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4. 하또리 류따로

 

《저길 좀 보오. 다리아가 얼마나 청초한가…》

하또리가 어린애마냥 탄성을 올리며 앞을 가리켜보였다. 가을볕이 내려쪼이는 꽃밭우에 하얀 다리아꽃들이 소담하게 피여있었다. 하또리는 뭉실하게 살찐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그리로 재빨리 걸어가더니 크고 둥근 다리아 한송이를 꺾어들었다. 드레진 가슴을 부풀리며 꽃향기를 들이키는 그의 얼굴은 가을빛에 취한듯 벌기우리하니 상기되여있었다.

《도시의 기하학적인 환경속에 갇혀 살다가 이렇게 자연미가 넘쳐나는 곳에 오면 어느새 아이가 돼버리거던. 가끔 난 자연이야말로 또 다른 신의 이름이 아닐가 하고 생각해보군 하오.…》

하또리는 저으기 들뜬 어조로 이렇게 말하며 다시금 소로길을 앞서 걷기 시작하였다.

락엽이 무수히 깔린 우에노공원의 소로길은 인적없는 구슬픔과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풍기고있었다. 그 분위기에 심취되였는지 하또리는 시라도 읊듯 자기의 감상을 계속 터놓았다.

《역시 가을은 서글픈 계절인가보오. 시들어가는 풀밭에 팔베개를 베고 누워서 유리알처럼 파아랗게 개인 하늘을 고요히 쳐다보고있노라면 까닭없이 마음이 서글퍼지거던. 가을에만 느낄수 있는 순수한 감정이라 할지… 리선생, 이거 내가 마치 자아에 도취된 염세주의자처럼 보이지 않소? 허허허…》

하또리는 구레나룻을 기른 퉁투무레한 얼굴에 허구픈 웃음을 실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생각에 골몰해있는지 고개를 수굿한채 천천히 따라오는 리경식의 모습이 보였다.

《허- 오늘은 내가 리선생에게 방해가 되는것 같구만.》

하또리가 짐짓 노여운체 하며 이런 말을 건네서야 리경식은 생각에서 깨여나 머리를 쳐들었다.

《아,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경식은 애써 흔연한 미소를 지으며 하또리에게로 다가갔다.

《<조선향악보>때문에 그러오?》

하또리의 물음에 경식은 무겁게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이즈음 경식은 앉으나서나 그 생각뿐이였다. 아라기의 완고한 태도앞에 번번이 실패를 거듭할수록 불안과 초조감은 더해갔고 그럴수록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조선향악보》를 찾아내고야말겠다는 집념이 그의 마음속에서 바위처럼 굳어져가고있었다.

하또리는 피로한 기색이 떠도는 리경식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저로서도 안타까운듯 중얼거렸다.

《소문대로 아라기 사다오의 괴벽이 여간 아닌게구만.》

그러더니 불쑥 이런 말을 꺼내는것이였다.

《리선생, 차라리 아라기에게 장서를 정리하려는 사연을 그대로 털어놓고 협조를 구하는게 어떨가? 악인도 죽음에 가까워지면 마음이 착해진다는데 혹 그 늙은이도 인생말년에 와서 개심하고있을런지 알겠소?!》

하또리의 말에 리경식은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도리를 저었다.

《어림도 없는 생각입니다. 아라기 같은 일본의 파쑈우두머리들이 지난날 조선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얼마나 광분했습니까. 말과 글을 빼앗는것으로도 모자라 조선사람의 성까지 빼앗으려 했습니다. 과연 그게 쉽사리 뉘우칠수 있는 한때의 광기였을가요. 극단적인 국수주의와 민족배타주의는 력사적으로 형성되여온 그자들의 고질적인 근성이라고 선생님도 어느 글에선가 쓰시지 않았습니까.…》

무심결에 자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있음을 느끼자 경식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하또리도 할 말이 없는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일뿐이였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두사람은 또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가을바람이 건듯 불어왔다. 허허롭게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결에 누렇게 황이 든 나무잎들이 또 한차례 우수수 떨어져내린다. 자연의 순리를 거역할수 없다는듯 허공중에 흩날리며 내려앉는 그 락엽들을 보면서 리경식은 하또리에게 다하지 못한 말을 마음속으로 쏟아놓고있었다.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력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며 그들의 조상들의 《무능》과 《악행》을 들추어내고 과장해서 조선인후손들에게 가르치게 하라고 한 조선총독 사이또의 망발은 단순히 일시적인 오만과 망녕에서 나온것이 아니였다. 저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조선인들을 깡그리 어느 외딴섬에 격리시켜 거세해버려야 한다고, 우생학상으로 보더라도 렬등민족은 멸망해야 한다고 떠벌인 일제의 법무대신 야나가와의 악담을 어찌 한때의 광증이라고 할수 있단 말인가.

결코 아니였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일본파쑈광들의 골수를 이루고 정신적유전자가 되여버린 《황국사관》과 《야마또우월주의》의 자연스러운 발로라고 해야 마땅할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무잎들은 가을이 오면 저렇듯 제절로 스러져도 일본반동들의 뿌리깊은 배타주의와 조선민족에 대한 적대감정은 쉽게 뉘우쳐질수도, 꺼져버릴수도 없는 체질화된 악습이라는것을 경식은 조금도 의심치 않고있었다.

리경식의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곁에서 하또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하긴 아직도 일본인들의 머리속에 조선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식이 농후하게 남아있는건 사실이요. 패전한지 십오년이 넘는 오늘날까지도 침략을 <진출>이라 표현하는가 하면 과거 식민지통치를 철길도 놓아주고 학교도 세워주었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작자들이 왕왕 눈에 띄우는 형편이니 아라기 같은자야 더 말해 뭘 하겠소.… 하지만 리선생, 일본땅에도 바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잊지 말아주기 바라오.》

진지한 빛이 도는 하또리의 모습앞에 리경식은 미안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소 누그러진 어조로 하또리에게 진정을 담아 말했다.

《저도 일본땅에 선생님과 같은 량심적인분들이 적지 않다는걸 잘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선생님의 도움을 청하러 온게 아닙니까.》

두사람사이에 믿음어린 눈길이 오고갔다.

하또리 류따로는 전쟁전에 교또대학을 나온 일본문예계의 한다하는 평론가였다. 오랜 호족가문의 넉넉한 환경속에서 자라난 지식인에게 있어서 일본을 참혹하게 란도질한 파시즘과 전쟁은 잔인한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전후 하또리는 천황제와 국수주의를 배격하고 일본의 민주화를 주장해나섰으며 오래동안 일본인들의 머리우에 군림하여온 야만적인 군국주의문화에 반발하여 《만인이 자유롭게 공유할수 있는 전 지구적인 문화》를 제창하는 사람으로 되였다.

리경식이 그를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5년전이였다. 어느날 도꾜의 한 골동품상점에 들렸던 경식은 청자 하나를 두고 주인과 고객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게 되였다.

《선생님, 이건 틀림없는 고려청자라니까요.…》

주인이 몇번이고 이런 말을 곱씹고있었지만 풍채좋은 몸집에 구레나룻을 멋스럽게 기른 고객은 잘 믿어지지 않는다는듯 연신 고개를 기우뚱거리는것이였다.

《내 보기엔 아닌것 같은데…》

《하- 선생님, 이래 뵈도 벌써 10여년째 골동품을 만져온 저올시다.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글쎄, 그래도 어쩐지…》

리경식이 그 자기를 살펴보니 고려청자는 아니였다. 민족의 문화재가 오인당하는것을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 경식은 그들의 말에 끼여들었다.

《이 자기는 고려청자가 아니라 중국청자입니다.》

그러자 고객도 주인도 어리둥절해서 경식을 쳐다보았다. 경식은 그들에게 차근차근 시비를 가려주었다.

《고려청자나 중국청자나 다 동양이 자랑하는 우수한 보물들이지만 같은 청자라 해도 품격에서는 제나름의 특징들이 뚜렷합니다. 고려청자의 모양은 부드럽고 경쾌하지만 중국청자는 그 최고봉이라고 하는 북송시대의 여관요청자를 놓고보아도 모양새가 예리하고 적절한 과장이 있어서 랭엄한 기품을 느끼게 됩니다. 색갈을 보아도 마찬가집니다. 고려청자의 칠물은 진하지 않으나 비취옥과 같이 록색이 비치고 칠물안에 미세한 기포가 많아서 섬세한 오목새김과 돋을새김이 바탕색과 함께 은은히 나타납니다. 반면에 중국청자는 칠물은 얇아도 투명하지 않아 오목새김이나 돋을새김이 보일리 없고 바탕색 또한 칠물을 통해 전혀 비쳐보이지 않습니다. 비유해 말한다면 고려청자의 색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나 모시발과 같아서 산뜻하고 은은하고 투명하다면 중국청자의 색은 황하의 물과도 같이 불투명하고 두터운 비단발을 드리운것처럼 보인다고 할가요. 그래서 송나라학자 태평로인도 자기의 저서에서 고려청자의 비색을 천하제일로 꼽았던게 아니겠습니까.…》

경식의 설명이 끝나자 모여들었던 고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 고려청자의 특색이 바로 거기에 있었구만.》

《참 박식한 젊은이요.》

그러는 사람들의 경탄어린 눈빛을 받으며 리경식이 밖으로 나오는데 누군가가 바삐 그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좀전에 주인과 마주서있던 구레나룻의 고객이였다. 고객은 무작정 자기의 명함장부터 내보이며 성급히 말을 붙이는것이였다.

《오늘 참으로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선생의 명함을 꼭 알고싶어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되였습니다.》

그 사람이 하또리 류따로였다. 이미전부터 일본문화의 뿌리인 조선문화에 대해 류다른 동경을 품고있던 하또리는 그리도 류창하게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설명해주는 리경식의 남다른 조예에 감복한 나머지 그만에야 부랴부랴 경식을 따라섰던것이였다. 리경식은 하또리의 청에 못이겨 근처에 있는 차집으로 들어갔다.

《도자기에 대한 조예가 이만저만 깊으신것 같지 않은데 혹 그 방면을 전문하시기라도…》

자리에 앉기 바쁘게 하또리가 던지는 물음이였다. 경식은 하또리의 의중을 짚어보며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자기 조상들이 남긴 유물인데 그만한것도 모르겠습니까.》

《아, 그러니 조선인이군요!》

하또리는 대뜸 반색을 하더니 잇달아 묻는것이였다.

《저, 헌데 대학은 어델 나오셨는지요?》

경식은 호기심이 비낀 하또리의 얼굴에서 꾸밈없는 진정과 호감을 읽을수가 있었다. 세상에는 서로 어색한감을 주지 않고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어보일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쩐지 하또리도 그런 사람처럼 느껴져 경식은 자기가 징용으로 끌려온 사람이라는것과 가난때문에 대학은커녕 중학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해 자습으로 중학강의록을 뗐다는것, 그리고 현재는 고물장사를 하면서 일본땅에 흩어져있는 고국의 문화재들을 수집하고있다는것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하또리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하여 굳어져버렸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듯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는 그의 표정에 리경식은 소리없이 웃고말았다.

종종 이런 경우를 당하군 하는 경식이였다. 전문교육도 받지 못한 한낱 고물상의 입에서 대학졸업생들도 아연해질만큼 해박한 문화재지식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올 때면 누구나 다 머리를 기웃거리며 의혹을 감추지 못해하였던것이다.

사실 민족유물수집의 길에 처음 나설 때만 하여도 리경식이 문화재에 대해 알고있는것이라고는 극히 단편적인것들에 불과하였다. 기껏해서 유적이 많은 평양에서 나서자랐다는것과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옛이야기들 그리고 고향에서 깨친 천자문이나 사략 같은것이 어느 정도 밑천으로 되였을뿐이였다.

그런 그였지만 높은 학력이나 전문지식으로도 대신할수 없는 소중한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두고 온 고향과 정든 피붙이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였다.

사랑할 때라야만 참답게 느끼게 되고 알게 되는 법이다. 이역땅에 널려져있는 민족의 문화재들을 볼 때마다 경식은 가슴 미여지는 쩌릿한 향수와 함께 조선사람된 본분을 후더운 피의 설레임속에 느끼군 하였다.

돈도 경험도 미약했던 초기에 그가 수집한것은 주로 값이 싸면서도 조그마한 문화재들이였다. 경식은 문화재를 구입한 다음에는 반드시 솜으로 싸서 얼마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는 틈틈이 그것을 꺼내여 들여다보며 유물의 진가를 판별해보군 하였다.

해당 시대의 정치와 경제, 풍속이 비껴있는 문화재에 대한 감식은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요구하는 일이여서 어떤것은 한달이 넘도록 그의 호주머니신세를 면치 못하는것들도 있었다. 때로는 문화재에 새겨진 명문 하나를 해독하기 위해 서점가를 누비며 관계서적들을 파헤치기도 하고 때로는 유물의 제작년대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이나 일본의 발굴보고서들까지 구해들여 잠을 깎아가며 비교해보기도 하였다. 아마 그가 독학을 해가며 씨름질하고 탐독한 한서들과 고고학서적들만 하여도 수집한 문화재수량의 몇곱절은 실히 될것이다. 그러는 과정에 자기도 모르게 문리가 트였다고 할가. 결국 리경식이 지니고있는 넓은 문화재안목은 한점한점의 민족유물마다에 기울여온 그의 애정과 지칠줄 모르는 노력의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것이다.

경식이 그런 사연을 하또리에게 대강 설명해주자 하또리는 감동의 빛을 금치 못하며 찬사를 터뜨리는것이였다.

《그러니 리선생은 되글을 배워서 말글로 풀어쓰시는셈이군요. 하, 정말 놀랍습니다. 리선생을 대하고보니 나라는 존재가 퍽 졸아드는것 같습니다.…》

그날 하또리가 너무도 잡아이끄는 바람에 경식은 별수없이 그의 집에까지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또리의 집은 도꾜의 중심부에서 얼마간 떨어진 조용한 곳에 자리잡고있었는데 주인의 방에 들어서니 외국의 이름난 고전그림들과 모더니즘류파의 그림들이 널다란 벽면을 다채롭게 채우고있었다. 집주인의 개방적인 취향을 력력히 느끼며 그림들을 돌아보던 경식은 어느 한 족자앞에서 그만 걸음을 멈춰버리고말았다.

족자에는 먹으로 쓴 붓글이 담겨있었는데 행서로 기백있게 내달린 붓글의 맨 아래에 뜻밖에도 《김옥균》이라는 락관이 새겨져있는것이 아닌가. 몇번이나 다시 눈여겨봐도 분명 갑신정변의 지도자 김옥균의 자필이 틀림없었다.

《아니, 이런게 어떻게?…》

자못 놀라워하는 경식에게 하또리가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며 다가왔다.

《역시 리선생이 진품을 알아보시는군요. 그 붓글은 증조부가 물려준 우리 집안의 가보입니다.》

《증조부가요?》

영문을 알수 없다는듯 경식이 이렇게 되묻자 하또리는 사연을 터놓았다.

…갑신정변에서 실패한 김옥균이 일본에 망명해와있을 때 얼마동안 증조부의 집에서 류숙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명치정부의 관리로 있던 하또리의 증조부는 조선의 개화선구자 김옥균을 개인적으로 퍽 동정한 사람이였다. 당시로 말하면 김옥균을 해치기 위해 수구파가 갖은 흉계를 꾸미고있었고 또 일본정부도 그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여기고있던 때였다. 하지만 증조부는 어려운 때 김옥균선생과 같은 의로운 렬사를 도와드리는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선생의 생활을 성심껏 방조하였다고 한다. 붓글은 김옥균이 집을 떠나면서 하또리의 증조부에게 남긴것이였다.…

《그러고보면 나의 증조부도 김옥균선생과 같은 의로운 렬사인셈이지요. 하하하…》

이런 말을 하는 하또리의 어조에는 선조에 대한 긍지가 다분히 배여있었다. 경식은 생각에 잠겨 김옥균의 붓글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창항청해령백약청(暢缸清骸領白葯青)》

항아리는 텅 비고 몸은 여위여도 옷깃은 깨끗하고 새싹은 푸르러라고 읊조린 붓글의 글귀들을 새겨보느라니 청운의 뜻을 이루지 못한채 력사의 뒤길로 덧없이 사라져간 한 선지자의 구슬픈 운명이 어려와 어느새 마음이 추연해졌다. 경식이 좀처럼 족자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는데 그 모양을 바라보던 하또리가 슬며시 이르는것이였다.

《마음에 들면 리선생에게 내드리겠소.》

경식은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대를 물리며 전해온 집안의 귀한 가보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놓겠다는 하또리의 말이 선뜻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그의 그러한 심정을 알겠다는듯 하또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색해서 말했다.

《나는 리선생 같은분들과 사귀는걸 인생의 제일 큰 락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공자가 그랬던가요? 자기보다 못한자를 벗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리선생, 저 족자를 이 사람의 진실한 우애의 표시로 받아주신다면 더 고마울것이 없겠습니다.》

리경식은 가슴속에서 뭉클한것이 솟구치는것을 느끼며 하또리의 손을 힘껏 마주잡았다.

자정이 넘도록 술병을 기울이며 서로의 세계를 기탄없이 나누던 그날 밤 경식은 하또리에게 일본정부의 시대착오적인 민족차별정책과 그로 인하여 당하는 재일조선인들의 고통에 대해 의분에 넘쳐 토로하였다. 그때 혈색이 피여오른 얼굴에 분개한 빛을 띠고 하또리가 하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재일조선인문제는 결국 일본인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조선인들을 보면 죄인같은 기분이 들어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인들의 괴상한 편협성과 배타성에 막 신물이 난다니까요. 내가 자신을 일본인이 아니라 세계인이라고 자부하며 다니는것도 그때문입니다. 리선생, 난 페쇄성이 강한 일본문화에 앞으로 보다 넓은 보편성과 다양성을 부여할 잠재력이 바로 당신들, 재일조선인들속에 숨어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요.…》

두사람의 친분은 이렇게 맺어졌다. 그들은 서로 민족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판이했지만 인간의 선과 량심에 대한 확신 그리고 인류의 진보적문화에 대한 공통된 애착과 열정으로 하여 오래지 않아 절친한 사이가 되였다.

그후 경식은 하또리에게 조선의 유구한 문화전통과 우수한 문화재들에 대해 아는껏 소개해주었고 하또리 역시 리경식보다 십년이나 년장이였지만 즐겨 흉금을 터놓으며 성의껏 도와주군 하였다. 더우기 문벌가의 후손이요, 명망있는 석학인데다가 활달한 사교성으로 하여 일본사회의 여러 계층속을 자유분방하게 누비고 다니는 하또리 류따로의 풍부한 인맥관계는 경식의 문화재수집사업에 여러모로 요긴한 방조를 주었다. 오늘 리경식이 하또리와 만난것도 그러한 인맥관계의 도움으로 아라기 사다오의 고집을 꺾어보자는 생각에서였던것이다.…

경식은 하또리의 손을 꽉 부여잡으며 다시금 당부했다.

《지금 저에겐 선생님의 도움이 어느때보다도 필요됩니다. 아무튼 꼭 부탁합니다.》

그러자 하또리는 호인다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는것이였다.

《리선생이 그리도 간절히 하는 부탁이니 힘자라는껏 노력해보겠소. 석가도 말했다지 않소. 쉬지 않으면 마침내 이루어지리라고 말이요. 제아무리 완고한 아라기라 할지라도 리선생의 그 끈질긴 집념만은 당해내지 못할거요. 하하하…》

하또리의 흔쾌한 웃음에 리경식도 따라웃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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