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2 회)
4. 위대한 사상에는 국경이 없다 태고적에는 풍운과 지각의 변동으로 하여, 인간이 발생하여서는 전쟁과 살륙으로 하여 이 땅덩이는 얼마나 자기 몸을 잘리우고 붙여지고 하면서 수십억년의 력사를 새겨왔던가. 그 나날 이 지구우에는 200여개의 나라가 생기게 되였다. 서로 다른 지리적환경과 언어, 생활풍습으로 그리고 민족과 종족별로, 또는 사상과 종교, 리념 등으로 사람들은 서로 갈라져 자기나름의 나라를 세웠던것이다. 오늘의 세계정치지도는 단번에 이루어진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내려오면서 여러차례 변동되며 그려진것이다. 장구한 력사의 나날을 거쳐 오늘날에 와서 뚜렷이 새겨진 이 많은 나라의 국경을 이제 그 무슨 력사적근원이나 조건을 내걸고 침범한다면 그것은 전쟁의 화근으로 될것이다. 세계의 평화는 바로 그 국경들을 서로서로 존중시하는데 있는것이 아닐가. 나라들사이의 국경은 민족마다 존엄을 걸고 지킬것이라는것은 명백하다. 오직 친선과 교류, 문화협조만이 국경이 없을것이다. 위대한 사상은 서로 다른 국경에서 사는 사람들을 하나의 뜻으로 뭉치게 하는 가장 위력한 힘이다. 한때 맑스주의는 세계를 휩쓸었다. 그것은 맑스주의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시기의 로동계급의 지향과 요구를 반영하였기때문이였다. 다시말하여 유물사관에 기초하여 로동계급의 계급적해방의
조건을 밝힌 학설이 그 시대의 혁명학설로 되였기때문이였다. 시대는 달라졌다. 20세기 후반기에 와서는 주체사상이 온 세계를 휩쓸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주체사상이 자주를 지향하는 새시대와 력사발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여 새롭게 창시된 사상이기때문이였다. 다시말한다면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새롭게 전개하고 체계화된 학설은 현시대와 미래의 전 력사적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세계관으로 되기때문이였다.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의 탄생은 또하나의 그 뚜렷한 실례로 되는것이였다. 갓 태여났지만 지역연구소의 두리에는 많은 산하조직들이 결속되기 시작하였다. 아시아지역의 많은 나라들에는 이미 크고 작은 주체사상연구조직들이 수많이 결성되여있었던것이다. 인디아주체사상연구학회를 거점으로 련결되여있던 지역의 여러 나라 주체사상연구조직들을 비슈와나스는 지역연구소에 결속되도록 조직사업을 해나갔다. 믿음직한 사람들로 지역연구소의 전임일군들을 꾸렸으니 일은 잘되여나갈것이라고 그는 믿어의심치 않았다. 비슈와나스는 인디아주체사상연구학회 서기장으로 그냥 있었다. 인디아에서뿐아니라 세계적으로 주체사상 첫 전국조직으로 되는 이 학회의 연구조직망을 계속 확대하고 그 대오를 공고강화하는데 그는 여전히 힘을 집중해나갔다. 아시아적으로는 인구의 3분의 1을 넘어 차지하며 세계적으로는 약 6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살고있는 인디아땅에 주체사상의 숲을 이루게 하는것이 자기 조국만이 아닌 대륙과 세계의 자주화를 실현하는데서 차지하게 되는 몫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그였던것이다. 때문에 인디아주체사상연구학회는 세계주체사상연구조직들의 중추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였다. 실지 비슈와나스가 말없이 담당하고있는 몫은 참으로 큰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항상 지역연구소는 대륙을 대표한다고 하면서 학회사업을 지역연구소사업에 복종시켜나갔으며 늘 지역연구소를 내세웠다.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한마음한뜻으로 뭉친 그들은 모두
김일성동지의 제자, 주체사상신봉자들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지역연구소의 기관지를 내올것을 발기하였다. 국제적인 성격을 띠는 지역연구소는 응당 자기의 얼굴이 있어야 한다는것이였다. 좋은 제안이였다. 토론끝에 잡지의 제목을 《주체의 시대》라고 달기로 하였다. 원고는 학자들과 신봉자들에게 매호 계획에 따라 분담하여 씌우고 편집은 지역연구소가 하기로 하였다. 출판과 발행은 물론 비슈와나스가 자진하여 맡았다. 그 비용이 적지 않았던것이다. 《주체의 시대》는 분기잡지로서 그때부터 오늘까지 한해에 4부씩 계속 발간되고있다. 잡지는 오늘 모든 대륙에 다 배포되면서 아시아지역연구소의 얼굴로 세계에 그 용모를 뚜렷이 나타내고있다. 바빴다. 모두가 바삐 뛰였다. 비슈와나스는 다음달에 있게 되는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를 앞두고 더 많은 일을 하고싶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나라에 드리는 선물이고 그것이 또한 위대한 스승의 품으로 가는 길임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지역연구소를 내오긴 하였지만 그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한것이라고 생각되였다. 하기에 그는 학회성원들, 지역연구소성원들과 토론을 거듭하면서 일판을 벌려나갔다. 비슈와나스는 동료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강의안을 만들었고 매일 수십통의 문건을 타자로 쳐서 인디아의 각지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 띄워보냈다. 지역연구소성원들은 지역내의 나라들을 돌면서 주체사상전국토론회와 모임들에 출연하여 주체사상의 리론실천적문제들을 해설해주기도 하였다. 20세기 인류앞에 혜성처럼 나타난 그 위대한 사상의 진리성과 독창성을 다 파악하기에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있는 그들이였다. 1980년 10월초. 비슈와나스는 동료들과 함께 또다시 조선방문의 길에 올랐다. 비슈와나스는 벌써 5번째로 되는 방문이였고 무케르지와 고빈드는 2번째로 되는 방문이였다. 모두가 부인들과 함께 오고있었다. 모스크바를 경유해오는 동안 그들은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를 창설하고 일판을 크게 벌려놓은 기쁨을 안고 그들은 지금 조선으로 오고있는것이였다. 참으로 저마다의 진정할수 없는 추억과 새로운 기대를 안고 5대륙의 정계, 학계, 사회계의 이름있는 인사들이 평양으로 날아오는 10월이였다. 비슈와나스는 평양에서 세계의 주체의 벗들을 또다시 만났다. 주체사상신봉자들과의 상봉은 해마다 감격적인것이였다. 하나의 지향과 사상, 리념의 공통성으로 하여 서로 다른 대륙의 사람들과 맺어진 정이란 참으로 류다른것이였다. 만날수록 더욱 깊어지고 후더워지는 국제적정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오가미 겡이찌와 한밤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국제연구소 초대리사장이였던 야스이 가오루를 못잊어하였다. 불치의 병으로 앓고있던 야스이 가오루는 그해 3월 2일 사망하였던것이다. 야스이 가오루는 병상에서 위대한 수령님께 록음테프를 올리였다. 《제가 마음속으로 위대한 동지라고 깊은 존경을 담아서 부른분은 이 세상에서 오직 김일성주석각하이십니다. 참말로 김일성주석각하는 희세의 위인이시고 자애로운 스승이시며 위대한 동지이십니다.…》 세계적인 학자의 그 진정의 목소리는 오가미와 비슈와나스, 전세계 주체사상신봉자들의 가슴에 절절히 울리고있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오가미 겡이찌와 하가 쇼나이(유잔가꾸출판사 편집장)앞에서 유언하였다. 김일성동지의 존함이 새겨진 금시계가 빛나는 팔목을 바라보며 남기는 그의 유언은 길지 않았다. 《아, 김일성! 내 삶의 영원한 태양이시여! 이 시계를 벗으로 삼고 빛이 나게 오래 살고싶었는데.》 그가 오래 살며 그처럼 이룩하고싶어했던것은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온 세계의 자주화였다. 그의 몫까지 다하여 주체사상연구보급에 전심해가려는 비슈와나스와 오가미 겡이찌, 전세계 신봉자들의 의지는 확고부동한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야스이 가오루의 사망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여 미망인인 야스이 다쯔꼬녀사앞으로 조전을 보내주시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이후에도 고인의 미망인과 자식들을 잊지 않으시고 평양에 부르시여 만나주시고 그들이 살아갈수 있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스승, 위대한 인간의 그 의리심에 대해 오늘도 그의 후대들은 세상에 전하고있는것이다. 주체의 태양의 품에 안긴 생은 이처럼 영원히 그 품에서 빛을 뿜고있는것이였다. 그래서였다. 날이 갈수록 신봉자들의 대렬이 늘어가는것은 우선 그들이 주체사상에 스스로 공감되기때문인것이며 다음으로는 그 창시자의 위대한 인품에 매혹되기때문이였다. 그이께서 체현하고계시는 인간애야말로 그이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의 근본바탕이라는것을 사람들은 생활속에서 깨닫게 된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평양에서 아브둘 말라크와도 반갑게 상봉하였다. 벌써 조선을 수차 방문한 그는 이번에도 많은 일을 하고 온것이였다. 그는 그사이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조직들을 파키스탄의 여러 지역과 여러 부문에 결성하는 성과들을 거두었었다. 자기 나라와 대륙들에서 이룩한 커다란 성과들을 안고 평양에 온 주체의 벗들을 만나게 되는것은 생활의 기쁨이였고 삶의 보람이였다. 조선에 도착하여 격동적인 나날이 흘러가는 가운데 드디여 영광의 시각이 왔다. 10월 10일.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 그들은 초대되였던것이다. 당대회의 높은 연단에 활달한 걸음새로 나오시는 김일성동지를 우러러 전체 참가자들은 일어서서 만세의 폭풍같은 환호를 터치였다. 비슈와나스도 흥분된 격정을 터치며 힘껏 박수를 쳤다. 그 순간이였다. 비슈와나스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처럼 뵈옵고싶던 김정일동지께서 주석단에 나오시는것이였다. 조선을 거듭 방문하는 과정에 현대조선이 이룩하고있는 놀라운 성과들의 뒤에는 그이의 세심한 지도와 령도의 손길이 있다는것을 알게 된 비슈와나스였다. 주체사상의 심오한 철학적원리를 발전풍부화시켜나가시는 그이의 고전적로작들을 연구하면서 더 큰 감동을 받아안았으며 언제든지 꼭 한번 만나뵈오려는 결심을 마음속깊이 새겨가던 비슈와나스였다. 사진과 화면에서만 보아오던 그이의 준수하신 모습을 실지 뵈옵게 되는 비슈와나스의 가슴은 한없이 설레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하시는 력사적인 보고를 청취하면서 비슈와나스는 흥분을 억제할수 없었다. 비슈와나스는 시종 두분의 위대한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이 시각 그는 생각하고있었다. 앞으로 더 큰일을 하고 꼭 그이앞에, 주체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앞에 나서리라고. 비슈와나스는 대회가 계속되는 기간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는 조선로동당창건 35돐과 당 제6차대회를 경축하는 평양시 100만 근로자들의 시위를 보고 매우 감동되였다. 주석단에서 환히 웃으시며 군중의 환호에 답례를 보내시는 김일성주석의 자애로운 영상이며 그이를 우러러 만세를 웨치며 파도처럼 흘러가는 평양시민들… 장엄한 화폭이였다. 그 화폭은 당의 위력과 불패의 통일단결을 힘있게 과시하는 승리자들의 자랑찬 모습이였다. 당과 대중의 불패의 일심단결을 과시하는 조선의 기상은 대집단체조 《당의 기치따라》와 음악무용이야기 《락원의 노래》에도 력력히 나래치고있었다. 이 세상 정치가치고 국민을 향하여 단결을 고창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없었다. 하지만 지도자와 인민의 완전무결한 단결을 이렇게 실현한 나라는 보지 못했다. 그 일심단결의 모습을 보려고 또 따라배우려고 세계의 많은 나라 국가수반들과 당수들이 평양으로 찾아오고있으며 위대한 사상을 안고 떠나가는것이였다. 조선로동당창건 35돐과 당 제6차대회를 경축하는 조선의 모든 축전장들은 5대륙의 정계, 학계, 사회계의 명망높은 인사들이 수없이 참가한것으로 하여 더 흥성이는듯싶었다. 이 크지 않은 나라의 불패의 모습은 위대한 사상의 생활력을 보여주는 산증거로 세상에 빛을 뿌리고있는것이였다. 그렇다, 위대한 사상에는 국경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