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6. 못잊을 총련을 다시 찾아

 

초면보다 구면이 더 반갑다.

잊지 못할 초면의 깊은 인상을 안고 다시 찾아온 구면의 만남이란! 아, 이를데없이 감격스러운것이다.

나리다비행장에 내린 비슈와나스는 그 혼잡속에서도 첫눈에 알아보았다. 웃으며 마주오는 총련국제부의 백한기와 최관익…

그들은 얼싸안았다.

얼마만이냐? 엊그제같은데 흘러간 세월은 벌써 3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나날에 비슈와나스가 벌린 활동은 총련일군들에게도 커다란 고무로 되는것이였다.

공화국에로 안내해준 총련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오는 인디아의 친근한 이 사절을 어찌 반가움으로 맞지 않을수 있으랴. 그것도 그럴것이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부부가 함께 찾아오는 이 친근한 벗을!

그날은 총련 제11차 전체대회가 한창 진행되던 1977년 9월 27일이였다.

그날 저녁 한덕수의장과 리계백부의장이 비슈와나스부부를 만났다. 전체대회가 한창 진행되는 바쁜 속에서도 비슈와나스부부를 우선적으로 만나주는 그들이였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여기로 오는 귀한 손님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총련의 책임간부들이 고마왔다. 그는 그들의 모습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충정을 지닌 전체 재일조선인들의 뜨거운 열기를 다시한번 페부로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한덕수의장은 총련전체대회의 상황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총련의 주체사상화방침을 관철하고 조국통일위업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투쟁하고있는 재일조선인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확실히 총련조직은 생기가 넘쳐나는 공화국의 믿음직한 해외공민단체였다.

다음날 비슈와나스는 총련전체대회에 참가하였다.

대회가 진행되는 도꾜조선문화회관은 명절일색으로 단장되여있었다. 그날은 대회의 마지막날이였다.

연단에 나선 비슈와나스는 자기의 심정 그대로를 토로하였다.

《…나는 3년전 총련을 방문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은 나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떠밀었습니다. 총련을 알게 되고 조선을 알게 된것은 나에게 있어서 인간사회의 참모습, 참세상을 알게 한 극적사변이였습니다.…》

계속하여 비슈와나스는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온 자기의 소감에 대하여, 세계에 비쳐지는 주체사상이 구현된 조선의 모습에 대하여 말하였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일본땅에 살면서도 민족의 넋을 지키며 나라의 통일과 부강번영을 위해 힘차게 투쟁하고있는 총련일군들과 재일조선인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였다.

비슈와나스의 연설은 대회참가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싼또쉬 꾸마리의 가슴은 한없이 설레이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비슈와나스에게 속삭이고있었다.

사랑하는 님이여! 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아시나요? 그건 자기가 의지하고사는 님이 훌륭한 일을 하고있다는 믿음을 간직할 때랍니다.

그렇다. 녀인들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큰 삶의 긍지가 어데 있으랴.

싼또쉬 꾸마리는 남편과 함께 세상을 돌아보며 위대한 사상의 진가를 알게 되고 또 성장하면서 결혼의 년륜, 부부의 년륜을 새겨가는 그것처럼 행복한 인생을 알지 못했다.

싼또쉬 꾸마리는 날이 갈수록 남편을 리해해야 하고 모든 힘을 다해 남편의 사업을 지지해주어야 한다는 자각을 더 깊이 하게 되는것이였다.

그전에는 남편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것이 남편을 돕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남편을 따라, 남편을 도와 시대의 흐름에 합류한것이다.

녀성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그들모두의 공통점은 자기들의 남편이 사회적인물이 되는데서 행복을 느끼고있는것이다. 자기가 아닌 남편이, 바로 다름아닌 자기 자식의 아버지가.

녀성들은 남편이 자기를 아름다움과 선량함으로 이끌수 있는 사람이라는것을 잘 알고있다.

열정적이고 정직한 사람들은 영원히 사랑을 받을수 있는것이다. 나이들며 더욱 깊어지는 사랑과 믿음은 생의 의미를 갑절로 더해주며 인간을 보다 완성시켜주는 삶의 자양분이라고 해야 할런지.

역시 가정의 가장 큰 재부는 순결하고 참된 사랑이였다.

대회에서는 일본정부에 보내는 요청문과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거를 요구하는 결의문, 남조선인민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채택되였다.

전체대회를 계기로 총련은 더한층 활기를 띠는듯싶었다.

비슈와나스부부는 재일본지식인들, 기업인들과 상봉하였으며 그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되였다.

다음날 비슈와나스부부는 조선신보사를 방문하였다.

놀라왔다. 해외공민단체에 이처럼 종합적인 출판기지가 그쯘히 갖추어져있다는것이 놀라왔다.

조선신보사는 조선이 해방된 해인 1945년에 벌써 창립되였다고 한다.

총련이 결성된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온 조선신보사는 일간신문인 《조선신보》를 비롯한 총련의 여러가지 출판보도물을 찍어내고있었다. 또한 여기서는 《조선신보》를 일문판 주간지로, 《인민조선》을 영문판 주간지, 에스빠냐어문판 주간지, 프랑스어문판 주간지로 각각 발행하여 세계 150여개 나라 인민들속에 보급하고있었다.

실로 조선신보사는 주체사상과 공화국의 자주적조국통일방침을 세계 수억만 인민들속에 널리 해설선전하고 조선혁명위업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자, 동정자의 대렬을 늘이는데서 큰 역할을 놀고있었다.

또한 조선신보사는 일본 전국각지에 있는 총련의 지부와 분회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배포체계를 꾸려놓고 독자들속에 출판물을 신속정확히 배포하며 그 리용률을 부단히 높여나가고있었다.

참으로 조선신보사는 해외교포출판보도력사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조선신보사의 곳곳을 안내한 녀기자가 참으로 인상적이였다. 젊은 나이인데도 그는 일본어뿐아니라 영어와 에스빠냐어도 능숙하게 번지고있었다.

그의 이름은 리미순. 나이는 31살.

처녀였다. 보통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그는 목에 항상 특수사진기를 걸고있었다. 그는 만나는 첫 순간에 벌써 락천적인 성격이 알리였다.

어느새 찍었는지 그는 몇장의 사진을 비슈와나스부부에게 내밀었다. 비슈와나스가 전체대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싼또쉬 꾸마리가 박수치는 모습, 그들부부가 총련의 여러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며 웃는 모습…

비슈와나스부부는 생기발랄한 이 녀기자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처녀기자는 눈웃음을 짓고있었다.

조선신보사를 돌아보는 사이 비슈와나스부부는 리미순과 친숙해졌다. 조선신보사에 아니, 총련에 이처럼 젊고 능란한 녀성활동가가 있다는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비슈와나스는 조선대학교, 조선은행을 비롯한 총련의 여러곳과 조선인기업들을 방문하는 전기간 그와 함께 있었다. 결국 그는 수행기자격이 되였다.

리미순은 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총련의 녀성동맹사업과 국제부사업에도 관여한바 있는 견문이 넓은 기자였다.

그의 부모들은 가정에 앞서 총련사업에 모든것을 다 바치고있는 재일조선인 1세였다.

비슈와나스는 재일조선인들이 자신들이 택한 길을 변함없이 대를 이어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 힘의 원천에 대하여 새삼스레 생각하게 되는것이였다.

그들의 마를줄 모르는 그 힘은 자기들에게도 조국이 있으며 민족의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 산다는 한없는 긍지와 자부심에서 오는것이였다. 조국과 운명을 함께 하는 고귀한 삶의 진가를 알고있는 사람들이였기에 그들은 집단에 대한 믿음과 책임감을 항상 간직하고있었으며 개인사정이나 사업에서의 어려움도 참고견디며 한길을 걸어가고있는것이였다. 그런 사람들의 앞에는 희망찬 미래가 약속되여있는것이다.

실로 그것은 장한 모습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인디아를 멀리 떠나 해외에서 사는 자기의 친척들, 자기 조국의 수많은 사람들도 이들처럼 자기의 모국을 위해 살기를 바라마지않았다.

그래서인지 재일조선인들의 활기에 찬 모습은 자기 조국에 무한히 충직한 애국의 상징으로 비슈와나스의 가슴에 새겨져 한생토록 아름답게 추억되였다.

비슈와나스는 일본에 체류하는 기간 야스이 가오루와 오가미 겡이찌도 만나 우정을 두터이 하였다.

그의 머리속에 일본하면 총련의 모습이 떠올랐고 또한 일본의 주체사상신봉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매 인간들에게 있어서 그 어떤 지명이나 나라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거기에 살고있는 벗들의 표상으로 떠오르는것이다.

먼곳의 벗을 가지면 세상이 넓게 여겨진다. 벗은 위도이기도 하고 경도이기도 하였다.

비슈와나스의 주위에 세계의 벗들은 이렇게 늘어갔다.

주체! 그것은 단결의 뉴대였다.

그 뉴대로 맺어진 우정은 국경에 구애됨이 없이 가장 공고하고 영원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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