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2. 고마무라의 별장(1)

 

고마무라는 일본 도꾜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있는 사이다마현의 한 마을이다. 고마역에서 내려 농가들이 모여있는 야산들을 지나 한적한 길로 사오십분쯤 걸어가느라면 삼나무며 느티나무들이 들어선 안침진 곳이 나진다.

그전에 이곳에는 서양식으로 지은 2층짜리 돌집이 하나 서있었다. 중세기의 성곽마냥 거무칙칙한 담장을 두르고 주변의 민가들과 대조되게 궁륭식으로 솟은 건물의 오만한 자태는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자못 서느러운 위압감을 안겨주군 하였다.

1960년 어느 가을날 오후 후릿한 키에 기골이 실해보이는 30대의 한 사나이가 건물의 대문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있었다. 머리는 기름을 발라 빗자국이 선명하게 뒤로 빗어넘겼는데 양복에 구두를 받쳐신은 차림새로 보아 도회지에서 온 사람 같았다.

안에서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자발스럽게 들리더니 기모노를 입은 중년의 하녀가 구리쇠를 두른 대문을 열고 나왔다. 사나이는 깍듯이 인사를 하며 하녀에게 말을 붙였다.

《오구라 분지입니다. 자주 페를 끼쳐서 미안합니다.》

《아니, 또 오셨는가요?》

하녀는 놀라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사나이의 인사에 린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러거나말거나 사나이는 의연한 태도로 하녀에게 부탁한다.

《오늘은 일이 성사되도록 좀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낮아도 꾹꾹 눌러짚는 웅글은 어조에서는 쉬이 물리치기 어려운 끈질긴 집념과 의지가 내비치고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하녀는 어쩔수 없었던지 사나이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안으로 사라졌다.

사나이는 대문앞을 무겁게 거닐기 시작하였다. 하관이 긴편인 그의 묵직한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비껴흐르고있었다.

한줄기의 가을바람이 썰렁하니 지나갔다. 대문곁에 기우듬히 서있는 벗나무가지들에서 누런 락엽들이 어수선하게 내려앉았다. 사나이는 소슬한 가을바람에 몰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락엽들을 묵묵히 바라본다.

이 건물의 주인은 구일본의 륙군대신과 문부대신을 력임하였던 아라기 사다오이다. 패전후 A급전범자로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무기형을 언도받은 아라기 사다오는 스가모형무소에서 복역하던중 병보석으로 출옥하여 여기 고마무라의 자기 별장에서 생의 말년을 보내고있었다.

요행 살아남은 풀벌레 한마리가 마지막 기운을 다하여 기승스럽게 울어대고있었다. 마치도 버림받은 생을 하소하는것만 같았다.

얼마후 대문열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나이의 긴장된 눈길이 대문쪽으로 향해졌다. 그런데 하녀는 문을 채 열지도 않고 머리만 반쯤 내민채 랭랭하게 이르는것이였다.

《각하께서는 면회를 거절하십니다. 그만 돌아가주세요.》

《잠간…》

다급히 사나이가 무슨 말을 하려 하였지만 대문은 이미 굳게 닫겨져있었다. 사나이는 금시 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듯 울대뼈밑에 조여맨 뭉툭한 넥타이매듭을 거칠게 끄당겨 늦구었다. 여간만 락심해하는 빛이 아니였다.

류창한 일본말로 오구라 분지라고 자기소개를 한 이 사나이는 다름아닌 조선사람 리경식이였다. 도꾜에서 이곳까지 아라기를 만나기 위해 그는 벌써 두달째나 걸음을 해오고있었다. 하건만 오늘의 열한번째 걸음도 역시 헛탕이였다. 이러다가 끝내 아라기의 얼굴조차 못 보고마는것이 아닌가 하는 위구심이 경식의 마음속에서 어지러이 맴돌아쳤다.

리경식이 그토록 고심하며 아라기 사다오를 만나려고 하는데는 그럴만한 사유가 있었다.

넉달전이였다. 뜻밖에도 작곡가 구만영이 경식을 찾아왔다. 일본에서 살면서도 겨레의 넋을 지켜 우리의 가락과 장단을 살린 민요풍의 많은 노래들을 작곡해온 그는 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진 민족음악가였다. 그런 음악가가 불쑥 생면부지의 자기를 찾아온 사실앞에 경식은 저으기 어리둥절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구만영은 리경식이 문화재분야에 조예가 깊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고 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리선생, 혹시 <조선향악보>라는 고서에 대해 들은적이 있습니까?》

《<조선향악보>요? …》

지금껏 조선문화재를 수집하면서 수많은 유물들을 보아왔지만 그런 고서적은 여태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경식이였다. 얼떨떨해서 아무 대답도 못하는 경식에게 구만영은 가슴이 터지도록 모두숨을 몰아쉬며 이런 말을 터놓는것이였다.

《<조선향악보>는 500여년간 조선봉건왕조의 궁중에서 사용한 전통적인 민족음악을 수록한 악보집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이 유산을 해방전에 일제가 략탈하여갔습니다. 중세조선음악연구에서 없어서는 안될 민족의 귀중한 재보가 현재 일본에 있다는걸 안 순간부터 난 향악보를 찾아 정신없이 헤매다녔습니다. 하건만 오늘까지도 향악보의 행방은 좀체로 알길이 없구만요. 며칠후면 전 귀국선에 올라야 합니다. 자나깨나 그리워하던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된 지금 기쁜 마음이야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일제에게 빼앗긴 우리 겨레의 유산을 끝끝내 찾지 못하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실로 통분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너무 속이 상해서 동포들을 찾아다니면서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는가고 두루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리선생의 이름을 대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이라면 리선생을 만나 상론해보는게 좋겠다고 말입니다.…》

구만영은 눈물이 그렁해서 경식의 손을 부여잡고 어떻게 하나 민족의 소중한 문화재인 《조선향악보》를 꼭 찾을수는 없는가고 간절히 부탁하는것이였다. 리경식의 가슴속에 울컥 피가 솟구쳐올랐다. 음악가의 간청은 그대로 자기에게 하는 겨레의 부탁으로, 절절한 호소로 심장을 쳐왔던것이다. 산악같은 사명감이 천근만근으로 온몸에 실려오는것을 가슴 뻐근하게 느끼며 경식은 작곡가의 손을 뜨겁게 마주잡았다.

경식은 그길로 총련 도꾜도본부 일군이며 귀국대책위원회 회장인 엄길호를 찾아갔다. 일본에서 지금껏 형처럼 믿고 의지해온 그와 의논해보기 위해서였다. 경식이 불을 토하듯 찾아온 사연을 쏟아놓자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길호가 말을 건네왔다.

《자네 벌써 결심을 한게로군.》

리경식은 누구에게라 없이 격한 어조로 자기 심정을 터놓았다.

《결심하구 말구가 있습니까. 민족음악연구에 꼭 필요한 우리 문화재가 일본땅에 파묻혀있다는데 그걸 알고서야 어떻게 가만있을수 있겠습니까. 기어이 <조선향악보>를 되찾아야지요. 제가 나서서 찾겠습니다.》

엄길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그 분야에선 자네만 한 적임자가 없으니까. 그런데…》

왜서인지 엄길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하였다.

《아니, 형님! 오늘은 웬일이시우. 그래 이 리경식이를 믿지 못하시겠단 말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본땅에서 함께 고생해온탓에 누구보다도 자기를 잘 아는 엄길호의 그런 태도가 경식에게는 못마땅하기 그지없었다. 한동안 머리를 수굿하고 무엇인가 생각하던 엄길호는 따지는듯 한 눈길로 경식을 지켜보며 조용히 묻는것이였다.

《정말 괜찮겠나? 자네야 다음달에 귀국해야 할 몸이 아닌가?》

그제서야 경식은 엄길호의 심중을 깨달을수가 있었다. 아닌게아니라 경식의 가족은 이미 귀국명단에 올라있었고 리경식본인은 귀국성원들의 부단장으로 내정되여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향악보를 찾자면 부득불 시간이 요구되였고 결국 귀국을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경식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조국의 품에 안길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요즘은 노상 명절기분으로 들떠있는 안해와 자식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밟혀왔다.

그러나 다음순간 경식은 자신을 다잡았다. 민족의 소중한 유산을 일본땅에 남겨두고 떠날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향악보를 찾아가지고 조국에 가야 한다.

경식은 결연한 어조로 엄길호에게 대답했다.

《귀국을 미루겠습니다. 집사람도 리해해줄겁니다.》

엄길호는 미더운 눈길로 경식을 바라보며 그의 손을 잡았다.

《정말 장하네. 귀국을 눈앞에 두고도 민족을 위해 스스로 산같은 짐을 걸머지고 나서는 자네 마음을 나도 아네. 내 자네의 결심을 총련조직에 보고하겠네.》

《고맙습니다. 산같은 믿음이 있기에 산같은 짐을 걸머지고나서는게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두사람은 소리내여 웃었다.

리경식은 그길로 향악보의 행방을 찾아나섰다. 문자그대로 풀숲에서 바늘찾기였다. 경식은 이미전부터 련계가 있던 골동상인들과 고서점주인들, 조선관계 전문가들과 줄을 달면서 온 일본땅이 좁다하게 뛰여다녔다.

그러던중 마침내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날아왔다. 구일본의 문부대신이였던 아라기 사다오가 수십만부의 장서를 별장에 보관하고있는데 《조선향악보》도 필경 그속에 있을거라는것이였다. 하지만 기뻐하기는 일렀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라기 사다오로 말하면 군국주의와 민족배타주의사상이 골수에까지 들어찬자로서 일본을 파쑈화와 침략전쟁에로 떠몰아간 주되는 원흉의 하나였던것이다. 극우익군부세력의 반란으로 여러 정부요인들이 살해되거나 중상을 입은 1936년 2. 26사건의 막후조종자가 바로 아라기 사다오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자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파쑈군벌인가 하는것을 여실히 알수 있었다. 그러한 자인만큼 조선의 문화재가 조선사람에게 반환되는것을 절대로 허용치 않으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여러가지로 방도를 모색하던 리경식은 물질문화보존협회 리사의 신분으로 아라기를 찾아갔다.

일본에서 문화재수집사업을 하려면 어차피 일본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고 더우기 민족차별의식이 뿌리깊이 남아있는 일본땅에서 조선사람의 신분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가 여간 힘겨운것이 아니였다. 그리하여 경식은 유물수집의 나날에 뜻을 같이하는 일본인들과 함께 물질문화보존협회라는 민간단체를 내오게 되였고 때로는 리경식이라는 본명으로, 때로는 오구라 분지라는 통명으로 사업해왔던것이다.

경식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조선향악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단지 《력사연구와 공익을 위해 장서를 정리하게 해달라.》고 아라기에게 요구했다. 아라기는 리경식을 만나주지조차 않았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라기의 장서를 정리하려고 찾아왔다가 그런 랭대를 받았다는것을 잘 알고있기에 경식은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두번… 세번… 경식은 끈질기게 아라기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조바심과 불안감이 경식의 마음속에서 점점 머리를 쳐들었다. 혹시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아라기가 눈치라도 챈것은 아닐가. 아니면 애당초 장서정리문제 같은것은 론하지도 않겠다는 심산인지도 몰랐다.…

육중하게 닫겨있는 대문을 바라보던 경식은 저도 모르게 불한숨을 토했다. 생각할수록 피가 뻗쳐오르는 일이였다. 여기가 만일 조국땅이였더라면 벌써 아라기에게 쳐들어가 도적질해간 민족의 재보를 당장 내놓으라고 추상같이 호통치고도 남았을것이다. 허나 여기는 일본땅이였다. 다른 나라에서 략탈해온 보물들이 《국가와 국민의 재산》으로 번듯하니 등록되여 《법》의 보호를 받고있는 세상, 죄악에 찬 과거를 반성할줄 모르는 도덕적저렬성이 온 사회에 만연하고있는 일본의 현실이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경식은 주먹을 그러쥐였다.

(물러설수 없다. 백번 찍어 안 넘어가면 천번을 찍어서라도 반드시 아라기의 장서를 손에 넣어야 한다.)

아라기의 별장을 노려보는 경식의 우묵한 두눈에 쇠빛이 번쩍였다.

리경식은 도꾜로 발길을 돌렸다. 방도를 찾아야 한다. 정면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우회공격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자면 어떻게? …

이런 궁리를 하며 길을 걷는데 갑자기 앞에서 자전거종소리가 들려왔다. 경식은 생각에서 깨여나 눈길을 쳐들었다.

동그란 얼굴에 테가 굵은 대모테안경을 쓴 암팡진 몸집의 사나이가 자전거를 타고 마주 오고있었다. 눈여겨보니 경식이처럼 아라기의 장서에 관심을 두고 별장에 오군 하는 사람이였다. 성이 가네다라던가.… 도꾜에서 고서점일을 본다고 했다.

경식은 고마무라에 드나들던 첫날부터 그와 몇번 마주친적이 있었지만 동업자들사이의 경쟁의식때문이였던지 두사람사이에는 별로 이야기가 오간적이 없었다. 아무튼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로 찾아오는것을 보면 그 역시 여간 검질긴 사람이 아닌것 같았다.

가네다도 이쪽을 알아보았는지 자전거의 발디디개를 잽싸게 밟아대며 아는체를 한다.

《하, 오늘도 또 헛걸음을 하신 모양입니다.》

금속성의 여운이 울리는 챙챙한 목소리였다. 경식은 대답대신 쓴웃음만 지었다. 그러는 그의 모습을 가네다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재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경식은 멀어져가는 가네다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쩐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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