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0 회)
3. 비보, 가장 슬픈 날 차는 모스크바강줄기를 따라 드넓게 뻗은 강안도로 한복판을 달리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지금 《인터쏘베르》(인디아―로씨야합영기업)로 가고있었다. 오늘저녁 로씨야측 사장과 회사의 금후 활동방향에 대한 토론을 한 후 한잔 하게 일정이 되여있었던것이다. 비슈와나스는 묵묵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빛을 잃은 저녁해가 모스크바의 거리를 비치고있었다. 멀리, 가까이 보이는 인도마다에 기근이 든 아이들이 행인들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모습들이 보이였다. 《개혁》, 《개편》이 안아온 모습이였다. 쏘련의 붕괴는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 국가가 무너졌고 국가에 속해있던 경제가 조락되여갔다. 이런 형편에서 여러 나라들에 있는 기업들을 자식들에게만 방임해둘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나라들을 돌고도는 비슈와나스였다. 주로 사회주의나라들을 다니며 출판, 전시기업을 해온 그로서는 그 나라들을 부지런히 돌고돌며 자기 기업을 수습해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중에서도 그는 모스크바에 자주 왔다. 사회주의나라들중에서도 제일 큰 기업은 쏘련에 있었던것이다. 맨 처음 쏘련대사관을 통해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맺었기때문에 제일 큰 기업도 쏘련땅에 펴놓았던것이다. 로씨야에는 《인터라즈》의 지사들이 있었다. 역시 광고 및 출판지사들로서 독자적인 기업체들이였다. 이 지사들은 인디아와 로씨야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광고들을 다 취급하고있었다. 총지사장은 안드로첸꼬였다. 그는 인디아주재 쏘련대사관에 한동안 파견되여있은바있는 사람이였다. 그때 그들은 친구로 사귀였던것이다. 이외 《인터쏘베르》가 또 있었던것이다. 이 회사의 기본업무는 전시였다. 사회주의체제하에서 모든 기업은 국영이였다. 순조롭게 수십년간을 잘 흘러오던 비슈와나스의 이 모든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다른 체제하에 놓이게 되였고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게 되였으니 그야말로 물길이 순간에 거꾸로 돌려진셈이였다. 그 물길이 정말로 거꾸로 가겠는지 아니면 진통을 겪으며 다시 자기 곬으로 가겠는지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그 추이를 가늠하며 해를 넘기고있던 년대였다. 비슈와나스는 자기의 물길을 완강하게 내밀고있었다. 그는 싼크뜨―뻬쩨르부르그에서 진행된 전람회에 참가하고 모스크바에 들어서는 길로 《인터쏘베르》로 가고있는것이였다. 싼크뜨―뻬쩨르부르그전람회는 해마다 진행되는 인디아국가전람회였다. 몇년전부터는 이 시의 새로운 부시장으로 등장한 울라지미르 뿌찐이 이 전람회의 주인인 비슈와나스를 반갑게 맞이하고있었다. 당시 싼크뜨―뻬쩨르부르그시에는 해외로부터 많은 투자가 들어오고있었다. 뿌찐은 바로 외국기업의 활용에서 자기의 능력을 솜씨있게 발휘하고있었던것이다. 쏘련붕괴후 로씨야가 자본주의로 전환되는 속에서 뿌찐은 시장경제를 떠메고나갈 한사람으로 새 출발을 하고있었다. 뿌찐은 비슈와나스를 그저 《비슈》라고 간단히 불렀고 비슈와나스 역시 그를 그저 《뿌찐》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만날 때마다 서로 전람회장을 돌아보며 실무적인 토론을 하군 하였다. 전후부터 로씨야를 대상해온 비슈와나스는 싼크뜨―뻬쩨르부르그에서만이 아니라 모스크바에서도 인디아국가전람회를 자주 개최해왔다. 그는 그때마다 이 나라의 수반들을 만나보군 하였다. 쓰딸린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땅을 수없이 밟으며 합영합작을 해온 비슈와나스도 이때에 싼크뜨―뻬쩨르부르그시의 체소한 이 부시장이 불과 몇년후에 로씨야를 강력하게 다스리게 될 인물로 나서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할수 없었다. 이 세상의 적지 않은 인물들을 만나본 비슈와나스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그를 싣고 차는 모스크바강줄기를 따라 계속 달리고있었다. 이때 운전사가 라지오를 틀어놓았다. 라지오에서는 같은 보도가 계속 반복되여나오고있었다. 순간 비슈와나스는 모든 생각에서 깨여났다. 그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차를 좀 세우라구.》 《여기선 차를 못세웁니다.》 운전사는 창밖을 두리번거리였다. 비슈와나스의 가슴은 떨렸다. 믿어지지 않았다. 비분으로 몸부림치는 그는 자기자신을 잊은듯싶었다. 그는 당장 달리는 차밖으로 뛰쳐나갈 자세였다. 그러는사이 차는 급기야 한 골목길로 꺾어들며 멈춰섰다. 비슈와나스는 차에서 뛰쳐내렸다. 가슴이 답답하였다. 숨이 찼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항상 푸르게 열려있던 그의 마음속의 하늘은 이 순간 여지없이 무너져내리고있는것이였다. 그의 마음속에 폭풍우가 몰아쳤다. 그의 마음속에 날고있는 자유의 새가 몸부림쳤다. 그는 비칠거렸다. 아, 이럴수 있단 말인가, 정녕 이럴수 있단 말인가. 비슈와나스는 다시 차안으로 들어가 자기 손으로 라지오의 다른 통로들을 돌려보았다. 다른 통로들에서도 같은 보도를 반복하고있었다. 김일성주석께서 가시다니? 이것은 청천벽력이였다. 말그대로 마른 하늘에서 내리는 벼락이였다. 정녕 그이는 가실수 없는분이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고 부인할수도 없는 그이는… 비슈와나스는 한동안 조각상처럼 까딱할수가 없었다. 그는 가던 길을 갈수가 없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어지러워져도 그이의 하늘아래서 태양의 그 빛발을 받아 희망을 안고 걸어가던 비슈와나스였다. 《차를 돌리게.》 운전사는 의아쩍은 눈길을 들며 물었다. 《어디로 말입니까?》 《조선대사관으로, 빨리!》 이렇게 되여 《인터쏘베르》로 향하던 비슈와나스의 걸음은 《조선》으로 가게 되였다. 방향을 바꾸어 달리는 차안에서도 그는 모든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세상을 놀래우는 이 비보가 사실이 아니였으면 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바랐다. 한껏 길어진 한여름의 해도 어느덧 뉘엿뉘엿 기울어지고있었다. 레닌산(당시)을 지나 《모스필림》촬영소를 지나 대사관촌이 가까와올수록 그의 가슴속엔 설음이 더더욱 북받쳐올랐다. 조선대사관앞에 이른 그는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대사관은 접수구에서부터 울음바다를 이루고있었던것이다. 마당에서는 조선녀성들과 아이들이 왕왕 통곡하며 울고있었다. 나라의 아버지를 잃은 국상앞에서 그 누가 오열을 터뜨리지 않을수 있으랴. 정녕 이 비보를 믿어야 하는가. 조선대사관으로 오면서도 그의 가슴속에는 자기도모르게 김일성주석은 신적인 존재이기때문에 그 어떤 신령이 나타나 다시 그이를 부활시켜주는 기적이 일어날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은연중에 자리잡고있어 모든것이 선뜻 믿어지지 않던 마음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믿어야 했다. 조선으로 가야 했다. 그는 사증을 요구하였다. 대사관에서는 공화국에서 외국의 조객들은 일체 받지 않기로 하였다는것을 알려주는것이였다. 하여 그는 조선에 올수 없었다. 하긴 외국의 조객들을 받는다면 조선땅은 넘쳐날수도 있으리라. 사실 20세기는 그이의 존함과 더불어 저물어가고있었던것이다. 그날저녁 그는 숙소에서 잠들수 없었다. 마실수도 먹을수도 없었다. 텔레비죤의 모든 통로들에서 김일성동지의 업적을 보도하고있었다. 그이의 서거를 두고 온 세상이 떠들고있었다. 위인의 진가는 사후에 더 뚜렷이 나타나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1977년 4월 그이를 처음으로 만나뵈온 때로부터 1993년 9월까지 12차례에 걸쳐 그이의 접견을 받는 행운을 지니였던 그 모든 나날들을 돌이켜보며 한밤을 지새웠다. 김일성! 그이는 도탄속에 빠진 조선을 구원하기 위하여, 수억만 인류의 모습을 빛내주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성인이시였다.
그이는 젊으신 나이에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시였고 부활시켜주시였으며 인류가 나아갈 자주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이는 세계정치의 원로이시기 전에 대성인이시였으며 탁월한 국가수반이시기 전에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사람들은 자기 조상의 이름은 다 몰랐지만 그이의 존함은 누구나가 알고있었다. 그이의 존함은 주체의 이름으로, 자주의 상징으로 온 세상사람들의 마음속에 빛나고있었다. 사회주의가 곡절을 겪는 엄혹한 현실앞에서도 주체사상신봉자들과 진보적인류는 오직 그이만을 우러르며 신념을 잃지 않고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더 힘차게 자주위업의 한길에 떨쳐나서고있었다. 더욱 크게 벌려온 주체사상국제토론회들과 계속 출판되는 도서들이 그것을 잘 말하여주고있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와 오가미 겡이찌를 비롯한 첫 세대 주체사상신봉자들이 그 앞장에 섰다. 그리하여 쏘련이 붕괴된지 2달만에 뉴델리에서 세계의 자주와 평화에 관한 주체사상국제토론회가 성대히 진행되였으며 그해 4월에는 도꾜에서 현시대와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가 련이어 진행되였던것이다. 이해에 들어와서만도 2월에는 캄팔라에서, 4월에는 또다시 뉴델리에서 주체사상국제토론회가 성대히 진행되였었다. 주체사상이 가리키는 자주의 길을 따라 전진하는 인민대중의 위업은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 목소리는 온 세계대륙들에 더 높이 울려퍼지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이해 4월 15일을 맞으며 또다시 2권의 도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김일성주의. 자주, 평화, 진보와 번영의 기치》(뉴택크출판사. 2004)라고 제목을 단 도서는 그가 쓴 리론도서였다. 책의 제명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비슈와나스는 이 글에서 주체의 사상, 리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로서의 김일성주의에 대하여 리론적으로 폭넓게 전개하였다. 또한 글에서는 김정일동지의 로작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수 없다》에 기초하여 현정치정세를 과학적으로, 리론실천적으로 해설론증하였다. 그는 또한 주권과 독립을 위한 인디아인민의 대중투쟁의 전력사와 그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오늘의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비슈와나스가 주체사상과 조선에 대하여 쓴 10여권의 단행본중에서 이 책은 제일 부피가 두터운 리론도서였다. 다른 한권의 책은 《인류해방의 구성》(뉴. 에이쥐출판사. 1994)이라는 제목을 달고 비슈와나스가 자기와 무케르지, 고빈드가 쓴 회상실기들을 묶어 단행본으로 내놓은것이였다. 비슈와나스가 내놓은 이 2권의 도서는 그해 4월 15일을 뜻깊게 장식하였다. 비슈와나스는 가슴속에 꿈을 안고있었다. 그 꿈은 20세기를 총화하며 온 세계 주체사상신봉자들의 대축전을 인디아에서 마련하고 김일성주석을 모시는것이였다. 그 찬란한 꿈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말없이 그날을 향해 직심스레 줄달음쳐가던 비슈와나스였으니 이날의 그의 찢어지는 심장의 아픔이 어떠했으랴. 그가 조선을 사랑하게 된 리유는 두가지였다. 그것은 우선 주체사상에 대한 매혹이였고 다음은 위대한 그 사상의 창시자께서 조선에 갈 때마다 반겨맞아주시였기때문이였다. 비슈와나스는 몸부림쳤다. 만나주실 때마다 벗으로, 전우로 대해주시던 그처럼 위대한 벗, 위대한 스승, 위대한 태양을 잃었으니 그의 마음속의 하늘은 어두워지고 그 하늘에서 한껏 날아예던 자유의 새는 품을 잃고 허우적이는것이였다. 김일성주석과 같은 위대한 심장, 천재적인 두뇌를 잃는다는것은 우리 행성의 손실이며 인류력사의 많은것을 다 준대도 보상할수도 메꿀수도 없는 파격적인 공백이였다. 비록 땅덩어리는 크지 않고 인구도 그리 많지 않지만 조선이 세계의 페활량을 조절할수 있을 정도로 세계의 움직임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김일성주석을 모시고있었기때문이였다. 미국의 전대통령 지미 카터도 그이를 한번 만나뵙고는 기자들앞에서 이렇게 토로하였다. 존경하는 김일성주석은 미국의 건국과 운명을 대표하였던 3대대통령들인 죠지 워싱톤, 토마스 제퍼슨, 아브라함 링컨을 다 합친것보다 더 위대한분이시다.
김일성주석은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건국자들과 태양신들을 다 합친것보다도 더 위대한 인간, 운명의 태양신이라는것을 나는 서슴없이 말하게 되는바이다라고. 이렇듯 조선의 적대국의 인물들까지도 한번 만나뵙고는 거룩한 그 인품에 완전히 반하던 인류의 대성인을 잃었으니 정견과 신앙, 국적과 언어, 피부색에 관계없이 세계의 모든 인민이
김일성주석을 추모하며 눈물을 흘리고있는것이였다. 아, 지구의 무게, 행성의 무게를 더해준 그런 위대한 심장이 멎을수 있단 말인가. 세계자주위업이 진통을 겪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주위업의 태양이 떨어졌으니 세계여, 너는 어느 길로 가려는가. 동란의 이 세기에 태여나 비로소 주체사상을 알고 김일성주석을 수호신처럼 믿고있던 비슈와나스에게 있어서 이날은 눈물의 날, 비애의 날이였다. 인디아에는 눈물로는 갈증을 끄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눈물과 비애로는 타는듯한 그리움을 달랠수 없는 법이다. 위대한 사상을 창시하시여 인류의 앞길을 밝혀주시고 거룩하신 인덕으로 천하를 깨우쳐 자주의 미래를 열어주신 그이께서 어찌 가실수 있으랴. 위인은 한세기에 한번이나 나나마나 하다. 그런 위인은 사람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비슈와나스는 김일성주석은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와 같은 신앙적존재우에 서있는 전설적인물이였으며 현대의 가장 탁월한 수령이시였다고 자기자신과 끝없이 말을 나누며 잠못들었다.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심장이 고동을 멈춘 날은 1994년 7월 8일이였다. 그 비보가 세상에 알려져 인류가 몸부림친것은 그 다음날이였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던 그날은 비슈와나스의 전생애에서 가장 슬픈 날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