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1 편

제 3 장

4

(1)

 

지하실로 된 려관이 그들의 류숙장소였다.

내각사무국일군들이 나와 학자들의 숙식을 보살펴주었다.

리승기는 토론준비자들중에 제가 예정되지 않았다는것을 알게 되자 퍽 다행스럽게도 생각했으나 한편 그것이 자못 서운하기도 했다.

허나 청수에서 예상했던것처럼 방청이나 손님격이 아니라 자기가 당당한 대표라는 말에 놀라면서도 평상시의 그 걸음걸이대로 훤칠한 키를 곧바로 세우고 침착하게 모란봉지하극장입구에까지 당도하였다. 리승기는 지하층계의 마지막단을 내려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쟁중에… 이런 희한하고 놀라운 일이 어디 있어?)

그는 땅속이 아니라 동화속의 어떤 불빛찬란한 궁전에 들어선 느낌이다.

그는 휴계실에서 해방전과 해방후에 서로 갈라졌던 면식있는 여러 학자들과 손도 잡아보고 얼싸안기도 하면서 반가움을 나누었다.

길게 회포를 풀새는 없었다.

그들은 회의장에 들어갔다.

대회가 시작되여 주석단성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일어서서 열렬히 박수를 친다.

이런 회합에 난생처음 참가해보는 리승기는 곁의 사람들이 하는대로 일어났고 박수를 쳤다.

처음에는 주석단에 누구누구 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박수소리가 더 세차졌다.

곁에서 김용석이 리승기의 귀에 바투 대고 말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나오셨습니다!》

그 순간과 때를 같이하여 눈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주석단중심에서 웃으시며 참가자들을 향하여 마주 박수를 치시는분이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이심을 알아보았다. 순간 끓어오르는 감격과 흥분으로 가슴은 세차게 설레였다.

(아! 이분이시구나! 그리도 만나뵈옵고싶던… 언제나 마음속으로 그립던 그분이시구나!)

다음순간에는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전선형편이 어려운 이때에 그이께서 이런 회의에 참석하시리라고는 예상이나 할수 있는 일인가.

리승기는 남들이 앉는것도 모르고 그냥 박수를 치다가 급기야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앉아서도 주석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노상 웃으시는 얼굴이였다.

백두산의 령장으로 기상이 아주 엄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보는 순간에 친근감부터 앞서는분이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쟁중에 과학자들이 이룩한 연구성과가 보고에 소개될 때마다 만족해하시며 박수를 치신다.

리승기는 박수를 치다가 문득 제가 북에 들어온지도 2년이 가까와오는데 그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지냈다는 생각에 그만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과거의 발명따위는 지나간 추억으로만 남은것 같았다.

그게 벌써 어느때 일인가.

그동안 간혹 누가 그의 발명의 의의에 대하여 말하면 지어 그것이 도리여 자기에 대한 값싼 동정과 위안으로 리해되면서 불쾌해지기도 했었다.

그 발명으로만 사람들이 자기를 안다는것이 이제와서는 그리 즐겁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전시의 어려운 환경에서 소집된 이 회의의 보고에서 《합성1》호와 그 연구전망이 언급되지 않은것을 차라리 다행으로 여겼다.

보고가 끝나고 휴식이 선포되였다.

휴계실에서는 모여서기 바쁘게 이런 말들이 오갔다.

《그 바쁘신중에 이렇게 나와주시리라고는…》

《그러기 말입니다. 전선형편때문에 밤잠도 주무시지 못한다는데…》

저쪽에 서서 누군가와 만나던 김용석이 바삐 걸어와 곁의 빈 의자에 앉더니 리승기한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이 회의는 장군님께서 직접 발기하셨다구 합니다.》

리승기는 여직껏 계속 흥분속에 있다가 다시 이런 놀라운 말을 듣고는 김용석을 그저 뻔히 마주보기만 하였다.

그런데 이때 인민군 대좌견장을 단 사람이 가까이에서 《용석동무!》하고 불렀다.

김용석은 일어나 그리로 다가간다.

《아니, 대좌동지는 어떻게…》

《여보, 나두 군의로서 의학자요. 이 친구 사복을 입었다구 벌써 상급을 몰라보누만. 동문 연구사지만 우리한테서는 포조준수로서 일개 중사였거던. 나한테서 아찔하게 낮은 하급이지 않았나?》

대좌는 유쾌히 웃었다.

두사람은 두손을 맞잡고 밀기내기라도 하듯 밀치락닥치락 하였다.

리승기는 그들의 그 즐거운 담소에도 불구하고 혼자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이런 때에조차 그저 숭엄한 기분에 젖어 그들을 바라보는것이였다.

그는 일어나 회의장을 향하였다.

토론들이 진행되였다.

공업부문의 한 기술자가 작년부터 수많은 곳에 큰 기계공장들이 건설되고있는데 이것이 준공되면 여기 모인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모든것을 공업화할수 있는 자립적인 토대가 축성된다고 하자 이번에는 교육상이 나와서 토론을 하였다.

1951년부터 각 대학이 적들의 폭격속에서도 전부 교육사업을 다시 진행하고있다는것, 군대에서 소환된 동무들이 훌륭한 인재로 자라나 이제 우리 나라의 과학발전과 전후복구건설에 훌륭히 이바지하리라는것을 말하였다.

어찌보면 그들의 토론이 전쟁이라는 현실을 떠난 공담같기도 했다.

꼭 전쟁이 끝난 다음날에 하는 토론들같았다.

그런데도 장내는 박수소리로 떠나갈듯 하다.

리승기는 종시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첫날회의가 끝나 숙소에 돌아와 누워보았으나 잠이 오지 않아서 리승기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보다 늦게 들어와 막 옷을 벗고 누우려는 김용석의 팔을 잡았다.

《옷을 입구 좀 같이 밖에 나가 바람을 쐬지 않겠소?》

김용석은 무슨 긴히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얼른 뒤미처 따라나왔다.

그들이 앉은 곳은 대동강쪽 모란봉기슭이였다.

야간폭격이 뜸해진 평양의 밤은 조용하였다.

앞에는 아직 잎새가 돋지 않은 떨기나무덤불이 어둠속에 보이고 그아래 어디선가는 대동강의 물소리가 들려오는듯싶었다.

리승기는 이 순간에 《김일성장군님은 어떻게 이런 때에 이런 회의에 참가하실수 있는가?》하고 묻고싶었으나 모르는것이 많은 제가 갑자기 부끄러워나서 그렇게 물을수가 없었다.

그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용석동문 김일성장군님을 가까이에서 모신적 있다구 했지?》

《네.… 최사직속 고사포에 있었으니 가까이 모실 때가… 참, 회의휴식시간에 제가 만났던 그 대좌가 있지 않습니까? 군의국에 있는 그 대좌동지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돌보는 임무를 수행하던분입니다. 특히 후퇴때 고산진에서 말입니다. 그때 저두 직속구분대에서 그분이랑 같이.》

《그렇구만. 그래서?》

김용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흥분을 진정시키며 침착하려고 애쓰는것 같았다.

어둠속에서 그의 얼굴빛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렇게 짐작되였다.

김용석이 말했다.

《제가 장군님을 가까이에서 모셨다구 할수 있는 기회는 짧았으나 얘기는 많습니다. 후퇴하시여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농민들의 콩마당질을 도우신 이야기며 수두룩합니다.… 그 대좌동지는 말입니다. 그 당시 최고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돌볼 책임이 있었으니만큼 우선 진찰을 해봐야겠는데 그이께서 얼마나 바삐 지내시는지 틈을 얻을수가 없었단 말입니다. 그이께서는 보통 밤 2시, 3시에 주무시는데 4시면 벌써 깨여나셨습니다. 대좌는 부관과 함께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깨시자 이내 들어가 진찰을 하자는거였지요. 그런데 그날은 웬일로 5시가 되도록 깨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척 기뻤습니다. 오늘은 좀 주무시는게라구 말입니다. 얼마후에 그이의 그림자가 문에 얼씬거렸습니다. 이때라고 생각하며 군의동지와 부관이 들어갔습니다. 그이께서는 일어나 앉으셨으나 그이의 베개밑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펼쳐졌고 거기에는 붉은 줄이 죽죽 그어져있었답니다. 언제 잠을 깨셨는지는 모르나 벌써 그동안 책을 많이도 읽으셨던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폭넓은 학습을, 그것도 매일 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학습을 주요한 혁명과업으로 인정하시였습니다. 그것을 조선실정에 구체화하시여 조선인민이 걸어갈 길을 찾아내기 위한 사색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왜 자지들 않고 이러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도리여 들어온 사람들을 걱정하시였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의 건강진찰을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대좌는 처음으로 그이의 맥박, 체온, 혈압을 알았습니다. 청진과 타진도 하였습니다. 이상이 없으시였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지 모릅니다. 그이의 건강이자 조국의 건강이 아니겠습니까.

〈최고사령관동지, 계속 밤을 새우시는데 건강을 돌보셔야겠습니다.〉

하고 대좌가 의사답게 말씀을 드리였을 때도〈잠이 안 오는걸 어떻게 하오. 벌써 20년동안 붙여온 습관이니 어떻게 고치겠소.〉하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는겝니다.》

고개만 끄덕이며 김용석의 얘기를 듣던 리승기는 불현듯 혼자 생각하였다.

(20년동안! 항일전의 20년세월! 나라를 찾기 위해 산에서… 둬시간밖에 주무시지 못하는것이 습관으로 되시다니…)

그러자 이상한 생각이 가슴을 허비였다.

(그 20년은 내가 일본에 가있던 시기와 맞먹는다. 아버지의 뜻을 좇아 민족의 문명과 개화를 위한다고 청운의 뜻을 품고 떠났다해도 어쨌든 돈냥이나 대줄데가 있어서 간것이 아니더냐. 내가 일본에서 받은 그 온갖 민족적멸시와 수모를 가셔주시려고 장군님께서는 산에서 풍찬로숙하시며 강도 일제를 반대하여 목숨을 내대시고…)

아침에 리승기는 여느때없이 수굿하니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긴듯 곁눈 한번 돌리지 않고 회의장을 향해 걸어갔다.

첫 휴식시간에 리승기는 이번에 여기 와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계응상박사와 얘기를 나누려고 그를 찾아 두리번거리였다.

불빛에 그의 안경알이 번뜩이였다.

그런데 김용석이와 리재업이 각기 다른 문간에서 나타나 그를 띠여보고 동시에 다가왔다.

김용석이 먼저 말했다.

《홍명희부수상동지가 선생을 급히 찾습니다.》

두사람은 리승기를 찾아다니던 중이였다.

홍명희가 리승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홍명희의 가까이에는 방하민부국장이 서있었다.

방하민이 한팔을 뻗쳐 리승기를 홍명희한테로 안내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홍명희는 몇걸음 앞으로 마중나오며 급히 말하였다.

《장군님께서 승기선생을 만나자구 하십니다.》

뜻밖의 일이여서 리승기는 《네?》하고는 말을 못하고 섰다.

홍명희는 리승기의 팔을 가벼이 잡아주었다.

《자, 갑시다.》

리승기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면서 이끌리듯 걸음을 옮겨갔다.

그는 흥분을 누르면서 문앞에 다가가 몸가짐을 단정히 하려고 애썼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승기를 여러번 만나 아시기라도 하신것처럼 반갑게 맞아주시며 리승기의 손을 꼭 쥐고 말씀하시였다.

《리승기선생, 건강이 어떻습니까?》

《전 건강합니다. 장군님께서 건강하신 모습을 뵙게 되니…》

리승기는 목청을 가다듬을수 없어 말이 더 나가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기어이 리승기를 먼저 자리에 앉히신 다음에야 자신께서도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상대편에 담배를 권하시다가 리승기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것을 아시자 《그 참 잘하셨습니다. 난 해방후에 늦게야 배웠는데 일이 복잡해지는 가운데서 잘 끊게 되지 않습니다.》하고 미소를 지으시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그 허물없는 첫 말씀에 리승기는 대뜸 앉은 자리가 퍼그나 편하게 느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째선지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하지 않으시면서 그것을 그냥 손에 드신채 말씀을 하시였다.

《듣자니 남조선에 계실 때 몹시 앓았다구 하던데 해방전에도 건강이 나빴구… 지금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런 몸으로 후퇴때 고생이 참 많았겠습니다. 가족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니옵니다. 남들이 다 겪은 고생인데. 그리구…》

그렇듯 어려운 시기에 폭격에 위험하니 산길로 오라구 소발구를 보내도록 해주신 장군님께서 그때는 무척 가까이 계신다고 생각되여 그 고마움에 한달음 달려올것 같았는데 막상 이렇게 그이의 곁에 앉고보니 어떻게 무슨 말부터 시작해서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몰랐다.

불현듯 그때의 일이 새로운 감격으로 눈앞에 떠오른다.…

…그들은 천신만고하여 어느 마을에 도착하였다.

사방에 눈이 지북이 쌓이고 길은 딴딴히 얼어붙어있었다.

상부와의 련락을 취한다고 일행이 더러 먼저 떠나고 리승기네 가족을 비롯한 일부 성원들은 하루쯤 숨을 돌리다가 별다른 련락이 없으면 신파방향으로 떠나기로 하였다.

그다음날 저녁이였다.

도무지 달구지군같지 않은 차림의 웬 중년의 사나이가 소발구를 몰고 마을길에 나타났다.

그때 리승기는 통나무방틀마저 얼음속에 묻힌 우물가에 서서 물을 긷고있었다.

그는 매끄러운 얼음판에 자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미투리를 신은 발에 힘을 주면서 드레박을 우물속에서 춰올리느라고 곁에 사람이 다가온줄도 모르고있었다.

《혹시… 리승기박사선생이 아니십니까?》

하는 말소리를 듣고서야 머리를 돌려 멍하니 낯선 사람을 건너다보았다.

흡사 리승기라는 제 이름조차 다 잊은듯 잠시 대답도 못하다가 엉겁결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사나이는 미끄러지는 발을 내짚어 몸을 가누더니 리승기의 손에서 드레박줄부터 앗아들고는 물동이에 물을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드레박을 팽개치듯 놓고 리승기의 손을 량손으로 그러쥐였다.

《먼길에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제 여기 면인민위원회 지도원입니다. 련락이 와서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리승기는 얼떠름하기만 했다.

《자, 이쪽으루 좀 내려서십시오. 매끄러운 그우에 서시지 말구…》

소발구군은 손을 잡아 조심조심 리승기를 눈무지옆의 평탄한 곳에 이끌어준다.

《저 소발구옆에 갑시다.》

퉁눈의 황소가 방울소리도 요란히 영각을 내지르고 널판자를 깐 발구판우에는 돗자리까지 깔려있었다.

중년의 발구군은 소발구옆에 다가서며 리승기를 향해 돌아섰다.

《이리로 와보십시오.》

리승기는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다.

《어디서 오셨다구요?》

발구군은 미소를 지으며 아까 제가 한 소개를 되풀이했다.

《제 여기 면인민위원회에서 일보는 사람올시다.》

그러면서 그는 솜저고리품에 손을 넣었는데 신분증이나 무슨 증명서를 찾는것 같았다.

그 눈치를 알고 리승기는 부랴부랴 그의 팔을 쥐여 그러지 못하게 하였다.

《알겠습니다.… 헌데 어떻게 되여 이렇게…》

발구군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상부에서 보냈다지 않습니까? 여기서 먼저 떠난 사람들한테서 보고를 받구 산업성소개지인 수풍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산업상 김책동지한테서 말입니다.》

리승기는 서울을 떠나 평양에 들렸을 때 김책산업상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그가 자기한테 무척 관심을 가진다는것은 알고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묻지도 못하는데 발구군이 흥분에 겨워 말을 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직접 지시가 계셨다구 합니다. 리선생님이 가족과 함께 길을 떠나 도중에 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구 장군님께서는 자동차보다 달구지나 소발구를 내서 폭격이 위험한 대도로가 아니라 산길로 오게 하라구 하셨답니다.》

《뭐라구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리승기는 떠듬거리였다.

너무도 큰 놀라움이였다.

그러다가 그는 엉겁결에 물었다.

《그래 장군님께선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자 발구군도 말을 못하다가 띠염띠염 이렇게 말했다.

《글쎄말입니다. 이 위중한 시기에… 아마 강계쪽에 계신다는 말두 있구…》

그러다가 그자신이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장군님은 항상 우리들곁에 계시는것만 같습니다. 우리들 가까이에 말입니다.》

《가까이에… 가까이에…》

리승기는 덩달아 그 말을 뇌이였다.

정말이지 이 순간 리승기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아주 가까이에서 자기를 기다리시는것만 같아 얼른 뒤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연신 되뇌이였다.

(폭격이 위험한 대도로가 아니라 산길로… 산길로… 그래서 소발구로… 소발구로…)

리승기는 머리우의 하늘과 길옆의 눈무지들이 휘휘 내둘리면서 현기증이 났다.

발구군이 얼른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눈무지에 쓰러졌을수도 있었을것이다.

과로와 긴장으로 이 엄청난 충격에 그가 견디기 힘들게 되였으니 말이다.

집앞에 소발구가 이르렀을 때 만삭의 임신부인 안해는 너무나 감지덕지해서 눈잔등이 벌겋게 달아올랐으며 남편과 발구군의 부축을 받아 발구에 올라앉아서는 눈구석의 물기를 보이지 않으려는듯 고개를 외로 돌렸다.

언니의 잔등에서 마침내 풀려나오게 된 두살짜리 계집애가 제 어미의 품에 파고들듯 옹기작거리며 좋아서 캐득거린다.

제일 고생이 많은 4살짜리가 오르고 둘째남자애는 그래도 사내라고 맨 마감으로 점잖게 올라앉더니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돌린다.

발구의 뒤에 리승기와 10살의 맏아들 그리고 12살의 딸애 혜연이 따라섰다.

《끼랴! 쩌쩌… 끼랴!》

면지도원이라는 사람은 평생 발구군으로 늙어온 사람처럼 제법 능숙하고도 흥겹게 소를 몰다가 리승기를 뒤돌아보며 유쾌하게 말했다.

《이제 산에 들어서면 선생님두 발구에 오르십시오. 눈길에 슬슬 미끄는게 그저 그만일겝니다.》

리승기는 끓어오르는 심정에 그저 머리만 끄덕이였다.

제일 고생이 많던 4살짜리가 발구우에서 그래도 제 동생이라고 솜저고리로 꽁꽁 싸주며 혜연에게 말했다.

《언니야, 언니두 여기 타려마.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러자 혜연이 어른스레 대답을 했다.

《내 걱정은 말아. 난 여기서 걸어두 힘들지 않아. 내 등이 가벼워지니 막 날것 같구… 또 어머니가 얼음판에 넘어지지 않겠으니 그게 제일 좋구나.》

산그림자가 걷히고 하얀 눈길은 해빛에 빛났다.

리승기는 두눈을 쪼프리고 앞쪽으로 흘러오는, 눈에 다져진 길을 바라보며 발구를 따라 걸어만 갔다.

저앞에서 뜨거운 손길이 기다리고있어 발구는 더 거침없이 미끄러져가는듯싶었다.

그렇듯 끝날줄 모르던 길이 이제는 그리 아득해보이지를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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