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8 장

평양방어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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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날밤 안주에 있는 도체찰사 류성룡대감의 공문서와 편지를 가진 그의 종사관이 한 선비를 데리고 방어영에 도착하였다.

공문서에는 전국의 군사정세와 전망문제, 명군의 참전문제 그리고 평안도 우방어사의 군사행동방향에 대한것들이 씌여져있었다.

편지는 김응서방어사에게 보내는 류성룡도체찰사의 개인서찰인데 거기에는 충청도의병장 조헌선생의 장렬한 전사에 대한 애절한 심정이 적혀져있었다.…

지난 6월 유생 고경명이 늙고 병약한 몸으로 의병을 일으켰으나 금산의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희생된 소식을 들은 조헌은 금산의 적을 치기로 결심하고 령규에게 글을 보내여 약속하기를 우선 공주로 가서 윤선각에게 관군과 협동작전을 할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비겁하면서도 질투심이 강한 충청감사 윤선각은 그 제의를 거절했으며 도리여 각 고을에 파발을 띄워 관군이 일체 의병에 협력하지 못하게 했으며 관군으로서 의병에 참가한자들을 처벌하였다. 이러한 박해로 조헌의 휘하에는 죽음을 각오한 700명의 의병만이 남게 되였다.

8월 25일 조헌은 령규와 더불어 의병을 거느리고 금산을 향하여 진군하여 27일에는 남하하는 왜적을 웅치, 리치에서 격파한 전라절제사 권률휘하의 관군과 련합하기로 약속이 되여있었다. 허나 권률의 관군은 오지 않았으며 약속을 고치는 글을 보내왔는데 때는 이미 부대가 금산 10리밖인 진악산근처에 당도하였을 때였다.

의병대가 두차례나 적의 공격을 물리쳤으나 세번째로 공격해올 때에는 화살이 다 떨어진 뒤여서 부하 한사람이 조헌을 부축하며 몸을 피하라고 권고했다. 조헌은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가 내가 죽을 곳이다. 사나이가 싸움마당에 들어서서 어찌 구차히 살기를 바라겠는가?!》

칼이 부러지면 맨주먹으로 적들과 맞서 700명이 한사람같이 싸우다 쓰러졌으니 살아남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종사관과 함께 온 선비를 통해 이런 사연을 알게 된 황바위는 분격을 금치 못해했다.

(아, 어쩌면 그럴수가 있단 말인가. 왜적을 치는 싸움에 관군이면 어떻구 의병이면 어떻단 말인가. 만약 그때 충청감사 윤선각이 관군들을 속출하지 않았더라면, 전라절제사 권률이 약속을 지켰더라면 조헌선생님이 그렇게 비참한 희생을 당하지 않았을게 아니겠는가.)

이미 림중량의병장을 통해서 충의우국지사로서의 조헌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온 황바위였다. 특히 란리전에 조헌선생이 충청도 옥천땅에서 천리길을 도끼를 메고 두번씩이나 달려와 경성 왕궁문을 두드리며 나라안에 기여든 왜놈들을 몰아내자고, 왜적의 침습을 막아낼 군사를 갖추자고 《만인상소문》까지 왕에게 올리며 목이 터지게 웨치다가 끝내 미친 놈이라고 쫓겨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먹을 불끈 쥐기까지 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처럼 의로운 조헌선생을 바로 관군의 따돌림에 의해 왜놈들과의 싸움에서 잃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분함으로 억이 꽉 막혀올라 온밤 잠들수가 없었다.

황바위의 심중을 알리 없는 성표가 황바위의 곁에 다가앉더니 뒤척이는 그를 툭 치며 물었다.

《그래, 여기 오니 기분이 어떤가?》

《…》

의미있는 물음이여서 황바위는 인차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 김응서방어사가 명색이 선봉장인 성표를 제쳐놓고 자기만을 상대할 때 미안한감이 없지 않았던 황바위였다. 황바위는 될수록 성표의 뒤켠에 서려고 했으나 김응서는 여전히 황바위만 대상했다. 아마 성표가 은근히 불쾌감을 느꼈을것이다.

성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황바위, 이 란리가 쉬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겠구만.》

《그건 무슨 소리오이까?》

황바위는 두눈을 굴리며 일어나앉았다.

성표는 여전히 누워있었다. 그는 조롱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란시이니 상놈과 량반이 이렇게 노전바닥에서 함께 딩굴지.… 태평세월에야 어디 꿈이나 꿀 일인가?!》

《?!…》

《생각해보면 란시가 왔으니 심심산골에서 돌팔매질만 하던 자네가 떠받들리우고 김응서와 같은 이름난 방어사와도 나란히 서보지.… 허, 헌데 이제 란이 끝나면 자넨 우리 밑에서 허리를 굽혀야 할거란 말이야.…》

《…》

황바위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만두시오이다.》

그는 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싸늘한 바람이 얼굴에 날아왔다.

(그렇다. 이제 싸움이 끝나면 나는 어데로 가야 하는가. 그때는 의병대도 더는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면 아버지와 함께 다시 북대봉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쌍가마는?…)

그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저 성표선봉장의 말이 옳다. 란리가 끝나면 량반들이 다시 우리 백성들의 등껍질을 벗기려들것이다. 그 악착한 조참봉이놈같은 량반들이!…)

그는 저도모르게 두주먹을 불끈 쥐였다.

순간 악착한 조참봉이놈의 상판과 함께 어린 총각애의 발뒤꿈치의 힘줄을 끊어버리던 그 처참한 모습들이 떠올랐다.

(아,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피흘리는가. 우리가 다시 노예로 될 그런 세상을 위해서? 하지만 왜놈들과 싸워야 한다. 어쨌든 나라가 있어야 량반도 백성도 있지 않는가.)

황바위는 오래도록 한자리에 서만 있었다.

 

3

 

다음날 서재골앞 벌판에서는 방어영 관군의 군사조련이 있었다.

여기에는 서재골 본영과 솔골영 군사들이 참가하였다. 기타 다른 영들에서는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조련장앞 높직한 둔덕우에는 청색천우에 손바닥같은 적동색쇠비늘이 번쩍거리는 쇠갑옷에 오동빛 쇠투구를 쓴 평안도 우방어사 김응서가 우람찬 체구에 큰 칼을 차고 한손에 칠성별이 뚜렷한 초요기를 들고 서있었다.

그의 왼쪽에는 모사 박억과 다섯명의 비장이, 대렬들의 맨 앞 중심에는 뒤솔기가 길게 째진 검은 두루마기에 붉은 소매를 단동달이를 입은 병방비장이 붉은 장식 상모가 달린 검은색 전립 패영(수정이나 산호, 호박같은 보석으로 만든 갓끈)을 조여매고 섰다. 환도 차고 동개(화살과 활을 꽂아넣어 지는 물건)를 멘 그의 호용스럽고 표일한 기상이 조련장의 풍경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였다.

소매들에 군종표식을 한 날씬한 세가닥 더그레(라장들이 입는 세가닥의 옷)에 금방 날개칠것 같은 짧고 붉은 상모달린 벙거지를 쓴 군정(병역이나 부역을 강요당하는 성인남자)들과 날파람있는 몸차림을 한 군사들이 온 조련장에 한가득 들어섰다.

대오에서 대오사이로 나도는 령기들은 가벼운 바람을 일으키는데 칼잡이군, 창잡이군, 몽치군, 활잡이군들이 대오를 주름세우듯이 맞춰섰고 화포대, 화총대, 꺾쇠와 바줄을 가진 날파람군들, 마군들, 김응서방어사의 천리준마고삐를 잡고 함께 뛴다는 말잡이군 충남이처럼 모두가 기세차고 날파람 있어보이는 말구종들, 긴 사다리와 충차들을 수백개나 갖춘 성공격군사들 등등의 병졸들이 서로 기세를 겨루듯 으쓱거린다.

여기에 대동강 김익추휘하의 수군까지 참가해서 조련장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군복들은 색이 바랜것들이 적지 않아 8월 평양전투를 비롯해서 여러 싸움을 거쳐온 관군의 관록을 돋궈주는데 새로 지어입은것이 더 많았다.

왜적들이 도사리고있는 코밑에서 벌리는 군률이 엄정하고 기세충천하며 병쟁기와 군사장비가 그쯘한 방어영군사들을 보며 백성들이 입을 모아 하는 칭찬이였다.

《그러니까 왜놈 눌러놓느라구 바싹 평양성코밑에서 벌리는 우리 관군 조련이갔지?》

《방어사님 기개가 아니고서야…》

녀인들이 속삭인다.

《사또님곁에 서있는 저 푸른빛 바지저고리를 입고 푸른 수건 쓰고 구럭메고 선 저 총각은 누굴가?》

《거 늘씬한 키에 훤칠하게 생긴 총각 잘도 났다.》

사람들의 눈길이 황바위에게 쏠렸다.

《거 〈푸른갑옷〉장수가 틀림없쇠다. 왜놈들이 벌벌 떠는 북대봉호랑이가 옳쇠다.》

《과시 듣던바대로군. 어쩌면… 그러니 서진성의병들도 왔구만!》

한 중년녀인이 그에게서 눈을 못떼자 곁의 중년남정이 시까슬렀다.

《아주머니, 그 총각에겐 벌써 고운 색시감이 있답데다. 집에 딸이 있는 모양인데 너무 눈독 들이지 마슈.》

그 말에 까르르 웃음들이 터졌다.

그런가하면 《에구, 우리 애아버지도 살아있었더라면 오늘 저자리에 서보는건데. 그놈의 왜놈들이…》하는 녀인이 있어 판은 심중해지기도 했다.

이때 한 사나이가 아는체를 했다.

《저 북대봉호랑이가 이제 김응서장군의 선봉장이 된다우.》

《그래, 그것 참 잘됐군. 과시 방어영의 선봉장감이지.》하며 술렁이는 사람도 있었다.

황바위를 이자리에 세운 김응서의 의도는 들어맞았다. 북대봉호랑이 《푸른갑옷》의 소문은 단번에 온 조련장에 퍼져 사람들의 사기를 돋구어주었다.

이윽고 김응서방어사의 머리우에 초요기가 번쩍 올라가더니 우렁찬 목소리가 조련장에 울려퍼졌다.

《명금 취타하라!》 (군악을 울리라.)

그 령에 따라 징소리, 북소리 진동하고 세 악사들이 흥겹게 불고 두드리고 치고 타는 군악과 함께 보무당당한 군종별 대렬이 땅을 구르며 련달아 나아갔다. 몸이 근질근질한듯 신이 나서 춤을 추듯 나아가는 더그레군들의 벙거지에서 붉은 상모들이 펄펄 신이 나 돈다. 기치창검들이 해빛을 받아 번쩍거린다. 입을 크게 벌린 총통, 화통들이 나간다. 말발굽소리 드높이 울리며 호용한 마군들이 나간다. 백성들에게 힘을 주려고 온 대동강수군들이 함께 나간다.

《아, 내 땅에 기여들어 수천리를 미친듯이 달려온 이리떼같은 놈들이 우리 평양에서 이제 그 발목들이 끊어지게 되였구나!》

《그렇구말구요. 우리 조선이 왜놈에게 먹힐 나라인가요.》

어느덧 구경군들속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춤군들이 생겼다.

《에구, 이런 날을 못보구…》

또 이런 목소리들이 구경군들속에서 튀여나왔다. 평양성안에서 왜적에게 혈육을 잃은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여보시, 임자도 저 귀얄수염 영장을 잘 알지 않나. 거 왜 경성골골짜기 집에서 간장을 핥는 왜놈들의 골통을 방망이로 깐 그 어머니의 아들말이야.》

《옳아, 옳아. 저 사람 두눈에서 불이 이는구만.》

《왜 그렇지 않갔나.》

구경군들은 그 영장의 피맺힌 눈길을 스쳐보내지 않았다.

소서비의 목을 벤 명장 김응서의 옆에서 난생처음으로 제나라 군사들의 위용을 보게 되는 황바위의 가슴은 쿵쿵 뛰였다. 자기를 여기로 떠밀어보내준 의병장에 대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꽃골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말하던 《나라의 울타리》였구나! 이것이 없었길래 그 많은 삶들이 눈을 못감은채 갔구나!)

황바위의 주먹은 저도모르게 굳어지고 오늘 저를 자기옆에 세워준 김응서방어사의 마음이 뜨겁게 느껴졌다.

(그렇다. 나라와 백성이 건장하자면 울타리가 튼튼해야 한다. 그렇지 못했기때문에 우리 백성들이 왜적의 칼에 란도질을 당한것이다!)

조련은 북소리에 맞춰 군사들이 나가고 징소리에 맞춰 들어오며 에워싸고 들이치고 흩어지고 모여들며 절도있는 동작을 보여주면서 나갔다. 또한 대렬이 넓어지고 좁아지며 방향을 엇바꾸면서 나가는데 병장기들을 능숙하게 다루며 항, 오끼리 교체태세를 갖추며 나갔다.

《대취타(큰 군악)하라!》

김응서의 우렁찬 구령에 군악은 더 고조되고 각 대오에 반복전달되여 대오들은 진격태세로 넘어가고 마군들의 말발굽소리가 높아졌다.

조련이 한창 고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꺼겅껑, 깍깍소리와 함께 두마리의 장끼와 두마리의 까치가 조련장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김응서장군은 온 조련장이 쩡 울리는 큰 목소리로 《중화의병대의 황바위! 저 새들을 북대봉 차돌멩이로 떨굴수 있느냐?》라고 웨쳤다.

뜻밖의 령이였다. 그러나 틈을 주지 않고 두손으로 하늘높이 올리친 황바위의 차돌멩이에 맞은 네마리의 날짐승들이 연거퍼 털썩털썩 교련장 한복판에 떨어져 푸드득거렸다. 목털이 곱기도 한 장끼들과 까치들이였다. 짐승들은 하나같이 골통이 터져있었다.

《야―》

관중들속에서 환성이 터졌다.

《저건 사람의 재간이 아니라 신술이다.》

《하늘이 준 재간이다.》

순간 김응서의 얼굴에 그윽한 미소가 스치더니 경탄의 눈길이 황바위에게로 쏠렸다.

이때 한 군사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저건 신술도, 하늘이 준 재간도 아니요. 저 돌멩이는 왜놈을 쳐서 할아버지, 아버지의 원쑤를 갚자고 북대봉 심산속에서 일곱해동안을 익힌 원한의 차돌멩이솜씨요. 왜놈들에게 무리죽음을 주는 북대봉호랑이, 〈푸른갑옷〉, 중화의병대 황바위의 솜씨란 말이요.》

그는 류성이였다. 방어사로부터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라는 령을 받았던것이다.

《놀라운 일이로다.》

《일편단심이면 하늘도 이긴다더니 그 말이 옳군.》

《그 의병대원 장할시고.》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이날 조련이 끝난 다음 방어영 군막들에서도 군사들은 황바위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우리 관군에도 〈표창대〉,〈편승대〉를 만들자!》

《중화의병대가 평양관군에게 새 힘을 주는구나.》

군정들의 손에서 손으로 표창과 편승이 돌아갔다.

김응서는 황바위에게 흔연한 얼굴로 자기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내 오늘 자네를 좀 시험쳐봤네. 하하하… 헌데 내가 졌거든. 기쁘이.… 자네가 오늘 우리 관군과 백성들에게 인간의 힘이란 과연 크다는것을 가르쳐주었거든. 하하하…》

김응서는 다시한번 기쁜 웃음을 웃고나서 계속했다.

《자네가 오늘 처음 봤을 우리 관군에 대해 어떤것을 느꼈는지 좀 이야기해보게나.…》

《예, 저는 난생처음 우리 관군의 위용을 보았소이다. 방어사님, 이 군사를 이끄시고 평양성안의 왜적을 쳐물리쳐서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주사이다. 저희들도 서진성에서 놈들의 도망치는 발목을 치겠소이다.》

《고마우이.》

김응서는 황바위의 쩍 벌어진 어깨에 손을 얹고 불구슬이 도는 그의 눈을 홀린듯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황바위도 스스럼이 없어지고 김응서방어사에 대한 믿음이 커져 자기가 느낀바를 진정을 담아 다 이야기했다.

《제가 어제, 오늘에 느낀것은 군사의 힘은 그 군사를 거느리는 장수의 애국충정과 령군술, 병장기 다루는 숙련에 따라 그 군사의 힘도 커지고 작아진다는것을 느꼈소이다.》

《음―》

《그다음은 우리가 결코 왜적따위에 질 군사도 백성도 아니라는것을 더 잘 알게 되였소이다. 관군이 내놓고 적을 들이치며 나가는 군사라면 의병은 령활한 전술로 적의 앞뒤로, 옆으로 사라지듯 하다 나타나고 헤여지듯 하다 모여들고 하며 적을 쳐야 할 군사라는것을 똑똑히 알았소이다.… 다시말해서 관군이 대판으로 맞붙어 적과 결판을 내며 나가는 군사라면 의병은 민활하게 적의 한모서리씩을 떼내서 치는 군사인데 이 두 군사의 힘을 잘 합치면 못물리칠 적이 없을것이라고 생각했소이다.…

저는 어제 조헌선생의 의병 700명이 한꺼번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오늘에야 그 까닭을 알았소이다.》

《엉?!》

《조총을 가진 적과 직접 맞설것이 아니라 의병전술로 싸웠더라면 그렇게 몰살당하지 않았을것이오이다. 그 장한 충의지심을 가지고… 아, 참 분통한 노릇이올시다. 거기에 비하면 곽재우장군은 의병전술로 크게 승전한 장군이시오이다.》

《음―》

김응서방어사와 고충경, 박억 등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였다.

《그러구보면 애국충정 하나만 가지고는 결코 적을 물리칠수 없다는것을 알수 있는데 선비인 조중봉선생이 그런것을 깊이 몰랐을것이며 또 나라에서 내놓고 군사훈련도 못하게 했으니 참 통분한 일이오이다.》

황바위의 목소리는 불을 뿜는듯 했다. 그는 계속했다.

《평양성안의 왜적이 도망칠 때도 우리 관군과 평양성관문을 지키는 의병들이 그런 전술을 잘 배합해서 쓰면 왜적은 한놈도 놓치지 않고 다 잡을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할시고. 단 하루의 조련을 보고 우리 관군의 근본바탕을 알아내고 의병전술의 묘리를 더 굳게 믿게 되였으니 황바위야말로 림중량의병장이 장하게도 길러내여 북대봉에서 맹호출림시킨 인재로다.》

김응서의 목소리는 거의 탄성과도 같았다.

고충경이 그 말을 받았다.

《옳소이다. 싸우면서도 그 호랑이를 더 크게 키우기 위하여 선봉장과 함께 황바위를 여기로 보낸 림공의 그 웅심 장하오이다.》

《그야 큰 호랑이가 되여 남해바다까지 왜적의 목줄을 물어제끼며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박억도 흥분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김응서는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고나서 큰 벼루의 먹을 큰 붓에 듬뿍 적시더니 널직한 족자우에 일필휘지했다. 《맹호출림》이라는 네 글자가 나타났다. 이것은 관서사람의 기질을 나타낸 글구였다.

《자, 황바위, 이걸 받게.… 나의 진심일세.》

김응서는 그것을 황바위에게 주었다.

황바위는 머리를 숙여 그 족자를 받았다.

떠나는 황바위에게 련련한 정을 금치 못해하는 김응서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단 하루동안에 관군과 의병의 근본바탕과 기본전략들을 들춰내는 저런 사람에게 병법이 무슨 소용이랴.》

군영밖까지 따라나온 박억이가 황바위에게 물었다.

《자네 생각에는 평양성 왜적들이 어느때쯤 뛸것 같은가?》

《대동강이 얼어붙어야 뛸게라고 생각합니다. 심산속의 메돼지떼도 제가 도망칠 길을 알고서야 뛰니까요.》

《메돼지라… 아하하하…》

박억의 그 웃음소리는 크기도 했다. 그러더니 박억은 심중한 얼굴로 황바위에게 말했다.

《이제 곧 평양성안 왜병 3천명이 어랑산성으로 나갈걸세. 그건 황해도 구로다까지 바라볼것 없게 된 고니시가 죽으나사나 남쪽으로 뛰기 위해서 먼저 남쪽관문을 꽉 막고있는 서진성의병대를 치자는거네. 명심하라구. 우린 그곳 의병들을 믿네. 북대봉호랑이가 있는데야, 하하하…》

박억은 다시한번 황바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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