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2. 태양은 빛난다

 

비슈와나스는 시를 썼다.

총련에서 충격적으로 받아안았던 시의 착상은 조선에서 무르익었으며 지금 그의 서재에서 분출하는것이였다.

그의 마음속의 두루미는 오늘도 태양이 빛나는 하늘아래서 한껏 나래를 휘저으며 아름다운 노래를 그냥 부르고있는것이였다.

 

고요한 숲속에 안개흐르고

잠을 깨는 온갖 새들 지저귀는데

푸른 들판에 즐거이 풀을 뜯는 짐승들

피여나는 천만송이 꽃들

태양의 빛발을 우러르네

 

태양이 솟아오르는 그 동산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그 동산은 태양의 빛을 받아 더 아름답게 금빛으로 물들여진다.

태양의 그 빛발은 그의 가슴에도 흘러든다. 무아경에 싸인 그의 가슴에서 줄줄이 노래는 흐른다.

 

노래하며 흐르는 강물우에

춤추며 피여나는 구름우에

그리고 대양우에

눈덮인 언덕우에

황홀한 태양의 빛발은 어려오네

 

아름다운 노래를 짓는 사람의 가슴은 저절로 설레여진다. 그의 가슴에는 봄날의 바람소리도 들려온다. 처녀들의 노래소리도 들려온다.

태양을 노래하는 시인의 눈에는 세계가 다시한번 아름답게 비쳐지고있었다.

 

살랑이는 미풍의 정겨운 속삭임에도

처녀들이 부르는 행복의 노래에도

은혜로운 그 빛발 어려있어

인류는 숭배와 찬양의 큰절을 올리는데

 

아, 태양이 솟는다

우주가 밝아온다

위대한 주체의 그 빛발을 받아

전인류가 깨여나고있다

 

결구에 가서 그는 소리쳐읊으며 일어섰다.

그렇다. 전인류가 깨여나고있다. 오늘은 내가 깨여나고 래일은 네가 깨여나고 다음은 모두가 깨여난다. 위대한 주체의 그 빛발을 받아 전인류가 깨여나고있는것이다.

아― 아―

비슈와나스는 흥분하여 자기도모르게 방안을 돌아갔다. 그는 시의 제목을 《태양》이라고 달았다.

시인은 세계의 마음이다.

세계는 바로 태양의 빛을 받아 깨여나고있는것이였다.

그는 지체없이 하르지트 씽을 찾아갔다. 그는 《인디안 타임스》의 경영주필이며 인디아에서 유명한 기자였다. 비슈와나스가 주필이고 그가 경영주필이였는데 경영주필은 주필보다 한급 높은 위치에 있었다. 그들은 친구였다.

하르지트 씽은 시를 보고 아무 의견도 없다면서 오히려 찬양하는것이였다. 타고르가 예언한 미래의 조선을 비슈와나스가 오늘 훌륭히 노래하였다는것이였다. 그는 또한 이 시는 인디아에서 확고히 타고르 다음으로 조선을 노래한 두번째 시라며 이것은 사적인 작품이라고까지 덧붙이는것이였다.

그 시는 《인디안 타임스》에 즉시 실리였다. 또한 여러 신문들에도 게재되였다. 타고르가 예언한 동방의 밝은 빛이 이렇게 인디아땅에도 흘러들고있는것이였다.

이 시는 국제친선전람관 총서관에도 전시되여있다. 그는 이 시를 위대한 수령님께 접견석상에서 직접 드리였던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시를 창작한데 이어 곧 도서집필에 착수하였다. 그는 진리를 먼저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려주어야 할 도덕적의무를 지닌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도서의 서두에 시 《태양》을 앉히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시작을 뗐다.

《작가는 인생의 영원한 현실과 신성한 진실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서 서정적지식을 가지고 꾸며내지 않는다.

태양이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를 존재하게 하고 성장발전하게 하는 원천이라는것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진리이다. 태양이 없으면 생물의 성장이 멎게 되고 멸망하게 된다. 생물은 태양이 없으면 살아남을수 없다. 인간이 자급자족하게 되고 특출한 성과들을 이룩할수 있는것은 태양이 존재하기때문이다.

김일성동지! 그이는 인류의 태양이시다.

태양의 그 빛발은 누리를 비친다.

태양의 그 빛발아래 조선의 산과 들엔 오곡백과 물결친다. 사람들은 위대한 태양을 우러러 노래한다.…》

그다음 그는 자신이 총련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고 받은 큰 충격과 깊은 인상에 대해 섬세한 필치로 쓰면서 오늘 조선인민이 위대한 수령을 모심으로 하여 세계에서 존엄있는 민족으로 그 영광을 떨치고있는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집필전투는 낮과 밤을 이어 계속되였다. 비슈와나스는 끝없는 심혼속에 착상을 무르익혀갔다.

문득 크리쉬나에 대한 전설이 떠올랐다. 크리쉬나는 힌두교에서 숭상하는 신의 하나로서 그의 불상은 사원이나 모든 집들의 단우에 다 놓여있다.

인디아에는 크리쉬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강도 있다. 인디아의 남부에 있는 서가츠산줄기의 동쪽비탈면의 해발높이 4 500메터인 사타라부근에서 발원하여 데칸고원을 가로지나 마하라슈트라주, 카르나타카주, 안드라주를 흘러 벵갈만에 흘러드는 강이 바로 크리쉬나강인것이다. 그만큼 크리쉬나는 힌두교들의 절대적인 숭배의 대상이다.

크리쉬나에 대한 이야기는 《기타》(종교책)에 상세히 씌여있었다.

크리쉬나는 만물의 보호신으로서 악을 징벌하기 위하여 인간세상에 내려왔고 브란다운초원의 목축민가정에서 자랐다 한다.

그는 무질서와 노예제도, 무법이 존재하는 땅에 내려와 모든것을 평정한다. 그리고는 다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내가 또 나타나겠다고 선언하는것이였다.

악을 물리치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마련해준 그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들과 철학적인 명언들은 오늘도 인디아사람들속에 널리 전해지고있다.

비슈와나스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이 세상의 악을 징벌하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마련해주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만물의 보호신》이시라고 생각되였다.

그분께서는 일제가 조선을 통채로 먹고 조선민족을 노예처럼 부리고있을 때 하늘에서 내려오시여 모든것을 평정한분이시다. 그이께서는 정말로 무질서와 노예제, 무법이 존재하는 땅을 평정하시여 도탄에 빠진 민족을 구원하시고 조선을 강력한 나라로 만드시였다.

비슈와나스는 날이 가는줄 모르고 서재에 붙박혀 썼다. 오후시간을 기숙사에 그냥 있기가 어려워 어디로든지 뛰쳐나가던 라호르의 그의 모습이라곤 하나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또한 이럴 때는 거대한 광고업을 이끄는 《인터라즈》의 주인같지를 않았다. 그는 역시 작가였으며 기자였다.

그는 주체사상이 독창적인 사상이라는데 대하여 썼다.

《쏘베트 땅》을 편집하는 과정에 맑스―레닌주의에 대하여 도통하고있는 그로서는 인차 주체사상의 새로운 측면들을 감수할수 있었던것이다. 모든것은 대비속에 자기의 새로운 면을 뚜렷이 나타내고있는것이다.

맑스주의의 구성체계는 철학, 정치경제학, 과학적사회주의로 되여있지만 주체사상은 주체의 철학적원리와 사회력사원리, 혁명과 건설의 지도적원칙을 구성부분으로 하고있다는데 대하여 그는 포괄적으로 서술하면서 사상리론과 함께 령도방법을 담은 이 사상이야말로 현시기 진보적인류가 나아갈 길을 밝혀준 가장 보편적이며 옳바른 지도사상으로 된다고 격찬하였다.

비슈와나스는 마지막에 조선의 통일과 세계의 평화 그리고 쁠럭불가담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한 김일성동지의 공헌에 대하여 서술하고 이렇게 끝을 맺었다.

《조선! 이 나라는 한마디로 말하여 〈주체의 나라〉로 특징지을수 있다.

김일성! 그이는 주체의 태양이시다. 주체의 태양이 비치는 자주의 한길로 진보적인류는 보무당당히 들어서고있다.

아, 태양은 빛난다! 》

책은 나오자마자 대인기였다. 그 책의 제명은 《태양은 빛난다》(뉴택크출판사. 1975)였다.

글은 그 사람이다.

《인디안 타임스》주필이며 저명한 사회활동가로 알려진 비슈와나스의 이름으로 하여 책은 더 인기있는듯싶었다. 그 책은 인디아에서 처음으로 되는 조선에 대한 장편인상기였다.

비슈와나스는 멀리 떨어져있는 알따브 후쎄인과 아브둘 말라크에게도 책을 한권씩 보내주는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한길을 가고싶었다. 지난날의 추억을 함께 안고있는 친구들과 어제만이 아니라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뜻과 마음을 같이하며 한길을 함께 가고싶었다.

비슈와나스는 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하고 받은 감명과 자기의 견해에 대해 동료들에게 통보하였다. 그는 주체사상은 시대의 사상이라고 하면서 그 사상을 연구보급하는 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자기의 확고한 의지와 립장을 표명하였다.

많은 동료들이 그의 의사를 지지하였다.

알따브 후쎄인은?!

그 역시 주체사상을 인정하였다. 인정은 하면서도 그는 시대의 사상의 보편성과 생활력은 공명정대한 력사의 흐름속에서 객관적으로 증명되여야 한다고 하는것이였다. 물론 옳은 말이다. 실천만이 진리의 유일한 기준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알따브는 이 지구우에 나날이 더 높이 울려퍼지는 시대의 메아리를 가깝게 감촉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는 인민대중의 계급해방을 실현하는데서 불멸의 공헌을 한 맑스주의는 이미 한 나라를 벗어나 세계적범위에서 증명되였다는 생각만을 앞세우고있었다.

알따브 후쎄인은 사회주의나라들을 하나하나 꼽았다. 아직까지 세계에는 많은 사회주의나라들이 유물사관에 기초한 맑스주의를 자기들의 지도적지침으로 하고있는것이였다.

위대한 사상의 보편성과 진리성은 전세계사적의의를 가져야 하지 않는가.

그의 생각은 세계를 물질, 경제적관계를 중심으로 고찰하는것은 필연적인것이라는데 머물고있었다. 그는 법도 그것을 자로 하여 다스렸다.

알따브 후쎄인은 유물사관에 기초하여 로동계급의 계급적해방의 조건을 밝힌 맑스주의학설을 극구 찬양하고있었다.

아직은 세월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맑스주의가 밝혀주지 못한 사람중심의 철학사상의 과학성과 정당성을 실생활로서 다 가르쳐주지 못한 년대였다.

맑스주의를 지도적지침으로 하는 사회주의나라들이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제국주의와 당당히 맞서고있던 그 시대에 맑스주의는 현실적으로 자기의 생명력을 잃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알따브 후쎄인은 이미 비슈와나스의 글들을 모두 읽고있었다.

그의 글들은 다 공감되였다. 위대한 수령에 대해 공감되였고 인민이 살기 좋다는 그 사회에 대해 공감되였다. 그리하여 그도 일전에 비슈와나스의 부탁을 받은 다음부터는 사회주의조선을 소개하는 글들을 짬짬이 쓰고있었다. 그러나 그의 글들은 주체사상을 전면적으로 론증하는 글은 아니였다. 아직까지 그의 인식은 주체사상은 조선의 현실에 부합되는 조선의 사상이라는데에만 머물러있었다.

비슈와나스는 확정적으로 말하였다. 조선의 현실에 구현되여 그 생활력이 증명된 주체사상은 이제 제도에 관계없이 전세계 모든 나라들에 파급될것이라고.

《알따브, 이제 나의 말은 증명될거네.》

《나도 그러길 바라네.》

여기에 사람들사이의 차이가 있었다. 한사람은 공감된 사상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고 보급자였다면 다른 한사람은 거기에 대한 객관적투시에 머무른 사람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아무리 친구들사이라 해도 그런 사람은 답답하였다. 아니, 친구들일수록 더 답답하였다.

그는 동창으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알따브 후쎄인을 좋아했다. 감성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것을 침착하게 정확히 판별하는 그의 리성은 따라배울만한것이였다.

그래서인가, 알따브!

조선에서 나온 사상을 인정은 하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랭랭하게 지켜보고있는것은.

알따브! 법관이란 그렇게 랭랭해야 하는가.

아니다, 친구! 가장 뜨거운 심장을 지닌 사람이 법관이 되여야 하는것이다.

하물며 사람중심의 세계관이야말로 법관인 당신이 누구보다도 자기 활동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사상이 아닌가?!

비슈와나스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보다 가깝게는 자기의 친구들이 생활의 관조자, 생활의 향유자보다는 생활의 적극적인 참여자, 생활의 열정적인 창조자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주위의 모든것에 대하여 제 삼자의 립장에만 서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학업을 닦던 그 시절에 가장 옳바른것만을 깨우쳐주던 자기의 친구가 가장 옳바른 그길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뛰여들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그가 시대에 뒤지지 않고 언제나 시대에 부합되는 진리만을 사람들에게 깨우쳐주는 진정으로 옳바른 법관이 되기를 바랐다.

아브둘 말라크는?!

그는 찬성이였다. 맑스주의정통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즉시 주체사상을 연구보급하는 길에 모든것을 다 바칠 자기의 의향을 주저없이 밝히는것이였다. 물론 행동성은 그 사람의 성격에도 관계되는것이겠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시대의 흐름을 남먼저 감수하고 자기의 학문을 발전하는 현실에 결부할줄 아는 사람에게 더 많이 주어지는것이다.

이미 1970년대초에 주체사상에 접하고 마음속으로 공명하고있던 그였다.

《비슈와나스, 나는 파키스탄에 주체사상연구조직을 꼭 내오겠네.》

《우리 서로 손을 잡자구.》

그들은 시대의 사상을 연구보급하는 길에서 서로 뉴대를 보다 깊이하자고 약속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쉬지 않고 계속 글을 썼다. 《인디안 타임스》지에 아예 《조선》이라는 고정란을 설정해놓았다. 련이어 나가는 그의 글들을 사람들은 기다려 읽었다. 《생기를 넣어주는 태양》,《인민위한 한평생》, 《사람중심의 새로운 철학사상》, 《조선과 쁠럭불가담운동》등…

자주성의 시대는 태동하고있었다.

인민대중이 력사무대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하는 새로운 력사적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주체사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보다 광범한 사람들의 정신령역으로 스며들고있었다.

이런 때 인디아땅을 들었다놓는 일이 있었다.

인디아의 콜카타에서 열린 제33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녀자개인단식경기에서 이름있는 여러 나라 선수들을 타승하고 조선의 나어린 처녀가 세계선수권을 쟁취하였던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이 경기를 시작부터 주시하고있었다. 그것은 그가 단순히 체육애호가였기때문만이 아니였다. 또한 이 경기가 자기 나라에서 진행되는것이기때문에서도 아니였다. 그것은 이 경기의 시작부터 맞다든 모든 선수들을 물리치며 련승하고있는 조선의 애어린 처녀선수가 이목을 끌었기때문이였다. 세계 50여개 나라와 지역에서 온 탁구계의 강자들이 참가한 이번 대회의 경기소식들로 모든 신문, 통신, 방송들은 날마다 법석 끓고있었다.

이러한 속에 조선의 처녀선수가 남조선선수와 준준결승전을 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였다.

그 보도를 들은 비슈와나스는 흥분되였다. 조선의 처녀가 무조건 이겨야 했다.

이길것이다. 이 순간 그의 머리속에는 자기 집에 찾아와 비굴하게 놀던 남조선대사관 작자들의 초라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왜서인지 차사고가 일어나던 잊지 못할 그밤도 떠올랐다.

그들과의 대결도 아직 끝나지 않은것이다. 어찌보면 이 경기는 나의 대결과도 같은것이다. 그래서 더 무조건 이겨야 했다. 반드시 이길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일어섰다. 그 대결장면을 어찌 텔레비죤앞에 앉아 화면으로 볼수 있으랴. 그것은 비슈와나스의 성미에 맞지도 않는 일이였다.

그는 즉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기에 앞서 그는 인디아의 주요 신문, 방송들에 있는 자기 친구들에게 이 경기의 승패는 명백한것이니 보도에 지면과 시간을 아끼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까지 해놓았었다.

콜카타는 뉴델리에서 1 300키로메터 떨어진 동부에 있는 도시였다. 콜카타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직접 사진기를 메고나섰다. 사진기도 그는 제일 좋은 대형특수사진기를 가지고왔다. 구도와 초점맞추기에 리용하는 렌즈와 실지 촬영에 사용하는 렌즈가 따로 있는 그러한 사진기에서는 두개의 렌즈가 함께 움직이게 되여있고 반사거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촬영되는 순간에도 촬영대상물을 관찰할수 있는것이다.

조선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열정은 놀라울 정도였다.

정신적으로 공감된 사람의 힘은 끝없이 용솟음치는듯 했다. 그는 이 기회를 조선을 선전하는 좋은 계기로 잡았던것이다.

콜카타의 거리거리에는 탁구선수권대회와 관련한 포스터와 광고, 장식물들이 나붙고 신문, 잡지, 방송과 텔레비죤이 모두 대회의 소식을 경쟁적으로 알리고있었다.

세계의 이름있는 수많은 탁구선수들이 서로 다투는 이번 경기에서 어느 나라 선수가 세계탁구선수권보유자로 되겠는가?

이것은 여기에 모여온 세계의 모든 보도진들과 체육전문가, 체육애호가들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경기장은 시작전부터 토핑뉴스감을 바라고 찾아온 각국의 기자들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붐비고있었다.

드디여 조선의 처녀선수가 남조선과 대결하는 시각이 왔다. 경기는 시작부터 군중의 와― 와― 하는 환호로 들끓었다.

남조선은 그곳에 와있는 저희네 선원들까지 끌어들여 응원대를 조직하고있었다.

남조선선수는 처음에 방어를 위주로 하면서 떨어지는 점을 변화시키는 전술로 나왔다.

처음부터 경기의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쥔 북조선선수는 대상의 약한 고리인 왼쪽에 속도걸어치기와 포물선걸어치기를 배합하여 넘기다가 오른쪽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들이대군 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사진기의 샤타를 누르고 또 눌렀다. 그의 입에서는 《잘한다, 잘해!》 하는 쾌재가 연방 튀여나오고있었다.

남조선대사관 작자님들의 찌그러지는 오만상이 보여오는듯 했다. 충돌하여 파손되였던 그의 자동차가 다시 살아나서 그의 가슴속에서 씽씽 달리고있었다.

후련하였다. 조선의 선수가 한꼴을 넣을 때마다 그는 《잘한다, 잘해!》 하고 웨치며 마음속의 가속답판을 더 세게 밟았다. 가슴속에서 달리는 그 자동차는 날아가는듯 하였다. 날개돋힌 비슈와나스는 하늘을 둥둥 날아예는듯한 기분이였다. 그러면서도 눈은 사진기렌즈에서 떼지 않았다.

남조선선수는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기를 할 때에는 공격을 자주 들이대여 점수를 올리군 하였으나 북조선과의 경기에서는 완전히 피동에 빠져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바삐 돌아쳤다.

급해맞은 남조선탁구감독이 그에게 무엇이라고 주의를 주었을 때 초조와 불안에 빠져있은 그는 《공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라고 맥빠진 외마디소리만 하는것이였다. 그는 어떻게 하나 이겨보자고 달라붙었지만 북조선의 나어린 선수는 상대방을 련속 수세에 몰아넣었다.

북조선의 선수가 점수를 올릴 때마다 1만여명의 관람자들은 모두 일어나 《코레아!》, 《코레아!》 하면서 환성을 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경기는 북조선의 보기좋은 승리로 끝났다.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그는 밀려드는 기자들과 관람자들의 포위속에 들어 겨우 그곳을 빠져나오군 하였다.

즉시 보도진들이 떠들었다. 비슈와나스는 대형특수사진기로 자기가 찍은 잘된 사진들을 다른 신문의 기자들에게도 아깝지 않게 뭉테기로 제공해주었다. 그는 새소식을 남보다 먼저 알리려고 서두르던 어제날의 애어린 리포터가 아니였던것이다. 여기에 온 목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보다 널리 광범하게 소개선전하자는것이였다.

다른 기자들이 놀라운 경기성적만을 알리며 법석 떠들 때 그는 다같은 조선사람인 두 선수를 놓고 가슴아프게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썼다. 경기성적과 함께 조선이 겪고있는 민족의 비극에 대해 썼다. 한강토안에서 한피줄을 이은 한겨레가 제 나라 땅도 아닌 다른 나라 땅에서 본의아닌 치렬한 대결전을 하게 된 이 비극의 원인에 대해 썼다. 그는 남조선을 비법적으로 타고앉아 조선민족의 이 비극을 안아온 미국의 민족분렬책동에 대해 폭로하였다. 그의 모든 기사에는 이렇듯 력사의 진실을 론하는 준절한 목소리가 울리는것으로 하여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있었다.

준결승전에 올라간 조선선수는 쏘련선수와 맞다들게 되였다. 비슈와나스는 조선선수에 대해서는 마음이 푹 놓이는것이였다. 그만큼 그는 모든 관중들에게 확고한 자기의 전술적우세를 보여주었던것이다.

아니나다를가 준결승전에 출전한 그는 쏘련선수를 3대2로 물리치고 드디여 결승전에 오르게 되였다. 작은 나라 조선이 대국인 쏘련도 어렵지 않게 넘기고 결승전으로 치달아오르는것이였다.

《여보게 에피모브, 미안하게 됐네!》

비슈와나스는 마음속으로 에피모브에게 이렇게 말하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고 내심 놀랐다. 내가 언제 이렇게 한번 말해본적도 없는 조선처녀의 편에 서게 되였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2월 16일.

이날 오후 드디여 결승경기가 진행되는 시각이 왔다.

지난번 아시아경기대회탁구경기에서 1위를 한바 있는 중국의 장립선수와 맞다든 조선선수는 1회전에서 아쉽게도 24대26으로 졌지만 참으로 침착하게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경기를 의도적으로 운영해가는것이였다.

저것이 바로 조선사람들의 의지력인가.

비슈와나스는 태연자약한 자세로 경기에 림하고있는 조선의 애어린 처녀선수의 침착한 모습에서 오히려 자기의 조마조마한 가슴을 달래이게 되는것이였다.

조선선수는 조급해하는 그 어떤 인상변화도 없이 참으로 자신만만하게 경기를 운영해나갔다. 드디여 그는 중국선수를 3대1이라는 수자로 이기였다. 결국 그는 대국들을 다 이기고 단연 1등의 시상대에 오르게 된것이였다.

그가 《조선》이라는 두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있는 운동복을 입고 시상대에 올라 커다란 우승컵과 금메달을 받아안았을 때 만여명의 관중으로 꽉 들어찬 경기장은 터져오르는 환호와 박수갈채로 떠나갈듯 하였다.

국제탁구련맹과 대회조직위원회에서는 공동명의로 된 《세계탁구녀왕》의 상징인 왕관과 왕띠를 그에게 수여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왕관과 왕띠를 받은 조선처녀의 모습을 찍고 또 찍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박영순이였다.

주체조선의 영예를 떨친 그 처녀의 모습은 인디아의 모든 신문과 잡지, 방송에 그칠새없이 소개되였다. 그 소식은 삽시에 전세계에로 날아갔다.

조선을 널리 소개하려는 비슈와나스의 노력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조선에서 온 체육사절들을 위해 큰 연회를 마련하고 정계, 사회계, 출판보도계의 이름있는 인사들을 초대하였다. 참가인원은 자그만치 300여명.

연회의 주탁에 앉은 세계탁구녀왕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 19살의 나어린 처녀였다.

제노라 하는 기자들이 조용할수 없었다.

몇살때부터 탁구를 했는가? 누구에게서 배웠는가?

기자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대답은 명백하였다.

《아버지 김일성원수님께서 나를 키워주셨다.》

기자들은 놀랐다. 그 놀라움은 비슈와나스가 조선비행기에서 처녀들의 말을 듣고 놀라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기자들은 자기들의 그 의혹과 놀라움을 비슈와나스의 사리정연한 주해가 있어서야 풀수 있었다. 조선땅에서 실지 보고 느낀것을 그대로 터놓는 비슈와나스의 체험담은 기자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주체조선의 영예를 떨치고 조국에 돌아간 그를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만나주시고 함께 찍어주신 기념사진이 세상에 전해졌을 때 기자들은 애어린 조선처녀선수의 그 말이 그리고 비슈와나스의 주해가 틀림없이 사실임을 현실로 더 깊이 느끼게 되여 다투어 조선에 대한 글들을 또 쓰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조선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비슈와나스 한사람만이 아니였다.

태양은 빛나고있었다.

조선인민만이 아닌 자주와 평화를 념원하는 세계 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주체의 태양은 나날이 더 밝게 빛나고있었다.

위대한 주체의 태양의 빛발은 이렇게 전세계에로 빛발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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