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2 회)
제 13 장
쌍가마
1
황바위는 마을앞 갈림길 벼랑으로 올라갔다. 거기가 의병들의 매복지점들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선봉장의 지휘처였던것이다.
황바위는 큰길에서 꽃골로 들어오는 길목에 병풍처럼 서있는 절벽굽이들, 홈타기들과 그 주변의 후미진 골목들 그리고 숲속과 길건너 논두렁, 밭두렁, 웅뎅이들에 표창대원들을 갈지자형으로 매복시켜놓고 창검대, 조총대는 저 남쪽의 야산에 매복시켜놓았다. 북대봉에서 짐승을 잡던 그 차돌멩이가 오늘은 이렇게 표창대, 창검대로 자랐고 조총으로, 불화살로 이어진것이다.
문득 황바위의 눈앞에 그 돌멩이질, 표창질, 조총겨누기, 활쏘기와 칼질, 쇠몽둥이질훈련에 밤낮을 모르던 얼굴들이 감회깊이 되살아올랐다.
다름아닌 바로 무지렁이로 천대받던 백성들이 오늘은 왜놈들을 때려잡으려고 여기에 이렇게 매복해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진정 감회가 깊어졌다.
(년세많은분들이 힘들텐데… 그리구 그 백립 쓰고 도끼 메고 간 선비가 겁을 먹지나 않을가?)
이런 생각도 해보던 황바위는 의병들이 자기를 바라보고있다는 생각에 머리를 버쩍 쳐들었다. 그는 푸른 기발을 두번 쳐들어보였다. 저쪽 산턱에서도 그에 호응하는 푸른 기발이 두번 올랐다. 맞은편 홈타기에서도 호영이네 기발이 올라갔다. 멀리 남쪽에서도 고서방의 기발이 올랐다. 이것은 전투준비를 갖추라는 낮에 올리는 기발신호였다.
이번에는 둥둥 두번 울리는 북소리가 선봉장 지휘처에서 나자 같은 호응의 북소리들이 울려왔다. 이것은 밤에 울리는 준비신호였다. 다음에는 붉은 기발이 세번 오르고 북소리가 세번 울렸다. 이것은 전투명령의 낮신호, 밤신호였다.
의병들은 큰길을 중심으로 해서 갈지자형으로 엇바뀌여 매복을 하고있었다. 발에 익고 눈에 익은 제 고향땅이기에 높고낮은 논두렁, 밭두렁, 벼랑길, 모퉁이 하나도 모두가 그들을 감쪽같이 숨겨주었다.
한편 지금 쌍가마는 기발신호를 하는 황바위에게 깔끔한 눈길을 던지며 앵돌아진 생각을 곱씹어보고있었다.
(엥이, 울뚝바우같은거…)
선봉장으로 임명된 다음부터는 별로 더 우쭐해져보이고 자기를 시답지 않게 대하는것만같이 생각되는 황바위였다. 헌데 이상한것은 멀리서 그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별나게 두근거려지는 그것이였다. 사실 쌍가마는 초담이장마당 소금싸움이래 일부러 황바위를 피해다녔었다. 그것이 인제 와서는 왜 이리도 애달픈 후회로 가슴을 저며대는지 참으로 이상했다.
(참말 황바위는 얼마나 달라졌담. 아주 딴 사람이 되였어!)
그렇다. 어제날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차돌멩이를 날리던 《푸른갑옷》이 아니라 그 잊을수 없는 초담이장마당의 소금싸움과는 대비도 안되는, 평양성에 기여든 왜놈들의 숨통을 끊어놓는 큰 싸움을 선두에서 이끌어나가는 의병대의 어엿한 선봉장으로 자라난것이다.
그동안 그가 겪었을 마음속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하고 생각해보니 쌍가마는 마음이 알알해졌다. 황바위가 제일 힘들어하고 속을 썩이고있을 때 그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도록 받쳐주고 떠밀어줄 대신 자기의 야속한 심정만 속에 품고 가슴만 아프게 허비여준것을 생각하니 스스로 자기가 미워났다.
(이젠 우리사이가 다시는 그전날처럼 되지 못할거야. 바위오빠가 날 얼마나 차겁고 매정한 년이라고 욕할가.… 이젠 의병대의 선봉장까지 됐는데 나같은걸 쳐다보기나 할라구…)
이런 생각을 하는 쌍가마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호―하고 한숨이 새여나왔다. 그러나 쌍가마는 자기가 소금싸움을 그르친 황바위를 두고 너무도 안타까와 눈물을 흘리다못해 그와 다시는 대상 안할듯이 경원시한 행동이 황바위가 자기의 실책을 뼈저리게 뉘우치며 솟구쳐오르게 한 채찍으로 되였다는것을 다는 모르고있었다.
사실 서진성수복싸움이 벌어지던 그날 적진으로 종횡무진하던중 총탄에 맞아 말에서 굴러떨어졌을 때 그 다급한 속에서 자기를 구원하러 달려온것도 쌍가마였고 자기의 의도대로 성루우의 북을 친것도 쌍가마였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황바위는 말없이 곁에서 위해주는 처녀의 살뜰한 정을 뜨겁게 느꼈었다. 늘 옆에만 있어준다면 천만의 적도 두려울것이 없을것 같은 기대와 믿음, 이것이 쌍가마에 대한 황바위의 심정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였던것이다.
쌍가마 역시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있는 그런 나약한 처녀가 아니였다. 그는 표창을 허리춤에 촘촘히 꽂아넣고나서 자리를 일었다. 황바위오빠가 자기를 어떻게 대해주든간에 선봉장인 그의 신상에 사소한 불편이나 위험이 생겨서는 안된다는것이 쌍가마의 속생각이였다. 이것은 림중량의병장의 곡진한 부탁이기도 했다.
림중량은 의병대가 꽃골로 떠날 때 쌍가마를 따로 불러 이번 싸움의 승패는 제일 위험한 선두에서 의병대를 지휘하는 선봉장한테 크게 달려있으니 각별히 그의 신변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여기에는 그동안 어성버성해진 황바위와 쌍가마의 정을 다시 이어주려는 년장자다운 념려도 깃들어있었다.
쌍가마는 말에 올랐다. 말이 천천히 걷는대로 몸을 맡기고 가느라니 사랑은 뜨거운 넋으로 해야 한다던 림중량의병장의 말이 다시금 그의 귀전에 메아리쳤다.…
언젠가 쌍가마는 지금처럼 말에 올라 황바위와 같이 서진벌을 지난적이 있었다.
《말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말을 탄 쌍가마를 대견스럽게 쳐다보는 황바위앞에 쌍가마는 얼굴을 활딱 붉혔다.
쌍가마는 밤마다 황바위를 그려보군 하던 때의 마음이 그만에야 얼굴에 내비쳐진것만 같아 얼른 고개를 돌리며 일부러 매몰스럽게 말했다.
《나만 자꾸 쳐다보지 말고 그 저고리안속이나 뒤집어보세요.》
《그건 뒤집어봐선 뭘해. 쌍가마가 지어온 이 저고리가 내 몸에도 꼭 맞고 푸른 물감까지 알맞춤히 들여서 보기 좋은데…》
《글쎄 저고리안을 보라는데…》
황바위는 영문을 몰라하며 저고리를 뒤집어보았다. 눈처럼 하얀 저고리안천이 황바위의 눈을 부시게 했다.
《바위오빠, 이제 눈이 오면 싸움판에서 꼭 저고리를 뒤집어입어요.》
황바위는 그제야 그 저고리에 왜적들과 맞다들었을 때 표적이 되지 않게 해주려는 쌍가마의 갸륵한 정성이 스며있다는것을 가슴뜨겁게 느끼였다.
《쌍가마, 고마와. 쌍가마가 날 이렇게 지켜주는데야 그 어떤 화살이나 조총도 나를 맞히지 못해.》
황바위의 두눈에서는 뜨겁고도 열렬한 불길이 황황 솟구쳐나오는듯 했다.
《자꾸 그렇게 보지 말라는데…》
쌍가마도 얼굴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팩 돌아서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쌍가마, 같이 가.》
《따라오지 말아요. 보기 싫어요.》
쌍가마는 온 서진벌에 웃음발을 흘리며 말을 내달렸다.…
쌍가마는 생각에서 깨여나며 흠칫 고개를 들었다. 당장 싸움을 앞둔 때에 아직도 달콤한 꿈이나 꾸고있는 자기를 채찍질하듯 배허벅을 힘껏 찼다.
말도 정신이 번쩍 든듯 네굽을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전장으로 달리는 쌍가마의 마음인양 눈보라가 회오리치며 골짜기로 날려가고있었다.
쌍가마는 말을 달려 의병들의 매복진지를 돌아보고있던 황바위한테 이르렀다.
앞머리칼이며 눈섭에까지 하얗게 성에를 끼고 달려온 쌍가마를 보고 황바위의 두눈이 대번에 둥그래졌다.
《쌍가마, 웬일이요?!》
《저…》
말에서 내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갑자르던 쌍가마가 품에 안고 온 보자기부터 풀었다. 식지 말라고 솜으로 두툼하게 감싼 물병이 나왔다.
《추운데 더운 물을 드세요.》
쌍가마는 물종지에 김이 문문 나는 물을 따라 황바위앞에 내밀었다.
물종지를 받아든 황바위는 쌍가마의 젖어든 긴 속눈섭을 지켜보다가 그 물을 쭉 들이켰다.
오장륙부의 얼음이 다 녹는듯 온몸에 따갑게도 슴배이는 물이였다.
문득 황바위는 눈속에 파묻혀있는 사람들 생각이 들었다. 이 따끈한 물을 자기 혼자 마시는것이 죄를 짓는것만 같아 황바위는 물병과 물종지를 들고 일어섰다.
쌍가마가 미처 무어라 말도 하기 전에 황바위는 그것을 안고 벼랑바위 눈바람속을 뛰여내려갔다.
그 물종지를 받아든 나이든 의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곁에 선 백립을 쓴 선비가 《선봉장!》하고는 목이 메여오는지 더 말을 잇지 못해했다.
《힘들지요?》
《아니우다. 막 힘이 솟소이다.》
황바위가 안겨준 물을 받아마시는 그의 목젖이 크게도 오르내렸다.
그 모습을 보는데 의병들이 눈속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울려왔다.
《왜놈들을 빨리 내쫓아야 올봄농사 씨붙임을 제때에 할텐데…》
황바위는 논바닥흙을 두손으로 긁어 움켜쥐였다. 흙을 으스러지게 움켜쥔 그의 손가락사이로 뭉클뭉클 흙냄새를 풍기며 살진 흙덩이가 부스러져 하얀 눈우로 떨어졌다.
(조금만 견디여냅시다. 내 기어코!…)
황바위는 속다짐을 하며 일어섰다. 그가 꽃골지휘처로 돌아와 벼랑우에 다시 우뚝 섰을 때 두드러진 그의 《푸른갑옷》을 바라보며 눈속의 의병들은 속삭였다.
《우리 선봉장 세상을 잘 만났더라면 병수사도 원수감인데 제길…》
《병수사가 대순가. 이제 두고보라구. 그 털보왜놈이 북대봉호랑이가죽을 가져가겠다구 조선땅에 기여들었다가 저 호랑이에게 목덜밀 콱 물릴걸세. 하하하.》
《하하하…》
《우리 선봉장 금년에 나이 몇살이요?》
선비가 옆의 중늙은이에게 물었다.
《나이얘기가 났으니 말이지 우리 선봉장의 나이는 북대봉 심심산골 진달래가 스무번을 피여서 올해 스무살이라오.》
《북대봉호랑이의 나이가 스무살이란 말이지. 거 참 신통두 하군!》
중늙은이의 말에 생각이 깊어진 선비는 이렇게 혼자말처럼 하더니 조용히 옛 장수의 노래 한구절을 입속으로 외우는것이였다.
남아이십 미평국
후세수칭 대장부
중화의병대 젊은 선봉장의 멸적의 뜨거운 숨결은 이렇게 바위틈, 외길목눈속과 숲속 여기저기에서도 함께 뛰고있었다.
벼랑중턱 기찰초소에서 적정신호를 보내여온것은 바로 이때였다. 조총을 멘 왜군마병 100여명이 중화쪽에서 나온다는것이였다.
경성으로 향한 큰 길을 순찰하는 놈들일것이다. 황바위는 모든 초소들에 적정신호를 알리는 기발신호를 보냈다. 여기저기서 화답신호기발이 올랐다. 드디여 싸움이 시작되였던것이다. 주위는 쥐죽은듯 고요했다. 하지만 매복초소들에서는 의병대원들이 싸움시작을 알리는 황바위의 기발신호를 기다려 마음을 조이고있었다.
황바위는 곧 제일 앞쪽의 길어구목에 매복해놓은 표창대쪽에 적들을 통과시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눈보라속에 푸른 기발이 오르내리는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면서도 황바위는 (표창군들이 지나가는 저놈들을 두고 참아낼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공연한 걱정이였다. 다행히도 눈속에 잠복한 앞쪽 매복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째진 구름사이에서 비친 석양빛속에 황바위의 얼굴에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쌍가마는 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불쑥 잠복초로 달려오고있는 몇사람들의 모습이 황바위의 눈에 띠였다. 의병들이 파고 들어앉은 구뎅이들에 깔아줄 짚퉁구리들과 더운국, 더운밥을 안고 지고 가는 사람들이였다.
그 사람들을 보자 황바위의 곁에 엎드려있던 쌍가마가 《나두 가서…》하며 일어섰다.
《가만있으라구. 우린 자리를 함부로 떠선 안돼.… 그리구 왜놈들과 싸울 땐 내뒤에서 떨어지지 말라구.…》
《!…》
황바위의 말에 한순간 쌍가마는 당황해졌다. 비록 겉은 무뚝뚝해도 가슴속에는 자기를 아껴주는 황바위의 뜨거운 진정에 목이 꽉 메여올랐다.
《고마와요.》
들릴듯말듯 이렇게 말하는 쌍가마의 눈굽에 가랑가랑 이슬이 맺혀 고였다.
황바위에게서 받아안은 웅심깊고 묵직한 정에 바람세찬 눈벼랑에서도 마음이 후끈거리는 쌍가마였다. 평소에 말이 적은 쌍가마가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채 속삭이듯 했다.
《내 걱정 너무 말고 선봉장인 거기서 몸조심하구 잘 싸워주세요.》
《쌍가마!》
황바위의 손이 저도모르게 쑥 나가더니 쌍가마의 손을 꼭 감싸쥐는것이였다.
《쌍가마두 부디 조심하라구. 부탁이야.》
둘은 뜨거운 눈길로 서로 마주 바라보았다.…
이날 순찰을 끝낸 평양성안의 왜병들은 아무런 동향도 없다는것을 확인하고 다시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2
휘익― 휘익―
꽃골어구목 벼랑우에 눈회오리가 일고있었다.
(아이참, 내가 왜 이럴가. 왜 자꾸 이렇게 졸려올가?!)
황바위의 곁에서 주위를 살피던 쌍가마는 겹쳐오는 졸음을 이겨내느라 이렇게 싱갱이질을 하고있었다. 잠이란 모진것이여서 설한풍속 눈벼랑우에서도 잠을 설친 쌍가마는 그만 잠에 들고말았다. 어린 처녀로서 감당키 어려웠던 생활의 모진 풍파를 한순간만이라도 잊게 하려는듯 눈보라도 잠잠해졌다. 쌍가마는 이 세상 일만설음, 일만소원을 황바위에게 맡기고 깊은 잠에 든것이다.
황바위는 덧솜옷을 벗어 쌍가마의 어깨우에 덮어주었다.
(아, 쌍가마! 넌 늘 나에게 뜨거운 진정을 고여주었지. 그런데 이 미련둥인 저만 잘났다구 우쭐렁거렸으니 쌍가마, 날 용서하오. 우리 고향땅에서 왜놈들을 몽땅 몰아내고 북대봉에 번듯한 집을 지어놓고 아들딸 가득 낳고 잘살아보자구.…)
황바위의 마음속고백을 듣기나 한것처럼 쌍가마의 두볼에 행복의 미소가 방긋이 어렸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황바위의 가슴은 후두둑 뛰기 시작했다. 막 쌍가마를 품에 꼭 안아주고싶었다. 하지만…
이 순간 쌍가마는 꿈을 꾸고있었다.
…마을의 복숭아꽃, 앞뒤산 진달래가 활짝 피여 웃어주었다. 호랑나비, 쌍나비가 그를 반겨 춤을 춘다. 귀에 익은 앞개울물이 노래를 불러주고 넓고 푸른 하늘 어디엔가에서 종다리 노래소리가 령롱하다.
진달래 꽃밭속에서 갑자기 불쑥 황바위가 일어서더니 벙글거리며 큰 꽃방망이를 쌍가마의 가슴에 안겨준다. 옆에서 이걸 보며 오빠가 벙글거린다.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된 쌍가마가 꽃방망이를 안고 자기 집옆의 옹달샘에서 봄나물을 씻고있는 어머니에게로 달려간다.
《어머니, 저기 누구들이 왔나 보세요.》
산나물을 손에 든채 흰귀밑머리를 걷어올리며 일어선 어머니가 《쌍가마야…》하고 딸을 부른다.
《어머니!…》
어머니와 딸의 부름소리를 고향산천이 받아 메아리쳐준다.
《어머니… 이 꽃방망이를 좀 보세요.》
두팔을 벌리고 쌍가마가 달려간다. 그런데 지척에 있는 어머니가 점점 멀어진다.
《엄마…》
너무나도 안타까와 어머니를 소리쳐부르던 쌍가마가 와뜰 놀라 눈을 떴다.
어깨우에 씌워진 황바위의 덧옷우에 하얀 눈가루가 쌓여있었다.
《아니, 선봉장님, 내가 졸았소이까?》
수태를 머금은 쌍가마의 그 모습을 본 황바위의 가슴속에서 방망이질이 시작되였다.
《쌍가마!》
황바위는 불쑥 쌍가마의 두손을 잡아쥐더니 그를 자기의 가슴팍에 와락 잡아안았다.
《아이 숨차. 어쩌자구… 남들이 봐요.…》
쌍가마는 당황해서 속살거렸다.
《난, 난, 쌍가마가 맘에 들어!》
그리고는 쌍가마의 볼에 거칠은 제볼을 마구 비벼댔다.
《이러지 말아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쌍가마는 거의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웨쳤다. 그러면서도 황바위의 든든한 가슴팍에 제 얼굴을 더욱 깊숙이 묻어버렸다.…
이렇게 나흘이 흘러갔으나 폭풍전야의 정적인듯 그동안 의병들의 매복구역들에서는 아무런 정황도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황바위선봉장과 의병들, 꽃골사람들은 매일, 매 시각 일촉즉발 불달리기 전 화승들이 타들어가며 조이는듯한 촉박감을 느끼고있었다. 오늘도 거미줄처럼 늘여놓은 각곳 기찰대들에서는 아직 별다른 징후가 없었다.
해질무렵이였다.
서진벌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말우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평양성싸움이 시작되오.…》
이 소리는 삽시에 각 기찰초소들에 메아리쳐 단박에 황바위선봉장 지휘처에까지 와닿았다.
뽀얀 눈가루를 날리며 서진벌을 달려오는 사람은 김응서방어사의 특명을 받고 오는 방어영의 류성이였다.
그는 왜놈에게 불맞은 고향마을로 맨먼저 평양성싸움소식을 가지고 달려오는것이였다.
《중화의병대 황바위선봉장! 오늘 새벽 보통문, 함구문, 칠성문으로 우리 관군의병들이 평양성으로 쳐들어갔소.》
어느새에 말발굽소리보다 류성이의 격동된 목소리가 벼랑바위앞으로 다가들고있었다.
《싸움형편은 어떻습니까? 좀 차근차근 말해주시우.》
황바위는 따지듯 물었다.
의병들과 마을사람들을 둘러본 류성은 살붙이도 집도 다 잃어버린 고향마을에 돌아온 격해진 마음도 합쳐져서 평양성 첫 싸움소식을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굉장했네. 오늘 첫 새벽부터 성안의 왜놈들을 들이치기 시작했는데 지금 평양성안은 온통 왜놈의 시체웨다. 8월 초하루 싸움때처럼 이번에두 제일선참으로 김응서장수가 함구문을 치고 들어갔는데 왜놈들은 김응서장군의 기발만 보구두 새파래져서 〈소서비장수가 바로 저 장수에게 모가지를 떼웠다. 조심하라!〉하며 슬금슬금 뒤걸음을 치는판이지요.》
《하하하… 그렇겠지.》
사람들은 모두 사기가 났다.
《그래서요?》
《그런데 막다른 골목에 다달은 적들의 발악도 이만저만이 아닐세.》
《그렇겠지요.》
《…이번에 김응서장수의 칼솜씨를 처음 봤는데 그가 그 큰칼을 휘두르면서 말을 달려나가는 곳에서는 칼든 놈이건 총든 놈이건 몽땅 길을 내주는판입디다. 내 조자룡이 칼 잘 쓴다는 말을 들었지만 김응서장수 칼솜씨에 어찌 비기겠소. 그뒤로는 오석산의 백발 림강선생이란분이 장군을 감싸듯 쌍검을 휘두르며 나가는데 그걸 보는 사람들은 더 기세가 올라 왜적을 족쳤다네.》
《젊어서 김응서장수랑 그 선생에게서 함께 검술을 배웠다니 왜 그렇지 않겠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무심히 듣지 않았다.
류성은 이어 서산대사의 승병대도 칠성문으로 쳐들어갔다는 이야기와 보통문으로 쳐들어간 도원수 김명림의 싸움소식도 전해주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싸움이 시작되면 제때에 싸움소식을 서진성의 중화의병대에 알려주라는 김응서방어사의 령을 받았기때문에 이른새벽부터 한낮까지의 싸움에만 참가했다가 여기로 떠나 왔다면서 이제 또 다른 사람이 다음소식을 가지고올거라고 하는것이였다.
한숨 돌리고난 그는 자기도 오늘밤 싸움에 참가해야겠기에 빨리 가겠다고 하며 말잔등에 올랐다.
다음날 새벽에는 막동이가 오고 8일날 이른새벽에는 류성이가 다시 와서 그동안의 싸움형편을 세세히 전해주었다.
이틀밤 사흘낮에 걸치는 평양성싸움은 실로 가렬처절한것이였다.
《고니시는 대동문우에서 칼을 뽑아들고 으르렁거리고 1만 5천명이라든지 1만 7천명이라든지 하는 왜병들은 죽느냐 사느냐 악을 물고 덤벼들고있소. 놈들은 어제밤에도 김응서방어사에게 달려들었댔는데 김응서장수는 놈들을 성밖의 벌판으로 유인해낸 다음 들이족쳐서 목떨어진 왜놈시체가 벌판에 한벌 쭉 깔렸다오. 그래서 성안으로 쫓겨들어간 놈들은 성벽들에 들어박혀 눈먼 총질만 하고있쇠다.》
《거 정말 볼만 했겠구만! 하하하…》
사람들속에서 통쾌한 함성이 터졌다.
《그러니까 사면팔방으로 평양을 둘러싸고있는 우리편이 어방없이 많겠구만…》
《그러믄요. 관군에 서산대사의병대와 고충경의 평양성수복의병대…》
《초담이 별동대도 있겠지? 그 별동대를 노마가 거느리겠구만. 참 장한 일이야.》
손오복이도 사기가 났다.
《반년동안이나 갇히워있던 왜놈들이 인젠 마음대로 도망도 못치게 됐군…》
《그러다간 다 뒈지고 여기까지 살아서 올놈이 없지 않겠나?》
《하하하, 걱정두 팔자라더니…》
《그런데다가 지금 서산대사의 의병대가 모란봉에서…》하고 류성이는 하던 말을 다시 시작했다.
《아, 서산스님이…》
사람들의 눈빛이 빛났다.
《서산대사의 의병대가 모란봉왜적을 치다가 슬쩍 뒤로 물러나는척 하자 왜놈들이 와하고 달라붙는것을 사명당대사가 승병들과 함께 모란봉 뒤골짜기에 몰아놓고 몽땅 답새겨버렸지요. 의병들이 모란봉을 타고오르자 이번에는 모란봉을 빼앗겼다간 제놈들이 도망칠 대동문 얼음판을 잃게 된다는것을 깨달은 놈들은 모란봉으로 와글와글 몰려들었수다. 이때 돌중 법근이가 서산대사의 앞을 막아 통쾌하게 놈들을 족쳐댔지요. 덤벼드는 놈들을 그 큰칼로 무우동강을 내듯 허리를 칠 때마다 〈나무아미타불〉소리 한마디에 한놈씩 꺼꾸러졌지요.
그렇게 되자 왜놈들이 그에게 덤벼들었지요. 법근이는 놈들의 머리우로 솟아오르며 칼을 휘둘러댔는데 그 칼빛으로 수목장삼이 다 하얗게 보였다오.
그렇게 싸우던중 아쉽게도 그만 칼이 부러졌는데 반토막칼을 들고 싸우다가 계속 왜적이 밀려들자 놈들을 두팔에 껴안고 청류벽밑으로 떨어지며 〈평양아, 잘 있거라!〉하고 웨쳤수다.
이때 불화살빛으로 대낮처럼 밝은 모란봉우에 승병기를 짚고선 백발의 서산대사는 청류벽으로 적을 껴안고 굴러떨어지는 법근이를 보면서 〈나무아미타불〉이 아니라 〈을지문덕, 강감찬장군이시여, 당신들의 자손들을 찬양하시라!〉하고 울부짖었답니다.
때마침 모란봉으로 올라간 평양8장사들은 격노한 범들처럼 왜적에게 덤벼들고 사명당대사가 골짝에서 큰 칼 들고 솟아오르는데 전주복이는 〈법근아, 이자식아!〉하며 땅을 치며 울었답니다.…》
말하는 사람도 모두가 눈물을 삼키며 주먹들을 떨었다. 나라의 아픔, 제 겨레의 아픔을 함께 겪으며 함께 숨쉬는 사람들이였다. 하기에 아슬아슬한 고비, 통분한 고비, 통쾌한 고비마다에서 함께 주먹을 부르쥐고 큰숨들을 내쉬군 했다.
평양8장사중의 한사람인 염창 소금짐군 돈정신이까지 수구문을 열다가 놈들의 총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지면서 《방어사님, 이번엔 왜놈들을 한놈도 살려보내지 마시오이다!》하고 웨쳤다 한다.
그 이야기에 돈정신이와 형님, 동생하며 지내던 꽃골사람이 《아니 돈정신이, 네가 죽다니. 한평생 소금짐을 날라서 소금에 절은 네가 죽다니.… 생전소원이 오글거리는 처자식들을 거느리구 살아볼 집 한칸이더니… 왜놈이 평양성에 들어올 때 그 염창의 소금을 왜놈 안먹이겠다구 네가 다 대동강에 처넣었지!… 아 억울하구나. 그래 눈이 감기더냐?》하며 가슴을 쳤다.
실로 왜놈 100놈과도 바꿀수 없는 이런 평양8장사들을 잃은 상실의 아픔이였다. 한동안 비애의 감정이 떠돌았다. 모두가 흑흑 흐느끼는데 류성이 몹시 미안해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세워볼 생각으로 《그런데 이번 평양성 밤싸움에서 불화살싸움이 정말 장관이였수다.》라고 했다.
《불화살싸움?》하고 모두의 눈들이 커졌다.
《밤이 되자 모란봉 서산대사의 의병대에서 불화살이 하늘로 날아올라 평양성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는데 함구문쪽에서는 꼬리에 불을 단 꿩이랑 비둘기들이 날아올라 정말 장관이였지요. 날아드는 불화살, 쏟아지는 불벼락에 질겁을 한 왜적들은 쥐새끼들처럼 날 살려라 도망쳐 숨는데 개중에는 홀린듯 하늘의 불화살을 올려다보며 〈아, 곱구나!〉하고 지껄이다가 그 불화살에 맞고 너부러지는 놈도 있었쉐다.》
《하하하하… 》
《어쨌든 어제밤 평양성싸움은 조선사람의 원한을 실컷 풀어준 싸움이였소.》
류성이는 이 마지막 말마디에 힘을 주었다.…
서진성 기찰대원들에게서 들어온 어랑산성 왜놈들의 동태자료는 들을만 했다.
평양성싸움이 붙자 그 결과가 어찌될지 몰라 당황해하며 놈들은 지금 게구럭에 든 게들처럼 와글거리고있었다.
끊임없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의병들의 기습에 정신을 못차린 구시라는 분격에 서진성을 치자고 나섰지만 졸병들이 나자빠졌다는것 특히 석가산 의병들이 어랑산성을 치러 간다는 시간을 미리 알려놓고 꼭꼭 그 시간에 치는 바람에 게구마까지도 엉뎅이를 들썩거린다는 이야기… 더우기 졸병들속에서 《다 파먹은 김치독에 우리만 왜 빠지랴.》라고 한 게구마의 말이 낱말처럼 나돌아 온 성안이 벌둥지 쑤셔놓은 격이 되였다는 이야기에 모두는 고소를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