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 회)
7. 충격, 일본에 있는 조선 《인터라즈》의 주인이 《자유》의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왔으면 그래도 그 나라의 새로운 광고주문이 있을수도 있으련만 《인터라즈》는 여전히 사회주의나라들을 기본으로 하여 돌아가고있었다. 또한 《인디안 타임스》에도 《자유》의 나라에 대한 그의 반응이 실릴수도 있으련만 거기에 대해 쓴 아무런 글도 엿볼수가 없었다. 비슈와나스의 생활에서는 조그마한 변화도 반응도 일어나지 않고있었다. 그는 묵묵히 《인터라즈》의 일을 예전대로 내밀었으며 또한 변함없이 조선을 찬양하는 글들을 쓰고있었다. 1973년 12월 10일. 이날에 조선령사관이 대사관으로 승격되였다. 인디아와 조선이 대사급외교관계를 맺었던것이다. 제일 기뻐한것은 비슈와나스였다. 이때 장경일이 2번째로 다시 인디아에 파견되여왔다. 비슈와나스는 조선대사관에 더 자주 드나들면서 필요한 자료들을 요구하여 가져다보았다. 1974년 4월 15일을 맞으며 비슈와나스는 처음으로 조선에 대한 연구토론회를 조직하였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참가한 사람들의 급수는 낮지 않았다. 정부의 각료들 10여명과 전국의 모든 주들에서 이름있는 학자들 30여명을 초청하여 실속있는 토론회를 마련하였던것이다. 널리 선전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전국적인 토론회였다. 일이 잘될 때라 알따브 후쎄인과 아브둘 말라크도 뉴델리에 와있어서 그들도 참가하였다. 그러고보면 국제적성격을 띠는 모임이기도 한것이였다. 조선에 대한 반향은 모두가 좋았다. 참가자들은 조선에 대한 연구모임을 자주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러자면 이 모임 참가자들을 하나로 통솔하는 그 무슨 조직체의 이름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참가자들이 토론끝에 내온것이 《주체사상연구회》였다. 비슈와나스가 이 회의 서기장으로 선출되였다. 비슈와나스는 회장으로 에취. 디. 말비아를 추천하였다. 그는 비슈와나스보다 나이가 20년이나 우였는데 국회의원으로서 이름있는 정치가였다. 인디아국회는 량원제였다. 라쟈싸바(상원)는 350명으로서 국회가 선거하였으며 록싸바(하원)는 561명으로서 인민들이 선거하였다. 말비아는 록싸바로서 인민들의 신망이 높은 사람이였다. 그는 조선에도 가본 사람이였고 주체사상의 원리를 인디아의 현실에 구현하려고 모색하고있는 사람이였다. 바로 그런 사람을 회장으로 내세워야 조직의 권위가 보장된다고 비슈와나스는 생각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세월을 거슬러올라가며 주체사상연구조직의 력사를 정립해보면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조직되여 활동한 전국적인 주체사상연구조직으로 되는것이다. 이렇게 되여 세계적으로 주체사상을 연구보급하는 첫 전국조직이 인디아에서 탄생하게 된것이였다. 근 50명에 달하는 이 회의 성원들은 이때부터 통일적으로 움직이며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토론을 정례화해나갔다. 인디아의 작가부부로서 후날 조선에 대한 시들과 김정숙어머님에 대하여 쓴 도서 《위대한 어머니》를 내놓아 유명해진 프라브죠트 카우르와 나렌데르 필 싱도 이때부터 이 회의 성원들이였다. 이 회의 성원들은 전국각지에서 회원들을 늘여갔다. 이것은 앞으로 출현하게 될 인디아에서뿐아니라 세계에서 제일 큰 주체사상연구집단인 《인디아주체사상연구학회》의 맹아적단계라고 말할수 있는것이였다. 이때부터 비슈와나스는 조선에 대한 연구보급사업을 소리내며 크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어느날 비슈와나스는 장경일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조선이 그렇게 훌륭한 나라인가?》 직방 물어보는 그의 말에 장경일이 무엇이라고 대답을 주랴. 《그것이야 가보면 알게 아닌가.》 하긴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자랑을 맞대놓고 늘어놓을수 있으랴. 본국사람의 말이 아니라 나의 눈으로 모든것을 보고 판단해야지. 비슈와나스는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꼭 한번 가보리라고 생각하고있었다. 북조선에 가보았는가고 묻던 남조선대사관작자들의 그 야유어린 눈길이 가슴에 못박혀있었던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조선에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맞서는자들에게는 끝까지 이겨야만 시원해하는 그의 성미였다. 그해 11월 비슈와나스는 도꾜에서 열리는 국제박람회에 가게 되였다. 정부에서 인디아대표단성원으로 그를 선출하였던것이다. 《인터라즈》는 나날이 활성화되여 나라의 광고뿐아니라 전시에서도 손꼽히는 회사로 알려지고있었던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조선을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한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도꾜에 조선의 해외교포조직인 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는 책을 통하여 일본에 총련이 있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진짜 그렇게 훌륭한 조직이 있는가 하는것은 제눈으로 보지 못하였던것이다. 이번 기회야말로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조선의 해외동포들을 만나보고 총련을 방문해보면 조선에 대한 자기의 인식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것은 판명될것이였다. 모든것은 제눈으로 직접 확인할 때에만이 확고한 신빙성을 가지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총련방문의사를 조선대사관에도 알리였으며 인디아외무성에도 통보하였다. 그는 모든 사업을 원만하게 할줄 알았다. 이것은 그의 장점이였다. 11월말 그는 도꾜에 도착하였다. 국제항공역인 나리다비행장은 눈이 얼리우게 화려하였다. 혼잡을 이룬 도시는 붐비였다.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도꾜에 대한 그의 첫인상은 대기가 심히 오염되여있다는것이였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도꾜는 인구밀도가 조밀한 도시였다. 그런데다가 공장들과 교통수단들은 집중되여있었다. 이런 도시는 례외없이 대기오염, 먼지, 소음 등으로 생활환경이 파괴되여 공해가 심해지지 않을수 없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체류기간 박람회를 하는 짬짬에 도꾜시가를 돌아보았다. 도시의 중심부를 이루는 스미다천서부지역은 비교적 높은 지대로서 여기에는 일본의 최고통치기관들과 독점자본가들의 은행, 회사, 상점들이 집중되여있었다. 또한 이 지역은 일본의 고위관리들과 독점자본가들의 호화로운 주택지구로 되여있었다. 반면에 동부지역은 인구밀도가 조밀한 빈민거주지역이며 로동자지구로 되여있었다. 그는 또한 에도성을 비롯한 유적유물을 돌아보면서 싸움으로 얼룩진 일본의 력사에 대한 조예를 깊이했으며 특히는 한 나라의 수도에 자리잡고있는 미군기지를 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였다.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을 틀어쥔 극소수의 특권계급이 근로대중을 착취하는 자본사회의 전모는 여기 도꾜시가에도 력력히 비껴있었다. 반면에 비슈와나스는 총련을 방문하고 놀랐다. 도꾜거리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지요다구의 높은 언덕에 공화국기가 버젓이 날리고있었다. 여기에 바로 전체 재일동포들의 의사와 리익을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해외공민단체인 총련이 자리잡고있는것이였다. 조선의 축소판이 도꾜에 있는듯한 인상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총련 국제부일군들의 마중을 받았다. 과장 백한기와 젊은 영어통역인 최관익이 그를 안내하였다. 모두가 그의 방문을 기뻐하는것이였다. 이들도 조선대사관의 사람들과 다름없이 친근한 조선의 벗들임이 틀림없었다. 모두가 활기에 넘쳐있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비슈와나스는 총련중앙본부와 조선대학교, 조선은행, 총련상업쎈터 등 총련의 여러곳들과 조선인기업들을 돌아볼수 있었으며 재일조선인들의 생활을 체험할수 있었다. 그는 일본에 있는 모든 조선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생활하고있는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조선사람들속에 있으면서 시종일관 그는 마치도 자기가 조선에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비슈와나스는 조선은행에서 총재와 부총재를 만나보고 그들의 높은 지성도와 영민한 사고, 포괄적인 리해력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들은 이 은행의 초기설립자들이며 오늘과 같이 은행을 번창하게 하고 확대시키기 위하여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이였다. 기자이지만 금융을 전공하고 손꼽히는 광고주식회사를 이끌고있는 비슈와나스에게 있어서 은행을 들여다보는것은 어느 나라에 가서도 놓치지 않는 하나의 중요한 일로 되고있는것이였다. 때문에 그의 모든 사회학적인 글들은 구체적인 수자와 경제적분석이 밑바탕에 안받침되여있는것으로 하여 보다 신빙성있고 깊이있는것으로 세상에 알려져있는것이였다. 총련조직이 있는 모든 곳에 《김일성원수혁명활동연구실》들이 잘 갖추어져있었으며 정연한 교육체계가 서있었다. 총련은 살아움직이는 산조직이였다. 조선의 적대국 자본주의일본에 살고있으면서도 가슴을 펴고 조선의 해외공민임을 떳떳이 자랑하는 이사람들! 이들의 가슴속에 활력을 부어주는 그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인가?! 그는 총련의 여러곳을 돌아보면서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점차 깨닫게 되였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조국, 위대한 수령이 자기들을 지켜주고있다는 긍지가 가득차있는것이였다. 위대한 조국, 위대한 수령의 령도를 받는 한 이 세상에 두려울것이 하나도 없다는것이 이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확고한 신념이였고 드팀없는 의지였다. 갑자기 글의 제목이 떠올랐다. 태양은 빛난다! 그렇다. 나는 그 제목으로 글을 쓸것이다. 조선에 대해 쓴 첫 기사의 제목이 《태양》이였다면 이번에는 《태양은 빛난다》로 쓸것이였다. 신문기사? 아니, 책으로 써야 한다. 비슈와나스의 머리속에는 벌써 활자로 찍힌 두툼한 책이 떠오르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바다멀리 이역땅에서도 자기들에게 참다운 조국과 민족적존엄을 안겨주신 김일성동지를 민족의 태양으로 우러러 흠모하면서 애국사업에 힘차게 떨쳐나서고있는 재일조선동포들의 슬기로운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김일성동지는 참말로 위대한 태양이시였으며 그 빛발은 그들의 마음속에 등대로 비치고있었다. 총련은 공화국공민권을 비롯한 제반 민족적권리를 영예롭게 지키고있었으며 또한 귀국의 권리와 조국래왕, 제3국에로의 려행의 권리 등을 다 행사하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총련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을 만나고 총련의 대외사업과 조국통일을 위한 그들의 노력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인식을 할수 있었다. 부의장은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여러차례 사회주의조국을 방문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닌 사람이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원한 주체의 철리와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탁월한 경륜, 고매한 덕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비슈와나스는 해외교포운동의 명망높은 활동가인 총련중앙상임위원회 한덕수의장을 만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의장에게서 총련이 걸어온 자랑찬 력사에 대해 들으며 자기가 조선의 위대한 수령에 대하여 글을 써온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다시한번 떳떳이 생각되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이미 조선의 근대력사는 김일성동지의 혁명활동력사라는것을 알고있었지만 조선의 해외교포조직인 총련이 걸어온 로정까지 그이의 사상이 빛나게 구현된 그이의 력사일줄은 정녕 생각하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그는 한덕수의장과 말을 나눌수록 그에게서 확확 내뿜는 자기 수령과 자기 조국, 자기 민족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과 헌신적복무정신의 열화가 자기의 가슴에도 흘러드는듯싶었다. 총련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하였다. 이것은 세상에 없는 일이였다. 인디아사람들도 해외에서 많이 살고있는데 이런 조직은 어디에도 없었다. 확실히 총련은 세계해외교포운동력사의 견지에서 볼 때에도 선구자적모범을 창조한 본보기조직임이 틀림없었다. 비슈와나스가 총련방문을 통하여 강하게 받아안은것은 조선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이였다. 한덕수의장은 총련은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에 의하여 지도되는 해외교포조직이라고 말하였던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주체사상을 지도리념으로 하는 사회주의조선의 면모를 여기 총련에서 보는듯 했다. 그야말로 일본에 있는 조선이였다. 비슈와나스에게 있어서 총련이 준 감흥은 실로 큰것이였다. 총련! 그는 조선을 돌아본듯한 감정이였다. 총련을 돌아보고 무엇보다 기쁜것은 자기가 생각한 모든것이 옳았다는것을 증명하게 된 그것이였다. 자기의 견해가 부정되는 현실을 본다면 언론인으로서 그것처럼 괴로운 일이 어데 있으랴. 사람은 자기자신에 대한 신심을 가질 때가 제일 행복한감을 느끼게 되는것인지도 모른다. 비슈와나스는 흥분하였다. 《쏘베트 땅》에 맑스―레닌주의리론을 해설론증한 숱한 글들을 편집하면서도 일찌기 이런 흥분은 없었다. 언제인가 나는 비슈와나스와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한적이 있다. 《선생은 맑스―레닌주의를 신봉하였습니까?》 《나는 맑스―레닌주의를 인정하기때문에 그와 관련한 숱한 글들을 편집은 했지만 사실 신봉은 하지 않았소.》 《그러면 신봉하는척은 했습니까?》 《신봉하는척도 하지 않았소.》 《맑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척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주체사상을 그렇게 열렬히 신봉하게 되였습니까?》 《공감되였기때문이요.》 솔직한 말이였다. 바로 그것이였다.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심오한 철학적원리에 기초하여 사람과 세계와의 호상관계를 새롭게 밝힌 주체사상은 맑스주의정통파였든 아니였든 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첫 순간부터 공감을 자아내게 하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불쑥 내친김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으로 곧추 가 주체사상이 구현된 조선의 전면모를 속시원히 확인해보고싶었다. 대안의 일을 알려면 강을 건너가 보아야 안다. 뉴델리에서 평양까지는 멀다. 그러나 여기 도꾜에서 평양까지는 그보다 훨씬 가깝다. 이렇게 생각하니 여기까지 왔다가 평양에 가지 않는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여겨지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일정을 변경시켰다. 박람회를 치르고난 그는 대표단과는 별도로 조선을 방문하고 귀국할것을 결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