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지막회)
10. 모두가 만들어가는 이야기 어둠이 깃든지도 퍼그나 지났다. 하건만 양각도호텔의 전망대에 오른 북과 남의 력사학자들은 쉬이 자리를 뜰념을 안했다. 토론회의 흥분을
좀처럼 가라앉힐수 없었고 날이 밝으면 다시 헤여져야 할 석별의 정이 서로의 발목을 붙잡았던것이다. 우수가 지나서인지 훈기가 느껴지는 대동강의 밤이였다. 강물은 큰 갈기를 휘저으며 웅실웅실 흘러가는데 높다랗게 솟은 호텔의 불기둥이 물결우에
부딪쳐 길길이 부서진다. 머리우에서는 은하수가 웅장하게 흐르고있었다. 가슴에 새겨진 나날이였다. 서로 만나 허심하게 뜻과 정을 나누며 일제가 남겨놓은 력사의 상처를 뼈아프게 되짚어보고 반세기가 넘도록
쌓이고쌓여온 민족분렬의 응어리를 잠시나마 풀어본 나날이였다. 통일로 가는 길우에 또 하나의 디딤돌을 놓은 나날이였다. 《지명 역시 소중한 문화재라고 봅니다. 배나무골, 밤고개, 양지말, 범바위… 우리가 무심히 부르는 그런 지명들에도 다 제나름대로 력사의
숨결과 사연들이 얽혀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북의 어느 학자가 이런 말을 하자 남쪽학자가 선뜻 화답한다. 《동감입니다. 우리 고향마을은 예로부터 <긴마을>이라고 불러왔는데 지도에는 장촌(長村)으로 표기되여있습니다. 어째서 굳이 그렇게 표기를
했는지 리해되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저쪽에서도 열변을 토하는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온다. 《경제발전이라는거야 10년이나 20년만에도 이룩할수가 있지요. 허나 문화가 성숙하는데는 수백년, 아니 수천년이 걸리지 않습니까. 헌데도
전통문화의 귀중함을 리해하지 못하고 그걸 낡은것이라고 외면하거나 기껏해서 골동상품정도로나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막 뒤집혀집니다. 우리가
페수처럼 쓸어드는 서방문화의 홍수에 밀려 자기 문화를 줴버린채 록크나 디스코에만 취해 살아간다면 우리의 자식들과 손자들은 뿌리없는 조선사람이
돼버리고말게 아닙니까.…》 한편 또 다른쪽에서는 이런 이야기들도 오가고있었다. 《에짚트가 <루브르대첩>을 이루겠다구 필사적으로 달라붙고있다더군요.》 《<루브르대첩>이라니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고대에짚트의 무덤벽화조각 5점이 있는데 그걸 기어코 돌려받겠다는거지요. 그래서 요즘엔 루브르박물관측은 말할것도 없구
프랑스정부까지도 퍼그나 곤경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에짚트는 영국에 있는 로제타석(고대에짚트문자와 그리스문자가
씌여진 비석)과 도이췰란드에 있는 네페르찌찌조각(고대에짚트의 왕비를 형상한 조각)의 반환까지도 강력하게 요구하고있다는 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전 식민주의략탈국들과의 일대 유물전쟁을 선포한셈이지요.》 《거 정말 귀맛이 도는 소리군요. 하긴 영국의 대영박물관도 이란과 나이제리아로부터 유물반환압박에 시달리고있고 중국도 프랑스가 략탈해간
청나라유물들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있다는 소식을 나도 들었습니다. 서방에서 입이 닳도록 <세계화>를 떠들어댈수록 민족적자각은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지고있는게 오늘의 현실인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도 일제의 략탈문화재들을 돌려받기 위해 하루빨리 거족적인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밤이 깊어가는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있었다. 희망에 불타는 눈망울들, 흥분으로 불깃불깃해진 얼굴들과 활달한 몸짓들, 열정을
내뿜는 목소리들… 전망대의 네온등이 활기에 넘친 학자들의 얼굴을 뜨겁게 조명해주고있었다. 문성민과 박인규도 리경식교수를 둘러싸고 훈훈한 정을 나누고있었다. 《선생님, 다음번에 방북하면 고구려유적지들을 답사해볼 생각입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꼭 동행해주셔야 합니다.》 리경식의 팔을 부여잡고 이렇게 간청하는 박인규의 어조에는 무랍없는 응석기가 섞여있었다. 리경식은 그러는 박인규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세월은 류수와 같이 흘러왔다. 박상열과 울며웃으며 향악보를 찾기 위해 뛰여다니던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의 아들이 입김 뜨거운
장부가 되여 자기앞에 서있는것이다. 인규며 성민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리경식의 얼굴에 미소가 벙끗거렸다. 《나야 늙은 몸이 아닌가. 인젠 자네나 문실장 같은 젊은 사람들이 우릴 대신해야지. 안 그런가.》 믿음과 기대가 무겁게 실린 로교수의 당부였다. 그들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있을 때였다. 안내원이 다가와 리교수에게 서만옥동포가 찾아왔다고 알려주는것이였다. 순간 교수의 허연 눈섭이
구핏했다. 성민과 인규도 불시에 굳어져 안내원이 가리키는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만옥이 이쪽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리경식은 천천히 녀인에게로 다가갔다. 량귀가 벗어진 교수의 이마며 우묵한 눈확에서 들물마냥 밀려오는 추억의 파도인듯 주름살들이 소리없이
일렁거렸다. 경식은 안경을 벗어든채 눈에 힘을 모아 녀인을 바라보았다. 비록 류랑살이의 고단함과 방랑인의 애수가 짙게 슴배여있어도 서만옥의
두리두리한 얼굴에서 경식은 그 시절의 낯익은 모습을 찾아볼수가 있었다. 틀림없는 그 녀인이였다. 교수의 가슴속에서 묵직한 산골짜기의 메아리와도
같은 소리가 울려나왔다. 《혹시 고향이 진도가 아닌가요?》 그러자 서만옥이 눈시울을 가벼이 떨며 대답한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절 알아보시는군요.》 눈허리가 시큰해왔다. 경식은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엉킨 어조로 웅글게 부르짖었다. 《그러니 진도집아주머니가 틀림없구만.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과거의 문이 열리듯 그날의 광경이 다가들었다. 득의양양해서 날치는 가루베에게 경매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던 녀인의 그 모습이, 설사 알거지가
되더라도 조선사람을 우습게 아는자들과는 거래하지 않겠다던 사나운 그 웨침이 어제런듯 생생히 되살아왔다. 조국에 와서도 경식은 녀인을 잊을수가
없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종종 소식을 알아보군 하였다. 그런데 경매가 있은 뒤 얼마후 녀인은 돌연히 오사까를 떠나버렸다는것이 아닌가. 아무리
수소문해봐도 녀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길이 없었다. 그렇게 헤여졌던 녀인을 인생말년에 이른 오늘 여기 평양에서 만나게 될줄이야. 문성민과 박인규도 커다란 충격속에 서만옥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니 이 녀성이 바로 진도집녀인이란 말인가. 스승에게서, 아버지에게서 전해들은 그 시절의 이야기가 지나간 세월의 푸르스름한 원경속에 저녁별처럼 비쳐왔다. 그들은 봄시위같이 터져나오는 격정을 걷잡지
못한채 저마끔 녀인의 손을 부여잡고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손수건을 꺼내 눈언저리를 닦는 서만옥의 얼굴가에도 감동의 물결이 여울쳐 설레이고있었다.
리경식은 눈구석이 젖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녀인에게 물었다. 《대체 그때 왜 그리도 갑자기 오사까를 떠났었습니까?》 서만옥은 흥분을 가라앉히려는듯 잠시 동안을 두더니 마음속에 꿍져두고있던 어두운 사연의 실꾸리를 주섬주섬 풀어보이는것이였다. 《그때 가루베가 경매장에서 한 말은 빈말이 아니였습니다. 경매가 끝나기 바쁘게 그자는 무섭게 저한테 앙갚음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저를
<경매법위반자>로 재판에 걸었는가 하면 제가 가지고있던 거래선들을 차단하고 지어는 영업소들과 땅까지 모두 빼앗으려고 날뛰였답니다. 그야말로 저를
알거지로 만들자는 잡도리였지요. 허지만 제가 불쑥 오사까를 뜰 결심을 한건 그때문만이 아니였습니다. 뭐라고 할지… 더이상 일본땅에서 살기가 지겨웠습니다. 그리고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 일본인행세를 하기가 지겨웠구요. 생각해보면 제게서 남편을 뺏어간 일본이였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의 피눈물로 살이 지고
한숨으로 배가 불러온 일본이였습니다. 경매장에서 조선사람의 자존심을 걸고 싸우시는 리선생님의 의기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전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그애들에게 돈을 물려주기 전에 인생을 비굴함이 없이 떳떳하게 살아나갈수 있는 뿌리를 심어주는게 어머니로서, 아니 그보다는 돌아간 아버지를
대신해서 제가 해야 할 가장 중한 일이라는걸 깨달았습니다. 저자신은 둘째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새 출발을 하고싶더군요. 그래서 전 일본을
떠났던겁니다.》 서만옥이 이야기를 멈추고 깊은숨을 몰아쉰다. 네온등빛이 주름깊은 녀인의 얼굴을 빛과 그늘로 부각하며 쉬임없이 얼른거리고있었다. 얼마후
녀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일본을 떠난 전 서유럽에서 살고있던 이모를 찾아갔더랬지요. 그곳에 가서도 전 죽기내기로 돈을 벌었답니다. 허나 그때 이미 전 아라이
기요시가 아니였습니다. 부모님들이 지어준 서만옥이라는 이름을 되찾았거든요. 물론 아이들에게도 다 조선사람의 이름을 되찾아준건 더 말할것도
없구요. 남들이 서만옥이라고 불러주는 소리를 오래간만에 다시 들었을 때 왜 그리도 가슴이 울렁거리던지. 그런걸 보면 저한테도 조선사람의 피가
얼마만큼은 남아있었던가 봅니다. 헌데 아무리 돈을 모은다, 자식들을 먹여키운다 하며 눈코뜰새 없이 돌아쳤건만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빈것 같은 허전한 느낌만은 좀처럼
지워버릴수가 없더군요. 나이가 들수록 그런 느낌은 점점 커만 갔습니다. 아마 노상 조국에서만 살아오신분들은 잘 모를겁니다. 이역만리의 도시에서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문득 깨여났을 때의 그 쓸쓸한 감정을 말입니다. 그런 때면 꼭 자기가 무인도에 혼자 내던져진것만 같아서 금방 숨이 막혀오군
했습니다. 고향집 창호지에 비껴 흐르던 푸른 달빛이 보고싶더군요. 섬돌밑에서 밤을 새우던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랑 선들바람에 문풍지 울던 소리랑…
그런게 듣고싶어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나무잎도 가을이 되면 뿌리로 돌아간다더니 사람도 철이 들면 그렇게 되는가 봅니다. 언제부턴가 전 유럽에 널려있는 우리 문화재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고국의 문화재들을 한점한점 수집해가는 나날은 정처없이
헤매던 이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할가요. 전 그 일을 하면서 자기가 다름아닌 조선사람이라는걸 재삼 확인했지요. 후에 카나다에
옮겨와 살면서도 전 문화재수집을 계속했습니다.…》 리경식은 눈시울이 뜨뜻해오는것을 느끼며 녀인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서만옥, 처음으로 들어보는 녀인의 본명이였다. 부모가 지어준 성도
이름도 버린채 일본인흉내를 내며 살아가던, 재일동포들의 표현대로라면 민족적량심을 전당포에 잡히고 살아가던 녀인이 아니였던가. 그러던 녀인이
마침내 자신의 몸속에 맥맥히 흐르고있는 조선사람의 피를 깨닫고 겨레를 위한 길에서 스스로 책임을 맡아나섰다는 사실앞에 경식은 감개무량해오는
심정을 금할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면 일본에서 뵈웠던 리선생님의 모습이 저한테 강한 인상을 남겼던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끝내며 서만옥이 진심을 터놓는 말이였다. 문성민은 가슴속에서 울려오는 피끓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스승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생애의 마감을 생애의 시작과 떳떳이 련결시킬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닻을 올릴 때는 누구나 높은 리상과 포부에 부풀어있기마련이다. 그러나 모진 풍파에 부대끼고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는 과정에 나약하고 성실치 못한 사람들은 동요하게 되고 처음 정했던 항로를 변경하게 되는것이다. 오로지 참되고 강의한
사람들만이 인생의 파도가 거세질수록 자신을 끊임없이 승화시키며 신념의 항로를 따라 끝까지 가는것이다. 리교수도 그런 사람들중 한사람이라고 성민은
생각했다. 자신의 운명을 조국과 민족이라는 크나큰 품에 의탁하고 겨레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불태워왔기에 교수는 저렇듯 떳떳한 모습으로 사람들앞에
나설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리교수님이 일본에 계실 때 우리 문화재들을 찾느라고 고생많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몇년전에 학술토론때문에 일본엘 다녀온적이
있는데 거기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추억하고있더군요.》 언제부터 와서 이야기를 듣고있었는지 전남대학교의 강교수가 경의를 담고 하는 말이였다. 그 말에 리경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40여년전의 그 이야기가 어떻게 나 혼자만의 이야기겠습니까. 여기 있는 박인규선생의 아버지나 진도집아주머니나 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입니다. 아니, 비단 세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지요. 애국애족에 불타는 수많은 우리 동포들모두의 이야기라 해야 옳을겁니다.》 교수는 잠시 자기가 한 말을 묵묵히 음미해보더니 확인이라도 하듯 다시금 그루를 박는것이였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모두의 이야기입니다. 한사람이 만드는 이야기는 기껏해서 옛말에 머무르겠지요. 허나 모두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서사시가
되고 끝내는 력사가 될것입니다.》 모여든 사람들은 리교수가 한 말을 되새겨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러는데 강교수가 드레진 어깨를 들먹이며 흥분된듯 중얼거렸다. 《모두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력사가 된다! 의미가 깊은 말씀입니다. 사실 7천만이 마음만 합친다면야 못해낼 일이 뭐겠습니까. 그러자면
뭐니뭐니해도 제 민족의 힘을 믿고 민족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겠다는 마음가짐이 요구되는데 우리 남쪽의 현실을 보면 미국에 대한 사대의식이 뿌리깊게
남아있는게 문젭니다. 엊그제까지만도 <통일>이니, <화해와 협력>이니 하고 열을 올리던 량반들이 부쉬의 <악의 축>발언 한마디에 쑥 기여들어가는
행태를 좀 보십시오. <한미동맹강화>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그런 꼴을 보다못해 쓴소리 한마디라도 날리면 미국물을 잔뜩 먹은 전문가요, 관료요 하는
사람들이 대번에 눈을 부릅뜨면서 목청을 올립니다. <미국없이 우리가 살수 있어?> … 허 참, 솔직한 심정으로 그럴 때면 통일의 날이 망망대해의
수평선처럼 아득해보이기만 합니다.》 강교수의 이마우에 밭이랑같은 주름발들이 살아올라 꿈틀거렸다. 바위같은 침묵이 깃들었다. 리경식은 미간에 가로주름을 모으며 멀리로 눈길을
향했다. 굼니는 물결우에 가로등빛이 쉬임없이 부서지는데 대동교우를 달리는 궤도전차우에서 은백색전광이 펑끗거렸다. 강변의 유보도로 한쌍의 처녀총각이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두 젊은이는 자기들의 그림자가 하나로 합쳐지는것을 보며 즐겁게 웃고있는것 같았다. 리경식의 얼굴가에도
소년같은 웃음이 떠올랐다. 얼마후 리교수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을 사람들에게로 돌리며 낮으나 기운차게 말하는것이였다. 《그래도 난 력사의 힘을 믿습니다. 반만년의 민족사를 꿋꿋이 이어온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힘을 말입니다.》 리경식의 두눈이 안경속에서 힘있게 광채를 뿜었다. 웅글은 종소리마냥 로교수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머리우로 울려퍼졌다. 《40여년전 오사까의 경매장에서 난 그 힘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조선향악보>의 운명이 경각을 다투던 마지막순간에 어떻게 되여 우리가 손을
잡을수 있었겠습니까. 사상과 정견이 같아서였겠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민족의 귀중한 재보를 날강도들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공통된
지향때문이였습니다. 오늘의 토론회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서로 다른 제도하에서 각이한 리념과 정견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일제가
남겨놓은 피맺힌 상처앞에서 우리는 꼭같이 괴로움과 민족적의분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말그대로 분계선이 없는 토론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겝니다.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주의주장은 달라도 민족의 운명을 두고 함께 울고웃는것이 겨레의 진정일진대 우린 서로 믿음을 나누고
민족적아량을 베풀수 있다고 봅니다. 자기 민족을 중히 여기는 그 마음을 앞세운다면 북과 남은 얼마든지 단결할수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난 우리
민족의 장래를 락관합니다! 통일조국의 밝은 앞날을 확신합니다! 하하하…》 호기롭게 웃는 리경식의 모습이 네온등의 강렬한 화광속에 비쳐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후련해오는 심정을 느꼈다. 강교수도 서만옥도
그리고 문성민이며 박인규도 리교수와 함께 소리내여 웃었다. 그러는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리교수가 하던 말이 심혼의 독백으로 뜨겁게 이어지고있었다. 교수의 말이 옳았다. 분계선이 없는 오늘의 토론회였다. 겨레의 가슴속에 피멍으로 새겨진 뼈아픈 상처를 돌이켜보며 북의 학자이건 남의
학자이건 마음과 목소리를 합쳐 울분을 터뜨리지 않았던가. 민족의 문화재는 조상의 얼이요, 숨결이다. 심산유곡의 사찰터에 외로이 서있는 이끼덮인 돌부처에도, 인적없는 무인도의 지명에도 다 우리
선조들의 삶의 자취가 어려있고 후손들에게 남기고 간 혼이 깃들어있다. 그것은 돈으로는 헤아릴수 없는 민족공동의 긍지이며 민족문화발전의 바탕으로
되는 귀중한 유산이다. 그것은 우리 겨레모두가 계층과 세대를 넘어 함께 나눌수 있는 소중한 추억거리인것이다. 하기에 이 땅의 문화재들을 파괴하고 략탈한 일제의 죄행은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통한으로 새겨진 쓰라린 상처이다. 그 상처는 오늘날까지도
아물지 않고 후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있다. 일제가 무참히 도굴해간 고구려의 옛무덤들앞에서 남에 사는 사람인들 치를 떨지 않을수 있으며
왜적들이 략탈해간 백제의 기와들과 신라의 돌탑들을 보며 북에 있는 사람인들 어찌 주먹을 부르쥐지 않을수 있으랴. 아픔이 개인의것이면 상처에 그치지만 민족이 함께 나누면 힘이 되고 력사가 된다. 북이건 남이건 그 어데서 살건 분렬의 아픔을 안고 사는 이
겨레의 한 성원이라면 어느때건 마음을 가다듬고 력사의 그 상처앞에 한번 서보시라. 그러면 그대들은 저도 모르게 하나의 생각을 달리게 될것이다. 애국애족의 리념아래 온 민족의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치는 길만이 력사의 아픈 상처를 하루빨리 가시는 길이고 조국통일과 민족번영의 활로라는
이 시대의 진리에 대해 다시금 새겨보게 될것이다.… 대동강은 두리의 온갖 불빛들을 담아싣고 유유히 흐르고있었다. 소리는 없으나 거창한 흐름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