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4 장

동방의 밝은 빛을 따라

 

나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비슈와나스가 조심스럽게 뒤걸음으로 물러서기때문이였다.

그의 눈길은 방에 들어서던 때와 다름없이 나갈 때도 줄곧 위대한 수령님의 랍상으로 향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린 그는 한참이나 그이의 영상을 우러러 숭엄한 자세로 서있다가 그렇게 뒤걸음으로 방을 나서는것이였다.

나도 그를 따라 그처럼 뒤걸음으로 조심조심 수령님의 랍상이 모셔져있는 그 방을 나섰다.

자책되였다. 외국인인 그앞에 나의 가슴은 깊은 자책의 감정으로 축축히 젖어드는것이였다. 나는 이미 여러 나라 대표단들과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을 참관하였으나 그와 같은 자세를 취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었다.

그날 비슈와나스는 나에게 말하였다.

《〈하느님〉앞에서는 뒤로 돌아설수 없소. 최대로 성실해야 하오.

김일성주석각하는 〈하느님〉의 사도가 아니라 바로 그 하늘, 그 〈하느님〉이시요.

하늘우에는 다른 사람이 없소.

〈하느님〉만이 인류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다 내다보고계시오. 조선에는 성경책이 필요없소. 인민의 〈하느님〉이 계시기때문에.

주석각하는 고등교육도 받지 않으셨는데 천하 모르시는것이 없으시오. 그것은 바로 그분이 하늘이시기때문이요.

〈하느님〉은 누가 배워줘서 아는것이 아니요. 천기를 타신분은 모든것을 다 안고 태여나는것이요.…》

향산호텔에서 그와 함께 한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눈 그날은 그가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90돐을 기념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를 방문하고있던 2002년 4월 12일이였다.

 

1. 운명의 분수령

 

한생을 돌이켜볼 때 누구에게나 운명의 분수령이 있을것이다. 갈래많은 물줄기들이 그 분수령에서 제 길에 들어서듯이 인간도 그런 령을 넘어 자기의 운명길에 들어서게 되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지금 그 운명의 분수령으로 가고있었다. 도꾜를 떠나 하바롭스크를 거쳐 그는 평양으로 가고있었다.

12월의 날씨는 몹시 추웠다.

비행기에 외국인이란 그 한사람밖에 없었다. 날씨도 추웠거니와 성탄절을 앞둔 때여서 더 손님이 없는듯도 했다. 이러한 때에 그는 움직이고있었다. 그는 오직 리념을 따라가고있었다.

비행기승무원처녀들은 외국손님이 그밖에 없기때문에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안내원처녀가 때때로 와서 무엇이 요구되는가 묻기도 하고 이제 얼마후면 평양에 도착한다고 친절히 알려주기도 하였다. 그들은 저희들끼리 꼬니를 두며 놀고있는듯 했다.

비슈와나스의 가슴속에서는 자유투사들의 피가 스민 땅에 처음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커다란 감동의 파도가 일고있었다.

이때 비행기승무원들이 부르는 애국가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산뜻하고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근심걱정도 없는듯 하였다.

비슈와나스는 호기심이 동하여 그들에게 다가가 두 단어로 된 간단한 질문을 하였다.

《근심걱정이 없습니까?》

한 처녀가 즐거워보이는 인상을 지으면서 자기들은 모든 운명을 아버지 김일성원수님께 다 맡기고있다고 영어로 재치있게 대답하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또 물었다.

김일성원수님을 아는가?!》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비슈와나스는 놀랐다. 비행기에서 그분의 따님을 만나다니?!

그는 처녀의 옆으로 한걸음 바싹 붙어서며 물었다.

《그래 김일성원수님은 자제분이 몇인가?》

《4천만입니다.》

처녀는 거침없이 말하였다.

비슈와나스는 한순간 얼떠름했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처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였다.

《미쳤니?》

비슈와나스는 정말 이 처녀가 정신이 잘못되였다든가 아니면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되였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좀 언짢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왜 그런 롱담을 하는가?》

처녀는 롱담이 아니라는듯 밝은 인상을 그대로 지으면서 다른 처녀에게 네가 말해주라고 하는것이였다. 그 처녀 역시 같은 대답이였다.

비슈와나스는 기분이 좀 좋지 않았다. 정녕 그럴수 없는 일을 이들은 그렇다고 대답하는것이였다. 더 묻지 않았다. 좌우간 가서 보면 모든것을 자상히 알것이였다.

비행기는 평양비행장에 서서히 착륙하였다. 《거짓말》하는 처녀들이 살틀하게 다가와 웃으며 그를 안내하였다. 비슈와나스는 말도 하지 않았다.

12월의 비행장은 비교적 조용하였다. 기다렸다는듯이 두사람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비슈와나스에게 다가왔다.

아니 이게 누구인가?!

그는 제꺽 장경일을 알아보았다. 장경일은 그사이 임기를 마치고 조국에 소환되였던것이다. 반가왔다.

그가 내가 오는것을 알고 마중나올줄이야.

장경일은 같이 나온 젊은 사람을 소개하였다. 그의 이름은 한찬두라고 하였다. 그는 영어를 아주 잘하였다.

기뻤다. 서로 반갑게 얼싸안고 상봉을 하는 그들을 보고 승무원처녀들이 마음이 놓인다는듯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 춤을 추듯 팔을 저으며 떠나갔다.

비슈와나스는 첫 순간에 벌써 조선은 단결된 나라라는 인상을 가지게 되는것이였다. 승무원처녀들의 하나같은 차림새를 봐도 그렇고 자기를 마중나온 사람들을 보아도 그러했다.

비행장은 수도의 교외에 있었다. 겨울이여서 나무들은 앙상하였지만 비행장역사앞의 울울창창한 나무들은 답답하였던 그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며 한껏 정화시켜주는것이였다.

길 량쪽으로 넓게 트인 벌을 바라보면서 그는 승용차안에서 이 나라에는 공해에 오염되지 않은 청신한 공기가 가득차흐르고있음을 온 육체로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차는 인차 시내에 들어섰다. 건물들은 비좁지 않게 형성되여있었고 멀리 가까이 둘러봐도 도시가 깨끗하고 정갈하다는것이 그의 첫 느낌이였다. 순수한 조선사람들의 모습이 이 거리에 다 비껴있는것 같기도 하였다.

차는 숙소에 도착하였다. 호텔이 아니라 산뜻하고도 무게있게 꾸려진 초대소였다. 시내 중심부에 있으면서도 정숙이 깃든 수림속의 집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조선의 관계일군들이 자기를 진심으로 맞이하고있다고 생각되였다.

미안하였다. 자기가 조선을 위하여 한 일이 무엇이 있다고. 한일이 있다면 그것은 책을 보고 또 조선방문자들의 목격담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글로 쓴것밖에 없는데…

그것은 기자로서, 문필가로서 응당 해야 할 본분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회주의나라들을 다 돌아보았지만 이들처럼 두터운 우애심과 의리심을 말없이 지키는 사람들은 처음이였다.

고마왔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 자존심과 우월감으로 이 세상을 행진해가는 사나이들의 성격은 뚝해보이는것이다. 하지만 말없는 그 마음이 사람들의 진정을 더 뜨겁게 느낄줄 아는것인지 어이 알랴.

저녁은 즐겁게 동석식사를 하였다. 모두가 친지들처럼 살뜰했고 식탁에 오른 음식들도 민족의 구미를 맞추어놓아 마치 제 집 밥상에 마주앉은듯 했다.

구면지기들인지라 그 지간의 회포를 허물없이 나누었으며 일정계획도 토론하였다. 원래 일정계획은 본국의 의사를 존중하는것이 하나의 틀로 되여있으나 비슈와나스는 원체 그런 틀에 구애되지 않는데 습관되여있는 인물이였다. 그 생활방식이 그 어데 왔다고 해서 달라질수 있으랴.

《나의 체류일정은 3박 4일, 참관지는 아침마다 가고싶은 곳으로!》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모두가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손님을 존중할줄 아는 조선사람들이였다. 그의 조선방문을 환영하여 그들은 잔을 들었다.

그 이튿날.

비슈와나스에게 승용차가 전용으로 제공되였다.

그를 태운 승용차는 맨 처음 9. 15주탁아소에 들어섰다. 그는 오늘아침 탁아소를 비롯한 교육기관들을 돌아보겠다고 한것이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비행기승무원처녀들의 말이 종시 내려가지 않고있었던것이다. 탁아소에는 모든 설비들이 다 갖추어져있었으며 깨끗하고 알뜰하게 꾸려져있었다. 방들에는 말을 채 배우지 못한 어린이들이 땅크, 비행기들을 비롯한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고있었다.

방의 앞벽면에는 김일성주석의 초상화가 모셔져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어린이들에게 초상화를 가리키며 저분이 누구인가고 물었다. 어린이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초상화를 가리키자 저마다 다투어 소리치는것이였다.

《아버지!》

《아버지!》

한찬두가 어린이들의 말을 《화더》(아버지)라고 통역해주었다. 비슈와나스는 정말 놀랐다. 《아버지!》그는 입속으로 그 말을 되뇌이였다. 그가 조선에 와서 처음으로 배운 말은 《아버지》였다.

조선은 참으로 신기한 나라였다.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아이들을 국가와 사회의 부담으로 보육교양하고있으니 어찌 그들이 나라의 위대한 수령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을수 있으랴.

《제일 좋은것을 어린이들에게!》라는 원칙에 따라 국가와 사회협동단체들은 탁아소어린이들의 보육교양사업에 필요한 모든것을 책임지고 보장해주고있었다. 도시와 농촌의 이르는 곳마다에 그런 탁아소, 그런 유치원, 그런 학교들이 국가의 계획적인 투자와 전 사회적운동에 의하여 현대적으로 꾸려져있다고 하니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조선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여있다고 생각되였다.

나무모는 심어놓고 내버려두면 애초에 쓸모없이 꼬부라지지만 잘 키우면 곧은 나무로 자란다. 어린이들을 키우는 사업이 바로 그것과 같은것이였다. 이 문제가 훌륭히 해결되였으니 조선의 미래는 창창한것이다.

유치원아이들도 소학교, 중학교학생들도 모두가 김일성주석을 《아버지》라고 스스럼없이 부르고있었다.

비슈와나스의 감동은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시내의 중심을 이루고있는 장대재언덕에 다름아닌 아이들의 궁전이 넓고 화려하게 우뚝 솟아있는것이였다.

도꾜의 중심인 스미다천서부지역이나 뉴욕의 《월가》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였다. 숱한 나라들을 돌아보았어도 도시의 가장 중심부를 이루는 언덕에 아이들의 궁전이 솟아있는 나라는 없었다.

여기에서 학생소년들은 자기들의 희망과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고있었다. 피아노, 손풍금을 비롯한 악기들을 연주하는 아이들의 손가락놀림이 어찌나 훌륭한지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확언하게 되는것이였다.

아이들은 노래하고있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눈물이 났다. 학생소년들이 훌륭한 과외교양기지에서 국가의 혜택으로 자기들의 재능과 취미에 따라 희망을 마음껏 꽃피우고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황홀경이였다.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 비슈와나스는 저절로 심취되는것이였다.

그는 후날 자기의 도서에서 평양학생소년궁전은 최고의 리상적인 착상이라고 썼다.

이 리상적인 착상을 하신분은 김일성주석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궁전의 이 터전을 잡아주시였고 건설방향과 방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으며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다 풀어주시였다고 한다. 그렇게 되여 지덕체교양의 종합적학교이며 과외교양의 거점인 이 학생소년궁전이 평양시의 중심부인 장대재의 언덕우에 높이 일떠섰다고 한다.

소년궁전은 건물의 구조와 형식, 규모도 놀랍지만 후대들을 훌륭하게 교육교양할수 있도록 그 내용이 완벽하게 되여있는것이 더 감동적이였다.

이런 궁전을 마련하여주시고 세상에 부럼없이 키워준 위대한 수령을 이 나라 사람들이 어찌 어른, 아이 할것없이 《아버지!》라고 높이 부르지 않을수 있으랴.

서방세계에도 《아동쎈터》요 뭐요 하는것들이 있지만 교육이 상업화, 영업화되여있는 그 사회에서는 결코 조선에서처럼 로동자, 농민의 자녀들이 과학과 예술의 수재, 체육의 명수로 자랄수 없는것이였다. 그것은 재정적담보가 없기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의 모든 어린이들은 일할 나이가 될 때까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교육받고있었다.

그것이 문명의 모습이였다. 나라에서 교육받는 이 나라의 모든 인간들의 그 면모가 …

조선에서 아이들은 그야말로 나라의 《왕》이였다. 이 나라에서는 제일 좋고 훌륭한 모든것이 아이들에게 돌려지고있었다.

그런 교육의 혜택아래 조선에서는 문맹자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 어떤 나라에도 문맹자는 있는것이였다.

인간이 지니고있는 사랑가운데서 가장 헌신적인 사랑은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아이들이 없는 세계는 태양이 없는 세계와 같다.》고 한 말이 오늘까지도 명언으로 전해져내려오는지도 모른다.

김일성주석께서 해방직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회의의정으로 아이들의 연필문제를 상정토의하시였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선의 어린이들이 어떤 사랑속에 살고있는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는것이였다.

이제사 모든것이 리해가 가는듯 했다. 어딜 가나 그이를 우러러 모두가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는것이, 스스럼없이 그 처녀들이 그이를 《아버지!》라고 부르던것이…

수령과 인민이 혈육의 정으로 뜨겁게 련결되여있는 여기에 이 나라의 기적의 원천이 있고 세계를 움직이는 새로운 힘이 있는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는 자기 나라 대통령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조선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들의 수령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고있었다. 어딜 가나 조선사람들의 이러한 감정은 스스럼없이 울려나오고있었다. 그들의 반짝이는 눈과 자신심에 넘쳐있는 얼굴은 비슈와나스로 하여금 조선사람들의 깨끗한 충정과 온 나라가 한가정이 되여 화목한 조선의 참모습을 엿보게 하는것이였다.

그로 하여금 또한 놀라게 한것은 조선에서 세금제도가 완전히 페지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3차회의(1974. 3)에서 세금제도를 완전히 없앨데 대한 법령을 발포하심으로써 조선은 세계에서 세금없는 첫 나라로 된것이였다.

참으로 경이적인 사변이였다. 이것은 근로자들을 낡은 사회의 유물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의 혁명이라고 말할수 있는것이였다.

놀라움과 감동속에 하루가 지나갔다.

2일째 되는 날 그는 만경대고향집을 찾았다. 이 나라 사람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며 받들어모시는 위대한 수령의 생가를 그는 진정으로 찾아보고싶었던것이다.

그의 감동은 만경대에서 더해졌다. 모든것이 사실이였다. 책에 씌여진 그대로였다. 현지참관은 책보다 더 감동적이였으며 보다 웅변적인것이였다.

아름다운 만경봉의 한 기슭에 옛모습그대로 보존되여있는 초가집!

너무도 대조적이였다. 지붕우에 밤색칠을 한 기와를 즐비하게 이고 40여칸의 방들이 달린 ㄷ자형의 1 000평방에 달하는 고향마을의 덩실한 자기 집과는 너무도 대조적인것이였다.

자기의 증조부는 19세기 초엽에 그렇게 큰 집을 짓고 500정보에 달하는 광활한 령지의 주인으로 군림했는데 김일성주석의 증조부는 19세기 중엽에 초가 한칸마저 마련할수 없는 가난한 생활이여서 평양에 살던 지주가 자기 가문의 산과 묘지를 지키는 사람을 두기 위하여 지은 이 산당집으로 들어오시였다. 19세기 중엽 조선에 침입해온 미국해적선 《셔먼》호와 《쉐난도아》호를 격침, 격퇴시키는 싸움의 앞장에 선 애국자가 바로 이 집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으시고 농사일을 하시던 그이의 증조부이시였다.

자기의 조부는 식민지하에서도 땅과 돈의 혜택으로 공부를 하고 자식들 또한 공부시켜 그 사회에서도 살수 있는 길에 내세웠는데 김일성주석의 조부모님들은 모진 가난속에서도 민족의 절개를 꿋꿋이 지키시며 아드님과 손자분들을 모두 식민주의자들을 내쫓고 나라를 찾는 혁명투쟁의 길에 내세우시였다.

아, 위대한 가문이시다!

숭엄한 감정에 싸여 비슈와나스는 고향집에 소중히 보존되여있는 혁명일가분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사적물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돌아보았다. 가장 인상적인것은 찌그러진 독이였다. 그 독은 식민지의 사슬에 묶이웠던 이 나라 인민들의 피눈물나는 지난날의 모습을 보여주고있는 력사의 증견자인듯 했다.

만경대고향집을 나서며 그는 열려져있는 사립문을 다시한번 눈여겨보았다.

이 문은 자기 고향집의 엄청나게 큰 문에는 대비도 되지 않게 작은 문이다. 비비마을의 언제나 닫겨져있는 자기 집의 그 큰 문으로는 자기 가문의 사람들만이 드나들고있지만 언제나 열려져있는 만경대고향집의 이 수수한 작은 문으로는 온 세상사람들이 다 드나들고있는것이다.

만경대고향집의 이 사립문은 마주오는 무궁한 세월을 향해 활짝 열려져있다. 이 세상에 이처럼 크고 넓은 문이 또 어데 있으랴. 이 문에 한번 들어선 사람은 누구나 태양의 광휘로운 빛발을 받아안고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것이다.

정녕 이 문은 성스러운 문이다. 만경대고향집은 정녕 위대한 태양이 솟아오른 마음의 고향집이다.

태양은 빛난다!

비슈와나스는 태양의 성지를 순례한 숭엄한 기분에 휩싸였다. 자기의 마음속에 쉬임없이 날고있는 그 두루미는 바로 여기, 태양의 성지를 향해 날아온것이 아닐가?!

비슈와나스의 3박 4일의 체류계획은 자기도모르게 연기되였다.

세심하면서도 성급한 편인 그는 조선의 모든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분주히 돌았다.

그는 평양에서 200여키로메터 떨어진 판문점으로 나갔다.

조선전쟁에 대한 기사도 많이 쓴 그로서는 미군이 조선인민앞에 항복하고 군사정전협정에 조인한 력사적인 장소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싶었던것이다.

남조선을 가로타고앉은 미제는 이 땅에서 전쟁을 도발하였지만 조선인민과 인민군대의 위력앞에 마침내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에 조인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참으로 조선이라는 크지 않은 나라가 3년간의 가렬처절한 전쟁에서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련합국의 무력침공자들을 타승하고 빛나는 승리를 쟁취할수 있은것은 강철의 령장 김일성주석의 령도가 있었기때문이였다.

군사분계선 남쪽지역에는 《MP》완장을 두른 미군병사들이 껌을 질근질근 씹으면서 서있었다.

저주로왔다. 미군이 저주로왔다.

지금까지 어떤 민족도 위도와 경도로써 분렬된적이 없었다. 오랜 옛날부터 조선은 단일한 국가였으며 단일한 언어와 단일한 생활풍습을 가진 단일한 민족이였다.

미군은 조선에 꽃이 아니라 총을 가지고 온 침략군이다. 그들은 이 나라의 권리를 략탈하기 위해 온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앞가슴에 드리운 사진기를 들어 모든것을 찍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미군병사들은 얼굴을 돌리며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자체가 참으로 가소로왔다. 그자들도 남의 나라 땅을 가로타고앉은 저들의 몰골이 세상에 알려지는것은 두려운 모양이였다.

조선의 젊은 인민군병사들은 까딱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그냥 서서 규률있게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있었다. 이런 군대는 어떤 강적도 쳐물리칠수 있다는 확신이 저절로 드는것이였다.

그는 판문점에서 조선의 통일은 조선인민의 최대의 민족적숙원이며 그 누구도 유린할수 없는 신성한 권리라는것을 더욱 깊이 깨달을수 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원산에도 가보았다. 그곳의 학교들과 병원들, 공장, 기업소 등 여러 분야를 돌아보면서 그는 자기의 견해를 정립해나갔다.

특히 조선의 보건제도는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예로부터 의술은 인술이라 일러왔으나 장구한 인류력사에 의술이 인술로 된 사회는 없었다. 사람을 가장 귀중한 존재로 내세우는 조선에서만 의술이 진정한 인술로 되고있었다.

어느 문명국에도 의사없는 마을들이 있기마련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의사가 없는 곳이 없으며 오히려 의사들이 환자를 찾아가고있었다. 의사담당구역제에 의하여 매 사람은 주치의사를 가지고있는셈이였다.

환자들의 치료비는 물론 근로자들이 자기들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료양소로 오가는 려비까지 국가가 부담해준다니 이 역시 하늘만이 베풀수 있는 혜택이라 하지 않을수 없었다.

조선사람들은 모르고 사는것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였다. 그가 만나본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고 쓰고사는 쌀값과 살림집값조차 모르고있었다. 집없는 사람도 굶주리는 사람도 없었다.

이 지구상에는 200여개의 서로 다른 사회제도를 가진 나라가 있지만 고금동서의 그 어느 시기, 그 어디에도 국가가 호주로 되여 인민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돌보아준 례는 지금껏 없었다.

비슈와나스는 이 나라는 통채로 한가정이 되여 수령을 어버이로 모시고 사는 일심단결의 나라라는 확신을 더 깊이하게 되였다.

한주일에 걸치는 그의 조선방문은 매우 효과적인것이였다.

그가 본 조선의 모습, 그것은 인류의 선망과 기대와 동경을 한몸에 안고 력사의 방향타를 잡고나가는 거인의 모습과도 같았다.

조선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주적인간의 존엄을 떨치며 보람찬 삶을 누려가고있었다. 《현대문명》과 《고도발전》을 자랑하는 서방나라들이 엄두도 낼수 없는 조선사회의 고상한 모습, 건전한 풍모, 단결의 위력 등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주체사상은 조선의 유형무형의 모든 힘을 흔들어깨우고 위력화하여 비상한 창조와 승리를 마련하고있었다.

미국이 백년이 걸려도 일어서지 못한다던 전후의 페허를 단 수년간에 말끔히 가셔내고 락원을 펼친 위력도, 불과 14년동안에 공업화를 달성한 기적도, 여러 단계의 사회적변혁을 한세대에 이룩한 위대한 승리도 주체사상에 기초한것이였다.

진정 조선에 솟은 천만가지의 세기적창조물들은 세월의 눈비에도 흐려지지 않을 영원한 사상의 화폭이였다.

진리의 기준은 실천이다.

주체사상이 전면적으로 구현된 조선의 경이적인 현실은 주체사상이 진리라는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었다.

그를 더욱 흥분시킨것은 조선의 사회주의사회가 철저히 인민을 위한 사회주의사회, 인민대중이 모든것의 주인이고 모든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람중심의 사회라는 그것이였다.

프랑스혁명을 돌이켜보면 그때에 든 구호가 자유와 평등, 박애였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운 자유란 부르죠아지들을 위한 자유였지 결코 백성을 위한 자유는 아니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사상을 전세계에 전파한 이후 군대를 아이띠에 파견하여 자유를 위해 일떠선 노예들의 항쟁을 압살하도록 하였으며 미국에서는 독립을 이룩한 이후에 흑인들에 대한 노예소유제, 인디안들에 대한 멸족과 같은 만행을 계속하였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은 부르죠아지들과 백인들을 위한 자유에 머물렀으며 계급사회에서의 평등에 대하여 아무리 떠들었으나 실제상 평등이란 없었다.

수수천년 인류가 그처럼 갈망하여오던 만백성의 진정한 자유와 평등, 박애는 인간이 존중시되는 조선에서 현실로 꽃펴나고있었다.

그래서인지 교리를 믿는 세계의 각이한 종교인들도 조선의 현실에서 인간사회의 참모습을 보며 주체사상을 신봉하고있는것이였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단 하나의 사상으로 우주의 무한한 공간을 채울수 있다고.

참으로 주체사상은 인간의 넋을 깨우쳐 그의 힘과 미를 무한대로 증폭시키고 인간을 력사의 자주적주체로 내세워주는 《성서》였고 《복음》이였다.

김일성주석은 이 위대한 주체의 정치리념을 만민에게 안겨주시고 그것을 당대에 실현해나가시는 탁월한 수령이시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이의 접견을 절절히 희망하였다. 그리하여 장경일과 한찬두에게 그이를 만나뵈올수 있는가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설을 앞두고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계시기때문에 약속은 못하겠지만 노력은 해보겠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는 자기 생애에서 조선방문이 늦어진것은 커다란 유감이라고 생각되면서 하루빨리 위대한 수령을 만나뵈옵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고싶은 간절한 소원이 소용돌이쳤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렇듯 위대하신분께 기쁨을 드릴만한 그 무슨 일도 해놓은것없이 만나뵈옵겠다는것은 너무도 죄송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혼자서 속다짐하였다.

인류의 태양이시여! 태양의 그 빛발을 온 누리에 떨치는 길에 내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존귀하신 당신을 기어이 뵙겠나이다.

그는 당시 정무원총리였던 김일동지와 외교부장이였던 허담동지를 각각 만난 자리에서 주체사상이 구현된 조선의 현실을 보고 매우 감동된데 대한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또한 그는 자주, 평화, 친선의 리념밑에 사회주의나라들과 쁠럭불가담나라 인민들, 세계 모든 평화애호인민들과 굳게 단결하여 핵무기가 없고 침략과 전쟁이 없는 자주적이며 평화로운 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고있는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일관한 노력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리해를 한데 대한 자기의 생각도 털어놓았다.

조선과 인디아 두 나라가 세계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거의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있다는것은 그에게 있어서 참말로 고무적이였다.

두 나라가 다 쁠럭불가담국가이며 《부대조건이 붙은 원조는 금지》라는데 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하고있다. 또한 두 나라가 다 풍부한 전망을 가지고있고 두 나라 지도자들이 다 자주적인 국가건설활동을 적극 벌려나가고있다.

조선은 하나의 민족이 사는 하나의 나라이며 그들의 유일한 수령은 김일성주석이시다.

비슈와나스는 조선과 인디아가 참으로 가까운 형제의 나라로 느껴지는것이였다. 조선에서는 김일성주석께서 나라를 이끌고계시며 특출한 업적들을 이룩하시였고 인디아에서는 쟈와하를랄 네루가 그 모범을 보이였고 오늘은 인디라 간디가 결심품고 나라를 앞으로 떠밀어나가고있다.

광활한 령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나의 조국 인디아가 훌륭한 나라로 일떠설 그날은 반드시 올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비슈와나스의 가슴속에는 거대한 그 무슨 힘이 꽉 자리잡는듯 했다. 그 힘은 자력갱생의 힘이였으며 주체사상의 힘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이처럼 자기 조국 인디아의 자주적발전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부터 주체사상을 받아들이였다.

인간은 자기 조국과 운명을 같이할 때만이 빛나는것이다. 이 진리는 나라가 분렬될 때 직업을 잃으면서 또 그리고 정다운 친구들과도 헤여지면서 가슴아프게 심장으로 체험한것이였다.

조선은 확실히 자기의 색이 있는 나라였다. 많은 나라들을 돌고돌면서 합성된 색을 띠고있는 그 나라들의 모습을 보아온 그였다.

합성된 색은 자기의 고유한 멋이 없었다. 많은 나라들이 합성된 색을 띠고있을 때 조선은 자기의 고유한 한색을 가지고 세상에 빛나고있었다.

참으로 조선사회는 인간사랑의 정치가 꽃펴나는 《유토피어》, 인류의 리상향이였다.

이 나라에는 특별히 잘사는 《월가》도 없었고 특별히 못사는 《할렘가》도 없었다. 모두가 평등하고 화목하게 사는 인민의 세상이였다.

세상을 돌아봄은 참다운 지식의 큰 원천이다.

그중에서도 조선을 방문한것은 사변적인 일이라고 그는 생각되였다.

조선민족은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 과학적인 지도사상을 가진 슬기로운 민족이였다.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비슈와나스의 가슴속에 주체사상은 인간의 자유와 평화를 가장 높이 보장해주는 생명의 젖줄기로 흘러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주체사상이 이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중한 존재로 여기고 사람을 력사의 주인으로 내세운 사상이며 따라서 인권을 가장 높이 옹호하는 사상으로 안겨왔기때문이였다.

태양은 동쪽에서 솟아올라 전세계를 비쳐주고있다.

주체사상은 동방에서 솟아올라 세계의 모든 곳에서 어둠을 몰아내고있다.

조선의 빛은 주체사상의 빛이였다.

그렇다. 자유와 평화의 세계를 향해 나래치는 나의 마음속의 두루미는 주체의 그 힘에 떠받들리울 때만이 더 높이, 더 한껏 날아옐수 있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조선의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빛나고있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태양이 빛나는 자유로운 창공밑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고있다. 그도 물론이다. 그 역시 자유로운 창공밑에서 자기 조국 인디아의 인민과 인류를 위해 한껏 복무하고싶었다.

광휘로운 빛발이 천갈래만갈래 뿌려지는 저 하늘에서 그의 마음속의 아름다운 두루미는 유유히 곡선을 그으며 노닐고있는것이였다. 그 두루미는 주체의 나라우에 높이 떠 빙빙 돌며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나는 날아옜노라

자유의 창공을 찾아

산을 넘어 바다를 건너

온 세상 온 대륙을…

 

나는 날아옜노라

자유의 노래를 찾아

밤도 없이 낮도 없이

이 하늘 저 하늘…

 

나는 날아왔노라

영원한 내 노래의 보금자리

인간의 삶이 꽃피는 나라

인간의 존엄이 빛나는 나라

 

그날은 1974년 12월 25일이였다. 예수를 숭상하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 즐기는 크리스마스날이였다.

이날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간세상에 강림하였다는 예수에게 자기의 모든것을 기원하고있지만 인류를 재난에서 구원해준다는 그 예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지마는지 지구상에는 해와 해를 이어 기아와 빈궁이 계속되고있는것이였다.

바로 이날에 비슈와나스는 조선의 하늘아래서 예수 아닌 현시대의 진정한 인민의 구세주가 펼친 주체의 락원을 보면서 새롭게 인생을 설계하고있었다.

그는 세상에 떠도는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이렇게 정정하고있었다.

《주체사상이 꽃피는 곳에 사랑이 있다.》

이 길이였다.

분렬되는 나라의 비극을 안고 자유인디아가 나아갈 길을 애타게 갈구하던 그길이 바로 주체의 길이였다.

애매하게 재판을 받던 대학생들을 보며 몸부림치던 10대 후반기의 그 시절 어머니조국의 아들된 본분을 다하려면 조국을 빛내이는 길에 나서야 한다고 자각하던 그길이 바로 주체의 길이였음을 40대 후반기에 이른 오늘에야 비로소 인생의 체험으로 확고하게 깨닫게 되는것이였다.

아름다운 리상을 실현하려면 그길을 밝혀주는 위대한 사상을 따라야 한다.

나의 조국 인디아를 빛내이는 애국의 길을 걸으려면 주체사상을 신봉해야 한다는것, 이것이 좌우명으로 그의 가슴속에 소리없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인간의 사상을 따르는것은 가장 위대한 학문이다.

갈 길을 확정한 사람은 보람찬 삶의 희열을 느낀다.

비슈와나스는 배웅을 나온 장경일과 한찬두에게 선언처럼 말하였다.

《나는 주체사상을 따를것이요.》

그는 마치 큰 산우에 올라선듯 가슴이 활 열리는것을 느꼈다.

지향성이 있으면 생활에 진정한 뜻이 있게 되고 령혼이 깃들기마련이다.

현실을 옳게 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종국에 가서 성공한다.

비슈와나스는 자기의 인생렬차가 드디여 운명의 분수령을 넘어 생의 끝까지 가야 할 궤도에 들어섰음을 의식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웨쳤다.

주체의 길, 이는 참된 인생의 길이다!

바로 이 길, 내가 가야 할 길은 주체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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