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4 회)
4. 보답의 길 보답해야 했다. 위대한 스승의 그 믿음에 보답해야 했다. 그것이 인간이다. 비슈와나스의 심장은 걸음마다 속삭였다. 한 일없는 이 소인을 벗으로, 전우로 불러주신 위대한 인간의 그 믿음에 내 한생을 다 바쳐 보답하리라! 인류의 대성인의 축복을 받은 크나큰 환희와 감격을 안고 그는 뛰고 또 뛰였다. 우선 그는 주체사상을 연구보급하는 국가적인 하나의 큰 조직체를 내올 구상을 하고있었다. 마주앉아 토론을 하자 해도 그렇고 출판물을 배포하자 해도 그렇고 모든것은 치밀하게 째인 조직을 통해야 신속성을 보장하고 범위를 부단히 넓혀나갈수 있는것이다. 주체사상연구보급사업을 활력있고 영구적으로 내밀자면 명백히 강위력한 조직이 있어야 했다. 숲이 있어야 새들이 찾아들수 있고 조직이 있어야 사람들을 결속할수 있는것이다. 별들은 태양의 빛을 받아야 빛날수 있고 신봉자들은 주체의 태양의 빛을 받아야 자주화된 새 세상을 건설하는 빛나는 길을 걸어갈수 있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초기 광고, 출판업에 나설 때에도 《인터라즈》를 내왔었다. 하지만 지금 내오려고 하는 이 조직은 그런것과는 전혀 다른것이였다. 자주화된 세계를 지향하는 공통의 리념을 안고 정신적뉴대로 맺은 지성인들의 집단을 그는 꾸리려고 하는것이였다. 이 집단에는 인디아의 명망높은 학자들이 다 망라되여야 했다. 또한 나라의 권위있는 정치가들과 사회활동가들이 응당 망라되여야 했다.
위대한 사상의 연구조직성원들은 반드시 그렇게 구성되여야 한다고 철두철미 그는 생각하였다. 그다음 주들과 중요도시들 그리고 여러 부문들에 산하연구조직들을 내오고 광범한 대중을 계몽시켜 여기에 다 망라시켜야 하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주체사상연구회》를 모체로 하여 이 조직을 빠른 시일에 내오려고 바삐 뛰고 또 뛰였다. 1977년 5월 중순. 드디여 인디아에서 국가적성격을 띠는 《주체사상연구학회》가 결성되게 되였다. 새로운 시대사상의 전국적인 연구조직을 공식적으로 결성하는 판쟙이는 명절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판쟙이는 륜환선거리 라쥐빠뜨나가르지역에 자리잡고있는 큰 회의장이였다. 그 회의장은 판쟙이종족학회에 속해있었다. 비슈와나스의 가문도 판쟙이종족이였으므로 그 회의장을 리용하였던것이다. 정부의 각료들과 대학의 이름있는 학자들, 여러주에서 선출된 대표들로 회의장은 차있었다. 비슈와나스는 학회위원장으로 에취. 디. 말비아를 추천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사전에 그와 긴밀한 련계를 가졌고 학회의 주요인물선발에서도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들을 그를 통하여 추천하게 하였던것이다. 역시 비슈와나스는 할줄 알았다. 그는 조직사업의 능수였다. 말비아는 학회성원들을 발표하였다. 학회는 명망높은 인사들과 대학의 권위있는 교수들, 저명한 사회활동가들로 구성되였다. 국회의장도 있었고 인디아공산당 총비서도 있었다. 또한 이전 상들도 여러명 있었다. 현직의 국회의원들만 하여도 20여명이였고 알려진 과학자, 교육자들이 수십명이였다. 비슈와나스가 이 학회의 서기장으로 선출되였으며 학회의 사명과 활동준칙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였다. 학회는 주체사상을 전인디아땅에 연구보급할 사명을 지니고있었다. 학회는 해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이신 김일성동지의 탄생일을 맞으며 주체사상전국토론회를 정례화하기로 하였다. 많은 도서들이 학회성원들에게 배포되였다. 이날을 위해 비슈와나스는 이미 주체사상과 조선을 소개한 도서들을 수백부 마련해놓았던것이다. 역시 모든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리용할줄 아는 그였다. 《주체사상연구학회》의 탄생을 기념하여 비슈와나스는 연회를 차렸다. 참으로 이날은 아깝지 않게 차릴만한 날이였다. 이날에 비슈와나스의 가슴을 그렇게도 설레이게 하는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령토에서나 인구에서나 대국에 속하는 인디아를 대표하는 주체사상연구조직의 공식적인 결성은 미구에 대륙과 세계적인 범위에서 주체사상연구보급을 확산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그 중추를 마련한것으로 된다는 긍지와 자부심이였다. 그의 구상은 멀리 앞을 내다보고있었다. 주체사상을 연구보급하는 길에 또 한걸음 크게 내디디였다는 그의 자부심은 참으로 큰것이였다. 이 조직은 곧 정부에 등록되였다. 원체 인디아정부에서는 그 어떤 조직도 쉽게 등록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비슈와나스는 그 모든것을 결심품고 해나갔다. 그는 시작부터 정부의 승인과 지지하에 합법적으로 위대한 사상을 온 나라, 온 세계에 확산시킬 잡도리였다. 그다음 그는 수상을 만났다. 주체사상에 대해 열렬히 이야기하는 비슈와나스에게 인디라 간디는 《나는 주체사상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수상의 지지를 받은 비슈와나스는 학회의 사업을 나라의 사업으로 간주하면서 각료들부터 이 사업에 인입되도록 이모저모로 작전을 펴며 뛰여다녔다. 그가 처음으로 학회의 지부를 내온 곳은 인디아의 북부 우타르주에 있는 도시 알라하바드였다. 강가강과 쟈무나강이 합쳐지는 부근에 자리잡고있는 그 도시는 인디아에서 가장 큰 교육중심지의 하나로서 네루와 간디가 출생한 곳이였다. 알라하바드는 인디아북부에서 가장 오랜 도시의 하나이며 힌두교성지의 하나로서 일찍부터 이곳은 인디아인민의 력사와 생활의 거점으로 되여왔다. 해마다 한번씩 있는 욕불절(부처님이 목욕하는 날)에는 평균 25만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참배하며 12년에 한번씩 있는 큰 명절이면 100여만명의 힌두교신자들이 또한 여기서 참배하고있었다. 알라하바드는 뉴델리와 콜카타를 련결하는 철길, 자동차길의 요지였다. 바로 이런 곳에 우선적으로 주체사상연구조직망을 확대해감으로 써 비슈와나스는 보다 광범한 사람들을 여기에 인입하려고 했던것이다. 주체사상연구학회는 이름만 있는 조직이 아니라 실지로 살아움직이는 강력한 조직이라는것을 그는 온 세상에 보여주고싶었다.
그는 밤을 패며 일하였다. 바로 이런 때 김일성동지께서 그들부부에게 보내주신 선물이 조선대사관을 통하여 그에게 전달되였다. 뜻밖에 가장 고귀한 선물을 받아안은 비슈와나스와 싼또쉬 꾸마리는 꿈인듯 어리둥절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그들부부에게 보내주신 선물은 그이의 존함이 새겨진 금시계였다. 비슈와나스부부는 그 시계를 보고 또 보며 끓어오르는 감사의 정에 휩싸였다. 착칵착칵… 초침은 돌고있었다. 지구의 자전만이 아닌 시대의 지도사상을 따르는 참된 삶의 영원한 시간을 가리키며 초침은 돌고있었다. 아, 위대한 스승이시여! 당신께서 안겨주신 이 시간에 내 살리라, 영원히 이 시계의 초침에 맞추리라, 변심없을 이 심장의 박동을! 비슈와나스부부는 감격했고 행복했다. 인류의 대성인께서 멀리 떨어진 인디아의 한 전사의 가정을 잊지 않으시고 믿음을 주시며 지켜보고계신다는 그 한생각만으로도 그들은 이 세상에 태여난 삶의 가치를 가슴뿌듯이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쉬지 않고 뭄바이, 콜카타, 마드라스에로 걸음을 이어갔다. 인디아의 주요도시들부터 시작하여 그는 전국에 주체사상연구조직망을 부단히 늘여갔다. 싼또쉬 꾸마리도 이에 적극 합세했다. 그는 찾아오는 수많은 신봉자들을 가족처럼 대했으며 그들의 편리를 도모하는 일이라면 말없이 움직이군 하였다. 조용히 《쉬바신》을 우러러 가정의 화목과 길함을 빌던 그가 이제는 남편이 가는 길에 따라서며 주체의 밝은 빛이 빛나는 인류의 앞날을 기원하는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스승의 품에서 새롭게 태여나 보답의 길을 걷는 인간들의 정신세계는 나날이 아름다와지고있었다. 그런 인간들의 걸음걸음에 떠받들리여 처음에 개별적인 선각자들에 의하여 진행되던 주체사상연구보급사업은 부문적인 연구소조들을 거쳐 1970년대에 와서는 이렇듯 전국적인 조직들로 보다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지역 및 국제토론회들이 막을 열기 시작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