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3. 조국이 부르는 소리

 

리경식이 도꾜 아다찌구의 자기 집앞에 이르렀을 때는 밤이 이슥해서였다. 어느새 인기척을 들었는지 방문이 활짝 열리더니 불빛을 등에 지고 안해의 자태가 나타났다.

《인제 오세요.》

반색이 력력한 안해의 귀익은 목소리가 피로해진 경식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듯 했다.

《음, 좀 늦었소.》

경식은 따스하고 익숙된 온기를 피부로 느끼며 방안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있었다. 방 한구석에는 금방까지도 안해가 삯바느질을 하댔는지 토목공사장에서 쓰는 어깨받치개들이 무드기 쌓여있었다. 숫되고 조용한 성미여도 살림살이에 들어서는 남들이 혀를 찰만큼 손부리가 영글고 당찬 안해였다. 그렇지만 따지고보면 집안일을 줄창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안해이니 달리될수는 없는노릇이 아닌가. 외지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설 때면 늘 그러하듯이 미안한 생각부터 앞섰다. 경식은 긴숨을 내쉬며 곁에 있는 안해를 돌아보았다.

안해는 피로가 엿보이는 남편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서있었다. 가량가량한 그 녀자의 얼굴이 애틋한 그리움과 기대감으로 하여 발그스름히 상기되여있었다. 경식은 장난기 궂은 소년마냥 씽그레 웃으며 안해의 이마전에 드리운 머리칼을 정겹게 걷어올려주었다. 남편을 쳐다보는 안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안해는 방바닥에 널린 실밥들을 얼른 쓸어모으고나서 부엌으로 나갔다.

경식은 아이들에게로 다가갔다. 네살잡이 막내녀석은 반듯이 누워 제법 가릉가릉 코까지 골고있는데 일곱살 난 맏딸 수영이는 이불을 차버린채 엎드려 자고있었다. 수영이를 바로눕히고 이불을 여며주는데 머리맡에 딸애가 그리다 만 그림 한장이 눈에 띄였다. 푸른 바다우에 배 한척이 공화국기를 휘날리며 떠가는 그림이였다. 아마 귀국선을 그리려고 한것 같았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다음순간 어린것이 얼마나 조국땅을 밟고싶으면 저러랴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찌르르해났다.

귀국을 미루자고 했을 때 그렇게도 떼를 쓰며 성화를 먹이던 수영이였다. 하기야 조국에서 학교공부를 하게 되였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뽐내고 다니던 애였으니 실망인들 오죽 컸으랴. 어린 마음에 그늘을 남긴걸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알찌근해오군 한다.

《아버지한테 보이겠다구 수영이가 그린거예요.》

밥상을 차려들고 들어오며 안해가 하는 말이였다.

《그래. 날 원망하는거겠지.》

경식의 어두운 대답에 안해는 체념어린 미소를 지으며 밥상을 내려놓았다.

《어서 식사하세요.》

그제서야 경식은 옷을 벗고 밥상앞에 마주앉았다. 두사람분의 밥상이였다. 아무리 늦어도 남편이 들어오기 전에는 절대로 저녁을 들지 않는 안해였던것이다. 상우에 놓여있는 오지뚝배기에서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있었다. 경식이 좋아하는 이면수토막도 올라있었다. 남편은 안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면수반찬이 놓인 그릇을 밀어놓았다.

《아이들에게나 주오.》

그리고는 구수한 된장찌개를 곁들여 밥 한술을 껄끄러운 입속에 몰아넣었다. 안해는 남편의 밥먹는 모양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생각난듯 알려주는것이였다.

《참, 히사꼬가 왔다갔어요. 수영이 아버지가 출장가신걸 모르고 왔더군요. 돌아오시면 부탁하신 조사를 다 마쳤다고 전해달라 했어요.》

《히사꼬가?》

경식은 천천히 숟갈을 놀리며 중얼거렸다. 히사꼬는 리경식의 협회에서 일하는 처녀였다. 얼마전에 그에게 야마구찌현 대학들의 조선고서적소장실태를 조사해봐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벌써 일을 끝낸 모양이다. 늘 그렇게 책임감이 높고 일솜씨가 빠른 처녀였다.

헌데 무슨 실마리라도 잡힌건 없는가? 아라기의 장서를 보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아붓고는 있지만 정말로 거기에 향악보가 있다고는 아직 장담할수 없었다. 그런것으로 하여 경식은 발이 닳게 고마무라에 다니는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각 방면으로 향악보의 행방을 찾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있었던것이다. 히사꼬에게 부탁하여 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야마구찌현에 눈길을 돌려보게 한것도 그때문이였다.

경식이 두서없이 찾아드는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는데 머뭇거리며 물어보는 안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셨던 일이 시원치 않은가보지요?》

경식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나서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당신과 아이들은 먼저 귀국했어야 했을걸 그랬나보오.》

그러자 안해의 유순한 얼굴에 대뜸 놀라워하는 기색이 떠돌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영이 아버지 없이 우리끼리 어떻게 귀국한단 말이예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안해를 보느라니 경식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강원도 강릉이 고향인 그의 안해 김순분은 부모들의 등에 업혀 현해탄을 건너온 뒤 히로시마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자라온 불우한 녀인이였다. 미군이 떨군 원자탄으로 졸지에 부모형제를 잃은 순분은 천애의 고아로 일본땅을 헤매다가 리경식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였다. 하기에 순분에게 있어서 경식은 단지 남편만인것이 아니라 아버지였고 오빠였고 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나 경식은 안해를 위해 너무도 해준것이 없었다. 온 식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안해가 아라강바닥에서 자갈을 춰내고 파솜을 튀길 때에도 경식은 가정의 모든 부담을 안해의 연약한 어깨우에 떠맡긴채 오로지 문화재수집에만 골몰해왔다. 그래도 안해는 모든것을 리해해주었다. 순분에게는 남편의 꿈이자 자기의 꿈이였고 남편의 기쁨이자 곧 자기의 기쁨이였던것이다.

경식은 그러한 안해를 행복하게 해주고싶었다. 귀국의 배길이 열렸다는 소식에 접했을 때 제일먼저 그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것도 다름아닌 인제는 안해를 행복하게 해줄수 있게 되였구나 하는 생각이였다. 하건만 아직까지도 처자들을 이역땅에서 고생시키고있으니 그로서는 날이 지나갈수록 안해를 대하기가 민망스러워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저녁상을 물리고난 경식은 괴로운 마음을 털어버리지 못한채 웃방으로 올라갔다.

웃방은 누비돗자리를 깐 크지 않은 방이였다. 한켠에는 책시렁밑에 앉은뱅이책상이 놓여있었고 다른 한켠에는 오동나무상자들이 방안의 절반나마 차지하고있었다.

경식은 차곡차곡 쌓아놓은 오동나무상자들을 찬찬히 더듬어보았다. 크고작은 상자들마다에는 그가 모아들인 문화재들이 소중히 보관되여있었다. 값으로 치면 수백만엔은 넉넉히 나갈 보물들이였지만 언제 한번 그 보물들을 돈으로 여겨본적이 없는 경식이였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하나의 문화재들은 자신의 피와 땀이 스민 목숨같은 살붙이들이였고 천만금과도 바꿀수 없는 겨레의 고고한 혼이였던것이다.

부엌에서 안해의 설겆이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경식은 남편의 일을 두고 고심하는 안해의 번민을 마음속으로 읽으며 천천히 상자 한개를 열었다.

겹겹이 솜으로 둘러싸인 꽃병 하나가 상자안에 들어있었다. 푸른 빛이 도는 고려청자였다. 경식은 조심히 청자를 꺼내여 책상우에 가져다 놓고는 여느때의 습관대로 몇발자국 뒤로 물러나 앉았다.

청청한 가을날 옥계수우에 비낀 자태런듯 운치롭게 새겨넣은 버들가지며 학이 청자의 맑은 사기물을 통하여 은은히 비쳐왔다. 한쪽벽에 비스듬히 등을 기댄채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경식의 두눈에 따뜻한 정기가 일렁인다.

이런 때가 그에게는 제일로 좋았다. 정신없이 일에 다몰려살다가도 웃방에 홀로 앉아 청자를 마주하고있느라면 번거로운 시름들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마음마저 청자의 비취옥색으로 고즈넉이 물드는것이였다.

불쑥 고향생각이 났다. 고향 개뚝가에도 저런 물버들이 한벌 덮였었지. 바람결에 풍겨오던 쑥내, 마당가에 피여나군 하던 하얀 조팝꽃, 누렁개 한마리가 한가로이 누워 딩굴던 뒤뜰의 장독대… 무언지 모를 싱그럽고 눈물겨운 향기가 가슴 한가득 밀려온다.…

리경식의 고향은 평양 삼석리이다. 묘향산줄기의 여세를 타고 남쪽으로 물결쳐온 청룡산줄기가 평양준평원으로 떨어지는 곳에 대성산과 함께 솟아있는 청운산, 그 산자락에 자리잡은 당골이라는 마을이 증조부대로부터 살아온 선산의 땅이였다.

서낭당이 있다 하여 당골이라 불리우는 고향마을은 스무나문채의 농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크지 않은 동네였다.

경식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일찌기 성안에 들어가 학문을 깨치고 사립학교 교사를 하던 아버지는 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주입했다는 《죄》로 왜놈경찰서에 끌려가 한달나마 졸경을 치르다가 경식이 젖도 떼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경식의 뇌리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밭김을 매다가도 이따금 정처없이 허공중을 더듬군 하던 구슬픈 눈빛과 깊은 밤마다 소리죽여 흐느끼던 여린 어깨였다. 그러던 어머니마저 경식이가 여섯살 잡히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여의고나서 큰아버지네 집에 얹힌 경식은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라났다.

리경식의 어린시절은 가난속에서 흘러갔다. 큰아버지네는 얼마 안되는 밭을 소작으로 부치고있었는데 가을에 소작료를 물고나면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내외 그리고 아이들까지 일곱식구의 반년식량도 되나마나하였다. 흔히 먹는것이란 보리겨를 물에 버무려 빚은 개떡이였고 비린것이란 들판에서 잡아 구운 메뚜기나 번데기맛이 고작이였다. 경식은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뒤를 참아서 배힘을 만든다든가 잠으로 허기를 때우는 법을 너무도 일찌기 알게 되였다.

사실 리경식의 가문도 원래부터 제땅이 없은것은 아니였다. 허나 나라를 잃은 뒤 왜놈들이 만든 《법》을 몰라서 빼앗기고 알고서도 빼앗기고 하다보니 결국은 남의 땅에 명줄을 걸고 살아가는 소작농의 신세가 되여버리고만것이였다.

살림은 이렇듯 어려웠지만 시골의 뼈대있는 유생이였던 경식의 할아버지는 소반이나 두리반을 만드는 목공일을 하면서도 힘에 눌려서 굽신거리는것을 제일로 타매하는 도고한 늙은이였다. 언젠가 소작땅을 떼우지 않으려고 씨암닭을 잡아 지주집에 가져다 바치려는 큰아버지에게 벼락같이 화를 내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경식은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있었다.

할아버지는 왜놈들을 누구보다도 증오하는분이였다. 조상의 땅을 강탈하고 아들까지 앗아간 왜놈들에게 얼마나 원한이 컸으면 왜놈세상에서는 절대로 머리를 숙이지 않겠다면서 세면할 때조차 고개를 뻣뻣이 쳐든채 물을 찍어 얼굴을 씻군 하였겠는가.

가족들은 물론 동네사람들도 그런 할아버지를 저으기 어려워하였다.

하지만 범같이 지엄하고 조상전래의 도리를 하늘처럼 여기는 할아버지도 경식이에게만은 례외였다. 큰아버지에게는 경식이 말고도 1남2녀의 자식들이 있었건만 부모없이 자라는 막동이손자가 가엾었던지 할아버지의 애정은 류달리 경식이에게로 기울어지군 하였다. 간혹 별식이 생겨 큰어머니가 할아버지의 밥상에 놓아드리면 할아버지는 경식이를 불러 겸상을 하였고 맏손자가 잘못하면 엄하게 회초리를 안기면서도 막내손자에게만은 몇마디 꾸중으로 대신하군 하였다.

철이 들자 경식은 할아버지에게서 국문과 천자문을 익혔고 우리 나라의 옛이야기들이며 아버지를 빼앗아간 왜놈들에 대하여 알게 되였다. 훈훈한 인정이 피여오르는 질화로가에 아이들을 둘러앉히고 김응서장군과 계월향이 왜장의 목을 베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청운산마루에 올라 대성산의 옛성터를 가리켜보이며 대륙을 진감하던 고구려선조들에 대해 들려주기도 하던 할아버지…

리경식이 문화재와 뗄래야 뗄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것도 실은 할아버지때문이 아니였던가.

그것은 경식이 여덟살 나던 해 여름에 있은 일이였다.

어느날 경식이가 마을애들과 휩쓸려 동구밖에서 놀고있는데 노상 배꼽노리를 드러내놓고 다녀서 《배꼽따라지》라고 불리우는 아이가 그들에게로 뛰여왔다.

《이것 봐, 나 알사탕 먹는―다아!》

그애는 이렇게 뽐내며 입안에서 굴리던것을 보란듯이 쑥 빼여무는것이였다. 아이들은 눈이 퀭해졌다. 간식이라고 해야 기껏해서 오디나 아카시아꽃을 따먹는것으로 만족해온 변두리마을 아이들이였던지라 《배꼽따라지》가 물고있는 말눈깔사탕은 쉽게 구경하기 힘들었던것이다.

《너 거 웬거가?》

아이들중 누군가가 이렇게 묻자 《배꼽따라지》는 적삼아래 드러난 배꼽을 긁적거리며 사탕알을 입에 문채 으시대듯 대답했다.

《힝, 뭐하구 바꿔치기했거덩.》

《뭣하구?》

아이들의 궁금증을 간질이려는듯 새물새물 웃기만 하던 《배꼽따라지》가 한참만에야 등뒤에 감추었던것을 불쑥 내미는것이였다.

《이런거하구.》

아이들은 대번에 어리둥절해졌다. 뜻밖에도 그것은 기와쪼각이였던것이다. 십리밖 대성산부근에 가면 발에 걸리는게 저런 기와쪼각들이였다. 진짜 저런걸 주고 알사탕을 바꾸었을가?… 암만해도 믿어지지 않아 경식이는 눈살이 꼿꼿해서 《배꼽따라지》에게 따져물었다.

《너 꽝포칠래? …》

그러자 그애가 발끈해서 대들었다.

《쳇, 내기걸잔? 이런거 줏어오문 알사탕 또 준다 했거덩.》

정말 모를 일이였다. 호기심에 끌린 아이들은 《배꼽따라지》를 쫓아 한달음에 달려갔다. 마을에서 대성산쪽으로 나가는 산모롱이길을 돌아서니 정말 그애의 말대로 어른들 서넛이 소나무숲속의 오래된 무덤곁에서 서성대고있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시끌시끌한 일본말소리들이 들려왔다.

아이들은 더럭 겁이 났다. 시퍼런 대낮에 으슥한 숲속에서 쇠꼬챙이로 무덤을 찔러보기도 하고 삽으로 파헤치기도 하며 돌아치는 사람들을 보니 꼭 옛말에 나오는 도깨비들이 련상되였던것이다. 모두들 두려운 생각에 주춤거리고있는데 《배꼽따라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신명이 나서 달려가는것이였다.

《아저씨, 이거 또 가져왔어요.》

그제서야 다른 아이들도 용기를 내여 다가갔다. 사나이들중 나비넥타이같은 코수염을 기른 왜인 하나가 이쪽을 알아보았는지 《오, 네가 또 왔느냐.》 하며 갑삭갑삭 걸어왔다.

《배꼽따라지》가 으쓱해서 기와쪼각을 내보였다. 한동안 기와쪼각을 눈여겨보던 코수염쟁이는 얼마후 입가에 만족한 웃음을 실으며 《배꼽따라지》의 뒤더수기를 두드려주었다.

《핫하하, 좋아.》

그러더니 품에 간수했던 종이봉지에서 말눈깔사탕 두알을 꺼내 그애에게 주는것이였다.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래져 그 모양을 바라보았다.

사탕 두알을 받아들자마자 《배꼽따라지》는 당장 누구에게 떼울가봐서인지 눈깜박할 사이에 통채로 입안에 밀어넣었다. 량볼이 미여지게 사탕알을 물고 와작와작 씹어대는 소리가 아이들의 허기진 창자를 참기 바쁘게 자극했다. 모두들 군침을 삼키며 멍청하니 서있는데 살가우면서도 능갈친 눈빛으로 아이들을 지켜보던 코수염쟁이의 입에서 류창한 조선말이 흘러나왔다.

《이런걸 가져오면 너희들에게도 사탕을 준다. 꼭 기와쪼각이 아니라도 좋다. 에또- 저런걸 가져오는 아이에겐 사탕을 더 많이 주겠다.》

그리고는 얼마쯤 떨어진 소나무밑으로 가서 보퉁이 하나를 가져오더니 아이들앞에 펼쳐놓았다. 자기로 된 옛날그릇들과 술잔들, 초대며 벼루집들… 어느것이나 할것없이 어디서 본듯 한 낯익은 물건들이였다. 그중에서도 경식이의 눈길은 보자기의 한 귀퉁이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종지에 박힌채 떨어질줄을 몰랐다.

집에도 간장이나 고추장을 담는 그런 종지들이 여러개 있었던것이다. 불쑥 자기 집 부엌에 있는 나무궤가 떠올랐다. 그 궤속에는 사발이며 놋그릇 같은것들과 함께 종지들도 여러개 들어있었는데 가끔 가다가 집안어른들이 향불을 피우고 제사를 지낼 때에나 꺼내 쓰군 하는것들이였다. 거기서 간장종지 하나를 슬쩍 빼내오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그런다 해도 욕할 사람은 없을것 같았다. 1년치고 별반 쓰는 일이 없는 그런 흔한 물건을 사탕과 바꿔먹으면 어른들은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할것만 같았다.

궁리가 예까지 이르고보니 불이라도 난듯 속이 달아왔다. 한시바삐 알사탕을 입에 물고싶었다. 그래서 우쭐대는 《배꼽따라지》에게 자기도 한번 뻐기고싶은 충동에 가슴이 들먹거렸다.

경식이는 종주먹을 부르쥐고 집으로 달려갔다. 다들 밭일을 나갔는지 집안은 텅 비여있었는데 다만 허청간쪽에서 할아버지의 자귀질소리만 들려올뿐이였다. 경식이는 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살금살금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부엌 한구석 정결한 자리에 외따로 놓인 나무궤를 열고는 빈 종지 하나를 꺼내가지고 밖을 나섰다.

숨이 턱에 닿아 달려온 경식이에게서 종지를 받아든 코수염쟁이는 희유스름한 젖빛이 도는 물건을 걸탐스럽게 이리저리 뜯어보는것이였다. 그러던 그자의 입에서 탄성 비슷한 소리가 새여나왔다.

《요로시(좋다)!》

코수염쟁이는 경식이에게 말눈깔사탕을 다섯알이나 주었다. 경식이는 너무 좋아 어쩔줄 몰라하며 큼직한 말눈깔사탕 한알을 입안에 넣고 빨아보았다. 어찌나 달콤한지 혀를 깨물어도 모를 지경이였다.

경식이는 사탕알이 빨리 녹을가봐 조금씩 빨아먹으며 마을로 돌아왔다. 볼이 불룩하게 사탕을 물고 돌아다니는 경식이를 동네아이들은 부러움에 차서 바라보았다. 그렇게 뽐내며 여기저기로 뛰여다니던 경식이는 호주머니에 사탕이 한알밖에 남지 않았을 때에야 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려던 참이였다.

《할아버지-》

경식이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할아버지부터 찾았다. 그러는 막내손자를 대견스레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벙글 웃음을 피웠다.

《오냐, 우리 막동이가 인제야 오는구나.…》

경식이는 호주머니에 남아있던 사탕 한알을 꺼내서 할아버지앞에 장한듯이 내보였다.

《할아버지, 이거 잡숴요.》

《엉? 이게 웬거냐?》

《바꿨어요. 간장종지하구…》

《간장종지?》

할아버지도 식구들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데 철부지막내손자는 응석기어린 목소리로 제가 저지른 일을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손자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할아버지가 밥상을 걷어차며 일어서는것이였다.

《뭣이 어쨌다구? 제사에 쓰는 귀물을 왜놈의 알사탕과 바꾸다니?! 에끼, 후레자식 같으니라구!…》

채수염을 떨며 노성을 터뜨리는 할아버지의 낯빛은 꺼멓게 질려있었다.

경식이는 창졸간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렇게 화를 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보았던것이다.

《아버님, 고정하십시오. 제가 나가서 찾아오겠습니다.》

큰아버지가 어쩔바를 몰라하며 만류하였지만 할아버지의 노여움은 가라앉을줄 몰랐다. 경식이는 울상이 되여 할아버지앞에서 비실비실 뒤걸음을 쳤다.

한동안 노기충천하여 펄펄 뛰던 할아버지는 점심도 들지 않은채 힝하니 밖으로 나갔다. 그바람에 경식이는 물론이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도 그리고 사촌들까지도 모두 끼니를 건느고말았다.

그날 경식이는 오후내껏 집안에 갇혀있지 않으면 안되였다. 얼마쯤 지나면 누그러질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한번도 손자를 찾는 일 없이 밖에서 묵묵히 일만 하고있을뿐이였다.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화를 내셨을가? 어른들한테 알리지 않고 집안물건을 꺼내갔다고 그러시는걸가? 하지만 이전엔 그보다 더한 장난을 쳤을 때도 한두마디 꾸지람이 고작이였는데…

한겻이 지났을무렵 큰아버지가 마당에 들어서며 할아버지에게 종지를 가져간자들을 끝내 찾지 못했다고 사뢰는 소리가 들려왔다. 땅이 꺼지게 몰아쉬는 긴 한숨소리에 이어 기침소리가 터졌다. 가슴을 우벼내는듯 한 할아버지의 기침소리에 경식이는 금시 사지가 오그라드는것만 같았다.

아무리 머리를 기웃거려봐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간장이나 고추장 같은거나 담는 종지가 그렇게도 귀한 물건일가? 알사탕을 주고 기와쪼각이랑 종지를 바꿔간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가?… 하긴 철없는 경식이로서는 자기가 조선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훔쳐가는 왜놈사기군들의 얼림수에 속아넘어갔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었다.

당시 조선에 와있던 일본인골동상인들과 이른바 수집가들은 일제의 조선문화말살정책에 편승하여 혹심한 사기적방법으로 우리 나라의 수많은 문화재들을 도적질해가고있었다. 이자들은 평양을 비롯하여 옛 기와가 나오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알사탕을 몇알씩 주고 기와를 거두어갔는가 하면 세상물정에 어두운 외진 시골벽지들을 싸다니며 불상이나 자기 같은것을 몇십전, 몇원이라는 헐값으로 사들여가지고는 돌아앉아 몇십, 몇백원에 팔아먹군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산자는 다시 일본에 가지고 가서 그 몇배, 몇십배의 폭리를 얻고있었던것이다.

경식이가 왜놈에게 얼리워 가져다 준 종지도 다름아닌 우리 나라의 옛 자기였다. 말눈깔사탕 다섯알에 1전을 하던 때였으니 결국 조상대대로 물려내려오는 남의 집 가보를, 그것도 예로부터 조선사람들이 수재나 화재를 당할 때 집세간보다 먼저 돌봐야 하는것으로 간주해오는 제사그릇을 단 1전에 뺏아간 왜놈들의 날강도짓에 할아버지가 어찌 통분해하지 않을수 있었으랴.

그런 리치를 알기에는 아직 너무도 어린 경식이였다. 할아버지의 성이 가라앉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며 방바닥에 드러누워 이리저리 꿍싯대던 경식이는 어느새 솔곤히 잠들어버리고말았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던지… 자기를 찾는 소리에 경식이는 눈을 비비며 깨여났다. 할아버지가 문밖에 서있었다.

《따라오너라.》

경식이는 어디로 가는가고 물을념도 못하고 어정어정 할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금방 비가 쏟아질것 같았다. 트레트레한 먹구름이 겹겹이 엉켜들며 머리우로 천천히 움직여가고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뒤산에 이른 할아버지는 산길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먼 우뢰질소리가 메아리쳐오는데 우중충하게 솟은 부엉바위쪽에서 장끼가 깃을 치며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할아버지를 따라 산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경식이는 차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자기를 어데로 데려가는걸가? 혹시 범이 나온다는 깊은 산속에 끌고가 혼쌀이라도 내주려는게 아닐가?

벌렁벌렁 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누르며 할아버지를 따라가던 경식이는 갑자기 버쩍 마른 괴물이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소스라치며 물앉아버렸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긴긴 세월 비바람에 부대껴 험상스럽게 뒤틀리고 구새먹은 고목이였다.

《할아버지-》

경식이는 온몸을 덜덜 떨며 할아버지를 찾았다. 하건만 할아버지는 손자의 부름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 응대도 없이 내처 걷고만 있었다. 으슥한 산속에 혼자 떨어질가봐 두려워진 경식이는 허겁지겁 일어나 할아버지를 따라섰다.

우무개고개를 넘어서니 상여집이 나졌다. 돌쩌귀에 겨우 매달려있는 상여집 문짝이 바람이 불 때마다 찌그덕찌그덕 이상한 소리를 내고있었다. 경식이는 또다시 머리칼이 쭈삣 일어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곳은 동네아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곳이여서 야밤에 상여집에 혼자 갔다올수 있는 애는 아이들속에서 영웅으로 떠받들렸다.

어데선가 펀뜻하는 번개불의 여광에 상여집의 어수선한 자태가 시퍼렇게 드러났다. 그 모양이 영낙없이 귀신처럼 느껴져 경식이는 다시금 질겁하며 퍼더앉고말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다가와 손자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얼른 일어서지 못할가.》

경식이는 할아버지에게 끌리다싶이 하며 산중턱 어느 한 공지에 이르렀다. 그제서야 비로소 경식이는 할아버지가 자기를 증조할아버지의 무덤앞에 데려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꼼짝 말고 여기 서있거라.》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못박듯 이렇게 이르고는 수풀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할아버지가 없는 외진 산속은 도깨비나 상여집보다도 더 무서웠다. 솨아- 산발을 내리훑는 바람소리가 짐승떼의 울부짖음마냥 사납게 들려왔다. 정말로 할아버지가 자기를 버려두고 내려가지 않았나? 가슴이 덜컥했다. 경식이의 심장은 공포에 질려 금시 얼음덩이가 돼버리는듯싶었다.

얼마후 할아버지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났다. 경식이는 할아버지의 손에 굵직한 회초리 너덧개가 들려있는것을 알아보았다. 오늘은 자기도 영낙없이 종아리를 맞게 되였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오금이 저려오는데 할아버지는 회초리를 내려놓고 증조할아버지의 무덤앞에 무너지듯 엎드리는것이였다.

《아버님, 불초자식의 막내손자가 오늘 조상의 귀물을 욕되게 하였소이다. 손자놈을 신칙하지 못한 그 벌을 아버님앞에서 받을가 하오니 하량하옵소서.》

비통한 어조로 조상앞에 이렇게 고하고난 할아버지는 일어서더니 자기의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렸다. 그리고는 부들부들 떨고있는 손자에게 분부하는것이 아닌가.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치거라.》

순간 경식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할아버지의 종아리를 치다니… 잘못은 자기가 저질렀는데 어째서 종아리는 할아버지가 맞아야 하나? 경식이는 시르죽어가는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빌었다.

《다… 다신 안 그럴께요.… 할아버지?》

그러나 할아버지는 도리머리를 저으며 고집스럽게 되뇌였다.

《조상앞에서 두말하는 법은 없다. 어서 내 종아리를 치거라. 그러기 전엔 집에 못 돌아가.》

《…》

《어서 회초리를 들지 못할가!》

두텁게 뒤덮인 먹장구름을 찢으며 시퍼런 불채찍이 눈을 후려쳤다. 뒤이어 산신령의 노성인양 꽈르릉- 하는 천둥소리가 머리우에서 터졌다. 경식이는 겁에 질려 울먹울먹하며 회초리 하나를 집어들었다. 차마 할아버지의 종아리를 칠수 없어 회초리를 가져다대는 시늉만 하는데 할아버지가 와락 회초리를 나꿔채더니 손자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후려갈기는것이였다. 경식이의 입에서 비명이 튀여나왔다.

《종아리는 이렇게 쳐야 해.》

할아버지가 닥달하는 말이였다. 경식이는 울며 겨자먹기로 회초리에 힘을 실어 할아버지의 종아리를 다시 쳤다.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회초리를 빼앗아 시범을 보여주며 더 세게 치라고 손자를 다몰아세웠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차츰 그 강도가 더해져 나중에 경식이는 할아버지가 해보이는대로 회초리를 힘껏 휘두르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회초리가 부러져나갔다. 할아버지의 종아리에서 터져나온 피방울이 얼굴에 선뜩하니 튕겨오는 순간 경식이는 그만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말았다. 그러는 손자를 할아버지가 다시 일으켜세웠다.

《계속 치거라.》

경식이는 자기를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의 서늘한 눈길에 질려 흑흑 느껴가며 어쩔수없이 두번째 회초리를 집어들었다.

장대같은 비줄기가 소란스럽게 땅을 갈기며 쏟아져내리기 시작하였다. 자기의 육신같지 않게 덜덜 떨리기만 하는 팔을 가까스로 놀리며 경식이는 몰박으로 쏟아지는 비발속에서 할아버지의 종아리를 계속 쳤다.

할아버지는 신음소리 한번 없이 손자의 회초리에 종아리를 내맡긴채 돌비석마냥 우뚝 서있었다. 흐트러진 흰머리칼은 오욕을 참아내는듯 꾹 감고있는 두눈을 가리우고있었는데 고통스럽게 이그러진 할아버지의 얼굴로는 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줄기가 어지러이 번져서 흘러내리고있었다.

두번째, 세번째 회초리도 부러져나갔다. 마지막 회초리까지 부러지고나서야 경식이는 할아버지에게서 놓여날수가 있었다. 파리해져서 떨고있는 경식이의 귀전에 억수로 퍼붓는 비소리와 뒤섞여 할아버지의 비탄에 찬 곡성이 들려왔다.

《아버님! 불초한 이놈 죽어야 마땅하오이다. 왜놈들한테 아들녀석을 빼앗기고도 모자라 조상의 얼마저 욕보였으니 제 어찌 하늘아래서 머리를 쳐들고 살수 있으오리까. 죽어야 하오이다. 개돼지보다도 못난 이놈 죽어야 마땅하오이다!…》

증조할아버지의 상돌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목놓아 통곡하는 할아버지를 보느라니 왜서인지 설음이 북받쳐올라 경식이도 엉엉 따라울었다. 하지만 철모르던 그 시절에는 할아버지의 피눈물나는 심정을 다 알리 만무하였다.

그후 할아버지는 한번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여러해가 지난 뒤 일본땅에 끌려가 갖은 수모를 당하며 넝마주이로 연명해가던 나날에야 리경식은 할아버지에 대해 적으나마 리해할수가 있었다.

넝마자루를 지고 이역의 뒤골목을 헤매던 어느날 경식은 한 일본인의 집에 들렸다가 퇴마루 한켠구석에 딩구는 깨여진 종지 하나를 보게 되였다. 유심히 종지를 눈여겨보느라니 저도 모르게 종아리가 터져나가는것 같은 예리한 동통이 느껴졌다. 피방울이 튕겨나오던 할아버지의 종아리가 뼈를 에이는듯 한 아픔속에 떠올랐다. 이상한 일이였다. 회초리에 맞은것은 할아버지의 종아리인데 어째서 자기의 종아리가 그토록 아파왔을가. 경식의 눈굽에 핑그르르 눈물이 고였다. 세월의 운무가 두텁게 서린 젖빛갈의 그 종지는 분명 너무도 눈에 익은 고국의 자기였던것이다.

부옇게 흐려지는 눈앞에 두고 온 고향이 못견디게 안겨왔다. 호박넝쿨 흐드러진 돌담이며 추녀밑에 늘쌍 걸려있던 할아버지의 뒤웅박, 한평생 땅을 그러안고 씨름질해가는 고향사람들의 흙빛얼굴들과 아래도리를 드러내놓고 자갈밭에서 뒹굴던 소꿉시절의 개구쟁이들… 그리고 조상의 무덤앞에서 피가 나도록 자신의 종아리를 치게 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무치게 밟혀왔다.

가슴시린 그리움에 목이 메여오고 쓰라린 상실의 아픔이 심장을 비틀었다. 깨여지고 먼지에 뒤덮인채 이국의 처마아래 나딩구는 백자기의 모습에서 경식은 망국노의 멍에를 걸머지고 타향에서 버림받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으며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재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였다.

그날 일본인을 설복하여 종지를 손에 넣은 경식은 하숙방에 돌아오자마자 깨여진 자기쪼각들을 정성껏 붙여놓았다. 그리고는 왜놈들에게 빼앗겼던 조상의 귀물을 되찾은것만 같아 자기가 가져온 고국의 백자기를 밤깊도록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리경식은 그때부터 찢겨져나간 제 살점들을 찾는 심정으로 일제가 략탈해간 조선의 문화재들을 하나하나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골동품은 부르는게 값이라는데 넝마주이나 하는 처지에 어떻게 그런 일을 할수 있겠느냐고 도리질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쇠고집같은 경식의 집념을 꺾을수가 없었다.

때로 지치고 고향생각이 날 때면 리경식은 자기가 수집해온 도자기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군 하였다. 그러느라면 불현듯 도자기가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것이였다. 피줄을 타고 퍼져오는 귀에 익은 소리를 들으며 경식은 흉벽을 천천히 치받는 심장의 흥분을 느끼군 하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조국이 부르는 소리였다. 이역만리의 자식을 목메여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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