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제 3 편

제 2 장

1

 

방하민은 청수에서 마지막며칠을 보내려고 외래자호실에 들었다. 그는 여태 전쟁때부터 정해놓은 그 하숙집에 들군 했었다.

한데 이번에 와보니 이 집 늙은이들이 아들을 따라간다고 이사짐을 꾸렸고 이 집에는 다름아닌 오원배의 아들 오정해네 젊은 부부가 들게 된다고 하였다.

구식기와집은 신접살림에 너무나 커서 그 웃방에 얼마든지 기거할수 있었으나 청수에 다시 올것 같지 못하는데 괜히 들었다말았다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방하민이다.

마침 의주에서 아들집을 보러 왔던 오원배로인이 방하민을 만나 하는 말이 장차로는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낸 이 청수동에 와서 뼈를 묻히고싶지만 아직 한두해는 살던 고장에서 떠나지 않겠다는것이다.

방하민의 속심을 모르는 오원배는 말했다.

《방선생, 마침 잘됐시다. 청수에 오면 계속 이 집에 있게 되였으니, 로친네와 함께 내가 여기 와두 집은 널직하니 걱정마시우. 또 집이 좁아서 못사는 법은 없시다. 마음이 좁아서 못살면 못살았지.… 이제 아라사에서 늙으신 어머님을 모셔오고 사모님두 온다 해두 평양에 살게 될터인즉 선생이 이 집을 제집처럼 다니게 되면 나로서는 더없이 감사한 일이웨다. 선생의 부친인 서경조, 그분과의 인연을 봐서두 내 집을 제집처럼 생각해주시우다.》

고마운 말이였으나 그것이 지금 방하민이 처한 심정에는 별로 위안이 못되였다. 제 론문에 대한 신심을 잃었던것은 둘째치고 리재업의 감자알콜사건으로 어지간히 마음이 혼란되였던것이다.

방하민은 신경이 과민해지고 사소한 일을 두고도 자신심이 없어질 때가 있었다.

(그까짓거 아무래도 쏘련에 갈거라면 구태여 그걸 바래선 뭘해…)

그는 제 론문을 두고 중간공장에로의 확대는 물론 그 론문자체를 포기할 심산까지 생겼다. 실상 론문은 청수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것이나 다름없다. 실험수치와 자료들이 거의나 리승기와 그의 방조자들 특히는 오정해의 많은 수고에 의해 이루어진것이다. 자기는 그저 리론적인 일반화를 하면서 많은 외국문헌을 참고해가며 맞춰놓았을뿐이다.

방하민은 자기의 론문을 공개심의에 붙여도 좋고 안 붙여도 좋다고 생각했다. 자기한테는 이제 불원간 생활의 변화가 있을것이기때문이다.

쏘련의 박사원에 가려는 그의 지망이 인차 실현될것 같았다. 모교의 알렉쎄예브교수도 최선을 다해주겠노라고 약속을 해왔다. 평양에서 만나고 온 과학원원장도 방하민의 전망설계를 들어보고 쾌히 동의해나섰다. 방하민이 고분자화학의 최신분야인 원유에 의한 합성수지연구에 달라붙겠노라고 했으니 원장도 말을 들은것이였다.

그는 물론 합성수지연구에서 봉우리를 쌓을 야심을 품으면서도 자기의 희망과 속심을 리승기한테 터놓지는 않을것이다. 박사학위도 이왕이면 세계적인 판도에서 권위가 있는 쏘련학계가 인정하는것으로 받고싶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지금 명예에 대한 갈망이 쉬임없이 불타올랐으니 이 거치른 불길에 싸여 성실한 노력과 진지한 탐구의욕이 적지 아니 타버려 재처럼 된다는것을 그자신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감자알콜을 말하더라도 방하민은 저의 실책을 적당한 기회에 점잖은 말투로 돌이키면서 리재업이한테 은근히 못을 박았다.

《동문 문헌연구를 전면적으로 깊이하지 못했더구만. 내 그때 잡지 〈히미야〉에서 본걸 말했지만 후에 보니 어떤 문헌에는 다른 견해들이 피력되였더란 말이요. 쏘련학계두 합성고무연구분야에서 감자알콜을 두고 론쟁이 있은것 같애. 그러니 전면적인 문헌연구가 항상 중요한거요.》

그는 그때 이제껏 마음이 통하는 사람으로 치부하던 리재업이도 자기한테서 멀어져간다는것을 분명히 통감하게 되였다.

바로 그런탓으로 하여 일산 200키로비날론중간공장건물에 가려고 청수화학공장구내에 들어선 방하민은 아는 사람들의 인사를 점잖게 받으면서도 공장장인 리재업이부터 찾아갈 생각을 안했는지 모른다. 그가 합성공정의 뎅그런 건물안에 들어섰을 때 거기서는 뽐프의 스르륵거리는 동음만이 가벼이 들릴뿐 흔히 화학공장들이 그러하듯 겉으로는 조용하였다.

여전히 명랑한 사나이인 림창직이 휘파람을 슬슬 불면서 계기판을 들여다보다가는 한손에 받쳐든 공정일지에 무엇을 적다말고 방하민을 돌아보았다.

방하민이도 곰살궂게 인사를 건네였다.

《수고하누만, 잘돼가오?》

《뭘요, 그저 그렇지요.》

《한데 지금 무얼 하구있소?》

호기심보다 무관심이 더 많은 질문이였다.

허나 림창직은 일종의 자랑을 담아 말했다.

《우린 여기다 비등식을 도입했습니다.》

《아니, 벌써?》

그랬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방하민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빠르지 않소?》

그것은 이미 무관심이 아니라 자기의 견해가 담긴 목소리였다.

《제가 우겨서 이렇게 하구있습니다.》

《그렇다? 동문 언제봐도 급하다니까. 성미두 연구사업두.》

허나 림창직은 여전히 싱글벙글이다.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돼먹은걸.》

방하민은 여유있는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경솔성과 열정이 다르다는걸 모르오? 전화로 들으니 리선생두 하는 말이 20키로단계에서 결함이 한두가지 나타난다구 하던데…》

《그렇긴 합니다. 허나 그건 해명되였구. 그래서 공정을 담당한 저한테 맡기라구 했습니다.》

그러다가 불시에 림창직은 저로서도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물론 신중해야지요. 우선 조작상요구에 주의를 돌리겠습니다. 규모가 큰 이 900키로합성탑에서 비등식이 처음부터 순탄히 되진 않을겝니다.》

한데 여기서 방하민은 웃사람다운 말투로 엄엄하게 말했다.

《비등식에 대한 신심이 부족해선 안되오. 리선생이 결심한 이상에는.》

그리고는 머리를 끄덕여보이면서 다소 부드러운 어조로 《걱정말구 잘해보우.》하고 말하는것이였다.

사실에 있어서 그는 도이췰란드사람들이 고정식에 대하여 쓴 문헌자료들을 찾아보고 그것을 이번에 가방속에 가지고 내려왔다. 허나 림창직이 앞에서 서뿔리 그 말을 꺼낼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그는 여기서도 종전대로 고정식을 했으면 했고 또 그것이 성공되기를 바라고있었다. 화학의 조상이라 할수 있는 도이췰란드에서 하는대로 하지 않으려는 이 청수사람들(특히는 리승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테 한번 본때를 보여주고싶은 얄궂은 심사를 어쩔수 없었다.

고정식은 장치가 복잡한 대신 실수률도 높은것이고 그자체에 다른 결함이 없다. 아무리 우리 실정에 맞는 비등식이라도 이제 난관에 부닥치게 되면 그 고정식에 되돌아갈수도 있다는 생각에 방하민은 마침내 림창직의 팔소매를 슬그머니 잡았다.

《그래 고정식의 장치제작에 대한 동무의 론문은 아주 버리였소? 내가 론문심사를 맡게 되여있지 않았소?》

《그건 무슨 말입니까? 버리기는 왜 버리겠습니까. 더구나 장치제작분야인데…》

《그야 그렇지. 학자란 제 창조물을 서뿔리 던지지야 않지… 그럼 내 말 좀 들어보우.》

그러더니 방하민은 림창직의 팔소매를 놓고 합성탕크를 눈여겨보며 말했다.

《도이췰란드잡지의 문헌에서 보니 과열기름의 온도와 압력에 문제가 있더구만. 아, 거 재업동무도 거기 가서 과열기름으로 200도의 반응온도를 얻는 거기에 무척 관심이 갔다지 않소.》

학자의 호기심과 관찰력이란 끝이 없는것이다.

림창직은 모든걸 알고싶어하는 성미라 대번 의문에 찬 시선을 방하민한테로 돌리였다.

방하민은 림창직이 든 공정일지를 달래서 그 뒤등에 종이 한장을 놓고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그는 정확한 기억력의 도움으로 수치들을 되살려 적으면서 제가 본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는 말했다.

《도이췰란드학자들은 랭철한 실무가들이요. 빈틈이 없지. 원래 과학을 해먹게 되였다고 할가. 이것 보우 창직동무, 도이췰란드에서 하는게 앞선거라면 우리가 그걸 그대로 한다구 해서 그게 맹목적인 믿음이겠소?… 고정식을 우리가 해보지 않은것두 아니요. 기초두 있소. 그저 묘리와 비결을 찾지 못했달뿐이지.》

그는 여기서 자기의 지나친 말을 후회하듯 서둘러 동을 달았다.

《하긴 이건 지나가는 소리구… 하여튼 이제 동무가 앞으루 론문을 계속한다면 필요할가 해서 하는 말이요.》

그러다가 방하민은 다시금 참아내지 못하고 갑작스레 한손을 들어 허공을 탁 내리치며 말했다.

《아차, 내 이 정신 봐. 바삐 정거장으로 나오다나니 그걸 넣구오구두… 그 도이췰란드문헌잡지를 가방안에 넣구 온것 같단 말이요.… 분명 가져왔어. 건망증이 이렇게 심해지다니 원.》

그는 혀를 끌끌 차며 유럽사람들처럼 두팔을 쩍 벌려 유감과 사죄의 뜻을 표하는것이였다.

림창직은 그가 일부러 이제껏 그 말을 숨겨왔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그저 기쁜김에 소리치듯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이제 당장…》

《아아, 바빠 마오. 오늘 저녁에… 참, 손님으로 초대받는 영광을 지닌다면 내가 손에 들구 집에 가지구 가지 않으리.》

불쑥 방하민은 마지막일지도 모를 여기 청수를 떠나면서 림창직을 마음의 벗으로, 마지막지탱점으로 삼아놓고 가고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그는 함부로 다니지 않는 방문도 요청하다싶이 한것이다.

그들은 같이 밖으로 나오게 되였다.

작업복을 갈아입으러 현장휴계실에 들어갔던 림창직이 와이샤쯔우에 제낀깃의 웃옷을 입고 나왔는데 머리에는 처음보는 연회색중절모를 쓰고있었다.

《그 중절모는 어데서 난거요? 색갈두 좋구 꽤 멋진데… 역시 창직동문 옷차림에서두 신식이라니깐. 최신류행을 따를줄 알구.》

림창직은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리선생이 도이췰란드에 갔다오다 모스크바에서 사온겁니다.》

《그렇소? 외국방문기념품이란 말이지.》

림창직이 중절모를 벗어 손에 들었다.

《저보다 제 집사람이 더 기뻐하더군요. 한데 출장길이라면 몰라두 출퇴근때에두 꼭 중절모를 쓰라구 성화를 먹이지요. 녀자들이란 참.》

《안해들은 남편의 옷차림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법이요. 남보다 못하지 않게 차려 내세우려는게 현숙한 안해의 품성이지.》

생활에서도 선배연하는 방하민의 목소리는 그닥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방하민은 림창직의 손에서 중절모를 쥐여 제 머리우에 얹어보고나서 그걸 벗어 손에 든채 들여다보며 《이게 재질이 모직인가, 아니면?…》하고 중얼거리는것이 마치 그 재질을 아는것이 무척 중요하기라도 한듯싶었다. 그는 부러움이나 자기한테는 아무런 기념품도 없었다는 그런 섭섭함따위의 세속적인 감정에 잠긴것이 아니였으니 결코 그는 자신이 그런 옹졸한 인간은 아니라고 깊이 확신하는터였다. 이 순간에 그의 머리에 떠오른것은 제가 성의를 보여서 구해준 수정안경을 리승기가 왜 아직 끼지 않고있는지 하는 그것이였다. 굳어진 반응물을 까내다가 안경을 떨궈 깨먹은 뒤에 리승기는 본래부터 갖고있던 다른 안경을 썼는데 그건 테도 썩 좋지 못한것이였다. 방하민이 멋진 수정안경을 구해다주었는데도 리승기는 그냥 그것을 끼고 다녔다. 물론 만년필이나 안경따위는 손에 익은것에 애착심이 생기는건 사실이다. 지금 방하민은 리승기가 그 수정안경을 끼고 자기와 마주앉게 된다면 훨씬 수월하게 그를 대할수 있을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그날 저녁 방하민은 도이췰란드잡지에 실린 문헌자료를 가지고 림창직이네 집으로 갔다.

그는 거기서 다시금 고정식합성법에 대한 자기의 견해(그것은 주로 외국문헌에 의한것이다.)를 설득력있게 피력했다. 외면상 그것은 림창직의 론문을 돕기 위한것으로 보였지만 그의 말투와 내심에는 고정식에 대한 미련과 함께 《너희들이 이제 비등식에서 실패하면 고정식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암시가 있었다. 아무튼 그는 금진의 음식솜씨로 후한 대접을 받았다. 난생처음 곱돌장사귀에 끓인것을 먹어보았다.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간단한 로씨야말을 섞어 너스레를 떨며 유쾌한 기분을 내여보았다. 허나 밤늦게 숙소로 돌아오는 그의 마음은 느닷없이 무거워지고 까닭모를 고독감이 엄습하는것이였다.

 

2

 

리승기는 지금 자기와 책상을 마주하고 당당히 서있는 림창직이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있었다. 그를 이처럼 키워놓은것이 제자신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듯싶었다. 문득 비날론전망안을 토의하던 중요한 회의에서 침착하게 설명을 하던 림창직이 생각났다. 그때 그를 무척 대견히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자애로운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수령님의 그 시선, 그 미소가 림창직이를 오늘처럼 제 주장을 가진 학자로 키우는것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러워졌다.

리승기가 다시금 책상우의 공정일지를 들여다보는데 림창직이 책상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말한다.

《선생님, 어째서 두번째 시험을 늦춥니까?》

일산 200키로중간공장에 비등식합성법을 처음으로 실현해보고 제딴의 확신에 차있는 림창직이였다. 그는 자기의 고정식장치제작에 대한 론문에 필요한 기초자료들을 200키로에서 확증하는것도 밀어버리고 리승기의 주장에 공감하고는 지체없이 비등식을 도입했던것인데 그 과정에 약간의 결함들이 나타났다. 일부 사람들은 작은 규모의 20키로에로 되돌아가 그 원인을 명백히 알고서 다시 2차시험에 들어가자는 견해였다.

한데 이상하게도 리승기는 그 견해에 동의하는듯 한 눈치였다. 림창직은 성급한 욕망과 지나친 완만성을 다같이 경계하면서 반복되는 실험의 속도와 균형을 유지하는 리승기의 평상시의 놀랄만 한 기질을 모르는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림창직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말입니다. 가스를 치환하는 조작상결함일뿐입니다. 저도 운전공들도 처음 해보다나니. 두번째부터야 뭐 그리 걱정할게 있습니까?》

《가스치환이라?…》

리승기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뒤짐을 지고 림창직을 더는 보지도 않은채 방안을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뚝 멈춰서며 림창직이를 바라보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아니, 그렇지 않을수도 있소.》

《선생님.》

림창직은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하루라도 시간을 앞당겨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던 림창직이 그 순간에 생각났는지 거의 부르짖다싶이 말했다.

《차라리 20키로와 200키로에서 병진시키면 그 결함의 원인이 더 명백해질게 아닙니까?》

리승기가 림창직을 향해 다시 돌아서며 말없이 지켜보았다. 바로 안경너머의 그 눈에서 어떤 긍정의 뜻을 보자 림창직은 도리여 움츠러들며 더 말을 못하고있었다. 제가 지나치게 성급히 굴지 않았는가 하는 일종의 자중이 생긴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 리승기는 《그럴수도 있소.》하고 말했다. 뒤이어 그가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림창직은 벌써 뒤돌아섰다. 리승기는 방에서 나가는 림창직을 말리지 않았다. 대견함과 불안감이 뒤바뀌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뿐이였다. 그가 곧장 현장으로 가리라는것을 알면서도 가만 놔두었다. 한 학자에게서 독자성과 독창성이 형성되게 하려면 무엇보다 남을 넘겨다보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탐구를 거듭하도록 하는것, 따라서 림창직자신이 스스로 과학적결론에 빨리 도달하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날 오후부터 림창직은 줄곧 합성공정에 붙어있었다.

사실상 리승기의 관심도 요즘 온통 이 합성공정에 가있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거기에 드나들군 하였다. 그는 금진이가 남편한테 저녁밥까지 날라오군 하는것도 보았다. 구내식당에서 먹을수도 있었으나 안해는 남편한테 제가 지은 음식만을 먹이고싶어하는것 같았다.

리승기는 금진이를 보고 남편이 늦도록 있지 못하게 신칙을 하고 밥을 날라다주지 말라고 하려다가도 그들의 금술을 자못 대견히 여기는 심정으로 그런 말을 그만두고말았다.

사실 금진은 전문학교교원의 체면도 별반 개의치 않고 밥그릇을 들고나와 남편곁에 앉아서는 손을 깨끗이 씻고 숟가락을 들라거니, 찬물을 지내 마시지 말라거니 하면서 다심하게 타이르며 지켜보군 하였다. 남편이 하는 일까지 거들어주느라고 하다가는 불시에 불룩한 가슴을 움켜쥐고 두번째로 난 갓난애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는것이였다.

리승기가 들어섰을 때 림창직은 작업대우에 허리를 구부리고 그리작지 않은 수첩에(그안에는 실패한 실험조작도, 성공한 다른 공정의 도해도 그리고 앞으로 하고싶은 연구에 대한 륜곽까지도 다 있어서 누군가는 그것을《옥편》이라고 하였다.) 무엇인가 그려넣던 참이였다.

《무얼 또 그렇게 열심히?…》

리승기는 수첩의 한 갈피에서 어떤 형태의 뽐프구조를 보았다.

《이건 또 뭐요?… 동무의 이〈옥편〉에 무엇이든 다 있는건 좋지만 너무 이것저것…》

고정식합성에서의 장치설비가 림창직의 론문에서 주요부분인것만큼 그것을 리해해주지 못할 리승기는 아니였다. 하지만 그때 리승기는 서둘러 강조하였다.

《어쨌든 중심을 놓치지 마오. 이제 비등식으로 여기 있는 이 900키로탕크를 5톤, 10톤짜리로 높이 탑을 쌓아올려야 할게 아닌가, 탑을 말이네.》

이 순간에 리승기는 스스로도 자신이 좀 객적은 다변가처럼 느껴졌으나 어째선지 내처 말했다.

《한데 창직동문 너무 넓게 알구 넓게 시작하구… 말하자면 박식이 상식으로 그치면 무식한거나 같애. 우물을 파도 한우물을 파랬다구.》

《선생님, 우물을 깊이 파자면 넓게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리승기는 자신도 의아하리만큼 푸접없이 말해버렸다.

《창직동문 지금 우물이 아니라 탑을 생각하게, 탑을… 우리한테는 이게 생명선이 아닌가.》

《알구있습니다. 그런데 저… 전 지금 한가지 일이 떠오릅니다. 선생님네 혜연이 어릴적에, 지금이 열여덟살이라니까 아마 열두살때인가 아버지가 했다면서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옛날의 어떤 학자가 하늘의 별만 보다가 그만 우물에 빠졌다나요. 그래서 곁에서 한사람이 〈선생님은 하늘에 대해선 잘 아시지만 땅에 대해선 통 모르시는군요.〉라구 말했다지요. 난 그 말을 리상만 쳐다보다가 자기가 지금 어디로 가고있는지, 말하자면 제가 딛고선 땅에 대해서 잘 몰라서는 안된다는 말로 들었습니다.… 땅이란 현실적인것과 함께 한편으로는 지식의 대지를 뜻하는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무한한 하늘을 쳐다보며 리상을 꿈꾸는것도, 지식의 대지를 가슴에 그러안는것도 다 중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그러니 리상주의자이며 랑만주의자인 자네가 이제는 현실주의자로도 되였단 말이지.》

리승기는 웃으면서 그런 말을 이만 하자고나 하듯 작업대우에서 1차시험때의 합성탕크안에서의 반응속도, 온도, 압력 등을 적은 공정일지를 보려고 그것을 번지였다.

그런데 림창직이 오늘은 웬일인지 검질기게 말을 걸어온다.

《말이 났으니 말입니다. 후에 어느 책에서 보니까 하늘만 알고 땅을 모른다는 그 얘기는 고대그리스의 철학가 탈레스란 사람을 두고 한 말이더군요.… 그런데 선생님, 좀 들어보십시오. 그 탈레스란 사람이 얼마나 허무주의자인가, 그가 〈생명쯤 대단한것이 아니야.〉하고 말해서 그 말을 듣던 사람이 〈그러면 생명을 한시바삐 버려도 좋지 않은가.〉하자 탈레스는 〈그러나 죽음이라는것도 대단한것이 아니니까.〉하고 말했다는겁니다. 얼핏 보면 기지가 있는것 같지요. 하지만 생명과 죽음을 두고 마치 그 모든것을 초월한듯이 말하면서 롱담을 하는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사람한테는 분명 허무주의가 있단 말입니다. 생을 놓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리승기는 그의 말을 연신 긍정하면서 고개만 끄덕이였다. 뜨거운 애정으로 얽혀진 행복한 가정, 과학의 봉우리를 매진하는 그 열정과 탐구정신 이것이 림창직한테서 생의 아름다움인것이다.

(한데 그 빌어먹을 탈레스란 사람은 생명도 죽음도 다 티끌같다는 식으로 말하다니.)

어느새 림창직은 해체해놓은 뽐프로 달려가 그걸 들여다보느라고 벌써 곁의 사람을 까맣게 잊은것 같았다.

리승기는 공정일지를 접어 탁자우에 놓았다. 그는 림창직한테 빨리 다그쳐 뽐프조립을 마무리해야겠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러면 또 오늘 밤 늦도록 여기서 떠나지 않을가봐 오히려 이렇게 당부하였다.

《오늘은 좀 일찌감치 들어가우.》

저녁무렵 리승기가 퇴근시간이 지난 다음에 거기에 가보니 여전히 림창직이 그 합성탑의 뽐프앞에 앉아있었다.

리승기는 짐짓 노염기를 띤 목소리로 말하려고 했다.

《운전공들은 다 어디로 가구 동무가 계속 지금까지 여기 있소?》

《네, 네.… 이젠 다 돼갑니다. 이놈의 뽐프에서 바킹이 말썽을 일으켜 다시 해넣느라구.》

그러면서 림창직은 가위로 썩썩 베던 바킹감을 황황히 뭉그리며 두손을 움츠리였다.

리승기는 의아하게 지켜보았다. 그것은 자기가 외국에 갔다오면서 그한테 기념으로 준 그 중절모가 분명했다.

림창직이 바킹감을 두손으로 부둥켜안으며 일어나 낯이 벌개지기까지 하였다.

《선생님, 이거 정말… 아까 글쎄 가위를 대구보니까… 도로 붙이지두 못하구…》

림창직은 우물우물하였다. 바킹감을 여기저기서 찾다가 휴계실 옷걸이에 걸어놓은 중절모가 맞춤해보여 마음이 앞선 나머지 가위부터 댄 모양이였다.

리승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하긴 그게 제격이긴 제격이겠구만. 한데 나보다 성희 에미가 더 섭섭해하겠는데 어쩐다? 나보다 성희 에미한테 사죄해야겠소. 내가 일러바쳐야 할가보우.》

《선생님, 선생님은 역시… 한데 아직은 제발 집사람한테 말하지 마십시오.… 바람에 날려 압록강에 들어갔다구 적당히 말하면 안될가요?》

리승기는 난 몰라 하는 식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하긴 뭐 금진인 자네가 그걸 압록강에 날려보냈다는것보다 이 합성탑에다 썼다면 외려 가만히 있을수 있어. 자네 성미를 아니까. 바로 그것때문에 금진이 자네를 열렬히 사랑하는것인데.)

리승기는 잠간 섰다가 인차 끝내고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거기서 물러났다.

그때 리승기는 림창직이 뽐프를 조립해놓고나서 이밤으로 반응조작을 시작하려고 시간을 지체할것만 같이 생각되다가 어째선지 오늘 저녁만은 중절모때문에라도 안해한테 달려가 사죄하느라 일찍 집으로 들어가리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문간에서 주춤거려지는 발길을 돌리지 않고 나와버린것이다.

저녁밥상을 물린 뒤에 자기 방으로 올라가 책상에 마주앉은 리승기는 최근의 과학원학보를 보고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이상한 폭발소리가 들리자 공장에서 가까운 주택마을의 이 집에서 거기에 맨처음 주의를 돌린 사람은 리승기였다. 그는 공장쪽에서 울린 이 둔중하고도 웅글은 음향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였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그는 밖으로 나와 어둠속에서 공장구내쪽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불빛이나 그 어떤 다른 변화는 없어보였다. 그가 다시 방안에 들어가 불안감에 잠겨 서성거리고있을 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리승기는 급히 문을 열었다. 김용석이 숨을 헐떡거리며 서있었다. 방안에서 내비친 불빛에 그의 두눈은 흥분에 번쩍이고 그 시커먼 눈섭이 푸르르 떠는것만 같다.

《선생님, 창직동무가…》

리승기는 덮칠듯이 그한테 바싹 다가서면서도 공포와 불안에 떨며 그를 보기만 했다. 리승기와 마주선 김용석이 주춤 뒤로 물러나며 가쁜숨을 삼키고 말을 했다.

《창직동무가… 위급합니다. 지금 병원에…》

《뭐라구?》

리승기는 웃옷도 걸치지 못한채 신발만 신고 김용석을 따라 달려갔다. 거리가 멀지 않은 병원에 당도한 그는 황황히 어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지독히 풍기는 소독약냄새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이 에워싼 침대에로 다가가려는 자기를 누군가 부축해주려는것을 어렴풋이 느낄뿐 무서운 침묵과 정적에 휩싸인 방안의 공기는 그의 의식을 반나마 앗아가버렸다.

침대머리에 서서 리승기는 이상하게 창백해진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가 림창직이 아니라 어떤 낯모를 사람임을 보았다. 피기가 없이 굳어진 얼굴… 유쾌한 웃음과 함께 반짝이던 그 금이발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합성탕크폭발시에 쇠붙이가 경동맥을 치며 지나가 너무도 큰 출혈을 일으켜 림창직은 최선의 구급대책을 취하기도 전에 숨을 거두었던것이다.)

리승기는 가슴이 쿵 하고 허물어져내리는 절망감에 두손으로 머리를 부둥켜쥐였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성희 아버지!》하고 부르는 녀인의 애절한 웨침이 먼곳에서 들리듯마듯 아득히 울려왔다. 리승기는 실신상태에 빠지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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