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3 회)
5. 판도리비비마을(2) 생활은 한갈래로만 흐르지 않는다. 인생이란 본래 천만가지로 엉킨 삶인것인지 누구나 남다른 개인의 생활을 안고있는것은 어쩔수 없는 일인가싶다. 사람은 자기가 태여난 고향마을에 가면 령혼의 안정이 깃든다고도 하는데 비슈와나스에게 있어서는 고향의 령지가 골치거리였다. 그는 지금 마노하루와 함께 판도리비비마을의 령지를 돌아보고있다. 평양길에서 돌아와 학회사업과 《인터라즈》에서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을 처리한 후 그는 차에 두루두루 걷어싣고 곧 이 령지로 급기야 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마노하루에게서 줄전화가 왔던것이다. 아마도 그는 비슈와나스가 귀국하기만을 기다렸던듯싶었다. 그는 올해에도 흉년이 들었다고 또 죽는 소리였다. 그들은 비슈와나스가 하는 일과 그앞에 쌓여있는 업무같은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또 그런것을 생각할 정신적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였다. 오늘의 세계를 모르는 그들은 멀리 지나간 세기가 내버려둔 사람들같았다. 밤은 이미 오래전에 밝았는데 이 사람들은 너무 오랜 잠에 취해있었다. 어머니는 이미 고향의 이 령지에 내려와있었다. 조선에 갔다올 때면 언제나 집에서 기다려 반겨맞아주시던 어머니였다. 김일성주석을 만나뵈왔니,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니, 그래 너는 이제 무슨 일을 또 하려니 하면서 어머니는 묻군 하시였다. 그럴 때 어머니의 눈은 웃고있었다. 어머니의 그 물음에 하나하나 대답하며 이야기하는 시간은 비슈와나스에게 있어서 행복의 시간이였으며 그런 날들이 있어 새날은 지루하지 않고 밝아왔다. 어머니를 그렇게 모시고싶었다. 날마다 이 세상의 새소식을 알려주며, 웃음만을 가득 안겨주며… 하지만 두르가데비는 아들의 이 마음을 알면서도 그가 오기 전에 어쩔수없이 집을 떠나 판도리비비마을에 가야 했다. 이 늙은이는 날마다 세상의 새소식을 듣고싶었지만 한자리에 그냥 그 본태로 누워있는 가문의 령지는 집요하게도 마지막까지 그의 발목을 붙잡고있었다. 특히 가을철엔 더했다. 늘어나는 후손들속에서 점점 더 크게 울려나오는 불협화음을 두르가데비가 애를 써가며 눅잦히고있었다.
80고령에 이르렀어도 아직 정정한것이 다행이였다. 두르가데비는 어느 한해도 농번기때면 판도리비비마을에서 떠날수가 없었다. 풍작이든 흉작이든 그가 제때에 계산하여 모두에게 자기몫이 정확히 차례지도록 분배해주어야 했다. 모두가 두르가데비앞에서만은 어쩌지 못하였다. 그것은 우선 그가 경우가 째이게 매 사람이 일한몫과 분배몫을 정확히 판별하였고 또 매 가정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주었기때문이였다. 이제는 그가 샤르마가문에서도 가장 나이많은 직계혈통의 증조할머니로 그 모습을 뚜렷이 하고있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부단히 사고하는것이 그의 건강의 비결이였다. 하지만 세상은 어떻게 되여가는판인지 사리정연한 그의 사고, 그의 능력만으로는 가문의 이 령지, 이 친척들을 점점 구제하기 힘들어지고있었다. 고향마을의 친척들은 땅을 가지고도 후원을 하지 않으면 굶어죽어야 할 처지에 이를 때가 빈번했다. 그래서 비슈와나스와 해외에 살고있는 일부 친척들이 해마다 얼마씩을 내여 판도리비비마을을 도와주어야 했다. 허나 자기 힘으로 일떠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도와주는것은 그야말로 겨우 먹여살리는데 불과한것이였다. 한곳에서 떠나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대대로 물려오는 땅에 명줄을 걸고있는 친척들은 이 넓은 세상이 어떻게 변모되여가는줄을 몰랐고 세대가 바뀌여도 그저 그 땅에 명줄을 걸고 숙명으로 인생을 보내는데 습관되여있었다. 이들은 꿈같은 리상이라고는 한평생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였다. 곡식을 심을 때 세운 한해계획은 허사로 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농사는 해마다 지어야 하는것이다. 도시에서 친척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그저 도와달라고 따라다니는 이 사람들은 모두 옛시대의 색날은 사진에서 뛰쳐나온듯한 모습이였다. 곡식창고가 비여있는 이들에게는 부끄러움도 체면도 없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불만족하면 하늘땅을 모두 욕하였다. 조상때부터 내려오는 낡은 세습에 대한 노예적태도가 그들에게는 농후하였다. 세월은 빨리도 발전하고있는데 그들은 구태의연하였다. 인디아에서 도시와 농촌간의 차이는 하늘땅차이였다. 북부, 남부, 서부지역은 그래도 자체의 경제력이 있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동부지역은 그렇지 못했다. 동부지역은 벌이 많은 농촌지대로서 많은 경우 날씨에 의거하여 살아가고있었다. 가물과 홍수를 만나면 그해 농사를 망치였고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자연의 희롱이 점점 심하여 때없이 강한 폭풍이 부는가 하면 큰물과 폭설로 하여 재해가 들이닥치군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뚫고나갈 타개책보다도 모든것을 운명의 신에게 맡기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습관된 사람들이였다. 그들자체가 자기들을 전지전능하신 신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있었으니 그런 숙명적인 사고를 할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돈이 없어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도시에는 뚫고들어갈 힘이 도저히 없었다. 또한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고 계절로동자들이 여기저기로 이동하고있었다. 준대륙이라고 불리우는 이 나라의 땅에 구시대와 신시대의 계선은 너무도 오래 그어져있었다. 그래도 그 계선을 부지런히 오락가락하는 세대들이 있다는것은 천만다행이며 언젠가는 그 계선이 희미해질 그런 날은 반드시 올것이였다. 하지만 그런 날은 과연 언제일런지. 령지가 가문의 자랑이였던 조상의 시대는 멀리 물러갔다. 아마도 그 자랑은 족보에나 남아있고 후손들의 입에서나 미화되여오르려는지 실제적으로는 그 땅으로 하여 세월이 갈수록 가문의 의견상이가 점점 분분해졌고 따라서 비슈와나스는 계속 거기에 신경을 써야 했고 또한 그들을 돌보아야 했다. 자기 갈데로 가라고 내버려둘수도 없었다. 천만가닥으로 엉킨 인생의 삶에서 자기 인생 한가닥만 따로 챙겨가질수 있는가. 더우기 가문의 장손으로서 그 땅을 세습적으로 물려받아 관리할 《의무》와 《권리》를 지니고있는 비슈와나스에게 있어서. 이 령지에는 어린시절의 발자취가 스며있고 함께 뛰여놀던 할아버지계렬의 형제들이 살고있으며 더우기는 어머니가 늘 그 땅을 돌보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있는것이였다. 누구든지 가문의 이 땅을 지켜내야 했다. 비슈와나스의 부모들은 농촌에서 살면서 근대문명의 물결을 따라 자식들에게 신식교육을 주었지만 령지를 다스리는 자식은 두지 못하였다. 아니, 신식교육을 받았기때문에 자식들이 모두 농촌마을을 떠나간것인지도 모른다. 비슈와나스 역시 자식들에게 현대의 최고고등교육을 주었지만 그들은 가문의 령지나 농촌마을에는 모두 흥미를 가지지 않았고 가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문제였다. 앞으로는 어떻게 되든지간에 비슈와나스가 눈을 뜨고있는 동안은 그가 가문의 이 령지, 이 친척들을 돌보아야 했다. 잘나도 못나도 고향은 고향이였다. 가문의 이 령지를 돌아보는 비슈와나스의 머리는 착잡하였다. 점점 척박해지는 땅,
비바람에 움푹 패여진 골, 무성한 잡초들… 어찌 그렇게 되여가지 않을수 있으랴. 세월은 흐르고 날씨는 점점 사나와지는데 사람들은 그냥 토법에 매여달리고있으니… 아예 이 땅을 몫몫이 나누어주고말가? 그렇다면! 그것은 내 대에 버리겠다는것과 다름없는것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모든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이 사람들이 과연 이 땅을 길들일수 있겠는가. 문제는 이 땅도 나라의 한 부분으로서 기름지우게 해야 하는것이다. 이 땅이 대대로 내려오며 가문을 먹여살려주지 않았는가. 땅이 없으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있을수 없다. 하기에 농사일을 사랑해야만 모든것이 점점 좋아질수 있는것이다. 누가? 이 땅의 주인은 틀림없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국민이 땅을 사랑해야 한다. 비슈와나스는 줄곧 생각을 굴리였다. 그의 속마음을 알리없는 6촌형은 그냥 말하고있다. 《자네 이번에도 좀 도와달라구.》 물론 도와는 주겠지만 장차 이 땅을 어떻게 일떠세워야 한단말인가. 각자는 자기 노력의 열매를 걷게 된다는것을 이 사람들은 아직 리해하려고 하지 않고있었다. 차례진 운명에는 순종할수밖에 없다는것이 이 사람들의 인생관이였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속에서도 주체의 원리가 인생의 좌표로 될 때 결코 척박한 땅은 없을것이다. 마노하루는 바로 곁에서 무엇이라고 계속 말하고있었지만 비슈와나스의 귀에는 더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자기 운명을 자기가 개척해나가야 할것이였다. 마노하루는 여기서 가문의 령지를 유지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있었지만 일은 점점 더 헝클어져가고있었다. 령지를 가꾸고 령지에 매달려있는 친척들을 하나로 통솔하기에는 이 세상을 돌아본적 없는 마노하루의 눈이 너무 어두웠다. 그 눈을 틔워주어야 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숙명을 박차고 나가고있었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숙명에 자기의 몸을 맡기고있는것이였다. 풍부한 인적, 물적자원을 가지고있는 이 나라의 도시들에는 현대문명의 밝은 빛이 다투어 비쳐들고있었지만 이 나라의 농촌들에는 여전히 봉건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었다. 판도리비비마을, 이는 인디아농촌의 축소판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