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2. 뇌수술

 

한잠을 푹 자고난듯 비슈와나스는 스르르 눈을 떴다.

맨 처음 뿌잇하게 보여오는것은 흰 위생복을 입은 사람의 형체이다. 그다음 그는 다시 눈을 뜰 때처럼 스르르 감았다. 아직 잠에 취한듯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

비슈와나스는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에는 그 형체가 점점 선명히 보여온다.

처녀!

흰 위생복을 입은 간호원처녀가 분명하다. 곱게 생겼다. 세상이 한결 밝은듯 하다. 그럴만도 한 일이다. 지옥에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처녀의 밝은 인상은 실로 생신한 세상이였다.

다시 세상사람이 되였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이렇게 생각하는것자체가 살았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 아닌가. 이것은 다시 일을 할수 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좋다. 그래야 한다. 이 비슈는 물론 그래야 한다. 내 마음속의 아름다운 두루미는 계속 날아야 한다.

아직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많은 일을 나는 설계하고있는가.

채 하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지역 연구소리사회의 재편성도 마저 해야 했다. 그리고 책도 더 써야 했고 토론회도 더 해야 했다. 정신이 들자부터 그는 이렇게 또다시 맹렬하게 사고하기 시작하였다.

다행이였다. 일반적으로 뇌수술환자들은 사는 경우에도 기억력을 상실한다고 하는데 비슈와나스는 지난날의 모든 일들이 다 생각났다.

환상소설들에는 기억력을 잃은 사람들이 나온다. 비슈와나스는 그렇게는 살고싶지 않았다. 어제날에 대한 기억력을 상실한다면 그런 사람은 산 사람이라고 볼수 없기때문이다.

그는 수술장으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나의 뇌수가 정상상태로 되지 않으면 아예 지옥행렬차에 태워보내달라.》

그는 자기의 인생길에 빨간불이 켜질 때가 왔는가부다 하고도 생각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였다.

나의 의지를 시험해달라, 나의 육체여!

인간의 육체적능력은 강의한 의지에 의하여 잠재력을 남김없이 발휘한다고 하였다. 과연 인간에게 있어서 의지의 한계는 얼마만한것인지.

인간은 사는 이상 자기자신에 대한 아름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

비슈와나스는 식물인간으로는 살고싶지 않았다. 또한 그런 식물인간의 모습을 이 세상에 보이고싶지도 않았다.

비슈와나스는 며칠전부터 머리가 쑤셔나게 아파남을 어쩔수 없었다. 그것은 판도리비비마을에서 야밤삼경에 돌아온 그날부터였다.

그즈음 판도리비비마을에서는 점점 소리가 나고있었다.

가물과 홍수로 인해 흉작이 잦았고 그때마다 샤르마가문의 친척들은 손을 내밀었다. 언제나 자금난이였다. 그래서 비슈와나스는 2달에 한번씩 지어는 매달 거기에 가서 평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두르가데비가 움직일 때까지는 그가 내려가있으며 알심있게 종자를 뿌리게 했고 또 수확물들도 허실없이 거두어들이게 했으며 그것을 또 골고루 나누어주며 의견없이 처리하군 하였는데 이제는 어머니마저 안계시니 비슈와나스가 나서야 했다.

그들끼리 놔두면 서로 다투기가 일쑤였다.

날씨도 점점 좋아지지 않았다. 금년에도 비가 오지 않아 사탕수수는 망쳤다. 그들은 또 손을 내밀었다. 투자하는것에 비해 소득이 점점 적어져갔다. 그래서 도시와 해외에서 사는 친척들이 거의 해마다 돈을 얼마씩 내여 도와주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은 점점 그들이 참으로 살아나가기 어렵게 돼먹어가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의 자식들은 점차 판도리비비마을에는 가지 않고있었다.

그들의 눈길은 보다 넓은 세계에로만 향해졌지 농촌마을은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거기에 친척들이 살고 가문의 령지가 있다한들 그런것은 큰 문제로 되지 않는것이였다.

그러나 가문의 좌상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비슈와나스는 금요일에 떠났다가 일요일에 돌아오군 하였다. 오후 4시에 떠나면 8시반에 도착하였다. 가문의 좌상이 된 비슈와나스앞에서는 누구도 감히 정면에서 엇서기를 꺼려하였다.

그러나 농촌사람들은 제각기 자기나름이였고 단순했다. 그들은 도와줄수록 만족해하지 않았고 더 주지 않는다는 불평만을 늘어놓았다. 젊은 아이들까지 령감이 자기들을 잘 돌봐주지 않는다는 푸념뿐이였다.

자기의 힘으로 생활난을 타개할 생각보다도 그 누가 도움을 주기만을 바라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계몽시킨단 말인가. 누구는 도와주어서 일어섰는가.

판도리비비마을의 친족들은 한뉘 태여난 곳에서 세습적으로 물려받은 령지의 노예가 되여 서로 다투고있었다. 그들에게는 판단이 없었고 의견만이 있었다.

우는 사람도 있었다.

비슈와나스는 될수록 성격을 눅잦히고 그들을 리해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한뉘 봉건이 짙은 농촌마을에서 대대로 물려온 령지를 저마다 뜯어먹으며 살아온 샤르마가문의 족속들을 다 리해시킨다는것은 조련치 않은 일이였다. 샤르마가문에서 법관이나 경영자가 되여 도시로 나온 사람들이 간혹 있었고 카나다로, 미국으로 간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이 다 고향땅에 그냥 살고있었다. 그 땅에는 할아버지형제의 후손들이 거의 다 살고있었다.

마노하루가 아직 살아서 그 땅에 있지만 그는 고목에 불과했고 친족들은 그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들중에는 교육을 받은 사람도 있고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비슈와나스는 한족보인 그들이 땅을 가지고 싸움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땅을 나누지 않았기때문에 그들은 모두 제각기 그 땅을 내 땅이라고 불렀다. 만약에 땅을 나눠가진다고 하면 오늘에 와서 그 땅은 사실 보잘것 없는것으로 되고마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고향집도 개조하지 말고 그대로 보존하면서 선친들을 추억하고 서로서로 도와주며 화목하게 살기를 바랐다.

실지로 판도리비비마을에 그의 집만이 옛 모습을 보존하고있었다. 판도리비비마을이 이제는 작은 도시로 변했던것이다. 우물이 수도로 되였고 발전기가 없어도 전기가 먼 곳에서 흘러오고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어떻게 돼먹은것인지 비슈와나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세월이 갈수록 화목했던 선친들의 후손들을 서로서로 자꾸만 갈라놓으려고 하는것이였다.

누구의 생각이 봉건인지 아직은 서둘러 단정하지 말자.

어쨌든 세상을 돌고돌며 자유와 평화의 하늘을 날고나는 아름다운 그 두루미는 자기의 고향마을에 오면 답답해하였다.

옛날에는 그렇게 커보이던 집이 이렇게 작은줄 몰랐다.

이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세상을 좁게만 생각하고있어 이 집이 더욱 그렇게 보이는것인지도 몰랐다.

비슈와나스는 세월과 함께 불어난 샤르마가문을 하나의 마음으로 단결시키지 못하고있는 자신이 한스러워보이기도 했다.

사람은 수치스러울 때가 있다.

신경질이 난 그는 한밤중에 운전사를 깨워 뉴델리로 돌아오고말았다. 그때부터 머리가 아파났다. 가슴도 아팠다. 비슈와나스가 바라는 세계와는 아직도 너무나 거리가 먼 이 나라의 농촌이였다.

복잡다단한 이 땅, 이 세계를 평정하고 하나의 사상, 하나의 리념으로 물들인다는것은 참으로 헐치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갈마들었다.

비슈와나스는 드디여 머리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아마도 그것은 80이 지나도록 쌓이고쌓인 스트레스의 폭발이기도 한듯싶었다.

그는 병원에 실려갔다. 아시아에서 이름있다고 하는 아폴로병원의 의사들은 비슈와나스의 머리를 검진하고 곧 수술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들은 뇌실질안에 생긴 고름집을 발견하였던것이다. 나이가 있는 사람이여서 좀 힘들기는 하겠지만 조기적출수술을 하면 일없을수도 있다는것이였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되였다고 해도 심장이나 뇌수술은 누구나 심사숙고한다. 그것은 생명과 직접 관련되여있기때문이다.

하지만 비슈와나스는 제꺽 동의하였다. 그것이 그의 성격이였다. 그는 죽든가 아니면 사는 이상은 깨끗한 머리로 사고하며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수술장으로 들어갈 때 아픔속에서도 그렇게 말했던것이다.

강한자는 죽음을 이긴다. 의학도 죽음을 타승하고 승리하기 위하여 있는것이다.

비슈와나스의 뇌수술은 성공적이였다. 며칠만에 정신을 차린 그는 아무일도 없었던듯싶었다.

그는 수술장에 들어가던 때처럼 또다시 속으로 중얼거리였다.

아, 나의 인생길에 다시 파란불이 켜졌는가.

그는 80여년동안 쌓인 뇌의 피로를 풀었다고 생각하였다. 두뇌활동은 이제 더 활기있게 진행될것이라고만 믿고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머리도 몸도 움직일수가 없었다.

간호원처녀에게 날자를 물어보았더니 6월 9일(2007년)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3일간을 내처 잠들어있었던것이다.

그 3일간이 아까왔다.

어랍쇼, 81살의 나이에 뇌수술을 한 환자가 이처럼 시간을 재며 그 시간마저 아까와함은 그의 앞길에 아직 얼마만한 설계가 펼쳐져있는것인지 참으로 그것은 공감할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지 않는가.

세척된 두뇌는 누운 상태에서도 자기 사고를 하기 시작하였다.

비슈와나스의 가족측에서도 노상 붙어있었지만 간호원처녀가 모든 시중을 들어주었다. 별스레 고와보이는 그 처녀는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어뵈였다. 그러나 낯이 익을수 없는 처녀였다.

병원에서는 완쾌되려면 6개월은 걸려야 한다고 하였다.

면회는 수없이 왔다.

조선대사관 성원들은 거의 매일이다싶이 왔다. 비슈와나스는 왜서인지 그들이 매일같이 기다려졌고 오면 그들과 인생담을 나누었고 래일에 대해 설계했다.

병원에 입원해있으면 마음속에 있던 사람들이 더욱 그리워지고 하고싶은 말도 많아지는것이 인간의 심리인듯싶다.

국내외의 많은 주체사상신봉자들이 수시로 면회를 왔다.

하루는 뜻밖에 멀리 인디아양에 있는 섬나라 스리랑카에서부터 레기에 라나툰게가 병원에 나타났다.

그 역시 서로 오가면서 주체사상으로 가까와진 친구였다. 그는 몇년전 가리브 네와즈가 국제연구소 리사로 소환된 후에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 리사장직을 맡고있었다.

스리랑카의 사바라주 지사인 그는 한때 상을 한 전적도 있는 정계의 이름있는 인물이였다.

레기에 라나툰게는 지역연구소 리사장이면서 국제연구소 리사회 집행위원이였으며 스리랑카자력갱생연구회 고문이기도 하였다. 그와는 해마다 평양에서 또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는 국제토론회장들에서 만나고있었으며 지금은 매일 전화하고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직접 찾아올줄은 몰랐다.

그는 최근에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는 왜서인지 주체의 벗이 진정으로 보고싶어지고 또 지역연구소의 일들도 마주앉아 구체적으로 토론하고싶어져 불원천리하고 찾아온것이였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주었고 앞으로의 일들을 설계했다.

또 하루는 파키스탄의 남부도시 카라치에서 자베드 안싸리가 찾아왔다. 그는 비슈와나스를 보고 푸른 숲의 거목이라고 즐겨표현하군 하였다. 그때마다 비슈와나스는 말없이 웃었다. 그가 말하는 그 푸른 숲은 나날이 지구를 뒤덮어가는 주체사상신봉자들의 무성한 모습이리라.

자베드 안싸리, 20대의 대학생시절에 사귄 그는 지금 50대의 세련된 사회활동가로 자라난것이였다.

이제는 그가 주체사상선전에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로 되였다.

그는 이미 1999년에 파키스탄자력갱생연구회를 새롭게 결성하고 그 서기장으로 선출되여 활약하고있었다.

2006년 4월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 리사로 선출된 그는 지금 파키스탄과 지역의 자주화를 위해 대륙을 넘나들고있었다.

지난해에도 그는 조선을 보름간 방문하면서 조선의 학자들과 많은 학술토론을 하였으며 주체사상의 진리성과 생활력을 각지에 보급하기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여가고있었다. 주체의 대는 이렇게 이어져가고있었다.

고마왔다. 비슈와나스는 주체의 벗들이 한없이 고마왔다. 벗들의 진정이 몸가까이 느껴질수록 그의 마음은 한시바삐 완쾌되여 푸른 대지로 뛰쳐나가고싶었다.

아, 생활이여! 너는 함께 한길을 가는 벗들의 강렬한 우애심과 미래에 대한 불타는 지향에 떠받들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것인가.

국제연구소 리사장에 대한 세계의 주체사상연구조직들과 신봉자들의 관심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국제연구소 사무국과 각 지역연구소, 전국연구위원회들, 조선사회과학자협회에서 매일 건강을 문의하는 통보문이 날아왔다.

또한 국제전화들이 련이어 왔다. 일본의 오가미 겡이찌와 이노우에 슈하찌며 에꽈도르의 알바 챠베스와 영국의 키스 벤네트며 파키스탄의 알따브 후쎄인이며…

모스크바에 있는 전시회사의 총국장을 비롯한 공식인물들, 뻬뜨로브와 안드로첸꼬를 비롯한 이전 동업자들에게서도 자주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는 놀랐다. 비슈와나스가 이렇게도 세계적인 인물인가.

비슈와나스도 놀랐다. 나에게 세계적친구들이 이렇게도 많았던가.

눈물이 났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세계에 있는것은 주체사상의 덕분이였다. 주체사상을 연구보급하는 길에서 이렇게도 많은 친구들이 생기게 된것이였다.

건강을 문의해오는 수백명의 그들중에는 힌두교도, 불교도, 이슬람교도, 그리스도교 등 각이한 교도들이 다 있었지만 그들모두는 주체사상을 따르고있었다.

참으로 주체사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각이한 리념들을 다 포섭한 인류의 보편적인 위대한 사상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곱게 생긴 그 간호원처녀가 허리가 굽어든 할머니와 함께 들어섰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볼수가 없었다. 그 할머니는 그냥 서서 비슈와나스를 말없이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누구일가?!

생각을 더듬는 비슈와나스의 눈길은 그 할머니에게서 처녀에게로, 다시 처녀에게서 할머니에게로 부단히 오갔다.

그러기를 몇번.

불시에 비슈와나스의 눈에 처녀와 할머니의 모상이 한모상으로 겹치며 안겨드는것이였다.

추억은 멀리 60년전 라호르에로 갔다.

그렇다. 분명 그 처녀다. 한때 애틋한 감정을 품었던 그 처녀가 지금 자기앞에 옛 모습그대로 처녀로, 아니 할머니로 서있는것이였다. 간호원처녀는 그 할머니의 처녀시절의 모습이다. 그래서 간호원처녀가 그리도 낯익어보였던가.

비슈와나스의 입이 저도모르게 열리였다.

《아, 파라카슈!》

그 목소리는 신음소리에 가까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전후사연은 어떻든지간에 수십년만에 동창생을 만난 반가움의 목소리였고 젊음을 찾아주는 환희로운 삶의 감탄이였다.

사람이 죽지 않으면 이렇게도 만날수 있단 말인가?!

둘은 어린애들마냥 손목을 덥석 잡았다.

꼭 60년만이다. 나라가 분렬되던 1947년에 헤여졌으니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된것이다. 정말 이들은 60년만에 다시 만나 그날의 청춘시절에 섰는가?!

어딘가 숨어들었던 그 빛이 오늘을 기다려 꺼지지 않고있은듯싶었다. 그들의 회포는 끝이 없었다.

파라카슈는 뉴델리에 살고있었다. 그는 4명의 자식을 가진 어머니였고 여러명의 손자, 손녀들을 거느린 할머니였다. 그 자손중의 하나가 바로 이 간호원처녀였던것이다. 손녀에게서 머리를 수술한 환자에 대한 말을 들으며 파라카슈는 그 환자가 바로 누구라는것을 직감하였던것이다.

오, 운명이여! 이렇게 60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다니?!

오늘 이들의 나이는 여든!

허나 오늘 이들의 마음은 스물!

수염없는 청춘시절이 어제같은데 벌써 인생은 한고패 돌고돌아 이마우에는 깊은 고랑이 패여졌다.

세월이여, 너 흘러가도 마음은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 그대로인가.

파라카슈는 놀랐다. 라호르의 그 시절처럼 오늘도 붓대를 쥐고 세상을 론하며 위대한 사상의 연구보급을 위해 병원에서도 꾸준히 일하고있는 그의 모습에 감탄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 그대로의 비슈와나스를 보았다. 비슈와나스의 정열은 오히려 그 시절보다 더한듯싶었다.

《파라카슈!》

비슈와나스는 젊은 시절 그때처럼 이름을 불렀다. 파라카슈는 반세기도 훨씬 넘은 지난날이 어제런듯 깊은 감회에 잠겼다. 그가 처녀시절에 비슈와나스를 마음에 두었던것은 그에게 결단성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지금도 그는 젊은날의 성격그대로 결단성있게 말하는것이였다.

《이 세상의 진리의 빛은 주체사상이요. 주체사상을 따르면 누구나 젊어지오.》

주체사상의 빛발은 파라카슈의 가문에도, 아폴로병원에도 흘러들었다. 비슈와나스가 있는 모든 곳에서는 주체사상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비슈와나스는 병원에서 자기가 사회적존재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듯싶었다.

육체적생명이 생물유기체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라면 사회정치적생명은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값높은 삶은 바로 그 사회정치적생명을 지니고 그것을 빛내이며 사는데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비슈와나스는 사회적존재로서 사람답게 살고싶었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정치적생명의 모체인 사회적집단은 주체사상연구조직이였으며 신봉자들의 대오였다. 그 대오의 앞장에 섬으로써 그의 삶이 빛나고있는것이였다.

주체사상은 그의 피였고 살이였고 생명이였다. 그것을 빛내이는 길에 그의 생명이 빛나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누워서도 국제연구소사업을 계속 내밀어갔다. 전화로 지시하면 모든 조직들과 신봉자들이 다 뛰여다녔다.

일은 그의 락이였다.

그에게 있어서 일이란 온 세계의 자주화위업을 위해 투쟁하는것이였다. 할 일은 많았다.

당면해서는 일부 지역연구소 리사회의 재편성을 마저 끝내는것과 함께 지역토론회들을 실속있게 조직해야 했다. 이것은 다음해 3월에 뉴델리에서 진행하게 될 국제연구소창립 30돐기념행사를 의의있게 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였다.

시간은 이제 몇달밖에 남지 않았다. 명망높은 학자들과 나라의 고위인사들로 빨리 현지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회의장과 숙소, 영접과 환송, 일정과 예술공연, 관광 등에 대해 락착해야 했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보고와 토론문들을 품위있게 준비해야 했고 한편으로는 각국의 대표자전원이 사증을 받고 인디아에 입국할수 있도록 수속해야 했다. 이 많은 일감을 앞에 놓고 병원침대에 누워있다니…

속상함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 속상함을 안고 그는 침상에서 부단히 사람을 만나며 전화하며 일을 내밀어갔다.

일이 락일 때 인생은 즐겁다.

그래서 비슈와나스는 아픔도 시련도 달게 여기며 일에서 죽어도 손을 뗄수 없었다. 일을 할수록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다.

비슈와나스는 자기가 사회적집단속에서 살고있음을 시시각각으로 의식하였다. 그 집단을 위하여 헌신분투하는데서 오는 행복감으로 하여 그의 가슴은 부풀고있었다.

그것이면 되였다. 그것이면 죽어도 원이 없었다. 영생하는 집단을 위하여 무엇인가 기여하며 산다면 그 삶은 자기 가치가 있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우리는 인류의 한사람, 한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가 자기 할바를 다하고 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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