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회) 

 

종 장

삶의 궤도

 

렬차는 간다. 인생렬차는 간다. 누구나 태여나 한생을 몰아가는 이 렬차는 한번 간 길을 두번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하기에 탈선되면 안된다. 전복되면 더더욱 안된다.

자기의 궤도에서 탈선됨이 없이 전복됨이 없이 한생을 성공적으로 몰아가자!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소망일것이다.

하지만…

한생을 몰아온 인생렬차의 뒤길을 돌아보면 헛바퀴를 굴려온 사람도 있고 제자리걸음을 한 사람도 있다. 또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온 사람도 인생의 말년에는 한자리에서 머무르는것이 례사이다.

인간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오직 앞으로만 나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기때문이다.

인생렬차의 궤도에는 여러 줄기가 있다. 《하느님》을 따라가는 줄기, 금전을 따라가는 줄기, 권력을 따라가는 줄기…

그 많은 줄기중에서 선택권은 사람마다에 있다.

어느 줄기를 따라가야 할것인가.

어느 줄기를 타야 인생렬차를 값있게 몰아갈것인가.

유구한 력사는 보여주고있다. 갈래많은 그 줄기에서 주체의 궤도를 따라가는 사람만이 자주권을 행사하며 존엄있는 삶을 누리에 떨친다는것을 더욱 선명히, 더욱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주체의 궤도를 타지 못하면 인간은 순간에 노예의 운명, 굴종의 운명, 죽음의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것은 이미 력사가 보여준 철리이다.

인류는 잘 달려가던것 같던 자기들의 인생렬차를 하루아침에 전복당하고 노예의 운명, 죽음의 운명을 당한 사람들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가깝게는 지난 세기말 여지없이 붕괴된 동유럽의 일부 사회주의나라 지도자들의 운명이 그렇지 않은가.

《주체의 궤도를 따라나가야 한다. 주체의 궤도, 이것을 어기면 죽음뿐이다. 궤도를 어기지 말라.》

이것은 가이아나협동공화국 전 대통령 번함이 남긴 유언이다.

자주의 길, 주체의 궤도를 따라가지 않는 지도자들과 인민들은 력사의 시련을 겪게 되는것이다.

주체의 궤도를 따라 인생렬차를 곧바로 몰아가는 사람만이 자기 운명의 주인, 력사의 주인이 되여 이 세상에 머리를 떳떳이 쳐들고 자주의 삶을 당당히 누릴수 있다는것은 수백만년의 력사를 통하여 인류가 찾은 사상이며 동시에 인류가 도달한 리성의 최고언덕이다.

보라, 세월이 갈수록 주체의 궤도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서며 자기들의 인생렬차를 힘차게 몰아가고있지 않는가. 그 진동소리 대륙에 울려퍼진다. 온 지구를 진감한다.

주체사상의 빛발 세기를 밝혀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망에 넘쳐 자주의 한길로 보무당당히 행진해가고있는것인가.

그 보폭의 진동이 나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린다.

아, 아, 김일성민족으로 태여나 주체의 조국에서 사는 세기의 영광이여!

그 영광 가슴에 안고 나는 노래하련다. 자주화된 새 세계의 앞길을 밝혀주는 주체의 영원한 빛발을 끝없이 따르는 만민칭송의 마음을 나는 끝없이 노래하련다.

나의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주인공이 오늘도 계속 주체의 궤도를 힘차게 달리고있기때문이다.

비슈와나스!

그는 투사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그를 자주성을 주장하는 투사라고 높이 불러주시였다.

90고개를 바라보는 오늘도 그는 쉬임없이 대륙을 넘나든다.

비행기에 오를 때에는 꽃이 피는 봄이였는데 내릴 때에는 벌써 잎이 지는 가을이다. 여름은 상공에서 지나갔는가.

이렇듯 위도와 경도를 넘어 계절을 앞당기며 그는 오늘도 바쁘게 지구를 돌고돈다. 고령의 몸으로 그는 여전히 혼자서 비행기를 갈아타며 3국에서 려권수속도 하며 부단히 움직이고있다. 심장이 가쁠 때면 그는 그자리에 잠간 서서 쉬며 입에 약을 넣고 또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불편한 다리를 끌며 각 지역과 각국의 연구조직들을 돌아본다. 그는 회의도 하고 연설도 하며 때로는 국제연구소와 산하 조직들의 기구문제도 토의하고 그 성원들의 조직문제를 취급하기도 한다.

비슈와나스는 흐르는 세월과 로쇠되여가는 육체에 도전하면서 부단히 걸어갔다.

물결치는 라비강을 헤염쳐건느던 어제날의 혈기왕성하던 소년은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을 몇고패나 감고감아 걷기에도 숨가쁜 고령의 나이에 이르렀다.

사람이 일생 청춘으로 남아있을수는 없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올리브나무잎이 그려진 년하장에 젊음의 념원을 써넣군 하지만 세월은 육체를 유한의 종착점으로 싣고가고있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생을 서둘렀다. 젊어서는 젊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둘렀고 나이들어서는 갈 길이 짧아져 또 서둘렀다.

나에게는 아직 할 일이 있다. 나에게는 아직 힘이 남아있다. 그는 이렇게 자기자신에게 끝없이 속삭이며 또다시 비행기에 오르군 하였다.

매사에 부지런하였으므로 그는 최후의 일각도 성실하게 맞이하려는듯싶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기후와 풍토, 풍습과 전통이 다르듯이 세상에 범람하는 제나름의 철학과 주의주장, 종교적리념과 학파, 당파들을 다 체현하며 그 모든것을 하나의 위대한 뜻, 위대한 사상으로 포섭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세계를 돌고도는 우리의 주인공!

그는 주체의 씨앗을 세계의 토양에 부지런히 심어가고있다.

그는 솔직한 사람이였다.

2011년 11월 15일 평양에서 또다시 만난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인디아에는 나라를 위해 한생을 바친 자유투사들이 많소. 나는 그러한 애국자라고는 말할수 없소. 하지만 나는 우리 조국을 위해, 인민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싶어하는 사람이요.

지난 수십년동안 나는 기업을 위해, 주체사상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제 시작인듯이 성차지 않소.

나는 아직 하고싶은것이 많소. 오래전부터 나는 기업에서 손을 떼고 오직 주체사상을 위해 전심하고있소. 나는 주체사상을 위해 마지막까지 분발할것이요. 그것은 주체사상을 알면 얻을것은 많고 잃을것은 하나도 없기때문이요.》

사람이 인생말년에 이르면 보통 새로운 자유보다도 과거의 향수나 걸어온 운명의 길들을 더듬으며 앉아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걸어갈 앞날을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조화에 가득찬 아름다운 사상의 화원을 설계하고 후대들이 그 화원에서 뛰놀 래일의 세상을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선생의 정열은 아직 젊은 사람들도 따르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머리를 젓는것이였다.

《내 나이 85살인데 언제 갑자기 갈지 모르오. 사람은 누구든 못오는 길로 가기마련이요. 나의 친구들도 이제는 하나둘 거의다 떠나갔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짧소. 하지만 해야 할 일은 깨끗이 하고 가야겠는데…》

그러면서 그는 자기 후임을 생각하는것이였다. 그것자체가 전세계에서의 주체사상연구보급에 대해 그가 얼마나 마음쓰고있는가를 말해주고있는것이였다.

또한 그는 각 지역 연구소 전임일군들의 보선문제에 대해서도 다 자기 안이 있는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근간에 각 대륙 연구소들을 부지런히 오가고있는것이였다.

그는 앞으로의 사업의 활성을 위해 그 일들을 빨리 해놓아야 자기가 마음편히 갈수 있다는것이였다.

생활이란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활동이다.

비슈와나스는 오래 사는것을 생각한다기보다는 끝을 훌륭히 맺기 위해 노력하고있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100돐을 맞으며 진행할 주체사상세계대회준비를 하는 그 바쁜 속에서도 《김정일백과전서》 전2권을 편찬발행하였으며 그것을 경애하는군님께 드리기 위하여 평양에 왔던것이다.

사람은 한생을 돌이켜볼 때 자신의 모든 생명과 정력을 세상에서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성업에 바쳤다고 긍지높이 말할수 있도록 살아야 하는것이다.

마지막순간에 지나온 일생을 떳떳이 총화할수 있도록 비슈와나스는 자신을 부단히 채찍질하고있었다. 하루는 저녁에 평가되고 인생은 말년에 평가된다는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문득 나는 비슈와나스란 그 이름에는 과연 어떤 뜻이 있을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활에서는 상대방의 이름의 뜻까지 물어보며 사귀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이름만 알면 불편없이 사회관계를 맺을수 있기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우리 나라에 수십차에 이르도록 오고 또 그의 나라에 숱한 사람들이 갔으나 그에게 이름의 뜻을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모든것을 알고싶었다. 고령의 육체를 지탱하며 그 누구의 눈치를 봄도 없이 자기가 한번 택한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바위같이 굳센 이 인간에게 그 어떤 뜻이 부여되여있는지.

실례로 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물어보아야 했다. 아니, 그만큼 대상하였으면 허물할것도 없었다.

이런저런 여담끝에 나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리사장선생! 비슈와나스라는 그 이름에 어떤 뜻이 있습니까?》

그는 한동안 침묵속에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잠자코 있었다.

이름은 자기가 짓는것이 아니다.

이름은 부모가 자식에게 붙여주는 념원의 표적이라고 할가.

부모의 그 념원의 표적에는 부모들의 기대와 리상이 깃들어있다. 자기들이 바라는것이 자식들의 대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모들은 자손의 이름에 바라는 뜻을 부여하는것이리라.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모든 사람들의 성격적특질이 갓 태여났을 때 부모가 이름을 붙여주는 바로 그 순간에 규정되는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것이였다. 얼토당토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나는 사람의 이름을 놓고 그 사람의 성격을 내나름대로 판단해보는 습성이 있다. 그것이 현대어이든, 고유어이든.

하지만 비슈와나스라는 이름은 도대체 내가 그 뜻을 가늠할수 없는 말이였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본것이였다.

이윽하여 그는 추억이 어린 눈길을 든다. 그사이 그는 자기 이름의 뜻으로, 다시말하여 선친들의 뜻으로 자기의 한생이 흘러갔는지 돌이켜본것이나 아닌지.

그는 조용히 말했다.

《〈비슈〉는 세계라는 뜻이고 〈나스〉는 주인이라는 뜻이요.》

나는 깜짝 놀랐다.

《세계의 주인!》

저도모르게 나의 입에서 조선말로 번역된 그의 이름이 튀여나왔다.

아, 그의 이름이 이럴수도 있단 말인가.

《그것은 어느 말입니까?》

서둘러 묻는 나의 말에 그는 뜨직뜨직 대답한다.

《그것은 부다가 날 때 쓰던 말이요.》

부다란 불교의 시조인 석가모니를 말하는것이였다. 즉 그의 이름은 그의 선친들이 고대인디아어로 지은것이였다. 너무나 신기하여 나는 뻔한것을 다시 물었다.

《싼스크리트어말입니까?》

《그렇소.》

고대인디아어가 바로 싼스크리트어인것이다. 일명 범어라고도 한다.

싼스크리트말에는 고대인디아사람들의 불경언어인 베다말과 문학어인 고전어가 속한다. 이 언어로 종교, 철학, 문학, 의학에 관한 서적들이 씌여졌다. 이 언어로 씌여진 종교문헌들과 서사시, 희곡 등과 첫 문법책(빠니니, B. C. 4세기)이 오늘도 남아있다고 한다.

서사수단으로만 쓰이고 입말로는 쓰이지 못한것으로 하여 중세기에 이 언어는 죽은 언어로 되였다.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그 말의 뜻을 그 누가 구태여 알려고 했으랴.

비슈와나스는 선친들이 안겨준 그 말의 뜻을 혼자의 가슴속에 깊숙이 묻고 오늘까지 이 세상을 직심스레 걸어왔단 말인가.

솔직히 말하여 사람들은 전세계 사람들의 이름을 합친것보다 자기 이름을 더 중시한다.

빅또르 유고의 평생소원은 빠리를 자기 이름으로 고치는것이였다면 샤르마가문의 평생소원은 세계의 주인으로 되는것이였다.

조상대대의 그 소원이 바로 비슈와나스의 이름에 새겨진것이였다.

아, 인간은 얼마나 오랜 세월 세계의 주인으로 되기를 고대해왔던가.

하지만 질곡과 암흑속에 자기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짓눌려온 인간이였다.

그의 조상들은 노예로 살지 말라는 뜻을 그의 이름에 부여했으리라.

틀림없이 그의 조상들은 머리를 숙이지 말고 주인으로 이 세계를 다스리라는 뜻을 그의 이름에 부여했으리라.

그래서 그는 인간을 세계의 주인으로 내세우는 주체사상을 그렇듯 열렬히 따르며 그 한길을 가고있는것인가.

사람은 저절로 세계의 주인으로 될수는 없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말하였다.

《나는 주체사상에 접함으로써 세계의 주인이 되는 길을 깨달았소.

선행한 어느 철학가도 그길을 밝혀주지 못하였소.

주체사상은 사람의 본질적특징을 가장 완벽하게 밝혀주었고 인간을 세계의 주인으로 되게 하는 길을 밝혀주었소.》

그렇다. 그길을 밝혀준것이 바로 주체사상이였다.

인류가 품어온 세기적숙망에 력사상 처음으로 주체는 대답하였다.

인간이여, 너의 본성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그것으로 하여 너는 자기 운명의 주인, 세계의 주인이다!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하게 하는 이 속성을 가지고있음으로 하여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존재로 되며 사람만이 이 세상의 주인으로 될수 있는것이다.

이 위대한 진리를 밝혀준 주체사상을 이 세상 그 누가 공감하지 않을수 있으랴.

날이 갈수록 더욱 늘어나는 주체사상신봉자들이 주체의 빛발아래 세계의 주인으로 당당히 이 세상을 활보해간다.

비슈와나스 = 세계의 주인!

그는 자기의 이름을 지키기 위하여 살았다.

그는 자기의 이름을 지키기 위하여 주체사상을 따랐다.

그는 마음속으로 항시 이렇게 웨치며 주체사상을 받들어왔으리라.

《나는 세계의 주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는 오늘에 자기의 이름을 가진것이다.

선친들이 지어준 그 이름은 인류자주위업을 위한 성스러운 길에서 자기 뜻을 빛내일수 있었고 그길에서 자기 가치를 가질수 있게 되였다. 주체사상을 따르는 길에서는 그만이 아닌 그 누구든 자기의 사회적이름을 가지는것이다.

사람들이여, 내 오늘 진정으로 이 세상에 말하고싶나니 《세계의 주인》! 이것이 어찌 그 한사람만의 이름이 되랴.

《세계의 주인》!

이는 내 이름이다.

그대의 이름이다.

인민대중의 이름이다.

이 세상 처음으로 사람, 인민대중을 세계의 주인, 력사의 주인의 자리에 올려세우고 빛내여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이 인류에게 안겨준 더없이 고귀하고 존엄높은 이름이다.

그 이름을 지니고 빛내이며 비슈와나스는 오늘도 부단히 걷고있다.

 

내 마음속의 아름다운 새여

날아오르라, 더 높이

눈부신 해빛이

광활한 미래를 비치고있다

 

내 마음속의 자유의 새여

더 활짝 펼치라, 나래를

영원한 해빛을 안고

세월의 한끝까지 날아예라

 

일찌기 유년시절에 아름다운 꿈을 안고 판도리비비마을을 떠난 그의 마음속의 두루미는 주체의 해빛을 받으며 세기의 언덕을 넘어 정의와 진리를 구가하며 온 세상을 날으고있다.

시대앞에, 력사앞에 지닌 숭고한 사명을 자각한 인간의 힘은 자연의 한계를 뛰여넘고있다.

그는 누구보다 생활을 끝없이 사랑하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기에 그는 인류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가정도, 명예도 다 바쳐 쉬임없이 주체의 궤도를 달려가고있는것이다.

사람이 늙는것은 누구도 어쩔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법칙이지만 우리는 결코 나이로써만 늙은 정도를 측정할수는 없는것이다. 그 어떤 강렬한 사상이 그의 정신을 이끈다면, 그의 가슴속에 인간에 대한 사랑의 물결이 항상 출렁인다면 설사 그의 나이가 고령에 이르렀다 해도 그의 마음은 젊음에 넘쳐 끊임없는 창조의 한길을 걸어갈것이며 그의 생명은 의심할바없이 연장되는것이다.

비슈와나스!

그는 존경이 가는 인간이다.

완강한 의지의 소유자인 그는 지향적이며 활동적이다.

끝없이 앞으로만 걸어가는 그의 인생행로와 더불어 이 이야기는 계속되고있다.

그의 뒤를 따라 그의 자손들이, 후세들이 주체의 궤도를 줄기차게 이어가고있는 한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것이다.

인생렬차는 한정거장한정거장, 또 한해한해, 한세대한세대씩 교체되며 앞으로 내달린다.

주체의 궤도를 달리는 인생렬차의 승객들은 점점 차넘친다. 이제는 초만원이 되였다. 그래서 나날이 더 많은 좌석이 늘어나는 인생렬차다.

시발역은 있으나 종착역이 없는 우리의 인생렬차는 행성우의 수십억사람들을 승객으로 싣고 영원한 주체의 궤도를 달리고있다. 그들의 얼굴마다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미소가 비꼈다.

달리자 힘차게 인생렬차여!

주체의 궤도를 따라 영원히!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