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2 편

제 2 장

1

 

북부산간지대의 산골짜기였다. 7월의 한낮은 한소나기 퍼부을듯이 찌물쿠었다. 수레길이나 다름없는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발밑에서는 뜨거운 황토먼지가 풀썩풀썩 일었다.

리승기는 연구조수인 오정해와 함께 후창에 가는 길이였다. 자동차와 마차를 얻어타기도 했으나 후창이 가까와올수록 차들의 왕래가 뜸해져서 줄창 걸어야만 했다. 리승기는 젊은 연구조수와 같이 떠난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리승기의 나이는 마흔일곱, 아직은 먼길에 자신을 잃지 않으나 어쨌든 도중에 차를 세운다든가, 숙식을 마련하는데서 이 스물한살의 총각은 리승기의 더없는 길동무이고 조수로 되였다.

원산농대에 가서 섬유에 관한 강의를 해달라는 교육성의 청탁뒤에는 계응상박사의 개별적인 초청이 숨어있을듯도싶다. 이 이름있는 박사들은 서로 이름은 많이 들었건만 과학자대회에서 처음 만난데 불과하고 섬유학자로서 (한사람은 합성섬유, 다른 한사람은 생물학자로서 자연섬유의 전문가이지만)아직 이렇다 할 과학상의 면담은 없은터였다.

리승기는 너무 더워 나무그늘에 묻힌 돌개울로 내려갔다. 바위에 부딪치며 사품치는 산골물에 발을 잠그면 뼈가 저리도록 시원하다. 전신에 짜릿한 서늘함이 쭉 퍼지는것만 같았다. 무겁던 다리가 일시에 거뿐해진다.

그러나 길에 올라서서 걷느라면 얼마 못 가서 온몸에 땀이 흐른다. 정해의 등에는 몇개의 참고서와 약간의 길량식이 든 배낭이 있었다.

그들은 오면서 얘기란 얘기는 다 해버려서 이제는 다 밑창이 났다. 정해가 더 많은 말을 했음은 물론이다. 리승기가 제 생각의 연장인듯 전혀 동에 닿지 않는 말, 이를테면 다른 부문의 학술상문제나 북부산간지대 사람들이 입는 겨울옷감에 대하여 불쑥 물을 때면 정해는 잠간 벙벙해지다가도 명민한 두뇌로 제꺽 자기딴의 지식과 견해를 말하군 하였다. 별로 주의깊이 듣는것 같지 않으면서도 리승기가 다 듣고있다는것을 아는 정해는 신이 나서 주어대는것이였다.

리승기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쉬고 가야 할가보군.》

산골짜기의 어스름은 걷잡을수없이 내려앉았다. 한낮과는 달리 퍼그나 서늘해지는 저녁무렵이였다. 벌써 깔따구와 모기들이 앵앵거리였다. 지독한 깔따구는 소리도 없이 급습해서 달려들군 하였다.

어디선가 다듬이소리가 들려왔다. 돌개울건너 외딴 집쪽에서였다. 저아래로 몇채의 농가들이 보였으나 웬일인지 리승기는 다듬이소리가 들리는 그 집으로 가서 하루밤 류숙해보자고 하였다.

고향집어머니의 부름소리처럼 정다웁게 들리는 다듬이소리였다. 문득 리승기는 제가 좋아하는 칼제비국을 해주느라고 어머니가 잦은가락으로 울리던 칼도마소리와 함께 그 어머님의 다듬이소리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지도 3년이다.

주인을 찾아 하루밤을 자려고 했을 때 부엌문으로는 그 집 안주인이 베치마자락에 물묻은 손을 훔치며 나오더니 허리굽혀 인사를 받는다. 주인내외는 60이 가까와보였다. 의문스레 웃방쪽 창호지문을 보는 정해의 눈길에 대답하듯 주인령감이 말했다.

《우리 어머님이시우다. 래일모레 90인데두 저렇게 앉아 다듬이질이우다. 귀가 절벽이여서 다른 사람이 다듬이질소리에 귀가 아픈줄은 생각해주지두 않는다우. 내가 어머님 해파람을 하는게 아니라 손님들께 미안해서 하는 말이우다.》

토방에 올라 구름노전을 깐 정지방에 들어선 리승기는 열려진 문으로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할머니가 피뜩 이쪽을 보자 얼결에 리승기는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동네사람을 보듯 고개를 한번 끄덕하며 답례를 표시한다. 방 한구석에는 사람의 앉은키만 한 높이로 겨릅대를 붙인 등불이 켜져있었다.

할머니는 이발이 다 빠지고 머리가 새하얗게 세여 옛말에 나오는 산신령이나 백발도사를 련상케 하였다.

할머니는 다듬이질을 지꿎게 멈출줄 모른다. 어지간히 큰 넙적한 방치돌에 또한 다듬이방치도 아이머리만큼이나 컸다. 이따금 그것을 노전우에 놓고 이번에는 빨래방치같이 가느다란 다른 다듬이채를 량손에 들고서 똑깍 똑깍… 두드린다. 한쪽채를 두번 칠새에 다른 채를 한번 쳤는데 그것은 장단처럼 가락맞게 울리였다.

절인 고등어 한토막이 어찌나 짠지 두사람은 각기 조밥 한그릇씩을 그것으로 다 먹을수 있었다. 정해는 먹자마자 목침을 베고 할머니의 뒤쪽벽가에 돌아누워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졌다.

리승기는 어쩐지 할머니와 말을 나누고싶었으나 할머니의 귀가 절벽인것이 안타까왔다. 그는 할머니가 다듬이질을 해놓은 베천과 아랑주천을 불빛에 비쳐보았다. 열새, 열두새, 보름새나 되는 가늘고 보드라운 베실이 다듬이질에 짓눌려 실과 실의 짬이 없어져 무슨 얇은 짐승가죽같았다. 어찌나 오래 두드리였던지…

리승기는 삼밭에 서있는 삼대가 이런 베천으로 되기까지의 그 복잡한 공정을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구뎅이를 파고, 불을 때고, 돌덩이들을 놓고 거기다 삼대를 넣고는 나중에 숱한 사람들이 겨끔내기로 물을 길어다 붓는 삼굿으로 삼대를 쪄내는데 그것은 무슨 년례행사처럼 대단한것이다. 겨울날의 긴긴밤에는 아낙네들이 무릎에 썩살이 배기도록 삼을 삼으면서도 밤참이랍시고 움에서 바가지로 김치를 꺼내다 쭉쭉 찢어서 먹군 하던 그 정상… 실을 도투마리에 올리고 둥굴레풀로 풀먹임을 하여서는 베틀에 앉아 삐꺽삐꺽 발대를 엇바꿔디디며 바디질을 하던 이 나라의 녀인들…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 나라에 무명천이 생기기 그 이전에 조상들은 무엇을 입고 살았던가. 이 삼베천이 아니던가. 흔하지 않은 명주천이야 베틀에 앉아보지도 않은 놀고먹던 년놈들이나 입었을테지.…

할머니는 깔따구가 기여든다고 어느새 이마에 쑥테를 두르고 앉아 여전히 다듬이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할머니는 저렇게 쉬지두 않구 다듬이질을 합니까?》

리승기가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은 엄지손가락으로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담으며 얼른 대답을 안하자 부엌에서 그릇을 부시던 안주인이 구들을 올려다보며 말참녜를 했다.

《그러기말입니다. 만날 저러구 앉아있지요. 망녕이 드셨나보우다.》

《또, 또…》

주인은 찔 눈을 흘기며 안주인을 가로보았으나 그럴수록 부엌의 목청은 더욱 높아진다.

《아 글쎄 선생님들 들어보시우다. 장농속에 두었던걸 볕에 내불리기두 하구 저렇게 구멍이 나도록 다듬이질이지요.》

그제사 주인은 멋적은 웃음을 띠우며 리승기를 쳐다보았다.

《우리 아들 셋이 군대에 나간데다가 열아홉살짜리 딸애까지 군대에 나갔수다. 어머님은 그 손녀가 전선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저 베천들을 대를 물려 바수개(례장감)로 준다나요. 해방후에 장만한 세루천도 얼마든지 있는데… 허허 참.》

참말 그게 망녕된것이겠는가. 그렇게 볼수야 없지 않은가. 자기가 일생을 통해 마련한 가장 값진 재산으로 여기고 이 열새, 보름새 베천들과 아랑주천필을 고스란히 손색없이 전선에서 돌아오는 손녀에게 물려주려는 저 귀먼 할머니의 소원을 어찌 웃음으로 날려보내며 더구나 로망에서 오는 가긍하고 궁색한짓으로 대할수 있으랴.

밤에 리승기는 꿈을 꾸었는데 백발의 그 집 할머니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복입은 손녀를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보았다.

이튿날 아침 일찌기 조반을 치르고 그 집을 나서는데 그때 벌써 뒤에서는 다듬이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똑딱똑딱… 따가닥따가닥…》 쉬임없이 울리고있었다.

리승기는 점점 멀어지는 그 소리에 귀기울이며 발걸음을 주춤거리였다. 다듬이소리, 다듬이소리, 밤이나 낮이나 가락맞게 끝없이 들리는 저 소리는 고향집어머니가 찾으며 불러주는 다정한 목소리인듯… 먼 전선에서 할머니의 손녀도 저 다듬이소리를 듣고있을듯싶었다. 몇백년인지 몇천년인지 흘러내려오는 저 다듬이소리에 깃든 이 나라 할머니, 어머니들의 소원과 수고가 다시, 또다시 헤아려졌다. 문득 그 다듬이소리를 타고 과학자대회 휴계실에서 하시던 어버이장군님의 목소리가 다시금 뜨겁게 들려온다.

《전쟁이 끝나면 늦습니다.… 지금도 늦었습니다.》

그 이튿날에야 리승기와 오정해는 후창에 도착하였다.

 

2

 

농업대학의 교사들은 림시로 지은 단층가교사로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계응상박사는 어느 농가에 하숙을 정하고 강의에 나가군 하였다. 리승기는 거기서 같이 침식을 하기로 했다.

두번째날 밤 리승기박사는 계박사와 함께 강의안의 방향과 기본체계를 토론하기로 하였다. 한달반쯤 예견하는 강의였다. 특강이니만치 교과서도 교재도 없었다.

리승기는 구름노전을 깐 방안의 웃목을 마치 교단으로나 여긴듯 불과 네댓걸음사이를 뒤짐지고 왔다갔다하며 구술을 하고 오정해가 소반우에 종이장들을 펴놓고 앉아 내용을 요약하면서 속기를 시작했다.

계응상은 자기도 듣겠노라고 바지저고리차림으로 아래목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염소수염을 내리쓸면서 고즈넉이 눈시울을 내리감은채 듣고있었다. 토방에서는 모기를 쫓느라고 태우는 쑥냄새가 풍겨왔다. 7월의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인다. 폭음도 여기서는 영영 멀어진듯 들리지 않는다.

깊은 후방 자기들의 학문분야에서 각기 봉우리를 이루고있는 이 두 학자의 상봉과 강의안토론 그자체만으로도 과학사에 남을만 한것이다. 왜냐하면 민족의 존망을 판가리하는 결사전이 전선에서 벌어지고있는 때에 그들이 여기에 앉아 인류과학을 종횡으로 더듬으며 각기 제나름의 창조세계에 더 깊이 들어서고있기때문이였다.

하지만 리승기는 처음 몇마디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전선에서 군복을 입은채로 소환되여온 그 대학생들에게 무엇부터 강의해야 할지 차라리 아는것만큼이라도 미국놈들의 화학전이나 세균전에 대처하여 반화학을 가르쳤으면… 그러니 차라리 림창직이를 데려오는건데… 아니다. 전쟁이 갈수록 준엄해지지만 민족의 장래를 위해 인류가 달성한 과학의 모든 성과들을 가르쳐주라고 장군님께서는 전선에서 여기로 사람들을 불러주신것이 아닌가. 하다면…

리승기는 생전처음 연단에 나서는 사람처럼 어험어험 하고 헛기침까지 하고나서 말을 시작하자 정해가 머리를 숙이며 받아적을 준비를 했다.

《합성섬유라 할 때 그것은 고분자화학에 속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천연섬유와 화학섬유, 일반적으로 섬유가 고분자인가 저분자인가 하는것은 불과 20여년전만 해도 론의가 분분했습니다. 그러면 섬유가 어떻게 되여 고분자인가 하면…》

리승기는 말을 멈췄다. 앉아서 념불이나 하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계응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계선생, 이거 어떻게 체계를 잡구 무엇부터 말했으면 좋을지 학생들의 수준은 어떠하며 요구하는 내용은 무엇인지…》

《리선생, 걱정할건 없소. 한달반동안 나두 함께 화학에 대해 실컷 들어봅시다. 화학을 떠난 생물학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년전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 고대중세기때부터라도 소급해서 강의를 해주시오. 화학의 발전력사에 기초해야 고분자화학과 합성섬유를 리해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리승기는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습니다. 계선생… 정말이지 생각같애선 이 화학강의를 라지오로 세상에 대고 전파로 날렸으면 합니다. 보아라, 우리 조선사람들은 이 전쟁중에도 세계과학을 감히 내려다보며 그것을 징검돌로 과학도들을 키워내구 과학을 발전시킬 룡꿈을 꾸고있다구 말입니다. 안 그래요?

…이게 다 김일성장군님께서만이 마련하실수 있는 조치이구 그런 자리라구 생각할 때 참말이지…》

《그렇지요, 그렇구말구요. 이 전쟁중에 선생의 그 〈합성1〉호를 공업화할 기적같은 조치를 취해주시는 장군님의 뜻에 대해서는 물론 더 강조하실테지요.…》

바지저고리를 입고 앉은 이 소박한 촌늙은이같은 학자가 체험하는 심정도 리승기와 조금도 다를바 없다.

그리하여 리승기는 말하고 오정해는 받아쓰고 계응상은 앉아서 듣고있었다.

그 내용을 요약해서 여기에 적지 않을수 없다. 그는 물론 리론화학자가 아니라 응용화학자이지만 발등의 불이나 끄는 학자가 아니며 적어도 화학의 먼 과거와 함께 앞으로의 미래도 다같이 안고살아가는 학자이며 그가 강의를 준비하는 이 순간에도 그의 사색과 판단이 깃들어있기에 그것을 스쳐지나가버릴수 없는것이다.

…화학의 견지에서 련금술의 시대라고 말할수 있는 중세기에 사람들은 《철학자의 돌》만 가지면 그 어떤 보통금속도 귀금속으로 만들수 있고 방금 죽게 된 사람도 살려낼수 있으며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도 준다고 확신하였다.

련금술자들은 수은으로부터 금을 만들려면 수은에 금색을 내는 어떤 《제3물질》을 넣으면 될것이라고 믿으면서 이것을 류황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수은에 금색을 돋구어주는 이른바 제3물질의 부류에는 《철학적인 수은》, 《철학적인 류황》, 《철학적인 소금》이 어울려 이른바 세계의 시원체가 이 세가지 원소로 이루어진다는 《3원소설》을 꾸미는데까지 이르렀다.…

근대화학의 서막은 련금술에 최종적인 사형선고를 내리였으나 세계의 물질성과 화학원소에 대한 리해가 철저하지 못한채 화학의 새시대를 맞게 되였다.

1780년에 프리스톨리에 의해 산소가 발견되였고 화학은 원자론을 혁명적으로 시인하는 튼튼한 토대우에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화학자 퍼킨은 키니네의 대용품을 얻으려다가 우연히 1856년에 첫 아닐린염료를 발견하였다. 퍼킨의 발견은 오히려 도이췰란드에서 굉장한 반응을 불러일으켜 합성염료공업이 도이췰란드화학공업의 토대로 되였다. 뒤미처 염료합성이 폭발물제조를 가져왔다. 의약품도 농약도 물감의 합성에서 시작되였다. 참으로 염료합성은 현대화학의 첫 시초라고도 말할수 있다.…

화학연구의 중심지는 18세기 그 발생지인 영국으로부터 이 사업을 법적으로 시인하고 확대시킨 프랑스를 거쳐 화학을 처음으로 적용할수 있는 이러저러한 모든 가능성을 실제로 구현한 도이췰란드에로 옮겨졌다.

프랑스의 라보아제는 단순히 화학자라기보다 화학의 립법자였다. 라보아제가 화학에서 혁신을 일으켜 거둔 성과들은 커다란 사회적관심과 열성을 불러일으켜 학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프랑스로 하여금 근 반세기동안이나 세계과학의 지배적위치를 차지하게 하였다.

리비히는 70년간에 걸친 화학세계에서의 프랑스의 지배적위치를 도이췰란드에 이전시킴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놀았다. 기쎈에 있는 그의 실험실은 현대적인 화학실험연구실의 모범으로 되였다.

순 과학적견지에서 볼 때 유기화학에 의하여 분자를 해명하게 된 사실은 인류가 달성한 위대한 론리적성과중의 하나이다. 이리하여 화학적변화의 원리를 리용하여 복잡한 공간에서의 원자의 배렬을 해명할수 있었으며 이전에는 분석적방법으로 설명하던것을 합성에 의해 설명하면서 실지로 생산을 할수 있게 되였다.…

만일 분자가 호상간 한방향으로 결합된다면 섬유를 얻을수 있고 그것이 여러갈래로 사슬처럼(그물형) 결합된다면 수지를 얻게 된다.

구태여 수지에 대해 한마디 언급해본다면… 하이에르형제가 처음에는 물렁물렁하지만 일단 제품으로 만든 다음에는 굳어질수 있는 등사기로라용재료를 찾다가 니트로화도가 낮은 종이와 장뇌를 가지고 가소성이 좋은 재료를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셀루로이드》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유기합성재료로서 합성수지의 조상일것이다. 바로 가소물은 가장 특색있는 제품으로서 자연계에서는 찾아볼수 없고 오직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낸 새로운 물질인것이다.

최초의 인조섬유는 1889년에 빠리의 전람회에 나타났다. 니트로셀루로즈라고 부르는 명주비슷한 아름다운 광채로 관람자들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지만 그것은 매우 비싸고 질이 낮은 섬유였다. 원료그대로도 사용할수 있는 솜과 당시로서 매우 비싼 질산을 사용하였으니 빛좋은 개살구로 된것이였다. 다음으로 나온 인조섬유가 비스코스법에 의한 인견사였다.…

이것이 첫날에 강의할 체계였다. 화학의 발전사견지에서 고분자화학에까지 유도해오는 과정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것은 필요한 지식이다.

그러나 다음번강의 즉 유기화학공업의 4개의 큰 부류중의 하나인 고분자화학공업, 다시말해서 인조섬유, 합성섬유, 합성수지, 합성고무, 팔프와 종이 등 고분자물질을 만들어내는 공업에 대한 강의는 보다 구체적인것으로 되여야 할것이다.

폴리비닐알콜에 의한 합성섬유생산 즉 《합성1》호의 실험과 생산에 대하여서는 문답식으로, 토론회식으로 강의를 해나갈수도 있었다.…

볼품없는 염소수염을 내리쓸며 듣는지마는지 눈을 감고 앉아있던 계응상이 불시에 눈을 뜨며 약간 도전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아까 19세기의 과학은 화학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엥겔스가 〈자연변증법〉에서 쓴것처럼 19세기가 과학에 크게 기여한 세가지, 다시말해서 물리학분야에서 에네르기전환 및 보존의 법칙과 생물학에서 세포의 발견, 다윈의 진화론은 어떻게 봐야 하겠소?… 강의준비는 끝났으니 좀 앉아서 얘기합시다.》

리승기는 구름노전우에 앉았다. 오정해는 두 학자가 앉아서 나누는 얘기도 모조리 적어나간다. 해면처럼 모든 지식을 빨아들이려는 이 열혈청년 과학도한테 리승기와 계응상은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 담화를 계속한다.

《물론 그게 19세기의 중요한 세개의 발견이고 리론적성과이지요… 하지만 19세기의 화학자 특히는 19세기말의 화학자는 이전시기 물리학자들에 비해 훨씬 더 공업과 밀접히 련결된 새형의 학자들이였습니다. 공업과 과학의 리해관계를 일치시키려는 지향이 매우 강해졌거던요. 화학공업은 단지 화학만을 포괄하는것이 아니라 물리도 포괄하였습니다. 결국 물리학자도 역시 화학공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되였지요.… 그러나 제 보기엔 20세기에 진화론은 생물학분야에서 일정한 진통을 겪는다고 보고있습니다.》

《그 말은 옳소. 멘델의 유전설에 비해 극단적인 환경설때문에 생물학은 마치 정치투쟁처럼 사분오렬이 되였소. 화학이 생물학에 도입될 때 말하자면 분자생물학이라고 할가, 그게 빨리 발전해야 생물학도 제 길에 들어선다고 말할수 있을것 같소. 아무래두 난 릐쎈꼬학파를 리해할수 없소. 릐쎈꼬는 미츄린후계자처럼 자신을 자처하지만 도무지 리해하지 못할 일이 한두가지 아니요. 릐쎈꼬는 학자가 아니라 꼭 무슨… 하여튼 과학의 론적들을 권력의 힘을 빌어 눌러버리려 하거던. 농업전문학교출신이라는게 사실이요?》

《글쎄, 나도 릐쎈꼬에 대해서는 별로 들은게 없습니다.》

《하긴 전문학교출신이 문제가 아니지. 에디슨은 소학교에서 몇달 공부 못하고 락제성적때문에 출학까지 당했을라니. 아마 에디슨은 저지능 고창조의 두뇌였던 모양이지… 그로 말하면 재간있는 발명가형이였으니까.… 하여튼 릐쎈꼬때문에 학생들한테 강의하는데서 머리아픈 일이 더러 있소. 하지만 제정신을 가져야지.…》

그렇게 말하는 계응상을 지켜보던 리승기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과학자대회에서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받아안은 신념 그리고 보총 한자루, 탄알 한알이 귀한 시기에 막대한 자금을 내여 사서 보낸 실험기구들을 어루만지며 뜨겁게 체험한 그 신심과 다를바 없는 마음의 기둥이 이 잠종학자의 가슴속에도 박혀있다는것을 느꼈다.

사실 북반부에 들어와서 마음고생이 많았던 계응상이다. 멘델의 유전학파와 다름없다고 반동학자로까지 몰리우며 우여곡절을 겪었다는것도 리승기는 알고있다.

반동학자라니? 학자란 말에 반동이란 말이 붙으면 그가 누구든 그를 벌써 학자라고는 부를수 없지 않겠는가.

한데 계박사는 해방전에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우리 나라 기후풍토에 맞는 잠종들을 육종해냈었다. 만일에 그의 연구에서 과학리론적기초가 잘못되고 반동적이라면 그가 어찌 나라를 위해 그토록 유익한 일을 한 잠종학자로 될수 있겠느냐 하는것이였다. 그러니 그의 학문을 시비하지 말고 신중히 대해야 한다.

리승기는 앉은뱅이책상우에 무드기 쌓인 계응상의 집필원고들을 얼핏 바라보았다. 그는 계응상한테 더 큰 고무를 주고싶었다. 자기 또한 그한테서 줄기찬 탐구의 신심을 받아안고싶었다. 신념이라는 과학의 성스런 토양에서 떠나지 말것을 함께 다짐하는것이였다.

그런데 계응상이 문득 이렇게 물었다.

《그래 화학은 쏘련이… 로씨야가 어떻소?》

리승기는 미처 제 생각에서 깨여나지 못하며 천천히 대답했다.

《로씨야의 화학은 대체적으로 알뿐 아직 깊이 살펴볼 기회는 없었지요. 멘델레예브와 같은 리론화학의 대가들은 있습니다. 응용화학은 상대적으로 약한줄 알지만 이것 역시 제 속단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계응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시한다.

리승기는 말했다.

《계선생 말대로 제정신을 가져야지요. 우리 화학도 과학자대회에서 장군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우리 나라에서 이미 알콜초산의 합성으로 일정한 토대가 축성된 조건에서 고분자유기합성공업을 빨리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것두 강의에서 빼놓지 말구 구체적으로 더 전개시켜 내놓았으면 좋겠구만. 해방후에 우리 손으로 축성한 토대가 중요하거던요.》

《지금… 이 전쟁중에도 내밀고있는 폴리비닐알콜이 〈합성1〉호 합성섬유만 아니라 어찌하면 우리 나라 유기합성공업의 골격으로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그렇구말구.》

계응상은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흡족한듯이 한손으로는 무릎을 두드리며 다른 한손으로는 수염을 내리쓸었다.

사실에 있어서 두 학자의 이야기들은 일견 평범해보일수도 있었다. 허나 동서고금의 전쟁사에는 이렇게 전쟁중에 민족의 장래를 위해 대학을 개설하고 군인들을 불러다 공부시킨 례는 없었으니 이 강의안준비와 학술론담 그자체가 우리의 전쟁사와 과학사에 뚜렷한 한페지로 남을것이였다.

리승기는 림시로 지은 교사안에서 이튿날부터 강의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오정해는 구술을 받아쓴 강의안은 리승기한테 주고 저는 저대로 강의에 참가해서 듣겠다고 하였다.

계응상이도 제가 출연할 강의가 없을 때에는 도중에라도 뒤에 들어와앉겠으니 나무람말라고 하였다.

허나 리승기는 자기의 강의순서가 예상외로 첫날에 뒤집히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는 교실안에 스무나문명되는 학생들앞에 서있었다. 량팔로 교탁모서리를 짚고 서서 눅눅한 공기가 떠도는 교실의 토벽과 견장만 뗀 군복차림의 학생들을 둘러보았을 때 그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이렇듯 비좁은 반토굴안에 어째선지 수백수천의 학생들 아니, 수많은 학자들까지 꽉 차있는듯 한 착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남조선에서 그리 작지 않은 강당을 둘러보면서도 매번 자기외에는 누구도 없는듯 한 텅 빈 공간을 바라보는것만 같던 그였다.

어찌하여 이 좁은 교실안이 이렇듯 드넓은 강당으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자기를 주시해보는 그런 연단으로 생각되는것인가.

자기가 일찌기 오사까의 회관에서 《합성1》호 연구를 세상에 발표할 때에도 결코 이런 류의 흥분은 체험하지 못했었다.

강의를 인츰 시작 못하는 리승기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던 제대군복차림의 학생들은 말없이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이때 견장없는 군관복을 입은 다부지게 생긴 학생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님,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으로 저는 최전선에서 대학으로 소환되여왔습니다. 전우들은 죽음을 맞받아 돌격으로 나가면서도 저를 대학에 떠밀어보냈습니다. 전 아직 정신이 떨떨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유명한 박사선생을 만나게 되니 정말 기쁘구 영광이라구 생각합니다.

전 선생님한테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받아주시겠는지… 한달쯤 계신다니 선생님이 걸어온 과학탐구의 길에 대해 짬짬이 얘기해주실수 없겠는지 하는겁니다.》

학생은 서서 리승기의 대답을 기다렸다.

리승기는 앉으라고 손짓하였다.

《사실은 나두 같은 심정입니다. 오늘 이렇게… 전쟁이 끝나지두 않았는데 전선에서 대학으로 온 여러 동무들을 보니… 장군님의 제대명령을 받구 온 학생동무들을 만나니 나는 나라의 장래에 깊은 확신을 가지면서 아울러 일본에서 건너와 남조선땅에 발을 디딘 첫날부터… 그 5년동안에 전쟁두 없는 시기지만 제 연구사업은 고사하구 대학조차 세워보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던지 그것부터 얘기하고싶습니다.

민족의 참교육을 위한 전당을 마련해보겠다구 헛되이 애쓰던 때의 일 말입니다.… 이야기는 해방된 해 가을부터 시작해야 할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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