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 회)
제 12 장
남해에서 온 꽃골사람
1
의병기가 높이 솟아있는 서진성을 향하여 달구지 다섯채가 굴러오고있었다. 달구지마다에는 무엇인지 묵직하게 처실은 짐들이 보였다.
성루우의 파수병들이 달구지들을 먼저 알아보았다.
《어디서 오는 달구지요?》
눈속길을 오느라고 온통 눈사람처럼 눈을 뒤집어쓴 맨앞의 달구지군이 흥에 겨워 마주 소리쳤다.
《날 모르겠어요. 어서 성문을 활짝 열라구요. 부산포싸움에서 큰 공을 세운 서일제장이 우리 의병대에 참대활감을 보내왔소.》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전 황바위선봉장이 서일에게 보냈던 그 젊은이였다.
《뭐라구, 서일형이?!…》
서일이 보낸 참대활감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황바위는 한달음에 성문으로 달려나왔다.
《그러면 그렇겠지. 우리 서일형님이 누구라구.》
벌써 불화살을 만들 참대활감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의병대원들이 달구지들을 둘러싸고있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했다.
참대활감을 쓸어안은 유신검이 서진성벽밑을 바라보며 《서설봉나으리, 기뻐하시오이다.》라고 목메인 소리를 하더니 북대봉쪽을 향하여 《로마님! 새아씨! 서일새서방님이 남해바다에서 왜놈을 크게 족쳤소이다.》하고 소리쳤다.
유신검의 행동에 의병대원들도 흥분된 심정을 터뜨렸다.
《서일제장이 한시도 우리와 떨어져있지 않고있었구나!》
《서일제장이 보낸 이 화살대감이면 저 어랑산성놈들을 모두 황천객으로 만들수 있겠수다. 하하하…》
웃음을 터치는 사람들속을 헤집고 들어선 황바위는 화살대감들을 쓸어안았다. 그리고는 거기에 자기의 뜨거운 볼을 대며 불렀다.
《서일형!》
자기도 모르는새에 기쁨의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잠시후 머리를 든 황바위앞으로 수군복차림의 한 군사가 나섰다.
《남해수군 손오복이 중화의병대 황바위선봉장님께 인사를 드리오.》
깍듯이 군례를 드리는 그를 알아본 황바위선봉장이 덴겁을 했다.
《아저씨! 이러지 마시오. 정말 반갑소이다.》
황바위는 두팔을 벌리며 막아나섰다. 그의 진정이 가슴에 안겨진 손오복은 한참동안이나 황바위의 출중한 인물과 그의 름름한 기상을 지켜보았다.
(과시 듣던 그대로구나.)
손오복은 이렇게 생각하며 서일의 편지를 황바위에게 전했다.
황바위선봉장에게
이 참대를 가지고가는 손오복이는 리순신장군께서 백사람구실을 할 싸움군을 골라서 보내는 사람으로서 우리 수영에서 이름떨친 명궁수이며 불화살군일세.
불화살감으로 쓸 참대를 보내니 서진성에서도 여기 남해바다에서 왜군배 수백척을 몰살시킨 승전의 불화살이 하늘높이 솟아오르리라 믿네.
끝으로 멀리서 동생에게 간절히 부탁하고싶은것은 싸움의 승패는 부하들을 아끼고 백성들의 지혜와 힘을 믿는자의 손아귀에 쥐여져있다는것이네.
리순신장군이 련승하시는것은 바로 부하들을 자기 혈붙이처럼 여기며 백성들의 근심을 상처의 아픔보다 더 중히 여기는 바로 거기에 있다는것을 나는 여기 남해수영에서 새로 깨달았다는것을 전하는바이네.
부디 이걸 명심하고 림중량의병장을 도와 평양성수복싸움에서 큰 공을 세워주길 바라네.
임진년 섣달 남해바다에서
서일 씀
편지를 읽고나니 황바위는 마치 남해바다가 굽이쳐온듯한 심정이였다.
(고맙소이다. 서일형!)
황바위의 두눈굽에 뜨거운것이 번들거렸다.
손오복과 이미 인사를 나눈 한마을태생 의병이 벌쭉거리며 소리쳤다.
《허허, 그러니 손오복이 우리 중화의병대에 오복을 가져온셈이구만!》
《오복이라니?!》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리순신장군의 승리소식 가지고와서 우리들의 힘을 돋궈주었으니 이것이 첫째 복이구요, 우리 서일제장의 군공소식 가지고왔으니 이것이 둘째 복이구요, 제 고향 의병들의 싸움을 도우려구 활감을 잔뜩 싣고 수천리 먼길을 달려왔으니 이것이 셋째 복이구요, 이제 평양성안의 왜놈들을 칠 때 저도 그 명궁솜씨로 우리랑 함께 왜놈을 잡게 됐으니 이것이 넷째 복이구요, 스무해 기나긴 세월 그 풍파많던 길을 걸어 이렇게 제 고향 사람들을 만났으니 이것이 다섯째 복이 아니웨까?》
좌중은 그의 진지하고 리치에 맞는 말을 들으면서 그것을 우스개소리처럼 듣는 사람이 없다가 《그래, 옳거니. 그게 다 호영이 어머니가 우리 오복이 이름을 잘 지어준 덕일세. 허허…》하고 유신검이 먼저 웃는 바람에 좌중에 밝은 웃음판이 터졌다.
눈물속에 황소웃음을 짓고섰던 황바위가 여기에 한마디 보탰다.
《저 오복아저씨가 남해바다우에서 왜놈배를 불사른 그 불화살을 떠메고 왔으니 우리 중화의병대가 왜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복을 타고난셈입니다.…》
《옳거니. 역시 선봉장다운 말일세.》이렇게 호응하고난 아까 그 의병이 계속했다.《그러구보면 이런 란리에도 앞날을 내다본 큰분들의 생각이 참 신통하군요.… 서일제장을 남해로 내보낸 의병장님이나 오복이에게 남해의 불화살을 지워보낸 리순신장군이나 다 큰사람은 큰사람들이우다.…》
《그 말은 참 잘했수다!》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황바위가 손오복에게 다가섰다.
《아저씨, 저 그런데 불화살을 여기서도 만들수 있소이까?》
《만들지 않구. 류황과 염초만 있으면야… 바로 그래서 서일제장이 날 부러 여기로 떠밀어보낸거지.…》
《됐습니다. 아저씨, 정말 잘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불화살을 우리 고향땅에 기여든 저 어랑산성의 왜놈들의 머리우에 퍼부읍시다.》
《알겠소이다!》
손오복이 기세차게 대답하였다.
《자, 여러분, 빨리 화살대감들을 성안으로 들여들 갑시다!》
황바위선봉장의 웨침이 성벽을 울렸다.
그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하늘에서 소담스런 눈발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화살대감을 군막안에 끌어들이는 일을 끝내고난 황바위는 손오복과 마주앉아 불화살을 만들기 위한 일을 론의하였다. 한편 취사를 맡은 군막에서는 어깨근육살이 불어오른 젊은이 몇이 참대활감을 가져온 오복이네들에게 먹일 찰떡, 메떡들을 치느라 땀을 철철 흘리고있었다.
《힘껏 때려라. 왜놈대가리 나간다. 또 한번 비벼라. 왜놈대가리 부서진다. 에라 좋다, 때려라, 비벼라!》
떡메질소리는 서진성의 하늘가로 메아리쳤다.…
2
(1)
어느 한 의병군막안에는 벌써 이글거리는 큰 화독이 걸리고 그 두리에 손오복을 위시로 하여 윤초시, 유신검을 비롯한 나이지긋한 이들과 신욱제장을 비롯한 의병대원들이 대나무를 불로 구부려 활을 만들고있었다. 그 한쪽에서는 몇명의 의병대원들이 화살대를 깎고있었다.
이제는 한다하는 야장군들로 자란 화엄산 젊은이들이 유신검과 함께 진흙을 구워서 만든 틀에서 빼낸 쇠활촉끝들을 줄칼로 썩썩 갈고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는 명주끈, 삼노끈, 당나무끈, 소힘줄들로 활줄들을 꼬고있었다.
《그놈, 참 잘 생겼다. 왜놈 목줄기를 꿰뚫어놓자고 늘씬 키가 자랐구나. 거 몇발 잘되갔지?》
중년농군의병이 참대활감을 들고 오복이에게 한마디 하자 《한해동안에 자란 키랍니다. 참대란건 한해동안에 다 자라거든요. 삼남 천리벌에 저런 참대밭이 가는 곳마다에 푸르싱싱 설레이고있는데 참 볼만 하지요. 〈정송오죽〉이라고 옛날부터 소나무는 정월달에 심고 대나무는 5월달에 심어오는데 정말 참대는 굽히지 않는 사람들의 기상이지요.》
《듣자니 큰 놈은 마디앞을 잘라서 세면그릇으로도 쓴다던데…》
《전 그런걸 아직은 못봤지만 이번 란리에 이 참대가 한몫 단단히 했습지요. 호남지방에서도 수많은 의병들이 일어났는데 60여세의 고경명의병장도 두 아들과 함께 왜적을 쳤는데 모두 참대활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아니 3부자가?… 과연 참대같은 절개로다.》
윤초시가 감탄을 했다.
《고령땅에서도 김명익의병장이 700여명의 노비들로 의병대를 무을 때 이 참대로 활과 창을 만들어가지고 일떠섰지요. 나라에서 쥐여주는 병쟁기가 없었으니 말이지요.》
그리고나서 손오복은 말했다.
《참대이야기가 나온김에 이번 란리에서 참대가 큰 공을 세운 이야기를 한가지 해드리지요.》
《좋지.》
사람들은 손오복이를 바라보았다.
《여러분들도 다 알고계시겠지만 이번 란리통에 우리 나라에서 〈비격진천뢰〉라는 포탄을 만들어 경주성싸움때 성안에 쏘아넣었댔지요. 그런데 튀지도 않고 뱅글뱅글 돌기만 하는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왜적들이 〈하하, 이게 뭘가?〉하면서 큰 놈, 작은 놈 오구구 모여들어 고개를 기웃거릴 때 꽝! 하고 그것이 터져 모여든 놈들은 몽땅 즉살되였지요. 그 〈비격진천뢰〉라는 포탄은 포탄속에 시간을 맞추는 장치가 되여있어서 뱅글뱅글 돌다가 시간이 되면 꽝 튀는 포탄인데 그놈들이 그것을 몰랐거든요. 왜놈들이 우리 화약무기로 혼쌀난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지요.
고려때에는 〈천균노〉라고 부르는 포탄이 튀는 소리에 왜놈들이 뒤로 벌렁 넘어졌지만 이번에는 아예 즉살탕을 먹었거든요.》
《거 그러구보니 포탄때문에 진짜 혼쌀이 난건 왜놈들이였구만.… 그런데두 제길 왜놈조총때문에 오늘은 우리가…》
한사람이 이렇게 말하자 손오복이는 《왜놈들을 혼쭐나게 만든 그 〈비격진천뢰〉배속에 들어있는 시간을 재는 화약통인즉 그게 바로 참대통이였단 말이외다.》
《저런, 그랬댔구만.》
《그 다음달 초순에는 진주성에서 하세가와라고 하는 왜장의 3만군과 진주판관 김시민장군의 3천 800명이 맞붙어 결사전을 했지요. 그때 마지막고비에서 은을 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도 이 참대활이였답니다. 그때 우리 화살이 얼마나 셌던지 왜장 한놈의 몸뚱아리에 화살촉이 고슴도치가시처럼 박혔는데 그놈은 뒈지면서도 조선참대활 조심하라고 소리쳤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참대활의 위력이 대단하지요?》
《정말 대단하군.》
《남해수군이 싣고온 참대값 올라간다! 하하하…》
《이 참대화살이 바로 남해수전에서 이름을 떨치게 한 그 유명한 화살이니 참대값도 올릴만 하지. 하하하…》
손오복은 자기도 함께 활대를 구부리면서 신중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지내고보니 병쟁기란 손에 익고 마음에 익으면 몇십, 몇백곱으로 은을 내는 법입데다.》
《그 말이 리치에 맞는 말일세. 우리 의병대에서 쓰는 표창, 편승들만 놓구봐도 그렇지.》
《그게 바로 우리 선봉장이 북대봉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산짐승들을 잡을 때 쓰던 차돌멩이랑 끈맨 돌덩이를 가지고 시작한것이라네.》
《그래요?》
손오복이는 놀랐다.
《우리 손에 익은 쇠스랑, 도끼들은 또 얼마나 많은 왜놈을 잡았다구.…》
《원달이가 소, 돼지 잡던 도끼로 왜놈들을 수태도 잡았지.…》
사람들은 백정 원달이의 의기를 잊지 않고있었다.
오복이는 진지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 어르신네들, 황바위선봉장 말대로 우리 이 참대로 불화살을 만들어 왜놈들을 족칩시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 그런데 우리는 불화살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어놔서…》
《그건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모두들 좋아했다.
이때 여기로 꽃골어귀에 내보내였던 한대걸이 두팔을 벌리고 달려오며 소리쳤다.
《오복아―》
《아니? 아저씨!》
손오복이가 마주 달려나갔다. 둘은 서로 얼싸 부둥켜안고서 얼굴을 부비였다.
《아저씨! 아주머니랑 칠성이네 집안이 왜놈들에게 몰살을 당했다지요.》
《어디 그런게 나뿐이냐.… 용타, 네가 이렇게 고향을 지키는 자리에 왔구나.》
그들이 서로 붙잡고 손을 놓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등뒤에서 《오복아, 이자식아―》하고 노마가 황소울음을 터치며 달려왔다.
《노마야.》
오복이가 노마의 가슴을 마주치며 가슴에 머리를 비벼댔다. 체통들이 크기도 한 그들이 서로 그러안았다. 란리속에 이루어진 한대걸이와 노마, 오복이의 기구한 상봉이였다.
이런 가위에 오복이 노마의 어깨를 쥐여박는다. 《짜식 떡쇠, 네가 살아있었구나!》하고 눈물이 질벅해진 얼굴로 노마의 볼을 부벼대여 옆의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떡쇠》라는건 노마의 어릴적 별명이였다. 사람이 좀 무르다고 해서 쇠는 쇤데 강쇠는 못되고 떡쇠라는 별명이 붙었던것이다. 그런 떡쇠가 왜놈들이 벌벌 떠는 난다긴다 하는 당당한 표창대원이 된것이다.
《떡쇠, 듣자니 너의 어머니도…》
《말해서 뭘하겠니… 어머니 살아계실 때 네 이야기 많이도 하셨다.》
오복이와 노마는 동갑나이 어려서부터 나무활에다 수수깡화살을 메워가지고 서로 제가 더 큰 장수라고 활질을 하면서 꽃골동네가 떠들썩하게 돌아치던 사이였다.
《네가 이번에 큰일을 했구나.》
노마는 참대들을 쓸어보며 감회깊은 얼굴을 했다. 살아있는 동갑친구란 하나밖에 없는 노마를 만나는 오복의 심정도 그러했다.
옛날 제 집 머슴들이였던 노마와 오복이를 바라보는 윤초시의 생각 역시 깊어져서 한마디 했다.
《정말 오복이가 의젓한 장부가 되여서 돌아왔네. 사나운 자기팔자, 험악한 나라팔자 고개를 넘어오느라고 죽을 고비, 살 고비를 거쳐온 사람일세.》
이날 모임에서는 손오복이가 가지고온 참대로 몽땅 불화살을 만들어 평양성의 왜적들이 도망치는 날 놈들의 머리우에 불벼락, 불산더미를 들씌우기 위한 방도가 론의되였다.
마감에 황바위가 나섰다.
《그러면 방금 토론한대로 오늘부터 꽃골 뒤산골짜기로 참대를 몽땅 가져다가 불화살을 만들기로 합시다. 거기에다 남진의 궁수들 100여명을 붙여서 불화살을 만들며 쏘는 훈련을 하게 하는데 그 총책임은 손오복아저씨가 져주십시오. 그런데 이 소문이 왜놈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겠소.》
잠시 숨을 돌리고난 황바위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가지 걱정되는 일은 화약과 염초를 마련하는 문제입니다.》
《그건 우리가 맡겠네. 오늘부터 문발이를 비롯한 서쪽 바다가마을들로 나가서 매 집 아궁의 묵은재, 마루밑흙, 뒤간흙들을 모아서 고으면 염초발이 생긴다니…》
공로인과 윤초시였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의병대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그냥 남게 되였던것이다.
《거 참 좋은 생각이외다.》
사람들이 큰 시름을 놓은듯 기뻐했다.
이렇게 되여 다음날부터 분담이 된대로 다들 자기 맡은 일에 달라붙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