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5 회)
2. 새로 사귄 벗들 생일은 누구에게나 있어서 가장 뜻깊은 날이다. 그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그날에 자기가 세상에 태여났기때문이리라. 마찬가지이다.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게 있어서도 그 창립일이 가장 뜻깊은 날로 되는것이다. 역시 그날이 있어 그 모체가 세상에
산생되였기때문이다. 나라도 자기의 건국일이 있어 이름이 있고 력사에 새겨지는것이 아닌가. 그런 날에 마주앉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순간에 친구가 되여 인차 휩쓸리게 되는것이 아마 생활인듯싶다. 어느 한 사람의 생일날에 마주앉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끼리, 어느 한 집단의 창립일에 마주앉은 집단들은 그 집단들끼리 그리고 어느 한 나라의 건국일에 마주앉은 나라들은 그
나라들끼리… 1965년 11월 7일이였다.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련맹은 해마다 그랬듯이 이해에도 자기의 나이 48돐을 맞으며 각 나라의 대표부들에서 성대한 연회를 차렸다. 외교관계가 비교적 많은 인디아에 주재하고있는 쏘련대사관은 이날에 더욱 활기를 띠고있는듯싶었다. 붉은기가 창공에 나붓기는 쏘련대사관의
지붕밑으로 인디아의 각료들과 이 나라 주재 각국의 외교관들, 이 나라를 방문중인 여러 나라의 사절들이 흥성이며 들어갔다. 비슈와나스는 아브둘 말라크와 함께 면목있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그들속에 섞여 들어갔다. 아브둘 말라크는 1952년 알따브 후쎄인의 결혼식장에서 사귄 친구였다. 그때 비슈와나스는 련락을 받고 라호르로 갔다. 알따브 후쎄인은
라호르에 있는 처녀와 사귀여 결혼을 하게 된것이였다.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라는 말이 있다. 알따브 후쎄인의 친구인 아브둘 말라크는 곧 비슈와나스의 친구로 되였다. 아브둘 말라크는 무슬림이였다. 그런것으로 하여 그 역시 알따브
후쎄인처럼 처음에는 인디아사람이였는데 지금은 파키스탄국적을 가진 사람이 된것이였다. 뒤머리를 길게 하고 너부죽한 얼굴에 코수염을 기른 그는 척 보매 멋쟁이신사를 방불케 했으나 지내고보면 참으로 텁텁하고 정열적인 인간이였다.
그는 알따브 후쎄인과 가까운 친구였지만 성격은 다른데가 있었다. 알따브 후쎄인은 조용하고 학구적이고 한자리에서 잘 움직이려 하지 않는
성격이였지만 아브둘 말라크는 말도 잘했고 아주 활동적인 사람이였다. 맑스주의를 전공하고 직업적인 사상가로 나선 그는 쏘련대사관과 밀접한 련계를 가지고있는 비슈와나스와 인차 결합되였으며 자주 뉴델리에 와 서로
만나고있었다. 그들은 다같이 쏘련대사관을 상대하고있었다. 대사관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연회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사관복도의 진렬장우에 주런이 놓인 도서들중에서 마음나는것들을 하나씩 집어들고
화기애애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언제나 도서와 사진들의 전시는 분위기조성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항목인듯싶었다. 《쏘베트 땅》도 창간호부터 진렬되여있었다. 이 잡지도 이제는 어언 18년이라는 자기의 나이를 가지고있었다. 그 나이는 2차세계대전이후의
사회주의쏘련을 따라온 비슈와나스의 나이이기도 하였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비슈와나스의 머리속에는 일거리를 찾아 바라캄바의 거리에서 기웃거리던
그때가 어제같은데 벌써 이렇듯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에 자못 감회도 새로운것이였다. 이때 에피모브가 기다렸다는듯이 그들앞으로 다가왔다. 서로서로 악수를 나누며 모두가 반가와하였다. 매일 만나도 반가운 그들이였다. 그 기간
에피모브는 본국에 소환되였다가 얼마전에 다시 쏘련대사관의 참사로 왔던것이다. 18년전 공보부를 책임졌던 그는 그때 비슈와나스를 만나 실적을
올리였고 비슈와나스 역시 그를 만나 사회주의문턱을 처음으로 넘어서게 되였던것이다.
그런 연고로 하여 그들은 국적은 달라도 끊을수 없는 인생의 길동무로 되였다. 《알고들 지내게. 새로 개설된 조선령사관의 1등서기관 장경일선생이네.》 에피모브는 함께 온 사람을 비슈와나스와 아브둘 말라크앞으로 내세우며 소개하는것이였다. 그때에야 그들은 에피모브가 혼자서가 아니라 둘이
왔다는것을 알았다. 같이 온 사람은 보매 30전의 젊은 나이였다. 에피모브보다 키는 좀 작았는데 몸은 좋은 편이였다. 《알게 되여 반갑습니다. 많은 말을 들었습니다.》 약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조선사람은 의외에도 힌두어발음을 손색없이 아주 잘하는것이였다. 에피모브도 영어는 능란하였지만 힌두어는 그에
따르지 못하였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아무런 가식도 없이 겸손하게 말하는 그의 틀진 자태에 모두는 스스로 마음이 끌리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이미 쏘련대사관을 통하여 비슈와나스와
아브둘 말라크에 대하여 파악하고있은듯싶었다. 《비슈와나스입니다.》 《아브둘 말라크입니다.》 새로 사귄 벗들은 서로가 손을 맞잡았다. 새 사람을 사귄다는것은 그자체가 하나의 새 생활인듯싶었다. 그것도 다른 나라의 첫 사람을. 비슈와나스는 조선의 외교관과 처음으로 대면하였다. 아브둘 말라크도 마찬가지였다. 다시말하여 그들에게 있어서 장경일은 새로 사귄 벗이였으며
새로 사귄 나라였다. 쩍 벌어진 어깨가 그의 진중함을 말해주는듯 하였다. 첫눈에 믿음과 친숙감을 느끼게 하는 인상이였다. 그것은 단지 피부색이
같은 한대륙의 민족이라는데서 오는 그런 느낌만이 아닌듯싶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에피모브는 이들을 연회장으로 이끌었다. 이미 한탁에 좌석을 정해놓은 그였다. 네사람은 둥그런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조선, 인디아,
쏘련, 파키스탄 이렇게 네 나라가 마주앉은셈이였다. 인디아외무상과 쏘련대사의 공식적인 연설이 있은 후 연회는 흥성이기 시작하였다. 연회장에서의 상봉과 대화는 언제나 시작부터 친숙하고 즐겁게
번져지는것이였다. 그래서 연회라는것이 있는지. 그들은 술을 많이 하였다. 네사람은 태고적에 만난 친구들인듯 허물없는 사이가 되여 말을 주고받았다. 오늘의 새 손님인 《조선》을 위해 들자며 그들은 마셔댔다. 아마도 그들은 첫 상봉의 의미는 우선 즐겁게 마시면서 인간을 사귀고보는데 있다고
생각하고있는것인지. 료리에 대해, 술에 대해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점차 가지를 뻗어 요즘 인기를 끄는 도서들에 대해 그리고 화살이 집중되는 세계적문제들에로
번져져갔다. 역시 그들은 외교관들이였으며 사상가들이였다. 에피모브는 조선에 대한 영상이 아주 좋았다. 그는 동방의 나라 조선이 비약적으로 일떠선데 대해 설명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기에게는 조선과 혈연적련계를 맺고있는 아주 가까운 동료가
있는데 그와 함께 1960년대초에 조선을 한번 방문한적이 있다고 한다. 조선은 비슈와나스와 아브둘 말라크에게 있어서 아직은 생소한 나라였다. 조선은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로 있었다는것, 조선인민은 미제와
싸워이긴 영웅적인 인민이라는것, 이것이 조선에 대하여 그들이 알고있는 상식의 전부였다. 비슈와나스는 말하였다. 《나는 아직 조선에 대해선 잘 모르네. 그러나 〈조선〉은 아네. 한번 들어보겠나?》 그는 짐짓 무대에 나선 인상을 지으며 웅글은 목소리로 읊조리는것이였다.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다시한번 켜지는 날엔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에피모브와 장경일, 아브둘 말라크는 다같이 박수를 쳤다. 그 시는 세계에도 알려졌으며 특히는 인디아인민들과 조선인민들속에서 널리 애독되는
시였다. 타고르의 이 시를 그들은 알고있었다. 이 시의 창작경위는 다음과 같다.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한적이 있었다. 그때 도꾜에 있는 조선의 《동아일보》지국에서는 그를 초청하여 좌담회를 가진 후 기념으로 되게 시 한편을
써줄것을 부탁하였다. 《타고르선생의 주옥같은 시 한편을 얻는다면 무상의 영광으로 될것입니다.》 한참이나 생각을 더듬으며 기자들을 둘러보던 타고르는 펜을 꺼내들더니 하얀 종이우에 시를 써내려갔다. 그 시의 제목이 바로 비슈와나스가 읊은
《조선》이였다. 그때 그 사람들속에서는 찬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참으로 훌륭하오!》 《타고르선생만이 쓸수 있는 명구요!》 혀를 차며 칭찬하는 기자들에게 타고르는 말하였다. 《민족의 수난은 인디아나 조선이나 마찬가지요. 앞으로 조만간에 이 수난은
사라지고 광명이 우리들의 머리우에 비쳐올것이요.》 또다시 박수가 터져올랐다. 이때 옆에 몰켜서있던 일본기자들중 한명이 청을 들이댔다. 《타고르선생, 우리 일본에 대해서도 한수 남겨주셨으면 합니다.》 《일본?》 이렇게 반문한 타고르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더니 돌연 열기띤 목소리로 웨쳤다. 《시는 심장의 웨침이요! 심장이 웨치지 않는데 무얼 가지고 시를 쓰란 말이요.》 이날이 바로 조선과 인디아가 다같이 식민지노예의 멍에에 짓눌려있던 1929년 3월 28일이였다. 시에는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조선에 대한 찬양, 지금은 비록 꺼진 《등불》로 되였으나 반드시 다시 일떠서 동방을 빛내여줄
조선의 광명한 미래에 대한 인디아인민들의 확신이 노래되고있었다. 참으로 이 시는 나라의 독립과 번영을 지향하는 인디아인민들과 조선인민의
친선단결을 이룩하는데 이바지한 의의있는 작품이였다. 이 시 하나면 되였다. 이 시에 비슈와나스의 심정도 다 깃들어있는듯싶었다. 비슈와나스가 이 시를 사랑한것은 그것이 단순히 조선에 대한 시이거나 이 시를 자기 조국의 저명한 정치가인 인디라 간디가 즐겨한다는
리유에서만은 아니였다. 위대한 시인을 리해하는 능력은 그의 재능과 거의 맞먹는다고 하였다. 비슈와나스는 평시에 시인의 통찰력을 깊이 감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였다. 타고르가 일찌기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인정하고 그 밝은 래일을 예언하여 다시한번 켜진다고 한 그 등불은 오늘의 조선이 아닐가. 타고르의 시를 애독하면서 그는 항상 이런것을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오늘 바로 그 조선의 벗을 처음으로 사귀게 된것이였다. 이 시 한편으로 그들의 마음속뉴대는 이미 맺어진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제날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걸머졌던 두 나라의 사람들이 오늘은 다같이
자주독립국가의 당당한 한성원으로 이렇게 마주앉은것이였다. 력사는 언제나 자기 발전의 곬을 따라 흐르기마련이다. 네사람은 또 잔을 찧었다. 이번에는 좋은 시를 읊은 《인디아》를 위해서였다. 《그래 등불이 다시 켜졌나?!》 아브둘 말라크가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그 말에 화답하듯 그저 고개만을 끄덕이며 눈웃음을 짓는 장경일. 역시 그는 우람한 그 몸집처럼 흐트러지지 않을 형이였다. 에피모브가 성격그대로 괄괄하게 말하였다. 《동방의 밝은 빛이 타오르고있네.》 《그렇다면 동방의 그 밝은 빛을 위하여!》 비슈와나스는 잔을 높이 추켜들었다. 네개의 잔이 또다시 식탁의 한가운데서 맞부딪쳤다. 연회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비슈와나스와 아브둘 말라크는 조선의 총령사에게 소개되였다. 쏘련대사가 조선총령사에게 비슈와나스의 사업방식이며
생활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다. 조선총령사는 말하였다. 《나는 선생들을 우리 령사관에 초청합니다.》 비슈와나스와 아브둘 말라크는 그 초청에 쾌히 응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인디아주재 사회주의나라대사관들에는 다 드나들고있었으니 새로 개설된
동방의 이 사회주의나라 령사관에 가보는것이 응당한것으로 여겨졌다. 첫 인상에 참으로 친근하고 근면하게 안겨오는 조선사람들이였다. 이렇게 그는 쏘련의 국경절에 당시 사회주의나라들의 모임장소와도 같았던 그 나라 대사관에서 조선의 벗들을 새로 사귀게 되였다. 그날은 그의 인생렬차가 밝은 빛이 흐르는 동방에서 새롭게 뻗어나온 궤도에 다가가고있음을 예고하는 종소리가 서서히 울린 날이였다. 아브둘
말라크 역시 다를바 없었다. 하지만 그 빛, 그 종소리를 아직은 누구도 볼수도 들을수도 없었다. 그런 빛, 그런 종소리는 처음에는 아무에게도 가늠할수가 없게 소리없이
가슴속에 스며드는것이였다. 사람들은 세월이 퍽 지난 다음에야 그때 이미 자기의 가슴속에 스며들기 시작한 그 운명의 빛, 운명의 종소리를 추억속에
가늠하게 되는것이다. 비슈와나스의 마음속의 두루미는 그냥 훨훨 날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