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3 회)
6. 전우의 최후 행렬의 맨앞에 고인의 두 아들과 알따브 후쎄인 그리고 자베드 안싸리가 령구를 메고 천천히 걷고있었다. 그뒤를 따라 늘어선 사람은 600여명… 그들모두는 말이 없다. 묵묵히 걷고만 있을뿐. 하지만 그들모두는 말하고있었다. 마음속으로 아브둘 말라크와 심장의 대화를 나누고있었다. 아브둘 말라크는 그들모두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웨쳤다. 《친근한 나의 동료들, 부탁컨대 주체의 이길을 끝까지 가달라. 이길에 우리 운명, 우리 조국의 밝은 앞날이 있음을 잊지 말라!》
아브둘 말라크의 뒤를 따라선 이들은 지금 심장을 터쳐 웨친 그의 절절한 이 말에 마음속으로 화답하고있었다. 《아브둘 말라크여, 마음놓고 편히 가시라.》 《당신의 말은 우리의 걸음걸음에 영원히 울릴것이다.》 그날은 1997년 2월 8일이였다. 파키스탄에서 그렇게 큰 규모로 전국토론회가 열리기는 처음이였다. 아브둘 말라크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이날을 위해 모든 심혈을 다바쳐왔던것이다. 뜻깊은 2월의 명절을 맞으며 세계의 벗들이 국제토론회준비로 들끓을 때 그는 국내토론회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는 비슈와나스에게 말하였다. 《나는 우선 우리 나라에서 자주화를 실현하는것으로써 세계의 자주화에 적극 이바지하겠네. 모든 나라에서 다 자주화가 실현되면 그것이 곧 세계의 자주화가 되는것이 아니겠나?!》 《자네 말이 옳네. 그럼 내가 도꾜토론회에 갔다올 때까지 건강을 바라네.》 이렇게 하고 헤여졌던 아브둘 말라크가 전국토론회장에서 열변을 토하다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던것이다. 그 토론회에 참가하였던 600여명의 동료들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애절한 그들의 그 부름도 심장이 파렬된 그를 다시 일궈세우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많은 동료들의 바래움속에 이 세상을 갔던것이다. 도꾜국제토론회에 참가하였다가 2월말에 뉴델리에 돌아와서 이 소식을 알게 된 비슈와나스는 피로를 풀새도 없이 다시 비행기를 타고 여기 수천리길을 날아왔다. 만나면 그리도 반가와하며 길게 기른 뒤머리를 좌우로 흔들던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비슈와나스는 그가 갑자기 나타나며 자기를 놀래우려고 어디엔가 숨어있는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너부죽한 얼굴, 꾸밈이 없고 열정적이던 그 모습은 종시 나타나지 않았다. 비슈와나스의 가슴은 미여지는듯 아팠다. 장례는 이미 끝난 뒤였으나 그의 출현은 파키스탄신봉자들의 가슴을 후두둑 뛰게 하였다. 당년 그의 나이 71살이였다. 하지만 그는 지칠줄을 몰랐다. 오직 주체의 힘으로 내짚는 그의 걸음앞에 육체적한계가 허물어진것인지. 전우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그의 가슴은 쓰렸다. 사혜지드는 그날아침에 가쁜숨을 몰아쉬는 아브둘 말라크에게 말하였다. 《여보, 내 말을 들어요. 움직이면 안되겠어요.》 울상이 된 안해를 안심시키려는듯 아브둘 말라크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뜨직뜨직 말하였다. 《고맙소. 그러나 일없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지탱하는 길은 계속 걸어가는 길이요. 자, 그러지 말고 나를 좀 부축해주오.》 사혜지드는 더 어쩔수가 없었다. 이렇게 그의 부축을 받으며 회의장의 연단에 나와 마지막 심장의 말을 터친 아브둘 말라크였다. 동료들의 말을 들으며 그는 신념의 인간들이 간주한 자주위업의 정당성을 더욱 확신하게 되는것이였다. 이제는 친구들도 하나둘 비슈와나스의 곁을 떠나간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들처럼 살면 될것이였다. 주체의 한길에서 영생의 삶을 빛내이면 더 바랄것이 없었다. 그것이 그의 삶의 리유였다. 비슈와나스는 사혜지드와 그 자식들이 아브둘 말라크가 간 정의의 길을 억세게 이어가기를 바랐으며 그길로 더 많은 사람들을 떠밀었다. 《동무들, 우리모두 아브둘 말라크처럼 주체의 길에 이 한몸을 다 바칩시다.》 자베드 안싸리가 이에 적극 호응하였다. 만날수록 믿음이 가는 친구였다. 그는 이미 1978년에 조직하였던 대학생 김일성주의연구소조를 1982년말에 청년 김일성주의연구소조로 개칭하고 보다 광범한 각계각층의 청년들속에서 주체사상연구보급활동을 벌리고있었다. 이제는 그도 40고개에 이르렀다. 지금 그는 보다 큰 조직의 결성을 위한 그 준비의 마감단계에 있는 상태였다. 그 조직은 이제 곧 태여나게 될 파키스탄자력갱생연구협회였다. 자베드 안싸리는 카라치의 아담지보험회사 직원으로서 넉넉한 생활을 하고있는 형편은 아니였지만 그 역시 아브둘 말라크처럼 시대의 사상에 공감하여나선 선각자였다. 비슈와나스는 그와 주체사상연구보급에서 나서는 실천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를 적극 고무추동하였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자신도 마음속으로 부단히 가르침을 받고있었다. 자베드 안싸리는 말하였다. 《아브둘 말라크선생은 자신의 활동으로 끝까지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또한 오늘 우리는 비슈와나스선생의 우애심과 지칠줄 모르는 정신력에서 커다란 고무를 받았습니다.》 《아니, 고무적힘을 받은것은 나요. 당신들의 투쟁은 나에게 백배의 힘을 안겨주었소.》 자베드 안싸리와 같은 젊은 선각자들에 의하여 아브둘 말라크가 걸은 주체의 길은 파키스탄에서 계속 이어지고있는것이였다. 아브둘 말라크는 1977년부터 20년간 해마다 조선을 방문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여러번 받고 참된 삶의 새 생명을 받아안은 주체사상신봉자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주체사상신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마지막순간까지 자신의 한생을 깡그리 불태워 동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신념의 인간의 숭고한 모습을 이 세상에 남기였다. 파키스탄의 주체의 전사, 아브둘 말라크는 그렇게 갔다. 그의 죽음은 그의 생활과 같이 깨끗하였다. 사람들이여, 죽었다고 죽었다고만 보지 말라. 산 사람들이 잊기 전에는 죽은 사람도 살아가는것이다. 그는 생전에 그가 말한것처럼 주체사상탑에 고여진 그 푸른색옥돌과 더불어 영생하고있는것이다. 생명의 가치를 귀중히 여기였기에 그는 자기의 생명을 값있게 바쳤다. 조국과 인류를 위한 죽음, 이는 생명의 연장이다. 그는 생의 최후에 인생을 찬양하였다. 아름다와라, 눈을 감으면서도 래일의 세상을 찬양한 주체의 인간! 그는 미래를 사랑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것이 잃어져도 영원히 남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래이다. 그 미래에 생을 얹고 사는 사람은 그 미래와 함께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것이다. 인생의 그 진리를 터득한 그는 행복하였다. 그는 그 생을 즐기였다. 그 생을 즐기며 그는 웃으며 영생의 길을 갔다. 이런 삶을 두고 누가 감히 끝났다고 말할수 있으랴. 성스러운 위업에 한몸을 바침으로써 그는 오래오래 울리는 생명의 음향을 이 세상에 남기였다. 태여나고 태여나는 수많은 주체사상신봉자들의 마음속에 그의 목소리는 오늘도 쟁쟁히 울리고있다. 《친근한 나의 동료들, 부탁컨대 주체의 이길을 끝까지 가달라. 이길에 우리 운명, 우리 조국의 밝은 앞날이 있음을 잊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