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 편 소 설

 

 

 

박    윤

 

 

( 제 36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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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광이 치솟으면서 전선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지원군포병과 함께 인민군의 위력한 련포군이 상감령앞의 597.9고지에 강력한 타격을 가한 뒤 지원군전투원들은 5호, 6호 진지들을 단숨에 탈환하고 이어 미제침략군의 2참호로 된 3호진지로 공격하였다. 련대장의 명령으로 대대통신분대에 련락병임무를 넘겨준 황계광은 제6중대에 속하여 이 전투들에 참가하였다.

지난 9월말 오성산앞 금곡리계선에 대한 습격전투때 6중대에 긴급련락을 갔던 황계광은 위급한 전투도중 익측으로 달려드는 적들에게 수류탄을 던져 중대의 전투승리에 기여하였다.

《역시 우리 사천성사람들은 용맹하단 말이야. 계광이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

한때 진의사령원밑에서 련락병으로 싸운 텁석부리중대장은 전투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황계광의 어깨를 두드렸다.

《중강현 9구입니다.》

황계광이 씩씩하게 대답하자 중대장의 입이 쭉 째졌다.

《우리 옆고장이구만. 차가 잘되는 곳이야. 록차는 우리 사천성것이 제일이야. 건륭황제도 늘 사천성록차를 찾았고 주은래총리도 좋아했지. 진의장군은 전리품으로 우리 사천성록차만 생기면 차곡차곡 건사했다가 보내주군 했어.》

《중대장동지, 이제 승리하고 고향에 가면 우리 어머니가 손수 따서 말린 록차잎을 한광주리 가지고 찾아가겠습니다.》

황계광은 중대장의 기분이 떴을 때 전투구분대에 받아달라는 청을 하는것이 좋으리라고 판단하였다.

《중대장동지, 저를 중대의 전투원으로 받아주십시오.》

《언제 참전했더라?》

《1951년 3월 12일입니다.》

《그래? 어, 이젠 고참이구만. 좋아, 내 제기하지.》

황계광은 기쁨으로 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 우리 고장 록차가 날 도와주는데?…)

하지만 사실은 록차가 아니라 미제침략군 일곱명을 요정낸 그 수류탄덕분이였다.…

아군포부대의 선제타격에 참호들이 파헤쳐졌지만 적들은 중무기들에 의거하여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아군의 공격은 일시 좌절되였다. 중대장의 명령으로 황계광이 4호진지를 지나 상감령기슭의 련대부로 파견되였다. 한식경이 지나 황계광은 등에 커다란 배낭을 지고 되돌아왔다.

《어떻게 됐소?》

련락병태생의 텁석부리중대장이 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거리상 너무 빨리 돌아온것이 미타했던 모양이다.

황계광은 배낭을 벗으며 이마의 땀을 뻑 훔쳤다.

《련대장동지를 만났습니다. 마침 련대부에는 지원군사령부 양득지부사령원동지와 인민군전선사령부 김봉률포병사령관동지가 와있었습니다. 지금 몇시입니까?》

긴장해진 중대장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6시 30분이요.》

《중대장동지, 이제 30분후면 인민군포병동지들이 저 3호진지에 포사격을 들이댑니다. 련대장동지는 감시병만 내놓고 예비갱도를 차지하고 30분동안 음페했다가 단숨에 공격하여 이 597.9고지를 타고앉아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다른 중대들에도 련락병이 파견되였습니다.》

6중대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김봉률포병사령관까지 왔단 말이지. 이젠 됐소.

우리 포병이 제일이야. 이제는 저놈의 고지가 다 먹어놓은 당상이야.》

《그리구…》

황계광이 배낭을 앞으로 내밀자 지원군병사들의 호기심어린 눈길들이 쏠렸다.

《그건 뭐요?》

황계광의 눈이 따뜻해졌다.

《중대장동지, 이건 김일성장군께서 우리 지원군전투원들에게 보내오신 막물오이와 가을병배라는겁니다. 어제 사단에 자동차로 실어왔는데 매 중대에 한 배낭씩 차례졌습니다.》

《뭐라구? 김일성장군께서?!…》

중대장이 뜻밖의 사실에 눈을 크게 뜨고 배낭을 내려다본다.

《양득지부사령원동지가 감격에 젖어 이야기했습니다.

김일성장군께서는 지원군병사들이 오성산을 지켜싸우는데 신선한 남새와 과일이 그리울거라고 하시면서 몸소 만경대고향집 할아버님네가 가꾸신 이걸…》

황계광은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했다.

6중대장은 화염에 끄슬린 군복앞섶을 바로잡고 대원들에게 막물오이와 병배를 골고루 나눠주었다.

《여보, 이게 말하자면 어주나 같애. 옛날말루 하면 태상황제께서 임자들에게 어사하시는게야.》

유식한 중대장의 말을 들으며 황계광도 생각에 잠겼다.

(김일성장군께서는 어쩌면 그렇게 우리 전사들의 마음을 다 아실가? 벌써 한주일째 적 폭격이 심해 대원들은 남새 한잎 입에 못대고 건빵과 맹물로 지내오고있었지. 오죽했으면 저 초등량전사가 이름모를 풀을 한줌 뜯어먹고 배탈이 다 났겠는가?!…)

중대장이 신선한 막물오이를 어루쓸며 감개무량해서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동무들, 해남도전투때 말이요. 난 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40군에서 상륙전투에 참가했는데 우리 군에 김장군께서 보내주신 인민군포병부대가 배속되였댔소.

그들은 참대를 베여 돛배 12척을 만들어 비행기들을 격추하고 1개사단의 상륙을 엄호하였고 적의 방어시설들을 요정냈거든. 그 배들에는 말이요. 산포와 <38식> 야포 2문씩에다 고사기관총 2정을 설치했댔소. 한번은 해상에서 미군함선 4척과 맞다들었소. 적함들은 원시인들이 쓰는 돛배같은걸로 얕보면서 달려들었지. 조선포병들은 재빨리 전개하여 집중사격을 퍼부어 적함 1척을 수장해버렸소.

아마 이건 세계해전사에 없는 기적일거요. 해남도전투가 끝난 후 조선인민군 포병 조찬수에게 특등공신칭호를 수여했고 귀국할 땐 모주석이 친히 그들모두에게 친필이 새겨진 수첩을 기념으로 주고 지휘성원들에겐 권총을 선물로 보내주었소.

이게 바로 신출귀몰하는 빨찌산들, 김일성장군님의 군대란 말이요.》

황계광은 격정어린 눈길로 중대장을 올려다보았다.

(김일성장군님, 그분은 태양과 같으신분이야. 그때도 오늘도 우리는 김장군께서 키우신 인민군대의 위력한 포병의 지원을 받고있구나.…)

이윽고 인민군포병부대의 강력한 포병화력지원타격이 끝나자 지원군구분대들은 일제히 교통호들에서 달려나와 적의 3호진지를 일격에 점령하였다.

10월 19일밤, 597.9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4차공격이 개시되였다. 전투는 가렬하게 번져갔다. 구분대들의 진격로에 또다시 위험이 조성되였다. 적들이 든든한 삼각형모양의 화점군을 형성해놓고 공격하는 대오의 앞길을 차단한것이다.

작은 화점 셋에 둘러싸인 기본화점에서 세찬 불줄기가 쏟아져나왔다. 이제 전진을 멈춘다면 이미 차지한 4, 5, 6호 진지도 위험에 빠질수 있었다.

전투를 지휘하다 부상당한 6중대장을 대리하게 된 대대참모장이 릉선밑에 산개한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저 화점들을 수류탄으로 까부셔야겠소!》

참모장이 누구에게라없이 소리질렀다.

황계광은 보총을 틀어쥔채 뒤를 돌아보았다.

탐조등과 예광탄불빛에 근엄한 표정을 지은 참모장의 적동색얼굴이 확 드러났다.

황계광은 조심스럽게 참모장에게로 기여갔다.

《참모장동지, 저 화점을 제가 까겠습니다.》

참모장은 피발선 눈을 부릅떴다.

《아니, 련락병 황계광이 아닌가?… 응, 그래 자신있소?》

황계광은 빙그레 웃었다.

《저야 중국인민지원군 병사가 아닙니까? 엄호로 두동무만 붙여주십시오.》

초등량, 오산량대원들이 자진하여 따라나섰다.

세 지원군병사들은 수류탄을 안고 릉선을 에돌아 지칠줄 모르고 불을 토하는 화점들앞으로 은밀히 접근해갔다.

《초동무, 이렇게 하자구. 내가 먼저 앞선의 화점을 까부실테니 그 틈에 큰 화점쪽으로 접근하오. 그리고 오산량동무는 여기서 엄호하시오.》

《알겠소. 덤비지 말구 조심하우.》

초등량이 황계광의 손을 뜨겁게 잡았다. 황계광은 싱긋 웃어보이고 작은 화점쪽으로 포복전진해갔다.

황계광은 탄알이 비발치는 속을 뚫고 한치한치 수류탄 투척거리까지 접근했다.

(세상에 악귀같은 미제침략자들!… 련대정치위원동지는 그 맘고운 운전사 왕아바이가 미군첩자놈들에게 희생되였다고 했지… 아바인 전선사령부의 작전문건을 지켜냈다지… 아바이의 피의 복수를 받아낼테다!…)

화점이 눈앞에 안겨왔다. 황계광은 잽싸게 몸을 일으켜 적화점에 수류탄을 던졌다. 한찰나가 지나 적화점안에서 삼단같은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명중이다!》

뒤에서 오산량의 웨침소리가 들렸다. 천성이 가볍고 락천적인 친구다.

황계광은 뒤를 돌아보며 히죽이 웃었다.

작은 화점 두개를 까부셨을 때 수류탄이 떨어졌다.

큰 화점의 화력이 이제는 그들에게로 집중된다.

세 전우의 가슴은 빠질빠질 타들었다.

시간이 없었다. 이제 날이 밝으면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이미 차지한 진지들도 방어하기 어렵게 된다. 문제는 저 가증스러운 화점들을 까부셔야 구분대의 진격로가 열릴것이 아닌가.

황계광의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황동무, 내 중대에 내려가 수류탄을 가져오겠소.》

성급한 오산량이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피발선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황계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젠 시간이 늦었소. 초동무는 놈들을 감시하오. 오동무, 날 따르오!》

황계광은 순간도 지체없이 오산량과 함께 인민군의 포탄세례를 받고 황천객이 된 미제침략군시체들을 뒤져 수류탄을 몇개 수집하였다.

세번째 화점을 깔 때 수류탄을 던지던 오산량이 장렬하게 희생되고 초등량은 중상을 입었다.

황계광도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앞이 빤해지자 기본화점의 적탄이 그에게로 집중되였던것이다.

황계광은 입술을 악물고 기본화점을 향하여 불사신처럼 기여갔다.

(전우들의 원한을 씻으러… 나가자…)

10월 20일 날이 힘들게 밝으려 하고있었다.

이제는 릉선우의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적중기화점의 형체가 점점 또렷이 눈에 안겨온다.

그 검푸른 하늘에서 사위여가는 마지막별 몇개가 희미한 빛을 뿌리고있다.

황계광은 탐조등불빛이 지나가는 순간을 노려 몸을 일으키며 수류탄을 던졌다. 폭음이 일어났다. 황계광은 다시 적탄이 팔을 뚫고지나갔다는것을 느끼며 릉선의 바닥에 넘어져 귀를 기울였다. 이제 돌격에로 진입하는 전우들의 만세소리가 들릴것이다. 한순간 고요가 깃든것 같다. 얼마나 긴 시간인가.

황계광이 (성공이구나!) 하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전투원들의 함성대신 적화점에서 중기관총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황계광은 얼굴을 번쩍 들었다. 앞에서는 적화점이 불을 뿜고있었다. 뒤에는 돌격명령을 기다리는 전우들이 있었다. 사랑하는 중국대륙과 모주석과 어머니가 서계셨다.

한초한초… 시간이 흘러갔다.

황계광의 눈앞에는 어쩐 일인지 불쑥 고향에서 토지개혁을 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해방군병사출신인 작은삼촌의 지휘밑에 마을 자위대원들이 중강현의 대지주인 호가의 집을 들이칠 때였다. 열댓놈의 호지주집 가병들이 높은 담장에 의지하여 기병총을 탕탕 쏘아대며 발악했다.

황계광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호가의 손에 희생된 마을사람들과 그놈의 소작살이로 한생을 고생하다 한많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랐다.

황계광은 작은삼촌이 어쩔새없이 몸을 일으켜 담장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수류탄 2개를 련속 담장너머로 날려보냈다. 폭음이 울리는것과 동시에 그는 몸을 날려 담장에 올라섰다. 총소리가 콩볶듯 하며 가슴과 옆구리에 센 타격이 가해졌다.

그는 정신을 잃은채 담장에서 떨어졌다. … 전투가 끝난 후 황계광은 작은삼촌의 무릎에서 눈을 떴다.

《삼촌… 우리가 이겼어요?》

《응, 저놈들을 다 결박해놨다. 토지문서도 찾아내고…》

황계광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옆구리가 결렸다.

《계광아, 넌 어머니에게 코잡고 절해야겠다. 어머니가 한푼두푼 모아 지어준 명주솜조끼덕에 살았어. 총알이 거기 걸려 옆구리를 할퀴웠을뿐이야…》

작은삼촌이 비죽이 웃었다. 황계광의 눈가에 미소가 피여올랐다.…

(어머니, 이 아들은 중국사람답게… 리수복영웅처럼… 모주석과 김장군을 위하여 나아갑니다.…)

황계광은 말없이 몸을 일으켜 달음쳐나가 불뿜는 적의 화구를 피끓는 가슴으로 막았다.

이윽고 공격의 함성이 597.9고지와 온 상감령에 세차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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