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회)
제 14 장
평양성의 불바람 3 평양성이 불타고있었다. 잠을 채 깨지 못한 푸릿한 새벽하늘을 태우며 평양성안 여기저기서 삼단같은 불길이 치솟아오르고있었다. 불길은 대동문에서도 무섭게 타올랐다. 왜적이 쫓겨가면서 지른 불이였다. 하얗게 평양성으로 밀려드는 피난민들이 보따리들을 벗어놓기 바쁘게 불길이 타래쳐오르는 대동문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속에는 초담이장군들도
있었다. 지짐판과 떡광주리를 팽개친 떡장사, 지짐장사군들이 허리끈을 동여매고 대동문으로 내달렸다. 《대동문이 불탄다.》 누군가 칠성문에 올라서서 피젖은 목소리로 이렇게 웨쳤다. 《평양성아, 용서해라. 우리가 백성구실을 못해서 너를 이 지경 만들었구나!》 로선비는 성루기둥을 쾅쾅 쳐댔다. 그의 통영갓테가 부서지고 갓끈이 끊어져내렸다. 《할아버지, 그만 집으로 가시자요.》 어린 손자들의 손에 이끌리여 로인은 술취한 사람처럼 비척거리며 모란봉을 내리더니 갑자기 대동문을 향해 도포자락을 걷어안고 내달렸다. 경상골목들에 붙은 불을 거의 잡고나서 대동문으로 모여든 평양성사람들은 놋그릇이란 놋그릇은 다 찾아들고 대동강물터를 향하여 내달렸다. 평양8장사들이 그들에게 힘을 주었다. 《자, 이 불을 끄고 우리 평양성을 새로 꾸립시다.》 《이제 저 모란봉에 나무도 더 많이 심구요. 불탄 집자리에 더 큰 집들을 짓자요.》 그전에 한섬들이 장독을 깨친 8장사중의 한 사람이 물동이를 이고 달리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 그때 퍽 섭섭하였지요?》 《이 총각 무슨 소리를… 정말 우리 8장사들이 영웅이였지.》 《장독깨고 영웅이라. 하하하…》 앞뒤에서 웃음들이 터졌다. 《에그, 8장사가 6장사로 되였다지요.》 돌중 법근이와 염창짐군 돈정신이를 두고 하는 말이였다. 그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은 아팠다. 물지게를 지고 달리는 륙손이를 따라 달리는 물동이를 머리우에 인 모란이의 입술은 꼭 다물려졌는데 눈등은 퉁퉁 부어있었다. 대동강얼음장을
까내고 모란이 길어온 물, 그것은 그저 물이 아니였다. 피눈물이였다. 바로 이 대동강물속에 왜놈들은 그의 아버지를 처넣은것이다. 물동이에 물을
쏟다가 대동강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입술을 깨무는 모란이의 눈굽에서도 피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내렸다. 모란이와 함께 물을 길어나르던 륙손이도 가슴이 찢기는듯한 아픔에 고개를 들고 대동문루를 바라보았다. (아, 아버지원쑤를 어떻게 갚습니까?) 대동문에 매달려 감지 못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아버지, 첫 물지게를 지고 비틀거리던 그날 어머니없이 자란 아들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그 눈길이
눈앞에 어물거렸다. 고함을 지르는 자기의 입을 꽉 틀어막아주던 아버지의 솥뚜껑같은 그 손, 거쉬기도 하던 그 숨소리도 생각났다. (왜 우리 아버지가 목매달리고 모란이 아버지가 잡혀서 대동강에 빠져 숨져야 했나. 의병들을 도운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바로 이것을 왜놈들에게 묻고저 밤낮이 없이 조총을 조준해왔고 이번 싸움에서 초담이 조총군들과 함께 왜놈들에게 드팀없는 불벼락을 안긴
륙손이였다. 이윽고 대동문에 붙었던 불은 숨이 죽어가고 평양성안은 꼬리를 물고 돌아오는 피난민들로 활기를 띠였다. 그러나 조상전래 대를 두고 가꾸어오던
평양사람들의 생활의 정취며 비록 멋있지는 못해도 제멋과 제맛을 내여 꾸려놓았던 살림집들과 기물들, 방안지장, 뜨락들은 무지막지한 오랑캐들의
발길에 뒤죽박죽이 되여버렸다. 값진 화류장통과 자개박이머리장들이 놈들의 불쏘시개로 되고 수십년 정성들여 가꾼 매화나무며 꽃나무들이 말발굽에
짓뭉개졌다. 구들방을 모르는 놈들이여서 마구 땐 아궁내내로 집안은 온통 그을음투성이가 되고 마당구석은 악취나는 오물장으로 변했다. 통채로 집이 털리운데다가 기둥과 서까래들이 무너져내린 집들은 미처 세여볼수 없을 정도로 무수했다. 한번 외적에게 짓밟히면 제집살림은 물론
사랑하는 혈육들까지 잃게 된다는 피의 교훈을 평양성사람들의 가슴마다에 깊이 새겨주는 참경이였다. 그 참경을 바라보던 한 늙은이가 꺽꺽 울음을 터뜨렸다. 《어허이구, 몽땅 다 타버렸구나! 이제 우린 어떻게 살아가노… 》 넉두리하는 늙은이를 보다못해 곁에 섰던 녀인이 달래였다. 《아버님, 이젠 그만하세요. 우리가 이기지 않았나요. 이제 집을 멋지게 다시 짓고 사람들이 보란듯이 잘살아보자요.》 《고맙다, 아에미야… 》 그제서야 늙은이는 흐느낌을 그쳤다. 《얘들아, 할아버지 기뻐하시게 노래 한곡 불러드리렴!》 녀인의 지청구에 할아버지의 곁에 쭈그러뜨리고 앉아있던 오누이가 발딱 일어서더니 나란히 섰다. 처녀애가 먼저 선창을 떼자 총각애가 그것을
받아 목청을 돋구었다. 조총 왜총 퉁탕 퉁탕 가마 부산 오른 왜놈 평양 성밖 도끼 부산 넘다 넘다 울고 갔네 왜놈들이 기여오른 부산땅은 가마 부자를 쓰는 땅이고 왜놈들이 못넘고 쫓겨간 부산땅은 도끼 부자를 쓰는 평양성 서북쪽 20리밖에 있는
지명이였다. 란리가 일어나기 전에 누군가 지어부른것이 오늘은 아이들모두가 즐겨하는 동요로 되여버린것이다. 란리직전에는 그 부산 고개길옆의 돌부처가 열흘동안이나 피눈물을 흘렸다는 말도 전해져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그후에는 하나의 일화까지
생겨났으니 그것이 바로 돌부처가 관원들을 꾸짖은 이야기이다. 어느날 술놀이판이 한창인 관가에 한 로승이 나타나서 《국난이 닥쳐온다. 정신들을 차려라!》하고 큰소리로 웨쳤다. 그때 《미친놈을
잡아가둬라!》하고 관원들이 소리치자 로승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가 바로 도끼 부산고개의 그 돌부처였다는것이다. 손벽을 치며 깡충거리며 부르는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동심은 천심이로다.》하며 늙은이들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한편 평양성수복싸움에 나섰던 여러 의병장들과 함께 모란봉의 련광정에 오른 김응서는 수복된 평양성안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아직도 성안의
곳곳에서 화염들이 타래쳐오르고있었다. 경상골과 중성동의 골목들에는 왜놈들이 쫓겨가면서 내버린 마차들과 병쟁기따위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져있는것이
눈에 띠였다. 가까운 곳에 피난갔던 평양성사람들이 제집들을 찾아 골목골목들을 누비며 서로 찾고 부르는 소리가 아릿한 감정을 안겨주었다. (아, 드디여 평양성을 수복하였구나!) 눈굽이 절로 젖어올랐다. 평양성을 수복하는 싸움에서 쓰러진 평양8장사들의 모습과 더불어 소서비의 목을 베도록 목숨을 내댄 의기 계월향의
아릿다운 모습도 어려들어 가슴을 허벼들었다. (정말 아까운 사람들을 잃었어! 그 보석같은 사람들을 내 이제 어디 가서 구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에 이르니 자책감도 없지 않았다. 평양성이 이리 되도록 잔악한 섬오랑캐들에게 개경을 내여준것만도 분격할 일인데 천년고도 평양성까지
더럽혔으니 내 무슨 이 나라의 장수란 말인가?! 그의 두눈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평양성이 왜적의 란도질을 당한 참상을 바라보면 볼수록 실로 절통한 감정과 함께 왕의 파천을
둘러싸고있었던 일이 되살아오르는것이였다. 사실 선조조정대신들의 당파싸움, 부화방탕, 특히 《문존무비》의 사상으로 국방상태는 거의 공백상태에 있음으로 하여 온 백성이 겪은 참상은
천만년을 두고 위정자들이 찾아야 할 뼈아픈 피의 교훈이였다. 그때 들이닥친 왜군앞에 당황하여 긴급히 왕의 파천을 조직했건만 그것도 한갖 빈껍데기뿐이였다. 급보에 접한 조정에서는 소위 《제승방략》에
의하여 지방에 군사를 보내려 해도 대장을 따라보낼 군사가 없었다. 그래서 리일을 순변사로 내세워 경상도 초입선 상주로 보냈는데 따라간 군사는
겨우 60명이였다. 가보니 거기에도 모아놓은 군사가 없어 상주판관에게 지시해서 긁어모은 군사가 겨우 수백명이였는데 그나마 로약자들이였다. 한편 《충성스러운》 대신들은 왕의 옥체보중을 구실로 파천을 강행하였는데 따라가는 대신은 불과 몇명밖에 안되였다. 침침철야 불타는 궁성을
바라보며 《아, 내 대에 나라가 망하는구나!》하고 발을 구르던 왕은 폭우속의 림진강을 앞에 두고 어쩔바를 모르는데 한 군사가 그 근처에
석화정이란 정각이 있다는것을 생각해내서 그 정각에 불을 지른 다음에야 강을 건너 요행 목숨을 건졌다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리률곡이
리조판서로 있을 때 앞날을 생각해서 관솔로 정각을 짓게 하고 해마다 봄, 가을 기름을 끼얹게 하였다는것이다. 김응서는 평양성을 수복한 오늘따라 이런 이야기가 눈앞에 떠오르는지 알수 없었다. 아마도 군력을 홀시하면 임금의 처지도 도망병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는 교훈이 그의 가슴을 두드렸기때문이리라! 이때 등뒤에서 다급히 달려든 말의 발굽소리와 함께 호응하는 투레질소리가 김응서를 잡아흔들었다. 《임금님의 급보요!》 눈가루를 뒤집어쓴 파발이 왕의 장계를 올렸다. 장계를 펼쳐본 김응서가 수하군관들과 의병장들을 휘둘러보며 말했다. 《군관들과 의병장들은 들으라. 임금님께서 평양성을 수복한 우리들의 승전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하셨다.》 《황공무지로소이다!》 모두가 무릎을 꿇어앉으며 합장을 했다. 《임금님께서는 평양성을 탈환한 승전의 기백으로 달아나는 왜놈들을 추격하여 남해바다속에 모두 수장해버리라는 령을 내렸다! 그러니 모두 날
따르라!》 《알겠소이다!》 의병장들의 기세찬 웨침이 모란봉의 솔숲우로 메아리쳐갔다. 이때 또 한명의 파발이 들이닥쳤다. 《보고, 중화골목에서 의병부대가 평양성에서 빠져나간 소서행장부대를 토막쳐버렸소이다.》 《장할시고, 중화의병장, 척후가 누구요?》 김응서는 흐뭇한 눈길을 림중량에게 던졌다. 《〈푸른갑옷〉 황바위선봉장이올시다.》 《그럴줄 알았소. 황바위가 본때를 보이는군! 하하하… 》 김응서의 호걸웃음이 터져오르자 다들 머리를 끄덕이며 따라웃었다. 한참 웃고난 김응서가 문득 다시 림중량에게 물었다. (림중량은 의병대의 일부를 데리고 평양성수복전투에
참가하였던것이다.) 《헌데 이자 뭐라구, 황바위가 선봉장이라구?!》 《그렇소이다.》 《음― 그러니 상놈이 전란의 시기를 맞아 장군이 되였다 그말이군!》 좀 불만기가 섞인 김응서의 의미깊은 말에 다들 고개를 짓수그리고 제나름대로의 생각을 굴리였다. 사실이 그러했다. 전란이 시작되여 서산대사와
같은 중이나 림중량과 같은 선비출신의 의병장들은 더러 보아왔지만 노비출신의 선봉장은 처음이였던것이다. 다들 황바위를 선봉장으로 내세운 림중량이 이제 김응서방어사로부터 되게 추궁을 받으리라는 눈치였다. 림중량은 서슴없이 김응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방어사님, 제가 량반의 법도를 어겼소이다.》 아무리 법도가 헝클어져버린 란시라해도, 문무에 뛰여난자라고 해도 상놈을 장군으로 임금의 허락도 받지 않고 엄정했다니 이 어이 될말인가.
이제 량반인 김응서방어사의 된 추궁이 있을것이다. 헌데 뜻밖에도 김응서의 입에서 꾸중의 웨침이 아니라 호걸다운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허허… 의병장, 일어나오. 난 림중량의병장의 마음속고민을 다 알고있소. 천민 황바위보다도 지략이 낮은 량반출신의 비겁쟁이 성표를
선봉장으로 선출했다가 서진성을 잃은 그 가슴아픈 사연을 다 알고있단 말이요.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라 했거늘 황바위같은 인재를 쓰지 않으면
백성들이 우릴 따르지 않을거요.》 《장군!》 림중량은 목이 꽉 메여올라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인재가 인재를 알아본다고 림중량의병장이야말로 당대의 명사요. 그러니 림중량의병장, 내 절을 받아주오!》 김응서는 선채로 두손을 들어 인사를 표했다. 《장군, 이러지 마소이다! 오히려 제가 황공무지로소이다!》 《하하하…》 여러 호걸들의 웃음이 터져올랐다. 량반의 법도를 어기고도 벌은커녕 상을 받았으니 이 아니 가관인가. 김응서가 걸걸한 웃음을
짓고나서 말을 이었다. 《나라가 있고야 량반도 상놈도 있을진대 란시에 문무를 겸한자가 대오의 앞자리에 서게 되는것은 마땅한 일이요. 나라가 망하면 다 같은 노비가
될것인즉 량반감투는 해서 뭘하겠는가. 그렇지 않소이까? 서산대사님!》 김응서의 말에 서산대사가 나섰다. 《옳소이다. 성벽도 잘 다듬어진 성돌들로 어귀져 이처럼 든든한것처럼 황바위와 같은 그런 인재들이 다 제 자리들을 차지하고있어야 나라가
건강해지고 다시는 섬오랑캐와 같은 미개족속들에게 치욕을 당하지 않게 될줄 아오이다.》 《대사님의 말씀이 지당하오이다!》 모두가 머리를 깊이 숙였다. 이 순간 림중량은 서진성혈전을 통해 깨달은바를 다시금 새겨보고있었다, (그렇다. 인재를 쓰는데서는 반상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백성들속에 인재가 있고 그 인재우에 나라가 있으며 인재우에 량반의 세상도 있는
법이다!) 김응서장군은 곧 고충경에게 평양백성들이 따르는 8장사들을 데리고 평양성에 남아서 백성들을 안정시키게 하라는 지시를 주고는 관군과 서산대사의
의병대와 림중량의병대 등 평양성주변의 각 고을 의병대들로 무어진 혼성부대를 편성한 후 패주하는 왜적을 추격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책들을
론의하고나서 모란봉을 내렸다. 이날 경상골막바지의 어느 한 집의 뜨락에서는 방어영 영장이 평양성을 떠나기에 앞서 한 늙은이에게 작별의 큰절을 하고있었다. 그 늙은이는 왜군에게 칼맞아 죽은 늙은 어머니원쑤를 갚아준 이웃로인이였다. 《로인님, 저의 어머니원쑤를 갚아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건 저의 성의이니 받아주십시오.》 영장은 자기의 품에서 꺼내든 금전과 은전이 든 주머니를 늙은이에게 내밀었다. 《이건 뭔가. 내가 이런 인사나 받자고 왜놈의 목을 벤줄 아나?! 당장 걷어넣게!》 늙은이가 노여움에 턱수염까지 떨며 웨쳤으나 영장은 그대로 막무가내였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아버님을 아들처럼 모시고싶은 저의 성의입니다.》 《음!…》 《이걸 받으시지 않으면 전 일어서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돈잎이 든 주머니를 받쳐올렸다. 《영장! 이러지 말라구. 어서 일어나라는데…》 영장의 뜨거운 진정에 목이 꽉 메여올라 한동안 말을 못하던 늙은이는 입을 열었다. 《부디 그 악귀같은 쪽발이 왜놈들을 하루빨리 이 땅에서 쫓아내주게. 그게 임자 어머니의 복수를 해준 나에 대한 갚음이라고 난 생각하네.…》 《아버님!》 억대우같은 영장은 늙은이의 작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 이것이 바로 이 나라 백성들이 꿈결에도 바라고바라는 소원이구나! 영장은 눈물이 번들거리는 얼굴을 하늘높이 쳐들고 마음속으로 웨쳤다. 《어머니, 내 기어이 어머니의 원쑤를 백배, 천배로 갚고 평양성에 돌아오겠습니다.》 이렇게 방어영 영장이 평양성과 작별하고 경상골을 넘어설 때 서리꽃이 하얗게 핀 대동문옆 강가에서는 또 륙손이와 모란이의 사연깊은 작별이
있었다. 모란이는 허리에 차고다니던 보따리를 륙손에게 들려주며 속삭였다. 《버선과 행전 그리고 미투리들이예요. 황바위사촌형님것두 거기 들어있어요.》 그의 어조에는 자기의 마음도 합쳐 더 많은 왜놈을 잡아족쳐주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실려있었다. 이때 버들가지우로 까치 두마리가 날아와 새된소리로 깍깍거렸다. 그 모양을 얼나간듯 바라보며 륙손이가 허허 웃었다. 《아니, 뭘 보구 웃어요? 남은 진정으로 말하는데…》 그제서야 앵돌아진 모란이의 마음을 풀어줄양 륙손이가 징글거렸다. 《저 까치가 말이야. 모란이를 대신하여 〈기다려줘요, 기다려줘요.〉 하고 말하는것 같단 말이야.》 《어마나… 엉터리… 난 몰라!》 모란이가 얼굴을 감싸며 뒤로 팩 돌아섰다. 그러는 그의 두어깨를 륙손이가 그러안았다. 《모란이!》 《어마나, 남이 보겠네.》 《보면 뭐래.》 륙손이의 든든한 가슴에 몸을 맡긴 모란이는 눈물에 젖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난 돈정신아저씨의 아주머니랑 함께 살면서 거기서 돌아오기 전에 오빠네 집을 꼭 다시 지어놓겠어요.》 오돌찬 모란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모란이, 고마워.》 륙손이에게 있어서 모란이는 고향 모란봉의 꽃이였고 날아들며 우짖는 새였다. 잠시후 륙손이는 모란이가 준 보따리를 걸메고 나팔이 울리는 집합대렬로 달려갔다. 처녀도 뒤따라 달렸다. 조선관군대오의 앞에는 김응서장군의 군사들이 길 량쪽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아갔다. 뒤를 따르는 의병들가운데 큰 검을 둘러멘 젊은 녀석이
군중속에 있는 한 늙은이에게 웨쳤다. 《아버지, 허리병에 좋다는 단너삼을 구해서 벽장속에 넣었어요. 꼭 달여잡수세요. 올봄에 뿌릴 차조씨앗은 광속 선반우에 있구요.》 《오냐. 알았다.》 《아들의 효성이 극진하외다.》 옆의 군사가 말하자 총각의 아버지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것보다도 호미끝으로 지렁이 한마리 죽이지 못하던 우리 아들애가 저렇게 큰 검을 메고 왜적을 치러나가는것이 더 기쁘웨다.》 한쪽켠에서는 한 녀인이 의병대에 나가는 애아버지에게 갓난아이를 안겨주며 이야기했다. 《여보, 이름을 지어주고 가세요.》 《우리 평양이 싸워 이겼는데 평양이라고 합시다.》 《평양이, 김평양이… 아이참 좋네.》 안해는 눈물절반, 웃음절반의 얼굴이였다. 이때 꽃골로 가지고나갈 평양성싸움소식을 걷어모으러 뛰여다니던 막동이가 의병들의 뒤꽁무니에 붙은 곽서방을 보고 소리쳤다. 《곽서방도 가실려우?》 《그렇네. 이렇게 같이 나가 경성에 들려서 안해랑 흑갑사령감님 시체나 이장해드리고 나도 관군에 들어갈가 하네. 란리가 끝나거든 또
만나자구.》 《그땐 우리 함께 삽세다.》 드디여 관군과 의병대로 이루어진 혼성부대는 성밖을 나섰다. 성안사람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성을 나선 부대는 곧 대동강얼음우를 타고 건넜다.
금수산에서 불어내리는 세찬 평양성 눈보라를 몰고 대렬은 왜적을 뒤쫓아나갔다. 한편 중화의병대 지휘처에서는 관군과 의병들의 뒤를 따라나갈 의병대의 행동방향을 짜고있었다. 황바위선봉장을 위시로 신욱이, 막동이, 노마, 호영이, 정수돌, 《천왕동》, 정대봉 그리고 두명의 화엄산 젊은이들과 고서방을 비롯한 그밖의
의병들, 손로인, 유신검, 한대걸, 윤초시, 호영이 어머니들이 모여앉았다. 《이번에 어랑산성놈들과 평양성에서 쫓겨나오는 놈들을 토막내는 싸움에서 우리 꽃골사람들이 정말 큰 몫을 했습니다. 김응서장군께서도 우리
중화의병대의 싸움형편을 두고 몹시 기뻐하셨소이다. 그리구 평양성탈환싸움에 참가한 우리 림중량의병장님도 꽃골에서 많은 장수감들이 태여났다구
승전소식을 축하하여 인사를 보내여왔소이다.》 《아닌말로 우리 꽃골에서만도 얼마나 많은 장수들이 새로 생겨났수…》 손로인이였다. 《장수라니요?》 이번에는 호영이 어머니가 손로인에게 되물었다. 《우선 부녀대장 호영이 어머니가 장수구…》 《와하하하.》웃음들이 터졌다. 《아니, 내가 장수라니요?》 《이 란리에 자네야말로 녀걸이고 장수지… 그리구 자네아들 호영이두… 저 홍이 그리구 노마…》 《그렇게 놓구보면 농산대를 책임진 아주버니도 장수외다.》 갑자기 호영이 어머니의 목소리는 갈렸다. 《그리구 칠성이두, 저 쌍가마두 모두 장수였지요. 란리판에서 자란… 원한이 사무치면 장수가 되는 법인가보외다.…》 장내는 잠잠해졌다. 《옳은 말일세.… 애국의 넋을 지닌 사람은 모두 장수가 될수 있지요.… 저 오복이가 머슴살던 집 윤초시도 사실 오늘 장수가 된 셈이지.…
칼만 잘 써서 장수겠나.》 손로인이 계속했다. 《난 우리 꽃골에서 이렇게 많은 인재들이 생겨난것은 림중량의병장님은 물론 황바위선봉장의 덕이라고 생각하네.》 로인의 두눈에 황바위에 대한 격찬의 빛이 차넘쳤다. 그 말에 황바위는 당황한듯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전 그저 백성들의 지혜와 힘을 내
재능보다 더 귀히 여길뿐이오이다!》라고 겸손을 피웠다. 《옳거니, 바로 그거네. 예로부터 백성을 무시한 장수 나라를 건지지 못했네. 그건 바로 백성이자 곧 나라였기때문이지.…》 생각깊은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바로 이때 여기로 숨을 헐떡거리며 서진성에 남아있던 한 의병이 달려왔다. 《선… 선봉장님, 아버님께서…》 모두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렸다. 《왜, 왜적의 총에 전사하셨소이다.》 《뭐라구?》 벌떡 황바위가 일어섰다. 《어제밤 평양성에서 도망쳐 서진성에 기여든 척후대놈들을 양무대 옆골짝 함정으로 몰아넣고 그만…》 《아―》 황바위가 주먹으로 벼랑바위를 내리쳤다. 《아― 아버지! 이 원쑤를 어쩌면 좋습니까.》 황바위가 범의 포호성인듯 으르릉 소리를 쳤다. 성난 그의 두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당장이라도 적진을 향하여 달려나갈 기상이였다. 분격을 삭이지 못해하는 황바위에게 윤봉모사가 다가섰다. 《아버지는 성을 비워놓고 놈들을 함정과 마름쇠밭으로 몰아넣다가 놈들의 총에… 그런데 아버지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 그만… 아,
성지키는 그 일을 내가 할걸 그만… 그러나 황봉아저씨는 꽉 차있는 서진성보다 빈성을 가지고 그 몇곱으로 왜놈들을 공포에 떨게 했소이다. 그럴려구
자진해서… 아…》 윤봉의 숨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래서 내가 시신은 문발이에 모셔갔네. 시신을 가장했다가 다음날 북대봉으로 옮겨주려고…》 《고… 맙소이다.》 황바위의 목소리는 갈리였다. 윤봉이 황바위에게 다가갔다. 《선봉장, 유신검아저씨를 북대봉으로 보냄이 좋을듯 하오이다. 가서 서설봉선생부인과 그 식솔들을 돌보게 합시다.》 황바위는 그의 깊은 마음에 머리가 숙어졌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유신검아저씨는 곧 북대봉으로 떠나도록 하시오이다. 그리고 조총대를 책임진 고서방도 명산땅으로 돌아가서 젊은이들에게 총쏘는 법을
가르쳐야겠소.》 그러자 호영이 어머니도 나서며 말했다. 《나도 서진성으로 가겠소. 가서 부녀대원들과 성도 꾸리고 서진벌농사도 지어 의병들에게 보내주겠소.… 그리고 저 막동이의 외자상투를 진짜
상투로 바꿔주겠소다.》 《어머니!》 격해진 호영이가 어머니 손을 받들어 잡았다. 《오냐, 어미 걱정말고 네 부디 잘 싸우거라.》 어머니는 자기 손으로 지어입힌 아들의 《푸른갑옷》앞섶을 다독여주었다. 이날 황바위는 《푸른갑옷》차림의 신욱이, 륙손이, 막동이, 노마, 홍이, 정수돌이, 《황천왕동》이, 호영이, 정대봉이 그리고 화엄산에서 온
젊은이들 그 열두명의 중화의병들을 거느리고 남으로의 길을 떠났다. 큰길이 미여지게 따라나오는 사람들의 손길, 눈길을 받으며 황바위선봉장의 설화마를 선두로 《푸른갑옷》차림한 열두명 젊은 의병들은 모두
왜놈들에게서 빼앗은 말들을 타고 뒤따랐다. 황바위가 마을앞 둔덕에 올라 뒤를 돌아볼 때 서진성우에 외지팽이를 짚은 그의 아버지가 우뚝 서서 저를 지켜보는것만 같아 눈물이 솟구쳤다. 《아버지, 제 꼭 아버지와 쌍가마의 원쑤를 백배, 천배로 갚고 고향땅으로 돌아오겠소이다!》 마음속으로 애타게 부르며 군마를 몰아가는 그에게 북대봉 푸른 소나무가 와수수 가지우의 흰눈을 털어 그의 머리우에, 어깨우에 내려쏟았다. 황바위는 말머리를 돌려 《이랴!》하고 채찍을 더 높이 쳐들었다. 그를 따라 열두명 젊은 의병들도 채찍들을 높였다. 그런데 한창 내처 달리던 대오가 멎어서더니 맨앞에 있던 황바위가 말을 돌려 급히 되돌아오는것이였다.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달려온 황바위는 말에서 펄쩍 뛰여내리더니 호영이 어머니앞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어머님, 서진성에 가시거든 부녀대원들을 부디 잘…》 그는 머리를 숙였다. 《이 사람 선봉장, 사람 울려놓지 말구 어서 떠나라구.…》 호영이 어머니는 목이 메였다. 황바위는 사람들을 다시한번 쭉 둘러보았다. 《그럼, 안녕히들 계십시오!》 《황바위!》 모두가 그를 쓰다듬으며 떨어지길 아쉬워했다. 그러나 아니갈수 없는 싸움의 길, 고향사람들의 원쑤를 갚는 길이였다. 다시 말에 오른 황바위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물가물 언덕을 넘어 사라졌다. 《원 사람두…》 《이제 저들이 남해가에서 서일대정이랑 만나겠지. 우리 오복이하구두…》 손로인이 이렇게 말하며 발돋움을 했다. 이때 먼 평양쪽에서 솟아오른 봉화가 이들이 몰고나가는 평양성의 불바람인듯 중화, 황주고을의 산발들을
타고 남쪽으로 힘차게 뻗어나갔다. 계사년 정월달 초아흐레날 석양무렵이였다. 그후 중화고을에는 이런 노래가 생겨나 불리워오기 시작했다. 북대봉호랑이 서진벌로 나와서 어흥 으르릉 왜놈을 물었다오 북대봉호랑이 범들을 키워서 남해가로 왜놈들을 몰아갔다오 몰아갔다오, 몰아갔다오
편집후기 장편소설 《푸른갑옷》의 저자 송봉렬선생은 나라없던 세월인 주체7(1918)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여나 곡절많은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되였다. 작가가 될 꿈을 안고 고학의 기나긴 밤마다 등불심지를 돋구며 학문의 세계를 파헤쳐보았건만 얻은것이란 식민지민족의 문학청년이라는
애달픔뿐이였다. 그후 고향땅에 돌아와 교편을 잡은 그는 불온사상을 류포시켰다는 죄아닌 죄로 수배를 받고 경찰들의 눈을 피해 사랑하는 제자들과
헤여져야 하는 리별의 아리랑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처럼 소원하던 조국의 해방을 맞이했건만 해방후 일제를 대신하여 남조선에 기여든 미제의 군화발밑에서 신음하는 인민들의 모습은 20대의 청년
송봉렬로 하여금 항쟁의 거리에 나서게 하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사랑하는 처자를 뒤에 두고 우리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평양에로의 행군은 열혈청년 송봉렬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이였으니 문학인으로서 그의 삶은 이때부터 시작되였다. 송봉렬선생은 교원신문사와 아동문화사(당시) 기자로, 그후에는 조선2. 8예술영화촬영소와 작가동맹중앙위원회 작가로 사업하는 기간 동요동시집
《꽃길만리》와 서사시 《항쟁의 아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아동문학작품들과 함께 영화문학 《사랑의 기적소리》, 《첫 병기창》을 창작하여 인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송봉렬선생의 문학적삶은 말년에 와서 더욱 풍만해졌다. 우리 문단에 뚜렷한 흔적을 남겨놓은 송영, 박세영선생들을 비롯하여 이미 년로하여 집에 들어갔던 로작가들이 생의 마지막까지 붓대로 당을
받드는 당의 작가로 삶을 빛내이도록 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깊은 조치에 따라 금성청년출판사 문학창작단(당시) 로작가실 작가로 다시
돌격좌지를 차지한 송봉렬선생의 머리속에서는 임진조국전쟁시기 의병들의 투쟁을 담은 소설의 줄거리와 인물들의 성격이 하나하나 무르익어갔다. 주체83(1994)년에 발표된 《푸른갑옷》이 바로 고목에도 꽃을 피우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창작적자양분으로
받아안고 태여난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원래 작가는 《푸른갑옷》의 련속편을 쓰려하지 않았다. 북대봉호랑이로 불리운 노비출신의 의병 황바위와 중화의병대의 그후 투쟁에 대하여
써달라는 독자편지를 받은 선생은 년로한 그 나이에 다시 붓을 들었으니 초고를 마무리하고 생을 마친 그때 그의 나이는 어언 83세였다. 이렇게
되여 련속편이라는 의미에서 유고작의 제목을 《푸른갑옷》(하)로 이름하게 된것이다.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작가로서 손에서 붓을 놓지 않은 작가 송봉렬선생의 삶은 유고작 장편소설 《푸른갑옷》(하)의 탄생과 더불어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