에서 큰 부담으로 되고있음을 알게 된 리승기였다. 그래도 그는 늙은이다운 고집으로 초지를 굽히지 않았다. 둘째아들(그도 대표로 이 대회에 참가한다.)과 함께 6천석의 맨 마지막줄에 앉아서라도 수령님과 장군님을 멀리서나마 만나뵙고 마음속의 인사를 올린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앉아서야 어떻게… 적어도 회의 시작과 마감에는 서있어야 할게 아닌가. 그때는 둘째가 좀 부축하면 될것 같았다. 리재업이도 대표지만 그는 주석단에 앉는다니 그의 방조를 바랄수는 없다. 서기가 같이 곁에서 부축할수 있을것이라고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한시간전에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일군과 대회준비성원이 와서 대회조직성원들과 같이 주석단이 제일 가까운 휴계실에서 텔레비죤시청을 하자고 했을 때 리승기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하고 얼른 응하고말았다. 너무나 일군들과 주위사람들한테 부담만 주는것 같아서였다.
두사람이 응접실에 나가 서기한테 이렇게 말했다는것을 리승기는 그때까지 모르고있었다.
《서기동무, 정말 심중한 문제입니다. 리선생의 소망은 절절하지만 어찌겠습니까. 서기동무가 잘 리해시켜주십시오. 우린 사실 6천명대표 모두보다 리승기선생 한분때문에 더…(그 일군은 자기들의 난처한 립장을 설명 못해 말을 잇지는 않았다.)
사륜차에 앉아서라니 글쎄… 비록 주석단에서 잘 보이지 않는 맨 뒤줄이긴 하지만 사륜차에 앉아서 대회에 참가시킨다는건 전례에 없는 일이고… 또 이번 지식인대회로 말하면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큰 대회인데 앙양될 회의분위기를 생각해보시오. 다행히 리선생이 우리가 제기한대로 하자구 하니 우리두 이젠 마음이 좀 놓입니다.》
리승기로서는 섭섭한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한 대답이였다. 그런 장소도 다행이라고 여겨야겠으니 수령님과 장군님을 멀리서나마 만나뵙고싶은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하는것으로 가슴이 알찌근하고 허전했다.
(내 나이 90이 가까우니 이놈의 관절로쇠는 더 나을길 없구… 이제 또 언제…)
웬일인지 눈굽이 뜨거워났다.
《선생님, 이젠 좀 쉬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서기가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데 옆방의 응접실에 있던 대회준비성원이 들어와서 서기한테 전화가 왔다고 알려주었다.
얼마후에 방안에 들어온 서기는 몹시 흥분되여 빠른 어조로 말을 했다.
《지금…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보고를 받으시고 걱정하구계신답니다. 준비위원회에 무슨 다른 방도는 없겠는가구 연구해보라구 하셨답니다.》
리승기는 그만 제 두다리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는것을 잊고 벌떡 일어날번 하다가 주저앉아버렸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그분께 걱정을 끼치다니, 대회준비사업에 분망하실 이 깊은 밤에… 내가 뭐라구. 여보, 서기동무. 준비위원회에 다시 전활 걸어줄수 없겠나? 내 걱정은 말라구, 난 휴계실에서두 괜찮으니.…》
마지막말은 목이 꽉 잠기여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 걱정을 끼친다고 생각하니 송구하기 그지없고 괜히 남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올라왔다는 자책감만 깊어졌다.
불현듯 이때 리승기의 뇌리에는 우산장휴양소 특각앞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만나뵈온 때의 일이 어제런듯 되살아났다.
1970년 5월, 그러니까 벌써 스무해도 넘었다.
당시 문학예술부문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던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자정이 훨씬 넘은 깊은 밤 승용차를 달리여 멀리 우산장휴양소로 나가시여 작가들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 예술영화를 보시고 높은 치하의 교시를 주시였는데 그것을 빨리 작가들에게 알려줘야겠다고 그밤으로 우산장에 나가신 김정일동지이시다.
당시 리승기는 우산장특각에서 휴양 겸 료양중에 있었다.
그때는 5월, 새도 많고 꽃도 많은 우산장의 봄이였다. 꽃속에 묻힌 우산장의 아침은 온갖 새들의 지저귐소리로 더욱 맑고 청신하였다.
리승기는 밤사이에 김정일동지께서 나오신줄을 몰랐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작가들을 모아놓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고는 잠도 잊으신채(그때는 어느새 날이 밝은 뒤였다.) 꽃나무속의 길을 산책하고계셨다.
리승기도 새벽산보길에 나선 참이였다. 그는 문득 옆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그쪽을 돌아보았다.
《리승기선생이 아니십니까?》
리승기는 그만 너무나 당황하여 급히 다가서며 그이의 두손을 마주 부여잡았다. 꽃속에서 밝게 지으시는 환한 미소, 젊고 름름한 모습…
《제 미처…》
리승기는 이렇게 떠듬거리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냥 리승기의 손을 잡으신채 물으시였다.
《여기에 휴양을 오셨습니까?》
《네, 제염소에 왔다가 탈이 도져서… 좀 료양중입니다.》
《오신지 오랩니까?》
《네, 좀…》
《위대한 수령님께서 알구계십니까?》
리승기는 그때까지는 생각 못하고있었다. 그는 뭐라고 대답할수가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약간 머리를 기웃하신채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알구계시는것 같지 않습니다. 일군들이 나한테두 그런 말이 없었는데… 함께 좀 거닐지 않겠습니까?》
《네, 네.…》
리승기는 이렇게 대답하며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숲속에서 새들이 저마끔 명랑한 목청으로 우짖었다. 신록이 어린 나무가지들사이로 황금덩이같은 한쌍의 꾀꼴새가 날더니 《고오-고빌래.》 하고 아름다운 가락을 뽑았다.
리승기는 꼭 자기가 위대한 수령님과 나란히 걷는다고만 생각되였다. 자기가 수령님을 처음 만나뵈올 때의 그이의 젊음이 그대로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음성과 체취와 미소에 어려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고 작은 열매들이 알릴듯말듯 갓 달린 살구나무가지를 쳐다보시였다.
《우산장의 봄은 참 좋군요.》
간밤에도 거의 뜬눈으로 지내신 그이께서는 이 봄날의 아침에 잠시 나무밑을 거니시는듯싶었다.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신지 몇해 안되지만 벌써 문학예술부문만 아니라 여러 부문의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느라 분망한 나날을 보내시는 그이가 아니신가.
리승기는 자기가 여기서 편안히 쉬고있다는것이 송구하기만 하였다. 한데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리승기쪽을 돌아보시며 미소를 띠우시였다.
《그러니 리선생은 이 아침산보도 만보걷기운동이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수령님께서 리승기한테 건강을 념려하시여 하루 만보걷기운동을 꼭꼭 하라고 신신당부하시였다는것을 알고계신것이다.
《네, 네, 저는 이걸 수령님의 교시로 접수하고 의지를 다해 그렇게 하고있습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환히 웃으시더니 리승기의 팔을 다정히 끼시며 걸음을 옮기시였다.
《수령님께서는 60 청춘, 90 환갑이라구 하시면서 리선생두 90을 넘기고 백년장수를 해야 한다구 하시지 않았습니까.》
한데 이때 리승기는 그만 무랍없이 용기를 내여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걱정만 끼치면서 오래 살아선 뭘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리선생 같은분이 오래 앉아계셔야 합니다.
리선생은 수령님의 령도따라 우리 나라 주체과학의 선구자로 살아오시지 않았습니까. 선생은 수령님의 품속에서 비로소 과학자로서의 참된 진리를 체득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당은 화학부문은 물론 우리 나라 과학분야에 리선생 같은분이 있어 마음을 놓습니다. 최근에도 인민생활을 위한 화학공업분야에서 리선생이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번 제염소에 갔다오던 길도 그런 길이고…》
《황송한 말씀입니다. 보다싶이 이렇게 자꾸 앓기만 하면서…》
《아닙니다. 그럴수록 휴식과 치료를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에도 여기서 치료를 잘 받으십시오.》
리승기는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지 그저 뜨거운 정에 목메이는데 잠시 말씀을 끊으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나무들사이로 훤히 트인 길과 그우에 열린 아침노을 피여나는 하늘을 바라보시였다.
《우리는 이제 과학과 기술로써 조국을 한계단 더 비약시키려구 합니다.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주체섬유인 비날론은 5만톤으로 그 능력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과학과 기술로써 인민경제의 모든 분야를 획기적으로 전진시키려는것은 우리 당의 구상입니다.》
불현듯 리승기는 비날론공장 준공식에 오시여서 하시였던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말씀이 귀에 쟁쟁히 울려왔다.
《수령님께서 이제 곧 전쟁때부터 구상해오신 비날론공장 준공을 세상에 선포하게 됩니다.》
그러시면서 리승기선생이 과학자로서의 평생소원이 이룩된셈이라고 그리도 기뻐해주시던 그이이시였다. 그후에 찾아오신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 주체공업의 표본공장이라고,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여 주체공업의 위력을 과시해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기도 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우산장에서 리승기와 헤여지실 때 《아무튼 건강을 빨리 회복하십시오.》 하시고는 그날로 평양에 들어가시였다.
한데 그 이튿날에 의사들이 우산장에 나왔다. 평양에 들어가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를 드리면서 이런 대책을 취해주신것을 그제야 리승기는 알게 되였다.
그때부터 리승기만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도 평양에 있는 유능한 의사들이 직접 건강을 돌봐주게 되였다.
리승기는 우산장에서 료양을 하면서 치료를 받다가 곧장 거기서 당 제5차대회에 참가하였다.
대회 첫날에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보고가 있었다. 그날 저녁이였다. 장시간 연단에 나서시여 보고를 하신 그 피로도 푸실 겨를이 없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승기가 들어있는 려관으로 친히 찾아오시였다. 그것도 대표들이 들어있는 다른 려관에 가시였다가 거기서 옮겨왔다는것을 아시고는 다시 차를 돌리게 하여 여기까지 찾아오신것이였다. 그런데 수령님의 곁에는 부관과 함께 우산장에 나왔던 낯익은 유능한 의사도 서있었다.
이 순간 리승기는 어째선지 어버이수령님과 나란히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도 함께 서계신듯 한 생각이 들었다. 친애하는 그이께서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자기를 걱정하신다는것을 깨닫는 순간 리승기는 그저 목이 메여오르기만 하였다.
방안에 들어서신 수령님께서는 리승기의 손을 놓지 않으신채 말씀하시였다.
《김정일동지가 말해서야 난 리선생이 료양을 한다는걸 알았습니다. 김정일동지는 나와 같이 혁명을 했거나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말 나보다 더 극진합니다.》
말씀도중에 수령님께서는 어째선지 리승기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시였다.
리승기는 그만 당황하여 약간 머리를 숙이였다.
《가만, 리선생, 나를 좀 곧바루 보십시오.》
수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리승기는 머리를 다시 들지 않을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안경을 좀 벗으십시오.》
수령님께서는 안경을 벗지 않은 상태에서도 리승기의 두눈에 이상이 있다고 보신것 같았다.
수령님께서는 곁에 서있는 의사를 돌아보시였다.
《의사선생, 리선생의 눈에 무슨 병이 온것 같지 않습니까?》
의사가 가까이 다가와 들여다보며 머뭇거리면서 얼른 말을 못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거의나 확정적으로 말씀하시였다.
《아닙니다. 내가 아는 리승기선생의 눈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리선생, 요즘 눈이 나빠지질 않았습니까?》
리승기는 숨길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더는 어쩔수 없을 때에 짓는 그런 가벼운 한숨이 아니라 오히려 뜨거운 목메임만 치받쳐오름을 느꼈다. 이런 마당에서 과연 무슨 말을 할수 있단 말인가. 허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제 사실… 요즘 며칠째 눈병이 생겨 눈이 나빠졌습니다.》
곁에 있던 의사의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어려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리승기한테로 한발자국 다가서시며 말씀하시였다.
《내 오늘 보고를 하면서 내려다보니까 리선생이 무엇을 자꾸 쓰고 앉았는데 아마 보고의 골자겠지요?… 이제 단행본이 나오면 그걸 보면 되겠는데 뭘 그럽니까. 시력을 자꾸 긴장시키면 눈병이 낫지 않습니다.》
사랑이 깊게 깔린 나무람은 순수한 사랑 그자체보다도 더 뜨거운 법이다. 리승기는 감사의 정을 달리는 표현할수 없어 급히 이렇게 말씀드렸다.
《수령님, 걱정마십시오. 제 눈은 인차 낫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의사더러 대회기간에도 저녁마다 여기 와서 눈치료를 해주라고 당부하시였다. 그이께서 떠나실 때 리승기는 현관앞에 서서 오래도록 움직일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제 방에 올라가 한시간도 못되였을 때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부관이 급히 찾아왔다. 부관은 자그마한 지함을 열고 그속에서 꽤 큼직한 세개의 참외를 꺼내 비취색무늬가 어린 깨끗한 다반우에 놓았다.
《선생님, 이건 특별한 종류의 참외입니다. 중국의 총리동지가 수령님께 정히 보내온 선물인데 수령님께서는 리선생도 함께 맛보게 하자고 하시면서 저를 급히 보냈습니다.》
리승기는 껍질빛이 푸른색과 누른색으로 묘하게 얽힌 참외를 그 무슨 진귀한 보물처럼 들여다보기만 하였다.
《어서 드십시오. 가만, 제가 깎아드리지요.》
《가만, 가만.》
리승기는 부관의 손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부관은 과일칼을 뺏기지 않으려고 몸뒤로 가져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저를 보시구 수령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리선생이 이걸 다 잡수시는걸 보구야 떠나오라구 재차 당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날 리승기는 달디단 참외만이 아니라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함께 삼키였다.
이렇듯 언제나 극진히 사랑해주시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이시였다.…
(그런분이신데 오늘까지도 그이께 걱정만 끼치다니.)
이렇게 생각할수록 리승기는 자기가 이런 몸으로 감히 지식인대회의 대회장에(그것도 아무리 마지막줄이여서 앞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버젓이 나서겠다는 그것이 망녕된짓으로 생각되였고 대회장 가까운 텔레비죤시청실에 앉는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지는것이였다.
《서기동무, 준비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내 걱정은 말라구 해줄수 없겠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걱정을 끼쳐서는 정말 안되겠단 말이요. 준비위원회에서 시청실에 앉도록 한대로 제발 그렇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보고를 드려달라구 해줄수 없겠소?》
서기는 준비위원회에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하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서있었다.
얼마후 그는 불을 끄겠으니 자리에 눕지 않겠는가고 권고를 했다.
하지만 리승기는 한손을 쳐들며 말했다.
《됐네, 됐어. 불을 끄지 말게. 난 이대루 좀 앉아있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