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8. 인간향기

 

인간은 미래지향적이다. 그래서인지 인류는 지향적인 리념은 품에 안고 비관적인 관념은 멀리 밀어던지며 력사의 대로를 걸어가고있다.

인류는 주체사상처럼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정확히 밝히고 사람을 중심으로 자연과 사회를 고찰한 철학적세계관을 일찌기 자기 품에 안아본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인류철학사는 수수천년 인간이 인간을 알기 위한 물음을 안고 모대겨온 력사이기도 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지금 며칠째 새로운 서사시의 구상으로 잠못들고있었다. 드디여 그의 머리속에 번뜩 상이 잡혔다.

그렇다, 제1장에서는 인간이여, 너는 누구냐? 이런 물음을 안고 모대겨온 인류력사에 대해 서정을 펼치자.

생각이 이렇게 미치자 그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중얼중얼 시구절이 흘러나왔다.

 

―인간이여, 너는 누구냐?

 

이 물음을 안고 모대기며

인류력사는 흘러 수수천년

 

철학의 시조라 일컫는

텔레스로부터 시작하여

얼마나 많은 철학가, 사상가들이

이 물음의 대답에 한생을 바쳤던가

 

물어보자, 인류사여

그 하나의 진리를 찾아

고뇌의 길을 걸은 이들

과연 몇몇인지

 

오늘도 남기고있다

력사를 자랑하는 고대의 옛성지들은

철학의 풍요한 대지로 빛나던

그 시대의 기념비들을

허나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진리를 찾지 못한채

물음만을 세월우에 실려보냈거니

철학의 력사는

인간이 인간을 알기 위한 고민의 력사

 

비슈와나스의 머리속에는 철학사의 갈피갈피에 새겨진 인물들이 주마등같이 흘러갔다.

그 얼굴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기자신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가득 안고 고민하는 모습이였다.

 

그처럼 유명한 쏘크라테스도

인간이여 너 자신을 알라고 웨쳤을뿐

이 물음의 해답에는 함구무언했더라

《불사의 령혼》만을 안고 가버렸더라

 

론쟁에 끝없던 맹자도 순자도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다투었을뿐

이 물음의 해답에는

서로 얼굴만 붉히였더라

 

오로지 진리만을 갈구했기에

자기의 스승 플라톤을 타매한

열정의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해답의 고민을 안고 가버렸더라

 

마주오는 대왕을 향하여

해빛을 가리운다고

그처럼 도고하게 웨친 디오게네스도

이 해답만은 터치지 못한채 사라졌더라

 

자기자신을 찾았다고

그처럼 열렬히 선언한 고대의 철학자

그가 희열에 넘쳐 본 인간이란

《영원한 불》이라는 알수 없는 존재였더라

 

《우상》을 타매하며

인생을 모색하던 근세의 철학자도

종래는 그 《우상》속에서

제모습을 보지 못하고 가버렸더라

 

시대의 뒤바뀜속에서

세월의 흐름속에서

제나름으로 떠도는 《주의》, 《주장》들

인간을 그 얼마나 모독했던가

 

몽매한 력사의 갈피갈피에 새겨진 인간은 마치 우롱당하기 위해 태여났던듯싶었다. 언젠가는 신의 노예로, 한때는 고독속에 시달리는 공포의 존재로, 또 그리고 생존에 매달린 본능의 노예로…

비슈와나스는 이 모든것에 대해 썼다. 인간이 인간을 알기 위해 모색해온 철학의 력사를 랭철하게 돌이켜보며 그 모든것을 감성의 분출로 엮어나가는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였다.

 

숱한 철학자들이

숱한 사상가들이

제나름 고심하며

력사우에 던진 그 물음

 

―인간이여, 너는 누구냐?

 

비슈와나스는 일어섰다. 며칠째 고심해오던 서사시의 제1장의 마지막련을 이렇게 끝맺은 그의 심장은 흥분으로 한껏 높뛰고있었다.

푸름푸름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악몽의 밤은 영원히 물러가고 세상에 광명의 새날이 밝아오고있는것이였다. 그렇다. 악몽의 밤은 인간이 자기자신을 알지 못하고 우롱당하며 흘러간 력사이고 광명의 새날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여 력사를 창조해가는 주체의 시대이다. 그 모든것을 써야 한다. 그렇다는 의미에서 제1장의 제목은 《인간이여, 너는 누구냐?》라로 달고 제2장의 제목은 그에 대한 해답으로 《인간이여, 너는 세계의 주인이다!》로 하자.

그는 시상을 무르익히며 거리에 나섰다. 한밤을 꼬박 새웠으나 시상을 안고가는 사람의 걸음은 활기에 넘쳤다.

시는 정신의 불길이다.

비슈와나스는 활활 타오르는 정신의 불길을 안고 시대의 한복판으로 걸어가고있었다. 그의 시상은 이제 생활속에서 무르익어 조만간에 제2장, 제3장으로 줄줄이 이어지리라.

비슈와나스는 천천히 거리를 걸어갔다. 은행나무잎이 새벽바람에 살레살레 춤을 추고있었다. 그 나무를 바라보며 비슈와나스는 생각하였다.

저 나무는 새벽에 꽃이 핀다. 누가 보는이 없어도 스스로 꽃피여 열매맺는다.

비슈와나스는 시대의 사상을 연구보급하는 성스러운 길에서 부단히 열매를 맺어가리라 생각하며 거리를 걸어갔다.

그날은 1979년 4월 14일이였다.

이날은 인디아에서 처음으로 주체사상국제토론회가 개막되는 날이였다. 이 토론회는 비슈와나스의 발기에 의해, 그와 그의 동료들의 꾸준한 노력에 의해 마련된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걸어가면서 거리의 장식물들이 제대로 되여있는지 다시한번 자기 눈으로 확인해보자는것이였다.

모든것이 제대로였다.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참가자들을 열렬히 축하한다!》를 비롯한 많은 구호들과 프랑카드들이 거리거리에 보기 좋게 나붙어있었으며 투쟁과 전진을 상징하는 붉은 기발들이 높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힘있게 나붓기고있었다.

비슈와나스의 가슴은 흥분으로 설레였다.

생각할수록 주체사상은 그 진수만 봐도 의심할바없이 우리 시대와 미래의 전력사적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과학적이며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사상으로 뚜렷이 안겨오는것이였다.

주체사상에 접한 인류는 설레였다.

조선의 현실에 구현되여 그 생활력이 증명되였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안겨준 이 사상만이 오직 자주의 새 세기를 펼칠수 있다는것을 사람들은 심장으로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인구대국에 속하는 이 인디아땅에서도 주체사상국제토론회가 드디여 막을 열게 된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걸어서 딴쎈트 마르크에 있는 골든 쥬빌리회관앞에 이르렀다.

회관앞에는 이번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를 상징하는 대형홰불마크가 걸려있고 오색기가 나붓기고있었으며 회관건물은 갖가지 꽃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여있었다.

비슈와나스는 토론회장에 들어섰다. 새벽안개에 하얘진 그의 앞머리는 이슬기를 머금은 강냉이수염을 방불케 하였다. 어느새 나왔는지 고빈드를 비롯한 학회의 젊은 성원들이 먼저 나와 회의장을 지키고있다가 저마다 인사를 하며 비슈와나스를 반겨맞았다.

비슈와나스는 이들이 고마왔다. 한없이 미더웠다.

그사이 고빈드는 적지 않은 자기의 동료들을 데리고 친선협회에서 학회에로 넘어왔으며 누구보다도 솔선 앞장에 서서 인디아의 여러곳에 주체사상연구소조를 뭇고 운영하는 사업에 조직자가 되여 발벗고 나서고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여 그가 엄정중립을 포기하고 돌연히 조선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였는가.

그는 친선협회가 조직한 여러 기념행사들에 참가하면서 조선에서 구현되고있다는 주체사상이라는 말에 접하게 되였다. 그는 날이 갈수록 인간중심의 새로운 그 철학사상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수 없었다. 대학시절부터 어느 리념을 따라야 식민지멍에에서 갓 벗어난 인디아를 번영의 길로 이끌어갈수 있겠는가를 모색하면서 유물론의 법칙도 연구해보고 유신론의 온갖 주의주장들도 다 살펴온 그였다. 그러나 그 모든 리론들에는 새로 독립한 나라를 추켜세울 힘의 원천에 대해서, 현시대 인류의 복리를 위한 실천적인 방도에 대해서 밝혀준것이 없었다.

정치학을 전공한 인디아의 젊은 지성인으로서 그는 민족이 나아갈 출로를 찾아 모대기고있었다.

이러한 그가 인간의 가치를 새롭게 규정하고 자연과 사회를 변혁하는 힘의 원천을 인간에게서 찾는 인간중심의 철학사상에 접하게 되였으니 어찌 심장이 뛰지 않을수 있었으랴.

고빈드는 주체사상의 심오한 진리를 다는 리해할수 없었어도 이 사상이야말로 자신이 일생동안 의거하고 믿어야 할 정신적기둥이 될것이라는 예감이 은연중에 온몸으로 스며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인간이 모든것을 결정한다면 인구대국인 자기 조국 인디아가 무엇인들 못해내겠는가.

복잡할것이 없었다. 진리는 명백한것이다.

그렇다, 인디아가 나아갈 길은 이 길이다!

이렇게 생각한 고빈드는 주체사상에 대한 도서들을 탐독하기 시작하였다. 학습과 탐구, 토론과 론쟁을 통하여 주체사상의 심오한 원리를 점차 체득하게 되고 그에 공감하면서 그는 자신이 남들보다 돋보이게까지 생각되는것이였다.

그는 어느날 비슈와나스를 찾아와 자기도 주체사상연구학회에 들어와 시대의 사상을 연구보급하는 길에 나설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너무 기뻐 고빈드의 손을 콱 잡으며 비슈와나스는 말하였다.

《값있게 살아봐.》

비슈와나스의 말은 짤막했으나 의미는 깊었다.

정말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값있게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렇게 주체사상연구의 길에 들어섰다. 주체사상의 원리를 실천적으로 감수하였기에 그는 학회사업에 누구보다도 발벗고 나섰으며 핵심인물로 활동하고있는것이였다. 그는 이번 국제토론회준비에서도 한몫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동료들이 늘어갈수록 비슈와나스는 성수가 났고 외로움을 몰랐다. 그것이 다름아닌 주체사상의 생활력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지금도 그들이 먼저 나와 토론회장을 다시한번 살피며 돌아가고있는것이였다.

주석단정면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와 인디아대통령의 초상화가 모셔져있었다.

토론회에서는 먼저 요시모도 마사끼(주체사상국제연구소 연구원, 일본 호세이대학 교수)가 토론회앞으로 보내여온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장 야스이 가오루의 축사를 전달하였다.

비슈와나스의 귀전에는 야스이 가오루의 목소리가 왕왕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만약에 그가 불치의 병에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국제연구소가 창립되여 처음으로 진행되는 이 국제토론회장에 날개돋쳐 달려왔으리라.

하지만 그는 지금 1년나마 침상에 누워있다. 최악의 상태에서도 높은 정신력으로 주체사상연구보급활동에 전심하고있는 야스이 가오루의 모습은 신봉자들의 귀감이였다.

토론회의 개막연설은 인디아공화국 부수상 쟈그지반 람이 하였다.

원래는 인디아수상 모자르지 데싸이가 토론회에 참가하게 되여있었다. 그는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를 인디아에서 진행하는데 대하여 전적인 동의를 하였고 자기가 이 회의에 참가하겠다는것까지 약속하였었는데 그 전날에 방글라데슈를 방문하러 떠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제기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수상은 외국방문의 길을 떠나면서 부수상에게 이 국제토론회에 참가하여 토론회앞으로 보내는 자기의 축하문을 전달할것을 위임하였던것이다.

기본보고는 말리공화국 공보 및 체신상이며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인 야야 바가요꼬가 하였다.

《주체사상은 자주위업을 승리에로 이끄는 불멸의 기치》라는 제목으로 된 그 보고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의 본질과 기본내용, 그의 보편성과 불멸의 생활력을 과학리론적으로 론증한것으로 하여 참가자들의 커다란 감명을 불러일으켰다.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사무국 차장인 오가미 겡이찌가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사무국의 보고를 한데 이어 많은 토론들이 있었다.

비슈와나스는 무케르지의 토론에서 진실한 심장의 고백을 들었다. 파트나토론회이후 그가 주체사상의 원리를 깊이 체득하기 위하여 남모르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여왔는가 하는것은 그의 토론이 다 말해주고있었다.

오늘은 지식을 얻는 날이라는 소박한 말로 시작을 뗀 그의 토론은 대번에 청중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 말에는 주체사상에 접함으로써 비로소 참된 현대철학사상을 알게 되였다는 그의 속대사가 담겨져있었다. 그것은 주체사상을 알게 되고 그 사상을 창시하신 김일성주석의 위대성에 대하여 알게 됨으로써 자기의 번민을 씻어버리고 참된 교육자, 참된 학자로서 새 출발을 할수 있게 되였다는 의미심장한 말이였다. 과학적이며 론리정연한 그의 토론은 참가자들을 크게 공감시켰다.

비슈와나스도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청중들의 요란한 박수를 받으면서 무케르지는 자기의 판단과 행동이 옳았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지게 되는것이였다. 그 판단과 행동은 현시대의 기본추세를 이루는 위대한 사상이 주체사상이라고 보고 깊이 연구한것이였다.

이때 비슈와나스의 머리속에는 무심중 생각이 떠오르고있었다. 그 생각은 철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저명한 학자, 교육자를 축으로 하여 지역을 대표하는 주체사상연구소를 내와야 한다는 생각이였다. 지역에 그만한 인물이 없을듯싶었다.

역시 비슈와나스는 앞날의 설계자였으며 조직자였다.

다음날에도 토론회는 계속되였다. 그날에 이채를 띤것은 인디아학생소년들의 축하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시고 민족옷차림과 학생복차림을 한 200여명의 학생소년축하단이 민족악기로 환영곡을 울리며 토론회장에 들어섰을 때 장내는 미래의 주체사상신봉자들에게 요란한 박수를 보내였다.

학생소년축하단은 북과 나팔, 피리로 환영곡과 민족음악을 연주하였으며 5명의 학생소년이 연단에 올라 축하문을 랑독하였다. 이 학생소년축하단을 준비시키느라고 고빈드가 많은 걸음을 하였다.

이날저녁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경축하는 연회가 토론회준비위원회와 뉴델리시민리사회,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인디아조선친선협회의 공동명의로 아쑈까호텔에서 진행되였다.

연회에는 인디아대법원 원장과 전외무상이였던 챠반이 참가함으로써 토론회의 지위가 더 높아졌다.

토론회 3일에는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는 편지와 결의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였다.

인디아대통령 넬람 산지바 레디가 이날 자기의 저택에서 차를 마시는 모임에 토론회에 참가한 대표단들을 초청한것으로 하여 토론회의 의의는 자못 크게 부각되였다.

인디아에서의 주체사상에 관한 첫 국제토론회는 세계적판도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리해와 연구를 더욱 심화시키고 매개 나라 인민들이 주체사상을 자기 나라 실정에 맞게 성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사업에서 새로운 리정표로 된 의의깊은 국제적회합이였다.

뉴델리의 마우리아쉐라톤호텔의 유래가 이 토론회에 기원을 두고있다는것만을 보아도 당시 그 토론회가 얼마나 인기가 큰 국제적회합이였는가를 알수 있다.

그때 그 호텔은 그저 마우리아호텔이라고 불렀다.

그 어떤 일류급호텔이 개업을 시작하였다고 해도 세계적으로 쉐라톤이라는 이름은 3년이상 운영하면서 호평을 받을 때에 붙이는것으로 되여있다. 바로 3년이 되는 그 해에 마우리아호텔이 5대륙의 각국에서 온 수많은 주체사상신봉자들을 받은것으로 하여 일약 인기를 획득하였으며 쉐라톤호텔로 간판을 걸수 있었던것이다.

일류급호텔의 징표의 하나는 봉사원이 일체 눈에 보이지 않는것이다. 다시말하여 손님이 찾기 전에는 앞에 나타나지 않는것이다. 그 마우리아호텔이 그 정도로 갖추어져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어쨌든 각국의 그 손님들로 하여 쉐라톤의 간판을 가진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만큼 1979년의 인디아주체사상국제토론회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큰 대회였다.

연혁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5대륙이 다 참가한 주체사상국제토론회로서는 뉴델리토론회가 3번째라고 할수 있었다. 물론 1971년에 레바논의 수도 바이루트에서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가 처음으로 있은 후 여러곳에서 국제토론회들이 진행되여왔지만 그 모든 토론회는 어디까지나 지역적인 토론회들이였다.

5대륙이 다 참가한 전세계적인 성격을 띠는 첫 주체사상국제토론회는 1976년의 안따나나리부(마다가스까르)토론회이고 그 다음은 1977년의 평양토론회이며 세번째가 1979년의 뉴델리(인디아)토론회인것이다.

또한 이 뉴델리토론회는 주체사상국제연구소가 조직되여 처음으로 되는 국제토론회인것으로 하여 자못 의의가 큰 토론회였다.

대도시의 여러 신문들은 꼬리를 물고 이번 토론회소식을 싣고있었다. 인디아의 모든 통신, 보도들도 일제히 토론회소식을 알리고있었다. 토론회는 끝났지만 거리거리의 장식물들과 기발들은 그대로 있으며 토론회의 의의를 계속 강조해주고있는듯싶었다.

인디아에서 이처럼 많은 나라들이 참가한 국제회의는 일찌기 없었다. 혹 있었다면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있었고 그 다음은 없었다.

많은 벗들이 비슈와나스를 찾아와 수고하였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이번 토론회를 통하여 비슈와나스는 세계의 많은 주체의 벗들과 더욱 친숙하게 되였고 활동의 폭도 더욱 넓어졌다.

누구보다 기뻐한것은 오가미 겡이찌였다.

거듭거듭 축하의 인사를 하는 오가미에게 비슈와나스는 말하였다.

《인사는 당신이 받아야 합니다. 나는 지난해 창립된 주체사상국제연구소의 사업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고있는 당신을 축하합니다.

나는 국제연구소가 하나의 사상에 의해 굳게 단결되여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국제기구로 될것을 념원하고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지역과 나라들마다에 주체사상연구조직들을 확대해나가는데 모든 힘을 다 바쳐 나갑시다.》

비슈와나스가 그처럼 기대하고있는 오가미 겡이찌는 어떤 인물인가.

당시 그의 나이는 32살이였다.

국제연구소 초창기부터 사무국사업을 보고있는 그는 일찌기 20대의 초엽에 《김일성전》을 읽고 위인을 알아보았고 조선의 현실을 통하여 주체사상의 과학성과 진리성을 깨닫고 그 연구보급을 위한 길에 뛰여든 시대의 선각자였다.

1973년 조선을 처음 방문하여 커다란 충격을 받은 그는 귀국하는 즉시 군마대학을 중퇴하고 직업적인 주체사상신봉자가 되였던것이다.

당시 의학부 졸업반이였던 그가 살아가기 좋은 의사직업을 버리고 자기 조국의 적대국에서 나온 사상을 신봉하는 곡절많은 투쟁의 길에 나선다는것은 누구나 내릴수 있는 용단이 아니였다.

참으로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시대의 사상을 알아보고 그 사상으로 예측한 자기 조국의 앞날을 내다본 일본인민의 총명한 아들이였으며 세계의 평화를 지향한 국제주의자였다.

그는 벌써 1975년에 위대한 수령님의 첫 접견을 받고 그이의 품에서 주체의 새 생명을 받아안은 주체사상신봉자들의 1세에 당당히 속하는 인물이였다.

그는 1976년의 안따나나리부국제토론회 참가자였다.

20대부터 일본청년주체사상연구회 련락협의회 책임자로서 맹활약을 해왔으며 30대초엽부터 국제연구소 사무국사업을 빈틈없이 해나가고있는 그의 이름은 신봉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자기보다 나이가 퍽 아래인 그를 적극 내세웠다. 이런 젊은이들이 많아야 자주의 래일이 더 밝게 빛나는것이 아니겠는가.

오가미 겡이찌는 그대로 비슈와나스에게 호감이 갔다. 세계적범위에서 사회적영향력을 행사하고있는 비슈와나스와 같은 거물이 주체의 한길에 함께 서있다는것은 모두에게 커다란 힘으로 되지 않을수 없었다.

또한 그에게는 젊은이들도 따를수 없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신념, 배짱이 있었다.

그것으로 하여 주체사상연구보급을 위한 길에서 큰 열매들을 따내고있는 비슈와나스의 강의한 노력에는 모두가 감동되였다.

아브둘 말라크도 비슈와나스에게 축하의 인사를 했다.

그는 1977년 평양토론회에 참가한 이후 또다시 자진하여 조선을 방문하였으며 주체사상을 해설하는 글들을 많이 써내고있었다.

언제나 말없이 꾸준히 주체사상을 연구하면서 그것을 국내외에 선전하기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고있는 그의 진실한 마음은 날이 갈수록 동료들의 감동을 자아내고있었다.

호쎄 프란시쓰꼬 아길라르 불가렐리도 뉴델리에서의 첫 주체사상국제토론회를 성과적으로 보장하는데 결정적역할을 한 비슈와나스를 진정으로 축하해주는것이였다.

그는 멀리 대륙을 횡단하여온 아메리카대륙의 견결한 주체사상신봉자였다.

그로 말하면 한때 꼬스따리까의 사회당총비서로서 대통령립후보로 출마한바도 있는 사람이였다.

그때 꼬스따리까기자동맹 위원장직도 겸하고있던 그는 1969년 9월 평양에서 진행된 반미세계기자대회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고 그는 주체의 인간으로 새롭게 탄생하여 새 출발을 하였다.

그는 우선 제국주의자들과 끝까지 싸우자면 자기가 위원장으로 있는 사회당을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당으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오래동안 자주성이 없이 큰 나라만 쳐다보았던 당이다보니 일조일석에 방향전환을 할수 없었다. 게다가 사회당을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당으로 만들려는것을 눈치챈 미제와 국내반동들은 당안에 암해분자들을 들이밀어 온갖 리간파괴책동을 다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헌옷을 뜯어 뒤집기보다 새 천으로 새옷을 만드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로써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새 당을 창건하기 위하여 사회당위원장직을 서슴없이 사임하고말았다.

대통령후보로까지 출마하면서 자신의 명예를 걸고 가꾸어온 당의 지반을 버린다는것은 사실 가슴아픈 일이였으나 그는 그 모든것을 놓고 주체의 새길을 걸어갔다.

아길라르는 주체사상을 지도적지침으로 하는 새 당을 창건하는 사업과 지역적인 주체사상연구조직을 내오기 위한 사업을 동시에 밀고나갔다. 그리하여 그는 그 전해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되는 지역연구소인 라틴아메리카주체사상연구소를 창립하고 그 집행리사장으로 선거되여 맹활약을 하고있었다. 그는 주체사상국제연구소창립대회에 참가하여 《모든 나라 사람들이 주체사상을 열심히 배우고있으며 주체사상에서 자기들의 투쟁의 앞길을 찾고있다.》고 격조높이 웨쳤으며 이번 토론회에서도 훌륭한 연설을 하였다.

《아길라르선생, 감사합니다. 우리도 아시아지역 연구소를 꼭 창립하겠습니다. 주체의 한길에서 우리 함께 손잡고 나갑시다.》

비슈와나스는 그의 축하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고마왔다. 주체의 벗들이 고마왔다. 서로서로 믿어주고 떠밀어주며 함께 한길을 가는 세계의 벗들이 있음으로 하여 생활은 몇갑절 의의있게 흘러가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은 세계적인 국제토론회를 자기 조국땅에서 성과적으로 치르었다는 그 환희의 감정에서 나오는것만이 아니였다. 그 눈물은 자기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성인중의 성인으로 모신 주체의 태양 김일성주석의 제자로서 스승께 올릴 보고를 마련한 기쁨의 샘이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성과적으로 진행한 인디아국제토론회에 대하여 삼가 보고를 드리였다.

이렇게 주체의 조국에 드리는 그의 마음속의 꽃목걸이는 해마다 엮어졌다.

그 꽃목걸이를 마음속에 안고 그해 8월말 그는 조선방문의 길에 올랐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31돐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비슈와나스의 몸은 좀 편치않은 상태였다. 육체에는 아랑곳없이 돌진하는 그 성미를 맞추느라 온몸이 지쳤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조선에는 꼭 가야 했다. 그의 결심은 누구도 막을수 없는것이였다.

이리하여 그는 싼또쉬 꾸마리의 보호를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던것이다. 그의 사색은 한시도 중단을 몰랐으며 걸음은 앞으로만 나갔다.

오는 도중 그는 벌가리아에서 종시 육체를 견지하지 못하고 앓아눕게 되였다.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졌던것이다.

벌가리아의 친구들은 조선방문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쏘피아에서 평양보다는 뉴델리가 훨씬 가까왔던것이다.

싼또쉬 꾸마리도 망설이게 되였다. 남편의 몸상태로 보아 평양까지 가는 길을 담보하기 힘들었던것이다.

하지만 비슈와나스는 돌아설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주체의 조국으로, 주체의 태양의 품으로 기어이 가야 했다. 그것이 자기의 생명의 길임을 그는 온몸으로 느끼고있었다. 그것은 그의 확고한 의지였다. 싼또쉬 꾸마리를 바라보는 비슈와나스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가자, 안해여, 평양으로!

그대는 누구보다 잘 알고있지 않는가. 한번 떠난 길을 중도에서 멈춰서도, 돌아서도 안된다는것을!

자 어서, 지체말고 가던길 앞으로!

싼또쉬 꾸마리는 불타는 그 눈빛에서 남편을 돌려세울수 없음을 알았다. 녀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그 눈빛, 몸짓에서 누구보다 그의 속마음을 잘 알고있는것이였다.

남편의 확고한 그 신념, 강의한 그 의지가 싼또쉬 꾸마리의 가슴속에도 소리없이 흘러들었다.

그는 쏘피아주재 조선대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와주세요. 우린 꼭 평양으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여 비슈와나스의 긴급치료대책이 취해지면서 그들부부는 모스크바를 거쳐 평양으로 가는 항로에 오르게 되였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그들부부는 쏘련주재 조선대사의 마중을 받으며 조선대사관으로 들어갔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조선에서는 의사와 간호원을 태운 비행기가 날고있었다.

실태를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랑의 비행기를 띄워주시였던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조선대사관 숙소에서 유능한 조선의사들의 구급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열흘간.

드디여 비슈와나스의 병은 호전되여갔다.

이때의 그들부부의 심정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김일성주석께서 저같이 평범한 사람을 위해 사랑의 비행기를 띄워주시고 죽었던 생명을 구원해주시였으니 그분이시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성인중의 성인이신가 하는것을 그때에 나는 심장으로 체험하였습니다.》

오늘날 비슈와나스가 우리에게 하는 말이다.

그때 쏘련주재 조선대사관에서 치료를 받는 사이 9.9절은 지나가고말았다. 하지만 비슈와나스의 가슴속에는 이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사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습이 더 뚜렷하고 더 숭엄하게 안겨오는것이였다.

조선의 위대한 현실은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이 낳은 결실이였다.

비슈와나스부부는 조선의사들과 함께 평양으로 왔다.

9월의 명절은 지나갔지만 평양의 거리는 여전히 명절일색으로 단장되여있었으며 사람들은 활기에 넘쳐있었다.

9월 15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친히 비슈와나스부부를 또다시 만나주시였다.

몸소 넓은 홀에 나오시여 이들을 뜨겁게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당신들이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우리 나라를 이렇게 찾아준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순간 비슈와나스부부의 가슴속에는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이루 형언할수 없는 감격과 흥분의 파도가 와―와― 흘러드는것이였다.

《감사합니다. 주석각하는 전세계인민들의 밝은 태양이십니다. 저희들은 주석각하께서 부디 건강하실것을 삼가 축원합니다.》

비슈와나스부부는 솟구치는 심정 그대로의 인사를 삼가 드리였다.

이들의 인사를 받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또다시 안겨주시였다.

담화실에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들에게 친히 자리를 권하시였다.

비슈와나스는 황송함을 금치 못해하면서 일어선채 말씀올렸다.

《존경하는 주석각하! 저희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31돐을 귀국에 와서 형제인 조선동지들과 함께 쇨것을 열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여 약속한 날자에 도착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건강은 주석각하께서 돌려주신 커다란 은정속에서 회복되였습니다. 주석각하께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슈와나스에게 거듭 앉으라고 하시였다.

《고맙습니다.》

그들이 자리에 앉는것을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당신들이 우리 나라에 오는데 내가 당신들을 돌봐주는것은 의무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계속하시였다.

《나는 당신이 우리 나라에 오는 길에 병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걱정하였습니다. 다행히도 혈압이 내려가고 건강이 회복되고있는 당신을 만나게 되여 매우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이 좋은 계절에 우리 나라에 온것만큼 푹 쉬면서 충분히 치료도 받고갈것을 권고합니다.》

《저는 지금 주석각하의 뜨거운 배려와 사랑속에서 잘 지내고있습니다. 귀국의 의사들도 저를 잘 치료하여주고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오래동안 치료를 받으십시오.

지금은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은 계절입니다. 지금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때입니다. 병을 치료하기에는 제일 좋은 계절입니다. 병치료를 잘하십시오.

나는 형제로서, 동지로서 당신에게 이것을 권고합니다. 이것은 결코 외교적인 인사말이 아닙니다.》

그이의 그 음성에는 그 어떤 가식도 꾸밈도 없었으며 오직 진실함과 뜨거움만이 한껏 어려있었다.

《나는 당신을 여러번 만났고 담화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함께 싸우는 우리의 전우로 여기고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건강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치료를 잘 받고가십시오.》

《주석각하, 감사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열정적이며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뉴델리에서 대성황리에 진행된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 계속 말씀하시였다.

《나는 인디아에서 진행된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는 가보지는 못하였지만 우리 일군들이 찍어온 기록영화를 보고 토론회가 대성황리에 진행되였다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인디아에서 진행된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에는 인디아정부의 고위인물들도 참가하였습니다.

결과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하여 다시한번 당신에게 사의를 표합니다.》

비슈와나스의 감동은 끝이 없었다. 위대한 스승의 그 믿음이면 이 세상에 더 바랄것이 없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전사의 소행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며 평가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며 그는 삼가 말씀을 올리였다.

《감사합니다.

물론 주석각하께서 인디아에서 열렸던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에 친히 참석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주석각하를 한자리에 모신 심정으로 그 토론회를 성과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주석각하는 언제나 저희들의 마음속에 계시기때문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당신은 이번에 매우 큰 사업을 하였습니다.…

지금 새로 독립한 나라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사회주의나라나 자본주의나라들도 다 자주성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나는 자주성을 주장하는 투사인 당신의 건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석각하, 감사합니다.》

비슈와나스는 자기를 자주성을 주장하는 투사로 불러주시는 그 믿음에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계속하시여 인디아에 있는 당신의 가정에 근심되는 일이 없으면 우리 나라에서 오래동안 휴식하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한동안 눅잦힌 비슈와나스는 마음을 다잡으며 진정을 토로하였다.

《주석각하, 감사합니다.

저는 언제나 주석각하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의 정을 품고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귀국에 와서 주석각하를 다문 몇분만이라도 만나뵙고 주석각하께서 주시는 국제문제에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으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국제적인 정객은 아닙니다.…

저희들은 국제적인 지지성원밑에 조만간에 조선의 통일이 이룩될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입니다.》

이렇게 대답하시는 김일성동지의 모습은 자신만만한 장군의 모습이시였다. 그 모습을 다시 우러러보는 순간 비슈와나스의 가슴속에는 그처럼 위풍당당한 세계적인 수령의 바쁘신 시간을 자기가 너무도 지체시킨다는 송구함이 깃드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초조해지는 마음을 바재이며 이렇게 말씀을 드리였다.

《주석각하의 귀중한 시간을 제가 벌써 많이 허비하였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주석각하께서 허락하신다면 5분동안만 더 말씀올리려고 합니다.》

초조한 그의 마음은 긴장한 그의 얼굴빛에 여실히 나타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이러한 마음을 풀어주시려는듯 웃으시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말씀하십시오, 나는 오늘 당신을 위하여 시간을 많이 내자고 합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듯 비슈와나스는 안도의 숨을 소리없이 내쉬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는 학생이 선생님앞에서 총화하는 심정으로 위대한 스승에게 그 기간에 자기가 한 일들에 대해 보고하였다. 인디아고위인사들과 한 사업에 대하여, 영국에 가서 영국조선친선협회를 조직한데 대하여, 서부도이췰란드의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주체사상연구학회를 조직한데 대하여, 네팔에 가서 국왕을 만나 그 나라에서 주체사상토론회를 진행할데 대한 합의를 본데 대하여, 필리핀대통령부부의 초청을 받고 마닐라에 가서 15일간 머물러있으면서 그 나라 정부인사들과 사업한데 대하여, 쏘련사람들에게도 주체사상에 대한 선전을 하고있는데 대하여…

또한 그는 지금 현재 자기가 하고있는 일들과 앞으로 할 사업에 대해 계획한것을 일일이 보고하였다.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를 내오기 위하여 노력하고있는데 대해서와 지역연구소창립은 아시아지역 토론회를 크게 열고 거기에서 선포하겠다는것, 지역토론회소집의 발기자와 지역연구소 성원들은 누구누구로 하겠다는것 등…

그는 위대한 스승앞에서 자기의 결의를 다지였다.

《저는 지금까지 주석각하의 사상을 전세계에 선전하는 사업에 모든 정력을 다 바치고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주되는 사업이며 저의 일생의 목적입니다.

저는 생애의 나머지기간을 변함없이 주석각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이 전세계에서 승리를 이룩하도록 하는데 바치겠다는것을 말씀올립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이 결의에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저는 앞으로 동남아시아나라들을 방문하여 이 지역의 정계, 사회계인사들을 만나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를 내올데 대한 문제를 토론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저의 념원입니다.

뷸레찐이나 책같은것을 발간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것은 직접 인민들속에 들어가 그들과 접촉하면서 주체사상을 선전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하여 그는 주체사상선전에서 제기되는 문제들과 최근 국제정치정세에서 알고싶던 일련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문의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질문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즉석에서 명철한 대답을 주시였다.

《…주체사상을 배우는 목적이 혁명과 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자기 식대로 처리하여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게 풀어나가자는데 있다는 인식을 바로가지도록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매개 나라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지 말고 그들이 스스로 자주성을 견지하여 거기에서 출로를 찾도록 하여야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이 서방화되여가고있는 실태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보고계시였으며 그 나라들의 앞날에 대해서도 그때에 벌써 가늠하고계시였다.

천리혜안의 통찰력으로 온 세계를 굽어보시는 위대한 수령, 위대한 스승의 명백한 말씀에서 비슈와나스는 자기가 나아가야 할 앞길을 새롭게 받아안은듯싶었다.

동유럽의 많은 사회주의나라들과 거래하고있는 그는 이 나라들에서의 변화를 감촉하고있었던것이다.

《저도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이 그릇된 길로, 파멸의 길로 줄달음쳐나가고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인디아에서 사회주의나라사람들을 자주 만나고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조선의 사회주의에 대하여서와 김일성주석각하를 만나뵙던 일들을 말하여주군 합니다. …

저는 주석각하께서 매우 바쁘시다는것을 잊어버렸던것 같습니다.

주석각하의 귀중한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였습니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것 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나와 같이 웃으시며 여유작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당신은 아주 훌륭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당신을 위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였습니다. 그러면 점심식사나 함께 합시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더 나눕시다.》

너무도 황송함을 금할길이 없어 거듭 주석각하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데 대하여 량해하여주시기 바란다고 말씀올리는 비슈와나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시며 이들부부를 오찬회장으로 이끄시였다.

《연설은 하지 맙시다.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 이 잔을 듭시다.

오늘은 당신의 생일입니다.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여 상에 똘뜨도 만들어놓았습니다.》

순간 비슈와나스는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놀랐다.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이날에 찾아주신것은 자기의 생일이였기때문인것이였다. 비슈와나스당자도 조선방문의 분망하고 즐거운 나날속에 자기 생일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참으로 그날은 그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였다. 그것은 자기의 생일이여서가 아니라 김일성주석께서 자기의 생일을 미리 아시고 그날에 찾아주셨기때문이였다.

참으로 고귀한 은정이였다. 그이께서 베푸시는 사랑은 그 깊이를 다 알수 없는것이였고 그이께서 안겨주시는 믿음은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들부부의 손에 축배잔을 들려주시며 생일을 축하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주석각하! 감사합니다.

저는 김일성주석각하의 건강을 축원하여 이 잔을 들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부부와 식사를 함께 해주시며 가정적분위기속에서 마주앉으시였다.

싼또쉬 꾸마리는 더없이 감격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가 채식성이라는것을 아시고 전형적인 남새음식을 마련해주시였기때문이였다.

인디아사람들의 주식은 밥, 쌀가루로 만든 빵과 떡, 밀가루지짐이며 힌두교도들은 주로 남새류를 먹으며 고기는 물론 닭알도 먹지 않는다.

식탁은 이들의 구미에 맞는 음식들로 차려져있었다.

싼또쉬 꾸마리는 그처럼 위대한분이 어쩌면 이렇듯 세심하고 다심하실가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뜻을 같이하는 전우에 대한 스승의 사랑은 육친의 사랑을 초월한 하나의 리념, 하나의 사상으로 흐르는 한없이 크고 고귀한 이 세상의 모든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담화실에서 하시던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지금 일부 사회주의나라 사람들은 돈 몇딸라를 얻기 위하여 인민들의 머리가 썩는것도 생각하지 못하고있습니다. …

우리 나라에 와있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가운데서 일부 사람들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야말로 건전하고 좋은 제도라고 옳게 평가하고있습니다.》

비슈와나스는 모든것이 그대로 리해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생각하고있는바를 그대로 말씀드렸다.

《귀국은 사람들이 좋은것만을 배울수 있는 학교와도 같습니다. 평양에 와있는 인디아대사는 일전에 저를 대사관에 초청한바 있습니다.

대사에게는 학교에 갈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을 조선학교에 보내라고 권고한바 있습니다.

어제 저는 그 인디아대사를 다시 만나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저에게 지금 아들을 조선학교에 보내고있는데 배우는것이 많다, 우선 신발도 언제나 스스로 깨끗이 닦아신는다, 그리고 옷도 단정하게 입을줄 알며 례절도 밝아지고 품행도 아주 좋아졌다고 하면서 매우 만족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조선말도 잘하여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비롯하여 조선노래도 잘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께서도 조선에 와있는 인디아대사의 아들이 지난 5.1절에 다른 나라의 많은 손님들앞에서 우리 노래를 잘 불러서 칭찬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씀하시였다.

비슈와나스는 인디아대사에 대하여 그대로 말씀드렸다.

《귀국에 와있는 인디아대사는 본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여 본국으로 소환되였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있었는데 아들이 조선학교에 다니면서 배우는것이 많고 건전하게 잘 자라기때문에 오히려 본국으로 소환되여갈가봐 걱정하고있는 형편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으시면서 말씀하시였다.

《지금 많은 사회주의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와보고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고있는것 같습니다.》

《지금 그들도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좀 늦었습니다. 그들은 진창속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는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여야 하겠는데 사람들속에서 돈밖에 모르는 개인리기주의를 조장시키고있습니다.…》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현실태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까지 명철하게 꿰뚫어보시며 현정치정세를 일일이 분석하여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견을 받아안으면서 비슈와나스는 지금은 새로운 사상에 기초한 새형의 사회주의를 건설하여야 할 때라는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그이의 솔직성과 신념은 최대의 정신적높이에서 흘러나오는 철학성과 인간성을 다 체현한 성인의 솔직성과 신념인것으로 하여 그이앞에서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다 고개를 숙이게 되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언제나 건강하시여 전세계인민들을 옳바른 길로 이끌어주실것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씀을 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겸허하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시였다.

《나는 무엇보다 조선인민을 위하여 많이 일하려고 합니다.》

비슈와나스부부는 자기 인민에게 무한히 충실한 위대한 수령님의 풍모를 한가슴에 받아안으며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또한 그는 야스이 가오루가 앓고있는데 대하여 걱정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한번 사귄 벗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끝까지 돌보시는 위대한 스승의 품에 안긴 전사들의 삶은 참으로 행복하다는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이날 많은것을 질문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것을 알기 쉽게 해명해주시였다.

시간은 무려 3시간 30분을 넘어서고있었다.

《존경하는 주석각하!

오늘은 저희들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을수 없는 날입니다.

주석각하께서 오늘 이처럼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저와 저의 부인을 접견하여주시고 저의 생일을 축하하여 주신데 대하여 다시한번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저는 주석각하께서 언제나 행복하실것과 건강하실것을 가장 충심으로 축원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들의 인사에 감사를 표시하시면서 뜨겁게 배웅해주시였다.

이날의 감동에 대하여 비슈와나스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날 우리 부부는 꿈을 꾸는것 같았소. 시종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태양과도 같으신 그이의 인품에서 우리는 주체사상의 창시자에게서만 느낄수 있는 인간사랑의 참뜻을 받아안게 되였소. …

진정 김일성주석은 성인중의 대성인이시오.》

그날은 비슈와나스에게 있어서 단순히 생일만이 아니라 하늘의 축복을 받으며 또한번 부활하는 날이였다.

그날 비슈와나스와 싼또쉬 꾸마리는 숙소에서 잠들지 못하였다.

인류의 대성인께서 함께 보내주신 이 하루는 그들이 인생길에서 영원한 활력을 받아안은 또하나의 분기점으로 되는것이였다.

확실히 그이는 인간을 끌어당기는 무한한 견인력을 지니고계시였다.

그 힘이 무엇일가.

그것은 향기였다. 성인만이 내뿜을수 있는 류다른 향기였다. 꽃의 향기에 반하여 벌과 나비들이 모여들듯이 고상한 인간이 지닌 그 향기에 매혹되여 만민이 그이를 따르고 그이의 두리에 뭉치는것이였다.

그이께서 지니신 그 인간향기는 자주성에 기초한 뜨거운 인간애이며 가장 숭고한 인정미였다.

그 인간애, 그 인정미는 만나뵈옵게 되는 첫순간부터 인간의 온 넋을 완전히 매혹시키며 그들을 참인간으로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나게 하는 위인의 향기였다.

비슈와나스는 그이를 처음으로 만나뵈온 그날부터 자기도모르게 무조건적으로 그이를 받들어온것은 바로 그 인간향기에 끌리였기때문이였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것이였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빛을 뿌리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저 하늘의 별처럼 살고싶었다. 주체의 태양이 빛나는 인류의 하늘에 영원히 빛을 뿌리는 하나의 별로 살고싶었다.

오래오래 그 태양을 받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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