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 회)
2. 폭풍속을 나는 새는 더 아름답다 폭풍이 불어쳤다. 1980년대말부터 한두 나라에서 일기 시작한 그 바람은 새 년대에로 이어지면서 더욱 세차게 불며 동유럽의 사회주의땅을 휩쓸었다. 서구《물질문명》의 집요한 그 바람에 못견디여 끝내 그 나라들은 허물어졌다. 엄연한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것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물질문명》의 발전이 자기의 기형성을 인류의 면전에서 시위하였다고 해야 할것이다. 《물질문명》의 악발전은 폭력주의의 대두를 동반하였다. 이때 한쪽에서는 크지도 않은 나라에 국제련합군의 미싸일소나기가 쏟아졌던것이다. 페르샤만전쟁은 인류를 놀래웠다. 인류가 쌓아온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 전쟁에서 외곡되게 사용되였고 이라크는 《폭력만능》론리를 증명하는 제물로 바쳐졌다.《폭력만능》이 인류의 외곡된 가치관으로 군림하였다. 순조롭게 흘러가는듯 하던 생활이 일시에 뒤죽박죽되여 세상은 소란스러웠다. 자유롭게 푸른 하늘을 날던 새들이 갑자기 드리운 어둠에 갈길을 잃고 땅우에 곤두박질쳤다. 제 땅에 서있는 기둥이래도 그것이 남의것이라면 마음편히 의지할수 없고 거기에 얹혀진 처마밑에 시름놓고 들어설수 없음을 사람들은 피눈물이 나도록 체험하였다. 리념투쟁의 년대들로 이어진 파란많은 20세기의 저물녘에 력사가 오랜 혁명의 성곽들이 하루아침 물먹은 흙담이 되였으니 그 지붕을 함께 썼던 기둥들이 순간에 맥없이 넘어지고있었다. 아, 세상이여! 너는 이렇게도 뒤바뀌일수 있단 말인가. 그 폭풍에 모든 새들이 죽지를 잘리우고 떨어져도 더 세차게 퍼덕이며 창공에로 치달아오르는 억센 나래가 있었으니 그 새는 비슈와나스의 마음속에 날고나는 자유의 새였다. 그 새는 세상을 휩쓰는 그 폭풍에 항거하듯 더 세차게 퍼덕이며 그냥 날아오르기만 하였다. 그 새는 세상의 소란스러움에 눌리우지 않았다. 아무리 구름이 층층 내리덮여도 그 새의 머리우엔 가없이 열려져있었다. 그 나래 품어줄 푸른 하늘이, 그 나래 지켜줄 영원한 태양이. 일찌기 판도리비비마을의 령지를 떠난 아름다운 그 새는 이미 자기의 하늘을 가지고있었으며 지키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생각하였다. 내가 주체사상을 몰랐더라면, 김일성주석과 김정일령도자를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이런 때 나는 어떻게 되였을것인가. 갈 길을 잃고 방황하였을것이다. 한생 선전해왔고 그들과의 기업거래도 깊었던 사회주의쏘련을 잃고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을 잃고 나역시 허무해졌을것이다. 허나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우러르는 하늘이 있었고 드팀없는 신념의 기둥이 있었다. 그 하늘은 주체의 태양이 빛나는 하늘이였으며 그 신념의 기둥은 주체사상이였다. 주체, 이는 자기의 손으로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게 하는 슬기였으며 힘이였다. 마음속에 하늘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풍파속에서 자기의 모습을 더 억세게 다스려가는것이다. 비슈와나스의 심장은 끓고있었다. 그 심장은 줄줄이 시를 뿜고있었다. ―인간이여, 너는 세계의 주인이다! 인류력사상 처음으로 주체는 대답하였다 찾지 못한 철학사의 물음에 달아오른 인간리념의 절정에 갈증에 타던 가슴들에 마를줄 모르는 샘물이 되여 갈 길 잃은 수난자들의 앞길에 꺼질줄 모르는 등대가 되여 만민의 심장을 틀어잡은 주체! 위대하고 거룩한 주체는 진리만을 진리만을 선언한다 인간이여 너는 자기 운명의 주인!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사회적존재! … 인자한 《하느님》의 감언에 넋을 내맡기고 소외당하여온 인간이여 자본의 무자비한 《법칙》에 두손들고 소외당하여온 인간이여 머리를 들라 머리를 들라 너는 세계의 주인이다! 너는 만물의 조종자다! 너는 곧 이 세상이다! 질곡의 수천년력사에 《하느님》과 권력 물질의 노예였던 인간을 주인의 자리에 올려세운 주체! 오, 만민이 우러르는 주체의 그 이름은 김일성! 김정일! … 동란의 시기에 더욱 세차게 뿜어져나오는 그의 시줄기들은 그대로 그의 심장의 목소리였다. 그는 썼다. 주체의 그 이름은 수억만 인류의 기원우에 새겨진 참된 삶의 리념이라고, 인간사랑의 절정우에 솟은 삶의 영원한 기치라고. 그의 사색의 바다는 끝없이 출렁이며 잠들줄을 몰랐다. 그는 그냥 써내려갔다. 인간의 근본을 밝히듯 인류의 미래를 알리듯 이 세상 어디서나 자랑스럽게 울리는 그 이름 세기를 이어 물려온 유산처럼 인류가 받아안은 이름이라면 온 세상이 어찌 이처럼 환희에 넘칠수 있으랴 주체 ― 김일성! 주체 ― 김정일! 그 이름은 가슴속 가득히 차넘치는 인간의 긍지가 하나의 덩어리로 함축되여 심장처럼 지니고있는 이름이거니 … 진정 주체사상은 자주시대의 거대한 성서! 속죄의 참회없이 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임을 따르는 만민에게 깨우쳐준 참삶의 유일한 가르침! … 세계라는 거대한 왕궁의 옥좌에 당당히 인간을 올려앉혀준 위대한 주체사상의 진리는 세기와 세기를 이어 더 높이 더 높이 울려간다 ―인간이여, 너는 세계의 주인이다! 그가 한생의 걸음걸음으로 체험하며 심혈을 기울여 구상해오는 서사시의 제2장은 이렇게 태여났다. 복잡다단한 년대에 더욱 폭넓게 확증되는 주체사상의 위대한 생활력은 마를줄 모르는 그의 시의 샘줄기였다. 그 샘줄기는 인류의 영원한 봄을 노래하며 이 땅에 흐르고흘렀다. 제나름의 생각을 일기장에 적어가며 한 도시의 골목골목을 뛰여다니던 어제날의 소년은 시대의 거창한 숨결을 호흡하며 세계의 벗들과 어깨겯고 자주의 한길로 행진해갔다. 바람이 불면 돛배는 더 힘을 받아 바람을 맞받아나간다. 력사의 풍파를 맞받아 비슈와나스는 자기의 마음속에 날고있는 아름다운 두루미, 자유의 그 새를 아득한 창공에로 더 높이 띄워올렸다. 우선 그는 다가오는 김정일동지의 탄생일에 즈음하여 국제토론회를 뉴델리에서 최대의 규모로 조직하려고 마음먹었다. 력사의 시점에서 볼 때 그것은 자주를 지향하는 인민대중의 요구에 전적으로 부합되는것이며 따라서 반드시 해야 할 필수적인 사업이라고 그는 간주하였다. 일찌기 없었던 력사의 이 풍파속에서 더욱 빛을 뿌리는 주체사상의 위력을, 주체의 사회주의의 위력을 세계에 더 크게 시위해야 했다. 그리하여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진보적인민이 신심을 잃지 않고 분발하여 이 폭풍속을 뚫고나오게 해야 했다. 국제연구소 《참모장》인 오가미 겡이찌는 토론회의 주최국인 인디아에 매일이다싶이 전화를 걸어왔다. 비슈와나스는 그와 토론을 거듭하면서 빈틈없는 조직사업을 해나갔다. 물결이 거칠 때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손맞추어 일제히 노를 저어가야 함을 그들은 잘 알고있었다. 한배를 탄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가 한결같았다. 무케르지는 이미 앓고있던 신경통이 심하게 도져 매우 불편한 몸이였으나 토론회보고를 맡아가지고 그 집필에 모든 심혈을 기울여갔다. 비슈와나스는 고빈드를 비롯한 핵심신봉자들과 힘을 합쳐 일을 내밀어갔다. 이노우에 슈하찌리사장도 부지런히 각국의 연구조직들과 신봉자들에게 전화도 하고 만나기도 하며 토론회에서 할 연설내용들을 일일이 검토하고 방조해나갔다. 세계정치정세가 급변해가는 20세기의 마지막년대에 주체사상신봉자들은 자기들에게 지워진 력사적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고있었다. 참으로 미더운 세계의 친구들이였다. 이미 주체사상에 운명을 걸고 직업적으로 나선 그들이였다.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국제토론회를 성과적으로 치르자면 주최국인 인디아에서의 조직사업에 성과여부가 크게 달려있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정부의 각료들과 학자들을 만나고 또 만나며 토론회의 성과적보장을 위해 만전을 다하였다. 이럴즈음 파키스탄의 북동부 인디아와의 국경지대에 있는 도시 라호르에서 알따브 후쎄인도 국제토론회참가준비로 밤을 밝히고있었다. 그는 이번 국제토론회에 참가하여 자기의 한생을 총화하려고 마음을 다잡고있었다. 《…주체사상은 나와 같이 랭랭한 가슴에도 약동하는 삶의 숨결을 부어주는 인간사랑의 가장 완성된 성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사상입니다.》 벌써 며칠밤째 그는 한자한자 심혈을 기울여가며 토론문을 쓰고있다. 그 토론문의 글줄마다에는 지나온 자기 생활의 반성과 회오, 흘러온 력사의 교훈과 진리, 인류가 내다보는 밝은 미래가 비껴있었다. 알따브 후쎄인은 확실히 자기의 심장은 랭랭하였다고 생각되면서 지난날들의 모든 일들이 새삼스럽게 돌이켜지는것이였다. 그가 주체사상의 감화력에 대하여 커다란 충격을 받은것은 10년전 카라치에서였다. 모진 시련과 온갖 도전을 물리치며 주체사상을 따르는 한길에 생명도, 가정도 다 바쳐가는 동료들과 각계층사람들의 완강한 모습에서 그는 막을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력력히 감촉하였던것이다. 카라치에서 돌아온 후 그의 생활과 사고방식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아브둘 말라크와는 평양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는데 정작 헤여지고 자기자신을 돌이켜보니 아무 한 일도 없이 무슨 체면에 동료들과 나란히 설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비슈와나스는 뉴델리에서 큰 국제토론회를 치르고, 아브둘 말라크는 카라치에서 전국토론회를 치르고 평양으로 가는것이였다. 그들과 발걸음을 나란히 하기에는 너무도 한 일이 없는 자기의 마음이 떳떳치 못하였다. 하지만 늦게나마 그들을 따라가야 했다. 그는 시대앞에, 력사앞에 자기 할바를 해놓고 동료들과 한 대오에 나란히 서고싶었다. 그래서 그는 평양행을 뒤로 미루고
라호르에서 주체사상을 연구보급하고 소조를 결성하는 일에 나섰던것이다. 그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그 무엇인가를 잃어버린것 같은 허전한감에 자주 싸이던 그의 가슴에 새로운 힘이 부어지기 시작하였다. 인구수로 보아 파키스탄에서 카라치 다음가는 큰 도시이며 공업중심지인 라호르에서의 주체사상연구보급은 실로 나라의 자주위업실현에서 큰 의의가 있는것이였다. 이 도시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김일성주의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있는 파키스탄최고재판소 소속 변호사인 모하메드 이슬람 나기가 있었다. 알따브 후쎄인은 그와 련계를 취하고 공동보조를 맞추어나갔다. 오늘 라호르에는 알따브 후쎄인이 조종하는 각계층의 사람들이 망라된 주체사상연구쎈터가 활발히 움직이고있다. 이 모든것을 돌이켜보며 한자한자 토론문을 쓰고있는 알따브 후쎄인이였다. 사람을 가장 사랑하고 내세워주는 사상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랭랭한 심장에도 가장 뜨거운 불을 지펴주기마련인것이다. 1992년 2월 8일, 진보적인류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뉴델리에서는 또다시 세계의 자주와 평화에 관한 주체사상국제토론회가 성대히 막을 올렸다. 근 반세기에 걸친 랭전의 종식을 두고 제국주의자들이 반사회주의공세를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하고있던 때에 열린 국제적회합은 그 의의가 자못 큰것이였다. 국제반동세력은 《사회주의의 실패》라는 대합창을 부르고있었으며 부르죠아 자유화를 고취하는자들은 《사회주의의 실패》를 20세기의 대 《유산》이라고 떠벌이고있었다. 한편 사회주의배신자들은 사회주의리념자체가 잘못된것이라고 하면서 저들의 추악한 배신행위를 변호하고있었다. 세계는 어느 길로 갈것인가. 사회주의하에서 살던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있었으며 좌익적인 정당들도 동요하고있던 때였다. 하지만 비슈와나스는 그따위 《사회주의붕괴》설을 믿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가 근 20년세월 조선의 사회주의를 직접 목격해오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심을 깊이 간직해왔기때문이였다. 보라, 주체사상을 지도적리념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오늘 자기의 모습을 만방에 더욱 뚜렷이 떨치고있는것이 아닌가. 토론회는 량일간에 걸쳐 진행되였다. 이번 토론회에는 인디아에서 정부의 많은 각료들과 정당의 요직들이 참가하였으며 각국의 대표단단장들이 모두 권위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것으로 하여 회의의 품위가 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조성된 국제정치정세로 보아 토론회에는 사회적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가하여야 한다고 보고 거기에 각별한 힘을 넣었던것이다. 티. 비. 무케르지가 토론회의 보고를 하였다. 그는 앓고있는 몸이였으나 최대의 마력을 내여 이번 토론회의 보고를 맡아안았던것이다. 이번 연단에서는 세계적으로 맑스주의정통파로 알려져있던 많은 학자들이 주체사상의 과학성과 정당성, 생활력에 대해 저마다 열변을 토한것으로 하여 실천적의의가 자못 큰것이였다. 그것은 시대의 목소리였다. 파키스탄의 대표로 연단에 나선 라호르주체사상연구쎈터 조종자 알따브 후쎄인의 발언은 진실한 심장의 고백으로 하여 참가자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나는 세계를 물질, 경제적관계를 중심으로 고찰하는것은 필연적인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법도 그것을 자로 하여 다스려온 사람입니다. 나의 심장은 사람이면서도 사람을 첫자리에
놓는 위대한 학설에 대해 선뜻 공감하지 못한 랭랭한 돌덩이였습니다.… 주체사상은 나와 같이 랭랭한 가슴에도 약동하는 삶의 숨결을 부어주는 인간사랑의 가장 완성된 성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사상입니다.… 이 세상을 가장 정확히 볼수 있는 유일한 눈은 주체의 세계관입니다. 불변의 이 진리를 이제는 나 하나만이 아닌 력사의 객관적인 증명을 요하는 온 세상사람들이 자기들의 체험으로 받아들이게 되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시대가 도래한것입니다.… 주체사상을 알면 누구든 인간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그의 토론은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토론회에서는 세계자주위업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김정일동지께 올리는 편지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였다. 동유럽의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된 직후에 진행된 뉴델리토론회는 탄생 50돐을 맞으시는 그이께 드리는 전세계 주체사상신봉자들의 가장 큰 선물이였다. 처음으로 국제토론회에 참가하여 심중의 고백을 터친 알따브 후쎄인은 왜서인지 그때부터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감을 느끼였다. 세 친구는 마주앉았다. 알따브 후쎄인은 동료들에게 말하였다. 《나에게도 무슨 과업을 하나 주게.》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이 조용하였으나 그의 심장은 일찌기 느껴보지 못한 새삶의 환희와 감격으로 끓고있었다. 동료들은 웃으며 말하였다. 《헤여질수 없는 우리들이지.》 《그럼! 헤여질수 없는 우리들이지.》 세 친구는 서로서로 손을 마주잡았다. 그들은 완전한 의미에서 지금 다시 만났다고 해야 할것이다. 순수 지난날의 추억만을 안고있는 개인적우정이라면 발전하는 시대와 더불어 어이 계속 깊어질수 있으랴. 추억은 오늘을 위하여 있는것이고 오늘은 래일을 위하여 있는것이다. 추억에 머무르는 친구가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손잡고 새 세계에로 함께 가는 그런 친구가 진짜 영원한 친구인것이다. 알따브 후쎄인은 자기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며 이끌어주며 진심을 받아준 동료들이 고마왔다. 끝까지 진심을 알아준다는것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감동시키고 가볍게 해주는것인가. 알따브에 대한 동료들의 믿음은 헛되지 않았다. 비슈와나스는 동창으로서만이 아니라 정확한 사람으로서 알따브 후쎄인을 좋아했고 잊지 않고있었다. 자기처럼 감성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것을 침착하게 판별하는 그의 리성은 따라배울만한것이라고 비슈와나스는 대학시절부터 생각해왔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일에도 선뜻 끼여들지 않았고 때로는 랭랭하게 지켜보고만 있던 알따브였다. 그러던 그가 주체사상의 과학성과 진리성을 주객관적으로 다 검증하고 드디여 심장으로 받아들였으니 어찌 그의 가슴이 환희에 높뛰지 않을수 있으랴. 그런 사람의 심장이 일단 높뛰면 다른 사람에 비해 배가로 불타오르는것이다. 그 인간이 감성형이든, 리성형이든, 또 그 민족이 감성형이든 리성형이든 옳은 사상은 모두의 가슴을 흔들며 그들을 새 사회건설의 참된 길로 이끌어가는것이였다. 역시 옳은 사상은 세계를 휩쓸며 교파, 학파, 당파의 한계를 초월하여 사람들을 하나로 더욱 굳게 단합시켜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였다. 서로 다른 교리로 하여 갈라졌던 친구도 민족도 주체의 이길에서 다시 만나는것이였다. 참으로 주체사상은 친구의 정을 더 두터이 해주고 인간관계를 단결의 힘으로 한껏 승화시키며 만민을 끌어당기는 위대한 사상이였다. 인간에게는 존엄을, 민족에게는 긍지를, 인민에게는 미래를 안겨주는 사상이 바로 주체사상이였다. 이렇게 곡절많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 많은 동료들, 더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더욱 굳게 뭉쳐 주체의 길에 발벗고나섰다. 생활이 그들을 그길로 이끌었던것이다. 토론회와 때를 같이하여 비슈와나스는 1988년부터 준비해온 《김일성백과전서》의 발행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다. 김일성동지의 탄생 80돐을 기념하여 내놓은 책은 세상에 나가자마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이 무너지고 그 나라 지도자들이였던 사람들의 운명을 담보하기 어렵던 시대였다. 이런 때 세계의 지성인들이 주체의 사회주의나라의 위대한 수령에 대한 전서를 내놓았으니 그 반향은 대단한것이였다. 전2권으로 된 전서는 각 대륙의 지역연구소들과 연구조직들 그리고 세계의 이름있는 도서관들과 대학들에 배포되여 오늘도 읽히우고있다. 언제인가 나는 그 책을 훌륭하게 완성한데 대해 비슈와나스에게 말한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칭찬이나 받자고 그 책을 편찬하지 않았소. 나는 주체사상신봉자로서 응당 해야 할 임무를 했을뿐이요. 그 책은 내가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호상 협력을 잘하여 완성한것이요.》 《그래도 선생이 발기하고 발행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발기인이 있고 발행인이 있어야 책이 나오는것만은 사실이요. 하지만 그 책은 나 한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김일성주석을 끝없이 흠모하는 세계의 마음들이 힘을 합쳐 력사에 내놓은것이요.》 참으로 그러했다. 《김일성백과전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세계인민들의 절대적인 신뢰가 낳은 귀결인것이다. 1989년부터 뽈스까에서 시작된 사회주의의 좌절이 90년대 초엽에 이르러 쏘련을 위시한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을 무너뜨리고 정치경제적혼란이 심화되고있는 때에 아무런 변화없이 사회주의의 한길로 나라를 이끄시는 조선의 위대한 수령을 어찌 만민이 찬탄하지 않을수 있으랴. 보석의 빛발은 어두운 밤에 더 반짝이고 위인의 모습은 순탄하지 않는 세상에서 더욱 빛나는것이다. 김일성동지! 그이는 세계자주화위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는 주체의 태양이시였다. 비슈와나스는 그이를 위해, 그이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기 위해 그 무엇을 또 해야 했다. 력사의 이 동란속에서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고 그는 스스로 자기를 자각하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품고있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김일성동지의 존함을 모신 국제상을 제정하고싶은 생각이였다. 인디아에는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에게만 수여하는 네루상이 있었다. 만약에 김일성주석의 존함을 모신 국제상을 제정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국제적인 표창관례를 건전화하고 사람들에게 위인에 대한 흠모심을 뜨겁게 안겨주는 일대 경사로 될것이였다. 왜냐하면 그이는 인류가 우러르는 성인이시기때문이였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힌두교의 나라에서 태여나 일찌기 부모들과 외가집에서 교육받은 힌두교의 성인들에 대한 이야기며 가지가지의 전설들과 영웅담이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진 남다른 성장과정과도 관련되여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어린 마음에 갈마들었던 성인에 대한 흠모심은 세계관이 형성되면서 종교의 성서에서가 아니라 현시대의 초점을 모으시는 현실의 위인, 김일성동지에 대한 흠모심으로 승화되였던것이다. 그는 곧 이 사업에 착수하리라 결심하였다. 조용히 가슴속에 무르익혀오던 이 과제는 더는 미룰수 없는 성숙된 력사적과제로 그의 심금을 울리기 시작하였던것이다. 그는 이것을 시대의 요구로 받아들이였다. 그의 불같은 성미는 이번에도 나타났다. 그는 자기의 이 발기를 국제연구소와 각 지역에 있는 리사들 그리고 인디아의 각료들과 동료들에게 하루사이에 다 통보하였다. 《김일성백과전서》를 세상에 내놓은데 뒤이어 국제김일성상의 제정을 발기해나선 비슈와나스의 위인에 대한 끝없는 흠모심, 지칠줄 모르는 그 정열에 동료들은 감복하였다. 세계의 저명한 인사들로 곧 국제김일성상을 내오기 위한 발기인집단이 무어졌으며 그 상의 제정을 위한 발기인들의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비슈와나스는 김일성재단설립과 국제김일성상을 제정, 수여할데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회의참가자들은 진지한 토의를 하였다.
국제김일성상은 단순한 과학기술발전이나 세계평화위업에 기여한 인사들에게 수여되는 다른 국제상들과는 달리 온 세계의 자주화위업에 특출한 기여를 한 진보적인사들에게 수여하자는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의사였다. 그리고 상금을 위주로 할것이 아니라 정치사상적평가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영원히 뜻깊게 기념할수 있는 기념품을 배합하는 방향에서 제정할데 대하여 합의하였다. 그해 3월 중순 비슈와나스는 조선으로 왔다. 탄생 80돐을 맞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김일성백과전서》를 선물로 드리고 또한 자기가 계획한 모든것을 그이께 삼가 보고드리고 가르치심을 받고싶었다. 례년에 없이 비슈와나스의 가슴은 기쁨으로 설레였다. 얼마나 환희로운 일인가. 이 세상에 《김일성백과전서》가 태여났고 이제 또 국제김일성상이 태여난다는것이! 이것은 인류의 한결같은 요구를 반영한것이였다. 그러나 한편 비슈와나스는 이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것은 한없이 겸허한 품성을 지니신
김일성주석께서 자기들의 념원을 만류하실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앞섰기때문이였다. 3월 19일, 김일성동지께서는 먼 곳에서 온 전사를 또다시 만나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미 구면인 비슈와나스를 홀에까지 나오시여 마중하시며 뜨겁게 포옹해주시였다. 너무도 반가우시여 기념사진부터 찍어주시고 담화실로 이끄시는 위대한 인간, 위대한 스승! 이처럼 위대한 성인에게 그 누가 자신의 모든것을 터놓지 않을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지 않을수 있으랴.
담화실에서 자리를 권하시는 김일성동지를 우러러 비슈와나스는 진정의 마음을 터놓았다. 《저는 먼저 탄생 80돐을 맞으시는 주석각하께 가장 충심으로 되는 축원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각하의 신봉자로서 주석각하를 어버이로 높이 존경합니다.…》 이렇게 허두를 뗀 비슈와나스는 어려움도 잊고 15년전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왔을 때 깊은 인상을 받고 마음속깊이 스승으로 모시고있는데 대해, 오늘 인디아가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하나의 큰 쎈터로 전변된데 대해,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사회주의가 생존하고있을뿐아니라 꽃과 같이 계속 만발할것이라는데 대해 말씀드리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주체사상은 인간생활에 커다란 복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복리를 받아안은 사람들속에 저도 속해있습니다.… 주석각하께서는 10여년전에 저에게 사회주의의 전망과 미래에 대하여 몇가지 실례를 들어 말씀하시였습니다.… 저는 주석각하께서 그때에 저에게 하신 말씀이 정말 천만번 지당하였다는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주석각하께서는 저에게 쏘련정세에 대하여서도 말씀하시였습니다. 주석각하께서 그때 쏘련정세와 관련하여 저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에 와서 현실로 되였습니다. 쏘련은 망하였습니다. 쏘련에서는 사회주의가 망하였으며 민족도 분렬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거듭 앉으라고 하시며 인자하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건강한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와 당신의 의지는 같습니다.… 나와 당신은 벗으로, 형제로, 동지로 되였습니다. 우리들사이의 관계는 이제부터 완전무결한 동지적관계입니다.》 위대한 스승의 더없는 믿음을 받아안은 비슈와나스는 끓어오르는 감격으로 가슴을 들먹이였다. 천하를 굽어보시는듯한 빛나는 눈길, 강산을 울리는듯한 우렁우렁한 음성… 위인의 그 영상을 우러러 비슈와나스는 삼가 마음을 가다듬었다. 《당신은 그때 내가 한 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한 말이 이제는 사실로 되였습니다.…
적들은… 벌써 한 40년전에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을 엎어놓기 위한 계획을 짜놓았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그때부터 자주적으로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때부터 자주적으로 나간것이 얼마나 정당하였는가 하는것은 지금에 와서 더욱 증명되였습니다.》 계속하시여 김일성동지께서는 세계정치정세에 대하여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으며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붕괴된 원인에 대하여 두가지로 분석해주시였다. 그 원인은 첫째로, 그 나라들이 자주성이 없었기때문이며 둘째로, 적들의 암해책동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금은 모든 나라가 자주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다 망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 순간 비슈와나스는 마음속으로 온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그이께서 하신 말씀을 수록한 책을 꼭 만들어 세상에 내놓아야하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은 그의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졌다. 그는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터놓았다. 《저는 오늘 주석각하께서 하신 말씀을 주체사상신봉자로서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저는 주석각하의 생애에 대하여, 주석각하께서 지금까지 온갖 난관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투쟁을 벌려오시여 조선을 오늘과 같은 자주적인 나라로 전변시키신데 대하여 깊이 연구해온 학생이라고 말씀올릴수 있습니다.》 비슈와나스는 위대한 수령님께 《김일성백과전서》를 삼가 올리였다. 그는 이 기회에 주석각하의 탄생 80돐에 즈음하여 자기의 소박한 선물인 《김일성백과전서》를 올리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책이 담고있는 내용과 이 책의 집필에 세계의 수많은 저명한 학자들과 주체사상신봉자들이 참가한데 대해 말씀드렸다. 한없이 겸허하신 그이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인사를 전하여주기 바란다고 하시며 비슈와나스를 오찬회장으로 이끄시였다. 오찬회장에 들어서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비슈와나스에게 자리를 권하시고 말씀하시였다.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 이 잔을 듭시다.》 비슈와나스는 황송하였다. 더없이 감개무량한 그는 다시 일어서며 말씀드리였다. 《오늘은 저에게 있어서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저는 탄생 80돐을 맞으시는 주석각하께서 건강하실것을 축원하여 이 잔을 들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에 사의를 표하시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담화는 계속되였다. 여느때없이 비슈와나스는 점점 마음이 긴장되여옴을 어쩔수 없었다. 정작 보고드려야 할 시각이 오자 그의 마음은 망설이게 되는것이였다. 하지만 이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보고는 드려야 했다. 그는 용단을 내려 말씀드렸다. 《주석각하! 저희들은 세계인민들의 한결같은 념원을 담아 각하의 존함을 모신 국제상을 제정하려 합니다.》 아니나다를가 그의 말을 들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를 굳이 만류하시는것이였다. 우려하였던 그대로였다. 비슈와나스는 자기가 왜 국제김일성상을 내오려 하고있는가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주석각하! 제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것은 세계인민들이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주석각하에 대하여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제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것은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주석각하의 조언과 령도를 받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고있는 현실태와 관련되는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겸허한 안색을 지으시더니 이윽하여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위대성에 대한 화제에로 말씀을 돌리시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감동되였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시고 인민의 지도자를 내세우시는 위대한분이시였다. 그이의 숭고한 그 풍모앞에 머리를 숙이며 비슈와나스는 마음속으로 결심을 더욱 굳게 하였다. 내 반드시 세계 진보적인류의 념원을 담아 이 상을 제정하리라. 이것은 력사가 준 의무였고 시대가 준 사명이였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 상은 영원히 제일 높은 국제상으로 남아있게 될것이다. 비슈와나스는 만나뵈올수록 한없이 인자하신 그이의 모습에서 숭고한 인간애와 은정깊은 사랑을 더욱 뜨겁게 받아안았다. 그는 김일성동지의 안광에서 여유작작하고 자신만만하신 모습을 직감했다. 정치와 경제가 안정할 때 정치가는 여유를 가지게 되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생각했다. 그이의 안광에 흘러넘치는 한없이 인자한 사랑의 빛은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모든 부문이 신뢰하는 김정일동지의 령도밑에 륭성번영의 한길로 전진하는데서 느끼시는 만족이 낳은것이 아닐가?! 비슈와나스는 김정일동지의 탄생 50돐에 즈음하여 인디아에서 중요한 행사가 50회 진행된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헤여지시면서 앞으로 가족을 데리고 우리 나라에 와서 휴식하라고 하시며 그를 뜨겁게 포옹해주시였다. 비슈와나스는 김일성동지께서 부디 건강하시여 주체사상신봉자들을 계속 축복하여주실것을 간절히 바랐다. 비슈와나스는 평양에서 곧장 도꾜로 날아갔다. 김일성동지의 탄생 80돐을 맞으며 일본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4월 6일부터 8일까지 진행된 도꾜토론회에는 세계의 모든 대륙과 국제 및 지역기구에서 온 대표단과 대표들, 저명한 사회활동가들과 과학, 교육, 언론계인사들 600여명이 참가하였다. 격변하는 세계정치정세의 흐름속에서 진행된 1992년의 이 도꾜토론회의의 준비에 오가미 겡이찌, 이노우에 슈하찌를 비롯한 일본의 인사들이 큰 역할을 놀았다. 이 토론회에 참가한 비슈와나스는 세계의 모든 주체사상신봉자들로부터 국제김일성상제정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와 찬사를 받았다. 그후 국제김일성상제정을 위한 준비사업은 더 빨리 다그쳐졌다. 그 다음해 3월 중순 비슈와나스는 또다시 평양방문의 길에 올랐다. 탄생 81돐을 맞으시는 김일성동지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비슈와나스는 인디아공산당(맑스주의) 총비서 쑤르지트를 만났다. 그들은 가까운 사이였다. 쑤르지트는 비슈와나스에게 조선에 가면 자기와 함께 한 초대소에 들자고 하면서 한 대표단성원으로 같이 있는것이 어떤가고 하는것이였다. 《아니.》 비슈와나스는 첫마디에 반대하였다. 그것은 그의 말대로 하면 다른 사람들이 마치도 자기가 무소속이 아니고 공산당에 속해있는 사람으로 잘못 알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는 그 어떤 당파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그는 자유로운 사람으로서 자기가 인정되는것만을 따르고있었다. 그가 주체사상을 따르고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를 흠모하는것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으로서의 그의 신념이였다. 당시 조선의 정세는 위기일발의 전쟁전야였다.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일부 계층들을 사촉하여 구실을 붙여 《특별사찰》을 강요해나섰으며 1월부터는 이미 중지했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재개를 공포하였고 여기에 20여만의 침략무력과 방대한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고 지어 핵무기사용시의 지휘체계까지 발동하면서 군사적위협을 가해나섰다. 만전쟁으로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진 미제는 공화국에 대해 군사행동으로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해온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의 핵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정면대결로 나서고있었다. 전국, 전민, 전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이 3월 8일 세상에 공포되고 뒤이어 며칠후에는 나라의 최고리익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부득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 공화국정부 성명이 발표되자 세계는 죽가마끓듯 하고있었다. 자주국가의 존엄과 위력을 온 세상에 과시한 조선의 이 조치는 세계의 응당한 지지를 받을만한 자위적조치였다. 이것은 누구도 예측 못했고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그야말로 청천벽력의 《핵》탄공세였다. 세계는 《북조선의 핵개발을 막으려고 한 미국의 전략이 북조선의 탈퇴선언으로 실패하였다.》며 미국이 이에 대하여 어떠한 제재방법도 가지고있지 못한데 대하여 야유하였다. 반면에 세계의 일부 통신들은 조선이 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는 결정을 채택하지 않으면 안되였는가 하는 그 리유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고 조선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지 않기 위하여 탈퇴하였다고만 냅다 보도하고있었다. 조선의 정세는 초긴장상태로 팽팽해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이런 때일수록 더 조선에 가야 한다는 드놀지 않는 신념을 안고 변함없이 조선을 찾아온것이였다. 미제의 무분별한 군사적침략의 《구실》로도 될수 있는 공화국의 탈퇴선언이 어떤 배심에서부터 나온것이며 또 공화국의 원칙적립장과 강경한 자세가 어디에 기초한것인가를 잘 알고있는 비슈와나스였다. 그의 가슴속에는 조선은 반드시 이긴다는 확고한 신념이 자리잡고있었다. 김정일최고사령관께서 미국이 아직도 전쟁연습에 매달리고있는 때인 3월 24일 준전시상태를 주동적으로 해제한것은 세계에 다시한번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비슈와나스의 마음속의 신념을 더욱 굳게 해주는 또하나의 계기로 되였다. 준전시상태의 조기해제로 미국은 또한번 패자의 몰골을 세상에 드러내보였다. 가장 긴장한 정세를 안고있는 조선에 와서 이 모든것을 체험하는 비슈와나스의 심장은 흥분으로 끓고있었다. 4월 3일, 김일성동지께서는 금수산의사당에서 또다시 비슈와나스를 접견해주시였다. 환하게 웃으시면서 그를 포옹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는 당신과 같은 오랜 벗과 만나는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비슈와나스는 자기의 심정그대로를 말씀드렸다. 《저는 자기 집에 오는것과 같은 감정으로 조선에 오군 합니다. 저는 특히 주석각하를 만나뵈올 때마다 친어버이를 만나는 심정을 금할수 없습니다. 저는 탄생 81돐을 맞으시는 주석각하께 가장 충심으로 되는 축원의 인사를 올립니다.》 비슈와나스는 김일성주석께서 마치 신과 같이 출현하시여 노예의 쇠사슬에 묶이여 고통을 겪고있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여주고계신다고 말씀드리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당에 가서 성경책을 읽으며 신을 믿을 때 저는 주석각하의 로작을 학습하면서 많은 정신적량식을 얻고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과연 사람이 어떻게 자주적으로 살며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됩니다.… 수천수만년동안의 인류력사는 아직 위대한 수령이신 주석각하와 같으신 위인을 모셔보지 못하였습니다.》 비슈와나스는 자기의 마음속진정을 그대로 터놓으면서 주체사상연구보급에서 나서는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요청을 드렸다. 그러면서 그는 주석각하를 만나뵈올 때마다 페를 끼쳐드리게 되는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나와 같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시였다. 《괜찮습니다. 친구들사이에 서로 만나 담화를 나누는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한없이 인자하신 그이의 그 인품과 도량에 모든 어려움을 다 잊은 비슈와나스는 자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체사상신봉자로서 자기 본분을 다하기 위하여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있으며 주석각하께 제기한다고 스스럼없이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비슈와나스가 제기하는 모든 요청을 그자리에서 다 풀어주시며 아무런 격식도 없이 말씀하시였다. 《당신은 백살까지 살아야 합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 살 권리가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날 비슈와나스를 위해 오찬을 마련하여주시였다. 그이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은 비슈와나스의 가슴에 자주성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며 싸워야 하는가를 깨우쳐주는 훈령으로 깊이 새겨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기껏해야 조선에 경제《제재》조치밖에 취할것이 있겠는가고,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사람들의 경제《제재》를 받고있다고, 우리는 먹을것과 입을것이 있으며 쓰고살 집이 있기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자주권을 잃지 않을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미국사람들이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재개하고 국제원자력기구가 우리에 대한 〈특별사찰〉을 하겠다고 하기때문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였으며 이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였습니다. 지금 그들은 우리에 대하여 어쩌지 못하고있습니다. 우리는 겁나하지 않습니다.…》 무비의 담력을 지니신분이시였다. 그런 위인만이 력사의 반동들을 정면으로 대항하시며 인류의 자주위업을 이끌어갈수 있는것이다. 참으로 김일성주석은 만나뵈올수록 우러러따르게 되는 스승이시였다. 그이를 또다시 만나뵈옵고 돌아온 비슈와나스는 주체위업의 정당성과 불패성을 더욱 확신하면서 일을 내밀어갔다. 이런 나날속에 드디여 국제김일성상리사회가 발족하게 되였다. 해밀톤 그린(가이아나 전 수상) 이노우에 슈하찌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장) 기 듀프르 (조선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국제련락위원회 서기장) 도랑크 아싸파트 디아쎄니 (기네청년, 체육 및 예술상) 알바 챠베스 데 알바라도(에꽈도르 과야낄종합대학 부총장) … 국제김일성상리사회 성원들의 국적과 직무, 신앙과 피부색, 언어, 풍습은 다 서로 달랐지만 위대한 수령님을 만민의 태양으로 우러르고 받드는 그들의 마음은 하나와 같았다. 불타오르는 5대륙의 그 마음들에 떠받들려 바로 국제김일성상리사회가 발족되였던것이다. 리사회서기장으로서는 발기자인 비슈와나스가 추천되였다. 그는 곧 리사회의 소재지를 뉴델리로 정하고 인디아정부에 공식 등록하였다. 그 어떤 조직이나 기구를 정부에 공식 등록한다는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 비슈와나스는 나에게 솔직히 말하였다. 《나는 인디아주체사상연구학회,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 국제김일성상리사회를 다 정부에 공식 등록하였소. 인디아와 로씨야가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지만 인디아로씨야협회도 아직 정부에 등록되지 않고있소. 오직 조선과 관련된 이 3개의 기구들만 정부에 등록되여있소. 때문에 토론회를 조직하면 정부가 승인해주고 지지해주는것이요.
이 3개의 기구를 정부에 등록하기 위하여 내가 필요한 절차를 밟으며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는가 하는것은 누구도 생각 못할것이요. 누구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소.》 나는 그의 말이 리해되였다. 그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위대한 사상에 공감되여 그 사상을 연구보급하는 길에 스스로 나선 사람만이 발휘할수 있는것이였다.
할바에는 합법적으로 크게 하자는것이 그의 일관한 태도였다. 그의 모든 생각은 즉시즉시 행동으로 넘어갔다. 행동은 웅변이다. 1993년 4월 20일, 그는 기자회견을 가지고 국내외기자들에게 리사회의 결성소식과 국제김일성상의 제정내용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인디아의 각 통신들과 샹강(홍콩), 파키스탄, 영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광범한 보도수단들이 이에 대해 널리 보도하였다. 즉시 전파를 타고 5대륙에 퍼져가는 국제김일성상의 제정에 관한 소식은 지구우에 자주화의 거세찬 시대적조류가 더한층 굽이치게 하는 사변이였다. 사회주의위업이 풍파를 겪고있는 시기에 국제김일성상이 제정된것은 주체사상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나아간다면 세계자주화위업은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드팀없는 의지와 신념의 과시이기도 하였다. 국제김일성상이 제정된 소식에 접한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영광은 먼저 주체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신 김정일동지께 드려야 한다는 념원을 강하게 표시하였다. 하지만 이 념원은 그때에 실현될수 없었다. 가장 큰 영광은 먼저 인민에게, 인류에게 돌려주시는 김정일동지이시였다. 비슈와나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45돐을 맞으며 첫 국제김일성상을 수여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첫 상을 누구에게 수여하겠는가 하는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그것은 세계에 주체사상신봉자들의 수가 수백수천만명에 달하기때문이였다. 리사회성원들은 토론을 거듭하던 끝에 이노우에 슈하찌리사장을 추천하였다. 이노우에 슈하찌는 우선 관록있는 학자였다. 맑스주의정통파로부터 주체사상신봉자가 된 그는 국제연구소 연구원, 부리사장으로 오랜 기간 사업하면서 주체사상을 해설선전한 많은 도서들을 집필하였으며 1990년부터는 리사장으로 추천되여 전세계에서의 주체사상연구보급을 위한 일에 한몸 다 바치고있었다. 사실 조선의 적대국 자본주의일본에 살면서 주체사상을 위해 전념한다는것은 목숨을 내건 투쟁과도 같은것이였다. 리사회는 전원찬성으로 그에게 국제김일성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리하여 평양의 만수대의사당에서는 국제김일성상이 제정되여 처음으로 되는 수여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그날은 1993년 9월 7일이였다.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영광의 그 첫 상을 받아안은 이노우에 슈하찌는 5대륙의 저명한 인사들이 모인 뜻깊은 그자리에서 가슴을 들먹이며 이렇게 말하였다. 《존경하는 김정일각하의 령도는 현시기 사회주의와 인류의 운명개척의 근본담보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먼저 가장 큰 국제적영예를 받으셔야 할분은 김정일각하이십니다.》 순간 장내에서는 우렁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진정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령도따라 나아가는 길에서 자주의 삶을 빛내이려는 세계인민들의 념원이 얼마나 강렬한가를 보여주는 숭엄한 화폭이였다. 비슈와나스는 눈굽이 젖어올랐다. 이 순간 그에게는 국제김일성상을 제정하려고 발기인집단을 뭇던 일, 국제적인사들과 텔렉스와 팍스를 주고받으며 밤을 지새우던 그 모든 나날들이 참으로 긍지높이 되새겨지는것이였다. 세기의 위인의 존함을 모신 국제상이 제정되고 그 첫 수상자가 배출된것은 인류사에 특기할 력사적사변이였다. 이 력사적사변을 마련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자부심, 인류의 념원을 실현시켜나가는 성스러운 위업에 한몸을 바치고있다는 긍지감이 있기에 그는 삶을 귀중히 여기고있었으며 보람을 느끼고있었다. 그의 삶의 보람은 그 다음날에 절정을 이루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비슈와나스를 비롯한 국제김일성상리사회성원들을 친히 만나주시였던것이다. 금수산의사당에서 이들을 뜨겁게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국제김일성상을 수여받은 이노우에 슈하찌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고 또한 리사회성원들과도 기념사진을 찍어주시는 최대의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오늘 이노우에 슈하찌선생과 비슈와나스선생 그리고 알바 챠베스 데 알바라도녀사를 만나게 되여 대단히 기쁩니다. 나는 우리 공화국창건 45돐을 계기로 여러분들이 우리 나라에 온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나라들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에 있는 주체사상신봉자들이 주체사상을 확고히 견지하고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커다란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고있는데 대하여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정력과 활기에 넘쳐 말씀하시는 김일성동지의 모습은 정녕 그들에게 있어서 자주위업승리의 희망이였고 신심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모든 일이 다 잘되여나가고있기때문에 당신들은 우리를 지지한 보람이 있을것입니다.》 그이의 말씀은 모두에게 신심을 배가로 더해주었다. 리사회성원들은 모두가 위대한 수령님께 축원의 인사를 삼가 드렸다. 비슈와나스는 국제김일성상리사회 서기장으로서 자기가 해야 할바를 해야 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정중히 보고를 드리였다. 《국제김일성상을 제정한것은 전세계 주체사상신봉자들의 절절한 념원이였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주석각하의 접견을 받은 다음 인디아에서 주체사상연구학회를 조직할 때에는 거기에 수십명이 망라되여있었지만 지금은 수백만명에 달하고있습니다. 저희들은 전세계 주체사상신봉자들의 심정을 반영하여 이름있는 사람들로 국제김일성상리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저희들이 국제김일성상을 제정하고 첫 수여식을 한것은 전세계 주체사상신봉자들의
절절한 념원이 실현된 의의있는 사변입니다.》 비슈와나스는 매우 큰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국제김일성상을 앞으로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적극 선전하는데 공로가 큰 사람들에게 수여하겠다는것을 말씀드리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위대한 수령은 위대한 령도자를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존경하는 김정일각하의 현명한 령도밑에 주체사상이 세계적범위에서 계속 꽃펴나가리라는것을 확신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사상은 그 누구에게 내리먹이여 접수될 사상이 아니라고, 자주적으로 나가자는 사상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그 말씀은 모두의 가슴에 뜨겁게 새겨졌다. 그 누구에게 얽매여 살지 않고 자주적으로 살아나가자는 사상이 그 누구의 가슴엔들 스스로 젖어들지 않을수 있으랴. 비슈와나스는 인디아는 매우 큰 나라이지만 김일성주석과 주체사상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주체사상을 배우는것은 신앙과 같은것으로서 자유로운것입니다.》 그이의 그 말씀에 리사회성원들은 감복하였다.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온 그날은 그들모두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에 대한 신심과 락관이 더욱 굳어진 뜻깊은 하루였다. 비슈와나스는 국제김일성상수상자들이 수없이 늘어나 온 세상에 자주의 함성이 더 높이 울려퍼질 래일의 세계를 그려보았다. 그날을 위해 더 힘차게 일해갈 열정의 힘이 온몸에 새롭게 퍼져갔다. 비슈와나스는 더 많은 일을 하여 위대한 스승의 품으로 더 자주 찾아오리라고 속다짐하였다. 그때부터 국제김일성상수상자는 해를 따라 늘어나고있다. 티. 비. 무케르지, 오가미 겡이찌, 아길라르 불가렐리, 도랑크 아씨파트 디아쎄니, 삼 뉴죠마… 이렇게 비슈와나스는 폭풍의 년대, 1990년대를 행진해갔다. 사람은 력사의 풍파속에서 자기를 검증하는것인지도 모른다. 그 풍파속에서 사람은 더 세련되여가는것이며 자기의 모습을 더 완성하여가는것이다. 그렇다. 폭풍속을 나는 새는 더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