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 회)
제 8 장
평양방어영에서
1
해종일 조련장에서 의병들을 훈련시키느라고 어지간히 힘이 빠진 황바위는 의병들에게 휴식을 주고나서 발길이 닿는대로 숲속길에 들어섰다.
호젓한 숲속을 혼자 거닐자니 마음이 더 어수선해졌다. 눈앞에 다른 의병들처럼 남복을 한채 조련을 받는 쌍가마의 모습만 얼른거렸다.
황바위가 생판 남인듯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입을 꼭 다문채 훈련에만 열중하는 쌍가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황바위는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차라리 쌍가마가 눈에 띄우지 않는편이 마음이 편안할것 같았다.
황바위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숲속 변두리로 걸어가는데 저앞의 늙은 소나무우듬지에서 까마귀가 청승맞게 까욱거렸다.
황바위는 분김에 차돌멩이를 하나 들어 소나무우듬지를 향해 휙― 날렸다.
《까욱―》
까마귀는 그를 조롱하듯 푸드득 날아올라 황바위의 머리우로 한바퀴 휘돌며 사라졌다.
《하하하…》
문득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왔는지 림중량이 웃음을 머금은채 황바위쪽으로 걸어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푸른갑옷〉의 차돌멩이에 살아남은 놈도 있는가? 허허…》
황바위는 그만 거북해서 고개를 떨구었다.
《의병장님, 의병들이 너무 힘들어하기에 휴식을 주었소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림중량이 넌지시 말을 건늬였다.
《농쟁기나 다루던 사람들을 조련시키자니 힘에 부치지?》
《예, 헐치 않소이다. 혼자서라면 그깟놈의 왜놈을 천이건 만이건 자신있는데 숱한 사람들을 하나같이 키워 싸움판에 내세우는 일에는 재목이 못되는것 같소이다.》
《허허…》
림중량은 속마음을 숨길줄 모르는 황바위를 잠시 바라보다가 제먼저 풀밭에 주저앉았다.
《자 앉자구.》
황바위는 진중한 표정으로 먼산을 바라보는 림중량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림중량은 아무말없이 황바위의 차돌멩이구럭안에 들어있는 차돌멩이를 세여보듯이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이윽하여 림중량은 심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아무리 차돌멩이를 잘 던지고 또 차돌멩이가 많다고 하여도 그것만 가지고는 왜놈들을 이길수 없어. 나나 자네가 아무리 날고뛰는 재간이 있다고 해도 백성이 한마음으로 뭉쳐 일어설 때에만 이 땅에서 왜놈들을 쳐몰아낼수 있다는걸 꼭 명심하게. 힘이 들어도 우린 의병모두를 용맹한 군사로 키워야 하네.》
《의병장님의 그 깊은 뜻을 가슴에 새기겠나이다.》
황바위는 바로 그 리치를 깨닫게 하느라고 자기를 북대봉까지 보냈던 의병장의 깊은 뜻을 소홀히 한것 같아 죄송스러워하며 맹세를 다졌다.
《그리고 자네부터 조총다루는 법을 부지런히 익히게.》
황바위는 눈이 둥그래졌다.
《그따위 왜놈의 조총은 알아서 뭘하겠소이까?》
림중량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직도 돌멩이나 뚝힘만 가지고 왜놈들과 맞서려는 황바위의 생각이 야속스러웠다.
황바위만 탓할 일도 아니였다. 섬나라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타고앉을 검은 속심을 품고 야금야금 침략의 칼을 벼리고있을 때 이 나라 조정의 량반관리들은 무엇을 했던가. 온 나라 백성들의 피땀을 짜내 걷어들인 돈을 얼마만이라도 군비에 돌려 대포를 만들고 조총같은 신식병장기를 갖추어놓았더라면 이처럼 치욕스러운 임진의 란을 당하지 않았을것이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림중량은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당분간 의병들을 조련시키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성표선봉장과 함께 김응서방어사님이 계시는 방어영에 갔다오도록하라.》
《예?!…》
황바위는 갑자기 엄해진 림중량을 얼떠름해서 쳐다보기만 했다.
《임자를 따라보내는 내 뜻은…》 림중량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이번길에 성표선봉장을 도와서 관군과 힘을 합쳐 평양성에서 왜놈들을 하루빨리 쳐몰아내기 위한 계책도 성사시키고 평양성사람들의 애국심과 원쑤격멸의 기개가 얼마나 높은가를 똑똑히 알도록 하기 위해서네. 알겠나?》
《알겠소이다.》
2
(1)
황바위네가 평안도 우방어사영에 도착했을 때 방어사 김응서는 평양수복의병장 고충경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중화의병대 선봉장 성표 방어사님께 문안드리오.》
《황바위옵니다.》
황바위가 인사를 올리자 김응서는 성표선봉장을 제쳐놓고 그를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듣던 말대로 범의 기상인양 숱진 긴 눈섭에 불구슬이 구는 두눈, 휘여잡기 어려울 만만치 않은 결패, 험산도 단숨에 날아넘을듯 한 황바위의 기상을 보자 김응서의 입에서는 《과시 북대봉정기를 안고 태여난 장수감이로다!》하는 찬탄의 목소리가 절로 튀여나왔다.
김응서는 기쁜김에 첫마디부터 가벼운 롱을 섞어 이렇게 말하고는 《어서 올라오라구, 기다렸네.》하고 그를 존대까지 해주며 한구석에 앉으려는 황바위를 자기곁에 바싹 끌어앉히며 물었다.
《임자 부친도 지팽이를 짚은 한발로 서진벌에 나와 왜적과 싸우고있다며?》
《예.》
《장할시고… 그리고 임자의 색시감이 될 처녀도 단검치기명수라지? 하하하…》
김응서의 과찬에 황바위는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게 어찌 한개의 짧은 칼이겠나.》
정겹고 미더운 눈길로 황바위를 다시 바라보며 김응서가 입을 열었다.
《자, 평양수복의병장에게도 인사를 해야지.》
그 말에 고충경은 《우린 벌써 구면이올시다.》라고 대답했다.
중화의병대 기치의식때의 상봉을 두고 한 말이였다. 비록 서로 말은 없었지만 고충경은 그때 벌써 황바위의 출중한 인품에 반했던것이다.
《왜놈에게 아버지를 빼앗긴 제 사촌동생 황륙손이를 의병대에서 품안고 키워주신 의병장님을 잊지 않고있소이다.》
《아니야, 그를 키운분은 이 방어사님일세. 그애가 이번에 소서비놈을 목베는 방어사님을 도와 큰일을 했다네.… 자진해서 초담이로 갔는데 앞으로 한몫 단단히 할걸세.》
《고맙소이다.》
황바위는 림중량의병장이 김응서방어사와는 오석산에서부터 검술을 익혔으며 고충경의병장과는 활터에서 서로 사귀여 기우는 국운을 두고 가슴을 태운 사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이분들이 바로 림중량의병장님과 함께 서북지방의 우국지사, 의기지사들로서 기울어지는 국운과 왜적의 침습을 생각하며 함께 흉벽을 두드렸고 국란이 일어나자 백성들을 불러일으켜 왜적치는 싸움에서 용맹을 떨치는 평양이 낳은 영웅호걸들이구나!)
황바위는 자기를 이자리에 보낸 의병장의 웅심깊은 뜻이 새롭게 안겨와 눈굽이 젖어들었다.
이때 방안에 불쑥 들어선 방어영 참모 박억이 황바위를 보자마자 그의 손부터 덥석 잡았다. 《과시 북대봉호랑이란 이름이 허명이 아니였구만.》 그리고는 황바위의 푸른 바지저고리를 쓸어보며 《왜적들이 이 옷을 갑옷이라고 벌벌 떤다면서…》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아 방어사나으리, 오늘에사 그렇게 바라시던 인재를 얻으셨소이다. 오늘부터 이 북대봉호랑이를 우리 방어영에 눌러앉힙시다.》
박억의 이 말에 황바위는 눈이 둥그래졌다. 그는 김응서와 박억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아니, 그럼 나를 여기 방어영에 있게 하려구? 림중량의병장님도 다 알면서 나를 여기로 보내셨단 말인가?)
황바위는 림중량의병장이 야속스러웠다. 그러나 다음순간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우리 의병장님은 그럴분이 아니다. 나는 의병이다.)
황바위가 이런 생각에 골몰하는데 김응서가 꾸어온 보리자루모양으로 한켠에 서있던 성표에게 눈길을 돌렸다.
《어떤가. 선봉장, 임자 생각은?》
《예? 저에게 무슨 다른 생각이 있겠소이까.》이어 성표가 계속했다. 《아마 림중량의병장님도 황바위를 여기 평양방어영에 따라보낸 까닭이 거기에 있지 않겠는가 하오이다.》
성표의 그럴듯한 대꾸에 김응서는 《허허, 그렇단 말이지.》 하고는 상대방을 살폈다. 무를 겸비한 젊은이라 비록 이목구비는 잡혔어도 어딘가모르게 기개가 조촐한것이 황바위에 비하면 못해보였다. 그것도 그것이였지만 황바위와만 이야기를 나누는게 못마땅한지 심술기가 어린 눈으로 황바위를 곁눈질하는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황바위보다는 기울어. 헌데 어째서 림중량이 이 황바위보다 성표를 선봉장으로 내세웠담?!)
김응서의 입에서는 이런 속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 튀여나왔다.
《선봉장, 그렇게 되면 중화의병대가 어금이가 빠진 격이 되지 않을가?》
《?!》
깊은 의미가 담겨진 방어사의 말에 성표는 긴장해졌다. 촉각이 예민한 그는 대방이 자기의 속생각을 들여다보았음을 느꼈다.
《옳소이다. 황바위야말로 우리 중화의병대에 없어서는 안될 인재인줄 아오이다.》
《그렇겠지.…》
그제서야 김응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황바위에게 눈길을 돌렸다.
《방어사님께서 저를 이토록 높이 쳐주시니 황공무지로소이다.》
황바위는 무릎을 꿇고앉아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어서 일어나게.》
김응서는 황바위를 안아 일으켜세웠다.
《임자같이 든든한 큰 바위가 중화길목을 틀고앉아있어야 왜놈들의 숨통을 짓조겨댈수 있지. 그렇지 않소, 박억모사.》
《옳소이다!》
박억의 대답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 성표의 가슴속에서 불뭉치같은것이 치밀어올랐다.
사실 박억이가 황바위를 방어영에 눌러앉히자고 방어사에게 건의했을 때 그는 속으로 환성을 내질렀다. 황바위야말로 중화의병대에서 제일가는 그의 경쟁자였던것이다. 황바위가 평양방어영에 떨어지게 되면 중화의병대의 민심은 절로 선봉장 자기에게 쏠리게 될것이라는 약삭바른 타산에서였다. 그런 천재일우의 기회가 사라져버린것이다.
성표는 머리를 짓수그리고 어서빨리 이자리가 끝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잠시후 군막안으로 점심상이 들어왔다. 김응서는 애써 밝은 얼굴로 사양하는 황바위를 허물없이 자기옆에 앉히더니 생선튀기접시를 그의 앞에 당겨놔주었다.
《의병대에서는 어떻게 먹는가? 서진벌추수싸움을 잘했다니까 쌀걱정은 없겠지만 식찬이랑은…》
황바위는 김응서의 인간적품격이 뜨겁게 안겨지며 스스럼없어졌다.
《백성들이 돌봐줘서 잘 먹습니다.》
《그렇겠지.… 백성들이 있구서 의병들 배야 곯겠나.》
김응서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점심상을 물리자 김응서는 미더운 눈길로 황바위를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자, 그럼 황바위의 생각을 좀 들어볼가? 평양성왜적을 쳐물리칠 계책에 대해서 말이야. 림중량의병장이랑 좋은 계략이 서있겠는데.…》
그러자 황바위는 몸가짐을 바로하고 신중히 말했다.
《황송하오나 그 말씀을 드리기 전에 한가지 말씀드릴것이 있소이다.》
《거 무슨 말인지 어서 하라구.》
김응서는 빙그레 웃었다.
황바위는 직통배기천성그대로 내보였다.
《제가 잘못 생각했는지 모르겠사오나 저를 방어사님의 휘하에 두려고 부르신것은 아니겠지요?》
《?!》
《방어사님! 저는 의병입니다. 북대봉 차돌멩이구럭을 메고와서 오늘까지 저는 백성들과 함께 자고 먹으면서 고락을 같이해왔소이다. 이제는 그들과 떨어지지 못합니다. 그들은 한가마밥을 먹고 싸우는 부모형제들이옵니다.
그들의 힘과 지혜로 왜적과 싸워온 제가 만약 그들과 떨어진다면 불꺼진 화로처럼 되고말것입니다. 이것을 깊이 헤아려주사이다. 제 손으로 눈을 감긴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지켜보고있소이다.》
황바위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음―》
신중해진 얼굴로 한참동안이나 우람찬 몸을 흔들며 황바위를 지켜보던 김응서는 《거 구럭에 메고온것이 북대봉 차돌멩인가?》하고 물었다.
《예, 이번에 올 때 림중량의병장님께서 이 차돌멩이랑 표창을 다 가지고가서 방어사님께 보여드리라고 해서…》
《음― 어디?》
황바위는 메고온 구럭을 방어사앞에 갖다놓았다.
김응서는 차돌멩이와 표창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이 차돌멩이가 이제는 쇠창꼬치가 되고 조총으로까지 되여 왜놈들을 족친단 말이지? 음―》
황바위가 말없이 앉아있는데 김응서는 량손에 차돌멩이와 표창을 쥐였다.
《왜놈들이 이 차돌멩이랑 이 표창앞에서 제놈들의 조총은 쇠부지깽이라고 한다메?… 제놈들의 조총은 쥐포수총이라 하구. 하하하…》
황바위의 구럭은 박억과 고충경 등 여러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김응서는 구럭속의 벼이삭을 꺼내들고 황바위에게 물었다.
《예, 서진벌에 떨어진 벼이삭이올시다. 백성들이 피흘리며 가꾸고 걷어들인것들인데…》
《음― 장할시고, 과시 의병이로다.》
김응서는 감탄조로 혼자소리처럼 말하고나서 《림중량의병장이 인재복을 타고난 사람일세.》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조용히 웃었다.
이윽고 김응서는 황바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가 인간세상에 나와 의병대에서 국란을 겪는 동안에 제일로 크게 깨닫고 배운것이 무엇인고?》
그 물음에 황바위는 몸가짐을 바로하고 명명백백히 대답했다.
《네, 그것은 애민애국하는 겨레의 넋입니다. 의병장님은 바로 그 넋으로 의병들과 백성들을 불러일으켜 강대한 왜적을 쳐물리치고있소이다. 우리 의병들은 의병장님이 심어준 그 넋을 안고 80고령의 애국지사이며 명성높던 검객 서설봉선생이 순국하신것처럼 저들이 죽을 자리를 알고 인간의 마지막장을 값지게 하자고들 마음먹고있소이다.》
《음―》
김응서는 머리를 더 크게 끄덕이고나서 성표에게 눈길을 주었다.
《선봉장!》
《예.》
《선봉장은 중화의병대 전술의 기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네, 의병전술은 하나의 성곽에 의거해서 싸움을 하는 전술입니다. 우리 의병장님은 중화의병대의 본거지인 크지 않은 서진성을 중심으로 사방에 의병별동대를 문어발처럼 든든히 꾸려 벌려놓고 서로 호상호응하며 왜적을 치고있소이다. 왜적은 우리 서진성의 허실을 아직도 모르고있고 의병대에서는 경성, 평양간의 국도를 꽉 틀어잡고있으면서 요즘은 평양 코앞인 초담이장마당에까지 별동대를 꾸려놓아 성안 왜병들의 동향을 손금보듯 하면서 싸움준비를 든든히 하고있소이다.》
성표의 대답에 한순간 김응서의 얼굴이 환해졌다.
《음, 옳거니… 과시 평양관문 의병대다운 전술이로다.》
머리를 끄덕이고난 김응서는 기대어린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래, 서진성관문을 앞으로 어떻게 지키고저 하는고? 왜적은 이제 북문은 못열것이고 바로 그 관문으로 빠져나가겠는데…》
이번에도 성표는 깊은 생각이 없이 단마디로 대답했다.
《병가상사라 조총을 가진 수천의 왜군을 당하자면 어차피 관군의 지원을 받아야 할줄 아오이다.》
《허, 관군의 지원을 받아야 한단 말이지. 물론 그래야지.…》
김응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군막안을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성표의 의견을 따른다면 어차피 평양성을 둘러싼 관군과 평양수복의병부대의 일부를 중화쪽으로 떼주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아니다. 지금은 평양에서 하루빨리 왜놈들을 몰아내는것이 급선무다!
《황바위, 임자 생각은 어떤가?》
《방어사님, 그렇게 되면 평양성수복싸움이 어렵게 될줄 압니다.》
《응?!》
《저는 왜놈들이 남쪽으로 쓸어나오기 전에 우리 중화의병대가 제일 크게 힘을 넣어야 할 일은 어랑산성의 적을 혼란에 빠뜨려 맥을 못쓰게 만드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뭣때문인가?》
《요즘 고니시는 3천명을 더 내보내여 6천명으로 우리 의병대를 짓뭉개놓고 남쪽으로 빠져나갈 꿍꿍이를 하고있다 하오이다. 놈들에게 있어서 남쪽 도망길의 건늠돌이라 할수 있는 지점이 바로 어랑산성인즉 적의 급소를 타격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해야 할줄 아오이다.》
《그래서…》
《…어랑산성등뒤에 석가산별동대와 남진별동대를 더 튼튼히 꾸려 수시로 놈들을 들이쳐서 서로 옥신각신하고있는 놈들이 더 뒤죽박죽이 되게 하고 3천의 왜군이 나올 때는 놈들의 앞대가리와 꼬리, 허리토막을 끊어놓아 놈들에게 우선 큰 벼락을 안긴다면 능히 수천의 왜군이라 해도 당해낼수 있소이다.》
《옳거니.》
김응서는 무릎을 쳤다.
《어떻소?》
그는 환희에 넘쳐 고충경과 박억을 바라보았다.
《정말 후생가외(후손들이 무섭게 자랐다.)이오이다.》
고충경이 이렇게 말하는데 박억도 기뻐하며 벙글거렸다.
김응서의 기쁘고 신중한 목소리가 군막안에 차넘쳤다.
《내 서진성관문때문에 더는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황바위, 아까 우리 박억참모가 한 그 롱담에 마음을 쓰지 말라. 임자는 타고난 의병이고 중화관문 주추돌인데… 내 임자를 〈불꺼진 화로〉로 만들지 않으리로다.》
김응서는 계속했다.
《임자가 림중량의병장의 충의지심과 전술을 이렇게 깊이 알고있으니 어찌 왜적의 총이 쇠부지깽이가 안되며 어찌 어랑산성의 왜적들이 깨진 죽사발이 안될고.… 참 통쾌한 일이로다. 하하하…》
김응서의 호탕한 웃음이 크게 터진 방안에는 황바위의 젊은 패기까지 담겨져있었다.
《이제 있게 될 방어영 조련장에서 그대의 솜씨도 좀 보여달라구.》
김응서방어사의 목소리에는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넘쳐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중화의병대의 선봉장으로 황바위를 내세우지 않은 림중량에 대한 불만이 머리를 쳐드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