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 회)
2. 인생초엽의 결혼 인기가 있는 총각들에게는 처녀들의 눈길이 쏠리기마련이다. 비슈와나스도 례외가 아니였다. 우람한 체구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모든것이 큼직큼직하게 생겼고 그 생김처럼 활동 또한 큼직큼직하며 그 이름
역시 널리 알려진 이 젊은 기자를 그 어떤 처녀인들 마다할수 있으랴. 그런데다가 또 부호의 가문이라 하지 않는가. 20살의 청춘남녀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미지의 세계이며 그들은 그 세계를 안고있는것으로 하여 날마다 환희에 넘쳐 설레이는것이였다. 사랑의 봄은 처녀들의 가슴속에 더 먼저 싹트는가보다. 신문사에는 비슈와나스와 함께 대학을 마치고 취직한 동창처녀가 있었다. 그는 신문사의 교정기자였다. 그는 비슈와나스가 쓰는 모든 글의 첫
독자로 되는것이였다. 그 처녀의 이름은 파라카슈! 빛, 광명이라는 뜻이였다. 그 빛, 그 광명이 비슈와나스를 비쳐주려고 열렬히 따랐다. 비슈와나스도 그 빛, 그 광명이 싫지 않았다. 우연히 복도에서 만나 눈길이 마주칠 때면 그 처녀는 알수 없는 수집음을 띠군 하였다. 비슈와나스는 그 처녀를 훨씬 이전부터
사랑하고있었던듯한 이상야릇한 기분을 느끼였다. 대학시절부터 비슈와나스의 인기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파라카슈는 신문사에 와서 그가 련이어 뿜어내는 글들에 공감했으며 그 공감은 점차 아릿한
사랑의 불길로 타올랐다. 날이 갈수록 그 불길은 타번지며 비슈와나스의 가까이로 오고있었다. 비슈와나스도 점점 다가오는 그 불길의 뜨거움을
감촉하며 심장이 달아오르고있었다. 하지만 봄계절에 들어선 청춘남녀의 가슴속에 자신들도 모르게 움트기 시작한 그 이상야릇한 감각의 세계를 누구도
명확한 리념의 세계에로 전의시켜주지는 않았다. 그들스스로가 사랑에 대한, 인생에 대한 명확한 리념을 가지게 되고 담도 커지게 된 때는 이미
모든것이 지나가버린 다음이였다. 당시 나라의 정세는 점점 험악해지고있었다.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간의 싸움은 격화되여 곳곳에서 서로 죽일내기를 하고있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일부 가족들이 밤사이에 안전한 다른
지방으로 떠나가기도 하였다. 특히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다른 곳보다 많이 뒤섞여있는 라호르가 더했다. 그해 12월 비슈와나스는 크리스마스명절을 쇠려 집으로 갔다. 그는 월에 한번씩은 고향마을에 가 부모를 만나뵙군 하였다. 집에 온 비슈와나스에게 아버지가 자기의 친구인 키션을 소개하였다. 키션은 처와 딸을 데리고 이미 와있었던것이다. 바드리 나트 취바와 키션은
다같이 빠띠알라주에 있는 란디즈단과대학 졸업생들이였다. 바드리 나트 취바는 의학을 전공하였고 키션은 경제학을 전공하였었다. 비슈와나스는 아무 생각없이 그의 가족과 명절을 즐기였다. 언제나 말없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있는 키션의 딸은 순박해보이였다. 그 처녀의 나이는 18살, 이름은 싼또쉬 꾸마리! 싼또쉬라는 말에는 만족이라는 뜻이 있었고 꾸마리라는 말에는 어린 처녀 혹은 딸이라는 뜻이 있었다. 그렇다면 싼또쉬 꾸마리는 만족을 주는
처녀란 말인가. 그런데 그 처녀는 안경을 끼고있었다. 한주일이 지나 키션의 가족이 떠나게 되였다. 비슈와나스는 뻐스정류소에까지 나가 그들을 전송하였다. 그들을 전송하면서도 비슈와나스는 그들이
왜 자기 집에 와 성탄절을 쇠고가는지 그런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친구의 가족이라고만 생각하며 모든 례의를 다하였을뿐이였다.
만약에 그가 그때 그들이 자기의 처, 자기의 장인, 장모가 될 사람들이라는것을 알았더라면 펄쩍 뛰였을것이다. 그들이 떠나간 다음에 두르가데비는 아들에게 모든것을 말해주었다. 바드리 나트 취바 역시 확정적으로 말하였다. 《네가 이제는 로임을 타기때문에 결혼시켜야겠다. 싼또쉬 꾸마리가 괜찮은것 같은데 인차 해야겠다.》 비슈와나스는 아뜩하였다. 자기는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앞길이 구만리같은 사람이 왜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단 말인가. 결혼은 과일과 달리 계절을 따르는것도 아닌데… 왜서인지 그 순간 비슈와나스의 눈에는 아릿다운 파라카슈의 얼굴이 보여왔다. 물론 그와는 우정을 떠난 그 어떤 다른 말이 오간것은 없었지만.
오늘날 결혼은 남녀의 완전한 평등과 호상존중 그리고 남녀가 서로 리해하고 부부로 될데 대한 자원적이며 진정한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것으로
되고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가 선정하는 대상자를 얼굴도 보지 못하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봉건의 법도가 그대로 존속되고있었다.
비슈와나스에게 결혼전에 처가 될 처녀를 보게 한것만 하여도 그의 집안은 훨씬 개명하였다고 해야 할것이였다. 하다면 세기가 바뀐 오늘날에는 그 땅에 봉건의 결혼법도가 다 없어졌는가?! 물론 없어졌다. 하지만 광활하고 인구수도 많은 그 땅에는 오늘도 여전히 봉건의 관습이 크나작으나 이어져오고있다. 지금도 전인디아적으로
15프로정도가 녀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부모의 선정에 의하여 결혼하는 법도가 지속되고있는데 농촌에는 지어 50프로이상이라고 한다. 하물며
그때에 부모의 의사를 거역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였다. 라호르에 직업을 가지고있는 비슈와나스가 빠띠알라주에서 개인은행업을 하고있는 키션이 사돈을 맺자고 바드리 나트 취바를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오고있는것을 어이 알수 있었으랴. 인기가 있는 총각들에게는 처녀들뿐아니라 딸가진 부모들의 눈길도 많이 쏠리기마련인것이다. 이렇게 판도리비비마을에서 비슈와나스의 혼사문제는 이미 물망에 오르고있었으며 남달리 가까왔던 친구들사이에 자식들의 혼사문제는 벌써
결정되여있었던것이다. 그러나 비슈와나스는 이 모든것을 알리 없었던 스무살의 젊은이였다. 아, 너무도 뜻밖에 맞다든 이 엄연한 현실앞에서 어떻게 할것인가. 비슈와나스는 부모의 의사를 선뜻 받아들일수도 없고 내놓고 거역할수도 없었다. 무슨 리유든지 있어야만 했다. 《나는 아직 어려서 장가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안경낀 녀자는… 싫습니다.》 비슈와나스는 곧 라호르로 돌아왔다. 다른 생각말고 취재와 집필에 전념하자고 그는 생각했다. 하면서도 그는 왜서인지 파라카슈가 무척 보고싶어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그 처녀의 얼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에도 모임장소에도 그리고 우연인듯이 만나던 복도길에도… 알고보니 그의 집은 그사이 어디론가 떠나가버렸다는것이다. 힌두교도인 그의 부모들은 이슬람교도가 많은 이 도시에 불안을 느끼고 힌두교도들이
집중되여있는 인디아중부에로 깊숙이 들어갔던것이다. 어느 주에로 갔는지는 알수 없었다. 부모는 자식을 데리고가기마련이다. 아, 광명의 그 빛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틀림없으리라. 광명의 그 빛은 그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기다리다가 어쩔수 없는 숙명의 바람에 떠밀리워 어디론가 가물거리며 숨어들었으리라.
하지만 그 빛은 찾을 길이 없었다. 아, 아, 이 땅을 휩쓰는 종교싸움의 바람은 이렇게도 모질게 청춘들을, 운명들을 갈라놓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종교는 불화의 씨앗이 아닌가? 서로 가까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갈라놓게 하는 종교는! 새해에 잡히여 월말에 집에 간 비슈와나스에게 바드리 나트 취바는 안경을 벗은 싼또쉬 꾸마리의 사진을 내놓는것이였다. 뻔한 일이였다. 그가 처녀의 부모에게 비슈와나스의 말을 알리여 그런 사진이 오게 되였을것이였다. 그런 부모들앞에 좋다싫다라는 의사를 어떻게 표시할수
있으랴. 비슈와나스는 침묵을 지키고 집을 떠나왔다. 침묵이 때로는 찬성의 표시로도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의 표시로도 되는것이다. 비슈와나스에게는 날이 갈수록 세상이 어수선하게만 느껴졌다. 교리싸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졌고 소문없이 떠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알리였다.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에 싸여있었다. 그럴즈음 전보가 왔다. 그 전보는 아버지가 비슈와나스에게 보내온 전보였다. 《어머니 병위급. 급래》 호출하는 전보였다. 비슈와나스는 지금도 그 전보를 건사하고있다고 한다. 때는 1947년 4월 23일. 인디아에서는 제일 더운 계절이였다. 전보를 받고 급히 고향마을에 내려온 비슈와나스는 의외에도 자기 집에서 울리는 북소리와 노래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얼떠름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비슈와나스를 그의 동생이 먼저 알아보고 반겨맞으며 말했다. 《형님은 래일 결혼하게 된다.》 《아니, 어머니 병은?》 비슈와나스는 다시한번 아뜩해졌다. 당장 뒤돌아서 어디론가 뛰고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를 겹겹이 에워싸는 샤르마가문의 손길에 끌리여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을수 없었다. 모두가 그를 반겨맞았지만 비슈와나스는 앞길이 캄캄해지는것이였다. 참으로 반갑지 않은 날이 그를 휩싸안았다.
그는 울면서 말을 했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겠습니다.》 모두가 그를 설복하였다. 그래선 안된다, 다 정해놓았다, 꼭 해야 한다, 안하면 실례다 하면서 할아버지계렬의 선친들이 엄하게 타일렀다.
사랑의 문이 열리기도 전에 결혼이 먼저 찾아온 이 생활,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그 누구와의 깊은 사랑이라도 있었더라면 세습적인 이 결혼법도에 항거해나섰을수도 있었으련만 금방 20대를 맞이한 그의 가슴에 비쳐오는 사랑의
빛은 있었어도 그 빛은 아직 그의 맘속에 깊이 스며들지는 않고있었던것이다. 비슈와나스는 몸부림쳤다. 아, 샤르마가문이여! 대대로 물려오는 너의 가부장적인 세습이 이렇게도 나의 발목을 붙잡는단 말인가. 결혼이여! 너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 조건이 사랑이라면 나는 아직 사랑을 해보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사랑은 부모의 강요도, 그 누구의 충고도 아니렷다. 그렇다면 사랑의 조건은 무엇인가? 아직은 알수 없었다. 그것이 얼굴인지 지참품인지 심장인지… 사랑도 결혼도 자유의 바람에 떠실려 이미 세상에 배회하고있었건만 그 바람이 그 땅에까지 불어오기에는 세월이 아직 모자랐던가, 아니면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리였던가. 오 생활이여, 너는 합법칙적인 자기 단계를 거쳐 발전하는 그 사회에 맞서며 번져지는것인가. 비슈와나스는 후날 아버지가 되여서는 자식들에게 모두 결혼의 자유를 주었지만 그자신의 젊은 시절은 구시대에 머물고있었다.
결혼의 선택권이 당사자들보다는 그들의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쥐여져있던 시대였다. 온밤 잠못들고 그는 자기의 방에서 격한 심정을 시줄에 태우며 밤을 밝혔다. 나의 총각시절이여 내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가 구애됨이 없는 《제왕》의 시절이여 하지만 너도 이제 하루 다음은 영영 끝장나려니 아, 좋은 시절이여 가지 말라 가지 말라 가지 말라 … 가능하다면 영원히 《제왕》의 이 시절에서 살리 붙잡을수만 있다면 영원히 총각시절이여 너는 나의것 … 말해보자 심장이여 자유라고 내 어찌 마음대로 총각시절과 작별할수 있으랴 이 세상을 알기도 전에 이밤 유일한 나의 위안의 말은 한마디 ― 총각시절이 간다고 청춘시절도 가랴 … 총각시절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비슈와나스에게 운명적인 새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이제 7일간을 어떻게 참고 견딜수 있단 말인가. 인디아풍습에는 결혼식이 7일간으로 되여있다. 결혼식 1일은 개막행사의 날이다. 개막행사는 주로 식당에서 하는데 이날에 가족, 친척들이 모두 모여 서로 상봉하는것이다. 결혼식 2일은 종교사원에서 종교의식을 하는 날이다. 이 의식은 녀자의 행복을 축원하는 의식으로서 하루종일 하는것으로 되여있다. 종교사원에서
12명의 수도승이 나와 불교경전을 읽는데 한쪽에서는 향나무에 불을 붙이고 계속 기름을 친다. 그것은 악을 멀리 쫓으며 행복을 불러오는 의식이다.
이날에만은 알콜, 고기류를 절대 금지하며 남새만 먹게 되여있다. 결혼식 3일은 총각이 처녀의 집에 약혼식을 하러 가는 날이다. 이날에 서로가 가락지를 교환하며 보석, 옷과 같은 기념품을 주고받는다. 녀자측에서는 남자측의 모든 가족, 친척들에게 기념품이 아니면
기념품형식으로서 돈을 주게 되여있지만 남자측에서는 오직 신부에게만 준다. 주고받는 물건이나 돈의 크기는 량측의 재정적능력에 달려있는것이다. 물론
이날에도 먹고 마신다. 결혼식 4일은 신부와 처녀들 그리고 결혼식에 참가한 모든 녀자들의 손과 다리에 각이한 색갈의 물감으로 무늬를 그려주는 날이다. 이것도 하나의 큰 행사이다. 물감은 헤나라는 나무의 잎사귀를 짓이겨 만든것인데 한번 칠하면 그 무늬는 한달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돈이 있는 집에서는 그것을 칠해주는 전문가들을 뭄바이와 남부에서 초청하여오는데 그 지불은 약차한것이였다. 결혼식 5일은 신부측에서 신랑측의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차리고 서로서로 깊이있게 통성하는 날이다. 결혼식 6일은 진짜날이라고도 할수 있다. 그것은 이날의 행사끝에 신부가 곧장 신랑의 집으로 가기때문이다. 이날에는 량측의 부모들과 친척들이
다 모여 춤추며 노래하며 즐기는데 저녁 7시에 시작하여 다음날 아침 6시까지 계속된다. 결혼식 7일은 신랑측에서 신부를 맞이하는 환영의식을 하는 날이다. 이날에는 신랑측에서 신부의 가족, 친척들을 다 초청한다.
신랑의 집에서 량측이 모여 연회를 하는것으로 한주일의 결혼식막은 드디여 내리워진다. 이것이 오늘도 계속되는 인디아의 결혼풍습이다. 세계적으로 결혼식을 7일간 하는 나라는 인디아와 파키스탄이다. 빈부의 차가 심한 인디아에서 돈많은 사람들의 결혼식은 요란하지만 돈없는 사람들의 결혼식은 가족범위에서 아주 소박하게 진행된다. 현시기 인디아의 부유층에서는 다이야몬드가락지도 20 000~50 000딸라짜리를 교환하지만 가난한 계층에서는 10~20딸라짜리를 교환하며
물감도 자체로 조금 사다가 저희끼리 칠한다. 그래도 이 결혼풍습만은 그 어느 집에서도 허물수 없는것으로 이어지고있다. 공식적인 날자가 7일이지만
그 이후에도 친구들, 친척들이 끼리끼리 모여 소연회는 계속된다. 결국 한주일동안에 많은 돈을 다 써버리고마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자기 민족의 이 결혼풍습만은 애초에 달가와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세기가 바뀐 오늘까지 이 풍습만은 어쩌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줄줄이 태여난 그의 후손들의 결혼식도 이 풍습에서 례외가 되지 않고있는것이였다. 그가 그 풍습대로 거행되는 후손들의 결혼식에 어쩔수없이 참가하고있는것을 보면 풍습이란 그렇게 쉽게 고쳐지지 않는 집요한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비슈와나스의 결혼식은 그 모든 공정을 뛰여넘어, 아니 그 풍습을 뛰여넘어 단 하루에 한다는것이였다.
첫새벽에 비슈와나스의 방에 들어선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미 량측에서 토론된 일정을 알려주는것이였다. 어랍쇼,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비슈와나스는 두눈을 크게 떴다. 그는 마치도 죽음에서 살아난듯한 기분이였다. 이 소식은 그에게 있어서 결혼식이 취소나 된것만큼 기쁜 소식이였다. 이제나저제나 빠질 구멍만을 찾던 그에게 있어서 하루는 정말 다행인것이라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게 되지 않았던들 그는 그 어느 틈에 달아나버렸을수도 있었으리라. 당시 나라의 정세는 점점 최악의 상태로 번져지고있을 때였다. 가는 곳마다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서로 죽일내기를 하며 싸우고있었다. 1940년 8월에 일어난 두 교도간의 류혈적인 충돌사건은 1947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격화되여 무려 500만여명의 사상자를 내는데까지
이르렀던것이다. 그 싸움은 피의 란투극이였다. 그리하여 국가적인 통행금지시간이 선포되였다. 그 시간은 매일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였다. 이것은 7일간을 내처 진행해야 하는
결혼식에 장애가 되지 않을수 없었다. 할아버지계렬의 선친들이 그래도 풍습을 어길수는 없다고 주장하는것을 많은 사람들이 토론끝에 하루에 모든것을 단축하여 진행하기로 겨우 락착을
보았다는것이였다. 다행이였다. 하루라니 이날만은 모든것을 운명에 맡겨야 했다. 하지만 이 하루도 참아내겠는지 그것은 두고보아야 할 일이다. 정말 아침에 뻐스가 나타났다. 빠띠알라주에서 오는 신부측의 일행을 맞는 환영의식은 요란하였다. 북소리, 피리소리, 노래소리… 비슈와나스의 등을 친척들이 막무가내로 떠밀었다. 그리하여 그는 좋든싫든 뻐스에서 내리는 신부를 신랑으로서 마중하게 되였다. 보매 신부는 안경을 끼지 않았다. 두 사돈댁들도 상봉하였다. 이 환영의식이 있은 후 모두가 다시 뻐스에 올랐다. 줄여서 100명이 넘는 인원이였다. 일행은 뻐스를 타고 결혼식을 위해 루디아나로 갔다. 루디아나는 판쟙주의 큰 도시로서 거기까지는 뻐스로 1시간이였다. 결혼식을 바로 그 도시에 있는 호텔에서 하게 되여있었던것이다. 비슈와나스의 결혼식은 성대히 거행되였다. 단축된 결혼식이였으나 샤르마가문의 그 위풍은 당당한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싼또쉬 꾸마리와 나란히
서서 만사람의 축복을 받았지만 신부와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때이르게 《강요》당하는 축복이 그에게 환희를 안겨줄리는 만무한것이였다. 처녀는 시집을 잘못갈가봐 걱정한다지만 총각은 길을 잘못갈가봐 걱정하는것이다. 통행금지시간전에 일행은 집에 도착하였다. 기다리던 가문의 많은 식솔들이 또다시 그들과 한데 어울려 대문에 빗장을 지르고 구애됨이 없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이제나저제나 기회만을 엿보고있었다. 드디여 집을 《탈출》할 때가 왔다. 모두가 거나하여 시선이 산만해지기 시작했던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새색시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선택의 권리를 잃었던 그가 이 시각 《탈출》의 권리만은
행사하려는것이였다. 주위의 눈길을 끌지 않으며 대문까지 나온 그는 문지기에게 편지봉투를 주며 이것을 밤 10시이후에 자기의 부모에게 전달하라고 단단히 오금을
박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가 종적없이 사라진것은 얼마 안있어 사람들에게 곧 알려졌으나 이미 통행금지시간이여서 누구도 문밖을 나설수가 없었다. 밤 10시에 편지를 전달한 문지기는 되게 욕사발을 먹었으나 그렇다고 도련님의 분부를 거역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편지내용은 나는 라호르로
갑니다, 잘 있으시오 하는것이 전부였다. 신랑없이 결혼식밤이 지나갔다. 바드리 나트 취바와 두르가데비는 사돈들앞에 게면쩍기는 하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들의 마음이 리해되기도 하였다. 다음날 아침. 통행금지시간이 해제되자마자 비슈와나스의 부모들은 싼또쉬 꾸마리를 데리고 라호르에 나타났다. 그들은 비슈와나스에게 큰 소리가 아니라 될수록
조용조용히 모든것을 리해시키려고 하였다. 오히려 큰소리로 말한것은 비슈와나스였다. 《내가 어디에 녀자를 건사하라는겁니까? 기숙사, 이 작은 방에?》 이때 처녀는, 아니 새색시는 한옆에서 어쩔줄을 몰라하며 안절부절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이때에야 처음으로 그의 존재를 느낀듯 자기에게 온
녀자를 유심히 보게 되였다. 연지곤지 찍은채 나타난 이 처녀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자기 운명의 판결을 기다리고있는듯 했다. 왜서인지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 아무 항변도 없이 처신만을 기다리는 순박한 처녀… 정말로 이름그대로 이 처녀가 만족을 주는 처녀란 말인가. 비슈와나스는 싼또쉬 꾸마리를 새삼스럽게 보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그 누구의 호감을 살수 있는 랑만적인 말이 나올리 없었다. 그때를 회상하여 오늘날 80고령의 비슈와나스는 나에게 말하였다. 《그때 처가 내앞에서 행동을 아주 잘했기때문에 나는 생각을 달리하고 오늘까지 잘살고있소.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부모가 진실한 녀성을
선택해주었기때문에 내가 가정을 그에게 맡기고 오늘까지의 모든것을 이룩할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오.》 그렇다. 신식의 련애결혼도 리상적이지만 때로는 부모가 선택한 배우자와의 결합이 그 리상에 못지 않는 성공의 인생을 수놓을수도 있는것이다.
그날 비슈와나스는 부모와 진지하게 합의하였다. 나라의 형세가 교파, 종파의 싸움으로 점점 험악하게 번져지고있으므로 당분간 싼또쉬 꾸마리를 부모들에게 맡겨두고 정세를 봐 집을
마련하자는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비슈와나스의 인륜대사는 1947년 4월 24일 하루에 불이 번쩍나게 이루어지고말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만 스물하나에로 향하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