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1 회)
제 12 장
남해에서 온 꽃골사람
2
(2)
《아저씨, 제가 꽤 선봉장구실을 할수 있을가요?…》
꽃골 뒤골짜기로 떠나는 손오복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던 황바위가 물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내 고향 마을사람들을 불러일으켜 원쑤치는 싸움에 떨쳐나서게 하였구 그 앞장에서 용맹을 떨치고있는 자네가 아닌가!…》
《그래도…》
《음―》
손오복은 잠시 무슨 깊은 생각을 더듬어보고나서 입을 열었다.
《듣자니 자네 맘고생이 컸더구만. 성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 녀인들때문에 눈물까지 흘렸다면서…》
《아저씨!》
백성들을 성밖으로 내보내던 일이 떠올라 황바위는 얼굴을 붉혔다.
《글쎄 그 일이 그렇게 힘들줄이야…》
《그게 바로 진짜야.… 자네가 흘린 눈물은 백성의 아픔을 안은 눈물이니 그건 곧 사랑이였네. 그런 사랑이 없이야 어떻게 수백명의병들을 거느린 선봉장이겠나.》
《그렇게 생각하시니 고맙소이다!》
황바위의 눈가에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하지만 싸움판에 들어서선 그런 인정을 삼가하게. 요즘 큰일을 맡은 자네가 남의 눈치를 보는게 헨둥히 알려 그러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세운 계책을 의심하게 되고 불의의 정황속에서 구령을 치지 못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싸움에서 지고마네. 군사들앞에 나선 대장의 구령과 얼굴빛은 앞으로 있게 될 싸움의 승패를 좌우하는데서 큰 역할을 한다네. 리순신장군밑에서 난 이걸 뼈저리게 느꼈네. 그 엄청난 왜적을 앞에 놓고도 태연자약하던 리순신장군의 그 안색을 난 잊지 못하겠네. 그때 만약 장군의 안색에 겁나하는 빛이 조금이라도 비꼈던들 군사들이 그렇게 신심을 가지고 왜놈들에게 대들었겠나. 거북선인들 그렇게 큰 맥을 썼겠는가 말일세.…》
《옳은 말씀입니다.》
《그 리순신장군의 배짱과 담이 어디서 온것이겠나.〈군사들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있다. 나는 대장이다!〉라는 생각만으로는 그런 배짱과 담이 생겨날수 없지. 원쑤를 궁지에 몰아넣을 기발한 묘책을 내놓고 면밀하게 작전을 짠데 맞게 수하군사들을 단단히 훈련시켜놓았기때문이지. 리순신장군은 늘 적의 속심을 항상 환히 꿰들고 작전을 세우기때문에 〈오늘밤에 왜놈의 습격이 있을것이다!〉라고 예견하면 꼭 왜놈들이 쳐들어오군 하여 우리 군사들은 물론 왜군들까지도 장군을 〈하늘이 낸 신장〉이라고들 했다네.…》
《말뜻을 알겠소이다.》
황바위는 저보다 나이 우인 제장들을 거느리느라 불편한 점이 가끔 있어 종종 주저하며 의향을 내비쳐보이군 한 자기의 행동이 부끄러웠다. 손오복이 지금 선봉장다운 체모를 갖추지 못한 자기를 추궁하고있었다. 다같은 천민의 처지에 있다해도 일단 군기를 세운 이상에는 냅다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왜적을 치는 싸움에서 이길수 있는것이다. 그렇다. 군률을 떠난 승리를 생각할수 없는것이다!
3
며칠후 황바위가 꽃골마을에 들어선것은 이른저녁이였다. 꽃골에 이른 황바위는 여러 제장들을 데리고 불화살을 만들어쏘는 훈련장을 먼저 찾았다.
꽃골 뒤골짝은 깊고 넓어서 좋았다. 안쪽에 자리잡은 널직한 야장간에서는 남진의병 쉰명과 한대걸별동대의 의병 스무명이 부지런히 틀에서 뽑아낸 쇠활촉을 갈며 깎고 하며 불활촉감을 다듬고있었다. 또 한쪽켠에서는 유신검, 윤초시를 비롯한 늙은이들이 그들에게 화약시중을 들고있었다.
화살촉들은 하나같이 정교로왔다. 날아가며 바람을 받아 불을 일으키는것도 있고 목표물에 박히면 터져 불을 일으키는것도 있다고 했다.
아래쪽 훈련터로 황바위가 내려갔을 때 거기서는 한대걸이 남진의병 쉰명과 석가산의병 30명을 데리고 불화살쏘기훈련을 하고있었다.
손오복은 활군들을 불러모으더니 군복차림을 단정히 하고 깍듯한 군례로 맞이했다.
《선봉장님, 의병들이 그동안 익힌 활쏘기훈련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젊은 선봉장이 당황해하는데 《그럼 한번 보겠나.》하고 손오복은 열명의 활군을 앞에 내세웠다.
불화살쏘기훈련실태를 선봉장에게 보여주는 시합이 있다는 소리에 화살촉을 만들던 사람들도 모두 모여들었다.
손오복의 구령에 따라 열대의 불화살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라 소소리 높은 전나무가지 상수리에 모여 꽂히더니 화득화득 불꽃이 일었다.
《야! 정말 멋있구나!》
여기저기서 환성이 터져올랐다.
다음은 교대한 열명의 활군들이 허공에 대고 일제히 불화살을 쏘았다.
화살들은 솟아올라 눈부신 불꽃들을 하늘중천에 펼쳐놓았다.
《오복아저씨, 정말 고맙소이다.》
황바위는 손오복의 손을 감아쥐고 어쩔바를 몰라했다.
윤초시가 근엄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예로부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동이〉라고 즉 동쪽에 있는 〈이〉나라라고 불렀는데 그 〈이〉자는 큰 대자와 활궁자가 합쳐져 이루어진 글자지.》
윤초시는 막대기로 땅우에 글자를 써보이며 계속했다.
《그 뜻인즉 큰 활을 잘 쏘는 나라라는 뜻인데 이렇게 글로는 알았었지만 오늘에사 오복이 덕에 그 큰 활을 보게 됐네.》
뜻이 깊은 말이였다. 옛날의 자기 집 꼴머슴이 오늘은 제 고향을 지켜 대적을 치는 큰 장수가 되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남해가에까지 하늘소를 타고다니며 장사군노릇이나 하던 지난날의 자기를 돌이켜보는 말이기도 했다.
손오복은 사람들앞에서 불화살이야기를 자랑삼아 시작했다.
먼 옛날부터 우리 나라에는 이런 불화살이 있었다. 한번에 백대씩이나 나가는 《신기전》이라는 기계활도 있었다. 어떤것은 화살에 날개까지 돋힌것도 있었다. 이런 불화살을 가진 나라는 세상천지에 조선밖에 없었다. 그 좋은 《신기전》과 하늘높이 날던 그 좋은 불화살들이 조선봉건왕조 200년동안에 다 없어지고 오늘은 왜놈들의 조총앞에서 우리 백성들이 무리죽음을 당하는 일을 생각하면 복통이 터질 노릇이다.…
《그러길래 우리 꽃골에서도 오늘 이렇게 불화살을 만들어내지 않았느냐. 왜놈총에 우리 사람들이 멸살당한 우리 꽃골에서 네가 그놈들의 머리우에 퍼부을 불화살을 만드는 생각을 하면 밤에도 잠이 오지 않는구나. 오복아! 그 불화살에 우리 손가집안의 원한도 꽁꽁 재워넣어라.》
손로인의 이 말에 모두는 불화살을 쥔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선봉장님!》
나어린 한 의병대원이 말했다.
《거 왜놈들이 어느때쯤 쫓겨나올것 같습디까?》
《글쎄 거 평양성안에 들어박혀있는 소서행장이나 알겠는지…》
《이거 쫓겨나올바에는 빨리 나오든가 해야지 어깨가 근질근질해서 어디 참겠소이까?!》
《하하하…》
이윽고 황바위는 꽃골어귀싸움과 관련한 모임을 가지였다.
《여러분, 평양성수복싸움의 앞뒤운명은 이번 서진성싸움에 달려있습니다. 며칠내로 평양성안의 왜군들이 여기로 밀려나올것입니다. 우리는 평양성안의 적들이 모두 밀려나오기 전에 어랑산성놈들을 빈 성안으로 유인하여 치는 한편 어랑산성안의 왜군들의 머리우에 이 불화살벼락을 들씌워야 합니다.》
이어 황바위는 그렇게 되면 어랑산성의 놈들은 반드시 꽃골어귀로 밀려들게 될것이니 그때 좌우에서 표창대, 창검대, 조총대가 치고 더 나아가 황주땅 경계목에서는 신욱의 활군들과 남진활군들이 치게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이어 어랑산성놈들에게는 칠 시간을 꼭꼭 알려주고 매번 그 시간에 꼭꼭 치군하여 놈들이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는 전술을 살려보자고 꼬리를 달았다.
선봉장의 면밀한 계획에 모두가 찬성을 표했다.
손오복이는 다시한번 황바위의 조밀한 계획에 탄복했다.
《내 생각같아서는 이 꽃골어구목에서는 먼저 밀려나올 어랑산성놈들만 치고 평양성안놈들은 더 멀리 끌어내다가 황주목에서 치는것이 좋겠네. 선봉장말대로 여기서 두곳 놈들을 다 친다는건 힘든 일이야. 잘못하다가는 놈들의 발악에 걸릴수도 있거든.… 그래서 여기서는 그놈들이 조마조마해서 지나치게 했다가 겁에 잔뜩 질렸던 놈들이 후하고 큰 숨을 내쉴 때 황주목에서 치자는것이야. 그게 어떨가?》
선봉장은 그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좋은 의견입니다. 오복아저씨 의견이 상책이올시다.》
황바위는 이렇게 세세히 전술들을 짜고나서 자기는 꽃골어구에서 싸움을 지휘할것이라고 선언했다.
드디여 각기 자기 위치를 차지하러 떠날 때가 되였다.
길떠날 차비를 마친 손오복이 황바위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어랑산성을 친 다음 남진활군들을 데리고 뒤길로 앞질러서 왜적보다 먼저 황주목으로 가서 왜놈들을 기다리겠네. 때문에 형편에 따라서는 자네랑 큰아버님두 못만나구 떠날수 있으니 알아주게.… 남해로 가서 서일제장에게 자네가 의병장도 없이 평양성관문을 지키느라고 수고가 많더라고 그리고 평양성 관문은 념려말라고 리순신장군께도 말씀드리겠네.》
《아저씨, 이번에 정말 아저씨가 아니였다면… 내 아저씨를 잊지 않겠소이다. 그런데 저야 남해까지 놈들을 쫓아나가면 아저씨를 다시 만날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큰아버님이…》
황바위가 이렇게 걱정을 하자 손로인이 끼여들었다.
《우리 숙질간에는 벌써 그 이야기가 있었네.… 숙질간의 정보다도 나라에 대한 큰 의리에 살자구!…》
황바위는 놀라운 눈으로 손로인을 바라보았다.
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싸움길에 나선 손로인, 단 하나 남은 혈육마저 나라 위해 바치려는 그의 뜨거운 마음이 뜨겁게 헤아려져 황바위는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손오복을 떠나보낸 황바위가 쌍가마와 함께 되돌아서는데 꽃골마을 아낙네들이 달려나와 반겼다.
《틀림없군. 우리 마을이 왜놈의 불을 맞던 날 주저앉아 땅만 치던 우리 마을 사람들을 의병대로 데리고간 그 총각이야.》
《듣던 말대로 북대봉호랑이 타고 자란게 분명하외다. 저 눈 좀 보우.》
황바위와 그의 설화말을 바라보며 마을아낙네들은 혀를 찼다.
《왜놈들이 벌벌 떠는 천하장수라오.》
《저 〈푸른갑옷〉소리만 듣고도 왜놈들이 쥐구멍을 찾는다오.》
《쌍가마와 깊은 인연이 있다우.》
《정말 마음이 놓이우. 아무렴 하늘이 그렇게야 무심하갔소.》
그날 한서방의 어린아이에게 빈젖을 빨리던 녀인이 좋아도 했다.
《어서 들어가자구.》
한 늙은이가 황바위와 쌍가마를 제 집으로 이끌었다. 그들을 불을 지펴놓은 아래목에 앉히고 마을아낙네들은 따끈한 시래기국에 쩍쩍 빠갠 동치미랑 보골보골 끓인 된장찌개며 기장쌀밥을 무둑히 담은 밥상을 앞에 갖다놓았다.
맞상이여서 황바위와 쌍가마는 서로 마주앉지 않으면 안되였다.
황바위와 마주한 쌍가마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자, 어서 들라구.》
《할머니, 정말 고맙소이다.》
《원 고맙기야 뭘. 왜놈들을 몰아내는 장한 싸움길을 떠나는 임자들에게 더 좋은 음식을 차려주지 못하는게 도리여 죄스럽기만 하네.…》
할머니는 도리여 눈굽을 적시며 송구스러워했다. 그 모습이 더욱 황바위와 쌍가마로 하여금 밥술을 들지 못하게 하였다.
(아, 백성의 마음은 오직 왜적을 하루빨리 몰아낼 그 한생각뿐이로구나!)
황바위는 코마루가 찡해옴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와 함께 잠시나마 백성들의 힘을 작게 여기고 소금싸움을 궁리했던 지나간 일이 다시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우리 의병들은 바로 이것을 지켜주려 나선 사람들이다!… 나의 이 《푸른갑옷》도 이들이 입혀준것이다. 내 목숨걸고 싸워 백성들과 사랑하는 고향땅을 지켜내리라!)
이날 황바위는 꽃골사람들이 챙겨주는 포근하고 가뜬한 버선행전차림으로 꽃골어구목으로 떠났다. 단검 열두자루를 가뜬히 찬 쌍가마가 큼직한 보퉁이를 들고 그를 따라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