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0 회)
제 3 편
제 3 장
3
한그루의 스무나무가 그늘을 던지는 그아래에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딱딱한 나무의자를 끄당겨앉으시였다. 그러시고는 긴의자와 쪽걸상들을 내다놓은 그앞에 연구사들과 일군들, 운전공들을 불러앉히시였다. 낮추 드리운 스무나무의 가지와 잎새가 그이의 머리칼에 닿으려는듯 바람에 흐느적이였다. 김용석부소장이 그 나무가지의 끝을 끊으려고 하자 그이께서는 손을 들어 만류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의자로 리승기를 부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쭉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별로 회의라구 할건 없습니다. 좀 얘기들을 나누자구 합니다.》
그이께서는 시선을 옮기시며 누군가를 찾으시는 표정이시였다.
《어째 재업동무가 보이지 않누만.》
《여기 있습니다.》
대답하는 소리와 함께 리재업이 사람들의 뒤에서 일어섰다.
《오래간만이구만.… 왜, 나한테 비판을 받았다구 뒤줄에 숨어앉았나?》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는데 분명 그이께서는 리재업이만 아니라 회의분위기도 처음부터 긴장해지지 않게 하시려는것이였다.
《지난번 협의회때 저 동무를 내 좀 단단히 비판해주었지. 과학연구사업에서 주체가 서지 않았으니 비판을 받아 마땅하거던.… 그러나 기가 죽어선 안돼. 고치면 되는거지. 그러기 위해선 당정책공부도 더 하라구.… 인제는 방향이 좀 바로 서겠지?… 동문 합성고무도 연구하고 더구나 비날론중간공장장으로 역할이 커야 하겠소.… 앉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둘러보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비날론은 철저히 우리의 원료, 우리의 기술입니다.… 여러분도 아다싶이 우리 나라는 경지면적이 제한되고 또 목화도 잘되지 않습니다. 〈목화영양단지가식법〉이라는건 그 말처럼 까다롭고 처녀가 부처님앞으로 초불을 들고가는것처럼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그이께서 웃으시고 좌중에도 가벼운 웃음의 물결이 일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와보지도 않고 우에 앉아서 수지타산이 맞소, 안 맞소 하면서 시비가 많습니다. 타산으로 말하면 정치적타산이 우선 중요합니다. 원료를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방향에서 공업건설을 해야 합니다. 남의 나라에 머리를 숙이고 살지 않자면 이 길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로선은 력사가 우리한테 주는 피어린 교훈인데 이런 타산은 안하구 순수 실무적타산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자, 보시오. 안될게 없습니다. 지금 내 신의주쪽에서 오는 길인데 거기서는 갈에서 인견팔프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는 석회석에서 실을 뽑는 연구가 완성되고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흥분에 겨워 말씀하시다가 다소 가라앉은 어조로 뒤말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인민들에게 옷감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공업농업전람관에 내놓게 한것은 인민들과 약속을 한거나 같습니다. 이 약속을 실현시킬 사람들은 여기 앉은 과학자동무들입니다. 인민들이 〈수상님, 수상님.〉 하고 바라볼 때 난 여기에 앉은 동무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구 믿습니다. 동무들은 난관과 애로가 나선다 해도 용감하게 타개해나가야 합니다. 예로부터 과학자들은 죽음도 서슴지 않고 자기의 과학적신념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지구가 돈다고 해서 종교재판을 받은 학자는 화형을 당하면서도 지구가 돈다고 했으며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지도를 만든 김정호도 억울하게 형을 당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들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개척자들인 동시에 새것을 창조하는 혁명가들입니다.》
그러시고는 무엇이든 걸리는것이 있으면 주저말고 제기하라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고개를 돌리시여 이쪽을 바라보시는 그이의 시선을 느끼자 리승기는 맨먼저 자기의 의견부터 물으시는듯 한 그 믿음에 저로서도 놀라리만큼 마음이 숨김없어지면서 무엇이든 솔직히 터놓고싶은것이였다.
그런데 이때 역시 과학행정을 맡은 부소장 김용석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두손을 모두어잡으며 말했다.
《수령님, 지금 중합공정이 제일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구내길건너 저편의 중합건물을 손짓해보이시며 물으시였다.
《저것 말입니까?》
《네.… 립상중합으로부터 용액중합으로… 본격적으로 바꾸자니까 우선 많은 불수강이 있어야 합니다.》
천성이 솔직한 김용석이 주저없이 말씀드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러는 김용석이 반가우시고 대견하신듯 머리를 끄덕이시고는 물으시였다.
《몇톤이면 되겠습니까?》
김용석이 몇십톤의 수자를 말하자 리승기는 한평방의 불수강을 놓고도 감이 모자라는 천으로 이리저리 옷을 마르듯 하며 안타깝던 일이 떠올라 김용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수자가 너무나 큰 수자로만 여겨졌다.
허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안심시키듯 손을 들어보이시였다.
《좋습니다. 아낄것이 없습니다. 금을 주고서라도 사오도록 합시다. 무엇을 아낄게 있겠습니까. 그다음 또 제기하시오.》
가장 중요한 문제가 풀렸으니 더는 제기할것이 없다는 표정들이였으나 그이께서는 거듭 말씀하시였다.
《제기할게 있으면 무엇이든 제기하시오.》
김용석이 재차 일어서고 신현석실장도 리재업이도 일어서서 없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승기를 돌아보시며 물으시였다.
《그래 공업화전망안을 몇톤으로 잡았습니까? 그때 협의회에서 2천톤이라 해서 작다구 했는데…》
그이께서는 자신과 그앞의 사람들 머리우에 낮추 드리운 스무나무가지의 푸른 잎새들사이로 어딘가 먼 허공에로 시선을 보내시였다.
리승기는 그이께서 누군가를 찾으시는것만 같이 느껴지자 그때 그 협의회에서 토론하던 림창직이를 회상하는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였다. 사실말이지 림창직이 있었으면 지금 누구보다 맨먼저 《수령님…》 하고 벌떡 일어날것이였다.
리승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말씀올리였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 평양에서 내려와서 많이 토론했구 그동안에 한쪽으로 계속 안을 세우느라구 했습니다.》
속으로 3 000이라는 수자를 곱씹어보던 리승기는 요즘따라 그것이 확실히 너무 많고 허망하다고 여겨지던것을 상기하였다. 그는 우물쭈물하는 자신이 언짢게 느껴졌다.
그때 수령님께서 대답을 재촉하시였다.
《말씀하시오. 너무 크게 안을 잡아 그럽니까? 괜찮습니다, 내놓구 토론해봅시다.》
리승기는 불현듯 용기를 얻어 입을 열었다.
《너무 지나친지 모르겠습니다. 3천톤안을 세웠습니다.》
《3천톤?》
작다는것인지 많다는것인지 그저 되묻는듯 한 어조이시다.
《내가 그때 2천톤을 작다고 했더니 3천톤으로 세웠습니까. 그러니 그때보다 더 세운셈입니다.》
잠간 생각해보시던 그이께서는 결연히 머리를 흔드시였다.
《아닙니다. 적은것 같습니다.… 인민들에게는 적습니다. 처음 해보지만 너무 규모가 작게 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리승기는 더 말을 못했다. 여직껏 3천톤안만을 안고 씨름해오면서 그것도 너무 많다고만 생각해왔기때문이였다.
그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여기로 오시면서 깊이 그것을 생각하시여 이젠 거기에 완전히 익숙해지시고 결심이 확고해지신듯 너무나도 평범하게 그러면서도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한 1만톤으로 잡아봅시다.》 하고 말씀하시던 그이께서는 리승기의 얼굴에 시선을 돌리시더니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시였다. 리승기는 놀라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기까지 했으나 얼른 대답을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재차 말씀하시였다.
《리선생, 1만톤안을 세워봅시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인민을 남부럽지 않게 입히자면 이것두 적은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체를 세우는것두 인민을 위한것인데… 인민의 요구로 볼 땐 그것두 적습니다.》
(5천톤도 아니고 1만톤!)
리승기는 그만 1만톤이라는 수자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리였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수자였다.
그런데도 수령님께서는 인민의 요구로 볼 때는 적다고 말씀하신다. 그이께서는 인민의 요구를 항상 기준으로 정하신다. 인민이 바란다면 산을 바다로, 바다를 산으로 만드실 수령님이시다.
한데 말로는 인민의 리익을 위한다고 하는 자신은 여태 어느 기준에 서있는가.
마땅히 인민의 요구가 학자로서 탐구의 기준이 돼야 할게 아니던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자 일동은 일어서서 세차게 박수를 쳤다. 공감과 찬탄, 그이의 교시대로 해나갈 결심과 신심, 이 모든것이 한데 뭉쳐진 열렬한 박수소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답례의 뜻으로 손을 쳐들어보이시였다. 화학공장의 구내를 돌아보신 그이께서 리승기를 다시 부르신것은 그로부터 얼마후였다.
4
초여름의 한낮은 더웠으나 강변은 서늘하였다. 공장가녁의 풀밭을 지나 강기슭에 나서면 거기에 몇개의 의자가 놓여있었다. 선풍기앞보다 여기를 더 좋아하는 카바이드전로공이나 보이라공들이 점심시간이나 퇴근후에 휴식하군 하는 장소였다.
휘우듬한 등받이가 편하게 달린, 푸른 뼁끼칠을 한 나무로 된 긴의자에 앉으면 바로 압록강의 물결이 발앞에 가까이 흐르는데 아무리 무더운 여름날에도 여기에 앉기만 하면 그 수얼거리는 물소리의 귀맛에 대뜸 온몸이 서늘해지고 기분이 거뜬해지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리승기와 점심을 같이 나누실 의향으로 오찬을 준비하도록 하시면서 그사이라도 강변에 나가 잠간 산책을 하자고 하신것이였다. 물을 들이지 않은 순수한 본바탕색갈의 아마천으로 지은 닫긴깃의 여름옷을 입으신 그이께서는 목단추 하나를 끌러놓으시고 한팔을 펴서 의자의 등받이우에 올려놓으시였다. 그러시면서 리승기를 향해 약간 돌아앉으시였는데 그런 자세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순식간에 매우 자연스럽고도 무랍없는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것이였다.
그이께서 두번씩이나 권고해서 리승기는 양복웃옷을 벗고 와이샤쯔바람으로 앉았다. 강바람이 어찌나 서늘한지 몸의 부자연스러움까지 말끔히 사라져버리는것 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줄곧 미소를 띠우시고 비날론연구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이것저것 물으시였다.
리승기는 손세까지 써가며 숨김없이 설명하군 하였는데 그러다간 자기가 너무 지지콜콜이 말하지 않나 하는 위구가 불쑥 들면서 입을 다물군 하였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어서 말하라고 재촉하시듯 고개를 끄덕여주시는 김일성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시선을 돌리시고 지내 고요하지도, 그렇다고 세차지도 않은 압록강의 물결을 바라보고계시였다.
리승기는 잠시나마 그이께서 조용히 강의 수면을 바라보시며 기분을 가라앉히시는것 같아 퍽 다행스럽기도 했다. 해볕에 아롱이는 물결과 그우를 스치는 물새 그리고 정다운 음악처럼 들려오는 물소리… 이 강과 퍼그나 인연이 깊으신 그이가 아니신가.
리승기는 생각같아서는 그이를 방해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 다른 의자에 앉고싶었다.
허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결코 리승기가 바라는 그런 추억이나 휴식의 순간에만 머물지 않으셨으니 잠시후에 그이께서 리승기를 돌아보시며 하신 질문이 그것을 말해주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마음속깊이 생각하시다가 그 연장으로 말을 꺼내시듯 별로 감정의 전제도 없이 직방으로 물으시는것이였다. 그 질문이 리승기한테 너무 뜻밖이여서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방하민동무한테서 여기로 편지라도 옵니까?》
한순간 리승기는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입을 열지 못하다가 급기야 이렇게 대답했다.
《네.… 저… 리재업이한테 왔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리승기는 편지를 받을수 있는 대상자로 제가 못된다는것을 스스로 인정하는것 같아 자못 게면쩍기 그지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자기한테도 편지가 왔어야 할게라는 생각이 질문을 받은 순간에 몹시 절실해지는것이였다. 잊지 못할 목포큰아버지 서경조… 그의 사랑하는 양아들 방하민… 민족의 력사가 가져다준 운명처럼 여겨지는 이 기이한 인연으로 마땅히 방하민은 자기한테 혈육이상으로 되였어야 할것이나 그는 자기로부터 영영 멀어지고 둘의 사이는 회복할수 없으리만큼 소격해진듯 하였다. 다음순간 그가 멀어져간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를 멀리했다는 느낌이 뇌리를 치고 지나갔다. 물론 수령님께서는 그와의 이런 인연을 모르신다. 여기서 그런 사연을 털어놓을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리승기한테로 몸을 돌리고 앉으신채 말씀하시였다.
《쏘련에 가있는 그 방하민동무에 대하여 과학원 려경구소장한테 전화로 알아보았습니다. 려경구소장은 그를 재능있는 화학자라구 하면서…》
그이께서는 말을 끊으시고 리승기의 얼굴을 지켜보시다가 그의 의문을 풀어주시듯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한데 중앙아시아에 사는 방하민동무의 늙으신 어머님한테서 얼마전에 나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리승기는 어째선지 안경을 바삐 벗어들고 놀란듯 두눈을 껌뻑거리기만 했다.
《자필로 된 편지였습니다. 우리 글로 썼지만 토받침이 형편없이 틀렸습니다. 그래도 놀라울 정도로 뜻이 잘 통하고 내용이 절절했습니다.》
《무슨 편지였습니까?》 리승기는 이런 물음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입을 열수가 없었다. 이 순간에 그한테는 이것이 몹시도 놀라운 일처럼 여겨진것이다.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편지를 가져올걸 그랬습니다. 내용으로 보면 나만이 아니라 조국에다 대고 한 열렬한 호소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그 내용을 알려달라고 조급하게 청을 내놓을수는 없었다. 하지만 못내 흥분을 누르지 못하시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설명을 계속하셨다.
《그 어머니는 〈장군님, 저의 이 간절한 소망을 헤아려주옵소서.〉 하구 편지를 시작했습니다.》
그이께서 들려주시는 편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된것이였다.
…미거한 자식이나마 장군님의 품에 보내놓고 팔순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기어이 아들을 따라 조국에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아들이 아라사땅에 공부하러 들어왔습니다.
…조국에도 이제는 한다 하는 학자들이 있다는데 어째서 그 애는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라사에서 학위를 받았으면 되였지 박사야 조선에서 받아야 할게 아닙니까. 아라사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이제 무엇이 모자라서 또 아라사에 와서 박사를 받아야 합니까.…
그 애의 양아버지는 친아버지보다 더한분이였습니다. 혈육의 정은 말할것도 없고 우리 조선을 부흥시킬 과학자로 키우겠다고 그리도 애를 쓰시더니 이역땅 여기서 눈도 채 감지 못했습니다.
장군님,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면 그 애를 조국으로 불러주십시오. 장군님의 명이면 되지 않습니까?… 부모의 뜻은 그렇지 않은데 그 애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또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편지내용을 전달해주시다가 말을 이으시였다.
《그 어머님도 선진과학을 배워야 한다는걸 모르시진 않을겁니다. 모르지 않으면서 얼핏 보면 너무 외곬으로 뻗은 고집같기도 한 그 소원이 얼마나 눈물겹습니까.… 같은 값이면 조선박사라… 왜선지 난 그날 밤 이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이께서는 끓어오르는 심정을 어찌할수 없으신지 천천히 일어나시더니 강물을 바라보시기도 하고 마주 일어선 리승기를 향하기도 하시며 한자리에서 자꾸만 발을 옮기시였다. 발밑에서는 그이의 순편치 못한 심중을 말해주듯 자갈들이 빠극거리며 소리를 냈다.
그이께서는 문득 구름 한점없이 해볕에 가득찬 여름날의 하늘 어딘가에 시선을 주시며 생각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조국을 잃어버렸으니 뜻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 이 땅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런 기막힌 시절이였습니다. 나라없는탓에 수륙만리까지 흩어져갔던 우리 겨레가 아닙니까?… 낯설은 땅에서도 제 민족의 문명한 장래를 기원한 그 양아버지도 애국자이구 아들한테 꼭 조선박사를 주고싶다는 갸륵한 심정을 지닌 그 어머니도 애국자입니다.》
그이께서는 잠간 끊으시였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보시오, 지금은 모두들 조국에 돌아오겠다고 합니다. 재일동포학자들도 조국에 올겁니다.… 아시겠지만 조국이 없는 과학자들의 처지를 보십시오. 더두말구 유태인학자들을 보면 알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돈에나 끌려다니는 신세입니다.》
여기서 리승기는 숨김없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두손을 꽉 모두어잡고 막 입을 열려고 하였다.
그런 기미를 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팔소매를 잡으시며 같이 앉자고 이끄시였다. 웬일인지 의자에 앉자 리승기는 다시 말할 용기가 없어지는것 같았다. 그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승기의 무릎에 한손을 올려놓으시며 다정한 어조로 《리선생, 무슨 말인지 하시오.》 하고 재촉하듯 말씀하시였다.
리승기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수령님, 방하민동무의 양아버지는 저의 부친의 둘도 없는 벗이였습니다.… 그 서경조란분은 일제강점 전후한 시기에 나라의 문명개화를 위해 학교두 설립하구 계몽활동두 벌리면서 자기딴에는 무척…》
《그렇습니까? 그런 인연이 있었구만, 거참…》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시면서도 대견하신듯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리승기는 저도 모르게 이런 말까지 꺼냈다.
《그리구 말입니다, 알구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오원배로인의 말에 의하면 그 서경조란분은 여기 청수동에서 오동진이랑 함께 김형직선생님을 만나뵈운적도 있다구 합니다.》
《우리 아버님을요?… 그렇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아까보다 더욱 놀라시며 의자에 앉으신채 몸을 돌리시여 공장구내너머 저쪽 청수동골안의 산발들을 이윽히 바라보시다가 다시금 눈앞에 철썩이는 강물우로 시선을 옮겨오시였다.
《그러구보니 흔히 말하는것처럼 세상은 넓구두 좁은가 봅니다.》
그이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리승기도 미소를 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아까처럼 심중한 표정을 띠우시였다.
《그런즉 그 어머니의 편지두 더 뜻이 깊게 생각키웁니다.》
《사실 방하민동무는 그런 부모의 뜻을 받들어 조국에 나왔는데 제가 잘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웬일인지 손을 들어 리승기의 말을 중단시키는듯 하시며 말씀하시였다.
《려경구소장한테서 대체로 들었습니다. 방하민동무가 여기 와서 진척시키던 론문 얘기며 그리구 그가 쏘련으로 다시 떠나게 된 동기며… 리선생한테야 무슨 큰 잘못이 있겠습니까.》
그이께서는 방하민도 리승기도 다 너그러이 대해주시였다.
《기왕 이렇게 되였으니 도중에 나오랄수두 없지 않습니까. 문제는 그가 그동안에 어떻게… 다시말해서 어떤 립장에서 과학을 탐구하는가 하는것입니다.… 내가 쏘련주재 우리 대사한테 그 동무를 자주 만나보라는 말도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약간 난색을 지으시며 리승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시였다. 리승기는 그이께서 어째서 그러시는지 알수 없었다.
김일성동지의 부드러운 음성에는 걱정이 어렸다.
《그 어머니한테 답신을 보내야겠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안그렇습니까?》
자책감에 잠겨있던 리승기는 제 심정을 솔직히 말하고싶은 충동을 받았다.
《수령님, 제가 그 어머니한테 편지를 쓰면 안되겠습니까?》
사실은 이미 훨씬전에 서경조의 부인인 그 어머니한테 편지로 서로 인연을 알리고 방문의 기회가 허락되면 언제한번 만나고도 싶었었다. 막상 이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수 없으니 다만 지금 자신이 느끼는 자책과 수령님의 걱정을 함께 담아 당장 붓을 들고싶도록 마음이 절박해져 편지를 쓰겠다고 한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참 그게 더 좋을수도 있겠습니다. 나의 뜻도 함께 적어서 보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구 방하민동무한테두 편지를 쓰겠습니다. 나오면 합심해서 과학탐구에 매진하자구 말입니다.》
《합심이라… 그 참 좋은 말입니다.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면 정치나 과학이나 합심이 중요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몇걸음 떨어진 곳에는 오찬에 안내해드리려고 군복차림의 부관이 와 서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승기의 팔을 가벼이 껴가시며 활기에 넘치시여 말씀하시였다.
《자, 빨리 갑시다. 고기를 들지 않는 리선생을 위해 오늘은 내 선생이 좋아하는 여러가지 산나물무침을 준비하라고 일렀댔습니다.》
리승기는 천천히 그이의 곁을 따라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