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3 장

 

1. 《바나나족》

 

《선주후면이라구 자, 쭈욱 냅시다.》

문성민의 앞에서 량볼이 두둑하고 걸걸해보이는 북쪽기자가 남쪽기자에게 술을 권하고있었다. 남쪽기자가 두손을 내흔들며 바빠나 한다.

《아유, 이거 감홍로군요. 난 이렇게 센 술은 자신없는걸요.…》

길다란 목에 귀도 어깨에 드리울만큼 길다란 부처님의 귀를 가진 그 남쪽기자는 술에는 퍽 약골인것 같았다. 성민의 곁에 앉아있던 박인규가 잘 아는 사이인듯 시물시물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이봐요 손기자, 평양에 왔다가 감홍로맛도 못 보고 가면 서운하지 않겠어요. 그러지 말고 쭈욱 내봐요. 거 옛날 어느 현자가 그랬다던가요. 술 석잔이면 큰 도에 통하고 한말이면 자연과 어우러진다고.》

박인규까지 그럴듯하게 합세하는 바람에 남쪽기자는 그만에야 울상이 돼버렸다.

《아이구, 이거 박형까지 왜 이러십니까. 큰 도는커녕 저라는게 워낙 두세번을 오바이트하면서 마셔야 겨우 사람과 통할가 말가 하다는걸 박형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술잔을 나누었다. 훈훈한 즐거움이 식탁 한가득 번져흘렀다. 비단 그들의 식탁뿐이 아니였다. 토론회를 마치고 대동강반의 옥류관에서 점심을 함께 하는 북남학자들모두의 얼굴마다에 모처럼 한솥밥을 나누게 된 식솔들인양 봄의 훈기와도 같은 웃음과 화기가 떠돌고있었다.

감색비로도를 휘감은 애틋한 접대원처녀가 대리석두리기둥을 감돌아 나타나더니 술을 못한다는 남쪽기자에게부터 쟁반국수를 날라왔다. 그러자 방금전까지 우는소리를 하던 남쪽기자는 언제냐싶게 바싹 다가앉아 량손에 쟁반을 받쳐들고 육수물부터 훌쩍훌쩍 들이키는것이였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탄성이 튀여나왔다.

《어- 시원하다! 거 듣던바대로 평양랭면은 육수물맛이 일품입니다! …》

감심어린 빛을 감추지 못하는 그에게 곁의 사람들이 싱글벙글하며 말깃을 달았다.

《하하하… 역시 조선사람치고 국수 싫어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니까요.》

《아무렴, 한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입맛인데 갈데 있을라구요.…》

무엇인가 찌르르한것이 바람을 만난 봄불마냥 성민의 가슴에 퍼져왔다. 절로 피가 설레이는것을 느끼며 그도 한마디 끼여들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퍼그나 많은 종류의 문화가 있기마련이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생명력이 끈질긴게 아마 음식문화인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음식문화야말로 모든게 다 변한다 해도 쉬이 변하기 힘든 인간의 바탕문화라고 할가요.》

《지당한 표현입니다.》

그 말에 흥분한듯 박인규가 운을 다는 소리였다. 그는 들고있던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나서 재빨리 이야기에 뛰여들었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면 김치나 된장찌개생각이 간절해지는것도 왜 그렇겠습니까. 마치 너나없이 대뜸 애국자라도 된듯이 말입니다. 하하… 다들 아시는것처럼 김치라는게 삭혀 먹는 음식이 아닙니까. 김치를 포함해서 우리 민족의 3대음식으로 꼽군 하는 장과 젓갈도 다 삭혀 먹는 음식이지요. 이 세가지에 공통적인 맛이 뭐냐면 다름아닌 익은 맛이요, 삭은 맛이라 해야 할겁니다. 바로 이 익은 맛, 삭은 맛이야말로 우리 민족만이 창조하고 향유해온 독특한 미각이라 할수 있지요. 외국에 가서 바로 그 이튿날부터 김치맛이 그리워지는것도 우리가 어머니의 배속에서부터 맛들여온 익은 맛, 삭은 맛이 그 나라의 음식들에는 없어서라고 봅니다. 아무리 좋은 고기국이라도 몇끼를 연거퍼 먹으면 물리기 십상이지만 김치나 된장국은 평생을 먹어도 물린다는 법이 있습니까. 그건 바로 김치맛이나 장맛이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우리의 피와 살속에 유전인자처럼 깊게 슴배여있기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흥이 오른 박인규의 달변에 북쪽기자도 성수가 나서 한몫 끼웠다.

《옳습니다. 그런 실례를 들자면 재미난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름지기 국에다 밥을 말아먹는 민족은 세계에서 유독 우리 민족 하나뿐일겁니다. 서양에 수프가 있고 일본에 미소시루(된장국)가 있어도 거기다 빵이나 밥을 말아먹는다는 소릴 들으신적들이 있습니까. 그만큼 우리 민족은 국을 좋아한다는 의미겠습니다. 저부터도 밥상우에 국그릇이 없으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걸요. 또 거기다가 뭐든지 많이 넣고 오래 끓이면 탕이라고 하지요. 탕을 꼽아보아도 그 종류가 오죽이나 많습니까. 추어탕, 잉어탕, 메기탕, 설렁탕, 두부탕, 족탕… 하여튼 어떤 식품이든 우리 민족에겐 국거리가 되지 않는게 없는것 같다니까요. 한번은 제가 어느 유럽기자랑 함께 설렁탕을 먹은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 탕국을 맛보더니만 눈이 퀭해지는게 아닙니까. 하하하… 하긴 그 사람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내버리는 뼈를 가지고도 우린 고기국 못지 않은 훌륭한 국이나 탕을 만들어 먹으니 놀랄수밖에요. 소뼈는 설렁탕을 해먹고 돼지뼈는 감자탕을 해먹지요. 고기가 주식이라는 서양인들도 그 맛을 한번 보고는 자기네보다 한수 우라면서 혀를 내두르더라니까요.》

《하하하…》

좌석에 흐드러져퍼지는 웃음소리를 타고 남쪽기자가 들썩거리며 맞장단을 친다.

《그 말을 들으니까 불쑥 떠오르네요. 어느 글에선가 우리 민족을 가리켜 그러지 않았습니까. <탕민족>이라고요. 하하하… 어떻습니까, <탕민족>! 제법 익살이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북쪽기자의 입담에 어지간히 흥알이 풀어졌는지 유난히 긴 남쪽기자의 귀바퀴마저 신바람이 나서 우쭐우쭐하는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성민도 웃고 박인규도 웃고 모두가 웃었다.

웃음소리가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충주에서 왔다는 남쪽학자가 이야기를 이었다.

《헌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음식이든 외모든 제건 덮어놓구 촌스럽다 하니 돌부처라도 웃을노릇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문화인의 첫번째 표징으로 내드는게 뭔가 하면 서양흉내를 얼마나 더 방불히 내는가 하는겁니다. 매개 민족의 문화라는게 다 나름대로의 유래와 타당성이 있는 법인데 자기를 서양식으루 바꾼다면서 죽을둥살둥 모르구 헤덤비는 못난 사람들을 보면 참…》

《그래서 <바나나족>이라는 말까지 생겨난게 아닙니까.》

어느새 국수 한그릇을 다 비우고 접대원이 가져다 주는 덧국수그릇을 푸접좋게 끌어당기던 남쪽기자가 기꺼이 동감이라는듯 또 말참녜를 했다.

《북에서야 처음 듣는 말일테지요. 껍질은 노랗지만 속은 허연 바나나처럼 덮어놓고 서양인흉내를 내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을 남쪽에선 그렇게 부른답니다. 먼데서 찾을것 없이 우리 집에도 그런 족속이 하나 있습니다. 요전에 집에 들어가니 고등학교에 다니는 제 아들녀석이 어느 인기가수가 부르던 노래가락을 흥얼거리는데 글쎄 <싸랑하는 끄대와 므안나미연 오엔즈이 모르게 씨올레는 가씀…> 허, 이러더란 말입니다.》

폭소가 터졌다. 제 아들의 꼴을 방불하게 흉내내는 아버지의 너스레도 우스웠거니와 모국어발음마저 영어처럼 들리게 하려 애쓰는 아이들의 들뜬 도섭이 더욱 사람들을 웃기였던것이다. 그러거나말거나 잇달으는 남쪽기자의 말이 또 걸작이다.

《하기야 인기가수라면 오줌누는 모양까지 본따지 못해 고민하는 요즘애들인지라 이상할것도 없지요. 그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난 아들녀석에게 내게도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던 시절이 있었다만 그때 너희네처럼 <오엔즈이 모르게 씨올레는 가씀>을 느껴본적은 없는것 같다고 한마디 일렀습니다. 그러니까 그녀석 한다는 소리가 허허… 참, 세계화시대에 아버지처럼 편협하고 옹졸해서야 되겠느냐고 점잖게 꾸지람을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더 높아졌다. 그러는데 웃을 일이 아니라는듯 박인규가 서글픈 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희극이라 해야 할지 비극이라 해야 할지… 신문이나 방송들이 온통 외래어로 매닥질되고있는것도 모자라 일반 대중가요에까지 뻐젓이 영어가 삽입되는 형편이니 구태여 아이들을 탓할것도 못되지요.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문화제국주의의 침략앞에 인제 와서는 우리의 모국어마저도 여지없이 희롱당하고있습니다. 민족어라는게 뭐겠습니까. 그 민족의 령혼을 담는 그릇이 아니겠습니까. 그럴진대 <라이스>가 <밥>을 비웃고 <와이프>가 <안해>를 몰아내는 풍토에서 무슨 민족의 장래를 운운할나위나 있겠니까.…》

박인규의 볼멘 소리가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발을 거두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술잔들이 비고 접대원들이 국수를 날라오는통에 분위기는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하지만 국수를 들고있는 동안에도 남쪽사람들이 하던 말은 문성민의 뇌리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문득 아프리카의 흑인녀성들속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던 피부표백이 떠올랐다. 흰 살결을 좋아하는 흑인남성들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적지 않은 흑인녀성들이 신체에 몹시 해롭다는 의사들의 경고도 마다하고 그리고 《검은것이 아름답다.》고 수없이 웨쳐대는 흑인해방운동가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앞을 다투어 피부표백에 나섰다고 한다. 무엇이 흑인들로 하여금 자기 고유의 피부색까지 경멸하며 그토록 흰것을 동경하게 만들었던가? 성민은 좀전에 박인규가 입에 올렸던 《문화제국주의》라는 낱말을 마음속으로 외워보았다.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 제국주의렬강들이, 더우기 미국이 지구상에 저들의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퍼부은 노력은 세인의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현란한 광고로 포장되고 자본의 《위력》으로 무장된 양키문화는 이르는 곳마다에서 유구한 세월속에 형성된 전통문화와 민족의식을 모래성처럼 무너뜨리며 세계의 《미국화》를 가속화해나가고있었다. 헐리우드가 만들어내는 인기배우들의 《매력》앞에 민족의 자랑으로 전해오던 영웅들과 위인들은 빛을 잃어갔고 어지럽게 란무하는 쟈즈의 광란앞에 전통음악과 예술은 박물관의 석기유물같은 처지로 전락되고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훌륭한 민족음식을 내팽개치고 미국의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찾고있었으며 심지어 얼굴의 아름다움이나 추함도 서방의 미의식을 유일한 기준으로 하여 판별하고있었다.

그것은 지난날 제국주의자들이 군함과 대포로는 도저히 거둘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전과가 아닐수 없었다. 오죽하면 문화를 앞세워 침략과 략탈을 감행하는 20세기 후반기의 제국주의를 두고 《문화제국주의》라는 새로운 술어까지 생겨났겠는가.

큰 민족이든 작은 민족이든 매개 민족이 창조해온 문화는 인류의 진보를 위해 하나같이 소중히 여겨져야 할 값비싼 경험이고 자산이라 해야 할것이다. 과거 일제가 그처럼 없애버리려고 광분했던 조선글이 그 과학성과 합리성, 독창성으로 하여 오늘날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고 미래의 세계공통어로 주목받고있는 사실만으로도 이것을 뚜렷이 알수 있다. 만일 약육강식의 론리에 떠밀리워 각이한 민족들의 다양한 전통문화가 깡그리 사멸되고 지구상에 힘센자의 획일적인 문화만이 판을 치게 된다면 인류의 문화는 얼마나 빈곤하고 초라해지겠는가. 그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엄청난 재난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남쪽사람들의 이야기는 문성민에게 아프리카에서 류행한 피부표백이 결코 흑인들만의 일이 아니라는것을 우울하게 상기시켜주었다. 뿌리를 망각한 민족, 문화적자존심을 잃은 민족은 결국 망할수밖에 없다는것이 인류사가 가르쳐온 평범한 진리이다. 《세계화》의 광풍이 어지럽게 휘몰아치고있는 오늘 민족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에 온 겨레의 뜻과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도 북남학자들의 이번과 같은 회합은 자주 열려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느덧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문성민은 박인규와 함께 동포녀인부터 찾았다. 토론회가 끝난 뒤 리교수가 그들을 찾아 서만옥녀인에게 꼭 만나고싶다는 의향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던것이다.

《리교수님이 어째서 그 어머님을 만나시려는걸가요? 어찌 보면 두분사이에 무슨 사연이 얽혀있는것 같기도 하고… 문선생은 뭐 짐작되시는거라도 없습니까?》

궁금함과 의혹이 섞갈려 도는 표정으로 박인규가 물어오는 말이였다.

《글쎄요?》

문성민도 알수 없다는듯 머리만 기웃거렸다. 아닌게아니라 박인규의 추측이 영 엉뚱한것 같지는 않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교수와 녀인사이에 흐르는 이상야릇한 긴장을 성민도 느꼈던것이다. 대체 무슨 사연일가? …

아무튼 교수의 의향을 녀인에게 전해주어야겠기에 그들은 토론회 참가자들속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다. 그러던 그들은 역시 누군가를 찾고있는듯 왔다갔다하는 안내원처녀와 마주치게 되였다.

《저, 리경식선생님을 보시지들 못했습니까?》

안내원이 묻는 말이였다. 문성민이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안내원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혼자말인양 중얼거리는것이였다.

《서만옥동포가 리선생님에게 면담을 요청해왔는데 어딜 가셨을가?》

문성민과 박인규는 대번에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그러니 동포녀인도 리교수를 만나고싶어한단 말인가. 그 어떤 사연이 있는게 틀림없다는 생각에 그들의 마음은 더욱 궁금해났다.

하건만 어디로 갔는지 동포녀인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아까 녀성들속에 끼워 식사하던 서만옥녀인의 모습을 보았었는데… 한동안 녀인을 찾아 헤매다니던 그들은 불현듯 옥류관 로대쪽에서 들려오는 리경식교수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근본화제는 여전히 민족이지요.…》

그쪽을 바라보니 리교수가 전남대학교의 강교수와 마주서서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그들은 리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헌데도 남쪽학계에서 왕왕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해 거부적인 주장들이 튀여나오군 하는것은 좀처럼 리해할수 없는 일입니다. 민족주의를 두고 <더이상 발붙일 곳이 없는 시대착오적인 사조>라고 한다든가 <민족보다도 인류공동의 관심사와 보편적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그러한 주장들은 사실상 미국학계의 론조를 그대로 받아외우는게 아닙니까?》

리교수의 물음에 강교수가 무겁게 머리를 끄덕인다.

《미국학계의 권위를 우상화하는 사람들이 우리 학계에 적지 않은건 사실입니다. 원래 미국이란 나라는 다인종사회여서 민족을 국가형성이나 사회적결합의 1차적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력대로 미국인들이 민족주의라는 말보다 패트리어티즘(애국주의)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해오는것도 그때문이겠지요. 허나 좀더 파고들면 민족이나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미국학자들의 태도가 단순히 저들의 사회력사적인 환경에만 기인되는것 같지 않단 말입니다. 보다는 미국의 량면적인 대외정책에서 주되는 원인을 찾아야 할것 같습니다.

미국이 지금껏 우리의 민족주의에 어떻게 대응해왔는가를 따져봐도 충분히 그렇게 말할수 있다고 봅니다. <타프트-가쯔라협정>을 통해 명백히 드러난것처럼 태평양전쟁이전만 해도 미국정부의 립장은 우리 민족의 존재자체를 묵살해버리는게 아니였습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 나라 민족주의세력은 일본의 <문명화>시책을 거부하는 말썽군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태평양전쟁이 터지니까 미국은 당면한 대일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 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민족운동세력과 손을 잡기 시작했지요. 허지만 일본이 패망하고나자 미국은 걷잡을수 없이 분출하는 아시아민족운동을 경계하면서 우리의 민족주의세력에 대해서도 일면 리용하고 일면 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대표적실례가 백범의 경우일겁니다. 초기에 독립운동가로서의 백범의 명성을 저들의 점령통치와 반쏘, 반공정책에 써먹으려던 미국은 점차 격렬해지는 그의 반외세성향에 위구를 느끼게 되였습니다. 더우기 백범의 남북련석회의 참석은 그와 미국과의 관계를 돌이킬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은 결정적계기가 되였지요. 결국 미국은 백범을 가차없이 제거해버렸습니다. 1950년대 후반 북에 호응하여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던 조봉암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4. 19이후 혁신세력의 통일론의가 실천운동으로 번져가는 시점에서 5. 16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놓고보면 미국은 민족주의세력이 저들의 대아시아전략의 틀안에 갇혀있는 한에서는 관용을 베풀었지만 저들의 랭전이데올로기를 부인하고 련북과 통일을 지향할 때에는 무자비하게 짓밟아왔다는걸 확연히 알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민족문제를 대함에 있어서 미국은 우리 민족의 리익이 아니라 철두철미 저들의 국익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왔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 있는 조선문화재들을 반환할데 대한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당시 일본점령군 사령관을 하던 맥아더가 취한 태도만 돌이켜봐도 자신있게 그런 결론을 내릴수 있습니다. 그때 맥아더는 조선문화재를 내놓기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불만으로 저들의 군정통치가 흔들릴가봐 반환을 완강히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보십시오. 미국이 겉으로는 6 .15를 환영하는척 하지만 뒤에서는 우리 민족끼리 합심해서 밀고나가는 통일사업들을 사사건건 방해하고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미국의 진면모를 까밝힐 대신 <민족에 대한 담론은 철지난 외투와도 같다.>느니, <민족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가 중심>이라느니 하면서 미국이 하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따라외우는 사람들이 있으니 정말 기가 막혀서…》

화가 치받치는듯 강교수는 입을 다물고말았다. 강교수의 심정이 그대로 문성민에게도 옮겨왔다.

(민족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가 중심이라?…)

그럴듯한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인간이란 어느때 어디에서 살고있는 인간들인가. 미지의 세계에서 온 우주인들을 념두에 둔걸가. 아니면 민족이라는 말을 거치장스러워진 낡은 옷처럼 여기는 그런 인간들을 가리키는것일가.…

문제는 현실이다. 우리의 현실을 떠난 론리와 자대로 우리를 말할수 없다. 외세가 강요한 민족의 분렬로 인해 반세기가 넘도록 수난을 겪어온 이 땅우에서 민족의 운명과 동떨어져 과연 그들이 말하는 인간의 가치를 실현할수 있단 말인가.

리경식교수의 침중한 목소리가 귀전에 울려왔다.

《남에 대한 환상이 골수에 배기면 그렇게 자기 존재마저도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가 봅니다. 민족의 단합된 힘이 그 어느때보다 절박한 이때 민족을 론하지조차 말라니 그게 외세의 론리지 어디 우리의 론리입니까. 외세가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믿을건 자기 민족입니다. 동족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로교수의 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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