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 회)
제 11 장
《푸른갑옷》을 따르라!
1
서진성이 적들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슬픈 소식을 림중량이 접한것은 임금이 림시 거처하는 어전에 들어설 때였다. 림중량은 금시 가슴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은 통분함과 죄책감으로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겨우 가누고 임금앞에 꿇어앉았다.
임금은 서진성이 함락되였다는 급보를 받고도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였다.
왜놈들의 발굽에 나라의 상징이라고 일컫는 궁성이 짓밟히우고 왕실의 안녕까지 위태로와지고있는 지금 서진성같은 자그마한 토성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관심할 겨를이 없는 임금이였다.
임금은 중화의병대의 의병장인 림중량에게 서진성이 적들의 손에 들어간데 대하여 추궁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림중량이 지금까지 평양성에 기여든 왜놈들과의 싸움에서 거둔 무공을 치하하여 더 높은 벼슬을 하사하는것과 함께 김응서의 관군과 힘을 합쳐 평양성을 하루빨리 수복하라는 어명을 내리였다.
어명을 받고나온 림중량은 지체없이 말에 올라 서진성으로 향했다.
림중량이 의병대에 도착한것은 다음날 밤이였다.
왜놈들에게 서진성을 빼앗긴 의병대는 서진벌 한끝에 있는 산골짜기의 농가들에 의지하여 진을 치고있었다.
농가의 웃방에서 상처를 처치받고있던 황바위는 림중량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나왔다.
황바위한테서 서진성싸움의 전말을 들은 림중량의 얼굴은 퍼렇게 질리다못해 숯덩이처럼 꺼멓게 변해 푸들푸들 떨었다. 너무도 억이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방안에 모여든 사람들도 마음을 억제하지 못해 이발만 부득부득 갈뿐이였다.
림중량은 한동안이 지나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듯 펀뜩 고개를 들며 무섭게 소리질렀다.
《선봉장은 어디 있는고? 성표말이야.》
그 물음에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표의 행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던것이다. 서진성이 함락된 후에 성표는 종적을 감추었다.
그가 의병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것만은 누구에게나 명백했다.
림중량은 가슴이 터질것만 같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와락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치렬처참한 혈전이 지나간 서진벌에 한잎두잎 눈꽃이 떨어지고있었다.…
(아, 서진성이 왜놈의 손에 들어간것은 내탓이다. 내가 이 무슨 실책을 범했는고… 성표, 그래도 같은 량반출신이라고 민심을 거역하면서까지 성표를 선봉장으로 내세운게 내가 아닌가.…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진짜로 나라를 위하는 장재감을 골라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외우던 내가 그런 실책을 범하다니… 천벌을 받아도 씨원치 않을 내가 오히려 임금의 치하까지 받았으니 아, 무엄토다. 저주스럽다!…)
눈발은 점차 굵어지면서 눈보라를 몰아왔다. 림중량은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채 실성한 사람처럼 벌판을 헤매였다.
그를 뒤쫓아나온 황바위와 제장들도 림중량의 신색이 하도 처절해보여 더 말릴 생각도 못하고 안타깝게 가슴만 조일뿐이였다.
자신에 대한 환멸감으로 고민속에 몸부림치던 림중량은 끝내 자리에 드러눕고말았다. 그는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서진성, 서진성을 되찾아야 한다!》라고 웨쳤다. 그의 모습은 황바위를 비롯한 제장들의 가슴을 울려주었다.
제장들의 한결같은 의사에 따라 림시 선봉장일을 대리하게 된 황바위는 부상당한 상처를 돌볼념도 하지 않고 서진성을 수복하기 위한 싸움에 나섰다.
서진벌의 백성들이 모두 떨쳐일어나 서진성을 되찾기 위한 결사전에 뛰여들었다.
《일어나라. 의병들이여, 백성들이여, 사랑하는 내 고향 정든 서진성을 어찌 원쑤 왜놈들의 발굽에 한시인들 내맡기겠는가. 원쑤들에게 무참히 죽은 서진성의 로인들과 부녀자, 아이들의 원한을 기어이 풀어주자. 평양성을 되찾고 내 나라, 내 강토에서 간악한 섬나라 오랑캐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때까지 우리의 기치 창검을 더 높이 추켜들자.》
황바위는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 격문까지 만들어 의병들과 백성들에게 내돌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싸움은 더 치렬해졌다. 서진성을 고수하려는 왜놈들의 발악도 필사적이였다.
싸움이 이틀째 되는 날 밤새 고열에 떠서 의식마저 잃었던 림중량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싸움은 어떻게 되였소?》
그의 병시중을 들던 호영이 어머니가 황급히 림중량을 도로 눕히며 간청하듯 말했다.
《의병장님, 너무 걱정마시고 몸조리를 하시우. 온 백성들이 의병장님의 병이 낫기만 기다리고있소이다.》
림중량은 가물가물 흐려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싸움에서 우리 사람들도 희생이 났겠지?… 숨김없이 말해주오.》
호영이 어머니는 그 말에 목이 메여 얼굴을 돌리고 옆에서 병구완을 하던 공로인이 비장한 어조로 대신 말했다.
《서문을 들이치던 창검대원들속에서 희생이 좀 난것 같소이다. 그리고 서진성에서 왜놈들에게 죽은 시아버지의 원쑤를 갚겠다고 식칼을 들고 왜놈들에게 달려들었던 젊은 색시랑 여러 녀인들이 잘못됐다고 하오이다.》
《아, 내가 의병장구실을 잘못해서 그 금쪽같은 사람들을… 그 한명한명이 왜놈 백과도 못바꿀 사람들인데…》
비통해서 가슴을 치는 림중량을 위로하며 공로인이 결연히 입을 열었다.
《그들은 이 나라의 백성답게 장하게 갔소이다. 천하에 악독한 왜놈들과의 싸움인데 어찌 희생이 없겠나이까.… 의병장님, 너무 마음쓰지 마시오이다.》
《황바위에게 말해서 싸움이 끝나면 그들의 시신을 서설봉선생 무덤곁에 잘 안장해주라고 이르오.》
림중량이 슬픔에 못이겨 거친 숨을 톺는데 방금 전장에서 달려온 의병 하나가 방에 들어섰다. 그가 인사를 차리기도 전에 림중량이 다그쳐물었다.
《싸움이 어떻게 돼가느냐?》
《의병장님, 성루에 우리 의병기가 올랐소이다. 왜놈들을 멸살시키고 성을 되찾았소이다!》
《성을 되찾았다구?!》
림중량은 저도모르게 벌떡 몸을 솟구쳤다. 공로인과 호영이 어머니가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
《의병장님, 고정하시오이다.》
《나를 좀 부축해주게. 우리 의병기를 보게 해주오.》
림중량은 서진성을 되찾았다는 쾌보를 꿈인지 생시인지 가려보기라도 하듯이 문설주에 자기 머리를 짓쪼았다.
의병은 신이 나서 지금의 싸움형편을 세세히 아뢰였다.
《의병장님, 우리가 크게 이기고있소이다. 황바위의 뒤를 따라 창검대와 표창대 등 의병들이 서문을 들이치고 서문을 지키고있던 왜놈을 멸살시켰소이다. 급해맞은 왜놈들은 수십마리의 군마와 조총, 화포까지 버리고 달아나고있소이다. 우리 의병들과 백성들의 사기는 지금 하늘을 찌를듯 하오이다.…》
《그래, 그래, 장해.…》
림중량은 흥분해서 몸까지 후들후들 떨면서 연방 감탄했다. 그는 저도모르게 벌떡 몸을 솟구치다가 다시 쿵하고 쓰러졌다.
공로인과 호영이 어머니가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림중량은 그냥 숨을 헐떡거리며 다시 일어서려고 모지름을 썼다.
《날 좀 서진벌로 데려다주게. 우리 의병기를 봐야겠네.…》
공로인과 싸움소식을 가져온 의병의 부축을 받으며 집을 나선 림중량은 서진성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둔덕우에 올라섰다.
서진성쪽 하늘가엔 아직도 검은 연기가 타래쳐오르고있었다.
림중량을 부축한 의병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의병장님, 보시오이다. 저기 동쪽 성루우에 우리 의병기가 높이 솟아 펄럭이고있지 않소이까.》
림중량은 눈앞이 뿌옇게 흐려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성루우에 높이 세운 의병기아래에 황바위를 선두로 승전의 창검을 추켜든 의병들과 백성들의 기개를 온몸으로 느끼고있을뿐이였다.
2
임진년 섣달그믐날 밤이였다. 한해를 보내는 사람들의 생각은 하루빨리 이 땅에 기여든 왜적의 무리를 쳐부셔야 한다는 한가지뿐이였다.
4월달에 왜란이 터진 후 온 나라가 숨가쁘게 허덕인 한해였다. 거의 무방비상태에 있던 나라에 들이닥친 란이여서 태평성대를 노래하던 조정의 대신들도 어찌할바를 몰라 전전긍긍하던 때에 백성들이 왜적을 물리칠 기치창검을 높이 추켜들고 방방곡곡에서 떨쳐일어나지 않았던들 나라의 운명은 이미 왜놈들의 칼도마에 올랐을것이였다.
이해는 또한 허장성세하며 조선에 침략의 마수를 뻗쳤던 왜놈들이 패전의 쓴맛을 보고 공포에 사로잡혀 호미난방이 된 해이기도 했다.
평양성에 기여든 왜적의 경우가 더 그러했다.
평양성을 타고앉아 기고만장하여 당장 북으로 진격해서 그곳에 피신해있는 조선의 임금까지 사로잡을것처럼 기세등등하던 고니시부대는 조선백성들의 결사의 항전에 부딪쳐 옴짝달싹 못하고 반년동안이나 평양성을 벗어나지 못한채 우리안에 갇히운 이리떼신세가 된것이다.
이제 조선관군과 의병들이 창검을 비껴들고 와와 함성을 지르며 평양성으로 쳐들어오리라는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평양성안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도는 한시바삐 성을 버리고 남쪽으로 줄행랑을 치는것이였다.
허나 남쪽으로 달아나는 길을 쉬이 열어낼수 있겠는지 그것이 문제로 되였다.
이런 정황속에서 서진성을 수복한 중화의병대도 평양성에 기여든 왜군의 남쪽 도망길을 끊어놓을 싸움준비를 빈틈없이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김응서방어사가 보낸 파발이 뽀얀 먼지발을 일으키며 서진성앞벌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김응서방어사의 급보요.》
림중량은 파발이 내보이는 급보를 받아 펼쳤다. 왜놈들이 평양성을 버리고 도망칠것이 거의 확정적이니 그에 맞게 계책을 잘 세우며 림중량은 평양성수복싸움에 참가해야겠다는 령이였다.
《여봐라, 제장들을 모두 불러라!》
림중량은 흥분한 목소리로 웨쳤다. 파발은 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평양방어영으로 달려갔고 이어 각 제장들이 군막으로 모여들었다.
진중한 안색을 짓고 제자리를 차지한 제장들을 둘러본 림중량이 입을 열었다.
《김응서방어사의 령이다. 이제 가까운 시일안에 평양성수복싸움이 있게 된다. 나는 곧 일부 인원을 데리고 평양성수복싸움장으로 떠나야 한다.》
《!…》
《지금 왜놈들은 평양성을 지탱하려고 발악을 하는 한편 남쪽으로 내뺄 길을 열려고 꾀하고있다. 이 땅에 들어온 저 악귀같은 왜놈들을 몽땅 잡아치우자면 우리가 경성으로 향해진 이 중화외통길을 단단히 지켜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책략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제부터 제장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으로 어랑산성의 적을 혼란시킬뿐아니라 평양성에서 도망쳐오는 왜놈의 대군을 함정에 몰아넣겠는가 하는 묘안들을 생각해야겠다.》
림중량의 말에 모두가 긴장한 안색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막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제나름대로의 궁리에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먼저 한대걸이 자리를 일었다.
《의병장님, 저의 소견을 말씀올리리다. 평양성안의 놈들이 경성으로 향한 외통직선길인 여기 중화길목으로 빠지자면 어차피 이 길목을 지키고있는 우리 중화의병대를 먼저 전멸시키려고 결사적으로 달려들것이오이다. 이제 어랑산성의 왜군이 대병력으로 반드시 서진성에 쳐들어올테이니 주변마을들에 잠복해놓은 의병들과 기찰대들을 빨리 성안으로 불러들여야 할줄 아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번처럼 백성들이 욕을 보게 될줄 아오이다.》
《음―》
림중량의 입가에서 그때의 쓰라린 아픔이 되살아올라서인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저의 소견을 말하겠소이다.》
신욱이가 자리를 일었다.
《우리 의병대가 서진성에 진을 치고있어가지고는 어랑산성에 기여든 왜놈들을 모조리 끌어내다가 족칠수는 없소이다!》
한대걸의 의향을 반대해나선 신욱의 말에 제장들은 수군거렸다.
《제장은 계속하라.》
림중량이 말했다.
《그래서 전 평양성안의 적들이 내려와 합세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어랑산성을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안되오이다.》
이번에는 호영이 자리를 일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으로 성안의 큰 적을 치려 함은 닭알로 바위치기오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의병대의 희생이 크게 될줄아오이다.》
《제 생각도 그렇소이다!》
한 제장도 그의 말에 호응해보였다. 이렇게 되다나니 자연히 제나름의 생각을 털어놓는 모임으로 되여갔다.
《가만!》
림중량의 눈에서 칼날같은 빛이 번뜩였다.
《우린 여기에 입씨름들을 하자고 모인것이 아니다. 생각을 깊이 하여 실지로 작전에 도움이 될수 있는 묘안을 내놓아야겠다.》
론쟁은 그쳤고 좌중은 엄숙해져 제장들은 신중한 안색으로 여러가지 계략들을 내놓았으나 신통한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