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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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사흘후.
우리 나라의 통신, 방송이 아침보도시간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판문점에 대한 시찰소식을 일제히 발표했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무슨 리유로 그 보도를 사흘이나 늦추어 발표하게 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오전 10시.
판문점군사대표부 우리측 당직군관은 미군측 당직장교의 긴급전화를 받았다. 보도가 나간지 3시간뒤였다.
미군당직장교는 조미군부접촉을 속개할데 대한 자기측 통고내용을 전하였다.
뒤미처 미군측 비서장 옴스대령이 헐레벌떡 회의장에 등장하였다. 뜻밖에도 그는 싱글벙글하는 표정이였다.
《박대좌, 축하합니다!》
옴스는 우리측 비서장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인사를 하였다. 그는 저으기 흥분하여 우리측 비서장이 미처 답례할 사이도 없이 계속 떠들어댔다.
《당신네 최고사령관이 1선참호까지 나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김정일장군은 정말 배짱이 대단하십니다. 나는 처한테서 당신측 최고사령관이 판문점을 찾으셨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믿지 않았습니다. 나의 처는 한국녀자이니까 제꺽 포착하였는데 나는 아직 조선말을 잘 듣지 못하기때문에 혹시 잘못 듣지 않았나 하여 판문점이 어디라고 여기까지 나오시겠는가, 조선인민군에 사령관이 많은데 정말 최고사령관이라고 하던가고 따져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의 처가 옳게 들었소. 그건 사실입니다.》
우리측 비서장이 한마디 하였다.
그러자 옴스는 자기측 성원들이 듣지 않게 우리측 비서장의 귀에 대고 말하는것이였다.
《당신네 최고사령관이 전선부대를 시찰할 때마다 은근히 긴장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놀랐습니다. 당장 발밑에 북조선의 원자탄이 떨어지는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령관(미8군사령관)이 나를 불러 당신이 그날 판문점에 나가있었는데 왜 이런 사실을 모르고있었는가고 추궁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안개가 꼈다고 말했더니 더 추궁하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최고사령관이 도술을 쓴것 같습니다.》
우리측 비서장은 미군측이 무슨 리유로 긴급접촉을 요구했는지 그것부터 알고싶었으나 싫지 않은 대화여서 좀더 끌려고 팔소매를 걷어보였다.
《오, 금시계!》
옴스가 자기측 성원들이 듣건말건 큰소리로 웨쳤다. 그는 우리측 비서장의 팔목을 잡고 들여다보면서 자기측 성원들도 들으라는듯이 내놓고 말하였다.
《이런 금시계는 보통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하며 백만장자들도 몇번 재보고 살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금시계를 당신들에게 주신것을 보면 당신들이 최고사령관의 안중에 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나는 판문점에서 당신들과 두번째로 일하고있지만 대통령표창은커녕 사령관의 선물도 받지 못했습니다.》
옴스가 부러움을 금치 못하며 떠들어대자 그의 수원들도 우리 수원들의 손목을 잡고 저마끔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미군중령 베이커(미군측 수색장교):
《최고사령관이 최전선에 나오신것만도 그런데 기념사진을 찍고 금시계까지 주시였으니 처음 목격하는 일입니다. 김영삼은 판문점에 나올 생각도 못하고 클린톤대통령이 1993년에 나왔지만 겁이 나서 운동샤쯔바람에 잠간 들렸다가 갔습니다.》
미군소령 흘리쯔(미군측 공동직일관):
《당신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을 내가 간수하게 해줄수 없습니까? 서울의 친구들과 미국방성의 동료들에게 김정일사령관의 직하부하들과 같이 일했다는것을 자랑하고싶어 그럽니다.》
프랑스군 대령 그루너:
《최고사령관이 나오신것을 보면 당신네는 전쟁준비가 완성된것 같은데 여기에 있다가 돌아가지 못할가봐 겁이 납니다. 우리 련합군위원들속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고사령관이 판문점을 찾으신 덕에 당신들에게 행운의 보검이 차례지고 나에게는 지옥의 열쇠가 쥐여진셈입니다.》
회의장은 흥성거리였다. 이 회의장이 생긴 이래, 조미군부접촉이 진행된 이래 처음 있은 일이였다.
우리측 비서장이 옴스에게 물었다.
《미군측의 용건은 무엇인가요?》
《용건이 무언가구요?》
옴스는 이렇게 반문하며 어리둥절해하다가 비로소 자기들이 회담장에 나와있으며 적군앞에 있다는것을 의식한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리는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빨리 접촉을 속개하라는 지시를 받았을뿐입니다. 그는 지금 워싱톤과 련계를 취하고있는중입니다. 미안합니다.…》
사흘전부터 보브 돌은 미국회상하원 합동청문회에 불리워나와 진땀을 흘리고있었다. 청문회에서는 우리 나라 전선동부에서 있은 충돌사건과 관련한 질의가 진행되였다.
당신은 북조선군에 대해 어떠한 응징을 념두에 두고있는가? 전면전인가? 국부전인가? 그러한것이 전국선거이전에 있게 되는가? 이후에 있게 되는가? 그것이 미국민에 어떠한 리익을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하는가?
이 충돌소식에 접한 많은 국회의원들이 벼락을 맞은것만치나 놀라서 질문소나기를 퍼부었다. 그들은 이 충돌에서 미국이 실제적인 타격을 받고 손실을 본것만큼 보브 돌에게 인정사정없이 따지고 들었다.
보브 돌은 자기가 선거에서의 렬세를 만회하려는 열망에 들떠서 서뿔리 일을 저질렀다는것을 뼈저리게 뉘우쳤다. 사실 그는 현 행정부의 공식 동의없이 강경보수파로서 그의 측근인 합동참모본부 부의장과 군부의 일부 호전세력 그리고 주한미군사령관과 남조선괴뢰군 장성들을 부추겨 음모적인 방법으로 이번 도발을 감행하였던것이다. 도발이라고 해야 그때로서는 군사분계선표식물 하나를 옮겨놓고 북조선군의 전쟁의지를 시험하자는것이였다. 물론 《5027작전계획》을 짜고있던 그로서는 그 연장선우에서 전쟁도 불사할 결심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있을 일이였고 당장은 북조선군이 대응하는 경우 그것을 들고 자기의 선거공약의 기초이기도 한 강경보수적주장의 명분을 세우려 했던것이다. 그런데 사태가 급전직하로 번져지고보니 쩔쩔매지 않을수 없었다.
오늘은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최종적인 대답을 해야 하는 날이다. 청문회는 례외로 저녁 7시까지 계속되였다.
이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판문점시찰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청문회장은 갑자기 벌둥지를 쑤셔놓은듯 했다. 미국회의원들은 조선이 선전포고를 해온것만치나 놀라서 소동을 일으켰다.
보브 돌, 대답하라. 당신은 북조선군과 전쟁을 할 의지가 있는가? 대답하라. 대답하라!…
고함소리, 휘파람소리, 발을 구르는 소리에 넋이 나간듯 서있던 호전광이며 반공광신자인 늙은 대통령후보는 그만 비칠하였다. 그의 뇌졸증증상을 알고 따라와있던 담당의사가 얼른 연탁으로 달려나와 그를 데리고 나갔다.
국회의원들은 긴급건의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현 대통령 클린톤에게 넘기였다.
《미합중국 대통령 빌 클린톤은 미군총사령관의 권한을 행사하여 즉시 조선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며 대통령전국선거가 있기전까지 국내국외적으로 어떠한 분쟁도 없게 할것이다.…》
그로부터 몇시간 후 워싱톤과의 통신을 련결해놓고있던 남조선주둔 미군사령관은 다음과 같은 긴급전보를 받았다.
《북조선군인들의 시체를 즉시 돌려주며 북측에 휴전선충돌과 관련한 책임을 일체 묻지 말것이다. 미군 총사령관 빌 클린톤의 위임에 의하여 합동참모본부 타전. 워싱톤 1996년 11월 27일 23시 05분.》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적들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판문점시찰을 《결판을 내기 위해 나온》것으로 판단하고 공포에 질려 황급히 타전한 항복문건이였다.
후에 전해진데 의하면 김정일동지께서는 경비함성원들의 시신을 찾아오지 않으면 설(1997)을 쇠지 않겠다고 하시였다고 한다.
우리 군인들의 시신을 그 설을 하루앞둔 1996년 12월 그믐날에 판문점을 통하여 우리측에 인도되였다.
총검을 들고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나갔던 준엄한 력사의 리면에는 수많은 사랑의 일화도 있었으니 이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때의 판문점시찰은 단순한 사랑의 일화로만 볼수는 없었다. 그것은 적들의 태도여하에 따라 그들을 단호히 징벌하며 조선인민이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쟁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진행한 시찰이였기때문이였다.
적들에게 과연 전쟁의지가 있는가. 현재로서는 없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판단하시였다.
적들도 바보는 아닌이상 조선전쟁이 스스로 자멸을 청하는 길임을 알것이다.
그이께서는 이 판단을 적의 시점에서, 다시말하여 미국방성과 합동참모본부가 종합하고있는 객관적자료들을 분석한데 기초하여 내리시였다.
그에 의하면 첫째로, 미원정군이 조선에서 살아서는 돌아 못간다는것이다. 둘째로, 제국주의의 생존의 기초인 경제가 파탄되므로 미국은 운명적인 치명상을 입을것이라는것이다. 셋째로, 미국의 심장부에 불벼락이 떨어지게 될것이라는것이다.
만일 미국의 호전분자들이 이것도 불사하고 조선전쟁을 도발한다면 우리 군대와 인민은 결사의 각오로 맞받아나가 침략자들을 끝까지 소멸할것이다.
이날 적의 코앞인 판문점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동지께서 내리신 최종결심은 이러하였다.
이것은 혁명의 기둥인 인민군대의 무한한 정신력, 정예의 무장장비와 빈틈없는 싸움준비, 한마디로 그이자신이 《고난의 행군》기간 매일과 같이 전선길을 걸으시면서 마련하신 불패의 군력에 의거하여 내리신 결심이시라는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보브 돌은 주저앉았다.
그는 얼마후에 진행된 미국대통령선거에서 락선되고말았다. 이로써 조선의 《종말》을 운운하던 미국의 강경보수세력은 좌절을 당하였다.
《고난의 행군》에서 우러 군대와 인민은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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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드디여 우리 인민이 그처럼 기다리던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진행되고 제10기 제1차 최고인민회의가 열리였다.
이 력사적인 회의에서 새롭게 수정보충한 헌법이 전체 대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찬동속에 채택되였다.
새로운 헌법에 의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우리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모시고 국가기구에서 국방위원회의 권능과 역할이 훨씬 높아지게 되였다.
회의에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국방위원회 수위에 다시 추대하였다.
이것은 우리 당의 선군정치를 온 세상에 선포한것으로 되였다.
몇해후에 발표한 로작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위력한 사회주의정치방식이다》에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쓰시였다.
《나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높이 발양되고있는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육탄정신, 자폭정신을 혁명적군인정신이라고 하였으며 전당과 온 사회가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도록 하였습니다. 전당과 온 사회에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는 기풍이 높이 발양되고 인민군대의 위력이 더욱 강화되였을 때 우리의 령도는 선군령도이고 우리의 정치는 선군정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그 어떤 엄혹한 정세와 시련속에서도 혁명과 건설의 승리를 이룩해나갈수 있는 만능의 보검이였다. 이것은 사회주의정치, 군사가로서의 그이의 천재적인 예지와 탁월한 령도적수완이 가져온 빛나는 결실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