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9 장

보검

1

 

평양방어영을 떠난 황바위는 서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담이장마당에 들리기로 했다. 눈앞에 박두한 싸움을 앞두고 초담이장마당의 형편을 다시 알아보고 기찰대를 잘 준비시키자는것이였다.

성표선봉장이 초담이장마당에 떨어지려는 그의 행동을 마뜩지 않게 여겼으나 황바위는 사전에 림중량의병장과 내정이 된 일이라고 밀막아버렸다.

황바위가 초담이에 나타나자 낯익은 사람들이 저저마다 달려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어디서 벌써 귀동냥했는지 《이사람, 이번에 방어영에 가서 김응서방어사한테서 큰 벼슬을 받았다던데 그게 사실인가?》라고 물었다. 그때마다 황바위는 그저 씩 웃기만 했다.

그가 야장간에 다달았을 때 전보다 갑절로 커진 야장간에서 막동이와 곽첨지 그리고 젊은 의병들이 불에 단 쇠꼬치를 쇠마치로 두드리고 풀무를 불어 표창을 만들고있었다. 곽첨지의 그 은덩이가 야장간을 이렇게 흥성거리게 만들었으리라.

황바위를 본 곽첨지는 몹시 반가와하며 야장쟁이옷으로 갈아입은 자기를 가리켰다.

《어떻소이까? 야장쟁이 비슷하웨까?》

그는 전보다 밝아진 목소리로 황바위에게 물었다.

황바위의 가슴은 뿌듯해졌다.…

야장간으로는 아낙네들이 헌 쇠붙이들을 날라오고 의병들은 만든 표창을 가져가군 했다. 야장간은 붐비였다.

막동이는 황바위에게 별동대일도 잘되여나간다며 한번 봐달라고 했다.

황바위는 막동이와 함께 훈련장을 돌아보았다.

별동대를 책임진 노마가 절도있게 황바위에게 군례를 드리고 훈련성과를 보여주면서 솜씨들이 아직 높지 못하다고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대원들의 사기는 충천했고 병장기 다루는 솜씨들이 눈에 뜨이게 높아졌다. 황바위는 기뻤다.

이날 해질무렵 갑석이네 집앞 버드나무밑에서 황바위는 륙손이와 나란히 앉아서 그립던 회포를 나누고있었다.

기구한 운명들로 하여 언제 한번 이렇게 앉아보지조차 못한 사촌형제간이였다.

황바위가 륙손의 푸른 바지저고리를 보며 물었다.

《누가 해주던?》

《모란이가…》

《아니, 모란이야 지금도 김명립이네 집에 있겠는데…》

《도둑바느질 했지요. 그래도 바늘박은 솜씨가 옹골지다구들 합디다.》

《용쿠나!…》

황바위는 진심으로 모란이를 칭찬했다.

《네가 방어사님을 잘 도와드렸더구나. 잘했다. 나도 이번에 림중량의병장님의 깊은 뜻으로 방어영조련도 보고 우리 나라 의병들의 애국충정이야기도 들으면서 많은것을 새로 알았다.》

《형님!》

륙손이는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그러는 륙손이에게 황바위는 족자를 내보였다.

《방어사님이 나에게 써주었다.》

《뭐라구 썼수?》

《맹호출림.》

《거 형님에게는 딱 들어맞는 말이요.》

《왜, 너에게는?》

《난 아직 멀었수. 형님이 아버지원쑤갚은것을 보구 난…》

륙손이는 새삼스레 사촌형 황바위가 고맙고 그 용맹과 예지가 부러웠다.

《우리 준비를 잘해가지구 왜놈을 몰구서 남해끝까지 나가자꾸나. 막동이도 데리구…》

이때 갑석이가 나오더니 저녁밥이 다 되였다고 했다.

해는 어느새 룡악산너머로 꼴깍 넘어가고있었다.

그동안 갑석이네 집에 방을 한칸 더 늘여서 사람들은 그 방에 모이군 했다.

그들이 위돌이, 노마, 막동이, 곽첨지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서는데 뜻밖에도 돌중이 나타나 개다리를 토방우에 털썩 내려놓더니 《돌중 법근이 개다리 메고 왔소이다.》하고 껄껄대다가 황바위를 발견하고 대바람에 《자네 북대봉호랑이지?》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과시 호랑이로다. 자네 전주복형님을 골탕먹였다는데 오늘은 나하구 씨름 한번 안해보겠나?》하고 두팔을 쩍 벌리다가 그만두고 《어디 한번 안아나 보세.》하더니 황바위를 안고 좁은 방에서 빙빙 돌려고 해서 륙손이, 막동이가 펄쩍 토방으로 뛰쳐나갔다.

법근이는 오늘 황바위를 처음 만나보지만 막역지우처럼 안고돌아갔다.

《이거 참 반갑소. 란리가 나구서야 자네같은 영웅호걸을 만나게 되누만.》

법근이는 황바위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자 황바위는 빙그레 웃고나서 공손히 인사를 했다.

《젊은 사람에게 이러지 마십시오. 저두 법근대사님이야기를 많이 들었소이다.》

《법근스님 성미는 여전하구만.―》

갑석이 할머니가 안방에서 나오며 끼여들었다.

《어머님, 자주 찾아와 뵙지 못했습니다. 노여우셨지요?》

법근은 할머니앞으로 다가앉으며 깊이 머리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는 이 집 아들과 막역한 사이였다.

《오늘은 북대봉장수도 우리 집에 오구 자네들도 왔으니 내 아들도 저승에서 기뻐할걸세.》

이러며 할머니는 아들생각이 나는지 저고리고름을 눈가에 가져갔다. 그것을 본 법근이 할머니마음을 밝게 해주려고 큰소리로 웨쳤다.

《여보시 막동이, 거 단고기를 어머님께 어서 대접하세나. 막걸리도 한동이 가져와달라고 했네.》

이때 《어험!》하는 기침소리가 나더니 표서방이 통영갓에 도포차림을 한 정진사와 그의 아들을 뒤에 달고 나타났다. 좀 있어 한손에 구운 통닭을 들고 술통들을 멘 각 마을의 기찰대원들이 싱글거리며 들어서는데 이웃마을 아낙네들과 장마당 지짐장사, 온반장사, 떡장사아주머니들까지 껴묻혀있었다.

《아니, 이거 법근대사 아니요. 오래간만이외다.》

표서방이 반갑게 인사를 하자 《대사는 무슨 놈의 대사외까. 개다리 메고다니는 대사도 세상에 있수?》하고 법근이는 벙글벙글 웃었다.

《그 성민 여전하구려. 그 성미 아니면 법근대사가 아니지. 하하하…》

표서방이 크게 웃는 바람에 집안이 들썩하게 웃음판이 터졌다.

《헌데 법근대사가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셨수?》

《듣자니 이 장마당에 기찰대가 생겼다기에… 내 검술은 두었다 무엇에 쓰갔소. 그래서 고충경의병장께 말을 했더니 쾌히 승낙을 합데다. 다문 한 열흘간이래두…》

《거참 고맙쉐다.》

표서방과 막동이가 기뻐했다.

《기운이 뻗쳐서 내 개다리 한짝 사서 둘러메고 왔시다.》

법근의 걸걸한 성미에 호감이 간듯 정진사가 《8월 초하루날 보통문싸움때 법근대사의 출중한 검술이야기와 왜놈을 족친 이야기도 내 다 들었소.》하고 정중히 치하를 하자 《진사님, 오늘은 왜 이러십니까. 란리라는게 한편으로는 좋은 점도 있구만요. 량반님께서 이런데까지 이렇게 도포차림으로 찾아오시니…》하고 법근이는 허허 웃었다.

정진사는 도포와 통영갓을 활활 벗어 홰대에 걸어놓고 탕건바람으로 사람들틈에 끼여앉았다.

방이 좁아서 이웃집 멍석들을 안아다가 마당에 깔고 기찰대원들이랑 젊은 축들은 거기에 앉았다. 날씨도 푸근하였다.

아낙네들은 겨릅대로 불을 켜들고 부엌으로 분주히 나들고 젊은이들은 꼬꼬댁소리를 내며 닭도 잡았다. 법근이의 우스개소리에 참지못해 허리를 그러안고 터트리는 녀인들의 웃음소리가 집안팎을 진동했다.

이윽고 양념과 국물이 잘 갖춰진 따끈한 단고기국을 든 법근이가 갑석이 할머니앞으로 다가앉았다.

《어머니, 이 돌중이 드리는 단고기국 좀 드시우.… 드시고 왜놈 쫓겨갈 때 덩실덩실 춤을 추시오.》

《고… 고맙네. 흐흑―》

법근의 진정에 할머니는 눈물을 콱 쏟았다. 흰머리가 가로세로 떨렸다.

그러자 법근이가 벌떡 일어서며 《량반사대부집 로마님들은 산해진미도 진수성찬도 성차지 않아 투정질을 하는데 우리 어머니들은 돌중이 드리는 단고기국 한그릇을 놓고도 이렇게 가슴을 치니… 아…》하고 탄식을 했다.

《흐으윽…》

문밖에서도 아낙네들의 흐느낌이 터졌다.

기름등잔불도 잠간 멈춰선듯 방안은 조용했다.

정진사가 가로세로 몸을 흔들며 흰수염을 쓸고쓸었다.

단고기국에 수저를 가져다대고도 그냥 흐느껴우는 갑석이 할머니를 보다못해 속이 타는지 법근은 제 손으로 막걸리 한사발을 퍼서 꿀꺽꿀꺽 마시고나서 또 한사발을 푸더니 황바위에게 쑥 내밀었다.

《난 아직 술을…》

법근이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구두 북대봉호랑이야?》

그러자 얼결에 황바위가 술을 들이마셨다.

《내게두 한사발 주게나.》

정진사가 손을 내밀었다.

희한한 일이여서 사람들은 놀랐다. 평소에 량반냄새를 그렇게도 요란히 피우던 정진사였다. 술을 마셔도 자개박이소라각반, 은수저, 은잔에 백일주요, 백화주요 하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멍석자리에 무탈하게 앉아 상사발에 부어진 텁텁한 막걸리를 쭉 들이킬줄이야.

《왜, 이 정진사 막걸리 마시는게 신기해서 그렇게들 바라보나?》

그는 껄껄 웃고나서 이번에는 자기 손으로 술 한사발을 떠서 곽첨지에게 주며 정중히 말했다.

《내 국란을 당한 후 새로 느낀바 많고 오늘 우리 백성들이 왜놈들을 쳐물리치는것을 보고도 큰 충격을 받았지만 특히 흑갑사댕기령감에 대한 자네 말을 들으며 내 새로 깨달은게 많네. 뜻이 깊은 이야기야.… 그렇구말구.… 하늘나는 날새도 소리쳐 떨굴 권세와 호의호식으로 제 복을 자랑하던자들은 란리가 터지자 임금도 백성도 줴버리고 도망을 쳤는데 어찌하여 똥오줌을 치며 한생을 산 그 흑갑사댕기령감은 도끼를 메고 왜놈들을 맞받아 앞장에 섰던가. 그 사람의 인생값과 나의 인생값을 비긴다면 황금덩이와 막돌이 아니겠나. 나두 아근의 량반들을 불러일으켜 의병을 돕도록 하겠네.》

이어 정진사가 홰대에 걸어놓은 자기의 도포와 통영갓을 단정히 차리더니 마당을 향하여 《게 대봉이 있느냐?》하고 소리쳤다.

《예, 있소이다.》

마당 뒤쪽에서 한 젊은이가 일어섰다.

《저게 진사님의 아들이 아니유.》

《옳수다. 정진사댁 새서방이구만요.》

정진사는 아들을 불렀다.

《방으로 들어오너라.》

아들이 방으로 들어와 아버지앞에 섰다. 표표하고 담기가 차보이는 스무살안팎의 젊은이였다.

정진사는 황바위를 향하여 근엄하게 말했다.

《내 이날이때까지 선비로서 량반행세만 하고 국난앞에 바친것이 없소.

황제장! 이애를 의병대에 받아주소. 의병의 넋으로 키워서 남해끝까지 데리고가주오.》

《진사님!》

《네 중화의병대 황제장에게 인사드려라.》

대봉은 두손을 모아잡고 머리를 숙여 황바위에게 군례를 드렸다. 성혼한 량반집 새서방이 천민총각에게 드리는 절도있는 군례였다.

《진사님! 장하시오이다.》

마당의 기찰대원들이 힘이 부쩍 솟구친 목소리로 합창을 했다 .

 

2

 

대봉이의 중화의병대 입대청원으로 하여 좌석은 더욱 활기를 띠였다. 어지간히 취기가 올라 혈기방장해진 법근이 더욱 담이 커져 소리쳤다.

《국난앞에서 의기로운 생원님들을 이렇게 모시게 된것은 초담이의 복이올시다.》

법근은 정진사에게 술을 부었다.

《진사님께서 저희들에게 이렇게 심금을 털어놓으시니 오늘밤에 저도 제 가슴속말을 다 말씀드려 량반님들에게 천한 백성들이 바라는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드리고싶소이다.》

이렇게 서두를 뗀 법근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원래 저는 백정의 자식이올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손에서 자랐는데 그 잔등 지게발에 업혀서 8도강산을 다 돌아다녔지요. 그러나 돌아다녀야 백정인걸요. 모질고 각박한 세상에서도 제일로 야박하고 치사스럽고 인간의 피가 없는 사람은 량반님네들입데다.》

평소에 덜덜거리는 법근이답지 않게 그의 말은 심중하고 절절해서 사람들의 가슴을 틀어잡았다.

《내가 일곱살나던 해 아버지는 어느 대감댁잔치에 쓸 소를 잡아주었는데 각까지 다 떠서 바치고나니까 그 집에서는 중문, 대문밖으로 우리 부자를 밀어냅데다. 고기 한점은 고사하고 온종일 굶은 사람에게 찬밥 한덩이없이 말이외다. 어린 생각에도 못된 놈의 세상, 못된 놈의 량반이라는 생각이 치솟아오릅데다. 그후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류랑걸식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봄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날이였지요. 길가의 풀밭에서 숨을 거두며 아버지는 자기 패랭이꼭지에 꽂아가지고다니던 반나마 닳아진 숟가락을 내 손에 쥐여주고 눈을 감았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난 그는 장삼소매속에서 반쪽짜리 몽당숟가락을 꺼내들었다.

《이게 바로 내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오직 한가지 나에게 남기고간 그날의 그 숟가락이올시다. 제길, 이놈의 눈물이…》

법근은 장삼소매로 저도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을 쑥 문질렀다. 법근이의 손에 든 숟가락을 꼭 잡아쥐는 황바위의 눈에는 진물같은것이 괴여올랐다.

《그런데 살아가노라니 숟가락 하나를 제대로 써먹는다는것이 인간세상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것을 뼈에 사무치게 알게 되였소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내 무슨짓인들 안해봤겠소이까. 여린 갈비대가 휘여들고 눈물도 수태 흘렸지요.… 그러나 그 반쪽짜리 숟가락으로 어느 하루인들 배불리 먹어보았겠소이까. 그대신 남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고역을 당할수록 배는 더 고파지고 뼈는 더 휘여들고…

진사님! 참 백성노릇하기란 힘들고 억울하고 통분한 일이오이다. 이런것을 알고계시는지요?》

《음―》

정진사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가로세로 흔들었다.

《그렇게 열두살이 잡혔을 때 내가 고역에 시달리는것을 보자 시주동냥을 나온 스님 한분이 나를 동정해서 데리고 절간으로 갔었는데 나는 그때부터 절간에서 밥짓고 나무하는 〈불목하니〉노릇을 하며 그 스님에게서 칼쓰는 법을 배웠지요. 처음에는 흥미도 있고 해서 열심히 검법을 배웠는데 차츰 나이를 먹어가며 의문이 생기더군요. (이렇게 칼쓰는 법을 배워서 무얼 하노. 세상의 미운 놈들을 다 친다면 몰라도…)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는 스님에게 물었지요.〈스님, 중이 검법을 배우는 목적이 무엇이오이까?〉하구요. 그랬더니 스님은 〈칼은 피를 보기 위해서 익히는것이 아니라 제 몸과 제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사파세계(인간세상)의 천만검운(기구한 운명)을 헤쳐나가는 칼의 힘이니라!〉하고 대주는것이 아니겠소이까. 그래서 나는 〈인정이 없고 물욕이 많고 백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놈들을 요정내는 칼이라면 몰라도 제 몸이나 지키는 칼일바에야 그건 배워서 무엇하겠소이까?〉라고 묻자 스님은 깜짝 놀라며 〈대자대비하신 불보살이시여, 불가검법의 리치를 깨닫지 못하는 이 불제자를 돌봐주옵소서! 나무아미타불…〉하며 내앞에서 합장을 하고 한참이나 앉아있더니 그다음부터는 일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철딱서니없는 중으로 알았던 모양이지요.

그런데 그후 관가의 령으로 중들모두가 가물막이, 토목역사들에 불려나갔는데 검정산수벙거지 쓴 사령이며 군교의 회초리에 중들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등짐을 지는데도 정자나무그늘아래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원님은 아예 중따위는 눈안에도 없는듯 더 혹독스레 산수벙거지들을 시켜 중들을 몰아댔습니다.

그 중들속에는 나이많은 우리 스님도 계셨습니다.

그깟놈들 내가 배운 검술만 가지고도 단칼에 몽땅 쳐죽일수 있는데 스님은 욕을 당하면서도 한마디 말조차 안하는것이 아니겠소이까. 내가 〈스님, 내 저 날치는 개망나니 산수벙거지들을 요정내겠소이다.〉했더니 스님은 또 와뜰 놀라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것이였습니다. 회초리에 몰려 늙은 몸으로 고되고 욕된 고역을 치르던 스님은 끝내 그 토목공사장에서 등짐을 진채 세상을 뜨고말았소이다.

칼은 제 몸과 제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배우는 법이라고 하시던 스님은 고역속에 시달리다가 죽으면서도 자기 몸, 자기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칼을 한번도 써보지 못하고 시체마저 공사장땅속에 파묻히더란 말입니다.

스님들이 밤낮 부처님앞에 꿇어앉아서 부처님의 큰뜻을 깨닫고저 애쓰는데 그 뜻이란 무엇인지, 채찍아래 맞아죽으면서도 제 몸, 제 마음을 지키는 칼이 되여야 한다던 그 말의 참뜻이 무엇이였는지 알쑹달쑹해지고 또 알고싶지도 않아서 나는 그후 절간을 뜨고말았지요.

나는 부처님의 참뜻도 미처 모르고 칼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다 깨닫지 못한채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그후 한자루 칼과 불을 일구는 부시 하나를 가지고 인간세상과 멀리 떨어져 산속으로 들어갔댔소이다.》

법근은 지그시 눈을 감고 그 무슨 생각에 잠기는듯 하더니 하던 말을 이었다.

《나는 그 깊은 산속에서 그 칼로 짐승들을 잡아먹으며 또 그 짐승들과 동무를 하여 석굴속에서 살았지요. 그때 제일 그리운것이 짠맛이였는데 그때 싸리나무재가 쩝쩔하다는것도 알았지요. 인간세상에 나올 일도 없고 나오고싶은 생각도 없어서 나는 그 산속에서 마음껏 장검을 휘두르며 10여년을 살았는데 검술도 내 식으로, 칼로 자기 몸을 지키라던 스님의 말을 생각하며 정말 칼날로 자기 몸을 감싸는 검법도 터득했지요. 그렇게 지내다나니 내가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르게 되였는데 칡넝쿨로 길쌈질을 해서 장삼도 만들어입고 산짐승고기, 산골짝 개울의 물고기, 봄철의 새순, 가을철의 산열매를 먹고사는 돌중이 되였지요.

이렇게 10여년을 살다보니 문득 인간세상 그리운 생각이 들어 산발을 타고 구룡산꼭대기까지 와 멀리 평양거리며 대동강을 바라보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한 늙은이가 〈대사는 어느 절간에 계시우?〉하고 묻더군요. 산짐승처럼 된 발에 칡껍질로 얽어맨 장삼, 거기에다가 큰 칼을 들었으니 여느 사람 같으면 도둑놈이나 정신 빠진 놈인줄 알고 펄쩍 뛰겠는데 말입니다. 그 늙은이는 한동안 생각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가〈무슨 인생곡절이 있는것 같은데 나랑 함께 우리 집으로 가지 않겠나?〉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난 먼저 간 아버지품에 안긴것만 같아 〈흑―〉하고 흐느끼고말았지요. 이렇게 되여 난 평양 칠성문밖 그의 집으로 왔는데 그의 아들이 바로 전주복이였지요. 온 식구가 달라붙듯하여 머리도 깎아주고 수묵장삼도 새로 지어입히고… 칼을 가지고다니다간 제 명을 못산다고 자기 집 벽장에 감춰두라구 하더군요.…

전주복은 수수한 농사군이였지만 사람이 통이 크고 힘이 센 씨름군인데다가 의기를 숭상하는 평양성 장사가운데 한사람이였지요. 그의 소개로 나도 8장사축에도 들고 명검술 돌중이란 말을 듣게 되였지요.》

법근의 말을 생각깊이 듣던 곽첨지가 물었다.

《그러니까 차고있는 그 검을 란리가 나자 다시 찾았겠군.》

그 말에 법근이는 바람벽에 세워두었던 자기의 큰 검을 집어들더니 그 칼날을 쑥 빼들었다. 번쩍! 시퍼런 칼날무지개가 기름불, 광솔불, 겨릅대불들에 비꼈다.

《예, 란리가 일어난 다음에 다시 찾았지요. 바다건너 섬오랑캐들이 우리 나라를 침범하여 온 강토를 피로 물들이고있는데 보고만 있을수 없었지요. 더우기 우리가 잘 알고있는 〈생불스님〉서산대사께서 나라를 구원코저 전국의 중들을 불러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더는 참을수가 없었지요. 그때에야 난 철없던 나에게 검법을 가르쳐준 스님이 칼은 제 몸과 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배운다고 한 말의 참뜻을 진짜로 깨달았지요. 그래서 이렇게…》

법근은 제 하고싶은 말은 다했다는듯 옆사람들을 한바퀴 둘러보고나서 뒤더수기로 손을 가져가며 벙긋이 웃었다. 주변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선수선했다.

황바위가 큰것을 깨달은 목소리로 법근의 팔을 잡아쥐였다.

《그러니까 법근형님은 중의 지팽이대신 바꿔찬 이 칼의 참뜻을 산속의 절간이 아니라 오늘의 국난속에서 깨달았다 이 말이군요.》

《그렇네. 스님이 말씀하신 제 몸과 제 마음이란 곧 나라와 백성인줄 아네.》

《옳소이다. 난 의병대에 있으면서 우리가 왜 손에 칼을 들었는가를 뼈저리게 깨달았소. 이 검우에 나라의 안전과 백성들의 목숨이 있다는걸 말이우. 하지만 그 검이 개개로 흩어지면 하나의 쇠붙이에 불과하오. 오직 백성의 애국열의로 뭉친 힘, 그 힘으로 하나가 된 큰 주먹에 쥐여져야 진정한 복수의 검이 되고 나라를 지키는 보검이 되는것이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황바위의 가슴속에 커다란 맹세의 바위가 들어앉는것이였다. 그것은 자그마한 차돌들이 뭉쳐져 이룬 커다란 애국의 큰 바위였다. 초담이장마당에서의 소금싸움후에 그가 겪어보고 체험한 모든것들은 황바위로 하여금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틀어쥔 검만이 보검이 된다는 진리를 가슴속에 깊이깊이 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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