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 회)
7. 한겨울의 육개장 리경식과 박상열은 보름이 넘도록 아라기 사다오의 서재안에 붙박혀 지냈다. 그 과정에 그들이 얻은 소득은 적지 않았다. 리경식만 하여도
장서를 정리하면서 두차분에 달하는 수많은 고서들과 자료들을 수집할수가 있었던것이다. 그중에는 아라기가 문부대신으로 있을 당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주고받은 편지들과 조선총독부의 시정문건들을 비롯하여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지통치의 리면을 낱낱이 고발해주는 귀중한 력사자료들도 있었다.
경식은 정리한 장서가운데서 조선관계자료들을 따로 모아 조국으로 보냈다. 박상열 역시 퍼그나 많은 수확물들을 도꾜의 자기 고서점으로 발송하였다. 장서정리를 마감하고 아라기의 별장을 나서던 날 그는 득의한 빛을
감추지 못하며 경식에게 자기의 기쁨을 소란스럽게 표현하는것이였다. 《여보게, 난 이번에 노다지를 잡았네. 글쎄 아라기의 곰팡내 나는 장서더미속에서 구한국 말기의 외교문서들이 나질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나.
통감으로 있던 이등박문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 숱한 문헌들을 훔쳐내갔다고 하더니만 필경 그 문서들도 그때 도적질당한것들이겠지. 그것뿐이 아닐세.
황도파니 통제파니 하는 군벌관계자료들도 적지 않게 손에 넣었거든. 파쑈일본의 군벌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걸 알면 아마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올거네. 하하하… 고생한 보람이 있는것 같아, 친구!》 박상열의 흥이 오른 사설은 고마무라에서 맺어진 친분을 기념하여 둘이 함께 사진관에 들려 사진을 찍고 도꾜행 기차에 오를 때까지 그쳐지지
않았다. 하건만 경식의 마음은 좀처럼 가벼워질줄 몰랐다. 상열의 들뜬 기분을 리해하지 못해서가 아니였다. 그동안 참빗으로 훑듯 아라기의 장서를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그가 그토록 고심하며 찾는 《조선향악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던것이다. 나중에 장서를 관리하는 아라기의 서기에게까지
물어보았지만 리경식이 들은 소리란 그런 책을 본적이 없다는 무심한 대답뿐이였다. 결국 향악보가 아라기에게 있다던 말은 한갖 뜬소문에 불과하였단 말인가. 경식은 좌절감으로 하여 금시 온몸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았다. 여태껏
쏟아부어온 그 모든 고심과 노력이 죄다 헛일로 되고말았다는 기막힌 사실앞에 눈앞이 캄캄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차창밖으로는 낮추 드리워진 납빛구름아래로 한겨울의 메마른 벌판이 흘러가고있었다. 물웅뎅이같이 뿌옇게 흐린 하늘을 쳐다보느라니 경식의 마음은
더더욱 무거워졌다. 인제는 어찌해야 하는가. 《조선향악보》의 행방을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향악보를 찾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니 고마무라에서 얻은 적지 않은 소득들도 리경식의 마음을 별로 기쁘게 해주지 못하였고 이 시각 박상열의 흥뜬 목소리도 그의 귀전에 제대로
와닿을리 만무하였다. 줄곧 자기 이야기에만 열중해있던 상열은 뒤늦게야 경식의 밝지 못한 기색을 알아보고 의아해서 물어왔다. 《자네 얼굴이 왜 그리 어두운가?》 경식은 그제서야 번거로운 상념에서 깨여나 대답대신 시무룩이 웃었다. 그러는 경식에게 상열이 물음표마냥 고개를 기우뚱하며 다시금 물었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게 아닌가?》 자기를 지켜보는 상열의 눈길에서 진지한 빛을 읽은 경식은 구태여 숨기고싶지 않아 《조선향악보》를 찾지 못해 그런다고 솔직히 터놓았다. 《<조선향악보>? 아라기의 장서에서 찾던 그 고서말인가?》 장서정리를 시작할 때 경식으로부터 함께 찾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던지라 상열은 대뜸 말귀를 알아들었다. 그는 별수없지 않느냐는듯 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찌겠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지지 않는걸. 대신 자네도 이번에 퍼그나 되는 자료들을 입수하지 않았나. 그걸로 위안을 삼는수밖에…》 그 말에 경식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하긴 상열에게는 책제목밖에 일러준것이 없으니 십분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어려운 일을 맡아안고 귀국까지 미루어온 경식에게 있어서 향악보는 쉽사리 포기할수 있는것이 아니였다. 그가 아라기의 장서를 점령하기 위해 그토록
고심참담한 노력을 쏟아부은것도 기본은 그때문이 아니였던가. 한동안 묵묵히 차창밖을 바라보던 경식은 자신을 다잡기라도 하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왜놈들이 뺏어간 향악보를 되찾는건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이 아닐세. 그 고서를 찾지 못하면 난 떳떳한 마음으로 조국의 품에 안길수
없단 말이네.》 순간 박상열의 얼굴에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구만. 그 책이 그다지도 귀한 보물이란 말인가?》 경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상열은 궁금증이 치받쳐오르는지 조급히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경식에게 다우쳐묻는것이였다. 《대체 <조선향악보>란 어떤 고서인데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나?》 경식은 호기심과 의혹의 빛이 가득 떠도는 상열의 얼굴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고마무라에서 적지 않은 기간을 함께 지내는 나날에 그는 박상열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였다. 민족의 력사와 관계되는 귀중한 자료들을 발견할
때마다 어린애마냥 환성을 터치던 상열의 꾸밈없는 모습에서 그리고 누렇게 바랜 페지들에 새겨진 일제의 죄악을 목격할 때마다 분노를 금치 못하던
달아오른 그 얼굴에서 경식은 자기 겨레를 소중히 여기는 한 량심인의 심장을 느끼군 하였다. 경식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상열의 불같은 성격이
마음에 들었고 박상열도 리경식을 뜻이 통하는 친구로 마음 터놓고 대하게 되였다. 게다가 두사람의 나이까지 엇비슷했던지라 그들은 어느 사이에
너나들이하는 관계가 되여버리고말았다. 불쑥 이 친구에게도 향악보에 대해 이야기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경식의 머리속에 갈마들었다. 고서업자인 그의 도움을 받을수도 있다는 반지빠른
타산에서가 아니였다. 박상열 역시 자기 민족의 소중한 재부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고 그것을 되찾아야 할 의무가 있는 민족의 한 성원이 아닌가. 리경식은 정색해진 낯빛으로 상열에게 향악보에 대해 들려주기 시작하였다. 《사실 나자신도 향악보를 찾아나서면서야 그 가치에 대해 다소나마 알게 되였네. 한마디로 말한다면 <조선향악보>는 우리의 민족음악사를 연구하는데서 사료적의의가 매우 큰 고문헌이라고 할수 있지.》 조용히 말머리를 뗀 경식의 목소리에 차츰 힘이 실려왔다. 향악이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 궁중음악의 한 갈래로서 예로부터 전해져온 우리 나라의 고유한 음악을 이르는 말이다. 중세시기 우리 나라의
궁중음악에는 다른 나라와의 문화교류과정에 생긴 아악(궁중의식음악), 당악(중국민간음악)과 함께 유구한 세월을 내려오며 창조된 우리 민족고유의
향악이 있었다. 당시 봉건통치배들은 왕궁에서 진행하는 각종 제사와 례식에 쓰던 아악만을 바른 음악 즉 《정악》이라고 하면서 궁중음악에 인입된
전통적인 민간음악인 향악을 《속악》(속된 음악)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레의 삶의 토양속에 깊숙이 뿌리박고있던 향악은 긴긴
세월 사대와 전횡의 발굽밑에 갖은 시달림을 당하면서도 면면히 자기 발전의 길을 이어왔다. 특히 15세기에 이르러서는 박연을 비롯한 애국적인
음악가들에 의하여 앞선 시기에 창작된 향악곡들이 수집정리되고 새로운 향악곡들이 창작되였으며 아악분야에서도 불비한 외래아악대신 향악에 기초한
신정아악, 조선식아악을 창제하는데 이르렀다. 비록 향악은 민속악이 궁중안에 흘러들어가 봉건통치배들의 비위에 맞게 변화된 궁중음악형식의 하나였으나
민족적인 형식과 인민적인 요소가 적지 않게 포함되여있는것으로 하여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남았으며 중세조선음악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되였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된 후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이 로골화되자 우리의 민족음악가들은 겨레의 고유한 음악전통을 보존계승하려는
애국적일념밑에 력대로 전해져오던 소중한 향악곡들을 악보집으로 묶어 정리하였다. 그것이 다름아닌 《조선향악보》였다. 벌써 우리 나라를 집어삼키기 수십년전부터 진행되여온 일제의 조선에 대한 연구는 강점이후 각 방면에 걸쳐 더욱 심화되였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민속과 문화에 대한 연구는 무서우리만큼 철저한것이였다. 조선의 력사와 문학예술, 도덕, 풍습 등은 물론이고 지어 속담과 수수께끼, 옛말
같은것들까지 속속들이 조사하기 위해 갖은 수고를 아끼지 않은 그네들의 저의는 무엇이였던가. 과연 그것이 일제가 세상에 대고 광고하던대로 《조선문화의 창달》을 위해서였던가. 아니였다. 단지 식민지에 대한 지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데
그네들의 진의도가 있었을따름이였다. 이를테면 반만년의 력사속에서 형성되고 굳어진 우리 민족의 원형질을 낱낱이 조사분석함으로써 저들의 식민지통치에
유리한것은 남겨두고 페단이 될것은 거세해버리려고 하였던것이다. 조선을 병탄한 일제가 이른바 《조사》요, 《연구》요 하는 미명하에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인 《조선향악보》를 깡그리 파헤친것도 결국은
그때문이였다. 그런데 수백여년세월 전해져온 조선봉건왕조의 궁중음악유산들과 함께 겨레의 숨결과 혼백이 깃들어있는 《조선향악보》마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패망직전에 송두리채 앗아가버린것이다. 결과 현재 국내에는 민족음악연구에 절실히 필요한 향악자료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하니
실로 일제식민지통치가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남긴 상처는 얼마나 가혹하고 뼈아픈것인가. 이야기를 마치는 리경식의 우묵한 눈확에 비분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기가 막히는 일이구만. 제땅에 선조들의 음악유산을 연구할 변변한 자료조차 남아있는게 없다니…》 목굽밑까지 찬 불만과 원한을 터뜨리듯 이렇게 중얼거리던 박상열은 가슴속에 울보채는 울분을 누를길 없는지 갑자기 경식의 두손을 와락
부여잡는것이였다. 《아무렴, 왜놈들에게 도적질당한 조상의 재보를 그대로 내버려둘수야 없지. 친구, 이게 어떻게 자네 혼자만 애쓸 일이겠나. 인제부터 나도
향악보를 찾는 일에 발벗고 나서겠네.》 리경식은 가슴이 뻐근했다. 박상열이 그렇게 나오리라고 짐작하지 못한바는 아니였지만 막상 불같은 그의 호응을 대하고나니 세찬 충동이
새삼스럽게 흉벽을 쳐왔던것이다. 그것은 왜적에게 수난당하고 치욕당한 모든 조선사람들의 마음속에 메아리치고있는 민족적의분과 사명감이였다. 경식은 투지의 빛이 넘쳐흐르는 상열의 열띤 모습을 미덥게 지켜보다가 웅글게 한마디 했다. 《고맙네.》 그 말에 상열이 제편에서 펄쩍 뛰였다. 《고맙다니? 건 무슨 가당찮은 소린가? 자네나 내나 단군의 후손들이기야 마찬가지가 아닌가.》 자못 노여움을 금치 못해하는 상열의 태도앞에 경식은 당황하여 웃음으로 굼때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느덧 그들은 도꾜에 와닿았다. 박상열은 기차에서 내리자바람으로 다짜고짜 경식을 자기 집으로 잡아끄는것이였다. 《눈치가 발바닥이라고 날 욕할테지. 하지만 아무리 처자생각이 굴뚝 같대도 우리 집에 먼저 들렸다 가게. 이대로 자네와 헤여지고싶지 않아서
그러는걸세.》 실은 리경식의 심정도 다를바가 없었다. 어쩐지 박상열과의 인연이 례사롭지 않게 여겨져 그는 별로 뿌리침없이 상열을 따라나섰다. 상열은 찌요다구에 있는 한 서점거리로 경식을 데려갔다. 류달리 고서점들이 집중되여있고 가끔 가다 고서시장이 열리기도 하는 이 거리를 경식은
이미전부터 잘 알고있었다. 저녁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한 거리를 따라 처마를 나란히 잇댄채 저저마다 제나름의 특색을 광고하며 늘어서있는 고서점들이
눈앞에 안겨왔다. 서양책이나 한서를 전문으로 파는 곳, 의학이며 공학 등의 기술서적만을 취급하는 곳, 그런가 하면 종교관계 서적만 파는 서점도
있었다. 띄염띄염 신간도서들을 취급하는 책방들도 눈에 뜨인다. 상열은 《구다라서림》이라는 간판을 내건 목조건물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이 바로 박상열의 고서점이자 집이였던것이다. 뒤로 돌아가니 《가네다 마사또》라는 통명옆에다 《박상열》이라는 본명을 뚜렷이 새긴 문패가 경식의 눈길을 끌었다. 비록 교제상의 필요로
불가피하게 통명은 사용하나 자기가 조선사람임을 이웃들에게 떳떳이 드러내고 살아가는 집주인의 배심이 느껴져 마음이 절로 흐뭇해왔다. 상열이 문을 여는데 투박한 억양의 경상도사투리로 반기는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그나, 인규 아부지 오십니껴.》 푸성귀냄새가 풍기는 퉁실퉁실한 몸을 흔들며 안주인이 허둥허둥 달려나왔다. 후덕스러워보이는 녀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남편을 만나는 반가움이
한가득 실려있었다. 하건만 상열은 안해와 인사를 나눌새도 없이 제잡담 경식이부터 소개하는것이였다. 《여보, 어서 인사하오. 전번에 내가 말한 그 리선생이요.》 그러자 안주인이 대뜸 아는체를 했다. 《아유, 리선상님얘길 주인에게서 들었십니더. 인규 아부지가 마음을 나눌만 한 친구분을 만났다구 어찌나 좋아허시는지…》 경식은 푸접좋게 늘어놓는 녀인의 말에서 진정을 느꼈다. 뒤따라 인규라고 부르는 아들애도 달려나와 두사람에게 꾸벅 절을 한다. 척 보기에
수영이또래쯤 됐을것 같았다. 자연히 친척집에 들린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경식은 스스럼없이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는 경식을 상열이
잡아이끌었다. 《자, 어서 들어가자구.》 경식은 상열을 따라 집안에 들어섰다. 집구조는 2층으로 되여있었다. 10평가량 되는 아래층에는 고서점이 차려져있었고 집주인들은 웃층에
자리잡고있었다. 상열은 안해에게 얼른 술부터 받아오라고 다그어대더니 자기 방으로 올라가자며 경식을 웃층으로 이끌었다. 상열의 방에 들어서던 경식은 눈이 둥그래지고말았다. 방안의 네 벽이 온통 책들로 메워져있었던것이다. 《자네 웃층에까지 고서점을 차려놓았나?》 영문을 몰라 묻는 경식에게 상열이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원 고서점이라니. 여기 있는 서적들은 지금껏 내가 모아온 민족고전들일세.》 《민족고전?》 경식은 호기심이 동해 벽에 가득찬 서가들을 찬찬히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느라니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박상열이 그렇게 많은 민족고전들을 수집했으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하였던것이다. 《고려사》, 《동국통감》, 《증보문헌비고》,
《해동고승전》, 《경국대전》, 《대전회통》… 경식이 처음 보는 고전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는 어디서 구해들였는지 중세시대의
고문서들이 서가가 휘여지도록 무드기 쌓여있었다. 《자네 이런걸 본적이 있나?》 곁에서 상열이 고서 하나를 꺼내보이며 뽐내듯 물어왔다. 《<청구명적>! 그러니 조선의 이름있는 필적들을 모은 책이라는건가?》 경식이 겉가위에 씌여진 책이름을 제나름으로 해독하자 상열은 제꺽 맞장구를 치는것이였다. 《옳네. 주로 조선조 중종왕(1506-1544년)때 활동한 명인들의 필적을 모아놓은 서첩일세. 16세기의 대유학자였던 리황이랑 기묘사화때
훈구파들에 의해 살해당한 조광조를 비롯해서 24명의 필적이 들어있네. 감식가들에게 여러차례 확인시켜봤는데 본인들의 자필이 틀림없다더군.》 《정말 귀한걸 얻었구만.》 경식은 감탄조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상열에게서 넘겨받은 책을 조심스레 번져나갔다. 닥나무종이로 된 책장의 갈피마다에 옛사람들의 글씨가
새겨져있었다. 부모나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도 있었고 짤막한 시구들도 있었는데 대부분이 류배지에서 썼거나 류배에서 풀려난 뒤에 쓴것이여서 조정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하소연이 많았다. 당대의 사회정치환경과 세태를 연구하는데 참고가 될 자료라는것이 한눈에 알렸다. 경식은 마치
자기가 보물을 얻기라도 한것처럼 뿌듯해지는 심정을 느끼며 상열에게 물었다. 《이 서첩에 수록된 글들이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건가?》 《대다수의 글들이 그렇네. 내 알기론 이남의 경우만 봐도 고려시대까지의 필적유물이 10점 되나마나하고 조선조시기의것도 16세기이전의것은
거의 없다고 들었네. 임진왜란때 대부분 불탄데다가 그나마 남은것마저도 일본인들이 죄다 략탈해갔기때문이지. 그러다나니 모국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우리의 옛 서첩들이 일본에는 무려 200여첩이나 된다고 하더군. 그중에는 14세기의 정몽주나 정도전의 필적이 있는가 하면 지어 신라때의 김생과
최치원의 필적도 들어있다는걸세. 허허…》 박상열이 텅 빈 웃음을 지었다. 마음의 아픔을 짓씹는것 같은 웃음이였다. 경식은 가슴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번열을 삼키며 말머리를 돌렸다. 《아무튼 자네 수완이 보통이 아닐세. 이런 희귀본을 손에 넣는다는게 어디 수월한노릇인가.》 그러자 상열은 말도 말라는듯 잽싸게 손을 내저었다. 《수완같은 소린 하지도 말라구. 다만 고서업을 하는 덕택에 이따끔 기회가 나지군 하는거지. 거저 줏다싶이 얻은 횡재를 두고 일본인들이 하는
말이 있지 않나. <호리다시>라고… 투기가 통하지 않는 고서업이라고 하지만 오래 하느라면 알게 모르게 그런 <호리다시>가 생기군 하는것 같네.
언젠가는 무식한것들이 파지값으로 내다 판 서적더미속에서 생각밖의 큰 수확을 얻은적도 있었네.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진본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거든. 개천 치다 금 줏는다고 그 재미에 여태껏 고서업을 털어버리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네. 하하하…》 상열의 넌덕스러운 고백에 리경식도 허허 웃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는데 박상열은 어느새 또 맞은켠 서가쪽으로 옮겨가 경식을 찾는것이였다. 《이리로 오라구.》 어지간히 신이 오른것 같았다. 경식이 그리로 다가가자 상열은 서가의 웃쪽에 놓여있던 보꾸레미를 조심스럽게 내리우더니 보자기를 풀어헤쳤다.
보자기안에서 붉은 밤빛바탕에 자개물림으로 참대를 그려넣은 칠함이 나타났다. 상열이 함뚜껑을 열어보이는 순간 경식은 저으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윽한 고풍이 느껴지는 기와막새 한개가 하얀 명주솜에 싸여 함안에
놓여있는것이 아닌가. 《이건 기와막새가 아닌가?…》 어리둥절해서 경식이 중얼거리자 자못 긍지가 어린 상열의 설명이 뒤따랐다. 《이게 바로 백제기와막새일세.》 《백제?!》 그러고보니 둥그런 테두리안에 련꽃무늬를 새긴 모양새가 이전에 어느 일본인호사객의 집에서 본적이 있는 백제시대의 기와막새와 너무도
비슷하였다. 리경식은 가슴에 일렁이는 야릇한 파문을 느끼며 천여년세월의 년륜이 서리서리 얽힌 기와막새를 이윽토록 들여다보았다. 기와막새란 골기와지붕의 처마끝에 놓이는 암기와나 수기와의 마구리부분으로서 비바람이나 날짐승의 침습으로부터 처마의 기와밑을 막아주며 장식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고구려는 벽화로, 신라는 석조로, 백제는 기와로 남았다.》는 말도 있듯이 백제의 기와는 왕조의 흥망성쇠와 륭성했던 당대문화의
일단을 이야기하며 지금까지 전해져오고있는것이다. 더우기 백제시대에 《와박사》라고 불리우던 기와전문기술자들이 멀리 일본에까지 초빙되여가 법륭사며
법흥사를 비롯한 아스까문화의 사원건축에 크게 이바지한것으로 하여 백제기와는 오늘날의 일본인들속에서도 찬탄과 경의의 대상으로, 값진 보물로
간주되고있었다. 경식은 기와막새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채 감동에 겨워 말했다. 《이 련꽃무늬를 좀 보게. 고구려문화가 씩씩하고 날카롭다면 백제문화는 둥글고 부드러우면서도 소박한게 특징이라 할가.…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배인 이런 보물들을 볼 때마다 난 낡아도 낡지 않는것이 참된 새로움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해보군 하네.》 이런 말을 하는 리경식의 모습은 어덴가 탈속한 사람처럼 보였다. 상열은 감심어린 빛을 숨기지 못하며 경식의 어깨를 쳤다. 《역시 임자와는 말이 통하거든. 하하…》 경식이 벙글거리며 말을 돌렸다. 《이 보물도 <호리다시>한건가?》 그 물음에 상열이 히죽이 웃었다. 《그런 보물이야 누가 거저 내놓겠나. 실은 몇달전에 시부야구에 사는 메리야스공장주인에게서 구입한걸세. 물론 헐한 일은 아니였지만…》 더 듣지 않아도 경식은 상열이 겪었을 고충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박상열의 체험이자 지난날 그자신이 겪어온 체험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더더욱 기와막새며 퇴색되고 보풀이 인 하나하나의 고서적들을 리경식은 무심히 스쳐지날수가 없었다. 조상들의 체취가 슴배인 고서적들을
펼쳐보기도 하고 쓸어보기도 하며 경식이 오래동안 서가에서 떨어질줄 모르는데 안주인이 저녁상을 차려가지고 바삐 들어왔다. 《시장들 하겠십니더.》 녀인은 미안스러워하는 어조로 이렇게 말하며 들고 온 밥상을 방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뜻밖에도 상우에는 어느새 준비했는지 보기에도 군침이
도는 육개장이 김을 문문 피워올리고있었다. 《에크, 귀한 손님이 왔다구 이 사람이 생색을 냈구만.》 상을 들여다보며 너스레를 피우는 박상열의 목소리는 자못 흥그럽게 울렸다. 아마 경식을 데려온다고 안주인에게 미리 선통해놓았던듯싶었다.
리경식은 집주인들에게 이끌려 상앞에 나앉았다. 안주인이 서글서글한 태도로 되병에 가득 받아온 소주를 두사람의 잔에 따라붓자 상열이 술잔을 쳐들며
기세를 뽑았다. 《자, 우선 쭈욱 내고 이 사람 솜씨가 어떤지 좀 보자구.》 경식은 상열이 하자는대로 단숨에 첫 잔을 성큼 비웠다. 그리고나서 뚝배기에 담겨진 뜨거운 국물을 훌훌 불다가 조심스럽게 한술 떠삼켰다.
다음순간 그만에야 그의 입에서 웅글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어- 기가 막힌걸. 아주머니의 솜씨가 여간 아닙니다.》 경식의 말은 과장이 아니였다. 얼벌벌하면서도 달큼하고 후더분한 육개장의 맛은 정말 별맛이였던것이다. 경식이 찬사를 련발하자 은근히 나그네의
동정을 지켜보던 주부가 기뻐하는 빛을 감추지 못했다. 박상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안경을 추스르며 넌지시 말곁을 달았다. 《내 장모가 경상도 대구출신인지라 이 사람이 육개장 만드는 솜씨 하나만은 제대로인것 같네. 원래 난 짜고 매운 경상도음식은 영 질색인데
어찌된건지 이 육개장만은 싫지 않거던.》 그제서야 경식은 알만 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푹 삶은 소고기에 양념을 무치고 국물을 부어 단고기국처럼 만들었다고 하여 육개장이라고
부르는 이 음식은 조선땅 어디를 가나 맛볼수 있는것이지만 그중에서도 경상도 대구지방이 유명하였다. 옛날부터 대구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철에 땀을
흘려가면서도 뜨거운 육개장을 즐겨 먹었고 대구에 오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 지방의 소문난 육개장을 먹고서야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육개장을
두고 일명 《대구탕》이라고도 불러오지 않았던가. 상열이 이번에는 깍두기가 담긴 공기를 경식의 앞에 가져다 놓는다. 《하지만 한겨울에야 뭐니뭐니해도 이 깍두기맛이 제일이지. 우리 집사람이 공주깍두기를 흉내내본건데 한번 맛보라구. 경상도녀자가 충청도맛을
제대로 냈을리는 만무하지만…》 슬그머니 빈정대는듯 한 상열의 말에 안주인이 념량좋게 대꾸했다. 《에그, 또 충청도량반행세를 하시는깁니껴.》 《아무튼 충청도음식에 비하면 경상도음식은 한참 멀었어.》 《우리 경상도음식이 어쨌다는깁니껴?》 경식은 이전에도 례사였던듯 한 부부의 입다툼을 웃음을 머금고 듣다가 자기도 한마디 끼여들었다. 《하긴 깍두기야 공주깍두기가 유명하지. 들으니 깍두기가 처음 생겨난 곳도 공주라면서?》 그 물음에 상열이 도리를 젓더니 저가락으로 깍두기 하나를 집어들며 이런 말을 들려주는것이였다. 《이전에 우리 할머님이 대주시기를 깍두기는 옛날 왕궁에서 먹던 음식이였다더구만. 조선조때 강직을 당해서 충청도 공주로 내려간 벼슬아치가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내려가서도 궁중에 있을 때 먹던 깍두기생각이 간절했다누만. 그래서 제절로 무우깍두기를 담그어 먹기 시작했는데 그 방법이
간단한지라 인차 민간에 널리 퍼졌다는걸세. 공주에서부터 항간에 알려진데다가 나라안에서도 공주의 깍두기가 제일 유명한 까닭에 흔히 사람들은 깍두기
하면 충청도 공주를 발생지로 알고있는거지.》 《그렇구만.》 경식이 상열의 어지간한 상식에 내심 감탄하는데 안주인은 더 듣지 못하겠는지 남편을 핀잔했다. 《인규 아부지요, 손님 앉혀놓고 무슨 말씀이 그리두 오랩니껴. 어서 드십시요, 선상님. 우리 주인한테서 선상님의 고향이 북이라 들었는데
남도음식이 입에 맞으시겠는지 모르겠십니더.》 경식은 그러는 녀인의 인정이 고마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원 별말씀을… 북이든 남이든 타고난 조선사람의 입맛이야 어델 가겠습니까.》 《백번 옳은 말일세.》 다시금 성수가 난듯 상열이 경식의 말을 제꺽 받았다. 《이 육개장만 보라구. 흔히들 육개장은 삼복철에나 먹는걸로 생각하지만 이렇게 한겨울에 내놓아도 마다하는 사람은 별로 없거던. 그만큼 우리
민족은 더운 음식을 좋아한다는거지. 옛날부터 북이든 남이든 팔도강산 어딜 가나 흙으로 빚어 만든 뚝배기를 즐겨 써온것도 필경 그때문이 아니겠나.
반대로 서양인들은 어떤가.》 《인규 아부지!》 안주인이 거듭 밀막아서야 상열은 또 한바탕 풀어놓으려던 말주머니를 주춤 거두었다. 《하, 이거 오랜만에 통하는 벗과 마주앉다보니 내 좀 푼수를 잃은가보군. 자, 어서 들자구.》 상열은 유쾌한 롱조로 자기의 실책을 얼버무리며 경식에게 음식을 권했다. 얼마후 안주인이 나가고 방안에는 두사람만 남았다. 련이어 술잔이
오가는 가운데 그들사이에는 또다시 이야기판이 펼쳐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고서적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조선의 유명짜한 서화가들이
오르내리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왕인(5세기초 일본에 건너가 문화발전에 기여한 백제출신 학자)이며 백제칠지도(백제왕이 일본의 후왕에게 하사한
백제시기의 칼)가 튀여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는 두사람의 모습은 척 보기에도 대조를 이루고있었다. 화약처럼 곧잘 흥분하여 쉴새없이 달변을 쏟아놓는 박상열이 다혈질형의 인간이라면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다가 이따금 꾹꾹 눌러짚는듯 한 어조로
자기의 생각을 터놓군 하는 리경식은 툭하면서도 묵직해보이는 점액질형의 인간이였다. 허나 비록 두사람의 성미는 판달랐어도 두고 온 고국과 겨레를
못 잊어하는 뜻과 감정이 하나같았기에 그들은 서로를 확인하고 공감하는 즐거움에 사로잡혀 밤이 깊어가는것도 잊은채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