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4. 《하느님》이 준 기회(2)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 가서도 자유롭게 행동할수 있는 거처지를 찾는가보다. 비슈와나스가 바로 그랬다. 뉴델리에 도착한 그는 번화한 거리에 있는 큰 호텔에 들지 않고 남들의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값이 그닥 비싸지 않은 자그마한 호텔을 찾아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도착한 첫날부터 일자리를 얻어보려고 거리에 나섰다.

인디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뉴델리!

쟈무나강연안에 자리잡고있는 이 도시는 국내각지와 련결된 도로와 철길, 국제항공역이 있는 교통의 요지로서 모두가 바삐 뛰는 대도시였다.

이슬람교건축물들과 옛 천문대를 비롯한 유적유물들이 많은 력사의 이 도시를 거닐며 비슈와나스는 오직 앞날만을 생각하고있었다.

여기에도 샤르마가문의 혈맥이 더러 뻗어있기는 하였지만 비슈와나스는 거기에 거처지를 정하거나 그들에게 의탁해서 직업을 얻어볼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아르. 아르. 샤르마에게서 받은 랭대의 교훈도 있었거니와 더우기는 그 누구도 자기의 마음을 완전히 대신해줄수 없다고 생각키웠기때문이였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신하여 길을 걸어줄수는 없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혼자서 이 거리, 저 거리를 살피며 돌아갔다.

아무 소득이 없이 그렇게 이틀이 지나갔다.

거리의 사람은 백만도 넘지만 비슈와나스를 알아보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영영 나타날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락심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물결치는 이 사람들속에 보이지 않게 끼여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자기를 잃어버릴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의지가 있었다.

포부와 의지, 이것은 인생길에서 두 날개와도 같은것이여서 그것을 지닌 인간은 길을 끝까지 가는것이다. 갈 길은 아직 멀어도 그길은 한걸음한걸음 줄어들기마련이다.

거리에는 마차와 뻐스, 궤도전차가 다니고있었다. 또한 많지는 않았지만 택시들도 보이였다.

비슈와나스는 마차나 택시를 리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기 발로 걸으며 여기저기 계속 일자리를 수소문하며 돌아갔다.

독립을 맞이한 나라의 수도는 혼잡을 이루고있었다.

대양을 건너 날아들어온 외국인들은 여전히 득실거리고있었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국기는 내리워지고 인디아사람들이 정권을 이양받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나라를 관리해본 경험이 없었기때문에 영국인들을 그냥 초청하고있었던것이다.

불안정한 시대에 국가운영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였다.

나라의 지도자들은 라지오를 통해서 연설들을 하였고 영국과 아메리카의 영화회사들은 그들을 위해서 시사영화를 다투어 제작하였다.

영화관들에서는 인디아의 분할을 내용으로 한 영화들이 상영되고있었다. 그 영화들에는 드높은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은 인디아와 파키스탄의 지도자들이라든가 국회회의라든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화면은 번쩍거렸으나 집을 잃고 국경을 넘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에 잠긴 모습을 보여주는 화면은 없었다.

나라의 분렬로 하여 비참한 운명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은 관객의 눈길에서, 국민지도자들의 눈길에서, 전세계인민들의 눈길에서 가리워져있었다.

이렇게 생활은 흘러가고있었다.

1947년의 뉴델리는 보는 사람마다에 따라 각이하였다. 어떤이에게는 출세를 위한 절호의 장소이기도 하였고 어떤이에게는 돈벌이를 위한 좋은 장소이기도 하였고 또 어떤이에게는 살기 힘든 곳이기도 하였다.

나라의 분렬이 없었다면 비슈와나스 역시 이렇듯 혼자서 일자리를 찾아 뉴델리의 거리를 방황하지 않았을것이다.

정치가들과 온갖 교파의 설교자들, 작가와 평론가들, 로동조합지도자들과 대학교수, 인기배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말들을 하고있던 시대였다.

많은 사람들이 미련을 가지고 독립된 나라의 미래를 관망하고있었지만 좋은 생활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을것이였다.

인디아사람들은 근면한 사람들이다. 비슈와나스는 자기 조국의 근면한 사람들이 모두가 안착된 직업을 가지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마지않았다.

하지만 보라. 이 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방황하고있는것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일자리가 차례지지 않은 사람들일것이다.

비슈와나스의 눈에는 비오는 날 우산없이 진창길을 걷던 고향마을의 농군들의 모습이 보여왔다.

그는 일거리를 찾아 며칠간 뉴델리의 거리를 거닐다보니 부유한 가문에서 태여나 편안히 살아온 자기자신의 지난날이 미안하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비슈와나스는 그 나날들과 멀리 헤여지려고나 하는듯이 붐비는 사람들속에 섞여 그냥 앞으로만 걸어갔다.

사흘째 되는 날이였다.

그날은 그가 생일 21돐을 맞는 1947년 9월 15일이였다. 그날도 그의 가슴은 그 어디에 가서 즐겨볼 마음의 여유는커녕 점점 침습해오는 시간의 촉박감으로 끓고있었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일찌기 일어난 그는 간이매대에서 커피 한고뿌와 쌘드위치로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언제나 자신에게는 모든것을 넉넉히 베풀지 않는 그였다.

이렇게 그날에도 그는 이른새벽부터 거리를 거닐기 시작하였다.

쉬임없이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리기마련인가보다. 생일이든 명절이든 가림없이 길을 재촉하는 사람에게 어찌 인생의 길이 당겨지지 않을수 있으랴.

정말로 우연하게도 그날에 일거리를 얻는 기회가 찾아올줄은 몰랐다.

그는 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것을 자기와 결부시켜 생각해보며 스적스적 걸어나갔다. 뉴델리에는 대학시절에는 물론 중학시절부터 자주 와보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시점과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모든것을 들여다보게 되는것이였다. 그때에는 흥미와 유람, 취재의 길이였다면 지금은 이 도시에 발을 붙여야 할 운명의 길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이날에도 그는 그렇게 온종일 거리를 이어가며 무엇이 맞다들기를 바랐다. 이윽고 해가 떨어질 저녁시간이 다가오고있었다.

정녕 오늘에도 허사인가?

비슈와나스는 조바심이 났다. 그럴수록 운명이 점점 심각하게 역습해오며 그를 괴롭혔다.

다시 판도리마을로 가야 하는가?

아니다. 나는 큰소리치고 집을 나서지 않았는가.

죽어도 되돌아갈수는 없었다. 그것은 수치다. 어떻게 해서든 이 도시에 뚫고들어가야 했다.

인간은 살아있는 한 절대로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

그는 어떤 난관에 부닥쳐도 이름있는 사람으로 되겠다는 포부만은 버리지 않고있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그는 어떤 큰 거리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 거리의 첫 아빠트에 바라캄바(열두개 전주)거리라고 쓴 패쪽이 눈에 띄웠다. 비슈와나스는 정말 이 거리에 열두개의 전주가 있는가 하여 전주를 세여보며 걸어나갔다. 절반쯤 전주를 셌을 때 그는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있는 청사앞에 이르게 되였다. 그 청사에는 《쏘련대사관공보부》라고 씌여져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청사앞에 진렬된 사진들을 들여다보고있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도 그 진렬판에 머리를 기웃하였다. 코수염을 짙게 기른 쓰딸린의 큼직한 사진이 선참 눈에 안겨왔다. 쓰딸린의 사진을 중심으로 하여 그 좌우에는 인민경제의 복구발전에서 이룩한 사회주의쏘련의 성과를 소개하는 사진들이 주런이 나붙어있었다.

비슈와나스는 무심코 들여다보고있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뒤에 붙어서며 말을 붙이는것이였다.

《당신 여기서 뭘하고있는가?》

비슈와나스는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백인이였다. 늘씬한 키에 노란 눈을 가진 서양사람이 그에게 말을 건네였던것이다. 그는 영어를 아주 잘하고있었다.

《사진 보고있는 중이요. 이건 사람들이 다 보라고 붙여놓지 않았나?》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비슈와나스를 보고 그때에야 그 서양사람은 느슨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 소개를 하는것이였다.

《나는 쏘련대사관 공보부책임자 쥐. 에피모브요. 실은 당신을 좀 사귀고싶어서…》

비슈와나스는 자기 소개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내 이름은 비슈와나스요. 직업적인 기자였는데 나라가 분렬되면서 라호르에서 뉴델리로 온 참이요.》

《아, 기자!》

그 공보부책임자란 사람은 비슈와나스의 말을 듣고 매우 반가와하며 손을 내미는것이였다. 그의 얼굴에는 필요한 사람을 정확히 찾았다는 만족의 빛이 어리였다. 보매 그는 사진을 보고있는 사람들의 뒤에 서서 한사람한사람 충분히 일별하고 비슈와나스에게 접어든 자세였다.

《우리 쏘련대사관에서 잡지를 하나 발간하려고 하는데 당신의 도움을 좀 받을수 있는가?》

《물론!》

비슈와나스의 대답은 간단명료하였다. 무엇이든지 일감을 찾고있던 그인지라 생각해볼것도 없었다.

첫 마디에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이 젊은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에피모브는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자며 청사안으로 이끄는것이였다.

오호라,무엇을 마다하랴. 기회는 새와 같은것이여서 날아가기전에 붙잡으라고 했다.

이렇게 되여 비슈와나스는 사전의 아무런 수속절차도 없이 치외법권적인 그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였다. 그것도 공식외교관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결국 그는 처음으로 《국경》을 넘은셈이였다.

그는 대담하였다. 그의 그 대담성에 성공의 그림자가 따르기 시작하였다.

비슈와나스는 무게있게 꾸려진 방에서 에피모브와 마주앉게 되였다. 창가림은 진한 밤색무늬의 면비로도로 하였는데 천정에서부터 바닥에까지 길게 내리드리워져있었다. 그것은 이 방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엄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듯싶었다. 방꾸밈을 그렇게 한것은 여기서 토의되는 모든 문제들의 의미를 몇갑절 더해주려는 의도에서인지.

인차 김이 문문 나는 커피잔이 그들앞에 놓여졌다.

에피모브는 에두르지 않고 직방 결론적인 말부터 하는것이였다.

그것이 로씨야사람들의 일반적인 성격인지 에피모브는 갱핏한 생김새와는 달리 매우 괄괄한 사람이였다.

《오는 11월 7일이 쏘련국경절인데 그날을 맞으며 우리는 〈쏘베트 땅〉이라는 잡지를 내오려고 하오. 당신 그 창간호의 편집을 한번 책임지고 해볼 의향이 있는가?》

《물론!》

비슈와나스의 대답은 첫 대답과 다를바 없었다. 그 역시 에두르지 않고 결론적인 합의를 앞세워야 시원해하는 성격이였다. 이렇게 두사람은 통성하였다.

그다음 실무적인 대화가 오갔다.

에피모브는 역시 외교관이였으며 실무적이였다. 그는 주재국의 적합한 대상과 맞다들어 시원스럽게 통성하였다고는 생각하였지만 실수하면 안되는 자기의 외교적사명감으로 하여 상대의 정치적견해와 실력을 깊이있게 가늠해보지 않을수 없는것이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상대가 너무도 젊은 나이였기때문이였다. 젊은이들의 장기인 열정을 보고 그에게 접근하였지만 젊은이들에게는 그들대로의 축적과 경험이 부족한 약점이 있을수도 있는것이였다.

《당신 우리 쏘련력사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았는가?》

《많이는 보지 못하였는데 어느 정도는 읽었소.》

《쏘련혁명에 대해서는 알고있는가?》

말을 이어가는 에피모브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없이 여전히 웃음을 띠고있었으나 그의 눈길만은 상대방의 심리를 엿보려는듯 가늘게 쪼프려지고있었다.

《례하면 레닌이나 쓰딸린에 대해서…》

젊은이는 그의 물음에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않으며 동안을 두지 않고 앞질러가며 시원스럽게 대답하는것이였다.

《나는 기자인데 왜 레닌과 쓰딸린을 모르겠는가?! 쏘련의 국경절인 11월 7일이 바로 1917년 2월혁명에 의하여 짜리전제제도가 전복된 후 로씨야로동계급이 레닌의 지도밑에 사회주의10월혁명을 수행하고 지구상에서 첫 프로레타리아독재국가를 창건한 날이라는것을 나는 알고있소. 레닌은 지구상에서 첫 사회주의국가를 세운 큰 사람이라는것도. 그리고 쓰딸린에 대해서 내가 알고있는것은 그 역시 사회주의10월혁명승리에 이바지한 사람으로서 기본은 당신들의 조국전쟁인 히틀러도배들과의 싸움을 승리에로 이끈 큰 인물이라는것이요.》

에피모브는 만족하였다. 젊은 사람이 그쯤하면 자기가 바라는것을 왕성한 의욕으로 원만히 해낼것이라는 믿음이 대번에 가는것이였다. 그는 쏘련을 소개하는 많은 사진자료들과 영어로 된 소책자들을 한가득 주면서 말하였다.

《이것들을 참고로 하여 당신이 한번 통채로 편집해주길 바라오. 40페지정도로…》

《언제까지?》

《한주일! 당신 나이 젊은데 그 시간이면 능히 하지 않을가.》

에피모브는 거듭 믿음을 표시하며 영문으로 잘 만들어 견본을 가져오라고 당부하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파쑈도이췰란드와의 처절한 전쟁에서 영웅적으로 승리한 이들이 국제적지위를 강화하기 위하여 각 방면으로 노력하고있다는것을 비스듬이 가늠할수가 있었다.

쏘도전쟁에서 도이췰란드군은 도합 1 000만여명의 병력을 잃었고 쏘련은 2 000만여명의 희생의 대가로 정의와 평화를 지켰다. 인류력사에서 가장 영웅적이고 비장한 한페지를 장식한 이 한가지만으로도 쏘련은 부끄럽지 않게 대국으로 불리울만 하였다.

비슈와나스 개인적으로는 쏘련을 도와주는 길에 나서지 못할 아무런 조건도 없었다. 오히려 에피모브가, 아니 그 나라의 당과 정부의 노력과 립장이 리해되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에피모브가 내미는 손을 마주잡았다. 옛스럽게 장식되여있는 이 건물안에서는 언제나 현존문제들만이 론의되고있는것이였다. 워낙 외교관들의 석상은 다 그렇게 꾸려져있는것인지.

이렇게 비슈와나스는 쏘련대사관의 청탁에 쾌히 응하고 높은 철울타리를 두른 그 청사의 정문을 버젓이 나섰다. 자료들이 가득 들어있는 구럭지를 들고 그는 숙소를 찾아 부리나케 걸음을 놓았다.

이 거리에 열두개의 전주가 있든없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런것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아직은 자기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이 거리, 이 도시에서 이제 그가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인생의 먼먼길을 헤쳐나가게 되려는지 그때에는 그자신도 가늠할수 없었다.

그날에는 그 기회를 붙잡은것이 자기의 운명에서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되는지를 다는 몰랐지만 그 기회로 하여 비슈와나스는 사회주의쏘련의 문턱을 자연스럽게 넘어서게 되였다.

오늘날 그가 웃으며 말하듯이 《하느님》이 그에게 준 두번째 기회의 날은 이렇듯 인생의 자욱에 잊지 못할 생일날로 뚜렷이 새겨졌다. 그것도 력사다.

인생은 정말로 자기 행로에 있는 각이한 기회들의 종합이런듯싶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