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 회)
제 10 장
서진성혈전
1
동지달 스무하루날 한낮경이였다.
사납게 울부짖는 눈보라속을 헤치며 평양성안의 3천명 왜군이 중화땅 어랑산성으로 나오고있었다.
예로부터 군사의 행동은 그 목적이 뚜렷하고 정의로워야 군풍이 엄정하고 군사들의 발길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 못할 때 군사를 거느린자 아무리 고함을 치고 채찍을 휘두른다해도 그것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며 종당엔 하나의 도적떼로 되고만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군사의 생명인 기강을 찾아볼수 없으며 그 발길들은 땅에 붙지 못하는것이다.
바로 3천명 왜군의 걸음이 그러했다. 왜군은 지금 행군목적이 뚜렷치 못했다. 평양성안의 주력이 도망칠 길목을 지키러 가는것인지, 서진성을 치러 가는것인지 알쑹달쑹했다. 어랑산성을 지키기 위한것이라면 그 좁은 성안에 6천명씩이나 몰아넣을 필요가 없을것이며 서진성을 친다는것은 도저히 승산이 없는 싸움인것이다. 이런것으로 하여 군졸들은 지금 제각기 여차직하면 뛰고보자는 심산이였다.
거의 반년동안이나 간을 못먹은 놈들이여서 그런지 얼굴이 다 부어있었다. 이런자들이 유명짜한 《평양동장군》날씨속에 들어섰으니 어찌 불안스럽지 않으랴. 수수께끼같은 서진성이 가까와질수록 대오안에는 엄정한 군률대신 불만과 공포감이 가득차올랐다. 군률과 군령의 날을 세우지 못하는 왜군령솔자 소 요시도모의 권위는 3천명 군사들과 함께 하늬바람속에서 얼며 흔들거리고있었다.
《이거 우리가 안팎 곱사등이가 된셈 아닌가.》
공포에 질린 눈을 눈보라속에서 헤번득거리던 들창코가 옆의 놈에게 지껄이자 《잔소리말구 걷기나 해. 뛸 곳이나 잘 봐두면서… 서진성의병의 그 표창이라는게 자네 들창코나 내 골통을 가려본다던가?》 하고 앞에 있는 공포보다 당장 날아들 불덩이가 더 급한 모양으로 옆의 놈이 이렇게 콱 핀잔을 주자 이번에는 그옆의 놈들이 지껄여댔다.
《이거 우리가 화약지고 불끄러 가는셈 아냐?》
대렬이 다리를 건너섰을 때였다.
갑자기 대렬앞 왼쪽 산모퉁이에서 두사람이 무엇인가를 말에 잔뜩 싣고 불쑥 나타나더니 큰길을 건너 서진벌 양무대 둔덕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서진성안의 의병들에게 무엇인가를 싣고가는 모양인데 왜군대렬을 띄여보고 놀라 뛰는듯 했다.
그걸 본 왜군선두의 놈들이 조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두사람은 말잔등에 실었던 보따리들이 떨어지는줄도 모르고 냅다 말을 몰아 순식간에 눈보라속 둔덕을 넘어 멀리 사라졌다.
조총을 쏘던 놈들이 불질을 그만두고 선참으로 말에서 떨어진 그 보따리를 향하여 뛰여갔다. 다른 놈들도 우― 하고 몰려갔다.
방금전까지도 서진성의병들이 나타나지나 않을가 하여 조심조심 걷던 놈들같지 않게 앞을 다투어 달려가는데 벌써 앞서간 놈들이 보따리들을 두팔로 그러안았다. 그 보따리들이 여러 놈들의 힘내기로 풀어헤쳐졌다. 보따리속에서는 아직 꽤 입을만한 넝마들이 쏟아져나왔다.
환성을 지른 놈들은 서로 그것을 가지려고 힘겨루기를 시작했는데 칼을 빼드는 놈이 있는가 하면 옷을 붙안고 눈우를 딩구는 놈도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소 요시도모는 조총으로 위협사격을 해서 겨우 그놈들을 헤쳐지게 했다.
실로 그 넝마는 이 엄동설한속에서 놈들의 목숨과도 바꿀만 한 것이였다.
대렬이 겨우 수습되여 다시 앞으로 나갔다. 그 뒤꼬리가 산모퉁이를 돌 때 이번에는 서진벌이 아닌 동쪽에서 댓명가량의 의병들이 번개처럼 내달아 놈들이 미처 손쓸사이도 없이 표창소나기를 퍼붓고는 길건너 골짜기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푸른 바지저고리를 입은 젊은이가 앞장에 섰다.
날카로운 표창에 목줄대가 꿰찔린 놈, 골통이 깨지고 눈알이 빠진 놈, 앞정갱이에 표창이 박히여 비명을 지르며 외발학춤을 추다가 재주넘이를 하는 놈들이 길바닥에 너저분하게 나딩굴었다.
그들의 표창질에는 한번의 헛방도 없었다.
왜군들속에서 《〈푸른갑옷〉이다!》하는 놀란 목소리들이 터졌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아니다. 〈푸른갑옷〉이 말을 안탔다.》, 《진짜 〈푸른갑옷〉은 초담이에 있다.》하는 소리들이 뒤섞였다.
《진짜 〈푸른갑옷〉이건 아니건 우리는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지 않았는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놈들이 어리벙벙해있는데 이번에는 대렬허리에서 아우성이 터졌다.
백마를 탄 《푸른갑옷》이 7~8명의 의병들과 함께 아까 넝마싸움이 벌어졌던 바로 그 둔덕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표창질로 놈들의 말발목들만 쳐서 단번에 수십마리의 말들을 쓸어눕히고 동쪽 산골짝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진짜 〈푸른갑옷〉이다!》
공포에 질린 목소리들이 대렬 앞뒤로 울렸다.
《북대봉호랑이가 초담이에서 서진성으로 뛰여왔다.》
공포는 아우성으로 변해갔다.
소 요시도모는 투구끝을 조여맸다. 합장을 하고 따라오던 겐소는 와닥닥 놀라 말을 몰고 앞쪽으로 달렸다. 그는 (내가 공연히 중뿔나게 따라섰구나.…) 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데 대렬앞장에 섰던 소 요시도모가 겐소쪽에 눈을 찔끔 할기고나서 고함쳤다.
《길 량쪽에 대고 총을 갈기며 나가라!》
왜군 3천명은 머리가 깨지고 꽁지가 잘리우고 배안이 삐여진 뱀꼴이 되여 탕탕 눈먼총질을 하며 하늬바람속을 뚫고나갔다.…
이날 3천명 왜군대렬의 뒤꼬리를 친것은 호영의 표창대였고 허리통을 친것은 황바위였다. 그리고 넝마로 놈들끼리 물어뜯게 한것은 부녀대가 그놈들에게 보낸것이였다.
의병들은 조총도 쇠막대기로 만들어놓는 의병전술로 3천명의 왜군대렬을 쉰떡 주무르듯 하였다. 어랑산성에 기여든 놈들이 궁둥이를 붙이기 전에 그놈들을 서진벌로 끌어내자는 림중량의 계략은 드디여 여물어가고있었다.
2
어랑산성에 이른 3천명 왜군이 군막도 다 꾸리기 전 초저녁에 갑자기 서진벌 서쪽마을들에서 일시에 홰불이 련련히 타올랐다.
《저게 뭐야?》
《이 어랑산성이 조선의병들에게 포위되였구나!》
《그런데 왜 서진성은 잠잠할가?》
이렇게 지껄이며 동서남북을 불안한 눈으로 둘러보던 사무라이들 몇이 게구마가 든 군막을 찾아들어갔다. 이번에 평양성 우두머리들에게 들이대는것으로 보아 게구마가 의외에 맥을 쓰는자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였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하면 좋소이까.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할게 아닙니까?》
사무라이들의 물음에 게구마는 자못 어른스럽게 한마디 했다.
《허허… 저건 다 의병들의 허세야. 병서에 이르기를 〈허세를 부리는자 약자니라.〉고 했네. 걱정할건 없어. 이젠 우리가 6천명인데 의병놈들이 함부로 덤벼들지는 못할거네.》
이때 성 뒤골짜기에서도 불길이 확 솟구쳐오르더니 《의병이다!》하는 군졸들의 아우성이 또 터져올랐다.
사무라이들은 당황하여 게구마에게 눈길을 던졌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오이까?》
《병서에 이르기를 〈급한 대목은 피하고 볼지어다.〉라고 했소.》
그리고는 남먼저 군막 으슥한 곳으로 달아나버렸다.
예상외로 소요는 인차 사라져버렸다. 주변을 훑어본 병졸들이 몇구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의병들 표창에 군사 다섯명이 죽었다!》
먼곳의 불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는 놈들의 군막들로 의병들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표창으로 다섯놈을 까눕히고는 바람처럼 사라진것이였다. 그들은 석가산의병대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왜병들은 언제 어데서 날아올지 모르는 의병들의 불벼락을 두고 마음들이 조마조마했다. 수천자루의 조총을 가지고도 어쩌지 못했다. 말그대로 총이 쇠부지깽이로 되고만것이다.…
몸이 단건 다께시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3천군처리가 거의 속수무책인데 구시라가 그를 구원해주었다.
《래일 아침부터 우선 그들을 서진성으로 내몹시다. 끼고앉았다간 의병놈들의 불똥만 더 맞게 됩니다.》
다께시는 곧 게구마와 구시라 그리고 매부리코를 비롯한 모모한 졸개들과 머리를 맞대고앉았다. 매부리코는 다시한번 게구마의 등때기를 긁어주었다.
《중화의병대를 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데 게구마장수께서는 벌써 그동안 두번씩이나 치셨으니 참, 장력이 비범하시오이다.》
구시라가 듣기에 낯간지러운듯 슬쩍 고개를 돌리는데 게구마는 천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밤중도 아닌 대낮에 3천명이나 되는 군사를 거느리고 다니면서도 그 서진성의병들의 불벼락을 맞으니 한심하지 않소. 과시 우리에겐 장수감이 없단 말이요.》
그것은 소 요시도모를 두고 한 말이였다.
《거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삼가하구려.》
게구마는 다께시를 빤히 쳐다보더니 《오늘 이야기하자는건 저 서진성을 치자는거겠지요? 흥, 어림도 없는 소리 … 거 왜들 자는 범 코구멍 못쑤셔서 안달이 나서들 그러우?》하고 빈정거렸다.
《게구마상! 이건 고니시선봉장의 특명인데 우리 전술방도를 상론해봅시다.》
다께시는 게구마에게 빌붙듯 했다.
거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듯이 게구마는 《그럼 특명이니 어디 한번들 잘해보시오. 나는 경성길을 맡았으니까 이 모임에는 참가할 필요가 없는거구. 그 경성길이 중요한데 군사나 한 2천명 내게 주시우. 그리구…》하더니 일어서며 한마디 더했다.
《거 서뿔리 서진성을 다치지 않는게 좋겠수다. 괜히 한냥짜리 굿하다가 백냥짜리 징 깨치지 말구.…》
방안의 분위기는 스산해졌다.
바로 여기로 졸개 두놈이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달려오더니 반벙어리처럼 지껄여댔다.
《서… 서진성안의 의병들이 큰길복판에 불… 불을 질러놓고 이런 글… 글을 길옆 나무에 걸어놓았소이다.》
《뭐라구?》
다께시는 눈이 커졌다.
《쪼꼬만 토성 하나를 치기 위해서 6천명씩이나 군사들이 쓸어들었으니 부끄럽지 않은가. 그러나 서진성이 작다고만 생각지 말라. 열, 스무개의 서진성이 어랑산성을 둘러싸고있다는것을 잊지 말라.
그래도 우리를 치겠다면 오라. 우리는 얼어서 벌벌 떠는 너희들에게 겨울수의를 입혀서 염라대왕앞으로 보내줄것이다.
임진년 동지달 스무하루날 밤
중화의병대》
극도의 모욕을 느낀 다께시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다께시상, 그놈들을 당장 치러 나갑시다.》
구시라가 《먼산바라보기눈》을 치뜨고 눈물을 가랑거리며 왼손으로 칼을 뽑아들었다.
다음날 첫새벽, 서진성으로 떠나는 왜군 4천명이 모였다.
게구마는 어제밤 석가산쪽에서 들려오는 의병대의 습격소식에 잠을 설치였던지 쿨쿨 코를 골다가 갑자기 화닥닥 일어나앉더니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고있었다.
구시라가 4천명 군졸들앞에 나서더니 큰소리로 웨쳤다.
《전번날 서진성성벽에 올라가본자는 앞으로 나오라.》
그러자 한놈이 어제 공로가 은을 낸다고 생각했던지 넙적한 얼굴을 희번덕거리며 대렬앞으로 나왔다.
《네가 봤다는 서진성안의 그 지옥귀신얘기를 다시한번 해봐라.》
두눈에 《자비로운 눈물》이 가랑거리는 구시라를 한번 바라보고 졸병이 사기가 나 입을 열었다.
《그 신병님들속에는 머리가 흰 신병님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던지는 눈부신 오라바줄은 번개같고 끌어잡아내리는 힘은 항우같아서…》
어느새에 빼여들었던지 구시라의 검이 번쩍하더니 피대를 돋구며 지껄여대던 졸병의 모가지가 제 발밑으로 굴러떨어졌다. 군졸들은 모두 오싹 소름이 끼쳐 뒤걸음질쳤다.
《또 본자가 없는가?》
구시라는 피묻은 칼을 왼손에 든채 졸병들을 훑어보았다. 오싹해진 졸병들인데 더 나설 놈이 있을리 없었다.
구시라가 가랑거리는 눈물속에 사람목숨을 파리목숨처럼 다루는 악마라는것을 잘 알고있는 졸병들이였다.
구시라는 칼을 칼집에 탁 꽂았다.
이때 갑자기 게구마가 《가만!》하고 나서서 출병을 멈춰세웠다. 맨뒤에서 가던 다께시이하 모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무리 군사를 다룰줄 모르는 풋내기라 해도 출병전에 졸병을 죽이고나서 이렇게 얼음판으로 황소몰듯 군사를 모는 법이 어디 있는가. 여기 일을 고니시선봉장에게 아뢰고 그의 지시에 따라 군사를 움직이는것이 군률인데 이렇게 마구잡이로 군사들을 다 죽이고 나면 누가 이 책임을 지겠는가. 다께시인가? 고래잡이군 구시란가?》
뜻밖이였다. 사리에 맞는 말이였다. 다께시와 구시라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할 말이 없었다.
군졸들속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오늘 저 게구마가 한몫 하는군.…》
《머리가 제대로 도는 때도 가끔 있군.…》
《하여간 우리가 오늘 개죽음을 면하는가보다.》
이렇게 되여 4천군의 출동은 잠시 중지되였다. 그런데 졸병들앞에서 개망신당한 구시라가 이번에는 게구마에게 걸고들었다.
《그럼, 장군이 꽉 막힌 평양성길을 뚫고들어가서 고니시선봉장의 지시를 받아오시구려.》
《우리는 구경이나 하다가 떡이나 먹읍시다.》
《닥쳐, 그건 내가 어련히 하지 않으리.…》
인간이란 사세가 절박해지면 삐뚤어졌던 머리도 바로 도는 경우가 있는 법인지 지금 게구마가 바로 그런 정신상태로 돌아선것이다. 더군다나 대군을 출동시키는 문제를 놓고 어물어물하다가는 우끼다에게 가지고갈 말건덕지가 없어지고마는것이다.
《나는 이번 출병을 절차를 밟아서 하자는건데… 하고 안하는것은 맘대로들 하시오. 나는 내 할 도리는 다 했소. 나는 군사에 생판인자들의 손에 4천 대병을 맡기는것을 반대하오.》
그 말에 다께시의 밸이 불끈 뒤집혔다. 그는 게구마의 속심을 꿰뚫어보았던것이다.
(저놈이 제살구멍을 마련하느라구. 흥!)
다께시는 군사들을 향해 꽥소리를 질렀다.
《이 어랑산성의 주인은 나다. 앞으로 갓!》
이렇게 되여 이 새벽 다께시는 죽기내기로, 구시라는 공을 세울 욕심으로 대군을 끌고 서진성 앞벌로 나갔다.
다께시는 곧 중군 하나를 더 만든 다음 졸병들을 세패로 몰고나갔다. 그러다나니 자연히 중군은 게구마가 맡게 되고 다께시자신은 우군과 함께 3군을 총지휘하게 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