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7. 도전을 물리치면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은 세계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키고있었다. 그것은 김일성동지의 주체위업을 이으실 후계자께서 공식적으로 세계에 그 모습을 나타내시였기때문이였다.

조선에서의 후계자문제가 세계적관심사로 되고있는것은 그것이 세계자주화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로 간주되고있었기때문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새로운 젊음을 느꼈다. 그이를 모신 1980년대가 가슴벅차게 안겨오는것이였다. 그 가슴은 이렇게 속삭이고있었다.

이것은 사변이다. 이 사변은 틀림없이 세계를 주체의 궤도우에 확고히 올려세우는 력사적사변으로 인류사에 전해질것이다.

비슈와나스는 마음속에 더욱 뚜렷이 새겨지는 그이의 영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의 소원은 그이를 꼭 한번 만나뵙는것이였다.

그날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있었다.

제도와 정견, 신앙과 계급적처지에 관계없이 누구나 받아들일수 있는 자주화의 기치를 온 세계에 휘날리기 위해서는 멀고 험한 길을 더 많이, 더 과감히 걸어가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 길에 더 큰 자국을 새겨놓고 그이앞에 나서겠다는것이 그의 진정한 마음속생각이였다.

그날을 향해 그는 뛰고 또 뛰였다.

김일성동지의 탄생 70돐을 맞으며 세계적범위에서 진행하기로 한 주체사상국제토론회준비에 그는 여념이 없었다.

스웨리예의 수도 스톡홀롬에서 있은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회 제4차회의에서 비슈와나스는 김일성동지의 탄생 70돐을 맞으며 인디아에서 전세계적인 국제토론회를 재차 조직할것을 제기하였던것이다. 그것도 전례에 비할수없이 가장 큰 규모에서 조직하자는것이였다.

리사회에서는 비슈와나스의 제기를 토론에 붙이였다.

국제토론회조직은 품이 많이 들고 힘이 드는 일이였다. 하지만 믿음이 가는 비슈와나스였다. 우선 그에게는 이미 세계적인 국제토론회와 지역토론회들을 조직운영해본 경험이 있었다. 또한 인디아는 주체사상에 대한 정부의 견해도 좋았고 비슈와나스의 사회적인 영향력도 큰것으로 하여 그러한 대회를 치를만한 토대가 마련되여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오가미 겡이찌가 이를 적극 지지해나섰다. 그는 전해부터 국제연구소 사무국장사업을 하고있었다. 모두가 이에 지지를 표시하였다. 이렇게 되여 비슈와나스의 제기는 모든 리사들의 지지를 받으며 결정되였던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1년이였다. 그는 국제연구소와 매일이다싶이 전화련계를 가지면서 동료들과 함께 각 지역연구소와 국내에서의 사업조직 등으로 분망한 나날을 보내였다.

성과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1982년에 들어서면서 비슈와나스는 토론회준비사업과 함께 도서, 사진전시회준비사업도 동시에 내밀면서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지역의 몇개 나라를 돌아보기 위하여 비행장으로 나갔다. 비행장 휴계실에서 비슈와나스는 뜻밖에도 인디아주재 남조선대사와 맞다들게 되였다. 그자는 알은체를 하며 비슈와나스에게 다가와 제법 상냥한 어조로 말을 건네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선생, 〈한국정부〉에서 선생을 특별히 초청하는데 한번 가보시지 않겠습니까? 〈열렬한 환대〉를 받을겝니다. 북한에만 가보고 조선을 다 알수 없지 않습니까.》

비슈와나스는 대번에 이마살을 찡그리였다. 남조선의 외교관리라는 작자들과는 만나는것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이자들은 한동안 즘즛해있더니 또 무슨 발작이 난 모양이다. 아니, 그자들은 즘즛하고있은것이 아니라 바뀌는 대사들마다 비슈와나스의 일거일동을 시종 감시하고있는것이였다.

노기가 오른 비슈와나스는 그자에게 통짜로 말하였다.

《여보, 수천명의 시민이 학살된 광주의 피바다와 남조선땅에 욱실거리는 미군을 보러 가겠소? 다시는 내앞에 나타나지 마오.》

흐지부지없이 딱 자르는 비슈와나스의 말에 명색이 대사라는 자는 찍소리 한마디 하지 못하고 사라지고말았다.

이자가 어째서 가만있다가 오늘 이러는가?…

혹시 이번 토론회를 어째보려고 하는것은 아닌가?…

어림도 없는 일이지, 어제날 보기 좋게 나딩굴었던 그 자동차의 주인이 세월이 흘렀다고 하여 마음속의 가속답판을 한시라도 늦추고있는줄 아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비슈와나스의 머리속에는 미국방문시 자기를 돌려세워보려고 항시 주위를 맴돌던 남조선요원들의 살기어린 웃음이 보여오기도 했다.

그는 이런 때일수록 경각성을 높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토론회날자는 하루하루 박두해오고있었다.

아시아나라들의 방문을 서둘러 마치고 돌아오는 길로 비슈와나스는 토론회장소를 보려고 갔다.

그곳에서는 토론회준비위원회성원들이 토론회장과 전시회장을 꾸리느라고 분주히 돌아가고있었다.

《수고들하오.》

날자를 앞당겨 돌아온 비슈와나스를 모두가 반갑게 맞이하였다.

《선생님, 준비사업은 계획대로 추진되고있습니다.》

고빈드가 하는 말이였다.

《그래 다른 일은 없소.》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에 협박전화가 걸려왔댔습니다.》

《어떤 협박전화요?》

《토론회를 중지하지 않으면 폭탄세례를 받을줄 알라고 협박하는 전화였습니다.》

《비렬한 놈들, 아무래도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소. 우리 경각성을 더욱 높입시다.》

《알겠습니다.》

비슈와나스는 토론회장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고빈드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토론회장을 옮기는것이 어떻소?》

《예? 어디로 말입니까.》

《정부회의장으로!》

《그 회의장이야?!…》

고빈드는 선뜻 말이 나가지 않았다. 원래 정부회의장은 정부의 중요행사만 하는 장소로서 그 누구도 개별적인 사람들이 물리지 못하는 곳이였다. 세계의 그 어떤 행사든 이 회의장만은 쓰기 힘들었다. 아무 나라에나 국회의사당만은 대체로 그렇게 되여있는것이 상례인듯싶다. 이 모든것을 잘 알고있는 고빈드였다.

선뜻 대답 못하는 고빈드에게 비슈와나스는 말하였다.

《정부회의장은 내가 해결하겠소. 그러나 아직은 아무말 하지 말고 제꺽 옮길 준비만 잘하고있소.》

그 이후 비슈와나스는 수상을 찾아가 공식 요청하여 정부회의장을 쓰도록 승인을 받았다.

당시 수상은 다시 인디라 간디가 하고있을 때였다.

1977년 국회선거에서 패하여 정권에서 물러났던 그는 1980년 1월에 다시 수상으로 취임하였던것이다.

일시 자기의 정책에서 범한 과오로 하여 인민들의 지지를 잃고 정권에서 물러났던 그가 다시 수상직에 올라 인기를 되찾은것을 보면 역시 그는 보통 녀사는 아니였던듯싶다.

비슈와나스와 인디라 간디는 직무상에 앞서 리념상으로 보나 그전날의 친분관계로 보나 그만한 요구를 할만한 사이였고 또 그만한 요구를 들어줄만한 사이였다.

이렇게 되여 정부회의장이 자기의 높은 문턱을 세계의 주체사상신봉자들에게 내여주게 되였다. 이것은 수상과 비슈와나스의 친분관계에 의하여 이루어진것이기도 하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막을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자주화의 물결이 그 높은 문턱을 넘어서게 된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4월에 이르러 토론회를 주최할 국제연구소 성원들과 각국의 대표단들이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토론회개막을 24시간 앞두고 비슈와나스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국제토론회는 정부회의장에서 하게 되였습니다. 이제부터 정부회의장을 토론회장으로 꾸리는 일에 착수해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그 청사에 도서, 사진전시회장도 꾸려야 하겠습니다.

시간은 길지 않지만 모두가 달라붙으면 이 시간에 충분히 할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기가 났다. 그들은 주체사상국제토론회를 최상의 수준에서 진행하려 한다는것을 알았다.

사실 비슈와나스가 토론회장소를 제일 급수높은 정부회의장으로 옮긴것은 단순히 토론회를 크게 하자는데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반동들의 책동이 심해질수록 그놈들에게는 본때를 보여주며 참가자들에게는 주체사상의 창시자와 그 위업의 후계자를 어떻게 받들어야 하는가를 보여주자는데 있었다.

도전자들의 기미를 가깝게 느낄수록 그에 맞서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힘은 배가로 증폭되고있었다.

사람들은 곧 정부회의장으로 가서 일에 착수하였다.

주석단정면에는 김일성동지의 초상화가 정중히 모셔지고 정면우측에는 토론회마크가 걸리고 회의장 량쪽에는 구호판들이 그리고 회의장안팎에는 토론회명칭을 쓴 글자가 보기 좋게 자리를 차지했다.

전시회장도 새롭게 꾸려졌다.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 사업을 토의하시는 사진을 전시회장중심에 모시고 그 좌우에 사진들을 전시해놓았으며 그앞에 도서들을 진렬해놓았다.

주체사상국제토론회의 개막과 함께 문을 여는 이 전시회는 김일성동지의 탄생 70돐을 맞는 명절분위기를 더한층 고조시켜주는것이였다.

이런 속에서 4월 9일 새날이 밝아왔다.

토론회가 열리는 정부회의장은 명절분위기로 설레였다.

각국의 저명한 인사들이 옷들을 차려입고 정부회의장의 높은 문턱을 스스럼없이 넘어서고있었다.

역시 어떤 장소에서 하는가에 따라 회의급수와 분위기는 달라지는것이였다.

국제토론회에 참가하는 나라와 대표단의 수는 해마다 늘어가고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주체사상에 대한 세계적관심이 날로 커가고있다는것을 충분히 알수 있는것이였다.

1976년 안따나나리부토론회에는 50여개의 나라에서, 1977년의 평양토론회와 1979년의 뉴델리토론회에는 70여개의 나라에서 근 100개의 대표단과 대표들이 참가했다면 이번 1982년의 뉴델리토론회에는 107개 나라와 5개의 국제기구에서 온 132개의 대표단과 대표들이 참가한것이였다.

이것은 자주화에로 나아가는 세계의 흐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것이였다. 세계의 이목은 또다시 뉴델리에로 집중되였다.

토론회에 앞서 진행된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회 제5차회의에서 국제연구소 부리사장으로 선거된 이노우에 슈하찌가 첫날회의 의장직을 맡아 훌륭히 운영하였다. 당시 리사장은 결원이였다.

일본 릿교대학 경제학부 교수인 이노우에는 맑스주의정통파로서 알려져있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사상을 접한 후에는 일약 방향전환을 한 능력있는 학자였다. 맑스주의에 도통한 그만큼 그는 누구보다도 주체사상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인차 원리적으로 파악할수 있었다. 그런것으로 하여 그는 뒤늦게 주체사상신봉자대렬에 들어섰지만 자기의 지위를 확고히 차지하게 된것이였다. 그의 학자적능력과 조직적수완은 처음으로 참가하여 의장직을 맡은 이번 국제토론회의 연단에서 남김없이 발휘되는것이였다.

세계의 이런 학자들, 이런 선각자들의 마음에 떠받들리여 토론회는 성과적으로 개최되여 자기 일정을 밟아나갔다.

토론회에는 세계에서 온 300여명의 대표들과 함께 인디아의 각계층 고위인사들과 주체사상신봉자들 1 500여명이 방청으로 참가하였다.

회의주석단에는 인디아국회 하원의장 발 람 자카르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당수들과 정부 요인들, 또한 인디아주체사상연구학회 서기장 비슈와나스,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사무국장 오가미 겡이찌,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부리사장 이노우에 슈하찌,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 소장 티. 비. 무케르지, 라틴아메리카주체사상연구소 위원장 호쎄 프란씨스꼬 아길라르 불가렐리가 앉았다.

원래는 인디아수상이 참가하게 되여있었는데 그는 방글라데슈 방문중이였다.

비슈와나스로부터 이 회의의 초청장을 받은 인디라 간디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여왔다. 

《나는 주체사상을 전적으로 믿습니다.나는 주체사상의 원리에 기초하여 인디아정부를 운영하고있습니다. 국제토론회의 성과를 바랍니다.》

인디아국회 하원의장 발 람 자카르의 개회사에 이어 소개된 여러 나라의 정당, 정부와 주체사상연구조직들 그리고 개별적인사들로부터 온 축전과 축하편지들은 토론회의 국제적성격과 력사적의의를 부각시켜주는듯싶었다.

짐바브웨공화국 공보 및 관광상이며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 행정비서인 나탄 엠. 샤무야리라가 《주체사상은 인간해방의 불멸의 기치》라는 제목의 보고를 한데 이어 세계 각국의 많은 대표들이 토론에 참가하였다.

인디아학생소년축하단이 북과 민족악기를 울리며 입장하여 랑독하는 축하문도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안겨주었다.

대회장이 떠나갈듯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활짝 웃는 소년, 소녀들의 모습은 자주화로 이어질 밝은 앞날의 모습이였다.

이 순간 주석단에 앉은 비슈와나스의 눈길은 객석의 맨 앞줄에 앉은 고빈드에게로 갔다. 전번 국제토론회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이 축하단을 준비하느라고 걸음을 많이 한 고빈드였다.

고빈드는 지역연구소 청사에서 밤을 패며 일했다. 그전해에 무케르지가족이 벵갈사람들만이 사는 구역에 집을 하나 장만하여 이사한 다음 고빈드가족이 거기에 들어와 살림을 펴며 일하고있었다.

고빈드는 웃고있었다. 바로 이날을 위해 뉴델리교외로 뻗은 길을 얼마나 걸었던가.

웃고있는 고빈드는 회의준비를 위해 뛰여다닌 나날들을 보람있게 추억하는듯싶었다.

이 토론회에 모든 심혈을 다 기울인 고빈드의 가슴속에는 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그전해 7월 14일이였다.

부인과 함께 조선을 방문하였던 고빈드는 그날 귀로에 올랐다.

평양상공을 날은 비행기는 쏘련령내에 들어섰는데 오후 5시가 되여오자 고빈드는 배를 그러안고 모지름을 썼다.

평양을 떠날 때부터 몸이 편치 않았던 고빈드였다. 평양의 외국인병원에서는 입원치료를 하고 떠나라고 하였으나 그는 의사들의 요구를 굳이 거절하고 떠났던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주체사상국제토론회준비가 더 바빴던것이다.

비행기안내원들은 급히 모스크바항공역에 무전을 날려 치료대책을 요구하였다.

어느덧 비행기가 모스크바에 도착하자 벌써 승강대옆에 구급차가 나와있었다.

그의 안해 푸라밀라가 괴로와하는 고빈드를 부축하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타들어가는 입술을 깨물고 배를 그러안은채 승강대에서 한걸음한걸음 내려서는 그의 정상은 참으로 보기 괴로왔다.

그러나 고빈드는 여기서도 또다시 의사들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자기는 지금 감기를 앓고있는데 오늘밤 숙소에 가서 땀을 내면 래일 인디아에 가는 비행기를 탈수 있다는것이였다.

의사들을 돌려보내고 모스크바주재 조선대사관으로 왔을 때는 그의 병세가 몹시 위독하였다.

그러나 밤 11시에 쏘련의사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에도 그는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새벽에 의식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구급차에 실려 모스크바 보뜨낀명칭 시립병원으로 후송되여갔다. 체온은 40도, 맥박은 120, 혈압은 알리지 않았으며 피검사소견은 심한 중독상태를 반영하고있었다.

지체없이 수술이 시작되였다.

배를 갈라보니 병상태는 예상외로 더 중하였다.

장이 터져서 오랜 시간 경과하였기때문에 화농성복막염까지 오기 시작하였다.

긴 시간에 걸쳐 긴장한 수술을 끝낸 고빈드는 고압산소치료기속에 들어갔다.

그렇게 5일간을 보내는 동안 평양과 모스크바간에는 긴박한 전보들이 오고갔다.

고빈드의 병세를 보고받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나라에 왔던 손님이 돌아가다가 위험에 처했는데 빨리 의료진을 보내서 그를 구원하라고 간곡한 교시를 주시였다.

한편 김정일동지께서는 강력한 의료진을 무어 모스크바에 파견하시면서 환자의 소생에 필요한 귀중한 약품들과 보약재들, 식료품들을 친히 마련하여 보내주시였다.

고빈드는 몽롱한 의식속에서도 조선의 의사들을 알아보고 흐느껴 울었다. 푸라밀라는 친형제가 찾아온것보다 더 반가와하였다.

조선의 의사들은 서둘러 환자의 상태를 료해하기 시작하였다.

체온, 맥박, 혈압 등은 여전히 최악의 선에서 오르내렸고 숨이 차서 말 한마디 못했으며 물 한모금 넘기지 못하고있었다. 배에는 여전히 복수가 와서 수술부위에 고무관을 꽂아놓고 부패물을 뽑아내고있었다.

조선의 의사들은 쏘련측과 합의하여 보다 적극적인 치료대책을 세워나갔다. 그들은 가지고간 고가약들을 집중적으로 쓰는 한편 새롭게 요구되는 약품들은 주재국 약국들에서 사들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고빈드는 조선의 의사들이 도착하여 3일만에 마침내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객지에서 고생하고있는 환자를 위로해주시려고 뉴델리에 두고온 그의 아들을 비행기에 실어오도록 친히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고빈드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머리맡에 앉히고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병실은 활기에 넘치기 시작하였다.

푸라밀라는 김정일동지께서 보내주신 식료품을 남편의 입에 떠넣으면서 그새 벌어진 모든 일들에 대해, 의약품과 식료품, 의료진을 보내주신 고마운 사연에 대해 세세히 알려주었다.

참으로 주체사상에 근원을 둔 인간애는 국경너머 발산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따사로운 인간애였다.

고빈드는 다시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자기는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것이였다.

겨우 부축을 받아서야 일어나 앉고 배에서 고무관을 뽑지 못하는 형편인데 어떻게 떠나간단 말인가.

푸라밀라는 조선의 의사들에게 도와줄것을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의 의사들이 병상태를 놓고 조리있게 설명을 가했는데 고빈드는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심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나는 빨리 돌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래지 않아 나의 조국에서 주체사상국제토론회가 열리겠는데 내가 할 일이 과연 많습니다.

김일성주석각하와 김정일각하께서 나에게 육친보다 더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셨는데 보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자나깨나 이 한가지 생각때문에 나는 괴로운 순간을 보내고있습니다.》

고빈드의 젖은 목소리는 방안을 울리였다.

그를 설복하려던 조선의 의사들도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고빈드는 다시금 말하였다.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 인간중심의 철학사상을 나는 나의 체험을 통하여 똑똑히 파악하였습니다.

나를 죽음에서 구원해준 이 위대한 사상을 지켜 나는 한생을 다 바쳐 싸울것입니다!》

이처럼 뜨거운 사연을 안고있는 고빈드였다.

하기에 그는 이 토론회의의 연단에 나서서 이렇게 웨쳤다.

《주체사상은 인간을 옹호하고 인간에게 모든 혜택을 베푸는 인간중심의 위대한 사상입니다!

때문에 이 사상은 누구나 받아들일수 있고 누구나 숭배할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필요한 인류공동의 위대한 사상입니다!

나는 이 결론을 적어도 내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검증하였음을 엄숙히 확언하는바입니다!》

이처럼 뜨거운 마음들에 받들려 개최된 토론회였으니 그 열기는 참으로 대단한것이였다.

토론회 첫날 저녁 참가자들을 환영하여 진행된 연회에 인디아최고재판소 소장이 참가한것으로 하여 토론회의 지위가 더욱 올라가는듯싶었다. 그것은 최고재판소 소장이 인디아에서는 실지 정권의 2인자로 인정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이러한 보도는 인디아의 모든 국민들에게 주체사상에 대한 의욕을 한층 더 불러일으키게 하는 계기로 되는것이였다.

이 모든 작전은 갈데없이 비슈와나스가 고안하고 내미는것이였다. 인디아의 모든 주들에 주체사상연구조직을 다 내오고 전국민을 주체의 힘으로 일떠세우자는것이 그의 목표이고 리상이기도 하였다.

이 모든 비슈와나스의 움직임을 남조선대사관에서는 지켜보고있었다. 하지만 그런것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비슈와나스였다.

토론회 2일날이였다.

전날에 이어 연설들이 진행되며 회의가 한창 고조에 이를 때 회의장 뒤문쪽에서 약간의 소요가 일어나는 감이 있었다. 주석단에 앉아 예민하게 회의장을 주시하고있던 비슈와나스는 슬그머니 일어나 회의장밖의 복도를 에돌아 급히 뒤문으로 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남조선대사관 괴뢰들에게 매수된 우익깡패 4놈이 어떻게 이 청사에까지 들어왔는지 벌써 앞을 막아나선 학회성원들의 저지선을 뚫고 회의장에 뛰여들며 소리를 지르고있는 상태였던것이다.

한시도 지체할수 없었다. 될수록이면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처리하려고 달려왔으나 일은 그렇게 되지 않은것이였다.

돌파해야 했다.

무엇을 가리랴, 이렇게 된바에는 그들을 족치는수밖에.

비슈와나스는 어느새 가죽혁띠를 뽑아들었는지 자기도 알수 없었다. 그는 뒤문으로 놈들을 냅다 따라들어가며 문을 콱 닫았다.

내빼지 못하게 하자는것이였다.

불량배놈들의 뒤통수에 곧 《가죽채찍》의 세례는 무섭게 안겨졌다.

놈들은 뒤에서 날아오는 뜻밖의 타격을 받고 비칠거렸다. 하지만 복수의 채찍은 더 세차게 내려졌다. 숨돌릴 틈을 주어서는 안되는것이였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비슈와나스는 마음속의 가속답판을 밟고 또 밟기 시작하였다. 그럴수록 채찍은 더 세차게 내리쳐졌으며 놈들은 들고온 삐라며 프랑카드따위들을 그자리에 놓으며 갈팡질팡하였다. 비슈와나스의 눈에는 남조선대사관 작자들의 찌그러지는 오만상이 또다시 보여오는듯 했다.

이제는 16년전의 일로 되였지만 아차 실수하여 보기 좋게 쓰러졌던 그날을 정녕코 잊을수가 없는 사나이였다.

충돌하여 찌그러졌던 그의 자동차가 다시 솟구쳐 그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세차게 고동치고있는줄을 사람들은 다 모르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항상 마음속의 그 가속답판을 밟고 살았다. 그 자동차는 그가 생을 거두는 마지막순간까지 주체의 대로를 따라 힘차게 질주할것이였다.

불량배들은 당황망조하여 뒤돌아서며 들어온 뒤문으로 내빼려고 허우적거리였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마음대로 나갈수가 없었다.

앞에는 노호하는 군중, 뒤에는 바위처럼 떡 버티고 서있는 비슈와나스.

가관이였다. 웃음거리가 된 그자들의 몰골은 세계의 면전에서 국제반동들과 남조선괴뢰들의 비렬한 음모를 그대로 폭로해주는 산증거물이였다.

돈에 매수된 가련한 놈들은 그날이 자기들의 인생에 그 어떤 치욕의 자욱으로 얼룩져진 날이라는것을 의식할새도 없이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런자들은 자멸의 운명을 면치 못할것이다.

불량배들은 불시에 회의장에 뛰여들어와 한가운데 아니면 연단에까지 올라가 들고온 삐라며 소책자들따위를 줴뿌리며 고아대고 달아빼라는 과업을 받았던것이다.

어리석었다. 그러면 회의장은 수라장이 되고 파탄될것이라고 타산한 남조선괴뢰들의 술책은 참으로 어리석은것이였다. 그자들은 아무리 세계적인 대회라고 해도 학자들의 모임장소니 깡패들의 란장질에 설사 맞설 위인이 없을것이라고 보았던것이다. 엄청난 돈으로 불량배들을 매수하면 저들의 계책이 실현되리라고 생각하는것자체가 시대착오라고 해야 할것이다.

남조선괴뢰들은 그사이 비슈와나스에 대한 험담을 끈질게도 내돌려왔다. 그자들은 인디아의 우익반동들을 부추겨 비슈와나스가 마치도 인디아사람으로서의 초보적인 애국심도 저버리고 북조선에 《매수》된것처럼 헛소문을 퍼뜨렸다.

모든것을 저들처럼 생각하는 저속한자들이였다. 어떤 방법으로도 비슈와나스의 길을 막지 못하게 되자 그자들은 사회적으로 그의 인격을 떨구어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제지시키려고 집요하게도 꾀하여왔다.

그자들이 내돌린 소문은 비슈와나스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좀스러운 책동에 위구를 느낄 그가 아니였다. 그가 자기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나라의 전도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립장으로부터 주체사상을 신봉한다는것은 모두에게 알려져있기때문이였다. 또한 그 어떤 험담도 한두사람을 속일수는 있어도 결코 인민을, 력사를 속일수는 없기때문이다.

그는 누가 그 무슨 말을 한다해도 무서울것이 없었다. 자기의 량심이 있기때문이다. 량심대로만 살면 그만이라는 배심이 그에게 든든히 자리잡고있었다.

온갖 거짓과 험담이 나돌아도 그는 사람들앞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깨끗한 량심을 지니고사는 인간은 언제나 이 하늘아래 떳떳한것이다. 그의 심장은 바다마냥 절대로 얼어붙지 않았다.

거대한 기업을 독자적으로 이끄는 그가 돈에 팔릴 사람이 아니라는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였다.

일이 이쯤되자 비렬한 놈들은 불량배들을 매수하여 이런 추태까지 연출해냈던것이다.

비슈와나스는 놈들이 뿌리지 못하고 그자리에 떨구고 간 선전물들을 두손에 주어들고 회의장 가운데길을 걸어 연단으로 나갔다.

일시 격분하여 들끓던 청중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여러분! 우리는 이자 방금 목격하였습니다.

우리의 이 회의를 파탄시키려고 반동들이 별의별 추태를 다 부리고있지만 자주에로 도도히 굽이치는 시대의 거세찬 흐름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것은 력사발전의 합법칙성입니다.》

비슈와나스의 말은 길지 않았지만 확신에 넘친 그의 말은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역시 그는 말을 할 때 가서는 말을 할줄 아는 사람이였다.

확실히 그는 센 사람이였다. 의지도 사상도 육체도 활동도 모든것이 다 폭풍같은 사나이였다.

그 폭풍은 회의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누구보다 남편을 잘 알고있는 싼또쉬 꾸마리의 두눈에는 안도의 빛과 함께 믿음의 빛이 력력히 비끼고있었다. 평양, 도꾜, 런던 등 여러 나라들을 남편과 함께 다니면서 국제토론회들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있는 그였다.

《쉬바신》을 우러러 한 가정의 평온만을 기원하던 그의 넋에 이제는 나라의 진보와 세계의 자주화라는 보다 숭고한 인류의 기원이 깃들었던것이다.

각국의 토론자들은 더욱 흥분하여 열기띤 목소리로 자기들의 신념과 의지를 온 세상에 표명하였다.

악은 사람들에게 선을 인식시킨다.

우익놈들의 소동은 회의분위기를 떨어뜨린것이 아니라 토론회참가자들의 의지를 더욱 굳게 해주고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더 굳게 뭉쳐나아갈 확고한 결의들을 더 뚜렷하게 표명하게 하는 또 하나의 계기로 되였다.

인디아의 모든 통신, 보도수단들은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소식을 앞을 다투어 알리였다. 3일간에 걸쳐 진행된 토론회의 보고와 토론들에 대하여 상세히 보도하였으며 만장일치로 채택된 김일성주석께 드리는 편지와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선언의 전문을 실었다.

론평가들은 이번 토론회를 자주, 평화, 친선을 위한 의의깊은 국제적모임이라고 평하였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의 탄생일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인 전세계 주체사상신봉자들의 마음은 자연히 그이께서 계시는 평양으로 쏠리고있었다.

모두가 탄생 70돐을 맞으시는 김일성주석을 뵙고싶어하였다. 또한 그이의 공인된 후계자이신 김정일동지를 뵙고싶어하였다. 그것은 주체사상신봉자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5대륙의 이러한 한결같은 마음을 안고 비슈와나스는 토론회가 끝난 다음날 정부와 민항의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것은 조선으로 가는 비행기를 통채로 한대 내기 위해서였다. 이리하여 뉴델리에서 평양으로 곧장 가는 비행기가 마련되게 되였다. 그때에도 력사의 반동들은 비행기안에 폭탄이 장치되여있다는 소문을 내돌리면서 정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대표단들은 그 비행기에 주저없이 올랐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같았다. 설사 조선으로 가는 하늘길에서 재가루로 흩날린다 해도 그 재가루는 조선땅에 뿌려지리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정의의 나라, 주체의 나라로 가는 인류량심의 걸음은 결코 멈춰세울수도, 막을수도 없는것이였다. 진리는 언제나 력사의 반동들의 도전을 물리치면서 자기의 앞길을 개척해간다.

비슈와나스는 인디아주체사상연구학회대표단 단장의 명의로 왔다.

그때 그 비행기로 김일성동지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인디아공화국 부대통령 샹카르 다얄 샤르마와 인디라 간디수상의 특사가 함께 왔었다.

당시 샹카르 다얄 샤르마는 인디아조선친선협회 위원장이였으며 또한 인디아주체사상연구학회 부위원장이기도 하였다. 그는 조선을 방문하고 돌아간 이후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였다.

4월 13일.

비행기는 무사히 평양비행장에 착륙하였다. 온 세상 주체사상신봉자들이 격정에 넘쳐 웨치는 만세소리는 평양의 하늘가에 높이높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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