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7. 새 천년기를 향하여

 

파키스탄에서 돌아온 후 비슈와나스는 《인터라즈》를 통채로 맏아들에게 인계하였다.

미래에 대한 강렬한 지향으로 심장을 불태우는 그에게 부닥친 현실이 다른 이여의 모든것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를 주지 않았던것이다.

아시아지역 연구소의 실태가 그러했다.

무케르지는 악화되는 병을 안고 이미 몇해째 전혀 운신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실태에서 며칠전에 갑자기 고빈드가 세상을 떠났던것이다.

고빈드는 자다가 깨여나지 못하였다.

기가 막히였다.

비슈와나스의 눈앞에는 20년전 새파란 그를 인디아공산당에서 뽑아오던 일이 선하였다.

주체사상에 접하여 그리도 활기에 넘쳐 뛰여다니던 그 모습, 국제토론회때마다 소년축하단을 맡아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북도 치고 시도 읊던 그 목소리는 신봉자들의 기억속에, 주체사상연구보급의 성스러운 력사의 갈피에 길이길이 새겨져있을것이다.

세월은 진실하고 공정하련만 누구에게나 젊음과 늙음을 똑같이 부여하지는 않은듯싶다.

세월앞에 제 젊음과 늙음을 흥정말라.

비슈와나스는 많은 일을 앞에 놓고 벗들이 떠나가는것이 가슴이 아팠다.

벗은 곧 재산이다. 벗이란 자기밖의 자기인것이다.

당장은 지역연구소를 누구든지 이끌어야 했다. 여러 나라들에 리사는 있지만 현재 연구소의 전임일군은 다 없어졌다. 먼저 쓰러진 무케르지와 예고없이 간 고빈드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참으로 그들은 생활과 현실속에서 시대의 사상의 진리를 깨닫고 그 연구보급에 한몸을 바쳐나섰던 금싸래기들이였다.

지역연구소의 일은 하루도 한시도 멈춰서서는 안된다.

이렇게 되여 비슈와나스는 자기의 기업을 통채로 인계하고 지역연구소사업에 전적으로 나서게 되였던것이다.

힘이 들었다. 그도 이제는 70고개를 넘어선것이였다. 하지만 가야 했다. 난관이 닥쳐왔다고 하여 탄식만 하는 인간은 실로 보잘것없는 존재일것이다.

그는 맏아들 안일 샤르마에게 말하였다.

《나는 〈인터라즈〉리사회의 결의권도 갖지 않겠다. 일체 상관하지 않겠다. 총사장이란 명목상이다. 아니, 그런 명목도 필요없다.》

그다음 그는 셋째아들 무케시 샤르마에게 부탁하였다.

《제일 좋은 콤퓨터설비와 통신기재를 여기에 한조 차려주렴. 그리고 그것을 다루며 아시아지역 연구소의 사무처리를 맡아할수 있는 전임서기를 한명 물색해주렴.》

곧 그의 사무실에 잇닿은 방에 사람보다 먼저 콤퓨터설비와 통신기재가 와닿았다.

사람은 나이들수록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조예를 가지고 그에 상응하게 자신을 따라세울 때만이 시대의 한 성원으로서의 자기 위치를 떳떳이 차지할수 있는것이다.

주체사상연구보급사업을 보다 심화시켜나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 사업에 인류가 이룩한 최신과학성과들을 무조건, 그것도 빨리 도입해야 하는것이였다.

그 당시 셋째아들이 운영하는 전시쎈터와 호텔들에서 정보산업분야의 최신성과들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이고있었다. 그래서 비슈와나스는 그것을 그 분야에 조예가 있는 무케시에게 부탁하였던것이다.

혼자 사무실에 틀고앉아 붐비는 비슈와나스가 념려되여 싼또쉬 꾸마리가 무엇을 싸들고 드문히 여기에 나타났다. 그때마다 비슈와나스는 왜 또 나왔는가고 하면서도 이제는 로친이 된 그가 더없이 귀하고 미더운지 한참이나 자기가 설계하고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군 하였다. 그러면 싼또쉬 꾸마리도 더없이 좋아하며 그 말을 귀담아듣고 말없이 자기가 도와야 할 일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군 하였다.

녀성들은 나이가 들어도 타고난 천성은 변함없는듯 하다.

싼또쉬 꾸마리의 머리는 이제 더는 검은색이 없는 완연한 은백색으로 변하였어도 그것은 겉모양일뿐 순결한 그 마음만은 예나 다름이 없었다. 그 마음은 그의 얼굴에 비끼는 그 순결한 미소가 다 말해주고있었다.

녀성들은 자기의 마음속에 사랑이 깃들면 그 사랑을 한생 간직하고 따른다.

고마왔다. 비슈와나스는 별로 살틀하지도 못한 자기를 순결한 사랑으로 한생 리해했고 받들어준 싼또쉬 꾸마리가 나이가 들수록 더없이 고마왔고 귀했다. 그에 대한 감사는 두고두고 드려야 할것이다.

결혼전 그들에겐 끝없는 랑만과 번뇌로 이어진 사랑의 속삭임도 없었고 격동적이고 가슴을 벅차게 한 그 어떤 일도 없었다. 그런들 어떠리, 그런 사람들보다 더 그들의 사랑은 세월따라 깊어지고 뜨거워지는데…

얼마 안있어 무케시가 알선한 전임서기가 왔다. 그는 날씬한 자태를 가진 아릿다운 처녀였다. 무케시는 직업소개서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중에서 고르고골라 선택하였다는것이다. 물론 그의 로임은 비슈와나스가 지불하여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문장을 만들줄 알고 최신설비를 다룰줄 안다니…

이때부터 비슈와나스는 자기의 사무실을 《주체사무실》이라고 공식적으로 불렀다. 그리고 여기에 틀고앉아 학회사업과 함께 지역연구소사업을 작전했고 포치했고 받아들이였다.

그의 사무실출입문 한쪽에는 여전히 화분에 심은 종려나무가 사철 푸른 잎새를 머리우까지 펼치고있었다. 그 종려나무밑으로 이제는 《인터라즈》관계자들이 아니라 주체사상신봉자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섰다.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가 이리로 이사온것이였다.

《인터라즈》를 통채로 넘겨받은 맏아들도 이 사무실에만은 복종해야 했다. 이 사무실의 주인이 사장의 아버지이기에 앞서 《인터라즈》의 창시자임에야!

그리고 그 이름은 변함없이 전세계에 《인터라즈》의 대명사로 불리우고있는데야!

더우기는 오늘 이 사무실이 《주체사무실》이라는 보다 신성한 이름으로 불리우는데야!

이때부터 《인터라즈》의 회의장, 연회장을 비롯하여 사용할수 있는 모든것들이 《주체사무실》의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위대한 사상의 빛발을 전세계에로 날리는 이 《주체사무실》에 찾아와 운명과 앞날에 대해 론의했으며 새로운 락관을 안고 떠나가군 하였다.

그 방으로는 국회의원으로부터 평범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다 드나들었다. 그리고 여러 나라의 명망높은 인사들도 찾아왔다. 그들속에는 나이 지숙한 사람, 젊은 사람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이 다 있었다.

《주체사무실》로 하여 《인터라즈》의 청사가 낯을 깎일것은 없었다. 오히려 위신이 더 올라가는듯싶었다.

《주체사무실》을 거점으로 하여 국내망은 물론 지역의 여러 나라 주체사상연구조직들과의 망이 형성되였고 지역연구소의 전자우편과 홈페지가 새롭게 개설되였다. 따라서 주체사상연구보급에서 보다 신속성을 보장할수 있게 되였고 화면을 통하여 광범한 군중들과의 문답을 자유롭게 진행할수 있게 되였다.

이때부터 그 처녀가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 전임서기로서 많은 일을 감당하기 시작하였다.

그 처녀의 이름은 씨마 꾸마리.

아름다운 그의 미모는 정열적이고 활동적이며 책임적인 그의 사업에서 더욱 부각되여 빛을 뿌리였다.

씨마 꾸마리는 지역연구소의 정기간행물인 《주체의 시대》와 연구소에서 내는 뷸레찐을 비롯한 소책자들을 신속정확히 인쇄해냈으며 그 배포를 비롯한 실무처리들을 아주 깨끗이 하였다.

출판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많은것을 투자하고있는 비슈와나스는 그의 일솜씨가 맘에 들었다.

그 처녀는 또한 짬만 있으면 글을 읽었다. 사람들은 비슈와나스가 없을 때 이 사무실에 와도 그로부터 많은 자료를 얻고 또 주체사상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가군 하였다.

비슈와나스는 매일 하루일을 총화했고 다음날에 해야 할 과업을 주었다.

혹 어떤 날에는 시간이 늦어지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그 처녀는 살짝 시계를 보면서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끝까지 다 새겨듣고 조용히 자리를 뜨군 하였다. 퍽 후에야 비슈와나스는 그가 시간이 늦으면 예약한 뻐스를 놓쳐 퇴근길이 불편해진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집과 사무실사이를 오가는 자그마한 소형뻐스에 한달분의 값을 미리 지불하고 출퇴근을 하고있었던것이다.

말없이 아주 책임적인 씨마 꾸마리가 비슈와나스는 만족하였다.

어디에서 이런 《보물》이 우리에게 왔나?!

그의 콤퓨터탁우에는 작은 꽃병이 놓여있었다. 그 꽃병에 꽂혀있는 노란 꽃잎이 달린 몇송이의 금잔화가 풍기는 독특한 향기에 그의 미가 다 실려오는듯싶었다.

비슈와나스는 이 처녀가 한없이 귀했다. 주체의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있어서는 벗이였고 전우였다.

점점 판이 커가면서 일손이 딸리기 시작하였다.

비슈와나스는 학회에서 정기적으로 매달에 2회씩 진행하는 연구토론회외에 지역의 여러 나라 소조들의 실태도 장악하고 그 운영도 돌봐야 했다. 그리고 원고집필과 청탁, 후열, 편집 등…

아무리 시간을 쪼개여도 절대적으로 시간이 모자랐다. 많은 일을 실속있게 하자면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하는것이다.

《주체사무실》에 학자가 한명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인입해야 할것인가?

이때 에쓰. 피. 파타크박사가 냄새라도 맡은듯이 나타났다. 그는 델리종합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금방 퇴직한 상태였다. 마침이였다. 비슈와나스는 더 생각할새없이 그를 붙잡았다. 1980년대초부터 주체사상을 신봉해왔으며 조선에도 여러번 다녀온 그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이 있었던것이다.

파타크박사는 쾌히 응하였을뿐아니라 매우 좋아하였다.

그가 《주체사무실》에 《입직》한 다음부터 방에는 웃음이 넘쳐났다. 키가 작고 체소한 박사는 학식도 많고 유모아도 대단히 많은 사람이였던것이다. 파타크가 일으키는 그 웃음은 일을 더 빨리, 더 즐겁게 떠미는 따뜻한 바람이였다.

그때부터 파타크박사가 《주체의 시대》를 맡아 다양한 양상으로 편집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외에 《주체사무실》에는 비슈와나스의 곁에 늘 묻어다니는 또 한명의 꼬마주인이 있었으니 그는 무케시의 맏아들 아쉬쉬였다.

이제 금방 10살을 넘긴 아쉬쉬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노상 할아버지의 그림자마냥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심부름도 곧잘 하였고 무슨 책이든 손에 들면 골똘히 생각하며 읽을줄도 알았다.

가장 사랑스런 손자였다.

그 많은 손자들중에서 아쉬쉬의 이름만을 비슈와나스가 직접 지어주었다. 그래서인지 아쉬쉬는 자기를 아쉬쉬 비슈와나스라고 즐겨부르고 쓰고있었다.

아쉬쉬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한 침대에서 자고있었다. 비슈와나스도 이제는 일흔을 넘겼으니 손자가 더없이 고왔고 주체의 한길을 대를 이어 걸어갈 가문의 후손을 은근히 생각하고있는것이였다.

아쉬쉬는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많은것을 배웠으며 많은것을 보아왔고 들어왔다. 이 어린 꼬마는 《주체사무실》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았으며 그때부터 그들과 친숙해졌고 다는 리해할수 없어도 그들이 하는 낱말들에 점점 익숙해갔다.

아쉬쉬는 방학때마다 할아버지를 따라 판도리비비마을에 가보는것을 즐겨하였다.

이 어린 소년의 눈에 비끼는 농촌마을은 신기한것이였다. 자기의 가문에 이러한 땅이 있다는것도 신기하였고 도시와는 너무나도 판이한 현실이 있다는것도 놀라왔다.

비슈와나스는 이 어린 손자에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알기쉽게 깨우쳐주며 주체의 원리를 심어줄것인가를 모색하며 그를 데리고 다니였다.

이렇듯 지역연구소는 그 집행부가 결원된 기간 비슈와나스에 의해 사업이 침체되지 않고 계속 심화되였다. 비슈와나스가 애초에 지역연구소를 창설한 사람이고 뒤에서 그 사업을 떠밀어온 인물이라는것은 신봉자들모두가 이미 알고있었다. 하기에 그의 조직사업에는 모두가 응해나섰던것이다. 사실 그는 시작부터 지역연구소의 비공식적인 주인이였다.

이때부터 그는 오늘까지 해마다 뉴델리에서 전국토론회를 4번이상 의무적으로 진행해오고있다. 2월 16일, 4월 15일, 9월 9일, 10월 10일… 그리고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는 지역모임을 조직하였다.

이 기간에 뉴델리에서 현세계에서의 자주와 평화에 관한 주체사상국제토론회(1998. 4)가 진행되고 까뜨만두에서 사회의 자주적발전과 자력갱생에 관한 아시아지역 주체사상토론회(1999. 10)가 성대히 진행된것만 보아도 그가 지역과 전세계에서의 주체사상연구보급을 위해 얼마나 분발하여 나섰는가를 알수 있는것이다.

스스로 맡아안은 의무를 수행했다는 기쁨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였다. 아름다운 생활은 역시 창조하기에 달렸다.

1998년 8월 31일.

세계를 놀래우는 사변이 일어났다. 어려운 경제난을 겪는 조선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100프로 자체의 기술과 지혜로 개발한 운반로케트와 인공지구위성을 단 한번의 발사로 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하였던것이다.

1990년대 중엽 조선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였다. 다른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고립압살책동, 련이은 자연재해, 그 모든것을 극복하면서 조선은 온갖 난관과 시련을 이겨갔다.

조선은 결코 동냥바가지를 들고다니지 않았다. 공화국은 자주독립국가로서의 존엄을 지켰을뿐아니라 그 위용을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공화국이 첫 인공지구위성을 성과적으로 쏴올린 경이적인 사변은 온 세계 주체사상신봉자들에게 커다란 고무적힘으로 되였다.

한세기의 저물녘에 평화의 광명은 비쳐오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더욱 분발하여 지역의 주체사상연구보급사업을 지도하고 장악하면서 지역연구소 성원들을 새롭게 추천하는 문제를 내내 생각해왔다.

많은 일을 혼자서는 못하는 법이다.

비슈와나스는 지역연구소일은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뒤에서 소리없이 계속 떠밀어주고싶었다.

그는 세계에서 제일 많은 신봉자들이 망라되여있는 인디아주체사상연구학회사업을 계속 중시하고있었다. 전국의 중요주와 도시들에 다 조직되여있는 27개의 연구소조는 모두 이 학회를 축으로 하여 자기 활동을 전개해나가고있었다. 그 소조들에 망라되여있는 신봉자의 수는 무려 수천만명에 달하였다. 그 수는 사실 수십개 나라의 신봉자들을 합친것보다도 더 많은것이였다. 그만큼 인디아가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몫은 큰것이였다.

이것을 잘 알고있는 비슈와나스였다. 그는 앞으로 빠른 시일에 인디아의 32개의 모든 주, 직할시들에 연구소조를 다 내올 계획이였다. 그는 시종일관 더 많은 신봉자들을 육성하는것으로써 지역연구소와 국제연구소를 떠받들어주고싶었다.

1999년 10월 네팔에서 있은 지역연구소 리사회 제8차회의에서는 리사회의 일부 성원들을 소환하고 새롭게 보선하였다.

리사회는 인디아, 방글라데슈, 네팔, 스리랑카, 파키스탄, 수리아, 타이, 일본 등 아시아나라들의 주체사상연구조직 및 신봉자들을 대표하는 14명의 리사들로 구성되였으며 이밖에 1명의 명예리사장(전 리사장 무케르지)과 1명의 명예리사(전 서기장 고빈드의 미망인 프라밀라 스리바스타바)가 포함되였다.

이 회의에서 방글라데슈인민련맹 위원장이며 최고재판소소속 변호사인 가리브 네와즈가 집행리사장으로 선출되였다.

리사들의 일치한 의견에 따라 비슈와나스가 지역연구소 서기장의 직책을 공식적으로 맡게 되였다.

그후 아시아지역 연구소리사회는 성원들을 소환보선하면서 중단없이 자기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오늘도 비슈와나스는 이 《주체사무실》에서 세계의 주체사상연구보급사업을 설계하고 포치하고 종합하고있다. 매일같이 그는 제시간에 출근하고 뒤늦게 퇴근하고있다.

그에게는 하루가 짧았다. 많은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항시 시간이 모자랐다.

금요일 저녁이면 모두가 주말휴식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는 토요일에도 출근한다. 싼또쉬 꾸마리와 자식들이 볼부을 때가 있지만 그들도 막을수 없는 그의 걸음을 보장해야 했다.

《왜 쉬는 날에도 사무실에 나가나요?》 이렇게 묻는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무의미하게 앉아서 죽고싶지는 않거든.》

비슈와나스의 락은 오직 죽기 전까지 일에 매달리는것뿐이였다.

끝없는 창조와 정열을 바쳐 주체의 한길을 가는것, 그것이 그의 아름다운 모습이며 진정 그가 사랑하는 모습이였다.

심지어 그는 인디아의 기본민속명절의 하나인 홀리명절(물감명절)에도 《주체사무실》에 나와 문을 꾹 닫고 책을 읽고있다.

이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들과 한데 어울려 서로서로 여러가지 색갈의 물감을 옷에, 얼굴에 뿌려주며 웃고 떠든다. 이날은 대체로 해마다 2월말경에 닿았다. 이날에는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교도에 관계없이 서로 물감을 뿌려주는데 모두가 좋아들하였다.

하지만 비슈와나스는 어려서부터 이 명절의 놀음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얼굴과 머리칼에 물감이 들고 또 그것을 씻고 하는 시간이면 그는 일을 더하고싶었다. 그는 이런 사람이였다. 그것은 그의 가문이 대대로 힌두교를 숭상했지만 실지로 사원에는 다니지 않았고 그 시간에 보다 현실적인 일들을 해온것과 다름이 없었다.

씨마 꾸마리 역시 오늘도 변함없이 그자리에 앉아있다. 달라진것이 있다면 어제날의 그 처녀가 오늘은 귀여운 아들을 가진 30대의 세련된 어머니로 변모된것이다. 가정적인 무거운 부담을 걸머지고도 그는 웃으며 하루도 건늠없이 《주체사무실》에 나오고있다. 저녁에 돌아가서는 어린 아들에게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자립정신을 키워주고있다.

세계의 주체사상신봉자들은 뉴델리에서 자주 그를 만나고있다.

모든 토론회참가자들의 숙식, 체류, 연회 등 온갖 실무처리들을 그가 맡아하고있기때문이다.

연회가 끝난 다음에 뒤에서 수고한 사람들이 다시 모여드는 곳이 있는데 그 장소에서도 그는 알콜류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도 싼또쉬 꾸마리처럼 남새음식을 좋아하였다.

토론회들의 기록도 맡아하고있는 그는 력사의 증견자, 보관자로서 지역연구소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되였다.

파타크박사 역시 오늘도 백발을 날리며 《주체사무실》에서 변함없이 《주체의 시대》를 빛내가고있다. 그는 이따금씩 대학에서 초청하면 가서 상담을 하는것외에 하루도 건늠없이 줄곧 여기서 모든 시간을 보내고있다.

너무도 성실한 그의 인간미에 끌리워 비슈와나스가 드문히 한상 차리면 그는 《이 많은것을 어떻게 다 처리하라는가?》 하면서 새처럼 조금 먹었다.

파타크박사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였다. 그가 편집하는 잡지 《주체의 시대》는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슈, 스리랑카, 타이, 일본, 영국, 프랑스, 로씨야를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의 나라들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지역의 주요도시들에 다 날아가고있다.

오늘 파타크박사는 인디아 김정일로작연구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한번도 그와는 마주앉지 못했지만 분기마다 보내오는 《주체의 시대》를 볼 때면 왜서인지 그의 롱담기어린 얼굴이 슬며시 떠올라 마음이 저절로 흥그러워진다.

비슈와나스의 주위에는 이렇듯 참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자신들을 자유와 평화를 위한 성스러운 길에 나선 사람으로 자부하면서 어깨겯고 씩씩하게 한길을 걸어갔다.

세월과 더불어 주체의 대로를 부단히 넓혀가는 열정의 인간 비슈와나스!

그의 마음속에 날고나는 자유와 평화의 아름다운 새는 날개를 더 한껏 펼치고 세기의 언덕을 넘어 밝아오는 새 천년기의 가없는 하늘가로 그냥 날아오르고있었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