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5. 《유토피어》세계에로

 

자유와 평등은 인간에게 차례진 권리이다.

인간이 오랜 세월 상상속에서만 그려보던 사유재산이 없는 리상적인 나라 《유토피어》가 20세기에 이르러 정말로 지구상에 세워졌으니 그 세계에로 한번 들어가볼만도 한것이다.

모어(영국)가 1616년에 내놓은 그 공상소설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다같이 일하고 다같이 잘사는 리상향이 그려진 후 인류는 그런 사회를 얼마나 지향하고 념원해왔던가.

그런 지향, 그런 념원은 그 이후 깜빠넬라(이딸리아)의 공상소설 《태양의 도시》에서, 베이컨(영국)의 공상소설 《신애틀랜티스》에서 계속 그려져왔다.

미래의 평등한 사회에 대한 공상을 펼쳐보인 근대초기의 이러한 공상적사회주의의 선구적작품들에서 그려졌던 그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쏘련이라는 나라에 한번 들어가보는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비슈와나스에게 있어서 물론 이것은 우연적으로 이루어진것이였다. 하지만 맞다들린바치고는 한번 해볼 판이였다.

광활한 령지를 세습적으로 물려받은 샤르마가문의 후손이 사적소유가 없는 《유토피어》에로 들어간다는것은 모순되는 일이기는 하였지만 구태여 그런것에 구애될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그는 이미 대학시절에 《태양의 도시》의 주민들이 인디아계의 이주민들이였다는데 대해 흥미를 느낀바 있었다. 물론 그것은 작가의 환상이였지만 매혹을 불러일으킬만 한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사회주의쏘련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였다.

우선 그는 쏘련의 력사와 성과들을 소개한 자료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 자료들가운데서 오늘의 쏘련을 보여주는데 보다 가깝다고 생각되는것들을 우선 취사선택하여 편집해보았다. 그런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였다. 중요한것은 그 자료들을 변증법적유물론과 사회주의리론을 자로 하여 고찰하고 분석하는것이였다.

좀 힘들었다. 그러고보면 자기는 사회주의리론에 대한 조예가 너무도 없었다는것이 알리였다.

그는 도서관을 찾아 달려갔다. 다행히도 영문으로 된 레닌과 쓰딸린의 저서들이 뉴델리에는 들어와있었다. 그 저서들가운데서 필요한것들을 골라읽었다.

레닌의 저서들을 읽으며 그는 한 나라 또는 몇개 나라에서 사회주의혁명승리의 가능성에 관한 리론과 맑스주의국가리론, 자본주의의 불균등적발전법칙에 대하여 자기나름의 일가견을 가져보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그는 쓰딸린의 저서들도 읽으며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깊이있는 리해를 해보려고 노력하였다.

모어의 《유토피어》는 읽으면서 그대로 리해하면 되였지만 레닌과 쓰딸린의 저서들은 읽고 한참 음미해보아야 했으며 또 어떤것들은 련관도서를 보면서 품들여 사색해보아야 했다.

문득 알따브 후쎄인이 생각났다. 이런 때 그가 옆에 있으면 토론도 해보련만.

비슈와나스의 앞에는 철학서적들이 무둑히 쌓여졌다.갑자기 그는 철학가가 된듯싶었다.

흔히 20대에는 문학홍역에 걸리고 30대에는 철학홍역에 걸린다고 하였지만 10대에 벌써 문학홍역에 걸리였던 그는 20대에 들어서면서 철학홍역에 걸린듯싶었다.앞날에로 성급하게 달음박질쳐가는 정열의 인간들에게는 모든것이 그렇듯 속성으로 찾아오는것인지.

예로부터 문학과 철학은 쌍둥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문학이 앞서가며 감성적으로 펼친 생활화폭을 철학이 리성적으로 정립하며 또한 철학이 앞서가며 론리적으로 제시한것을 문학이 생활적으로 형상한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인지.

한때는 문학서적에 파묻힌적도 있었던 비슈와나스가 지금은 밤을 패며 세계철학사와 로동계급의 혁명리론들을 품을 들여 읽고있는것이였다.문학이든 철학이든 모든 학문은 사적인 고찰우에서 연구분석하여야 깊이가 있으며 그 정당성이 리해되는것이다.

역시 문학과 철학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유해야 할, 아니 소유하고있어야 할 공동의 학문인듯싶다.

그는 며칠째 책에 파묻혀있었다. 사람이 혼자 공부할수 있는 제일 오래고도 큰 학교는 역시 책이였다. 책은 인간생활에서 가장 요긴하고 귀중한 보물이였다.

그는 이미 공부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였다.

다행히도 대학기간에 서로서로 론쟁하며 몇년동안 닦은 토대가 있어 그는 그 모든것에 대한 현실적인 사고를 빠른 시간에 할수 있었다. 하지만 고충은 있었다. 사실 그가 그때 그처럼 품들여 탐독한것은 맑스―레닌주의에 공명했다든가 아니면 그 어떤 학술적연구를 위한것이 아니였다. 다만 그것은 잡지를 편집하기 위해서였고 구체적으로는 사회주의쏘련에 접근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야 할것이다.

여하튼간에 그는 고전들에 대한 탐독과정에 사회주의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였다. 그 좋은 인상, 좋은 견해가 없었다면 그가 맹목적으로 쏘련과 손을 잡는 일에 나설리는 없었다. 그는 자기가 선택한 자료들에 대해 일정한 주해를 주며 주야간 편집전투를 벌리였다. 시간이 없었다. 모든것을 빨리 해내야 했다.

그는 잡지가 창간호라는것을 념두에 두고 우선 쏘련의 국가체제와 인디아와의 평화적인 관계문제에 대한 글을 실었다. 그리고 쏘련에서 달성한 성과들에 대한 자료들을 각 분야에 걸쳐 사진과 함께 될수록 다양하게 편집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렇게 《쏘베트 땅》은 비슈와나스의 손에 의하여 시작부터 쏘련사람들이 바란대로 반정치잡지형식을 갖추게 되였다.

닷새만에 잡지편집은 결속되여 에피모브의 손에 넘겨졌다.

오늘은 엿새째 되는 날이다. 비슈와나스는 초조감과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바라캄바거리에 들어섰다. 어제 에피모브는 그 견본을 받으며 다음날 아침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였던것이다. 약속한 시간에 에피모브는 어김없이 정문앞에 나와있었다.

방에 들어선 그는 대만족을 표시하는것이였다. 대사와도 합의를 보았다며 그는 주재국의 이 젊은이를 한껏 춰주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아무런 표정없이 덤덤히 앉아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안도의 숨이 나갔다.

에피모브는 견본을 번지며 몇개의 이런이런 사진은 다른것으로 교체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비슈와나스는 그 의견에 동의하여 지적된 사진들을 그자리에서 바꾸어넣는것으로써 《쏘베트 땅》의 창간호편집은 완성된것으로 합의되였다.

그러나 비슈와나스의 몫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친구, 이왕 나선바엔 끝까지 도와주지 않겠나? 인쇄까지 말이네.》 이렇게 말하는 에피모브의 마음속에는 벌써 비슈와나스가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자리잡고있었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쏘련대사관에는 인쇄기지가 꾸려져있지 않았던것이다. 설사 꾸려져있다 해도 비슈와나스와 같이 젊고 실력이 엿보이는 주재국사람을 다시 찾기 힘들것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었기때문이였다.

《나는 당신이 우리의 일을 끝까지 협력해주리라 믿네.》

《물론!》

비슈와나스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올수 없었다. 하지만 쏘련대사관에서 나온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는 여기에 아는 인쇄기지가 하나도 없었던것이다. 그런 고충을 그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처럼 유명한 하이네도 자기의 고충을 말하기 시작하자 모두가 하품을 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인쇄기지를 무조건 찾아야 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말없이 자기가 해야 했다.

비슈와나스는 제꺽 자전거를 하나 샀다.

이때부터 뉴델리에서의 그의 자전거행군은 시작되였다. 처음엔 도보로, 그다음엔 자전거로 시작된 그의 행군길은 미구에 메르쎄데스벤즈, 국제비행기의 행군길로 이어져있었다.

그는 행인들에게 물어보며 또 간판들을 보며 거리들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자전거행군은 계속되였다.

그렇게 며칠간 돌아치며 그는 몇개의 인쇄기지들을 찾아냈고 거기서 찍은 견본들을 손에 쥐게 되였다. 그것들을 가지고 비슈와나스는 에피모브를 찾아갔다.

에피모브는 여러 활자견본들중에서 하나를 짚으며 거기서 잡지를 인쇄하자고 하면서 비슈와나스가 편집한 원고들을 다시 주며 조판할것을 부탁하였다.

쏘련대사관에서는 날이 갈수록 열정적이며 책임적인 비슈와나스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게 되였다.

비슈와나스는 에피모브에게 같이 가자고 하였지만 그는 당신이 통채로 맡아하고 인쇄비는 자기가 지불하겠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렇게 되여 그 원고는 샥튀출판사에서 조판을 하게 되였다.

비슈와나스는 조판공들과 함께 살았다.

조판을 하는데 2주일이나 걸렸다. 그때는 다 손로동으로 활자작업을 하나하나 하였기때문이다. 처음 나온 게라지를 본 쏘련대사는 활자가 곱지 못하다고 하면서 좀 실퉁해하였다. 그리하여 그 출판사에 가서 활자를 고운것으로 바꿔 다시 하다나니 11월 5일에야 비로소 잡지가 완성되게 되였다. 국경절 이틀전이였다.

쏘련대사는 만족을 표시하였다.

박두하여 끝냈지만 성과적으로 보장한 안도감과 쾌감을 안고 비슈와나스는 뉴델리에 와서 처음으로 하루 휴식할수가 있었다.

그날은 마침 디왈리축전날이였다. 이날은 인디아의 가장 큰 민속명절이였다. 이 명절은 인디아력법에 따라 해마다 날자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대체로 10월 아니면 11월에 닿군 하였다.

디왈리축전를 일명 불축전이라고도 하였다.

이날에는 정부청사나 살림집이나 할것없이 모든 건물들의 불을 다 켠다. 또한 집집마다의 대문에 내건 초롱들은 명절의 흥취를 한껏 돋구어준다.

도시는 대낮같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오고간다. 이날에 모든 사람들은 사탕, 과자 1키로씩을 사가지고 가까운 친척들을 찾아간다. 모든 집들에선 가족, 친척들이 모여 당과류들을 먹으며 즐긴다. 또한 서로 다른 가족들을 찾아다니기도 하며 지어는 틀렸던 사람들도 이날에 만나 화해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이날에 모여앉은 사람들은 가지고온 당과류들을 호상 교환하기도 한다. 그 재미란 이를데 없다. 이것도 하나의 풍습이였다.

나라가 독립되여 처음으로 맞는 디왈리축전이여서인지 수도의 거리는 더욱 활기를 띤듯싶었다.

비슈와나스는 흥성이는 명절의 이 거리를 혼자 거닐었다. 그는 어디 찾아갈데가 없었다. 또한 집도 마련하지 못한 이 도시에 자기를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아마도 판도리고향집에서는 한창 흥성이리라. 가족, 친척들이 두루미가 새겨진 자기 집의 대문턱을 넘어 모두 모여앉았으리라.

고향집의 그 웃음, 그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비슈와나스는 마음속에서 울리는 그 웃음, 그 노래소리를 혼자 느끼며 밤거리를 스적스적 걸어갔다. 아직은 집도 없고 혼자서 명절의 밤거리를 거닐고있지만 사방에 명멸하는 불빛은 래일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속에 삶의 불길을 소리없이 활활 지펴주고있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빛나고있었다. 저 멀리 구름은 움직이고 있는듯 했으나 바람은 없었다. 인생을 랑만적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비슈와나스도 자기를 둘러싸고있는 이 세계가 아직은 하나의 아름다운 수수께끼같이 안겨오는것이였다. 그는 미구의 희망을 안고 불축전으로 떠들썩한 도시의 음향을 혼자서 듣고있었다.

이제 자기에게도 집이 생기고 가족들과 동료들이 모여 전통적인 민족의 모든 축전을 한껏 즐길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으면서…

그 다음날인 11월 7일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오래간만에 고급외출복을 차려입었다. 이날에 그는 쏘련대사관의 공식적인 초청장을 받았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날에 자기가 쏘련대사관으로 들어간다는것만 알았지 이날에 자기 조국의 초대수상과 악수를 나누고 세계 여러 나라의 공식적인 외교사절들과 통성하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이날에 쏘련대사관에서는 주재국의 각료들과 외교사절들을 초청하여 대연회를 차렸던것이다.

파쑈도이췰란드와의 전쟁에서 결정적승리를 이룩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후의 력량편성에서 주도권을 잡은 쏘련은 당시 자기의 당당한 권위로 인기를 모으며 국제적지반을 나날이 확장해가고있었다. 바로 그러한 쏘련이 마음먹고 마련한 국경절경축연회였다.

이 연회장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쏘베트 땅》이 한부씩 배포되였다. 역시 쏘련사람들은 할줄 알았다.

새로운 잡지의 창간은 이들모두에게 새로운 화제를 안겨주는데 충분하였던것이다. 그 화제란 갈데없이 쏘련의 혁혁한 성과들에 대한것이였다. 그 외교마당이 쏘련의 대사관임에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것으로 하여 연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활기를 띠는듯싶었다.

공식적인 연설들도 끝나고 연회장의 분위기가 한창 화기애애해질 때 에피모브는 비슈와나스를 주탁에로 이끌어갔다. 거기에 있던 쏘련대사가 비슈와나스를 알아보고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함께 앉은 쟈와하를랄 네루앞에 내세우는것이였다.

《수상각하! 이 젊은분이 바로 이번 우리의 〈쏘베트 땅〉의 창간호 편집발행을 성심껏 도와준 주재국의 젊은 기자 비슈와나스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전우가 주재국에 있는데 대하여 우리는 수상각하께 감사를 드립니다.》

쏘련대사는 일어서서 비슈와나스를 수상에게 소개하며 외교적례의를 깍듯이 차리는것이였다.

《아, 그런가!》

머리에는 창이 없는 간편한 흰모자를 쓰고 닫긴옷을 입은 수상은 쏘련대사의 감사의 말을 듣고 저으기 만족한듯 앉은자리에서 젊은 비슈와나스를 눈여겨보며 손을 내미는것이였다.

《자네 앞으로도 잘 도와주라구.》

비슈와나스는 처음으로 긴장해졌다.

꼿꼿이 서서 수상과 악수를 나누었을 때 기다렸던듯이 술이 절반씩 부어져있는 크지 않은 세개의 잔을 받쳐든 남자접대원이 그들의 옆에 다가와섰다. 수상은 일어서며 먼저 그 잔을 들었다.

너무도 뜻밖의 일에 부닥친 비슈와나스는 몸둘바를 몰라하며 수상과 쏘련대사를 따라 서둘러 잔을 들었다. 비슈와나스는 수상과 함께 잔을 찧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비슈와나스는 수상과 쏘련대사의 몸가짐을 따라 잔을 입에다 가져다대였고 또 그들이 하는대로 그것을 접대원이 그냥 받쳐들고있는 작은 쟁반우에 놓았다.

황송하였다. 세계적성격을 띠는 이렇게 큰 연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이름있는 네루수상의 접견을 받을줄은 정말 몰랐다.

쟈와하를랄 네루는 독립전부터 국민의 눈길을 끌어온 선망의 대상이였다.

비슈와나스는 그의 자서전 《인디아의 통일》을 읽은바 있었다.

네루는 인디아독립을 위한 견결한 활동가였으며 국민대회당 지도자의 한사람으로서 인디아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마하트마 간디를 계승한 사람이였다. 그는 간디 다음으로 영향력있는 사람으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있었다. 그의 아버지 오티알 네루는 인디아민족주의운동의 지도자의 한사람이였다.

쟈와하를랄 네루는 반영선동으로 하여 자기 생애에서 10년이상의 감옥생활을 하였고 반제련맹에도 적극 협력하였으며 사회주의10월혁명 10돐때에는 쏘련에 가서 기념행사에 참가하여 레닌을 높이 평가한 사람이였다. 그는 여러번 외국을 방문하여 서유럽의 반제, 반파쑈력량과 인디아민족운동과의 련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쏘련을 지지해왔다.

이러한 네루였기에 그는 인디아의 독립과 함께 나라의 초대수상으로 선출되였으며 생애의 말까지 수상 겸 외무상으로 있었다.

쟈와하를랄 네루는 미래의 인디아를 사회주의로 보고있었다. 그 길로 가는 방법을 그는 계급투쟁이 없이 사회적타협의 방법으로 간주하였으나 사회주의를 지향한 그것으로 하여 그는 집권 전기간 인민경제에 대한 국가의 조종을 확대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갔으며 그에 의하여 작성되고 실시된 경제, 사회문화시책들은 인디아에서 식민지적 및 봉건적구조를 개편하는 시초로 되였다.

쟈와하를랄 네루는 장구한 식민주의자들의 억압을 박차고 민족적독립을 쟁취한 나라를 새 사회를 위한 길로 이끌고있었다. 그는 유구한 전통을 가진 인디아문화의 새로운 재건을 촉구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이렇듯 뉴델리에서의 첫시작부터 외교석상에서 명망높은 정부수상의 지지를 받는 인물로 되였다. 이것은 미구의 그의 활동에서 아주 유리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또 하나의 기회로 되였다.

주탁에서 물러난 비슈와나스는 에피모브의 안내를 받으며 뉴델리에 주재하고있는 각 나라 대사관의 친선 및 문화관계자들과 자연스럽게 통성하게 되였다.

인디아는 독립하기 전인 1940년대초에 이미 쏘련, 카나다를 비롯한 일부 나라들과 대사관계를 맺고있었던것이다. 그것이 그때 영국식민주의자들이 준 이른바 《자치》의 표현으로 되는것인지도 몰랐다.

인디아는 대다수 사회주의나라들과는 일반적으로 독립이후에 외교관계를 설정했다.

그때 비슈와나스의 나이는 21살이였다.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 수도의 이 거리에 발을 들여놓을 때 그가 나라의 수상과 각료들 그리고 각국의 외교사절들과 통성하게 되리라고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못하였다.그러면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만큼 젊은 나이에 세계에 대고 자기의 이름을 소개하는 그런 자리에 서게 하였는가. 아마도 그것은 인생의 첫 단계부터 이 세상을 성실하고 진취적으로 대해오는 그의 남다른 열정이 가져온 결과라고 해야 할것이다.

이날은 참으로 벅찬 하루였다. 흥분과 긴장, 희망과 열정을 다 체험한 기가 막힌 하루였다.

옛스러운 바라캄바거리도 이날에는 한결 환하게 보였다. 그의 가슴속에는 끝없이 펼쳐진 운명의 길에 이제는 확고한 첫걸음을 내디딜수 있게 되였다는 이름못할 환희가 폭포치듯 스며들고있었다.

젊은 나이에 다른 사람들의, 그것도 정부의 각료들과 각국의 사람들의 중시를 순간에 받아안은 비슈와나스의 심장은 흥분으로 세차게 고동쳤다.

다른 사람의 중시를 받으려고 하는것은 누구나 바라고있는 인간의 심리이다. 역시 인간의 충동가운데서 제일 강렬한것은 중요인물로 되려는 욕망인듯싶다.

비슈와나스의 마음속에 항시 날고있는 고향집의 그 두루미는 샤르마가문의 광활한 령지가 펼쳐져있는 판쟙주의 하늘을 떠나 이렇게 《유토피어》세계의 하늘에 자유롭게 들어서게 되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마음속 그 두루미가 어디에 깃을 내리겠는지, 그처럼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자기의 걸음이 이 세상 그 어디에 가닿게 될것인가는 아직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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